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울새를 죽였나?

.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몸이란 의외로 튼튼하다. 사고로 손가락이나 팔다리를 잃는 경우는 흔하게 있으나 정작 자르려 하면 잘 잘리지 않는 것이다. 토막살인이란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수고와 지식과 도구를 필요로 한다. 어떤 의미로는 살해자의 미학이 그대로 드러나는 살해 방법이다. 일반인이 길거리에서 계획도 없이 저지를 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녀석은 그런 걸 모르는 건지, 이미 절명해 숨을 멎은 나의 목에 다짜고짜 나이프를 꽂아 넣었다. 피부를 찢고 들어온 싸늘한 칼날은 표층의 근섬유와 신경다발을 끊어내고, 동맥에까지 다다른 듯 압력으로 인해 칼이 꽂힌 부위로부터 피가 뿜어져 나왔다. 아직 체온으로 따뜻한 피는 주위에 튀며 벽과 바닥을 빨갛게 물들였다. 녀석은 손잡이에 힘을 주어 고기를 썰듯 목에 깊숙이 박힌 나이프를 움직이려 했지만, 칼날은 근육에 걸려 주위의 피부를 찢고 움찔거릴 뿐 나아가지 않았다. 당황하던 녀석은 이내 칼을 빼내어 조금 옆에 다시 박아 넣고, 창상으로 생긴 얕은 구멍 사이의 벽을 끊어내는 식으로 절단을 시도했다. 그렇게 두께로는 절반, 길이로는 한 뼘 정도가 잘렸을 때는 목 한 쪽이 잡아 뜯긴 것처럼 너덜너덜해졌으며, 주위는 피가 산화하면서 풍겨 나온 축축하고 비릿한 냄새로 가득했다. 숨이 찬 듯 녀석의 입가에서 숨결이 짧은 주기로 뿜어져 나오며 순간 하얗게 얼어붙고는 이내 공중으로 산산이 부서져 녹아들기를 반복했다. 배어나온 땀이 아래로 떨어져 나의 목에서 흘러나온 피에 섞여들었다. 더 이상 생명활동이 일어나지 않는 탓에 피는 이미 멎어 거친 절단면에서 검붉게 말라붙었다. 녀석은 잠시 이쪽을 내려다보다가, 반쯤 잘리다 만 목에서 눈길을 돌려 내 옷자락을 잡고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배가 드러나고 브래지어의 후크가 풀렸다. 상반신이 다 드러나자 녀석은

 

 

그 부분쯤에서 서지연은 읽던 소설을 바닥에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이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와, 옷깃을 세게 쥐고는 나를 끌어당겨 "너, 지금 뭘 하자는 건데?" 하고 소리쳤다. 코끝 사이에 햄스터 한 마리가 들어갈만 한 거리를 두고, 흐트러진 숨결이 닿으며 작게 튄 침방울이 입가에 앉았다. 크게 떠진 동공에 옅게 비친 내 얼굴을 보며, 소매로 입가를 훔치고, 대답했다.

"뭐가?"

"뭐가? 라니, 지금 몰라서 하는 말이야? 이거 소윤이 얘기 쓴 거잖아! 내가 모를 줄 알아?"

"그게 왜."

"당연한 거잖아! 해도 되는 거랑 안 되는 걸 몰라? 이건 소윤이에 대한 모독이라고."

"진정해. 이건 그냥 소설일 뿐이야.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일 거 없어."

내 말에 서지연은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주먹이 날아와, 나는 얼굴을 맞고 휘청이며 책상에 부딪혔다. 왼쪽 광대뼈 부근에서부터 무거운 아픔이 퍼지며 왼뺨 전체가 욱신거렸다. 서지연은 반쯤 책상에 기대어 있는 나를 똑바로 내려다보았다.

"헛소리 마! 소윤이는 이딴 시덥잖은 소설의 소재가 되기 위해서 죽은 게 아니라고! 네가 소윤이에 대해 뭘 안다고 이런 걸 쓰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소설이라는 핑계로 뭐든 넘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 누군가의 죽음이라는 건 이따위로 가볍게 다뤄도 되는 게 아니라고."

그렇게 말하고 서지연은 내게서 등을 돌려, 가방을 들고 교실에서 나갔다. 바닥에 떨어진 종이가 밟혀 발자국이 났다. 문 밖으로 나간 서지연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잠깐 멈춰 서,

"소윤이가 아니라 네가 죽었어야 했는데."

라고 작게 중얼거리고는 벽 너머로 모습을 감추었다.

서지연이 사라지고 홀로 남게 되자 교실은 정적에 휩싸였다. 창틈으로 불어온 바람에 커튼이 소리없이 흔들리고, 창가는 저녁에 감싸여 주황빛을 띠었다. 나는 바닥에 달라붙은 종이를 주워모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별로 내 소설이 쓰레기 같다는 의미는 아니다. 더러워져서 버렸을 뿐이다. 자필로 쓴 것이 아니기에, 종이와 프린터만 있다면 소설이야 얼마든지 뽑을 수 있다.

쓰레기통 위에 설치된 거울을 보며 아직 아픔이 가시지 않은 뺨에 손을 대었다. 서늘한 손가락이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는 감각이 들었다.

내가 잘못한 건가?

서지연이 어째서 나를 때린 것인지, 아직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다. 그 자체에 특별한 의미 따위는 존재하지 않고, 누군가의 죽음이나 끔찍한 사고를 재해석한 이야기 따위야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뭐가 문제라는 거지?

아직 빨갛게 물들어 있는 뺨에서 손을 떼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가슴께까지 내려오는 까만 머리카락과 눈썹을 가리는 일자에 가까운 앞머리. 화장기 없는 얼굴에 한 치수는 커 보이는 두꺼운 교복 상의 아래로 가디건이 드러나고, 밑으로 시선을 내리자 무릎을 덮는 긴 치마와 원래는 하얀 색이었으리라 추측되는 실내화가 눈에 들어왔다.

확실히 이래서야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을 들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지금의 김소윤과는, 이라기엔 뭐 이미 죽었지만, 하여튼 전혀 비슷하지 않은 것이다. 서지연이 화를 낸 이유도 아마 이 때문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치면 자기도 남말할 처지가 아니긴 한데, 어쨌든 김소윤을 모델로 한 이야기를 쓴다고 한다면, 나는 김소윤에 대해 자세히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김소윤이 어떤 녀석이었는지 떠올려 보았다. 옅은 노란 머리에 목덜미까지 오는 단발. 팔다리는 길고 호리호리하고, 깨끗한 피부에 손톱을 예쁘게 꾸미고 다녔다. 의자에 앉으면 짧고 타이트한 교복 치맛단 아래로 흰 허벅지가 드러나며, 가까이에서 마주볼 때면 기다란 속눈썹이 눈끝에서부터 뻗어 나와 곡선을 그렸다. 투명한 목소리에 언제나 부드러운 어조였지만 놀라거나 당황하면 이상한 소리를 냈다. 토마토 파스타를 좋아하는데 왠지 먹을 때마다 소스를 여기저기 튀겨서 매번 문득 보면 모양 좋은 코나 입술이 빨갛게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그 김소윤은, 길거리에서 누군가에게 살해당하고 시체가 토막날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김소윤이 어떤 책을 좋아하고 어떤 종교를 믿는지 알고 있었지만, 거기까지는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모르긴 몰라도 토막살인에 대한 미학을 늘어놓거나 담담하게 목이 잘리는 장면을 서술하지는 않겠지.

결국 잠시간을 생각한 끝에, 나는 김소윤이 되어 보기로 결정했다.

 

 

3월, 새학기를 맞은 첫날의 교실은 언제나 기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얼핏 낯익은 듯하지만 어딘가 어긋나 있는 교실의 풍경. 오랜 시간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던 책상과 의자는 싸늘히 식어 차갑고, 아직 채 겨울이 지나지 않아 추위가 스멀스멀 스며드는 듯한 냉랭한 공기 속에서 익숙하지 않은 얼굴들과 목소리가 주변에 가득하다. 벗어나고 싶어도 도망칠 수 없는 불안의 안켠에 혼자 고립된 것만 같은 새삼 신선하고도 초조한 감각이, 첫날의 교실에는 배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우리는 순식간에 서로를 인식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다. 눈을 돌려 주위를 둘러보자 주변의 녀석들은 어느새 친해진 건지 제각기 모여 멀쩡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있으려니 첫 시간부터 선생이 새 친구들과 가까워지라며 조별 수업을 하겠다고 선포했다. 의자나 책상이 끌리는 소리가 들리고, 반 애들은 끼리끼리 조를 꾸리기 시작했다. 나는 가만히 있다가 남는 조에 들어가게 되었다. 다들 자리에 앉고 나자 주변에서 이쪽을 힐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조원 여섯 명중 다른 셋 또한 이쪽을 쳐다봐서, 우리는 어색하게 눈길을 주고받았다.

"아, 안녕."

"…어, 응."

"……."

떨거지 조에 모인 나와 다른 여자애 둘. 이렇게 세 명이, 완전히 쏙 빼닮은 모습을 하고 있던 것이다.

비슷한 체격에 등 위의 정확히 같은 부분까지 오는 까만 머리카락. 앞머리가 눈꺼풀에 닿을락말락하는 헤어스타일에, 교복이라곤 해도 다 같이 한 단계씩 큰 것까지 똑같은 치수와 복장. 전혀 꾸밈새 없는 얼굴. 거기에 특징 없는 이목구비까지 겹쳐서 닮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게 이상할 수준이었다.

뭔가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되었다. 하나하나 떼놓고 보면 어디에나 있을 법 한 눈에 띄지 않는 인간들이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어디에나 있으면 역시 좀 이상한 것이다. 비슷하게 생긴 녀석들 셋이 몰려다니는 건 아무래도 흔치 않은 광경인지, 반쯤 학교의 명물이 되어 다른 반 녀석들까지도 우리를 알아보게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이미지가 없는 게 이미지였을 우리의 이미지는 그렇게 고정된 듯, 왠지 평소에도 한 세트로 취급받게 된 건 기본에, 세 쌍둥이라 불리며 개인적으로 말을 붙일 일이 있을 때면 저기, 하고서 명찰을 흘끔 본 뒤에 말을 꺼내는 게 예사였다. 이쯤 됐으면 이름 정도는 외우라고 불평하자 다들 너희는 생긴 게 비슷해서~ 하고 웃었지만, 자세히 보면 우리는 전혀 달랐다. 여자애중 한 명인 서지연은 눈꼬리가 약간 올라가 있었으며 2cm정도 키가 컸고, 다른 한 명인 김소윤은 조금 더 피부가 깨끗하고 갸름한 턱선에 단정한 인상이었다. 나는 아주 약간(정말로, 아주아주 약간) 코가 뭉툭했다. ☜ 되려 귀여워 보여서 매력 포인트다. 하지만 다른 녀석들은 알아채지 못하는 건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입을 열기 전에 먼저 이름표를 보는 게 다반사였다.

"소윤아, 빨리 가자아─."

"잠깐만. 미안, 그것 좀 건네줄 수 있을까?"

"자."

"고마워."

"빨리빨리─."

수업이 끝나고, 나와 김소윤은 벌써부터 교실 문 밖으로 나가 있는 서지연과 함께 교문을 나섰다. 다른 애들과 사이가 나쁜 건 아니었지만 대개는 셋이서 어울려 다녔다. 주말에도 김소윤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휴일이나 방과 후에는 종종 이런저런 곳에 놀러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가게 직원이며 지나가던 아저씨에게 자매냐는 질문을 듣는 게 일과처럼 되어 있었다.

"잘 보면 별로 닮지도 않았는데."

내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김소윤은 "스타일이 비슷하니까." 하고 말했다.

"머리 모양만 바꾸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볼 걸."

"그럼 한번 바꿔 보는 게 어때?" 하고 내게 서지연이 말해, 나는 "귀찮아." 하고 대답했다. "응. 생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엄두가 잘 안 나서. 지금이 마음이 편해." 김소윤이 맞장구쳤다. 확실히 이 스타일이 편하다. 이번만은 드물게 역효과가 났지만, 덕분인진 몰라도 중학생활 동안은 내내 눈에 띄는 일 없이 살아올 수 있었다. 이제와서 바꾼다면 그게 더 눈에 띄는 일이 될 게 뻔하다.

"그치, 나도 지금이 편해."

서지연이 소리내어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겉보기는 비슷하더라도, 역시 내용물까지 비슷하지는 않았다. 좋아하는 음악 장르도 달랐으며 같이 음식점에 가면 시키는 메뉴도 달랐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김소윤이 토마토 파스타를 주문하면 서지연은 고민하다가 고기를 시키고, 나는 옆에서 주스와 케이크를 먹었다.

김소윤은 잘하는 게 많았다. 성적은 과목을 가리지 않고 전교에서 한 자리 등수를 넘나들었다. 악기도 몇 개나 다룰 줄 알아 체르니 50을 어려움 없이 쳤으며 악보 없이 모차르트의 콘체르토를 켤 수 있었고, 스스로 쓴 소설에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노래를 흥얼거릴 때면 모두 말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유치원 때부터 받은 상장은 벽 한 면을 메울 정도라는 모양이었다.

그에 비해 서지연은 괜히 힘만 셀 뿐 위에 나온 것 전부 해당되지 않았지만, 그나마 비슷한 게 있다면 그림을 그린다는 점이었다. 서지연이 그리는 건 만화나 캐릭터 같은 거라 김소윤의 실사에 가까운 동화풍 파스텔톤 그림과는 화풍이 많이 달랐으나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는 부분에서 자주 낙서를 하며 놀았다. 서지연은 빈번히 김소윤이 쓴 소설의 캐릭터를 그려주거나 해, 그럴 때마다 김소윤은 와와 기뻐했다.

책상에 둘러앉아 서지연이 김소윤의 신작에 나오는 등장인물 '미스터 초코쿠키'를 그리고 있는 걸 구경하고 있을 때, 김소윤이 내게 물었다.

"수진이 너는 그림 같은 거 안 그려?"

"안 그려."

"그럼 소설은 어때?"

"무리야."

"왜?"

"못 하니까."

"그런 말 말고. 해 보면 의외로 되는 법이야. 글쓰기나 그림이나, 괜찮으면 같이 해 보지 않을래?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도와줄게."

나는 열네 번 정도 거절했으나 보챔에 못이겨 결국 해 보기로 했다. 그림 쪽은 김소윤의 초상화를 그려서 보여주자 곤혹스러운 얼굴로 "…어, 이거, 풍경화 맞지? 멸망 후의 폐허를 그린……." 이라는 반응이라 아무래도 실패인 듯했지만, 소설은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정말 좋았어! 처음에는 문장도 이상하고 무슨 얘긴지도 잘 모르겠고 지루했는데, 뒤로 가면서 앞에 나온 부분이 다 복선이었다는 걸 알고 진짜로 감탄하면서 확 읽어내려 갔어. 마지막에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 정도였는걸. 계속 써 보지 않을래? 수진이 네가 쓴 거, 더 보고 싶어."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김소윤은 미소를 지었다. 웃을 때면 왼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작게 보조개가 패였다. 김소윤은 펜을 꺼내들고 공책에 내가 쓴 이야기의 주인공을 그려 주었다. 상상하던 녀석과는 전혀 달랐지만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서지연은 팔랑팔랑 훑어보던 내 소설을 내려놓고 "좋겠다. 소윤이 덕에 새로운 재능을 찾았네." 하고 말했다.

 

 

"안녕─."

교실 안으로 들어가며 밝게 인사했다. 문 근처에 있던 녀석들은 이쪽을 흘끗 보더니 눈을 크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짓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정적은 차례로 퍼져나가, 시끄럽던 교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비어 있던 자리로 가 가방을 두고 의자에 앉았다. 곳곳에서 작게 수근거리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노트를 꺼내고 있으려니 서지연이 다가와, "너, 그게 뭐야……?" 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정도는 예상했던 반응이다.

나는 생전의 김소윤과 같은 모습으로, 쭉 비워져 있던 김소윤의 자리에서 서지연을 올려다보았다.

누군가를 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본인과 이야기해 보는 게 가장 간편한 방법이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결국 상상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상상력은 대단하다. 책을 읽으며 존재하지도 않는 인물의 존재하지도 않는 사건에 이입하며 희노애락을 느끼고, 몇 가지의 정보가 조합되면 감각마저도 만들어낼 수 있다. 타인의 행동을 가장하는 일쯤은 손쉽다. 행위로부터 인과를 더듬으며 추리를 통해 사유의 근간에 이르러, 거기서 보다 더 디테일한 상상을 추구하기 위해, 역할에 이입하고자 체중을 감량하고 머리카락을 자르는 배우처럼 대상의 입장이 되어 사고하는 것이다.

그날, 나는 김소윤으로 분장을 시작했다. 김소윤과 같은 노란 단발을 고르고, 자주 들른다는 네일 샵을 찾았다. 카탈로그를 보자 김소윤이 평소 하고 다녔던 디자인이 있어 그대로 신청했다. 교복을 새로 맞추고 같은 톤의 화장품을 샀다. 들고다니던 것과 같은 모델의 가방을 찾았다. 가격표를 보고서 이쯤에서 그만 두고자 했지만, 수상한 가게에서 똑같이 생긴 걸 동그라미가 하나 빠진 가격에 팔고 있어 그걸 구매했다.

준비를 마치고 머리와 옷차림을 다듬은 뒤 거울 앞에 서 보았다. 원래부터 체격이 거의 같았으므로 겉보기에 다른 건 얼굴뿐이었지만, 비슷하게 화장을 하자 제법 그럴듯해 보였다. 말투를 같게 하고 피치를 약간 올렸다. 성대모사의 기본은 음색이 아니라 어조다. 빠르기나 높낮이를 맞추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흡사하게 들린다. 거울을 들여다보며 웃는 연습을 했다.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잘 알 수 없어 어려웠으나, 반복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웃을 수 있었다. 어째서 김소윤이 미소를 지을 때마다 한쪽의 입꼬리만이 더 올라갔던 것인지를 깨달았다.

애초부터 주변 녀석들에게 나와 김소윤이 닮았다고 비춰졌던 건 성격이나 얼굴의 생김새 때문이 아니라 겉으로 표상되는 몇 가지의 피상적이고도 가시적인 특성, 머리 모양이나 촌스러운 옷차림 같은 일종의 기호화된 태그 때문이었던 것이다. 현존하는 '나'가 어떻게 실재하고 있는가와는 관계없이 그런 몇 가지의 특징적인 심볼만 일치한다면 외부의 눈으로 보기에는 실상 상동한 위치에 있는 존재로서 정의될 수 있다.

외모란 그런 거다.

"네 말대로 김소윤을 더 알아 보자고 생각해서."

교실이 다시 정적에 싸이며 모든 시선이 이쪽으로 집중되었다. 주변에 있던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물러나, 나와 서지연을 중심으로 어느 정도 떨어져 원을 그렸다. 서지연의 손이 떨리는 것이 보였다.

무언가 입을 열려다 그만두기를 반복하는 서지연에게, 나는 미소를 지었다. 언제나 김소윤이 지어 보였던 미소. 서지연은 순간 놀란 듯 움찔하고서는 입술을 꽉 깨물고 내게 달려들었다. 구경하던 누군가가 비명을 흘리고 애들 몇 명이 서지연을 붙들었다. 서지연은 놓으라고 소리치다가 선생이 들어올 시간이 되어 이쪽을 노려보며 자리로 돌아갔다.

수업 시간마다 들어온 선생들 역시 하나같이 나를 보고는 깜짝 놀란 듯 반응을 보였다. 비명을 지르면서 주저앉는 사람도 있었으며 이런 장난은 그만 두라고 진지하게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조용히 미소를 지으면 다들 하던 말을 멈추고 넘어갔다. 쉬는 시간에 다른 반 녀석들도 재미있는 일을 구경하기 위해 찾아왔지만 먼발치에서 소근대기만 할 뿐으로, 가끔 뭐냐고 물어 오는 녀석도 있었으나 예의 미소와 함께 약간 높은 목소리로 "뭐가?" 라고 말하면 "어, 아니……." 하고 돌아갔다. 오전이 지나도록 같은 반 녀석들은 물론 서지연조차 다가오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되어 반 아이들이 몇 명씩 교실을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나는 의자를 끌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아 있던 몇몇이 이쪽을 힐끔거렸다. 교실 맨 뒤에 앉아 웃고 있는 녀석들과 눈이 마주쳤다. 똑바로 그쪽으로 다가가자 녀석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며 나를 보았다.

"너네, 김소윤이랑 친했지."

내가 말하자 교실 뒤편에 있던 넷은 잠시 서로를 쳐다보고는, 책상에 걸터앉아 있던 한 명이 "왜?" 하고 물었다.

"부탁하고 싶은 게 좀 있어서."

"뭔데?"

"너희 노는 데 끼워 줘. 나를 김소윤이라 생각하고."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 나는 말을 이었다.

"알고 싶거든. 김소윤에 대해 너희가 알고 있는 모든 걸. 같이 있을 때 무슨 말을 했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 너희는 녀석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어려운 건 없을 거야. 전과 같이 행동하기만 하면 돼."

내 옆에서 책상에 걸터앉아 있던 녀석인 장민아가 "하……" 하고 웃으려는 제스처를 취했지만, 주변 모두 웃으려는 기색이 없어 눈치를 살폈는지 그만 두고, 말했다. "너 미쳤냐? 뭔 소리야?"

나는 험악한 표정을 짓는 장민아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뭐야, 하면서 욕을 내뱉는 장민아의 얇은 손목을 손끝을 세워 살짝 쓸었다.

"이거 로이드지. 디자인을 보니 10k짜리. 우리 나이에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만 너한테는 안 어울려."

뭐?, 하는 장민아와 가까이에서 눈을 마주치며, 나는 주머니에서 손을 꺼냈다. 손가락 끝에서부터 내려온 체인이 작게 흔들리며 빛을 반사해 반짝였다.

"마침 너랑 잘 어울릴 것 같은 걸 가지고 있는데. 디올에서 나온 하반기 신상품 모델이야. 한번 해 보지 않을래?"

"아니……" 하는 장민아의 손목에 팔찌를 채웠다. 역시 잘 어울리네, 너는 손목이 얇아서 이런 디자인이 더 괜찮아, 괜찮으면 가질래, 팔찌도 좋은 주인한테 가는 걸 더 좋아할 거야, 하고 미소 짓는 나를 다들 곤혹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가운데, 쭉 상황을 지켜보던 한 명, 신예나가 갑자기 "와하하하!"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잠시 뒤 신예나는 웃음을 그치고, 나를 보며 말했다.

"하하, 너 이제보니 디게 웃긴 녀석이네. 김소윤으로 생각하고 끼워 달랬지. 무슨 생각인지는 몰라도 거들어 줄게."

"넌 또 뭔 소리야? 싫거든!" 그렇게 말하는 장민아를 신예나는 "뭐 어때." 하고 일축하고 말을 이었다. "너 이름이 뭐였더라? 한수진……? 아니, 유씨던가? 김씨? 뭐 됐어. 김소윤으로 생각하라고 했으니까, 너는 이제부터 김소윤 2호다. 상관없지?"

"상관없어."

"그래, 김소윤 2호. 우리 오늘 수업 끝나고 같이 역 앞에서 놀기로 했거든. 같이 갈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신예나는 웃었다. "좋아. 앞으로 잘 지내보자. 아, 그리고 말인데."

신예나는 가까이 다가와 내 어깨에 가볍게 손을 올리며, 말했다.

"우리가 같이 놀러 가면 돈은 거의 김소윤이 냈어. 무슨 의미인지 알겠지?"

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계절은 여름으로 다가가 교실에 앉은 아이들의 복장이 춘추복과 하복으로 나뉘었다. 마지막 남은 춘추복 파로서 절개를 고수하다가 이제 안 되겠다 싶어 하복을 입고 등교하자, 서지연과 김소윤도 미리 짜기라도 한 듯이 하복으로 복장이 바뀌어 있었다. 우리는 서로 치마 길이를 재보고 웃었다.

"혹시 하복은 다를까 했더니, 역시 똑같네."

"그래도 교복 메이커는 달라."

"벗겨보지 않는 한 모르지만."

뒷문 쪽에 서서 이야기를 하고 있자 장민아가 교실로 들어오며 "비켜."하고 눈을 흘겼다. 장민아는 교실에서 주도적인 자리에 있는 녀석중 하나로, 반 애들에게 상습적으로 푼돈이나 자잘한 물건을 빌리고는 돌려주지 않아 평판이 나빴으나 아무도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다. 문 앞에 서 있던 서지연은 시선을 피하며 뒤로 물러서고, 지나가는 장민아의 뒷모습을 노려보다가, "저기, 지연아……?" 하고 말을 꺼내는 김소윤의 목소리에 "어, 응?" 하고 정신을 차린 듯 이쪽을 보았다.

"괜찮아. 그렇게 신경 쓰지 마."

"…별로. 신경 안 써." 그렇게 말하면서도 서지연은 장민아 쪽으로 힐끗 눈을 돌렸다.

결국 그날 내내 서지연은 언짢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어, 김소윤은 도움을 요청하는 것 같은 눈으로 나를 보았다. 해결을 위해 서지연에게 커터칼을 건네려 했지만 꺄 안 돼 안 돼 하고 김소윤에게 저지당했다.

시간이 흘러 새로운 교실이 익숙해지고, 교실 내의 인간관계食物連鎖도 정립되고 나자 이런 비슷한 일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럴 때마다 김소윤은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우왕좌왕하며 왜?, 무슨 일이 있다고 그래?, 하고 입으로만 아무렇지 않다는 마냥 구는 서지연을 위로했다. 나는 그러는 서지연이 처음에는 좀 재미있다가 몇 번 반복되자 슬슬 짜증나기 시작했지만, 김소윤의 반응이 귀여워서 다시 재미있게 지켜보았다.

학기가 진행되면서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이가 아니면 낯가림이 심한 듯한 서지연이나 인간관계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나와 달리 김소윤은 반 애들과 두루두루 친해져, 자연스럽게 다른 여자애들 사이에 끼어서 이야기하거나 장난을 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셋이 모이는 시간은 줄어들게 되어, 쉬는 시간에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보면 서지연이 어두운 눈매로 그러는 김소윤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요즘 다른 애들이랑 친한가보네."

점심시간, 같이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서지연이 말했다. 포크를 열심히 입에 욱여넣고 있던 김소윤은 "응?" 하고 무슨 말이냐는 듯 반응했다. "그게 왜?"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뭐야. 할 말 있으면 확실히 해 줘." 점심으로 나온 토마토 스파게티의 소스를 뺨에 묻히고서 김소윤은 웃었다.

이후로 서지연은 김소윤과 다른 애들 사이에 적극적으로 끼어들었다. 김소윤이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있으면 "무슨 얘기 해?" 하고 말을 걸거나 "물 마시러 가자." 하고 팔을 잡아끌었다. 김소윤은 "어, 응……." 하고 다른 애들의 얼굴을 살폈지만, 그렇게 얼마간이 지나도 딱히 서지연이 반의 다른 누군가와 친해질 기색은 없었다.

등굣길 내내 과학 숙제와 수학 숙제 중 뭘 포기할까 고민하다가 둘 다 안 하기로 결정하고 교실에 도착해 책상에 누워 있자, 김소윤이 후후 웃으며 내게 다가와 "짠─" 하고 손을 내밀어 보였다. 손톱에는 민트색 폴리시가 칠해져 있어, 몇 군데에 작게 꽃이 그려져 있는 게 보였다.

김소윤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처럼 특출나게 예쁜 곳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매일 관리라도 받고 있는 듯 곳곳이 정돈되고 깔끔한 인상이었다. 서지연 같은 녀석과 다르게 머릿결은 매끄럽고 부드럽고 눈썹에도 잔털이 보이지 않았다. 가늘고 긴 손가락 끝에 달린 손톱은 인형처럼 예쁜 모양새였다. 패션 센스는 없었지만 들고 다니는 책가방은 차우차우와 맞먹는 가격에, 핸드폰 줄에 달린 장식도 큐빅이 아니라 진짜 보석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그리고 어쩐지 옆에 있으면 좋은 향기도 나서, 서지연이 달라붙어 있으려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내가 빤히 보고 있자 김소윤은 "혹시 어디 아파?" 하고 내 이마로 손을 뻗었다. 나는 머리카락에 닿기 전에 공중에서 손을 붙잡았다. "아니. 멀쩡해." 손을 놓자 김소윤은 "그럼 다행이고." 하고 다시 손톱으로 시선을 옮겼다.

"예쁘지?"

"예쁘네."

"이거 프랑스 거래. 잘은 모르겠지만. 사촌 언니가 사다 줬어. 여기 꽃 내가 직접 그린 거다. 처음 해 본 건데 생각보다 잘 그려져서 좋았어."

그렇게 얘기하고 있자니 뭐 하고 있냐며 서지연이 다가와, 김소윤은 서지연에게도 네일을 보여주었다. 서지연은 "…흐응." 하고는 민트색으로 칠해진 손톱을 바라보았다.

다음날, 등교길에서 김소윤과 마주쳐 방울토마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교실로 들어갔다. 자리로 향하려니 서지연이 후후 웃으며 다가와 "이거 봐 봐." 하고 손을 내밀었다. 서지연의 손톱에 주황색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어때?"

"예쁘다. 잘 어울려." 하고 대답한 김소윤에게 서지연이 "그치? 그럼 소윤이 너한테도 칠해 줄게." 하고 말해, 김소윤은 "어…… 어?" 하다가 결국 책상에 앉아 손톱을 칠해지게 되었다. 서지연은 김소윤의 민트색 매니큐어를 지워내고 베이스를 씌운 뒤, 얇은 브러시 끝에 자신이 하고 있는 것과 같은 주황색 폴리시를 묻혀 분홍빛을 되찾은 손톱 위에 그었다. 매끄러운 질감의 가는 선이 생겨나고, 몇 번 손을 움직이자 손톱 전체가 주황으로 물들었다. "됐다. 봐 봐, 엄청 예뻐! 그야 소윤이는 뭐든 어울리지만, 이건 특별히 더." 싱글벙글하는 서지연에게 김소윤은 "…응. 고마워." 하고 작게 웃어 보였다.

"소윤이는 머리카락이 곱네."

"소윤이는 피부가 참 좋다."

"소윤이는 손가락이 예쁜 것 같아."

그렇게 말하며 서지연은 자신이 쓰던 빗으로 김소윤의 머리카락을 빗겨 주거나 가까이 얼굴을 맞대고 손을 잡고는 했다. 김소윤은 그럴 때마다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지만, 근래에 들어 서지연을 대할 때 김소윤의 얼굴에서 전보다 무표정이 자주 비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한 번 초인종을 눌러 보고서,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걸 확인하고 자리를 떴다. 이걸로 세 번째다. 이쪽은 포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근처의 사진을 몇 장 찍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핸드폰을 확인하자 반 애들이나 만난 사람들에게 온 메세지가 잔뜩 와 있어, 하나하나 확인하며 답장을 했다.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하고 보름이 지났다. 곧 12월을 앞둔 늦가을의 쌀쌀한 날씨는 학기 초를 떠올리게 했다. 그때 김소윤이 입었던 코트를 찾아보고 이번에도 수상한 가게에서 팔고 있을까 생각했다.

신예나 녀석들과 말을 트고서, 나는 김소윤이 교실에서 어떤 얼굴을 하고 목소리를 냈는지를 떠올리며 행동했다. 역시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며칠이 지나자 익숙해졌다. 김소윤의 화법에 굳이 말주변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상대의 말에 맞추어 적당한 표정을 짓고, 빠짐없이 리액션을 하면 되었다. 김소윤은 언제나 맞장구 정도만 치며 들어주는 입장으로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저 눈을 마주치면서 웃어 주고,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말을 이끌어내는 것만으로도 상대는 즐겁게 대화했다고 착각하거나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며 혼자서 친밀감을 높이거나 했던 것이다. 말수가 적은 상대에게는 처음엔 스스로 화제를 띄우면서 대화를 이끌어 가고, 어느 정도 경계가 풀렸다 싶으면 다시 위와 같은 방법을 사용했다.

첫 며칠간은 내가 말을 걸거나 해도 단답으로 대답하거나 슬슬 피할 뿐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았지만, 신예나 녀석들이 자연스럽게 대하자 다들 어리둥절하며 눈치를 보다가 하나둘씩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니 내 쪽에서도 더 끼어들기 쉽게 되고, 반 전체의 시선이 느슨해지는 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만 서지연만은 계속해서 적의를 품은 시선을 보냈으나, 아마 생전의 김소윤도 서지연이 먼저 다가오지 않으면 특별히 가까이 지내려 하지는 않았을 터이므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침, 교실에 도착하자 마침 문을 나서던 신예나가 "어, 왔냐." 하고 말해 나는 안녕 인사했다. "어디 가?" "담배. 같이 갈래?" "됐다니까. 민아는?" "지각이지." "그럴 것 같았어. 선생님 오기 전에 빨리 갔다 와." 문 안으로 들어가 자리로 향하며 반 애들과 인사를 나눴다. "안녕." "소윤이 안녕─." 신예나 녀석들이 나를 김소윤 2호라고 부르는 탓에 처음에는 다들 호칭에 혼란스러워 했으나, 별명 같은 걸로 받아들인 모양인지 공식적으로 부를 때가 아니면 소윤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여기서 소윤이의 이가 2호의 2라는 뜻이란 걸 안 건 나중의 일이다.

자리에 앉자 여자애 한 명이 다가와 내 머리카락을 빤히 쳐다봐, "왜?" 하고 묻자 "아니. 주말에 애들이랑 같이 미용실 가기로 했거든. 너 염색 다시 할 때 됐으면 같이 가자고 하려 했는데. 얼마 안 됐나보네." 하고 아쉽다는 듯 말했다. 나는 살짝 웃으면서 "다음에 같이 가자." 하고 대답했다.

그밖에도 "소윤이도 사탕 먹을래?" 라든가 "심부름 같이 가자." 하는 식으로 가만있어도 거리낌 없이 말이 걸려 왔다. 이전처럼이 아니다. 이전의 '나'라면 없었을 일이다.

나는 어느샌가 교실에서 김소윤의 자리를 완전히 대체하고 있었다.

다른 녀석들이 나를 친구의 죽음으로 정신이 나가버린 불쌍한 애로 보는 것이든, 반에서 잘 나가는 녀석들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어울려 주는 것이든, 흥미 본위로 흔치 않은 이벤트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든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겉으로 드러나는 타인의 태도, 김소윤이 오래간 길러 온 머리카락을 자르면서 손에 넣은 위치를, 나는 표면적으로나마 간단히 손에 넣었다는 것이다.

허망하게도.

김소윤이 이런 광경을 보면 어떻게 반응할까. 직접적으로 화를 내거나 아쉬운 티는 내지 않는다. 장난스럽게 이러기야, 하고 말할까. 아니, 그렇게까지 낙천적인 녀석은 아니다. 아마 진지하게 이건 좀 아닌 것 같아, 하고 말을 시작하겠지. 그러면 속으로는? 배신감, 섭섭함, 허무함, 그런 감정이 소용돌이칠까?

꼭 김소윤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대체 가능한 존재라는 걸 깨닫는 순간만큼 충격적인 건 없으리라. 특별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던 자신의 여태까지의 존재가치 모두를 부정당하고, 개성을 가진 인간에서 하나의 톱니바퀴 따위로 격하되는 순간. 세계가, 타인이 바라던 것이 순수한 자기 자신이 아닌 그저 자신이 가진 몇 가지의 요소들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간은 쉽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야 모든 걸 카피할 수는 없다. 급하게 쌓아올려진 것인 만큼 무너지기도 쉽다. 계약에 기반한 필요에 따른 관계에 가깝다. 그 정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거면 충분하다. 필요로 하는 동안만 지속되면 된다.

인간관계란 그런 거다.

점심시간, 장민아가 "오늘 점심 먹을 거?" 하고 물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식단표를 봤을 때부터 이날을 기다려 왔어." 장민아는 식단표를 보고 "아, 토마토 스파게티……." 하고 알겠다는 듯 중얼거렸다.

귀찮았지만 김소윤과 성적을 비슷하게 하기 위해 문제집을 펼쳤다. 모르는 말이 한가득이었지만 보이는대로 암기하자 모의고사에서 좋은 의미로 처음 받아보는 점수를 받았다. 쓰는 소설도 김소윤이 쓸 만한 문장을 떠올리며 썼다. 피아노도 쳐 보니 나쁘지 않았으나 그림만은 도저히 어찌할 수 없어, 미술 시간에 꽃병을 그려 가져가자 대체 뭘로 보이는 건지 선생의 얼굴에 수심이 드리웠다. 식습관도 조절했다. 김소윤이 좋아하는 게 생선이 아니라 토마토라 다행이었다.

다른 인간을 그저 흉내 내는 일 따위는 어렵지 않다. 생각없이 보낸다고 생각하는 평범한 일상 또한 자신의 캐릭터에 맞춘 연기나 다름없다. 김소윤도 지금의 나와 마찬가지로 김소윤으로서의 연기를 해 왔을 뿐이다.

일단 나는 주변이 원하는 '소윤이'로서의 연기를 계속하면서, 그와 함께 김소윤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 움직였다.

나는 다시 한 번 김소윤의 집에 가 보았다. 초인종을 누르자 마찬가지로 대답이 없었다. 지난번 크게 쫓겨난 뒤로 더 이상의 반응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김소윤은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주택가에 살고 있었다. 커다란 단독주택으로, 차고에는 웬만한 집과 맞먹을 가격의 차가 몇 대씩 있었다. 처음 찾아와 초인종을 누르자 누구냐며 인터폰 너머로 놀란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릴 말씀이 있다고 말하고 집 안으로 들어가니 앞치마를 두른 중년의 여성이 문 앞에 있었다. 내가 아는 얼굴과 달라서 당황하고 있자 그건 가정부였던 듯 방으로 안내를 받아, 들어간 곳에서 김소윤의 진짜 어머니와 만났다. 이쪽을 보는 시선이 흐트러져 있는 게 보였다. 목적을 이야기하고 협조를 부탁하자 크게 화를 내 가정부의 손에 끌려나왔지만, 김소윤에 대해 알기 위해 중요한 부분이었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애초 소설이니 뭐니 하는 게 그렇게 중요한가? 이렇게까지 할 정도로? 싶지만, 뭐 그건 이제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지금의 상황 자체가 재미있을 뿐이다.

다시 한 번 초인종을 누르고 역시 안 되나 돌아가려 하자, 인터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요."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처음에는 모두 알아보지 못한 눈치였다. 전학생인가 봐, 예쁘네, 하고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터벅터벅 교실을 가로질러 자리에 가 가방을 놓은 뒤가 되어서야 다들 그게 김소윤이란 걸 알아보고 폭발하듯 시끄러워졌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전혀 못 알아봤어."

"훨씬 나은데! 진작 이렇게 하지."

김소윤은 주위에 몰려든 아이들에게 쑥쓰러운 듯 웃으며 에이 뭘, 다행이네, 고마워, 하고 대답했다. 기대하면서 눈을 돌리자 예상대로 서지연은 당혹스러운 기색을 열렬히 표출하며 그러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방학이 지나고 김소윤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교실에 나타났다. 허리 위까지 내려오며 눈썹을 덮던 머리카락은 짧게 확 잘라버리고 노랗게 물들였다. 답답해 보이던 교복은 몸에 딱 붙게 되었다. 밋밋하던 얼굴에는 화장기가 깔리고 귀에는 반짝거리는 피어스가 박혔다.

"여태까지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까 지연이나 수진이랑 하나도 안 닮았네."

반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다가가자 김소윤은 미소와 함께 인사했다.

"안녕. 잘 어울리네. 드디어 엄두가 났나 봐."

"고마워."

그러고 있자 어느샌가 다가온 서지연이 "…나는 전이 더 나았던 것 같은데."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드디어 올게 왔구나 두근두근했지만 "그런가." "응. 지금은 좀, 뭐랄까, 아닌 것 같거든." "너무해. 그치만 머리 자른 걸 다시 돌릴 수는 없으니까." "…그건, 그렇지……." 김소윤에게 집착하던 서지연이었기에 뭔가 더 격렬한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싶었으나, 유감스럽게도 얘기는 그쯤에서 끝나 버렸다. 뭐 그야 어쩔 수 없긴 하다. 머리는 좀 잘려도 시체로나마 도로 붙일 수 있지만 머리카락을 하나하나 다시 붙일 수는 없으니까.

"아, 맞다, 이거."

그렇게 말하며 김소윤이 손등을 내밀었다. 손톱은 분홍색으로 칠해져 있어, 이전 하고 왔던 것보다 훨씬 화려하고 미려한 인상이었다.

"유명한 가게가 있다고 해서, 친구랑 같이 가서 했어. 괜찮은 것 같아?"

"……" 하고 우물거리던 서지연 대신 "응. 괜찮네." 하고 대답했다.

그 뒤로 서지연이 김소윤에게 다가가는 일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말을 한다고 해도 종래에는 근데 역시 그 스타일 안 어울리는 것 같은데 하는 식으로 끝맺어졌다. 언젠가부터 김소윤은 신예나 패거리랑 어울리기 시작해, 점심시간에도 그쪽과 같이 합석했다. 김소윤을 따라서 반의 다른 여자애들과는 같이 앉았던 서지연이었지만 거기에는 다가가지 못하고 식판을 들고 와 내 앞에 앉았다.

"…소윤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머리나 옷차림도 저렇게 해 놓고는."

"왜. 어울리잖아."

"안 어울려! 소윤이는 원래가 훨씬 나았거든!"

나는 사과를 마저 한입 먹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판을 수납하고 나가려 하자 서지연이 당황하며 쫓아왔다.

"야, 잠깐……!"

"왜. 다 먹고 나오지."

그러자 서지연은 뭔가를 말하려다가 "…아니. 다 먹었어." 하고 잔뜩 남은 밥과 반찬을 잔반통에 버렸다.

몇 번쯤 그런 일이 반복되고, 그러는 모습이 귀여워서 다음에는 일부러 빨리 먹고 일어나기도 했지만 결국 불쌍해져 속도를 맞춰 주었다. 김소윤이 멀어져버린 지금 서지연과 그나마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건 나뿐이었던 것이다. 서지연은 며칠쯤 식당에 아예 안 오다가 이내 포기한 듯 쭈뼛거리며 내 옆으로 다가왔다.

김소윤이 신예나 녀석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서지연은 김소윤과 거의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다. 날이 갈수록 서지연의 눈에 피폐함이 더해져 가, 종래에는 어떤 원망조차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 네 인생에서 김소윤이 그렇게 중요한 거야, 하고 물어 보았지만 닥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등굣길에 버스에서 김소윤과 만났다. 머리카락이 튀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다가가자 김소윤도 나를 알아보고 인사했다. 김소윤과는 같은 노선에 희귀한 버스라 마주치는 일이 자주 있었다.

"수학 숙제 했어? 문제 풀어오는 거."

"수학 같은 건 인생에 필요 없어."

"그럼 뭐가 필요한데?"

"돈."

"대학을 가야 돈을 벌지."

"공부 안 해도 대학은 갈 수 있어."

"어떻게?"

"실기시험이라든가."

"실기로 들어가는 대학은 대체로 돈을 버는 거랑은 관계없는 곳인걸."

그렇게 잡담을 하고 있자니, 문득 김소윤이 물었다.

"…저기, 지연이가 혹시 나에 대해서 무슨 말 한 거 있어?"

"바꾼 스타일 안 어울린다는 말은 한 오백 번쯤 했을 걸. 왜?"

"아니. 아무것도." 그리고 잠시 동안 말이 끊겼다가, "실은……" 하고 김소윤은 내게 핸드폰 화면을 보여 주었다. 화면에 표시된 건 누군가와 주고받은 메세지로, 상대의 이름에는 서지연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스크롤을 올리자 일방적으로 하루에도 몇십 개씩 메세지가 와 있었다.

김소윤의 말에 따르면 방학동안 매일같이 몇 번이고 서지연으로부터 연락이 왔다는 모양으로, 예전에도 연락을 자주 해 오긴 했지만 그 정도가 너무 심해졌다고 김소윤은 말했다. 그래서 방학 내내 외국에 나가 있었다고 거짓말을 해, 어제까지 파리에 있다가 귀국일 당일에 뉴올리언스에 있는 상황이 연출되었으나 서지연이 바보인 만큼 의심은 사지 않은 것 같았다.

"요즘은 어때. 학교에선 전보다 거리를 두는 모양이던데."

"학교에서만 그렇게 보일 뿐이야. …며칠 전에 집으로 돌아갈 때, 집 문을 열고 돌아가려니까 뭔가 기분이 이상해서 주위를 둘러봤더니, 가로수 뒤에 지연이가 있었어. 그때 엄청 무서워져서, 모르는 척 서둘러서 안으로 들어갔는데……. 학교에 가려고 집을 나올 때나 잠깐 밖에 나올 때도 멀리서 그러고 있다가 내가 가까이 가면 도망치는데, 그러면서 연락은 계속 해 오고. 도저히 뭐 하는 거냐고 물어볼 수가 없었어."

내역을 넘겨 보자 당장 오늘 새벽까지도 메세지가 와 있어, 내용은 뒤로 갈수록 정신이 걱정될 정도로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었다. 맨 마지막에는 할 얘기가 있으니 오늘 학교 마치고 잠깐 보자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오. 이거 잘하면 칼에라도 찔릴 지 모르겠는걸."

"설마. 무서운 소리 하지 마."

"농담이야. 그렇게까지는 안 하겠지. 아마도."

나는 킥킥 웃었지만, 김소윤은 드물게도 웃지 않았다. 버스는 학교 앞에 도착해, 우리는 카드를 찍고서 땅 위로 내려섰다. 교문이 닫히기 전에 가까스로 들어갔다. 저 멀리서 장민아가 허겁지겁 뛰어오다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멈춰서는 걸 보고 우리는 조용히 웃었다.

김소윤과의 마지막 대화였다.

 

 

침대에 눕자 용수철의 반발력으로 몸이 약간 떠올랐다가 푹신하고 이불에 파묻혔다. 누운 채 눈을 돌려 방 안을 둘러보자, 특색없이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모던한 인상이었다. 책상 위에 있는 키티 인형에 잠시 눈이 멈췄다.

나는 김소윤의 어머니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다. 아쉽게도 삼고초려마냥 정성을 보아 받아들여 주겠다, 라는 감동적인 이야기는 아니었고, "사모님이 그쪽이 찾아오는 게 편찮으시다고, 원하는 대로 해 줄 테니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하셨어요." 하고 나름의 타협을 한 것이었다.

나는 김소윤이 어릴 때 어떤 아이였고 집안에서 어떤 딸이었는지를 들었다. 가정사정과 여름방학 때의 갑작스러운 변신에 대한 감상(놀라서 대판 싸운 뒤 계속 냉전 상태로 화해하지 못했는데, 영원히 화해할 수 없게 되어 어째서 조금 더 이야기하려 하지 못했을까 하고 크게 후회하고 있다는 둥의)도 들었다. "여기가 소윤이의 방이에요. 차마 손댈 수 없어서 그날 그대로의 모습이에요." 이야기가 일단락되고 그녀는 김소윤의 방을 안내해 주었다. 그날 그대로, 라곤 해도 말끔하게 정돈된 모습으로, 전 과목에 이르는 문제집부터 제인 에어, 오만과 편견 등 주로 여류작가들의 소설까지 다양한 책이 책장에 꽂혀 있고, 책상 서랍을 열자 칸마다 문구용품이며 잡화며 화장품 등이 정리되어 있었다.

책장 뒤켠에서 김소윤이 초등학생 때 쓰던 일기장이나 중학생 때 친구와 쓴 교환일기 같은 걸 발견했다. 정자체로 쓴 일기는 둘 다 점점 날짜의 폭이 넓어지다가 한 달 정도가 지난 시점에서 끊겨 있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쓴 것처럼 당장 교과서에 실려도 문제없을 모범적인 내용이었다. 드로잉 노트를 펼쳐 보자 동물이나 풍경화, 낙서 사이에 동일인물로 보이는 남녀의 얼굴이 몇 개인가 그려져 있었다. 친구인 듯한 안경을 쓴 여자는 한 권 내내 등장했지만 남자는 중간부터 더 이상 나오지 않고, 마지막으로 그려진 건 지우려는 생각이었던 듯 펜으로 거칠게 덧칠이 되어 있었다. 악보나 소설이 쓰인 공책도 있었다. 악보는 몇 장을 넘기다가 덮었으나 소설 노트 중에는 유명 남자 연예인 두 명이 낯뜨거운 대사를 내뱉는 녀석도 있어 김소윤의 취향을 알기 위해 정독했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김소윤의 일과를 상상했다. 아침에 방에서 일어나, 가정부가 준비해 준 식사를 하고, 정류장으로 가 다른 버스가 몇 대나 지나갈 동안 보이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고, 교실에 들어와 반 애들과 인사를 하고, 수업을 듣고, 끝나면 신예나 녀석들이나 다른 친구와 놀러갔다가 저녁이나 밤 늦게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고, 부모와 싸우고 잠에 들고 반복. 중간에 특별한 이벤트 내지 공부나 글쓰기나 그림 그리기 같은 게 끼워넣어지는 일도 있으리라. 더는 보내어지지 않을 일상. 외양이 바뀌고부터 이 일상이란 게 얼마나 바뀌었을까 생각하다가, 뭐 결국 완전히 바뀌어 버렸지, 하고 마무리지었다.

다시는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김소윤 어머니의 말을 뒤로하고 집에서 나왔다. 반쯤 노을이 되어 눈부심이 덜해진 해가 보였다. 새로 얻은 퍼즐 조각들을 머릿속에서 짜맞추었다.

이제 해야 할 일은 하나 뿐이다.

 

지하철역 근방의 골목은 인적이 드물어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김소윤이 죽은 골목에 섰다. 지직거리는 낡은 가로등 하나만으로 밝혀진 골목은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겼다. 알콜로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몸이 살짝씩 휘청였다. 나는 벽에 손을 짚었다. 수사가 종료된 지 시간이 지났기에 폴리스 라인 같은 건 이미 다 떼어져, 작은 스티커 자국 정도만이 범죄 현장이었다는 걸 나타내고 있었다.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얼굴을 가까이 대고 시멘트로 된 벽이나 바닥을 들여다보았다. 몇 번이나 청소가 되었을 테지만, 자세히 보자 희미한 핏자국이 어렴풋이 남아 있었다.

김소윤은 여기서 왼팔이 토막나고 목이 깊숙이 파인 채로 발견되었다.

10월 31일 토요일 오전 4시 20분경, 지나가던 길에 이상한 냄새가 나 다가가 보았다는 근처 주민의 신고로 역 주변의 골목에서 한 구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당시 시신은 상의가 벗겨져 있었으며 왼쪽 팔이 어깨죽지에서부터 잘려나가 팔꿈치와 손목 부분에서 잡아뜯기듯 다시 한 번씩 토막나 세 조각을 이루고 있었다. 목은 반쯤이 잘려나가 뼈가 드러나도록 파여 있고, 바닥이나 벽에 튄 대량의 피가 그대로 스며들어 일대가 검붉게 변색되어 있었다. 확인조에 이어 곧바로 온 증원에 의해 현장이 수습되었다. 소지품의 학생증으로부터 시체가 김소윤이라는 이름이며, 근방의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이라는 게 판명되어 부모와 학교에 연락이 갔다. 유체는 부검을 마치고 필요한 조사가 끝났다고 판단된 뒤 가족에게 인계되었다. 며칠 후 장례식이 치러지고, 시신은 잘린 팔과 함께 화장 후 안치되었다.

이상이 김소윤의 죽음에 대해 알려진 사실이다. 범인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 워낙 인적이 드문 곳이고 교묘한 위치로 이동한 탓에 CCTV 판독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듯했다. 최초 발견자인 근처 주민은 알리바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판명되었으며, 비슷한 시각에 수상한 사람을 보았다는 목격담도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상상했다. 김소윤은 죽어가며 무엇을 생각했을까. 신예나에게서 그날의 일에 대해 들었다. 30일 저녁부터 아는 남자들과 같이 주점에서 술을 마시다가 31일 새벽 두 시경 헤어진 것이 마지막이었다고 했다. 그때의 술집은 여기서부터 도보로 10분 가량. 마지막으로 목격되고 시체로 발견되었을 때까지 약 두 시간의 공백이 있다. 인체를 해체하는 데에는 얼마나 시간이 걸리지? 전해들은 정보로 상황을 추측해 보았다. 우선 지갑이 그대로 있었기에 금전을 위한 살인은 아니며, 성폭행의 흔적도 없다. 강도나 강간을 목적으로 살해한 것이 아닌 살해 그 자체가 목적이었거나 우발적 범행이었다는 말이다. 또한 범인은 의학이나 해부학적 지식이 없는 인물이다. 뼈나 근육의 구조를 파악하고 있었다면 그렇게 거친 형태가 아니라 보다 스무스하게 해체할 수 있었을 터다. 사용한 흉기는 그리 길지 않은 나이프. 아마 도검소지법이 적용되지 않는 도신 길이 최대 15cm 이하의 나이프다. 소지 허가증같은 걸 지닌 인간이 칼로 시체를 난자했다가는 순식간에 용의자로 지목되어 버린다. 예외인 식칼은 보통 판매되는 재질로서는 인간의 몸을 썰 정도로 튼튼하지 못하다. 회칼은 가능성이 있으나 절단면의 거친 정도에서부터 나이프로 추측하는 게 타당하다. 김소윤의 공식적인 사인은 질식사로, 시신이 토막난 건 그 다음의 일이다. 토막 살인을 저지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범인의 미학이거나, 혹은 손쉬운 처리=은폐를 위해서다. 발견 당시의 정황으로 볼 때 후자일 가망이 커, 그렇다면 김소윤 건은 엽기살인이라기 보단 사후의 은닉을 위한 사체 손괴에 가깝다.

하지만 어째서 목 절반과 왼팔이라는 애매한 부분만 절단되었는가. 우선 범인은 어떠한 이유로 김소윤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숨이 멎은 장소는 특정할 수 없으나, 일부러 시체를 포장하고 따로 피를 담아 뿌리지 않은 한 해체는 이 골목에서 이루어졌을 터다. 범인은 먼저 목을 자르려 했으나 생각외로 잘 잘리지 않자 순서를 바꾸었다. 소매가 긴 복장을 입고 있었기에 옷을 벗기고 팔을 절단했다. 가까스로 팔을 토막내고 난 뒤(팔과 목의 앞뒤가 바뀌었을 수도 있다), 토막살인이 생각외로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거나, 누군가에게 목격당했다거나 하는 이유로 시체를 두고 도망쳤다. 시체를 처리하지 않은 건 애초 은폐를 위해 절단을 시도했으나 여의치 않았던 것이므로 단념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시체의 처리가 목적이었다면 그렇게 부주의하게 피를 흩뿌리지는 않았을 텐데. 그렇다면 토막살인 자체가 우발적이었던 것이거나, 혹은 우발적 은폐를 가장한 다른 이유에서다. 다른 이유라면 무엇이 있지? 어떠한 물건 또는 사실을 토막살인이라는 형식을 통해 숨기기 위해서?

어지러운 뇌를 움직여 알고 있는 정보들을 조합했다. 사망 추정 시각. 신예나의 증언. 김소윤을 죽인 범인. 살해 동기. 흉기. 토막살인을 선택한 이유. 경찰이 가진 정보에 비하면 내 정보는 너무나도 불완전하다. 정황을 통해 추측할 수밖에 없다. 나는 눈을 감고 김소윤의 입장이 되어 신예나 녀석들과 헤어진 뒤로부터 리플레이를 시도한다. 역앞의 풍경이 뻗어나간다. 어두운 밤길이 눈앞에 보인다. 목에 강한 압박이 오고, 산소가 차단되어 주위의 소리가 한순간에 멀어진다. 눈앞이 무언가에 점점이 가리듯 흐려진다. 목에 칼날이 박힌다. 외피와 내피를 가르며 들어온 칼날은 혈관을 찢어발기고 내부를 휘젓는다. 살아 있었다면 여기서 칼날의 차가움과 피의 온기와 신경계에서 발하는 전기 자극으로 감각이 엉망진창이 되었겠지만 이미 죽었으므로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다. 칼이 뽑히자 목에서 피가 솟구친다. 문득 인간에게 칼날을 박아넣을 때의 물컹하고도 단단한 감각이 떠올라 왔다.

갑작스럽게 토기가 올라와 그 자리에서 구토했다. 뱃속에 있던 것이 게워져 바닥으로 떨어지고, 콧속에서 알콜 냄새가 풍겼다. 고개를 떨치고 계속해서 생각을 이어나갔다. 이건 김소윤을 완성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다. 김소윤은 죽을 때 어떤 생각을 했는가. 김소윤을 죽인 범인은 누구인가. 살해에 이르기까지의 동기는. 행동의 동기. 동기…….

거기에 이르러 나는 눈을 떴다.

 

아침, 교실에 들어가며 인사하자 반 애들은 인사를 받았지만, 어쩐지 어색한 구석이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지 물어 보자 별거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왔다가, 잠시 후 한 명이 "그게……" 하고 말을 꺼냈다.

반 아이 하나가 어젯밤 집으로 돌아가던 도중 역 근처에서 익숙한 얼굴들을 발견했는데, 그게 어른으로 보이는 남자들과 같이 있었고, 이상하게 친밀해 보였다는 이야기였다. 본인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보니 표현이 많이 순화된 듯했지만, 익숙한 얼굴이란 물론 나와 신예나 녀석들이었다.

사실이냐고 묻는 애들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아끼는 듯 더 이상 물어오는 일은 없었다. 그야 그렇다. 더러운 것을 눈앞에 둔 경멸이니 금기를 깨는 행위에 대한 동경이니 하는 것 이전에, 김소윤이 죽었을 때의 상황을 아이들은 대개 알고 있었다. 따라한다고는 해도 거기까지 할 필요는 없는 거 아냐, 하는. 말하자면 일종의 허용치를 넘어버린 것이며, 내가 '소윤이'가 아니라 김소윤을 카피하는 것뿐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인지한 것이다.

순간, 몸이 뒤로 확 끌리며 넘어질 때의 붕 뜨는 감각이 들었다. 발을 디디면서 고개를 돌리자 내 뒷덜미를 잡고 있는 서지연과 눈이 마주쳤다. 그대로 문 쪽으로 밀쳐져, 날아온 주먹에 얼굴을 맞고 복도로 쓰러졌다. 지나가던 애들이 깜짝 놀란 듯 소리를 지르며 멈춰섰다. 몸을 일으키려 하자 옆구리를 차여 숨을 토했다. 그리곤 두 번 세 번 다시 얼굴을 맞아, 얇은 피부 아래의 혈관이 터지고 입술이 이빨에 부딪혀 찢어졌다. 손발이 지나간 부분에서부터 둔중한 통증이 울리며 찌릿함이 퍼져나갔다.

김소윤이 마지막에 느꼈던 아픔은 이것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일까. 평범하게 질식했다면 고통은 크지 않았을 테다. 싸워도 이길 수 없으므로 일방적으로 얻어맞았다. 이내 주먹질이 그쳐, 앞에 선 서지연은 나를 내려다보았다. 뭔가 반응을 하기 위해 김소윤다운 대사가 뭘까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맞아본 적이 있을까. 알 수 없다.

"아파. 갑자기 왜 때린 거야?"

"어디까지 소윤이를 더럽힐 생각인데!"

서지연이 소리쳤다.

"다 들었어. 네가 어제 뭘 했는지. 그런 꼴로 돌아다니는 것도 일부러 신경 안 쓰려고 했는데, 대체 뭔 생각인 건데. 그딴 짓까지 해 가면서 소윤이의 자리를 뺏고 싶었던 거야?"

"그런 건 상관 없……" 하고 말하던 도중 서지연이 대체 왜 그러는 거냐고오 하면서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주위에 몰려든 애들도 뭔지 모를 사건에 웅성거리고, 복도 끝에서 뭔 일이야 하고 선생이 다가왔다.

 

수업이 끝나 아무도 남지 않은 교실에는 적막이 돌았다. 창틈으로 들어온 저녁노을이 커튼을 소리없이 물들이고, 창가는 초겨울의 차가운 공기에 감싸였다. 나와 서지연은 책상 몇 개를 사이에 두고 말없이 앉아 있었다. 방과 후 교실에 남아 있으라고 선생이 말했지만 회의라도 있는지 당분간 올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의자를 끄는 소리가 정적을 찢으며 교실에 울렸다. 몸을 일으키자 낡은 의자는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서지연이 이쪽을 보았다. 나는 서지연에게 똑바로 다가가, 서지연의 길고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손을 넣어 목덜미를 감싸고 이쪽으로 끌어당겼다. 코끝 사이에 병아리 한 마리가 들어갈 만 한 거리를 두고, 서지연의 흐트러진 숨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듯 "뭐, 뭐야." 하고 나를 밀쳐내려는 서지연에게, 나는 목에 힘을 빼고 입을 열었다. 원래 목소리로 말하는 건 오랜만이라 순간 어색한 느낌이었다.

"네가 김소윤을 죽였지."

서지연은 움직임을 멈추고 나를 보았다. 크게 떠진 동공에 내 얼굴이 비쳤다.

 

"…나는 처음부터 네가 마음에 안 들었어. 못생기고 성격도 나쁘고. 나나 소윤이가 너랑 비슷한 취급을 받는 게, 정말 싫었어……."

 

아침, 조례 시간에 담임선생이 김소윤의 죽음에 대해 전했다. 동요가 일며 반 전체가 술령였다. 문득 보자 신예나는 턱을 괸 채로 무표정하게 앞쪽을 보고 있었다.

김소윤의 죽음에 대한 소문은 머지않아 전교에 돌게 되었다. 토막난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주말이 낀 사건이었기에 이미 알고 있던 녀석도 얼마간 있던 모양이었다. 전교생이 경찰로부터 취조를 받고, 특히 가까이 지냈던 신예나 녀석들이나 나나 서지연 등은 보다 많은 질문을 받았다. 이런 것까지 물어볼 필요가 있는 건가 싶은 것까지 일일히 대답했다. 내가 의심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형사는 시종 사무적인 태도였고, 별다른 연락도 오지 않았다.

김소윤의 장례식은 며칠 뒤 근방의 병원에서 치러졌다. 안에 들어가 주위를 살피자 동급생이나 알고 있는 얼굴이 몇몇 보였다. 이름을 쓰고 영정 앞으로 다가갔다. 영정사진 속의 김소윤은 머리가 노랗지도 짧지도 않았고 얼굴에 화장기도 없는, 1학기 무렵의 모습이었다. 이 녀석 그러고 보니 이랬었지. 내가 지금 사진 속의 김소윤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주변에 이상하게 비춰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분향을 마치고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는 김소윤의 부모에게 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김소윤의 어머니는 나를 복잡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몸을 돌려 이만 나가려 했을 때, 큰 소리를 내며 서지연이 뛰어들어왔다. 순간 그쪽으로 시선이 집중되었다. 서지연은 달려온 듯 숨을 몰아쉬며 분향소 안을 둘러보다가, 어느 한 곳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소윤이가 나랑 비슷한 모습이었다는 게, 뭔가 나 자신을 긍정받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 그야 소윤이는 너랑 달리 착하고 예쁘고, 정말 좋은 애였으니까. 그래서 그때, 방학이 지나고 그런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나를 부정당한 것 같은 기분에, 어쩐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답답해졌어……."

 

조문하는 동안 서지연은 내내 얼굴에 아무런 표정도 띄우지 않았다. 울음을 터트리지도, 특별히 말을 꺼내지도 않고 머지않아 자리를 떴다. 다음날 김소윤의 시체는 화장장으로 옮겨져, 남은 유골은 근방의 납골묘에 묻혔다.

얼마 후 나는 김소윤의 묘를 찾았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앞으로 가자, 묘비 앞에는 친구들이 두고 간 듯한 꽃이나 편지, 그림 등이 놓여 있었다. 하나를 집어 들어 보았다. 김소윤을 그린 듯한 그림과 함께 좋은 곳으로 가라는 둥의 글이 적혀 있었다.

이런 거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그야 자신을 위해서다. 어차피 죽은 인간에게 뭘 그려 주든, 쓰든, 말하든 전해지지 않는다. 행위를 통해 슬픔이나 감정을 드러내기 위한 자기만족일 뿐이다.

그 사이에서 나는 서지연의 그림을 발견했다. 특징적인 그림체라 곧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같은 머리 모양의, 똑같이 생긴 여자아이 두 명이 그려져 있었다. 얼굴이 같은 건 서지연의 그림 실력이 모자라서겠지만, 굳이 옛날의 모습을 그린 건 어떤 의도에서지?

하고 자문할 것까지도 없다. 서지연의 관심은 어디까지나 옛날의 김소윤, 자신과 닮은 모습의 김소윤 뿐인 것이다. 애초 서지연이 바랐던 건 김소윤이라는 인간 자체가 아니다. 완벽한 여자아이가 덜떨어지는 자신과 가까이 지내 준다는 것에서 오는 자기만족, 그것도 비슷한 용모를 하고 있다는 데에서 너는 틀리지 않았어, 하고 긍정받고 인정받았다는 듯한 착각을 바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서지연은 이런 그림을 그린 거다. 나는 교실에서 반 아이들이 보였던 태도를 떠올렸다. 굳이 김소윤이 아니어도 상관 없는 거다. 김소윤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의 요소들만 가지고 있다면, 서지연과 비슷한 스타일이면서도 더 뛰어나다면, 적당한 친절을 발휘한다면, 자신을 위해 돈을 써 준다면 누구라도 상관 없다. 자신과 전혀 다른 김소윤은 서지연에게 있어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그때, 분향소에 서지연이 들어와 김소윤의 영정사진을 보았을 때, 나는 서지연의 눈에 한순간 스쳐지난 감정을 목격했다. 장례식 때 서지연이 울지 않은 건 수위를 넘은 슬픔 때문이 아니다. 길고 검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김소윤의 사진을 보며, 녀석은 아무것도 나타나 있지 않은 무표정 뒤에서, 더없는 기쁨과 황홀을 필사적으로 숨기고 있던 것이다. 가장 친한 친구를 잃은 비운의 자신이라는 컨셉. 스스로가 바라는 대로의 '김소윤'을, 작은 액자 속에 가두어 영원히 손에 넣은 것에 대한.

 

"…그때 이후로 나는 마음이 복잡해졌어. 그 전부터도 어렴풋이 느껴졌지만, 소윤이가 나를 거북해하는 것 같아서, 나는 초조해져서 소윤이에게 더 자주 말을 걸곤 했어. 직접 마주보기 힘들어서 주로 전화로.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소윤이의 목소리나 문장은 전과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럴수록 더 멀어질 뿐이라는 걸 그때는 생각할 수 없었어.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생각해. 소윤이의 행동이나 말 하나하나에 필요 이상으로 신경 쓰게 되고. 그래서 그날, 학교를 마치고 소윤이와 이야기하기 위해 둘이 남았을 때, 그때……."

 

10월 30일. 김소윤이 죽었던 날─ 정확히 말하면 그 전날의 일을, 서지연은 내게 이야기했다. 수업을 마치고 서지연은 김소윤을 불러냈다. 서지연은 초콜릿을 건네며 계속 사과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어서 하지 못했다고 김소윤에게 전했다. 귀찮게 굴어서 미안했다는 말과 함께, 근래에는 갑자기 바뀐 김소윤의 모습에 적응하지 못하였으나, 앞으로는 다시 가까이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행동이 되려 기폭제가 된 듯, 김소윤은 미소를 지으며 응 그래, 하고 대답하는 대신 서지연이 여태까지 해 온 행동을 규탄했다. 그동안 어떤 마음고생을 했는지 털어놓은 뒤 미안하지만 이제 그만 둬 줬으면 좋겠어, 하고 말을 마친 김소윤은 그대로 등을 돌려 떠나갔다. 나는 신예나에게 들은 말을 떠올렸다. 이런 자리가 있으니 김소윤에게 오지 않겠냐고 제안하자, 처음에는 거절당했으나 나중에 왠지 화난 듯한 목소리의 김소윤에게서 가겠다고 연락이 와, 사람이 부족했던 참에 마침 잘 됐다며 불러냈다고 했다.

 

"내가 소윤이를 죽였냐고 했지."

 

나는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으며 서지연의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말하면 된다. 그래서 화가 난 나는 김소윤이 신예나 녀석들과 헤어지는 걸 기다려서 따라가 죽였던 거야, 내가 원하는 김소윤을 되찾기 위해서, 하고 말하면 된다. 그러면 이 촌극은 진부하지만 훌륭한 결말로 끝난다. 내가 기대하는 결말로 끝날 수 있다. 이어 서지연은 눈가를 붉히며, 작게 미소를 짓고, 말했다.

 

"그럴 리가 없잖아. 그래도 나는,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이, 소윤이를 정말로 좋아했는걸."

 

 

10월 31일 역 근방에서 발생한 여고생 살인사건의 범인이 경찰에 자수했다. 범인은 근처에 살고 있는 23세의 남성으로, 대학을 중퇴하고 무직으로 지내고 있던 중 친구의 연락을 받아 고등학생 여학생 몇 명과 술자리에 합석했다. 자리가 파하고 여학생중 하나와 가는 길이 같아 함께 돌아가던 도중,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더 마시고 가지 않겠냐고 제안했으나 거절, 강제로 데려가려다 말을 듣지 않아 얼떨결에 목을 졸랐다는 것이었다. 어찌할 줄 몰라 당황하다가 기절했던 여학생이 깨어나자 처벌을 두려워하여 다시 목을 졸라 죽여버리고, 알콜과 패닉으로 제정신이 아니었기에 시체를 숨겨야 한다며 토막내자는 결론에 도달, 취미로 소지하고 있던 나이프로 목을 자르다가 제대로 되지 않아 일단 팔을 잘랐는데, 그러던 도중 취기가 어느정도 가시고 제정신이 들자 문득 이 상황이 두려워져서 도망쳐 버렸다는 모양이었다. 그날 같이 계셨던 분이시죠, 하고 경찰에게 조사를 받았을 때는 이제 다 끝장이라고 생각했으나, 우연히도 인적이 드문 곳이었고, CCTV에도 제대로 찍히지 않아 특정되지 않았기에 곧바로 잡히지도 않아서 '내 주변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다니, 충격을 추스르기 위해 고향에서 쉬고 오겠다'는 핑계를 대고 전국을 돌며 도망치다 점점 좁혀오는 수사망과 양심의 가책으로 자수를 결정하게 되었다는 듯했다.

시시하기 짝이 없다.

나는 교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 근처에 있던 녀석들은 이쪽을 흘끗 보더니 눈을 크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는 '내 자리'로 가 가방을 두고 의자에 앉았다. 곳곳에서 작게 수근거리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한 치수가 큰 교복 소매가 흘러내려 손목을 덮었다.

"야, 김소윤 2호. 뭐냐 그 꼴은?"

신예나가 장민아와 함께 내게 다가왔다. 나를 내려다보는 둘과 똑바로 눈을 마주쳤다. 앞머리에 시야가 살짝 가려졌다. 역시 갑자기 길어지는 건 이상할까봐 비슷한 길이로 다시 마련한 까만 머리카락을 쓸며, 나는 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됐어."

내 대답에 장민아는 뭐?, 하며 뭐라 말하려 했지만, 신예나가 막아 입을 다물었다. 신예나는 아무 말 없이 내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됐어, 하고 돌아가 버려, 장민아도 나와 신예나를 번갈아 보다가 에이 씨, 뭐야 짜증나게, 하고 머리를 헝클며 자리를 떴다. 교실에 들어온 선생들이 놀라는 걸 다시 한 번 구경했다. 어떻게 된 거냐고 묻는 반 애들에게 알 거 없다며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몇 번 그렇게 하자 더 이상 물어오지 않았다.

나는 집에 돌아가 컴퓨터를 켰다. 파일을 열어 새로 정리한 플롯을 읽어 보았다. 예전에 썼던 소설을 작중작으로 넣어 시작하고, 서지연에게 지적받아 김소윤을 더 알고자 변장해 살인사건의 진상을 추리한다는, 이번 일을 옮긴 이야기다. 결말은 서지연이 범인인 걸로 미리 생각해 두었었지만, 몇 줄을 읽다가 흥이 식어 딜리트 키를 눌러 완전히 지워버렸다. 하나도 재미없다. 이딴 걸 써 봤자 읽고 싶어 할 인간이 있을 리 없다. 전에 썼던 것 또한 별로 다시 쓸 생각이 들지 않았다.

대저 현실의 이야기란 이런 식이다. 소설에서처럼 치밀하고 극적인 이야기는 주변에 없다. 그야 사람이 70억 명이나 있으면 어딘가엔 드라마틱한 일이 있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역시 예쁘고 똑똑한 여고생 탐정이 클래스메이트끼리의 토막살인 사건을 해결한다는 이야기는, 내가 살고 있는 현실에는 준비되어 있지 않다. 현실의 이야기가 재미있는 건 그게 '나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지, 시시껄렁한 얘기를 그대로 옮겨봤자 하나도 재미없다.

역시 소설은 소설로 충분하다. 현실성이니 뭐니 하는 건 일기장에게나 맡기고, 소설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얘기를 쓰는 게 훨씬 나은 거다.

나는 김소윤의 권유로 처음 썼던 소설을 열어 보았다. 소윤이 덕에 새로운 재능을 찾았네, 라던 서지연의 말이 떠올랐다. 별로 재능이랄 건 없지만 나름대로 고맙게 생각한다. 소설의 텍스트를 읽어나가며, 그럼 이번에는 정말로 김소윤이 좋아할만 한 얘기를 써 볼까 생각했다. 그동안 김소윤 행세를 해 온 경력으로 무슨 얘기를 좋아할지 정도는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래서 어떤 얘기를 써야 재미있을지 고민하다가, 근데 이렇게 보니 여지껏 한 거, 결국 때려 치자는 결론을 내기 위해서였던 건가?

 

 

 

문을 열고 들어와 벽의 스위치를 눌렀다. 형광등이 켜지며 방 안이 밝아졌다. 가방과 함께 가발을 벗어던졌다. 머리를 헝클 때마다 짧은 머리칼 사이에 찬 땀이 공중에 흩뿌려지며, 일부가 목덜미에 닿아 체온을 빼앗았다.

옷을 벗고 거울 앞에 서 내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알몸이 된 몸이 비쳤다. 김소윤과 서지연에 대해 떠올리고 헛웃음을 지었다. 지금의 모습으로 학기 초로 되돌아간다면, 우리를 닮았다고 하는 녀석이 있었을까. 없었을 터다. 서로 가까워질 일도, 서지연이 김소윤에게 다가갈 일도 역시 없었겠지. 같은 반만 되지 않았어도, 첫날에 같은 조로 묶이지만 않았어도 없었을 일이다.

모든 게 바보 같은 우연이다.

그 우연으로 김소윤은 죽었다.

죽는 거야 운석에 맞거나 차에 치어서라도 죽을 인간은 죽겠지만, 그 누구도 이런 식의 결말을 상상했던 건 아니었으리라.

담임 선생이 김소윤의 죽음에 대해 전했을 때, 서지연은 책상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를 내며 울었다. 수업이 시작된 뒤로도 울음은 멈추지 않아, 남은 한 세트인 나는 선생의 지시로 서지연을 양호실로 데려다 주었다. 말없이 함께 복도를 걸으며 나는 붉게 상기된 서지연의 얼굴을 보았다.

뭐가 그렇게 슬픈 거지? 김소윤이랑은 더 이상 친하게 지내지도 않지 않았나? 둘도 없는 친구를 잃은 비운의 주인공 연기? 자신의 손으로 죽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이제 아무리 김소윤과 친한 척 해도 뭐라 할 사람은 없으니, 이때를 틈탄 영역 표시?

아, 서지연이 김소윤을 죽인 거라면 재미있을 텐데.

아직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는 서지연의 옆에서, 그렇게 생각했다.

회상에서 돌아와, 나는 옷을 입고 의자에 앉아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김소윤에 대한 소설이다. 장례가 끝나고, 서지연이 "…소설이라도 써서 가 봐. 소윤이, 네가 쓴 얘기들 좋아했으니까." 하고 말해, 처음에는 무시했지만 써 보기로 결정했다. 자신이 김소윤을 죽였다는 이야기를 써서 보여준다면 서지연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혹시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백해 주지는 않을까. 그러면 좋을 텐데. 완성하면 서지연에게 가져가 보자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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