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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일, 「풀과 생각」

  • 작성일 2014-07-14
  • 조회수 2,321


이병일, 「풀과 생각」




풀은 생각 없이 푸르고 생각 없이 자란다


생각도 아무 때나 자라고 아무 때나 푸르다


그 둘이 고요히 고요히 소슬함에 흔들릴 때


오늘은 웬일인지


소와 말도 생각 없는 풀을 먹고


생각 없이 잘 자란다고


고개를 높이 쳐들고 조용히 부르짖었다





▶ 시·낭송_ 이병일(1981~ )은 전북 진안에서 태어났다. 2007년 계간지 《문학수첩》 신인상에 「가뭄」 외 4편이 당선하면서 등단했다. 시집 『옆구리의 발견』이 있다.




배달하며

올해의 풀들은 이미 무성해졌는데요. 이 푸르고 향기도 나는 종족(種族)의 생명력 앞에서 문득 두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 뻗치는 기세가 곧 세상을 뒤덮어버릴 듯 하죠. 기세등등한 초본식물들도 가을 무렵 쯤 자진(自盡)합니다. 씨앗 몇 톨을 떨구고 그동안 꿋꿋하게 서 있느라 닳아진 무릎을 꺾습니다. 이병일 시인은 풀이 “생각 없이 푸르”듯 생각도 “아무 때나 푸르다”고 말합니다. 흔히 풀은 욕망과 의지의 은유에서 더 빛날 텐데, 이 젊은 시인은 풀과 생각을 나란히 한 줄에 놓네요. 생각 없이 잘 자라는 게 자연이라는 것이지요. 어느 날 문득 생각 없이 잘 자라는 게 자연이라는 걸 발견한 것이지요. 유레카! 시인은 소와 말이 그 생각 없는 풀을 먹고 생각 없이 잘 자란다고 조용히 부르짖습니다. 세상은 고요하고, 소와 말과 풀들이 생각 없이 잘 자란다면, 그게 평화가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소와 말들이 풀을 뜯는 들판은 오늘도 고요합니까?



문학집배원 장석주


▶ 출전_『옆구리의 발견』(창비)

▶ 음악_ 권재욱

▶ 애니메이션_ 민경

▶ 프로듀서_ 김태형

장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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