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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시창작연습

  • 작성일 2015-07-02
  • 조회수 851

수없이 많은 비문을 삼킨 후에야 너는 지워진다. 먹혀 없어진다.

끝이 없는 허기는 너의 사인, 너는 스스로를 삼키기 위해 입을 벌리지. 검

은 뼈를 줍고 다니는 청소부야, 말해봐. 하얀 잿더미 위를 그토록 헤매는 이유,

온몸으로 바닥을 더듬는 이유. 눈먼 자는 세상을 그려보기 위해 점자를 더듬는

다지. 그렇게 읽은 것이 세상의 전부가 된다고 하지. 눈먼 청소부. 손도 없이,

몸도 없이, 너는 입으로 점자를 더듬지. 들려줘, 네가 수거한 점자들의 행방을.

버려진 문자로 세워지는 세상을. 검은 뼈로 쌓은 건물과 검은 뼈로 빚은 인간들.

비문끼리 엮여 비문 아닌 글이 완성되는 곳. 네가 입을 벌린다. 입안 가득 무덤들이

허물어지고 있구나. 너는 너를 삼키기 시작한다. 입이 사라질 때까지 입이 입을

삼키기 시작한다. 입이 사라지는 자리에서 세워지는 세계. 너의 무덤이 빚어지고 있다.

너의 비문에 시인이라는 말이 적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