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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투사 J

  • 작성일 2014-08-25
  • 조회수 557

단편소설

 

카투사 J

 

이키보드

 

 

1

우리 찰리중대에서는 곧바로 카투사위주로 수색대를 꾸려 제이(J) 추적에 나섰다. 눈이 계속 내렸으나 발자국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미군부대의 철책은 군인이 아닌 민간인 에스지(SG)들이 지키고 있었다. 카투사들이 종종 양주 한 병을 뇌물로 주고 동두천에 외출하기위해 통과하는 철책이기도 했다. 나는 한 번도 철책을 통해 기지촌에 나가보지는 않았지만 제이는 가끔 철책을 이용했던 모양이었다. 에스지들은 주로 민간인들이 외부에서 침입하는 것을 막는 게 임무였다. 철책을 열고 나가자 부대가 비스듬히 내려다 보였다. 부대는 가로등이 켜져 있어 어느 도시의 집들처럼 보였다. 가까이 있는 가로등 밑으로 깃털 같은 눈이 제법 많이 내리고 있었다. 제이에게는 소총뿐만 아니라 권총도 소지하고 있었다. 부대 내에는 이오티(E.O.T) 사무실이 있었다. 부대를 가로지르는 천변에 있었는데 어느 곳에서나 잘 보였다. 이오티는 누구나 공정한 기회를 준다는 제도였다. 제이는 왜 제대를 앞둔 황병장과 임병장을 죽였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상부에서는 고향이 같고 학교동기이며 친구라고 알려져 있어 나에게 수사를 집중하는 듯 했다. 이제 와서 내가 제이와 학교동기가 아니라고 말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제이와 내가 전혀 대화를 안 한 것은 아니었다. 제이는 신병 때 가끔 내 숙소를 찾아왔었다. 그때 제이는 예의 바른 사람인 것 같았다. 조용히 내 숙소를 찾아와서는 말도 없이 앉아 있었다. 나는 나름대로 영내에서 바쁜 시간을 쪼개 쓸 때였다. 집에서 소포로 받은 취업관련 공부도 해야 되고 등단을 했으니 시도 감각을 잃지 않게 계속 써야했다. 그리고 특히 영어회화에 집중해야 했다. 특히 영어회화는 주변에 모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어야 한다. 늘 영어로 생각하고 있다가 영어로 말해야 한다. 영작을 하면 순발력이 떨어져 대화가 단절되기 일 수였다. 제이는 내가 뒤늦게 공부하는 뒷모습을 보며 뒤에서 내 취업관련 책을 빼서 보곤 했다. 나는 제이가 방해가 되진 않았지만 제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몰랐다. 제이는 가끔 뒤에서 나를 껴안았다. 나를 놀려주려고 한 것 같았다. 나는 놀라긴 했으나 제이의 그런 행동이 그렇게 싫지는 않았었다. 미군들은 근무가 끝나면 온전히 자유시간 이었다. 룸에는 아무도 없었고 취침점호 같은 것도 없었다. 제이는 몸매가 여자 같았다. 그의 슬림한 몸을 안으면 내 가슴 안에 꼭 들어왔다. 나는 제이가 남자라는 게 조금은 아쉬웠다. 내가 안아준 날은 제이는 내 등에 얼굴을 대고 한참을 있곤 했다. 제이가 쓸쓸하고 외로워 보였다.

“우리 연애 안 할래?” 제이가 농담하듯 나에게 물었었다.

“연애?” 나는 제이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었다.

나와 제이는 서로 말은 많이 하지 않았다. 대신 여단 휴게실에 가서 탁구를 쳤다. 여단에 있는 휴게실에는 찰리중대와 달리 입대동기들이 많았다. 제이는 그들과 가깝게 지내는 듯 했다. 탁구는 제이가 제일 잘 하는 운동 같았다. 제이는 한마디로 상대방을 약 올리는 것처럼 탁구공을 쳤다. 계집애들처럼 서브하나를 넣어도 깎고 돌리고 상대방이 받을 수 없게 쳤다. 탁구공은 늘 탁구대 안에서 왔다 갔다 했다. 좀 길게 시원스럽게 치자고 해도 그게 실력이라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좀 희한한 놈이었다. 다른 동기들도 제이와는 탁구를 치지 않는 듯 했다. 휴게실에서 제이의 소개로 동기를 한명 맛났는데 그게 창환 이었다. 그는 키는 크지만 체격이 제이와 비슷했다. 그는 알고 보니 복싱선수였다. 경량급에서는 미2사단에서는 유명한 선수였다. 창환의 룸에는 수상한 트로피가 즐비했다. 책도 많이 있었다. 창환의 꿈은 소설가라고 했다. 나는 일찍 신춘문예에 당선됐고 시를 열심히 쓰고 있을 때였다. 창환의 고향은 옥천이지만 집은 용산구 청파동이었다.

제이의 발자국은 턱걸이 뒷산으로 이어져 있었다. 조금 올라가자 발자국은 눈이 내리고 있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눈 내리는 겨울 산속에서 제이를 찾아가는 마음이 무거웠다. 이상병이 소총을 어깨에 메고 내 뒤를 뒤따랐다. 1대대 매스홀에는 찰리중대에서 파견된 쿡이 두 명 있었다. 이번 제이의 총기사고로 죽은 바로 황병장과 임병장이었다. 황은 마산출신 유부남이고 임은 서울 모대학 약대에 다니다 군대에 왔다고 했다. 처음에는 나는 그들이 우리 찰리중대 소속인 줄도 몰랐다. 선후임을 몰아서 치러진 자대 신고식이 대대 데이룸에서 있을 예정이라고 했었다. 제대 말년 고참의 지시로 두 명의 쿡들은 데이룸에 파티장소를 마련했었다. 자대에서 신고식도 하기 전에 내 밑에는 신참이 들어와 있었다. 그런데 일병이나 상병 병장에게도 없는 신참이 이병인 내게 배치된 것이다. 그 건 지금 생각해도 정말 파격적인 인사였다. 그러나 내가 바라는 상황은 아니었다. 논산훈련소 배출대에서 미육대로 배출된 나는 오로지 영어로만 말하는 카투사 생활을 꿈꿔 왔었다. 신참이 끼면 자연 우리말로 지시하게 돼 있었다. 더군다나 신참은 나이도 나보다 한 살이 더 많고 사회경험도 풍부한 건축자재 자영업 사장을 하다온 병사였다. 와 정말 짜증이 났다. 그놈의 신참 뒤치다꺼리를 내가 다해야 했다. 파티에서 밤새 신참이 처먹고 침대와 바닥에 토를 한 것을 내가 치우고 닦아냈다. ‘토사물 냄새가 얼마나 지독한줄 아나?’ 그 당시만 해도 콘센트막사로 미군들이 알면 큰일이었다. 적어도 미군들은 술을 먹고 토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술을 많이 처먹어 떡실신한 신참 놈이 원망스러웠다. 신참의 야간 경계근무도 내가 대신 서야했다. 내 덕분에 신참 놈도 나도 무사할 수가 있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신참은 내게 미안했던지 나이에 관계없이 충성을 다했다. 아마 내성적인 제이는 그걸 자신과 차별대우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나는 제이에 대해 별 관심이 없어 등한시 했지만 지나고 보니 제이는 훈련소부터 늘 내 주변에 있었던 것 같았다. 같은 입대동기인데 후임으로부터 누구는 대접을 받고 누구는 대접을 못 받는 것처럼 비춰졌을 지도 모른다. 나와 신참은 같은 3소대에서 훈련을 받았다. 영어를 잘 못하는 신참은 내게 많이 의지했다. 나는 주경야독한 노력덕분에 내 영어회화실력은 여단에서 최고일 정도로 많이 늘어 있었다. 같이 고된 훈련을 받다보니 미군들과 사이도 좋아지고 타 지역에서 온 신참과 전우애도 많이 생겼다. 험준한 산에서 같이 고생하다보면 친해지기 마련인 것 같았다. 그런 이상병은 나의 든든한 후임이 되어있었다. 주로 미군 신병들의 군기는 이상병이 잡았다. 신병이 자주 왔다. 그들은 1년이 지나면 원하는 곳으로 떠났다. 이상병은 영어를 못해도 군 생활에 잘 적응해 나갔다. 반면 몸이 약한 제이는 자기 소대 미군들과도 사이가 좋지 않은 것 같았다. 미군들 중에는 종류를 알 수없는 마약을 하거나 마리화나 같은 담배를 피우는 중독자들이 있었다. 그들의 눈을 보면 눈이 졸린 듯이 풀려있었다. 그들이 어떤 성추행을 할지는 아무도 몰랐다. 제이는 동기인 나와 후임의 도움이 절대 필요했을 지도 몰랐다. 만약에 제이가 그들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면 창피해서 말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제이는 과장된 행동과는 달리 부끄러움이 많은 동기였다. 그런 제이가 고참 병사를 두 명이나 죽이고 탈영을 했다니 나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이상병이 비탈길에서 맨 앞장을 섰다. 제이가 어느 곳에 숨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을 지도 몰랐다. 나는 등골이 오싹했다. 제이는 나를 동기에서 지워버려야 할 인물로 지적했다는 소리를 창환으로 부터 들었었다. 어느 날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날이었다. 신참의 얼굴이 멍들어 말이 아니었다. 눈에는 시퍼런 멍 자국이 있고 걷기도 힘들어 했다. 이유를 물으니 말은 안 하고 별것 아니니 나보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미군에서는 절대 구타가 허용되지 않는다. 만약 구타가 확인되면 카투사고 미군이고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되어있었다. 그게 이오티였다. 이오티에 접수된 사건은 미2사단장에게 직접 보고된다. 그러나 이오티는 카투사들에게는 구호만 있는 제도였다. 만약 미군들과 문제가 발생하면 국편(한국군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라는 최악의 조치가 내려진다. 카투사들은 쉬는 날도 많고 근무시간도 많았다. 근무가 6일제였던 한국군과 달리 5일제였다. 거기다 미국의 국경일은 자동으로 쉬고 한국의 국경일도 찾아서 쉬었다. 그러나 근무는 미군과 카투사 근무를 병행해야 했다. 토요일이나 일요일 내가 조용히 책상에 앉아 취업공부를 하고 있으면 제이가 내가 있는 룸으로 찾아왔다. 제이는 뒤에서 내목을 껴안고 있다가 내가 별 반응이 없으면 샤워를 하고 내 침대에 누워 잠을 잤다. 옷을 벗고 곤히 잠자는 제이의 모습이 경계심이 많은 사슴처럼 편안해 보였었다. 그러나 미군에서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 중에 하나가 친구래도 한 침대에서 누우면 절대 안 되는 것이었다. 제이의 몸은 머리만 길면 영락없이 여자처럼 보였다. 제이의 피부는 백옥 같았다. 내 룸메이트들은 제이가 내 침대에서 자는 것을 이해했다. 그들은 쉬는 날에는 거의 룸에 붙어있지 않고 여자들을 찾아 턱걸이에 있는 기지촌으로 나갔다. 자정이 넘어서야 들어왔다. 그들은 나를 늘 공부만 하는 룸메이트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상병 그때 얼굴에 멍들었던 거 어떻게 된 일이야?”

이상병은 그때 일에 대해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자기기 잘못해서 일어난 일이니 걱정 말라고만 했었다. 나는 제이가 사고를 친 어떤 단서라도 찾고 싶었다.

“말두 마슈 정상병님한테 당한 걸 생각하면 이가 갈려요”

정상병은 제이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나는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제이가 구타한 사실로 확인되자 화가 났다.

“이상병님 정상병을 만나면 쏴도 되죠?”

이상병은 멀리 있는 소나무 밑을 바라보며 엠16소총을 조준했다. 이상병은 솔직히 말해 쏘고 싶다고 말했다. 내 생각에 제이의 편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달빛아래 큰 소나무가 하나 서 있었다. 큰 소나무 밑에는 우산을 쓴 것처럼 눈이 쌓이지는 않는다. 제이가 숨어있을 가능성이 컸다. 겨울이라 땅속을 파고 들어가기도 힘들 것이었다. 제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배낭과 소총 그리고 권총이었다. 사고가 우발적이었다면 배낭에는 씨레이션도 얼마 남아있지 않을 것이었다. 아무래도 제이는 멀리가지 못했을 것이다. 몸도 쇠약했을 뿐더러 산이 너무 험했기 때문에 밤에 산을 넘어가기는 불가능할 것 같았다. 제이가 소나무 뒤에서 숨어 우리 수색대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우리는 소나무가 보이는 곳에 참호를 파기로 했다. 제이가 총기를 소지하고 있기 때문에 눈앞에 에네미를 대하고 있는 것처럼 긴장감이 더했다. 우리 수색대는 참호를 파고 여단본부 인사과에 보고를 했다. 그러자 내일 아침에 제이의 아버지가 옥천에서 올라올 예정이니 그때까지 감시하며 대기하고 있으라고 했다. 예상되는 퇴로는 다른 수색대에서 이미 차단하고 있다고 했다.

 

2

제이는 왜 그랬을까? 이상병의 말에 의하면 밤 12시가지나 모두가 잠든 시간을 택해 이상병을 수시로 불러 구타했다고 한다. 건장한 이상병에 비해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제이의 체격이었다. 구타에 대한 별다른 이유도 없었다고 한다. 이상병은 나와 같은 소대였고 제이와는 전혀 부딪힐 일이 없었다. 그런데도 여자 같은 제이가 이상병을 구타를 했다는 것이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상병은 나와도 겨우 입대 3주 차이였다. 내가 이상병보다 겨우 3주 일찍 군대에 왔을 뿐이었다. 제이도 마찬가지였다. 이상병보다 겨우 3주 일찍 군대에 들어왔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제이는 이상병을 최근까지도 괴롭힌 것 같았다. 한국군에서는 상병이 고참 상병한테 덤비는 것은 하극상일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유 없이 구타하는 것까지 참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제이보다 이상병이 더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그걸 왜 참았어 너도 같은 상병이잖아 차라리 도망을 가지”

“이상병님 내가 왜 참은 줄 아슈?”

“말해봐”

“내 솔직히 이상병님 때문에 참은 게 아니라. 정상병이 불쌍해서 참었슈…”

“정상병이 뭐가 불쌍해?”

로마에 오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고 했다. 미군에서는 사병끼리는 만나도 거수경례를 하지 않는다. 사병끼리는 계급차이를 두지 않았다. 그들이 존칭으로 표시하는 부를 때나 대답할 대 말미에 써를 붙이지 않아도 됐다. 상사까지도 말미에 써자를 붙이지 않는 게 미군의 관례였다. 장교이외에는 서로 존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상병은 같은 상병인 창환의 눈치를 살폈다. 창환은 나와 입대 동기였다. 나는 수색대가 꾸려질 때 카투사 인사과장에게 제이와 친분이 있는 창환의 지원을 부탁했었다. 인사과장도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였다. 인사과장은 될 수 있으면 설득을 해서 제이를 데려 오라고 했었다. 눈이 그치고 산을 훑듯이 찬바람이 불었다. 체감온도가 영하30도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고된 훈련을 마치고 돌아와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은 쉬는 날이었다. 오늘은 미군들이 기다리는 금요일(TGIF)이었다. 우리는 참호를 파고들어가 소나무 밑을 감시하고 있었다.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았다. 필드에서는 슬리핑백 속에 들어가 있으면 영하 30도도 얼어 죽지 않고 견딜 만 했다. 그러나 지금은 슬리핑백도 없다. 비닐로 된 판초의가 전부다. 우리는 동상에 걸릴 염려도 있었다.

제이는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숨겼다. 동기인 나도 그가 옥천이 고향이라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었다. 논산훈련소에서도 제이는 친구가 없었다. 제이는 귓속말을 잘했다. 그는 나와 조금 친해지는가 싶었을 때 내 귀를 잡고 속삭이듯 귓속말을 했었다. 제이가 귓속말을 할 때는 귀가 간지러워 나는 제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제이의 따뜻한 입김이 뇌 속까지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그때 나는 제이가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호모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제이가 남자였다가 여자로 성전환 수술을 받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제이는 여성스러운 행동을 한 것도 같았다. 그렇다고 군대라 제이가 특별히 요리를 하는 것을 본적은 없었다. 그는 나처럼 쿡이 되길 원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평상시 제이가 피부에 많이 신경을 쓰는 것은 분명했다. 제이는 짙은 화장은 아니지만 흑인들이 쓰는 짙은 냄새나는 스킨정도는 늘 몸에 바르고 다녔다. 어느 날부터 나쁜 소문이 퍼졌다. 미군들 사이에서 먼저 돌기 시작했다. 나와 제이가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잤다는 것이다. 헛소문이었다. 같은 침대에서 눈을 붙인 것은 맞지만 서로 발을 바라보며 잤다. 문화적 차이였다. 그러나 제이의 생각은 달랐다. 남녀도 아니고 남자끼리 왜 같이 자면 안 되냐는 것이었다. 미군들은 여자를 데리고 와 출입문을 잠그고 숏 타임을 뛰고 가기도 했었다. 그건 유색인종 차별이라고 당당하게 캡틴에게 맞섰다. 그 일이 있은 후 제이는 내 룸에는 올 수는 있었으나 잠은 자고 갈 수가 없었다. 제이는 그 후로는 거의 내 룸에는 오지 않았었다.

수색대가 에네미가 아닌 제이와 총구를 겨누고 있자니 나는 마음이 착잡했다. 동기인 창환도 아무 말이 없었다. 창환은 과묵한 사람이었다.

“창환아 제이가 왜 제대 말년인 고참병들을 왜 죽였을까?”

“너 혹시 리풀리 증후군에 대해서 들어봤니 허구속의 나를 사실처럼 믿고 행동하는 거야”

“그런 게 있었어? 네가 어떻게 리풀리 증후군을 알아?”

“내가 전에 그런 증상이 심했었거든 소설속의 주인공이 나라고 착각하기도 했지 그러나 리풀리 신드롬은 거의가 고칠 수 없는 병이라고 단정해도 돼 내가 잘 알아 자신은 능력이지 병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

나는 창환의 말을 듣고 보니 제이의 행동에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창환을 말을 듣고 있던 이상병이 말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저도 정상병님이 나를 왜 때리는 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정상병님이 몸은 약하지만 급소만 골라 때리더라고요. 정말 선방을 맞고 나면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지요. 카운터펀치를 맞고 쓰러진 선수를 패듯 나를 마구 때렸어요.”

“제이가 처음에 나를 만났을 때 자신을 1대대 매스홀 쿡이라고 소개했어. 그러면서 양식요리사가 꿈이라고 했었지 나는 진짜인지 알았지”

“정말이니?” 나는 속으로 놀랐다. 내가 꿈꾸던 것을 제이도 같이 꿈꾸고 있었다니

“이상병님은 몰랐지요. 정상병님이 황병장이나 임병장님이 그만 둬야 자기가 쿡이 될 수 있으니 황병장이나 임병장에게 말 좀 해달라고 나에게 부탁을 하더라고요.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에요. 기가 막혀 말도 안 나오더라고요.”

황병장과 임병장을 죽인 의문이 조금은 풀리는 듯도 했다. 그렇다고 제이가 사람을 죽이면서까지 쿡이 되겠다는 결심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제이가 분명 다른 이유가 있어 두 고참을 죽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처음 듣는 소리였다.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예요. 술 먹고 농담처럼 황병장님과 임병장님에게 잘못 말했다가 어휴 말도 마세요.”

나도 거친 황병장의 성격을 알고 있었다. 이상병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면 황병장은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부남 이었지만 자칭 조폭출신이었다. 그는 찰리중대 최고참이 되자 거칠 것 없이 난폭해져 있었다. 각목을 풍선막대처럼 휘둘렀다.

 

3

소나무 뒤에 숨어있는 제이의 행동이 포착되었다. 이제는 도망가도 소용이 없었다. 눈이 그쳐 도망가면 발자국이 그대로 남았다. 우리는 제이와 대화를 시도해 보기로 했다. 창환의 말로는 제이가 나에게도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나를 동기에서 지워버리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는 것이다. 그건 이상병의 말도 일치했다. 황병장과 임병장을 사살하고 나를 찾았을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나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총소리가 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M16소총을 분해해 모포를 깔고 침대 위에 늘어놓았었다. 나는 내일부터 정기휴가였다. 미군들이 흑백으로 나뉘어 흩어지고 나는 월락카 속에 들어가 숨어 있었다. 그때 까지는 총을 난사한 범인이 누구인지 몰랐었다. 나는 캡틴의 방송을 듣고 월락카에서 나왔었다. 나는 산에서 내려가려면 제이를 설득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제이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었다. 그나마 창환에게 들은 제이의 정신적 결함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제이가 신병 때 나에게 보여준 것은 남자가 아닌 여자였다. 내가 여자로 느끼기 전에 제이는 여자로 행동한 것 같았다. 뒤에서 껴안는다든지 귓속말을 한다든지 피부를 관리한다든지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다든지 이런 것을 종합해 보면 제이는 나를 단순히 동기가 아니라 연애상대자로 생각한 것 같았다. 제이는 내가 자기와 놀아주지 않고 공부만 하는 것을 탓하지는 않았었다. 내가 제이보고 이제 그만 우리 룸에는 오지 말라고 했을 때 제이의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래서 나중에 한번 제이를 처음으로 찾아 갔었다. 제이는 룸에 없었다. 제이의 흑인 룸메이트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외진 보일러실 같은 곳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제이의 다른 모습을 목격했었다. 제이가 백인들과 마리화나를 피우고 있었다. 마리화나는 우리나라에서는 금지된 마약이었다. 나를 데려다준 흑인 룸메이트는 돌아가고 나는 문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마리화나를 피운 제이는 백인병사를 뒤에서 껴안았다. 그 백인병사는 제이를 떼어내려고 했으나 제이는 계속해서 목을 껴안고 백인병사에게 귓속말을 했다. 나는 제이의 입김이 생각나 역겨웠다. 나의 백인 룸메이트가 생각났다. 그는 배 그림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약을 하고 보는 특별한 그림이라고 했다. 마약을 하고 그림을 감상하면 실지로 배가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제이가 마약에 취한 것 같았다. 나는 신고를 할까 고민했다. 만약 내가 신고를 하면 제이는 바로 국편을 가든가 영창이었다. 미군들은 가까운 턱걸이 기지촌에 나가면 양색시들이 줄을 서 기다리고 있었다. 클럽에 들어가면 여자가 걸려 발을 옮기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런데 이런 외진 곳에서 마리화나를 피운다는 것은 백인들이 호모인 것 같았다. 거기에 왜 제이가 끼어있는지 몰랐다. 내가 알기로는 제이는 호모는 아니었다. 나는 거기서 제이의 알몸을 보았다. 나는 남성보다 여성 같은 성격상 제이가 남성의 성기가 없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사타구니의 검은 털 속에 작지만 제이의 성기가 붙어있었다. 설핏 보면 여성의 회음부처럼 보이기도 했다. 제이의 성기는 작은 편이었다. 나는 남자들끼리 몸을 핥는 것을 구역질이 나서 지켜볼 수가 없었다. 나는 그 후로 호모포비아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제이가 나에게 실망하지 않고 잘 지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제이가 제정신일 때 대화를 해보기로 하고 신고를 미뤘다.

나는 제이가 나를 공격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지고 있던 핸드마이크를 창환에게 넘겨주었다. 나는 추운데 제이를 빨리 설득해서 부대로 복귀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나는 평소 제이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다. 서로 터놓고 대화를 나눈 적도 없었다. 내가 제이를 설득하려면 오래전부터 소통의 길을 뚫어 놨어야 했다. 서로 왕래가 많으면 자연 길이 생기듯 소통의 길도 마찬가지 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제이와 나 사이에는 대화다운 길이 없었다. 그래서 대신 선택한 것이 창환 이었다. 제이와 대화를 많이 못한 것은 나의 취업준비와 영어때문인지도 모른다. 학교 다니면서 나는 시를 쓴다는 핑계로 취업준비를 소홀이 해왔다. 신춘문예만 되면 취업걱정은 끝인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오히려 군대에 와서 취업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주경야독하듯 낮에는 훈련에 열중하고 밤에는 취업공부에 매달렸다. 내게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미군들이 잠들면 나는 머리맡에 작은 전구를 매달아 놓고 영어공부에 매달렸다.

나는 쉬는 날 시간을 내서 제이의 룸을 찾아갔었다. 어젯밤 나를 안내해준 흑인 병사도 있었다. 제이는 밥도 먹지 않고 침대에 누워 자고 있었다.

찬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따뜻한 고기스프를 끓여 나르던 죽은 황병장과 임병장이 생각났다. 그들은 제이나 다른 카투사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나에게는 친절한 선임들이었다. 황병장은 고향에 와이프가 있고 아들도 있다고 했다. 나는 그가 조폭이고 나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임병장은 또한 좋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처럼 보였다. 사회에 나가 약사가 될 임병장은 몸가짐과 마음이 제이보다 더 여성스러웠다. 그들은 제대한 고참의 말 한마디에 데이룸에서 찰리중대 소속 카투사들을 위해 뷔페식당 못지않은 풍성한 음식을 준비했었다. 나는 스프와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의 황병장과 임병장의 따뜻한 미소가 떠올랐다. 내가 만약 쿡이었다면 어땠을까?

창환의 말에 의하면 제이가 나를 입대동기에서 지워버리겠다고 말했다니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제이에 대해 폄훼를 하거나 잘못을 지적한 적도 없었다. 이상병을 때린 것도 나는 사건이 일어난 오늘에서야 알았다. 제이는 가끔 찹타임 때 매스홀에서 나를 만나면 히죽 웃고 다른 자리에 가서 앉았다. 카투사들은 보통 선임이나 후임이 보이면 같이 자릴 하곤 했으나 제이는 달랐다. 제이는 덩치 큰 미군들 사이에 끼어 식사를 했다. 제이의 걸음걸이는 특이했다. 한손으로 식판을 들고 허리를 뒤로 젖힌 채 늘 큰 걸음으로 걸었다. 내가 보기에는 부자연스러웠지만 제이는 늘 그렇게 걸었다. 제이는 키가 큰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제이는 나에 비해 복장은 늘 단정한 편이었다. 그리고 만나는 후임들에게도 나와 달리 고참의 권위를 내세웠다. 먹히든 안 먹히든 말에 힘을 주어 말하는 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제이에게 잘 못한 것은 없어보였다. 그러고 보니 제이는 내 밑에 있는 이상병의 군기를 잡으려 한 것도 같았다. 우리는 소대는 다르지만 같은 찰리중대 소속이었다. 이상병은 나와 같은 소대지만 분대는 또 달랐다. 이상병과 나 또한 훈련 중에는 떨어져 있었다. 하여튼 제이는 선임들에게 찍혀 있었다. 지적을 많이 받았다. 특히 황병장과 임병장에게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황병장과 임병장이 강조하는 것은 인사성과 복장이었다. 인사는 몰라도 복장은 나보다 나았다. 황병장과 임병장은 필드 사이클이 끝나면 거의 식사 때마다 만난다. 양식의 특성상 에그 프라이나 비프스테이크 포테이토우 치킨 등은 각자 즉석에서 주문해 먹는다. 치킨도 부위별로 골라먹는다. 준비를 해 놓는 경우도 있지만 입맛에 맞춰 먹게 되어있었다. “헤이 맨” “빨리빨리” 이런 불만의 소리도 들리게 마련이다. 요리와 배식에 정신없는데 인사도 민망할 때가 있었다. 미군 쿡들과는 농담도 자주한다. 그들이 먼저 카투사들을 알아보고 반가워한다. 그들은 줄이 밀려있어도 느긋한 표정이었다. 에그 프라이를 담당하는 미군 쿡은 몸무게가 150kg이 넘었다. 우리는 배에 테이블이 달렸다고 농담을 하곤 했다. 그러나 누가 하면 농담이고 누가 하면 욕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 제이가 그런 타입의 카투사였다. 제이는 그 미군 쿡과 말다툼을 가끔 했다.

밤이 깊어지자 칼끝 같은 추위가 엄습해왔다. 영하 30도쯤 기온이 내려간 것 같았다. 마른풀에서 얼어붙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오늘 따라 바람이 부는 방향에 우리가 있었다. 그렇다고 불을 피울 수도 없었다. 불을 피우면 타깃이 되게 마련이었다. 이상병이 고체연료를 이용해 커피를 끓이고 있었다. 판초의로 바람을 가리고 씨레이션 캔 속에 고체연료를 넣고 불을 붙였다. 냄새는 고약했지만 따뜻함이 느껴졌다. 이상병은 훈련 중에도 가끔 저런 짓을 했었다. 오늘 같이 급히 수색대에 참가하면서도 먹을 준비를 했던 모양이었다. 씨레이션에서 나온 블랙커피의 맛은 일품이었다. 우리는 가끔 블랙커피로 허기를 달래곤 했었다. 미워할 수가 없는 이상병이었다. 우리는 조금씩 돌아가며 커피를 나눠 마셨다. 나는 카투사로 있으면서 커피의 맛처럼 인간은 피부색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소나무 밑에서 홀로 공포에 떨고 있을 제이를 생각했다. 가능하다면 커피를 갖다 주고 싶었다. 소통이라는 게 마음만 먹으면 별것 아닌 것 같았다. 진작 그렇게 못한 게 후회되었다. “야 정말 추워서 미치겠다. 리플리 증후군이 에네미야?” “정상병 나 창환이다. 우리 말 좀 하자” 강추위를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듯 창환이 나섰다. 창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총알이 날아왔다. 몸을 감싸고 있던 추위가 싹 달아났다. 총알이 창환이 들고 있던 핸드마이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상병이 곧바로 소나무를 향해 대응 사격을 했다. 살벌했다. 장난이 아니었다. 제이가 근거리에서 조준사격을 한 것 같았다. 이상병이 쏜 것은 조준사격은 아니었다. 소나무 위였다. 짧은 솔가지 몇 개가 밑으로 떨어졌다. 제이가 가지고 있을 엠16 소총의 총알은 최대 140발이었다. 거기다 권총까지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제이와의 대화를 포기하고 대신 움직임만을 감시하기로 했다. 어쩌면 제이가 먼저 접근해 오면 쏠 수밖에 없었다. 부대에서는 무장헬기 지원요청이 있으면 지원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우리는 제이의 아버지가 도착하기까지 기다려 보겠다고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제이를 설득하는 데는 제이의 아버지가 제일 유리할 것 같았다. 친구로부터 의외의 공격을 받은 창환이 직접 비무장으로 제이에게 다가가 보겠다고 말했다. 창환은 운동선수답게 겁이 없었다. 일어서는 창환의 몸은 총알도 비껴 나갈 것처럼 바짝 말라 있었다. 저런 몸으로 어떻게 복싱 챔피언이 될 수 있었는지 거짓말 같았다.

 

4

오늘은 동계 팀스피리트 훈련을 끝내고 켐프 호비에 복귀한 날이었다. 찰리중대원들은 사용한 개인화기 손질에 여념이 없었다. 한 달여 동안 산과 강에서 먹고 자며 한미합동훈련에 참가했다. 새로 지은 막사는 어느 휴양소의 풍경 같았다. 낮고 큰 창에 옅은 노랑 바탕의 패널 벽은 여기가 군영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요했다.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동안 성에 굶주린 미군병사들은 어서 총기를 암스룸에 반납하고 외출할 꿈에 부풀어 있었다. 엠16 소총을 침대에 기대놓은 채 벌써 샤워를 끝낸 백인병사는 하얀 수건으로 주요부위를 가린 채 침대가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반짝반짝하는 금발이 온몸을 덮고 있었다. 놈이 옷을 입으려고 허리에 감은 수건을 풀었을 때 성기가 들어났다. 포경을 하지 않은 굵고 긴 성기가 반쯤서 있었다. 나는 놈과 같이 걷던 귀여운 여고생이 떠올랐다. 놈은 가끔 여고생이 쓴 한글편지를 해석해 달라고 내게 가지고 왔었다. 놈들은 저희들끼리 어울리기만 하면 여자의 신음소리를 흉내 내곤 했었다. 저들은 그런 아픈 신음소리를 들으며 쾌감을 느끼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고향에 있는 짝사랑하는 예쁜 여자 후배가 생각났다. 그녀는 내가 군대에 올 때 여고 3학년이었다. “따따따 땅~” 건물의 벽이 심하게 흔들릴 만큼 큰 소총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엠16 소총의 매거진에는 가끔 연습탄이 들어있는 경우가 있었다. 총소리에 찰리중대원들 모두 놀랐다. 잠시 숙연하던 찰리중대숙소의 분위기는 다시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단순한 오발사고 인 것 같았다. 추운 바깥 날씨와는 달리 실내는 히터를 켜놓아 후끈 거렸다. 내 침대 밑에는 열선이 스프링처럼 감긴 전기 곤로가 하나있었다. 라면을 끓일 때 쓰는 도구였다. 실내에서 라면을 끓이는 풍경이란 생각만 해도 훈훈했다. 피가 얼어붙을 것 같은 추운 곳에서 훈련을 하다 보니 뜨끈한 라면국물이 많이 생각났었다. 훈련이 끝나고 돌아오면 카투사들끼리 모여 삼양라면을 끓여먹었다. 서로를 위로하는 분위기와 함께 양주대신 소주도 한잔씩 했다. 그러나 그 뒤끝이 언제나 문제였다. 오늘 밤에는 과연 무사하려나 회식분위기가 좋기도 하고 싫기도 했었다. “따 땅~” 또 총소리가 들렸다. 조준해서 한발 한발 격발할 때 나는 총소리였다. 연습탄이 아니라 실탄을 발사할 때 나는 총소리였다. 나는 이때 이상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함께 있던 미군들은 서로 귓속말을 하더니 재빨리 흑인과 백인으로 분리되어 사라졌고 서로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카투사인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한 병영은 혼란과 공포에 휩싸였다. 건물 벽에 울려 총소리가 어디에서 난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잠시 후 대치하고 있던 백인과 흑인 사이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백인인 캡틴 데이비스가 찰리 캄파니 내 방송에 나와 서로를 진정시켰다. 총소리를 듣고 인근 사단에서 조사단이 나왔다. 사망자는 백인도 흑인도 아닌 두 명은 카투사 고참병사로 밝혀졌다. 그것도 일반병사가 아닌 쿡인 황병장과 임병장 이었다. 그 둘은 제대를 앞두고 있었다. 쿡들에게는 소총도 지급하지 않는다. 범인은 쉽게 밝혀졌다. 그건 찰리중대 화기소대 제이였다. 아직 제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제이가 개인 화기를 들고 미군부대에서 산으로 개구멍을 통해 탈영을 한 것이었다. 제이는 유일하게 우리 찰리중대에서 나와 입대 동기생 이였다. 논산 훈련소부터 여기 동두천 턱걸이까지 같이 왔었다. 그러나 나는 제이가 옥천이 고향이라는 것 외에는 제이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 처음에는 심약한 제이가 고참을 살해하고 탈영했다는 소식에 나는 충격을 받았었다. 사건을 추정해 보면 황병장과 임병장을 살해하고 나에게 오고 있을 때 흑인과 백인 병사들 사이에 서로 총격이 있었고 제이가 자신을 공격하는 줄 알고 개구멍을 통해 산으로 도망친 것 같았다. 미군에서 매거진과 실탄은 소모품이었다. 나도 여러 번 훈련 중 매거진을 분실한 적이 있었다. 매거진은 7개가 지급된다. 매거진 하나에 실탄이 20발 들어간다. 어느 때는 매거진에 쏘지 않은 총알이 그대로 박혀있는 채 부대로 복귀한 적도 있었다. 제이가 소나무 밑에 홀로 떨어져 있었다. 훈련을 받았지만 실제 적과 대치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제이가 가만히 있는 것을 보면 자살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군대에서 두 명의 선임을 죽였다면 사형 아니면 무기징역이었다. 북풍이 불어 피가 얼어붙을 것 같은 추위였다. 제이가 슬리핑백에 들어가 있어도 혼자 있으면 추울 것이다. 어두운 소나무 밑에서는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제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창환의 말로는 제이는 자신도 모르는 병을 앓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리플리 신드롬이었다. 나는 제이의 자살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창환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제이는 마치 영화 속 영웅처럼 싸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제이를 동기이지만 멀리하려 했던 사건이 있었다. 그건 자대에 배치 받아 여단본부에 도착해 신고식을 치를 때였다. 제이가 내 옆에 서 있었다. 그때까지 우리는 서로 통성명도 하지 않았을 때였다. 나는 왠지 거드름을 피우며 신병들 앞에서 왔다 갔다 하던 여단본부 병장이 하나도 무섭지가 않았다. 여단본부 병장은 될 수 있으면 자신의 권한으로 원하는 곳에 배치를 해 주겠다고 뻥을 쳤다. 카투사 신병들은 고참들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카투사는 미육대에 배속된 한국 군인이지만 배치의 권한은 락아미에 있었던 것 같았다. 나는 될 수만 있다면 쿡이 되고 싶었다. 평택교육대에 있을 때부터 생각해온 것이었다. 쿡이 된다면 양식 조리법을 3년 동안 완벽하게 배워 사회에 나가면 직업으로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여단본부 병장은 일일이 고향을 묻고 원하는 직종을 체크하고 있었다. 잘생긴 여단본부 병장이 내 앞에 섰다. 나는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나는 꼭 쿡이 되겠다는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이이병은 고향이 어딘가?” “고향은 옥천이나 학교는 대전에서 다녔습니다.” 나는 묻지도 않은 학교를 말했었다. “학교는 어디?” 나는 우연치 않게 다니던 학교를 밝혔고 그게 정상병과 실처럼 얽히게 된 계기가 되었다. 알고 보니 여단본부 병장은 나의 대학 2년 선배였다. 여단본부 병장은 후배를 만난 것이 처음인 냥 반가워했다. 그렇게 대화를 마치고 병장은 옆에 있는 제이에게 고향을 물었다. 그런데 제이의 대답이 뜻밖 이였다. 옆에 있는 나와 같은 학교 동기라는 것이었다. 나는 잠시 당황했지만 얼음처럼 굳어 입을 닫아버렸다. ‘뭐 이런 거지같은 놈이 있나’ 처음에 나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신고식이 끝나고 여단본부 병장은 둘을 따로 불러 여단본부 옆에 있는 불루라운지에 가서 캔맥주를 사줬다. 소속도 모르는 병장도 한명 함께했다. 영내에서 맥주와 경양식을 파는 곳이었다. 예쁜 양색시들도 많고 미군들과 춤도 추고 놀았다. 불루라운지는 나중에 알고 보니 카투사들이 출입하는 스넥바와는 달리 미군장교들만 출입하는 고급 바였다. 거기서 선배는 먼저 내게 원하는 곳을 물었다. 처음에 선배는 자신이 근무하는 곳을 추천했다. 정말 군대생활 편하게 할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나는 쿡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다른 곳은 몰라도 쿡은 특별히 티오가 있어야 된다고 말했다. 제이도 나와 똑같이 쿡을 원했다. 나는 제이의 행동이 너무도 어이가 없어 될 수 있으면 제이와는 말을 섞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아마도 선배는 둘이 학교동기라서 같이 근무하도록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제이가 그때부터 싫었다. 살점하나 없이 깡마른 몸에 얼굴에는 심술기가 가득해보였다. 제이가 날 보고 웃는 것도 싫었다. 그런 행동을 하면서도 제이는 나에게 협조를 구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협조를 구했다면 나는 당연히 노를 했을 것이다. 나는 제이와 같이 있는 게 싫고 하루빨리 다른 곳에 배치 받고 싶었다. 나는 선배인 여단본부 병장에게 부탁을 드렸다. 내가 티오가 없어 정 쿡이 될 수 없다면 다음에 쿡들이 제대를 하거나 그만둬서 티오가 생기면 부탁한다고 말하고 쿡 대신에 나를 말단 소총수로 보내달라고 했다. 선배는 왜 고생을 사서하려는지 그 이유를 물었다. 선배나 나나 제대 후 취업걱정을 많이 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3년 동안 전공인 영어라도 확실하게 마스터해 제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건 순전히 내 생각이었다. 외하소대 말단 소총수는 어느 누구도 가려고 하지 않는 보직이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미군들과 같이 뛰고 뒹굴다보면 영어회화는 저절로 늘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찰리중대에 나와 제이는 함께 보직을 받았다. 찰리중대에서 우리를 인수하러온 그 병장은 내 말을 듣고 3소대 말단 소총수로 배치를 해줬다. 대신 제이는 몸이 약해 주로 찝차를 타고 이동하는 화기소대로 배치를 했다. 제이가 같은 소대에 배치되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했다. 나는 제이가 동기이지만 주는 것 없이 소름끼치도록 싫었었다. 이틀 전 계곡에서 쿡인 황병장과 임병장은 배식을 하고 있었다. 주로 씨레이션을 먹지만 가끔은 따뜻한 음식을 준비해와 늘어놓고 배식을 했다. 나는 죽은 황병장과 임병장이 반가웠다. 그들은 조금이라도 더 챙겨주려고 노력했다. 엄마 같은 역할을 했다. 특히 황병장은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농을 걸기도 했다. 쿡들은 행여나 음식이 식을까 무척 고민하는 것 같았다. 나는 식사는 꼭 챙겨먹었다. 그러나 식사를 거르는 병사들이 가끔 있었다. 식사를 하려면 높은 산꼭대기에서 계곡까지 내려와야 한다. 내려오기도 힘들고 올라가기도 힘들어 식사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훈련 중에는 모여서 식사를 하는 것도 금지되어 있었다. 각자 배식을 받아먹고 산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농담을 잘하는 황병장과 달리 임병장은 에지가 살아있는 쿡이었다. 약사답게 복장이 단정하고 쿡들이 쓰는 하얀 모자를 다리미질해 쓰고 다녔다. 임병장은 나를 만나면 누나처럼 웃기만 했었다. 이틀 전에도 그들이 해주는 식사를 했었다. 그들도 내가 쿡이 되길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총기사고로 죽은 황병장은 특히 후임들에게 악명이 높았다. 나는 배식 중에 일어나는 섭섭함 때문에 황병장이 그런다고 짐작하고 있었다. 내가 쿡이 되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늘 우리와 떨어져 있었으므로 다른 일이 있을 수가 없었다. 수시로 밤12시가지나 카투사들을 앞산으로 집합을 시켰다. 고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날은 여지없었다. 바쁘게 훈련을 마치고 온 장비를 수입하고 반납 후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막 잠들 시간이었다. 한 사람이 와서 깨우면 이어 다음 사람을 깨우는 형식이었다. 미군들은 외박을 나가 기지촌 클럽에서 아가씨들과 여독을 풀 시간이었다. 집합은 주로 미군들의 시야를 벗어난 부대 내 야산에서 이뤄 졌다. 미군에서 알면 큰일 날 일이었다. 황병장이 준비한 각목이 머리 위를 날아 다녔다. 우리는 늘 한 켤레의 구두를 잘 닦아 보관해 놓고 있었다. “나보다 구두를 잘 닦은 놈은 열외다. 앞으로 나와라” 그러나 그건 말뿐이었다. 앞으로 나간 카투사는 시범케이스로 반 죽여 놓는다. 그렇게 후임들 전체를 조폭처럼 마구 구타했었다. 그래도 임병장은 참석은 하지만 구타에 직접 가담하지 않고 뒤에서 그림자처럼 지켜보고만 있었다.

 

5

다음날 아침 제이의 아버지가 현장에 도착했다. 제이의 아버지는 총을 겨누고 있는 대원들을 보며 제발 총을 쏘지 말라고 했다. 제이가 있는 곳을 묻더니 곧장 아들에게 다가가려 했다. 내가 말렸다. 지금은 제이가 흥분해 있으니 참아달라고 말했다. 입대동기인 전우에게도 총을 쏘았다고 말했다. 제이의 아버지를 보자 나는 우리 아버지가 생각났다. 나는 우리 아버지와 이런 상황에서 맞닥뜨리면 아버지를 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내게 아버지는 없었다. 아버지는 내가 군대에 와 있는지도 모를 것이었다. 연락을 끊고 지냈다. 그에 비하면 제이는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이의 아버지는 내게 어떻게 된 상황인가 물었다. 제이가 무기를 갖고 탈영을 한 것은 알고 있지만 2명의 고참을 살해한 사실은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제이가 아버지와 대화 내용을 들을 수 있도록 핸드마이크를 켜 놓았다. 제이의 아버지도 몹시 흥분해 있었다. 아버지는 말리는 나를 못마땅한 듯 바라봤다. 제이의 아버지는 말 대신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는 제이처럼 몸이 말라있었지만 제이와는 달리 단단해 보였다. 한눈에 봐도 시골 농부 같았다.

“내 아들을 내가 만나겠다는데 너희들이 왜 말리는 거냐?”

“도대체 우리아들을 누가 저렇게 만들어 놨어?”

흥분한 아버지는 내가 들고 있던 핸드마이크를 빼앗아 들고 소리쳤다.

“호석아 이눔아 총 버리고 빨리 이리로 나오너라!”

소나무 뒤에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밤새워 제이가 쌓아놓은 듯한 1미터 높이의 눈이 시야를 가려 뒤가 보이지 않았다. 제이가 소나무를 은폐 엄폐 삼아 우리의 공격에 대비한 듯 했다. 아침 햇살을 받은 큰 소나무가 운치 있게 서 있었다. 사건만 아니라면 캘린더 속 풍경 같았다. 솔향기를 품은 눈 냄새가 났다. 나는 밤새 솔바람 소리를 들었다. 고향에서 듣던 솔바람 소리였다. 솔바람소리는 마치 파도소리와 같았다. 제이의 아버지가 제이를 애타게 불렀지만 제이는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혹시 도망치지 않았을 까요?”

이상병이 초조한 듯 나에게 물었다. 제이의 아버지는 옷을 가볍게 입고와 벌벌 떨고 계셨다. 그때 창환이 야전 점퍼을 벗어 아버지께 입혀주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옷을 벗었다. 아들이 저기서 떨고 있는데 어떻게 내가 따뜻한 옷을 입고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무전이 왔다. 아버지를 내려 보내고 소나무 밑을 수색하라는 명령이었다. 설득이 안 되면 사살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챘는지 아버지는 끝까지 내려가지 않겠다고 버티었다. 그러나 명령이 하달된 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울면서 카투사들에게 산 밑으로 끌려 내려간다. 울부짖는 소리가 산을 울렸다. 지금쯤이면 황병장의 아내와 임병장의 가족들도 찰리중대에 도착해 시신을 확인하고 있을 것이었다. 나는 두 가족이 제이의 아버지와 만나는 상상을 하며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제가 갈 테니 엄호사격 부탁합니다.”

이상병이 나섰다. 이상병은 눈 위에 엎드려 낮은 포복 준비를 했다. 거리는 50미터 가량 떨어져 있었다. 창환도 가겠다고 했으나 내가 말렸다. 운동만 한 창환은 엄호사격이 뭔지도 몰랐다. 나는 제이의 반응을 보기위해 소나무를 향해 총을 쏘았다. 처음에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두 번째 총을 쏘았을 때 제이도 총을 쐈다. 나는 제이가 머리를 내밀지 못하도록 엄호사격을 하고 있었지만 제이가 위험을 무릅쓰고 반격했다. 이상병이 위험했다. 나는 이상병 보고 돌아오라고 했다. 산 밑에서 제이의 아버지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짐승의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아마도 총소리를 듣고 놀란 것 같았다. 조금 있자 제이의 아버지가 참호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총을 쏘지 말라는 것이었다. 총을 쏘려면 자신부터 쏘라고 소리쳤다. 난감했다. 제이의 아버지는 소나무 밑으로 달려간다. 눈 쌓인 비탈에 맥없이 미끄러져 넘어진다. 다시 일어나 뛰기 시작한다. 제이에게 총을 쏘지 말라고 소리친다. 제이에게 달려가던 아버지는 다시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 거의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대원들에게 절대 아버지는 다치지 않게 조심하라고 말했다. 갑자기 제이의 아버지가 윗옷을 벗었다. 혹한의 날씨에 쉽지 않은 광경이었다. 저녁시간에 텔레비전을 시청하다 달려온 사람처럼 가벼운 옷차림이었었다. 옷을 벗어 우리 측을 향해 흔들었다. 백기를 들고 투항하는 병사처럼 보였다. 나는 그때 아버지가 산처럼 커보였다. 나는 제이를 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제이의 죄가 무겁지만 아버지 앞에서 내가 제이를 쏜다는 것은 어머니께 불효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조준하고 있는 총을 내려놓은 것을 아버지가 보았는지 제이의 아버지는 소나무 밑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제이가 총을 쐈다. 백기를 들고 투항하는 아버지를 향해 제이가 총을 쏜 것이다. 제이의 아버지가 눈 위에 쓰러졌다. 백기가 물속에 잠기듯 아버지가 흔들던 옷이 눈 위에 펼쳐졌다. 나는 그때 알았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총을 쏠수 없어도 아들은 아버지에게 총을 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가 우리와 제이 사이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었다. 결국 내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희생자만 한명 더 늘었다. 우리는 일제히 소나무 밑을 향해 오픈 화이어를 했다. 총알이 눈으로 쌓은 제이의 벙커를 벌집처럼 만들어 놓았다. 우리는 어쩔 수가 없었다. 벙커 뒤에 숨어있었다면 제이는 죽었을 것이다. 총소리를 듣고 밑에서 대기하고 있던 헬기가 출동했다. 사상자를 구하러 오는지 아니면 제이에게 공격을 하기위해 다가오는 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헬기 소리를 듣고 나는 연락을 받았으나 라디오의 소음이 심해 영어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헬기가 다가오자 제이의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흔들고 있었다. 제이의 아버지가 맹호부대로 월남전에 참전했다는 소리를 제이에게 들은 기억이 났다. 헬기는 소나무를 중심으로 한 바퀴 선회를 했다. 바람을 가르는 날개 소리가 어찌나 큰지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쌓인 눈이 북극에서 폭풍이 불듯 회오리치며 흩어졌다. 문득 날리는 눈이 살비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이를 가리고 있던 큰 소나무는 금방이라도 쓰러질듯 머리가 좌우로 마구 흔들렸다. 헬기가 일으키는 눈보라에는 사람이 서있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하얀 눈밭에 코를 박듯 납작 엎드려 소나무 위에 있는 헬기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겨우 얼굴을 들어 하늘을 선회하는 헬기를 쳐다보니 미싱건의 방아쇠를 잡고 있는 흑인 미군병사가 보였다. 이어 제이를 발견한 듯 무차별 사격을 했다. 헬기가 돌아가자 눈을 뒤집어 쓴 제이의 아버지가 제일 먼저 소나무 밑으로 달려갔다. 이어 내가 도착해보니 제이는 온몸에 미싱건 총알 세례를 받고 죽어있었다. 수십 발의 총알이 제이의 머리와 심장을 관통한 듯 머리와 가슴에서 붉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제이의 아버지는 제이를 안고 통곡했다. 아버지와 제이의 피가 범벅이 되었다.

제이의 아버지가 제이가 누워있던 침대를 부여안고 통곡을 하고 있다. 뒤늦게 들어온 제이의 룸메이트들이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문 앞에 서 있었다. “까뗌” 누군가 욕을 했다. 흑인도 있고 백인도 있었다. 인디언과 중남미계통의 얼굴도 보였다. 제이의 방에서 보니 내방의 유리창이 보였다. 황병장의 임병장의 방 유리창도 보였다. 우리는 회식을 하면서도 제이는 부르지 않았었다. 제이를 위해 우리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었다. 제이는 찰리중대 소속이었지만 한국을 도피한 김치지아이들처럼 투명인간대우를 했다. 여행을 하려면 계획 없이 무작정 떠나고 고추장이나 김치 같은 음식은 절대 싸가지 말라는 말이 있다. 어쩌면 제이는 자신이 원하는 길로 가려고 했던 것 같았다. 그걸 받아주지 못한 우리가 야만인 같았다. 저들에 비하면 우리는 앞으로 갈 길이 멀어 보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