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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욱, 「이반 멘슈코프의 춤추는 집」

  • 작성일 2015-06-22
  • 조회수 1,537





“ 그렇다면 창문들은 어디에 있는가?
빛은 어디에서 들어오는가? ”

- 리처드 예이츠, 단편「건설자들」중에서 -



이장욱, 「이반 멘슈코프의 춤추는 집」






나는 등 뒤로 무거운 문을 닫았다. 문이 바닥을 긁는 소리가 신경을 건드렸다. 피곤한 느낌이었다. 날씨 탓인가. 백야 탓인가. 어쩌면 이반 멘슈코프의 이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유럽을 여행 중일까. 살아 있기는 한 걸까. 미세한 두통이 느껴졌다.
엘리베이터는 계단참에 있었다. 낡고 허름해서 움직이는 게 신기하다 싶은 기계였다. 천장의 형광등도 깨져 있어서 엘리베이터 안은 언제나 어두컴컴했다. 5층 버튼을 누르는 순간, 나는 문득 기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6층 버튼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버튼은 1에서 5까지만 표기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부근의 공동주책들은 대개 4층이나 5층으로 되어 있다. 이 건물에도 6층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천장에서 쿵쿵거리며 박자를 맞추던 발소리는 무엇이었을까. 없는 6층에서 누가 춤을 추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잠에서 깨는 것인지 술에서 깨는 것인지 모를 기분으로 눈을 뜬 것은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나는 담배를 집어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라이터가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또 어디로 움직인 건가. 이 집의 물건들은 가만히 있지를 않는군.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갔다. 추를 매단 것처럼 발이 무거웠다.
부엌에서 나는 뜻밖에 기묘한 광경을 목격했다. 음침한 부엌에서 가스 불이 혼자 타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분명히 꺼져 있었는데 어쩐 일일까. 어쨌든 저 불꽃은 마치 살아 있는 것 같군. 낮에도 켜둘까. 나는 의미 없는 농담을 중얼거렸다. 밸브를 돌려 불을 껐다.




▶ 작가_ 이장욱 - 시인,소설가,문학평론가.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남. 2005년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로 문학수첩작가상을 받으며 작품(소설) 활동 시작함. 그 외 장편소설 『천국보다 낯선』, 소설집으로『고백의 제왕』등이 있음.

▶ 낭독_ 양윤혁 - 배우. 연극「카베세오」, 「과부들」, 「갈매기」 등에 출연.


배달하며

일주일 일정으로 버클리 대학에 다녀왔습니다. 그 근처엔 제가 칠 년 전에 사 개월 동안 살았던 방이 있습니다. 남의 자동차를 얻어 탄 김에 그 숙소 앞을 한 번 지나가보았습니다. 다른 도시에 갔을 때는 제가 살았던 2층 방에 올라가 노크까지 해본 적도 있었지요. 그동안 머물렀던 방들, 장소에 관해 떠올리게 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술만 마시다 온 적도 있고 책만 읽다가 온 방들도 있습니다. 짐은 다 싸갖고 왔는데도 언제나 뭔가 두고 온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정말 이상하지요.
이반 멘슈코프의 방. 이 집의 주소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바실리 섬. 스례니 15번가 98번지. 5층 7호”입니다.
잊을 수 없는 방들이, 하나쯤은 있지요? 이젠 다시 돌아가 볼 수 없는 그런 방들도.


문학집배원 조경란


▶ 출전_『기린이 아닌 모든 것』(이장욱 지음, 문학과지성사, 2015, 285~286쪽)

▶ 음악_ Song bird av212중에서

▶ 애니메이션_ 강성진

▶ 프로듀서_ 양연식

서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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