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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숙, 「질문들」

  • 작성일 2015-04-18
  • 조회수 1,554





“ 봄은 왜 다시 한 번 그 초록 옷들을 주는 것일까? ”

- 파블로 네루다,「질문의 책」 중에서 -



김행숙, 「질문들」






조금 더 생각해야 합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무시무시한 상징이 되어버린 이 자리에서. 그것이 명령형이 아니라 의문형으로 문법을 바꾸어 갈고리 같은 물음표를 던지는 이곳에서. 그것은 인간의 윤리와 인간의 정치를 다시 따져 묻는 질문일 수밖에 없습니다. 악몽을 꾸고 잠이 달아나버린 새벽처럼 사람들은 극도로 예민해져서 평소엔 잘 들리지 않았던 그 소리를 바늘끝처럼 생경하게 듣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유령 방송은 우리의 일상 속에 울려퍼지던 소리, 일상을 컨트롤하던 타워의 목소리, 우리가 호흡하던 공기, 우리의 내면을 누르고 있는 바위가 아니었던가. 일상의 흐름, 우리의 유사 평온, 가짜 평온은 그 목소리 아래에서 주어졌고 유지되었던 것이 아닌가. 문제가 없어서 문제없었던 것이 아니라, 문제가 없는 척했고,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문제를 감췄거나 미뤘거나 포기했거나 망각했기에, 문제를 정상으로 오인하며 자욱한 안개 같은 문제들 속에 함께 어울려 살았기 때문에, 문제없이 오늘 하루의 무사함을 심드렁하게 영위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혹시 끄덕끄덕 흘러가는 태평한 그날그날이 4월 15일의 세월호(世越號)는 아닌가.
이 의문 속으로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고 한 이성복 시인의 시구절이 파고듭니다. 그리고 “다 같이 슬퍼하자. 그러나 다 같이 바보가 되지는 말자”고 했던 수전 손택의 말도 그 주위를 떠돕니다. 4월 16일의 침몰을 대하는 대한민국 사람의 심경을 어떻게든 드러내려면, 9월 11일의 폐허를 응시하며 손택이 전했던 그 메시지에다가 꼭 덧붙여야만 하는 말이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부끄럽습니다.’ ‘미안함’과 ‘수치’가 이 참사에서 우리의 윤리를 간신히 견디게 하는 감정인 것 같습니다. 슬픔의 공동체 안에서만 인간의 영혼이 간신히 숨을 쉬는 것 같습니다.




▶ 작가_ 김행숙 - 시인.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남. 199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함. 시집『사춘기』『이별의 능력』『타인의 의미』 『에코의 초상』, 산문집『마주침의 발명』『에로스와 아우라』가 있음.


▶ 낭독_ 박성연 - 「목란언니」, 「아가멤논」, 「그을린 사랑」,「천하제일 남가이」 등에 출연



배달하며

정치의 탄생은 ‘공존’입니다. 정치 철학의 핵심은 모두가 공존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것에 있습니다. ‘국가’가 잊어서는 안 될 것들이 여기에 있습니다. 뒤틀린 진실로 둘러싸인, 절대 권력이 아닙니다. 제가 잘 못 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미안합니다. 부끄럽습니다. 그렇다면 국가란 진정 무엇입니까?
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유린되고 침몰된 모든 것들. 그래야 잊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고통은 증명되어야 합니다.


문학집배원 조경란


▶ 출전_『문학동네 2014 여름』(2014, 25쪽)

▶ 음악_ Sound ideas - Romance 4 중에서

▶ 애니메이션_ 이지오

▶ 프로듀서_ 양연식

서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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