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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북메리카노와 기준영 소설집 '이상한 정열'

  • 작성일 2017-11-21
  • 조회수 521

ㅇ 수다팀 이름: 오늘의 북메리카노

ㅇ 수다 진행 날짜 / 시간 / 장소: 2017. 11. 17 / 오후 8시 / 광주 동네책방 '숨'

ㅇ 수다 참가 인원 및 명단(전체): 총 4명, 이재은, 최민주, 최이든, 이자영

ㅇ 수다 원작 작품: 기준영 소설집 '이상한 정열'

 

오늘의 북메리카노는 올해 초여름에 만든 독서모임입니다. 삼례문화예술촌의 책공방에서 출판편집 수업을 들었던 네 명이 모여 만들게 되었습니다. 직장인 세 분과 학생 한 명이 한 달에 두 번 모여 각자 가져온 책을 한 시간 정도 읽고 얘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 모임은 완주군청의 청년동아리 지원사업에 참가하여 지원금을 받고  활동했습니다. 출판편집 수업의 연계로 전주와 서울에 있는 독립서점을 투어하고 이번에는 광주를 다녀왔습니다.

광주 동네책방 숨은 게스트하우스 형식의 책방입니다. 저희는 다석의 서재라는 도서관 형식으로 된 방에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번 연휴가 길어서 예정된 두 번의 독서 토론을 하루에 몰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책은 카뮈의 이방인과 재밌수다에서 지원받은 기준영의 이상한 정열을 읽었습니다. 평소에 다른 책을 읽었지만 그날은 같은 책을 읽고 수다형식으로 토론을 하니 색다르고 좋았습니다. 귀가 후 모바일 어플인 밴드에 남긴 각자의 소감입니다. 일곱 편의 단편 중 하나를 정해 아래의 글을 댓글로 남겼습니다.

 

베티, 이재은

소설을 쓰거나 읽을 때면 감정소모가 심해서 말문을 닫아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낮잠을 자고 나면 괜찮지만 가끔은 한 달이 가도록 낫지 않을 때도 있는데 내 삶과 주인공의 삶의 싱크로율이 높을수록 그렇다. 이러한 단편들은 짧아서 읽기 쉬우나 감정을 이입하는 순간 읽기가 힘들어진다. 베티 블루라는 영화를 보고 일주일간 벗어나기 힘들었는데 책의 목차를 펼쳐 베티라는 제목을 보고는 갑자기 여름의 무더위가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수영장에서 만났다는 부영에게 호감이 갔다. 그렇구나, 라고 하는 대목에서는 내게 이런 어투로 말하는 사람이 있었던가 생각해보기도 했다. 이런 말을 듣거나 할 때는 보통 `그래서 나한테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뭐지. 나에게 말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어`라는 수식어가 뒤에 붙는 경우가 많은데 반면에 숙연하고 담담함을 주는 부영의 어투가 새롭게 와닿기도 했다. 실은 은경을 속이기 위해 말을 아꼈던 것 같지만 어쨋거나 은경에게 부영은 좋은 친구였다고 생각한다.

 "약속 시간보다 10분이나 15분쯤 일찍 K대학의 캠퍼스에 도착해 자리 잡고서 음악을 듣거나 햇빛과 바람, 비, 안개를 즐기며 주변 풍경을 바라본다. 둘 중 누구라도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은 하고, 하기 싫은 사람은 하지 않아도 된다. ... 또 두 사람 모두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이상한 정열, 이자영
  평일 밤에 공중파에서 틀어주는 단편드라마 한편을 본 것 같다. 한 여자와 한 남자의 만남과 이별, 그리고 우연한 재회, 씁쓸한 결말까지. 나는 통속적인 서사에 크게 감정이입하지 않는 편이다. 약간 심드렁하게 첫 장을 펼쳤는데, 마지막 장까지 이 작품은 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켰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결코 본적이 없는 이야기.
  삶이 어느 순간 이상하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내 인생이 뿌옇게 보이는 것이다. 무헌은 갑자기 개를 키우고 오래전 헤어진 연인을 만나고 운동을 시작한다. 나는 무헌의 행동이 하나도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상해 보이는 것은 말희였다. 무헌에게 이상한 정열을 가져온 대상은 말희일텐데 말이다. 무헌의 일상은 그녀를 만나 요동치는데 말희에게는 단순한 해프닝에 불과했던 것일까. 아마도 말희는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무헌의 일상은 그녀를 만나기 전과 완전히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인상깊은 구절 : 말희는 명랑했다. 결혼하자마자 살림에만 매달려서 이제는 할 줄 아는 게 살림뿐이라고, 사는 게 참 웃기고도 단순하다며 미소 지었다. 그는 그 말, 참 웃기고 단순하다는게 전혀 새로운 말이 아닌데도 듣기에 새롭고 좋았다.
조이, 최민주
 소설집 『이상한 정열』에서 개인적으로 인상적이게 읽은 단편은 「조이」였다. 소설의 내용은 단순하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오랜 시간 헤어진 자매 윤재와 문정이 크리스마스를 함께 맞이한다. 만남 전 동생 윤재는 조카의 선물을 신중히 고르듯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고른다. 시누이보다 언니에 대해 모르는 게 많을 만큼 두 자매의 사이는 멀어져 있다. 하지만 단둘이 서로가 없을 때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이야기하며 마음을 나누기 시작한다. 그 밤 윤재는 둘만의 소중한 추억 하나를 떠올린다.
 내가 동생이 둘 있는 언니여서 그런지 이야기는 동생의 관점에서 전개되었지만 책을 덮고 나자 언니의 마음으로 소설을 다시 읽게 되었다. 스무 살에 열세 살 동생을 두고 집을 나온 언니. 어린 동생이 눈에 밟혀도 부모가 지긋지긋해서 연락을 끊고 친정 없이 혼자 결혼하고 애를 낳고 죽을병을 앓은 언니. 아마도 동생을 버렸다는 죄책감 때문에 고통 속에서도 연락하고 싶어도 동생에게 연락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게 다 지나간 후에야 비로소 동생과 어색하게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언니 문정의 모습이 내 눈에 선연했다.
 소설의 제목은 「조이」다. 기쁨이라는 뜻의 ‘joy’. 가장 아팠던 시절을 자매는 함께 하지 못했다. 그들의 생이 앞으로 평생 행복만 가득차진 않을 것이다. 다만 고통을 홀로 견뎠던 자매들이 이제는 아픈 순간에 대해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작은 ‘기쁨’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생각해볼 수 있게 한 소설이었다.
 무언가 부서져버릴까봐 조마조마해하며 때로 어두운 낮과 환한 밤을 견뎌온 듯도 했는데, 어젯밤에는 비로소 무언가를 조용히 묻어버린 듯했다. 붙잡을 수 없는 것들은 마음에서도 떠나보낼 것이다. (중략) 새벽의 눈길 위에 조용히 제 발자국을 남겨보았다. 내일은 전혀 다른 날이 될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정답고도 차갑고, 냉엄하면서도 따스한 감각이었다.
 - 기준영, 『이상한 정열』 , 「조이」, 222p-

 

(1. 책  2.게스트하우스 조식  3.동네책방 주인과 함께  4. 자기 전에  5. 펭귄마을 근처 독립 서점)

 

 

재밌수다 후기

: 학교 동아리가 아닌 독서 모임은 처음인데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이런 모임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봐주시고 지원해주셨어요. 책이라는 공통 취미로 좋은 대화가 가능한 게 너무 신기합니다. 이상한 정열이라는 책을 선정받고 꽤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읽게 되었습니다. 저는 졸업을 앞둔 문창과 대학생입니다. 이 책을 후보에 올린 이유는 제 친구의 말 때문이었습니다. 기준영의 소설은 주제가 확연히 드러나는 장점이 있어서 글 속에 든 소설적인 기술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모임 분들도 즐겁게 읽어주셔서 좋았습니다. 다음에도 책을 지원해주는 이벤트가 생기면 꼭 다시 해보고 싶습니다. 요즘은 다들 같은 책을 읽고 수다 형식으로 토론하는 게 쉽지가 않아서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