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아이들은 커서 분명 어른이 된다

  • 작성일 2015-08-12
  • 조회수 400

3028

 

벌써 30년도 훌쩍 넘은 이야기지만, 지금도 그 마음이 변함없는 건 참으로 이상하다. 그 전에 내가 결혼하여 아이들을 가지기 전에는 나중에 내 자식이 내 제사를 지내주었으면 하는 아주 보편적이고 이상적인 생각으로 살았던 것 같으나, 어느 순간부터 현실감 있는 현장 경험을 중시하며 살다보니, 언젠가 부터는 그 생각이 '제사'보다는 차라리 '현실적인 조촐한 술상'이 훨씬 나은 것으로 변해버렸다.

그리하여 그 즈음 나는 맏아들임에도 불구하고 딸만 둘 달랑 낳고, 아버님 어머님의 눈총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몇 년 모른 체 먼 산 바라기나 하고 버티다가, 어느 명절 다 지낸 날, 그 당시 내 산의 호랑이시던 아버님 전에 무릎 꿇고 앉아 오만 욕 다 얻어먹고는, 예, 알았습니다, 뭐 그라지요. 그래 놓고도 그 당시 국가 시책이나 내 형편상 또 뻔뻔하게 안면에 철판 두껍게 깔고 악착같이 버텼는데,

나중에 집사람이 아버님께 전화를 해서 통화하는 내용을 가만 들어보니, 그 때쯤 아버님께서는 참다 참다 못해 드디어 차마 귀에 담지 못할 '조상과 국가와 민족의 무궁한 번영을 저해하는 주요한 요소' 쯤으로 나를 전락시키셨는데, 그 때 내가 입을 닷 자나 내밀고 길에 나앉게 생긴 아주 처량한 목소리로 아버님께 하소연한 말은 이랬다.

아버님요. 제가요. 참말로 이것은 저에게 중대한 일인데요. 제가 건설 현장 일선에서 일하는 입장으로 간곡하게 말씀드리는 건데, 애 셋은 저에게 정말 큰 무리입니다. 도저히 애 셋은 키울 능력도 못 되고요. 그럴 모험을 할 자신도 없습니다.

그 순간, 안방에서 결가부좌를 틀고 앉으셔서 마루에서 어설픈 이야기나 하며 계면쩍게 뒤통수 긁고 서 있는 나를 한참이나 가소롭다는 듯이 쳐다보시던 아버님께서 혀를 쯧쯧 차시더니, 그래? 너의 그 말이 지금 정말로 그토록 옳다고 생각하나? 하시더니, 그 자리에서 즉각 간단한 극약 처방을 하나를 내게 내리셨다.

니가 암만 다 죽어가는 얼굴로 나한테 저게 이렇다 이게 저렇다 시시콜콜 그래싸도, 자고로 단군 이래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것을 만들 때 첫 목표는, 아무런 조건 달지 않고 아들 삼형제라는 말이 있느니라. (헉~) 나는 9남 1녀 중 3남으로 태어나서, 눈 아무리 부릅뜨고 둘러봐도 먹을 양식은 고사하고 피죽 쒀 먹을 천수답마저도 달랑 서마지기 밖에 없었더니라.

그런고로 내가 너한테 이 문제에 대하여 경건하게 묻는 건데, 지금 너 그 잘난 계산으로 그 9남 1녀 중 누구 혹시 굶어서 죽은 사람이나 영양실조 걸린 사람 있더냐? 그런데 거기다가 그 마이나 큰 겁을 내면서 이제 와서 니가 내 제사 지낼 놈 책임 못 지겠다고? ……알았다. 그라면 장남 책임 못 지는 그거는 내가 책임져야지, 뭐. 하기사 그러라고 내가 니 애비 아니것냐? 그래, 내가 내 제사 책임 못 지면 누가 질 끼고, 그자?

그깟 아들 하나 안 놓으려고 더 이상 버티다가는, 까딱하면 딸 둘에다가 얼토당토않은 아들 삼형제라는 무시무시한 인생 벌칙을 고스란히 뒤집어쓰게 생겼으므로, 그 전에 아버님 전에 무수하게 주절거렸던 그 모든 헛이야기는 몽땅 다 접고, 얼른 목소리 톤을 낮게 바꾸어 아버님과 재협상을 시도하였다.

아 아닙니다. 마 됐습니다. 그만한 일에 화를 이렇게나 크게 내시면 저는 어쩝니까? 안 낳는다는 얘기가 아니고, 국가 시책도 그렇고해서, 안 낳는 게 좋지 않겠나 뭐 그런 얘기였는데요. 아버님께서 그게 그 만큼이나 마음 상하시는 일이라면, 마 낳을게요. 낳으면 될 거 아닙니까? 그렇지만 그 그게 절차라는 게 있으니까, 기다리신 김에 마 10달만 조금 더 기다려 주세요, 예?

이래서 낳은 놈이, 저 놈도 이런 눈물 나고 콧물 나는 사연 아는지 모르는지 잘 모르겠지만, 지금 군대 갔다 와서 이제 막 대학 졸업한 막내다. 그런데 난 그랬으면 그 놈의 징한 아들 얘기는 거기서 다 끝나고, 나한테 세상이 더 이상 쓰다달다 무슨 얘기 더 이상 없으려니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가 애 셋 낳은 후 무엇이 변했나 가만 살펴보니 내 위상은 그 무엇도 털끝 하나 변한 것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갑자기 마누라가 나를 대하는 자세가 싹 달라졌다.

난 사실 딸 둘 낳았어도 그게 다 우리 둘이 저지른 일이기에 그런 눈치 절대 준 적이 없었는데, 그 전에는 국가와 민족에게 무슨 큰 대역무도한 죄를 지은 사람처럼 늘 내 눈치나 슬슬 보며, 나의 말이 설령 땅콩으로 메주를 쑤고 있어도 니에에~하며 순종하던 그녀가, 어느 날부터 갑자기 나를 향한 안면을 싹 몰수하더니, 급기야는 어느 날 나 더러……, 거시기 아부지요. 나도 저쪽 산천경개 좋은 곳으로 바람 좀 쐬러 갑시다.

다른 사람들은 무시로 다 댕기던데,  시집와서 10년이 다 되도록 어디 놀러 댕겨본 적이 없으니, 나는 이 집에서 주워 온 무슨 식모요? 하며 나를 무슨 큰 빚쟁이처럼 몰아붙이기 시작했는데, 나 참 더러워서, 가만 보니 나는 아버님께서 책임지신다던 아들을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애 우유값 벌어와야 되고, 애 씻어서 아버님 어머님께 보여드려야 되고, 자다 일어나서 애 우유 줘야 하고, 기저귀 갈아줘야 하고, 마누라 바람 쐬어 주어야 되고, 이게 도무지 무신 짓인지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아무튼 그 동안 마누라의 피치 못했을 마음고생을 내가 미루어 짐작 못할 바는 아니었으므로, 벼르고 별러 어느 날 산천경개가 엄청나게 좋다고 매스컴에 떠들썩한 그 곳으로, 마누라는 막내 업고 맏이는 걸리고 짐과 둘째 놈은 내가 떠안고, 열무김치 담고 김밥 싸고 과일, 과자 등등을 보따리에 싸서 들고, 어디 놀러갔다가 오는 길이었다.

러나 지금과는 전혀 다르게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던 그 시절에는, 버스도 이리 가고 저리 가고 하는 것이 차장이 오라이~ 하지 않으면 절대 가지 않던 시절이었는데, 황금연휴 낀 주말에 유명 코스로 가는 버스를 타다 보니 점점 사람이 늘어나서, 자리가 콩나물시루처럼 꽉 차서 버스 맨 뒤쪽에 타졌다.

그리고는 나중에 어느 정류장에 내려야 하는데, 애들 다 챙기고 우유병 챙기고 기저귀 챙기고 보따리 챙기고 하다 보니 버스 출발시간이 늦어져서, 그 버스 안을 좌지우지 하시는 가장 웃어른이시던 여자 차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고 있었는데, 내가 내릴 때 나를 쓱 째려보더니, 그리고 아무 소리 말고 딴 데 쳐다보았으면 그만이었으련만, 혼잣말로 뭐라고 구시렁거린 것이 그만 그 일의 화근이 되었다.

세상에, 요새도 애가 이리 많은 사람이 있나?

내가 눈은 좀 나빠도, 귀는 적어도 5.0 정도는 된다고 자부하던 터에, 그 소리가 그냥 이쪽 귀로 들어와서 저쪽 귀로 나갔을 리가 만무다. 더군다나 성질이라면 대나무로 도끼 뻐개려드는 좋은 성질 가진 나한테, 감히 저 따위 국가와 민족을 아예 찬물에 밥 말아먹을 소리를 듣고 가만있었다면, 참말로 내가 시러배 아들놈이다. 버스에서 내렸다가 대뜸 뒤돌아서서 가타부타 아무 말 없이 여자 차장의 멱살을 딱 잡아, 버스에서 끌어 내렸다.

뭐? 당신 방금 뭐라고 했어? 나 보고 애 많다 했나?

캑캑, 아, 아닌데요? 내가 언제 그랬어요? 급기야 운전사가 버스를 세우고 부리나케 내려서 버스 출입문 쪽으로 왔다. 이거 놓고 얘기하세요. 이거 놓고……. 뭐? 놓고 얘기하라고? 좋다. 놓기는 놓는데, 당신들 그 잘난 얘기가 무슨 말인지 그거 좀 들어보자. 놓고 가만 보니, 운전사와 차장 둘 모두 키가 내 어깨도 차지 않는다. 옳거니! 지금부터 당신들이 사람이 짐승으로 변하면 이빨이 얼마나 무서워지는지 본때를 한 번 보여주마.

이것 보슈. 기사 양반. 내가 듣기에 이 아가씨가 나 보고 시방 애가 많다는구먼.

그런데 가당찮은 그런 말 객관적으로 세상에 대놓고 방송하려면 의무감이 좀 있어야 하는데 말이지, 그런데 이거는 알고들 있소? 당신네들이 말이지. 내가 애 많이 낳는데 어느 힘 한 번 장히 써 준 일도 없고, 기저귀 우유값 한 번도 대 주지 않았다는 그 사실 말이야. 그리고 그러지 않았으면서 그런 남의 시시콜콜한 가정사를 세상에 대고 떠벌린다면, 그거 얼마나 싸가지 없는 말이란 것도 말이야.

그리고 이 말은 동서고금을 통하여 아주 유명하고 고상한 덕담인데 말이지, 이거 굉장히 중요한 얘기니까 특히 귀 담아 잘 들어 두었다가 당신네들 족보 앞에 적어 두라고. 그 이야기가 뭔고 하니 말이야, 나한테 이런 얘기하라고 쌀 팔고 소 팔아 당신네들에게 공부라는 것을 가르치신 당신네 부모님들께서는, 장히나 애를 적게 낳으시려고 당신네들 키까지 이렇게 짧게 해서 낳으셨겠나 이 말이야.

그래, 좋아. 그렇지만 나 그거 이해해 줄께. 뭐 그런 일이라는 게 생각보다 까다로워서, 하다보면 잠깐 착각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좋게 얘기할 때 말이지. 국가 시책하고 당신네들하고 같이 당장 내 눈 앞에서 썩 꺼져버려! 가다가 노루고개 넘어 가파른 내리막길 내려갈 때, 내가 브레이크 고장 나서 처박히라는 악담은 안 할께, 죄 없는 손님들이 여기 많이 타고 있으니까 말이야. 그 대신 타이어 펑크 두 번만 나서 땀 삐질삐질 흘리며 그거나 고치고 가길 빌어 줄께!

정말 그 시절엔 애 셋 되는 게 무슨 큰 죄악이라 되는 것처럼 이 세상 모두가 나를 저렇게 들볶았다. 지금 젊은 사람들은 믿지 못하겠지만, 세금이나 하다못해 의료보험, 은행 대출마저도 국가 시책을 위배하였다고 이런 저런 제약을 주었다. 그렇지만, 그럴수록 나는 더 결연해져갔다. 그렇다. 그 따위 세금, 보험, 대출이 더 나오면 얼마나 더 나왔으랴?

그래서 지금도 그 방면으로 내 생각은 변함이 있을 수가 없다. 내 세상의 이 모든 신화와 전설, 내 세상의 이 모든 상징과 우화, 내 세상의 이 모든 기쁨과 슬픔, 내 세상의 이 모든 흡족함과 시무룩함, 그리고 내 세상의 이 모든 사랑과 정, 보고픔과 그리움을 다 뛰어넘을 만한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나의 이런 무수한 알력들과의 싸움은 별개로, 어쨌든 아이들은 커서 분명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줄기차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