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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칠팔월(七八月)」

  • 작성일 2014-07-29
  • 조회수 2,194


문태준, 「칠팔월(七八月)」




여름은 흐르는 물가가 좋아 그곳서 살아라


우는 천둥을, 줄렁줄렁하는 천둥을 그득그득 지고 가는 구름


누운 수풀더미 위를 축축한 배를 밀며 가는 물뱀


몸에 물을 가득 담고 있는, 불은 계곡물


새는 안개 자욱한 보슬비 속을 날아 물버들 가지 위엘 앉는다


물안개 더미같이, 물렁물렁한 어떤 것이 지나가느니


상중(喪中)에 있는 내게도 오늘 지나가느니


여름은 목 뒤에 크고 묵직한 물주머니를 차고 살아라




▶ 시·낭송_ 문태준(1970~ )은 경북 김천에서 태어났다.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 「처서」외 9편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 『수런거리는 맨발』 『그늘의 발달』 『먼 곳』 등이 있다.



배달하며

무더위는 푹푹 찌고, 일없이 앉아 있는 등짝으로 땀이 주르륵 흐르죠. 흐르는 물가에서 여름 한 철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럴 수 없으니 대도시의 24시간 편의점에서 생수 몇 통을 사 나르고, 선풍기를 틀고 붉은 수박 몇 통이나 깨먹으며 겨우 더위를 견뎌내지요. 삼복더위와 싸우며 책 읽는 것도, 열대야 속에서 잠을 청하는 것도 다 고역입니다. 이 시는 선경(仙境)은 아니지만 무더위를 이길 만한 서늘함을 보여줍니다. 몇 해 전 여름 우영창네 식구와 함께 가리왕산 자연휴양림의 물 흐르는 계곡에서 발 담그고 보낸 평온하던 날들이 떠오르네요. “줄렁줄렁하는 천둥을 그득그득 지고 가는 구름”도 있고, “축축한 배를 밀며 가는 물뱀”도 있었죠. “불은 계곡물”은 완창(完唱)에 도전하느라 종일 목이 쉬는 줄도 몰랐죠. 아, 여름은 이미 절정이죠. 계곡에 간 사람이나 못 간 사람이거나, 상중(喪中)이거나 상중이 아니거나 모두들 이 무더위마저 여름의 묘미(妙味)로 만끽하시길 빌어요. 여름은 곧 지나갈 테니까요. 저는 아직 상중(喪中)이에요. 하지만 “보슬비 속을 날아 물버들 가지”를 찾아가는 새처럼 다리미의 열기가 희미하게 남은 옷을 입고 여름 저녁 거리로 우쭐우쭐 나서면 마음이 부풀어 휘파람이라도 불고 싶어지네요.



문학집배원 장석주


▶ 출전_『먼 곳』(창비)

▶ 음악_ 심태한

▶ 애니메이션_ 제이

▶ 프로듀서_ 김태형

장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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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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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7-10 00:31:51
    오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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