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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상가(喪家)에 모인 구두들」

  • 작성일 2014-09-03
  • 조회수 2,146


유홍준, 「상가(喪家)에 모인 구두들」





저녁 상가(喪家)에 구두들이 모인다
아무리 단정히 벗어놓아도
문상을 하고 나면 흐트러져 있는 신발들
젠장, 구두가 구두를
짓밟는 게 삶이다
밟히지 않는 건 망자(亡者)의 신발뿐이다
정리가 되지 않는 상가(喪家)의 구두들이여
저건 네 구두고
저건 네 슬리퍼야
돼지고기 삶는 마당가에
어울리지 않는 화환 몇 개 세워놓고
봉투 받아라 봉투,
화투짝처럼 배를 까뒤집는 구두들
밤 깊어 헐렁한 구두 하나 아무렇게나 꿰신고
담장 가에 가서 오줌을 누면, 보인다
북천(北天)에 새로 생긴 신발자리 별 몇 개





▶ 시_ 유홍준(1962~ ) 경남 산청에서 태어났다. 1998년 『시와반시』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시집 『상가(喪家)에 모인 구두들』 『나는, 웃는다』 등이 있다.


▶ 낭송_ 최치언 -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2001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2003년 우진창작상 장막희곡 부문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집 『설탕은 모든 것을 치료할 수 있다』 『어떤 선물은 피를 요구한다』 등이 있다. 극단 [두목] 대표.



배달하며

죽음이 지속의 그침, 동일성의 해체, 떠남이라는 것은 맞지만, 무(無)는 아닌 듯해요. 무라는 건 그냥 실체가 없는 관념일 뿐이니까요. 분명한 것은 죽음이 하고자 하는 일을 사람이 멈출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요즘 상가에 조문을 가신 적이 있나요? 고인이 서로가 소원했던 이들을 상가(喪家)라는 자리에 조문의 형식으로 불러 모으고, 상가가 장삼이사들로 시끌벅적 붐비며 약동하는 생의 공간으로 탈바꿈할 때 그 돌연한 활기에 놀란 적도 있는데요. 시인이 남다른 눈썰미로 시골 상갓집의 세시풍속을 관찰하고 있네요. 왜 상갓집의 신발들은 다들 흐트러져 있는 걸까요? 시인은 구두가 구두를 짓밟는 풍경에 삶의 모습을 하나로 겹쳐봅니다. 특히 이리저리 뒹구는 구두들에서 “북천(北天)에 새로 생긴 신발자리”로 비약한 것은 놀라운 상상력이지요. 문상객들의 벗어놓은 신발들과 하늘의 별자리가 서로를 비춰주네요. 땅에서 하늘로 수직 상승하는 시인의 상상력이라니요!


문학집배원 장석주


▶ 출전_『상가(喪家)에 모인 구두들』(실천문학사)

▶ 음악_ 정겨울

▶ 애니메이션_ 제이

▶ 프로듀서_ 김태형

장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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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전진2

    몇년전 친척 할아버지 장례식에 다녀온 기억이 납니다. 부지런히 신발을 정리하던 어느 아저씨 모습도 기억이 납니다. 유홍준의 '사람을 쬐다'라는 시도 정말 마음에 와닿았는데 이 시에서도 시인의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가 느껴집니다.

    • 2017-07-09 17:32:51
    전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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