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책수다]-탄실/김별아

[평택고등학교 교사 독서토론 모임:책수다(책으로 수업 해보다!) '탄실' 독서토론 내용]

@토론 일시: 2017년 10월 11일 수요일 저녁 6시

@토론 장소: 평택고등학교 도서실

@참여 교사: 최은주, 조주연, 곽현주, 김유헌, 김영민, 유광종, 윤기연, 우미형, 이윤주, 정희연, 위진경, 심규리, 박정아, 전시강, 권오라(15명)

 

 

  • 책 수나 내용 : 대체로 김영순이라는 작가를 몰랐다는 것에 다들 놀랐고. 안타까워했음. 그 시대의 여성으로서의 사회적 삶을 살아감에 어려움에 대해 나눔. 또한 현재의 우리들의 삶(맛벌이)의 고충을 함께 나눔.

 

p.68   ‘명예심’이라는 강박은 그녀를 공부와 성적에 집착하게 했다.

출생의 불명예(?) 때문에 탄실에게 명예심은 족쇄가 되었다.

-명예심: 명예를 얻으려는 마음. 명예를 중요시하는 마음.

-명예(名譽): 세상에서 훌륭하다고 인정되는 이름이나 자랑. 또는 그런 존엄이나 품위.

다른 사람의 시선과 판단으로 평가되는 명예. 그것을 갖고 싶어 하는 마음, 명예심에 집착한 탄실.

그래서 그녀는 평생 불행했던 게 아닐까.

명예심이 아니라 자존심에 욕심을 부렸으면 어땠을까. 하지만 그 시대에 여자의 자존심이라는 개념이 있었을지도 의문이다. 그러면 자존감은? 왜 탄실은 자존감(자아존중감)이 낮을 수밖에 없었을까.

부자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남부러울 것 없는 유년시절을 보냈지만 안정되지 못한 어머니의 사랑으로 어린 탄실의 마음은 항상 헛헛했다. 그래서 자존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약한 자존감은 시련이 올 때마다 탄실을 무너지게 만들었고 무너진 마음을 회복하고자 글을 쓰고 명예심을 쫓지만 그럴수록 뜯기고 아픔만 커졌다.

엄마라서 그런지 탄실의 어머니가 조금만 더 안정적으로 탄실을 사랑해 주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에 탄실의 아들 시몬의 죽음도 마찬가지다.

어머니의 사랑이 자식에게 삶의 힘이 되는 게 아닐까.

죽고 싶었다. 죽을 것 같았다. 죽도록 하고픈 말이 있었다. 그래서 썼다. 오해로 인해 쓰라리고 지루하고 억울한 삶을 시로 소설로 쓰고 또 썼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분함과 억울함을 가느다란 펜으로 얄따란 원고지에 펼쳐냈다. 시를 쓰고 나면 잠시 잠들 수 있었다. 소설을 쓰고 나면 조금 먹을 수 있었다. 문학이 없었다면 그대로 죽었을지도 모른다. 아주 작별해 다시는 학대의 세상에 오지 않겠다고, 죽어도 유언조차 남기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녀의 처방전은 문학뿐이었다. 무기는 문학뿐이었다. 벗은 문학뿐이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랬다.

 

그녀를 살게 해 준 문학. ‘문학’이란 무엇일까.

-문학: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 또는 그런 작품.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소설가 김명순은 문학으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었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게 글쓰기였기에 글로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고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가 살았던 그 시대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신문물이 들어오는 개방의 시대에 남성들은 변화하기 싫어했고 자신들이 이미 갖고 있는 것을 놓아주지 않으려 했다. 여자가 자신과 동등해지고 한 편으로는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김명순의 어린 시절이 조금만 더 안정적이고 따뜻했다면, 한 명이라도 주변에 좋은 사람이 함께 해 주었다면. 여러 가지 아쉬움이 남지만 그 시대를 산 여성 작가의 삶이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땐 굴뚝에서도 연기를 나게 만드는 사회였으니.

 

작가 후기

그리하여 나의 작업은 김명순에게 내리찍힌 불도장을 지우고 오롯한 작가이자 인간으로서의 그녀를 회복하려는 의도로부터 시작되었다….부족한 후배의 졸고로나마 탄실 김명순의 불우한 삶과 쓸쓸한 죽음을 기억하고 위로할 수 있다면 다행이겠다. 

우선 같은 여성 작가로서 불행했던 선배 작가의 억울함을 해소하고자 애쓴 작가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책을 읽는 내내 가졌던 느낌은 ‘답답함’이었던 것 같다.

김명순이라는 개인에 대한 답답함, 그리고 시대의 답답함.

비극적인 시대에 비극적인 나라에서 기생의 딸로 태어난 그녀의 운명은 더없이 가혹하다. 태어난 순간부터 외로울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운명. 그리고 그녀에게 가해진 인간의 폭력과 시대의 폭력. 익명의 장막 뒤에 숨어 사생활을 캐며 상처받은 한 여인의 삶을 난도질 해대는 작가라는 소위 그 시대 지식인들의 비열함이 분하다. 인간의 양면성을 여지없이 보여준 은파리가 방정환이었다니! 하기야 언제나 은파리들은 있어 왔고 지금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그 은파리일지도 모르고… 자신의 가혹한 운명과 맞서 싸우기 위해 김명순은 노력했지만 결국은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다. 그런 그녀의 삶이 안타깝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싸워 이겨내야 할 대상은 운명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녀는 끝없이 노력했으나 (노력한다고 생각했으나) 자기 자신과의 투쟁에서 결국 실패한 것이 아닐까. 그녀에게는 문학이라는 끈이 있었는데… 그 끈을 잡고 조금만 더 버텼더라면 조금만 덜 무모했더라면…하고 생각하다보니 용기와 무모함의 차이가 뭘까 하는 평소의 고민을 또다시 하게 된다. 지금 이 시대에도 수많은 김명순이 우리 주변에 있을 것이다.

 

p.19 –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 관심은 폭력이었다. 그로부터 빚어진 오해, 그릇된 해석, 잘못된 이해가 그녀의 짧은 생애 전부를 집어 삼켰다.

인간의 행동은 내적인 원인과 외적인 원인, 개인적 원인과 사회구조적 원인 등 다양한 각도에서 볼 수 있다.

김명순이 살던 시대는 신여성, 자유연애이란 표현은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활발한 것을 얘기한 것 같지만 사회구조적으로 영민한 여성들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족쇄가 된 것 같다.

개인적으로 기생인 엄마, 첩인 엄마가 김명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부정적인 영향을 준 것 같다.(p.21 나쁜 피)

 

p.94 ‘명예심’이라는 강박적인 감정 때문이기도 했지만~ 동무들의 시새움을 무릅쓰고 공부에 매달리는 동안 그녀는 점차 공부의 재미에 눈을 떴다.

앎에 대한 갈증이야말로 인간으로서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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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열다섯 분이 문학 수다에 참여해주셨네요~~! 깊이있는 문학 수다내용도 감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