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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라이스와 비

  • 작성일 2015-06-30
  • 조회수 159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엄마가 카레라이스를 만들어줘요."

한창 친구들 얘기를 떠들던 소녀가, 비를 보더니 얘기를 멈추고 노파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다른 종류의 활기가 묻어 있었다.

"최근에 비가 내리지 않았으니까, 오랜만에 카레라이스를 먹을 수 있어요. 오늘은 안개같은 비니까, 엄마가 닭고기를 넣을 거에요."

노파는 잘 됐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네도 오늘 카레라이스를 만들어 먹을까 노인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그런데 저녁까지 비가 그치면 엄마가 고기는 안 넣으실 거에요. 그래서 이대로 쭉 비를 내리게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소녀는 그렇게 말하곤 펄쩍 뛰듯이 벤치로부터 일어섰다. 그리고 노인 부부에게 손을 흔들었다. 안녕히계세요.

소녀는 가는 실처럼 내리는 비를 몸으로 받으면서,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비 내리는 날을 죽도록 싫어하고, 맑은 날이 아니면 밖에 나오지 않았던 소녀가, 빗속을 지금처럼 달릴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된 건 언제 부터였을까.

집으로 가는 길을 달리는 소녀에게는,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은 한 조각도 남아있지 않았다.

 

소녀의 눈앞에 소녀가 사는 붉은 지붕 집이 나타났을 무렵, 비는 뚝 그쳤다.

그 사실을 깨닫고 걸음을 멈춘 소녀. 이윽고 태양이 얼굴을 내밀고, 선명한 무지개가 하늘에 걸렸다.

비가 그친 걸 보고 집에서 뛰어나오는 아이들. 까불며 떠드는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그 한편에서 소녀는, 원망 어린 눈빛으로 무지개를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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