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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새끼 이야기

  • 작성일 2007-05-31

 

개, 새끼 이야기

  

 

김 연 




“흰둥이가 이상해!”

 



애가 기겁을 하며 방으로 뛰어 들어왔을 때 그렇지 않아도 나는 오엠씨의 하우 비자아(How bizarre)를 따라 부르며 그깟 개새끼 때문이 아니더라도 세상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건지에 찬성의 붓두껍을 눌러대고 있던 참이었다. 아이는 어른의 스승이란 말이 가뭄에 콩 나듯, 봉사 문고리 잡듯 가끔은 운 좋게 들어맞을 때도 있긴 하지만 어른이란 모름지기 철없는 아이를 가르쳐 올바른 곳으로 나아가게끔 해야 하는 막중한 책무가 있는 것이다. 아이를 가르칠 자격이 있다고 할 만한 어른이 세상에 과연 몇이나 있냐고 누군가 게거품을 문다 하더라도 개새끼 하나 때문에 호흡이 가빠지고 닭똥 같은 눈물을 떨구고 있는 새끼를 지 에미마저 방치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 일을 대신해 주겠는가.

“도운 캐어!” 간략 명료한 지도방침을 내리는 데도 애는 “영어 하지 마!”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며 신체의 중요 부위가 훤히 드러날 정도로 어미의 옷을 있는 힘껏 잡아끈다. 버팅겨 보지만 모유 성분의 탁월함을 입증하듯 젖 먹던 힘까지 내어 잡아끄는데 도리가 없다. 신발을 질질 끌며 마당으로 나서자 녀석은 젖 탐을 벌이는 새끼들을 혀로 핥으며 젖을 물리고 있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내일도 뾰족하게 달라질 거 없는 개새끼의 오늘의 일상에 것 봐, 하며 눈으로 신호를 보낸 뒤 날렵하게 몸을 돌리자 그보다 민첩한 딸애의 액션이 내 팔 위에 펼쳐진다. 아, 하는 내 신음소리는 앗! 하는 애의 현란한 기합소리에 가뭇없이 사라지고 만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신체를 흠 없이 온전히 지켜내려는 의지의 표명으로 딸이 시키는 대로 토끼뜀 자세로 쭈그려 앉아 눈높이를 녀석에게 맞추자 불행 중 다행으로 녀석은 이상하다. 100m를 25초에 주파하고 난 뒤의 나처럼 거친 숨을 토해내며, 질질 흘리던 평소의 침 흘리던 습관이 상향조정돼 비 오듯 흘리며 막대기처럼 쭉 뻗은 다리는 부들부들 떨고 있다. 녀석의 부위 중 딱 하나 맘에 들었던 검고 맑던 눈망울이 흰자위만 희번덕거리고 있는 데까지 목도하고는, 미쳤잖아,를 내뱉으며 뒷걸음질치다 개 밥그릇을 걷어찼고 발목을 휘감아 오르는 미역줄기를 주시하다 그만 찔레줄기를 보질 못하고 푸른 가시에 볼 한 쪽이 희생되고 말았다. 내가 쌓은 대민 방어용 바리케이드가 날 공격하고 나선 것이다.

내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어.

나는 개 같은 것들을 기를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길들임’ 같은 단어가 아직도 내 사전 어딘가에서 암약하고 있다면 그건 기필코 발본색원할 대상이었다. 탄력 좋은 고무줄처럼 정부 시책에 따라 변동을 거듭하는 쇠고기, 돼지고기 값에 비해 상시 안정된 가격이 보장돼 있어 한 집에 평균 다섯 마리 정도 개를 기르고 있는 시골 취락의 보편적 정서를 감안, 몇 걸음 양보해서 개를 기른다 하더라도 그 논리적 귀결로 요크셔테리아와 스피츠의 잡종 같은 한줌도 안 되는 개는 기르고 싶지도 않았다. 그 용도가 아니라면 도베르만이나 골든 리트리버 같은 경비견들이 빈 집에 쓸모 있을 법했지만 비싼 개 값과 사육비에 필적할 만한 가재도구가 있지도 않은 집이다.

문제는 애였다. 잠들기 전 막무가내로 징징거리며 울기도 해 보았다 강아지만 키우면 정말 착한 아이가 되겠다는 애교도 부렸다 다른 친구들은 다 개를 기르고 있어 열 손가락도 안 되는 아이들 속에서 따돌림을 당한다는 그럴듯한 협박도 들이댔다 하며 온갖 술수를 부렸지만 나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같이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딸도 문제였지만 동네 개들한테도 문제가 있었다. 작금의 인간 세상은 니 것 내 것이 확실한 자본주의 사회란 걸 ‘개무시’하며  녀석들은 우리 집 마당에 수시로 들어왔다 나갔고 그 중 한 녀석은 쌓아놓은 음식물 쓰레기밭으로 들어가 무 껍질이며 생선가시들을 고개를 처박고 유난히 게걸스레 먹어댔다.

그 먹성 좋은 녀석이 호시탐탐 개들만 주시하고 있는 애의 레이더망에 포착이 되었고 내 눈치를 살피며 애는 녀석한테 햄을 주기도 하고 입속의 사탕을 빼주기도 하였다. 반찬 투정 한 번 하는 법 없이 녀석은 뭐든 잘 먹었고 식탐의 끝은 딸애의 손등이었다. 딸은 녀석이 마당에 널브러져 늘어지게 해바라기를 하도록 길들여 놓고선, “쟤는 이제 먹둥이야.”라며 이름까지 불러주었다.    

“저 개 우리 달라고 하자.” 심정적인 확증에 물증으로까지 주인이란 인증서를 받아내기 위해 딸이 노심초사하고 있을 무렵 먹둥이가 며칠 보이질 않았다. “오늘 먹둥이 봤어?” 학교 갔다 돌아오는 딸의 인사였다. “아니,”라고 대꾸를 하다 한 번은 “먹었나부지……” 라고 중얼거리고 말았다. “뭐라구?” 딸이 재차 묻자, “못 봤다구.”라고 답변을 급히 수정했지만 무슨 낌새라도 챘는지 먹둥이 주인네에 가 보자고 내 손을 잡아끌었다. “그놈 하도 먹어 대서 아랫집에……” 개주인의 답변이 끝나기도 전에 통제되지 않은 애 입에선 “왜요?”라는 극히 부적절한 질문이 터져 나와 딸의 손을 급히 틀어쥐고 현장을 물러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나의 이 행동을 동네에서 유일하게 전통적인 방법으로 한우 두 마리를 키우고 있어 소 아저씨라고 부르는, 먹둥이가 갔다는 문제의 그 집으로 가는 것으로 파악했던 딸은 갈림길에서 우리 집으로 방향을 잡자 예의, “왜?”라는 질문을 던져댔다. “거기 가도 소용없어!” 툭 쏘아주자 혼자라도 가서 확인을 해보겠다고 눈동자가 잉걸불처럼 타오르는 딸을 주저앉히려면 개와 어른들에 관한 진실을 이야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너도 고기 좋아하잖아. 소 아저씨도 먹둥이를 드신 거야. 어쩐지 아저씨 얼굴에 화색이……”

끝맺지 못한 문장은 비분강개에 치를 떠는 대성통곡이 마침표를 찍어 주었다.     

“네가 운다고 먹둥이가 살아오는 것도 아니고…… 엄마도 개고기 먹은 적 있어.”

“정말?”

먹둥아, 먹둥아를 호곡하며 목청껏 울던 아이가 밑 질긴 울음으로 꺼억꺽거리며 반짝 호기심을 보였다.

“그래, 먹었다!”

가문의 영광이라도 되는 듯 나는 허리춤에 두 손을 갖다 대었다.

처음엔 허준의 『동의보감』을 인용하며 자못 학구적으로 접근하던 좌중은 초복이, 중복이, 말복이라고 이름 부친 개들과 더불어 복날을 기념하는 것이 집안의 전통이라는 우스개에 분위기가 한껏 달아오르고, 프랑스 여배우 브리지뜨 바르또에 이르러서는 끓어오르는 민족주의 정신으로 결연해졌던 개 같은 여름날 오후, 긴 혀를 부지런히 날름거리는 일군의 사람들 속에서 나도 자연스럽게 고기국물을 휘젓고 있었다. 

참을 수 없는 먹둥이의 사라짐에 직면한 딸에게 아리스토텔레스란 유명한 철학자 할아버지는 매미까지도 즐겨 먹었다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먹지 못할, 먹어서는 안 될 동물은 없는 거라며 설득을 했지만 딸은 슬픔의 깊은 구덩이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실연을 치유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다른 사랑을 찾는 거라는 ‘사랑에 관한 72개의 금과옥조’를 이마에 새기고 있는 나는 개를 물색하기로 딸과 손가락을 걸고 말았다.

하필이면 그 때 동네에 젖 떨어진 개새끼라곤 그 놈밖에 없었다. 그게 작년 4월, 딸애가 전교생이 육십 이명인 동네 학교로 입학할 무렵이었다. 아랫집 혜순이 할머니한테 만원을 건네주고 지시사항대로 에미 눈을 피해 꼬물거리는 그것을 안고 언덕을 올라오는 내 옆에서 딸이 종알거렸다.

“얜 흰둥이야, 하얗잖아.”

폐부를 찌르는 딸의 단순 명쾌함에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나도 직격탄을 날렸다.

“잘 먹을지도 모르잖아.”

“먹둥이 얘긴 다신 하지 마! 하여튼 얘는 흰둥이야, 내 꺼니깐 내 맘대로 할 거야.”

흰둥이든 검둥이든 누렁이든 뭐든 상관없었다. 딸애는 녀석에 대한 소유권은 강력히 주장했지만 양육권만은 내게 양도했다. 사람집도 엉성한 판에 개집이 있을 리 없었다. 임시방편으로 딸애의 플라스틱 장난감집이 녀석의 집이 되었다.

개새끼를 이불 속에 넣고 자겠다는 딸과 펄펄 뛰는 설전을 치른 뒤 거실에 두는 걸로 타협을 본 첫 날 밤, 깨앵깽 칭얼거리는 소리에 잠을 설치다 결국 새벽녘에 딸애를 깨우고 말았다.

“네가 개새끼 키우겠다고 약속했지? 난 저 소리에 도저히 잠을 못 자겠으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벌떡 일어난 애는 반나마 뜬 눈으로 냉장고로 저벅저벅 걸어가더니  우유를 꺼내 들었다.

“흰둥아, 울지 말고 이거 먹어.”

일어나라, 싫다, 로 실갱이를 부리지 않아도 되었던 최초의 등교 날이었다.

내 새끼 똥오줌 치우는 것도 지겨웠는데 팔자에 없는 개새끼 똥오줌을 치우고 있자니 징글징글했다. 밤이면 사과상자에 담아 녀석을 현관 밖에 내놓아 버렸다. 어느 날 아침, 사과 상자가 보이질 않았다. 즐거운 비명을 어금니로 누르며 녀석의 사라짐을 공증코자 주변을 수색하다 앞밭에서 문제의 상자를 발견했다. 공중제비 기능 보유자도 아닌 녀석이 족히 50미터가 넘는 그곳까지 몸을 날렸을 리는 없고 한밤에 몰아닥친 강풍 탓이었다. 녀석은 상자 안에서 중심을 잡고 앉아 머루알처럼 검은 눈알을 굴리며 나의 즐거움에 배신을 날리고 있었다.

한번은 상자고 개고 간에 아예 사라져 버렸다. 바람조차 불지 않은 날이었다. 시골 사람들 것은 모두 제 것으로 아는 도시 등산객이 집어갔을까? 고놈 참 귀엽다고 눈여겨보던 윗집 할머니가 맑지 못한 정신으로 품에 안고 가셨을까? 딸과 머리를 맞대고 여러 가지 가능성을 타진해보긴 했지만 속으로는 그놈이 흔적조차 남기질 않고 바람처럼 사라져 준 데 대해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나의 비협조에 딸애는 혼자 동분서주하더니 마침내 녀석을 품에 안고 개새끼보다 숨을 더 씩씩거리며 언덕을 올라왔다.

“흰둥이 엄마 안 따라오지? 얘 엄마가 물까봐 무서워서 혼났어. 흰둥이가 지네 엄마랑 있잖아.”

그 날 새벽녘 오줌 누러 갔다 내 옆으로 기어 들어오며 아이는 자장자장 내 귀에 속삭였다.

“엄마, 나, 이 말 해도 용서해줘. 흰둥이 거실에 들여놨어. 집에 들어오겠다고 계속 울잖아. 그러다 또 지네 집으로 가면 어떡해?”

고무장갑을 끼고 다시 구석구석 개똥을 치워야 하고, 세탁기조차 없는 집에서 개새끼 똥걸레를 손으로 빨아야 하는 팔자에 대한 앙갚음으로 “너, 이 새끼 죽여 버릴 거야!” 소리치며 똥걸레를 녀석의 면상에 후려쳤다 딸애가 나타나면 “너, 말 안 들으면 흰둥이 버려 버릴 거야.”로 다소 순치된 언어를 구사하며 나는 녀석보다 더욱 으르렁거렸다. 그것이 단순한 경고성 협박이 아니었다는 것이 오히려 문제였다.

물위를 걸으며 사는 신통방통한 남편과 헤어지면서 딸애를 내가 맡기로 한 것은 순전히 구두 때문이었다. 여태도 물위를 걸으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러리라고 믿어 마지않는 남편에 비해 땅 위를 걸으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땅 위를 터벅터벅 걸으며 살아갈 나는 구두가 필요한 땅 위의 세상에서 그럭저럭 그 세상의 구두란 걸 챙겨 왔었다. 나뿐만 아니라 당신도 구두가 필요한 건 아니냐고 충고를 가장한 의무를 상기시킬 때마다 그는 물위에선 구두 같은 건 하등 ‘쓰잘데기’없는 물건이라며 단호하게 대꾸했었다. 구두를 신고 구두가 닳아지기 전에 새로운 구두를 맞추러 나가는 데 익숙했던 나는 그 이유로 딸을 책임졌던 것이다. 구두에 발을 맞추듯 돈에 맞춰 집을 구했으므로 도시의 다세대 주택에 살다 하루에 네 번 군내 버스가 들어오는 첩첩산중 시골로 삶의 기반을 옮겨 온 것은 도시를 탈출하여 전원에서 그림 같은 생활을 해보겠다는 낭만적 발상과는 애당초 거리가 멀었다.

도시에서 아무 연고도 없는 시골로 삶의 기반을 옮기고 거기다 입학이란 관문을 막 통과하여 학생이란 신분에 적응해야 하는 시기에 딸애는 개새끼의 뒤치다꺼리에 치여 제 표현대로 엉망진창이 되어갔다. 끙끙대는 녀석과 놀아주다 잠을 설쳐 버스를 놓치는 아침이면 나는 카레이서로 분해 버스 추격전을 펼쳐야 했고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학교까지 모셔다주어야 했다.

“너, 정말 날마다 이렇게 살아야겠어?”

“그럼, 엄마는 내가 수업하다가 졸면 좋겠어? 흰둥이가 우는데 어떡해?”

“너, 돈 벌기가 쉬운 줄 알아? 사람 먹을 우유도 없어. 개새끼 우유 주지 마!”

“우유 살 돈 없으면 엄마가 술이랑 담배 끊으면 되잖아!” 

“나, 앞으로 이 짓 못해! 기름 값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줄 아니? 버스 놓치면 학교까지 걸어가든 말든 알아서 해!”   

“알았어, 학교 안 갈게!”

차가 몇 년 전 폐교된 초등학교를 지날 때마다 화가 바싹 나 액셀러레이터를 있는 대로 밟는 바람에 똥차의 알피엠 바늘이 부르르 치를 떨곤 했다.

딸애의 녀석에게 쏟는 눈물겨운 애정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오후 몇 시간 동안만 우리 집 개일 뿐이었다. 딸이 잠든 걸 확인하는 순간 나는 녀석을 밖으로 내놓았고 그럼 녀석은 제 엄마가 있는 집으로 내려갔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애는 녀석을 안고 올라왔고 밤이 되면 나는 녀석을 돌려보내는 악순환이 한동안 계속되더니 꼬리잡기 게임 같은 그 고리마저도 뚝 끊어졌다. 혜순이 할머니가 싸리비로 내몰았는지 대낮에 현관 앞에 물끄러미 앉아 있더니 며칠 지나서는 밤에 들여놓아 주질 않았는데도 우리 집에서 밤을 보내는 것이었다.  

녀석이 시나브로 우리 가족의 구성원으로 스며들자 나는 외할머니가 아프다는 이유를 들이대며 딸을 데리고 이 두메산골에서 고향인 도시로 자주 떠나곤 했다. 녀석에 대한 대책을 세워줄 수 있을 만큼 동네에 자리 잡지도 않았고 그럴 필요도 느낀 바 없었다. 흰둥이 괜찮을까? 하고 차의 꼬리를 꼬리를 줄레줄레 흔들며 따라오는 녀석에게 안타까이 손을 흔들며 원망이 선연한 핏방울을 내 눈앞에서 뚝, 뚝 떨어뜨리며 딸이 물을 때마다 알아서 살다 알아서 사라져주었음 하는 간절한 소망을, 알아서 살겠지, 라는 우회적 표현으로 대신하곤 했다. 하지만 며칠 후 언덕 아래로 주인 차가 고개를 들이미는 순간부터 녀석은 허리 이하를  격렬히 흔들며 다소 과격하게 무심한 주인을 환영하는 바람에 차를 주차조차 못 시키고 딸애가 먼저 내려 녀석을 안고 있어야 했다.

어떻게 알아서 잘 버티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은 채 실존하고 있는 녀석을 두고 또 그렇게 며칠 집을 비우고 돌아오던 때였다. 언덕 아래 혜순이 집을 지나가는데 오이를 따고 있던 할머니가 날 알아보더니 손짓을 했다.  

“어디 갔다 오누? 그 집 개가 우리 집 닭을 잡아먹으려 그래. 개를 끈에다 잡아매야지. 풀어놓고 기르니까 아무 밭에나 막 들어가 밭을 망가뜨리고 짐승을 잡아먹고……”

실존의 비결은 백일하에 드러났지만 그에 대한 해결 방안은 살리느냐, 죽이느냐 외에는 달리 떠오르질 않았다. 죄송함을 말이 아닌 몸으로 보여주기 위해 그 길로 차를 돌려 읍내로 나가 개 목걸이를 사 가지고 돌아왔다. 반갑다고 길길이 뛰는 녀석의 목을 끌어안고 각단지게 고리를 채운 나와 컹컹거리며 버둥대는 녀석을 번갈아 지켜보던 목격자와의 대화 한 대목.

“묶지 마! 엄마도 그렇게 묶으면 좋겠어?”

“네가 뭘 안다고 그래?”

“사람은 자기 살고 싶은 대로 살아야 한다면서?”

녀석을 발로 걷어차고는 손에 들고 있던 사슬을 냅다 던져버렸다.

자유가 피를 먹고 자라나는 나무란 것은 알 리 없지만 개를 사슬로 묶는 것은 개의 자유의지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여덟 살짜리 주인 계집애 때문에 녀석은 지가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는 동네의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개가 되었다. 녀석은 딸애가 학교에 가기 위해 밤꽃 향기 얼큰한 언덕을 내려갈 때면 몸길이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꼬리를 흔들며 앞장서 내려가 주인이 노란 스쿨버스에 오르는 것을 지켜보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서로가 한 단계 한 단계 난이도를 수정하며 길들여질 때마다 감격한 애는 녀석을 끌어안으며 난리법석을 떨었지만 나는 앞날이 걱정스러워 술 잔 위로 담배연기만 날려 보냈다. 그 걱정스러웠던 앞날이 현실이 되어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으니 연기로 날려 보낸 담뱃값은 이렇게나마 돈값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흡사 간질 환자의 발작을 연상시키는 녀석의 행동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질 않는다. “흰둥이 죽으면 어떡해!” 딸의 발작적인 눈물 바람에 녀석은 어떻게든 일어나 보려고 지 딴엔 애를 쓰는 눈치지만 그럴수록 딸의 콧물만 추렴해내며 픽, 픽 무너져 내린다.

“일찍 일어났으면 늦지 않게 학교 갈 준비나 해!”

찔레가시에 찔린 상처를 부여잡으며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만다. 무늬만 발발이로 일 년도 넘는 세월을, 비록 쥐 사냥에 지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자세는 진돗개처럼 날렵하게 사냥을 하며 산천을 주유하던 녀석이 왜 갑자기 못 먹을 걸 먹은 거야.

“학교 안 가!”

학교 가주는 게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것만큼이나 대단한 효행인 듯 자못 결기가 느껴진다. 돈 고우! 나는 상처 치료란 표면적 이유를 내걸고 딸의 방심을 틈타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집 안으로 들어와 버린다. 거울 앞에서 혀를 차며 후시딘을 바르고 다 못 들은 하우비자아를 반복해서 들으며 한풀이를 할 만큼 했는데도 여전히 마당 쪽은 고요하다. 뭔가 큰 것이 오고 있는 게 분명한 저 먼 바다가 궁금해져서 창 쪽으로 고개를 내민다. 태풍은 혜순이 할머니다.

아침 6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남의 집에 불쑥 찾아가 도움을 청하는 게 자유주의자가 할 짓인지 심히 의심스럽지만 일 년여 전에 만원을 받고 개를 팔았다는 사실 하나로 할머니는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딸애의 뒤를 따라 언덕을 올라오고 있다.

“할머니도 개들 밥 주고 계셨어.”

“개새끼가 쳐 돌아다니다 뒈질려고 뭘 잘 못 먹었나? 그러니까 개를 끈에다 잡아매야지. 김치 국물이라도 좀 가져와보구려.”

딸이 사라진 사이에 마당에서 망초밭으로 배밀이로 자리를 옮겨 누운 녀석을 정작 주인인 나는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는데 할머니는 노련한 산파처럼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왜 그러냐?” 하고 살갑게 묻는다. 딸애의 눈짓에 내가 김칫국물을 붓자 녀석은 긴 혀를 날름거리며 받아먹어 보지만 몸의 증상은 여전하다.

“비눗물이라도 먹여볼 테여?”

지시사항이 떨어지기 무섭게 딸애는 다시 눈짓을 한다. 폐식용유로 만든 비누라 양잿물보다는 나을 거라며 비눗물을 녀석의 얼굴 위로 부어보지만 김칫국물과는 달리 좀체 먹으려 들질 않는다. 할머니가 녀석의 입을 벌리자 거부의 몸짓으로 일어서려고 용을 쓰지만 뻗장다리로는 힘을 쓸 수가 없다. 민간요법을 모두 전수해주고 할머니가 그만 하산을 하자, 망초밭은 명당자리지, 씨부렁거리며 나도 등을 돌린다. 

“흰둥이 병원에 안 데려가면 나도 학교 안 가!”

“가지마. 누가 비냐? 개 묶지 말라고 한 게 누군데?”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꾸한다. 어디서 누구한테 조건성 수락문을 들먹여!

“엄마…… 흰둥이만 살려주면 에버랜드 가자고도 안 하고, 피카츄 인형 사 달라고도 안 하고…… 또……”

딸을 일별하곤 창고에 들어가 면장갑을 꺼낸다. 차의 트렁크를 열고 사지가 뻣뻣한 녀석을 거기 내려놓으면서도 녀석의 눈빛과는 마주치지 않으려 애쓴다. 얼굴에 침과 눈물이 형님 동생하며 우애를 과시하고 있는 딸애가 뒷좌석의 제자리로 가려다 말고 운전석 문을 열더니

“고마워, 엄마!” 하며 내 목을 끌어안는다. 어린 정치인을 태우고 차는 서둘러 언덕을 굴러 내려간다.

“병원 간다고 산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니깐……”

정치적 야망이 콩나무처럼 쑥쑥 자라기 전에 네가 붙잡은 희망은 썩은 동아줄이었던 거라고 미리 쐐기를 박아 놓는다.   

“엄마, 흰둥이도 그 개처럼 죽는 거야?”

뒷좌석의 딸애가 묻는 말을 못 들은 척 난 침묵만을 고수한다.

지난 겨울 혜순네 할머니가 집의 개는 새끼 안 낳느냐, 그 개랑 같이 나온 새끼는 벌써 새끼를 낳았다, 고 녀석의 생식능력을 의심했을 때 개도 자연성 불임이란 게 있는지 인터넷에 상담을 해 보고 싶을 정도였다. 흰둥이가 새끼를 낳으면 그것도 다 기를 거라고 언제부턴가 애가 노래를 부르고 다닐 때마다 기왕 개새끼를 기를 거면 수놈이나 한 마리 기를 걸, 주는 대로 받아 키운 나의 불찰에 발등을 찍고 있던 차에 할머니의 녀석에 대한 질책은 감격스럽게 울려 퍼지는 환희의 송가였다. 딸에게 선제공격을 감행할 정도로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흰둥이가 새끼를 낳을 때까지 우리가 기를 수 있을까?”

“남자개가 있어야 아이를 만들지.” 

“혁이네 개가 흰둥이만 보면 뒤집어지더라. 아무래도 그 녀석 지금 발정긴가봐.”

“발정기가 뭐야?”

“하고 싶어 안달이 나는 것.”

“뭘 하고 싶은데?”

천연덕스럽게 화제는 성으로 옮겨갔고, 개들은 첫날밤을 보내고 아이만 갖고 그냥 헤어지는 거야? 같이 안 살고? 란 딸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끝으로 그날의 성교육 시간은 마감했다.

이 땅에 다시는 꽃 피고 새 우는 시절은 오지 않을 기세로 혹독하고 가열찼던 겨울도 뒷걸음치며 물러나고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연둣빛 새순이 돋던 올 봄, 자연은 역시 위대한 것이라고 희희낙락하고 있을 때 난데없이 나의 후두부를 가격해오는 일이 벌어졌는데 주인들이 지랄발광을 감당타 못해 풀어준 온 동네 발정난 개새끼들이 우리 집 마당을 아지트로 삼은 것이었다.

브리지뜨 바르또의 육체파 여배우 시절을 그리워함인지 동물 애호가로서의 전투성을 옹호함인지 아니면 그녀와는 아무 상관없이 붙여진 이름인지 하여튼 바르또라고 불리는 녀석은 덩치가 소만 했는데 덩치값을 하느라고 그러는지 온 동네 암캐들을 집적거리며 전봇대만 보였다 하면 나오지도 않은 오줌을 싸는 척하며 뒷다리 하나를 들고 힘 좋고 오래 가는 수컷임을 만방에 시위하였다. 녀석도 동네의 암캐인지라 바르또와의 배회가 수차례 목격되었다. 사랑에 빠진 녀석은 고기 뼈다구조차 먹질 않고 바르또에게 고스란히 바치곤 했지만 순정을 알 리 없는 바르또는 여전히 온 동네의 암캐들에게 수작을 부렸고 암캐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동네의 수컷들에게는 공연히 으르렁대며 넘쳐나는 힘을 과시했다.

우리 집 마당에 몰려드는 수컷들로 하여 짐승의 불임만큼이나 나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안이 발생했는데 그것은 다양한 체구를 가진 짐승들 사이의 교미의 양태에 대한 것이었다. 어느 날 나의 이런 문제의식은 딸과 이런 대화를 나누게 된다.

“흰둥이는 저렇게 큰 개랑은 교미를 못할 거야. 저것들은 지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어려운 말로 택도 없는 사랑을 하고 있는 거야.”

“아냐, 엄마 저 개가 앉고 흰둥이가 서면 짝짓기를 할 수 있어.”

그동안의 성교육이 진가를 발휘하여 딸애는 교미의 체위까지도 선명하게 설명을 해냈다.

후일 딸의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으로 밝혀졌다. 불에 달군 쇠처럼 붉게 타오르는 심지를 어떻게든 밀어넣어 보려고 바르또가 각고의 노력을 다하자 녀석도 거기에 부응하는 필사의 노력을 다 했지만 그들은 끝내 사랑을 완성하질 못했다.

동물의 왕국에서도 결코 볼 수 없는, 포르노 영화보다 더욱 리얼해서 혼자 보기는 참 아까운 뼈와 살이 녹아내리는 대낮은 다행히도 나 말고 그 광경을 지켜보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두 마리 개였다. 녀석의 반도 안 되는 주먹만 한 체구를 가진 푸들 과의 수캐는 그 일이 진행되는 동안 주위를 뱅뱅 돌며 호들갑을 떨었고 또 하나의 수캐는 녀석보다 조금 더 큰 갈색 체구의 코커 스패니얼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택도 없는’ 정사보다 이 후자의 관람자를 주시하게 되었는데 광고 등에서 보아온 뭉툭하게 길게 늘어진 귀를 가진 녀석의 이채로운 외모 때문만은 아니었다. 녀석은 그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사람인 나처럼. 개와 다른 디엔에이 수를 가진 사람인 내가 호기심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거늘 녀석은 어떤 감정도 실리지 않은 채 초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녀석이 그 광경에 결코 무심할 수 없는 존재란 심증을 갖고 있는 인간인 내 앞에서.

뼈와 살이 녹아내리는 그 대낮이 오기 전, 새벽에서 아침으로 오는 시간에 이 초연한 녀석과 흰둥이 녀석이 밤나무밭에서 날 잡아봐라 게임을 한참 하다 뭔가 새로운 놀이를 벌이는 것이 느껴졌었다. 너무 멀긴 했지만 흰둥이 녀석이 드디어 나를 배반했다고 이를 갈았던 걸 보면 그 순간은 확신 쪽으로 저울추가 기울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초연한 철학자의 눈빛에서 나는 다시 흔들리고 말았고 아침에 녀석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었다.

인간사에도 유난히 긴 하루가 있듯이 그 일요일은 녀석들에게도 무척 긴 하루였다. 흰둥이, 바르또, 철학자, 한주먹과 내 딸은 그 날 우리 집 마당과 길가를 오가며 유난히도 잘 놀았다. 나는 장소를 제공하는 데 이어 먹을 것까지 내줘가며 딸과 놀아주는 것에 대해 녀석들에게 답례했다.

주인에 의해 한주먹의 무단가출 사실이 드러나면서 분위기는 어긋나기 시작했다. 다시 찾은 한주먹을 끌어안고 감격하던 주인은 앞에 트럭이 나타나자 좁은 길에서 길을 내주느라 후진을 해야 했고 때마침 철학자는 길을 건너고 있었다. 마당에서 풀을 뽑고 있던 나는 느려터진 동작으로 차 뒷바퀴 사이로 들어오는 철학자가 다소 불안하긴 했지만 길갓집 여자와 인조이한 죄로 차에는 이골이 난 녀석들이라 괜찮겠거니 싶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내가 본 건 피를 흘리고 쓰러진 철학자였다. 세상을 향해 마지막 비명조차 내질러보지도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그 기품 있는 귀를 늘어뜨리고 그대로 떠나갔다.

철학자의 시신을 비료 푸대에 담고 핏자국을 흙을 떠다 지우고 산중턱의 주인에게 찾아가 녀석의 무연한 표정을 흉내 내며 시신을 전해주고 돌아와 다시 마당의 풀을 뽑는 일련의 과정을 치르며 나는 누군가를 떠올렸던 것도 같다. 아니, 파노라마처럼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스쳤던 것도 같다. 해거름에 흰둥이는 마당과 밤나무밭을 오가며 줄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살아 있는 짐승의 눈물을 대면한 딸애가 흰둥일 붙잡고 주저앉아 목 놓아 울 때는 연출한 화면처럼 너무도 비극적이어서 이 사이로 푸실푸실 웃음이 다 새나왔다. 

“엄마, 흰둥이 죽으면 새끼들은 어떡해?”

잠자코 있던 딸애가 다시 입을 연 것은 차의 속도가 급격히 떨어졌을 때였다. 나는 경사 급한 곡선 길을 벗어나자마자 중앙선을 넘어 느려터진 앞차를 추월하고 가일층 속도를 높여 달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녀석의 몸뚱이에서 변화가 감지된 건 철학자가 죽은 지 두 달이 가까워 올 무렵이었다. 젖꼭지가 여물어가더니 어느 날 아침 귀가 축 늘어진 새끼 세 마리가 녀석의 옆에 거짓말처럼 뒤엉켜 있었다. 그렇게 해서 딸의 사전에 유복자라는 신조어가 등재되게 되었다.

“새끼를 몇 마리나 낳습니까?”

녀석을 진찰대에 눕히자 수의사가 묻는다.    

“세 마리 낳는대요. 뭘 잘못 먹은 거죠? 집안에서 기르는 개가 아니라 풀어놓고 기르는 개라……”

철창 안에 갇혀 쉴 새 없이 컹컹거리고 있는 애완용 개들과 녀석이 외관이 비슷하다고 해서 내용도 그러리라고 넘겨짚지 말라는 저의를 낮게 깔며 난 중얼거렸다.

“오기 전에 김칫국물과 비눗물을 먹였어요. 여기까지 올 생각은 없었는데…… 얘가 에미 죽으면 새끼들 죽는다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데리고 온 건데…… 전 개를 기를 맘도 없었어요. 하도 애가 기르자고 해서 할 수 없이 기른 건데……”    

이런 가축병원이 녀석에게 얼마나 호사스러운 치료인지를 지린내가 진동하는 실내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쉬지 않고 설명한다.

수의사는 사람에게 주사를 놓듯 녀석의 혈관을 고심하며 찾아내 몇 대의 주사를 놓는다. 살 건지, 죽을 건지나 속 시원히 말해주면 좋으련만 수의사는 말이 없다. 오늘 할 일을 머릿속으로 짚어 나가자 애가 바싹 탄다. 아침 열 시에 전략회의가 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방학 맞이 수강생 확보 비상 전략회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오늘은 읍에 오일장이 서는 날이고 평소에는 오후에 느긋하게 출근하는데 오늘따라 아침부터 회의가 잡혀 있다. 내가 맡고 있는 학생들의 등록률이 떨어지고 있다고, 전임으로 뛸 미스들도 넘쳐난다고 얼마 전부터 원장은 은근히 으름장을 놨었다. 저 개새끼가 누구 밥줄 끊어놓을 일이 있나.

“뭘 잘못 먹은 게 아니고…… 칼슘 부족입니다. 새끼들 젖을 먹이느라 몸 안의 칼슘이 과도하게 빠져나가 마비 증상이 왔습니다.”

수의사로부터 전혀 예상치 않은 녀석의 병명을 듣는 순간, 딸애가 소 아저씨한테 새끼들을 자랑하자, 경험으로 봤을 때 애비 없는 새끼들은 잘 못 되기가 쉽더라는 아저씨의 말이 동전의 뒷면처럼 떠오른다. 부성이 지극하다는 가시고기들도 아닌 개새끼들의 성장에 지 애비가 죽은 것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하고 웃어넘겼는데 그 말이 씨가 되기라도 한 건가 아니면 그 말이 씨가 될까봐 더욱 지극하게 새끼들을 돌보다 저 꼴이 된 건가. 

수의사는 시간이 좀 지나면 일어날 거라고 했지만 녀석은 일어나질 못한다. 녀석의 안위보다 치료비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수의사는 슈바이처 같은 성스러운 표정으로 몇 대의 주사를 다시 녀석의 혈관 속으로 찔러 넣는다. 그럴 때마다 푸들거리는 녀석의 다리만큼이나 내 머릿속도 파르르 떨린다.  

“힘들어! 흰둥아, 꼬리치지 마!”

녀석이 우리에게 보내온 첫 신호에 딸이 화들짝 놀라 화답한다. 녀석이 제 발로 일어서는데 치료비 만오천 원과 새끼용 분유값 만이천 원의 출혈을 필요로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바람으로 녀석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창고 문을 닫고 개새끼 용 젖병에 분유를 타서 새끼들의 입에 밀어 넣지만 먹을 리가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죽거나 더 나쁘거나 좌우지간 쇼는 계속 돼야만 하므로 지각한 딸애를 학교에 밀어 넣고 학원 강사로 살아남기 위해 납덩어리 발로 액셀러레이터를 밟는다.             

그렇게 달렸는데도 회의엔 30분이나 늦었다. 방학은 놀 때가 아니라 공부하는 때라는 것을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확실히 주지시켜야 한다는 삼국지적 전략을 이미 수립하고 그 구체적 전술을 논의 중이었다. 곱지 않은 시선을 주던 원장이 표정을 바꾸며 영어선생은 어떤 대책을 세워 놓았냐고 내게 묻는다. 에프로 시작하는 네 음절의 영어 단어가 무심코 나오려는 걸 간신히 틀어막으며 번역문 투의 낯선 조어법을 사용하여 말도 되지 않는 말을 말이 되도록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뜨려 놓으며 방학을 맞은 나의 전술을 밝힌다. 몇 개의 복문을 하나의 구로 줄이면 심기일전해서 장사 잘 하겠다는 것.

회의가 끝나자 돼지갈비집에서 회식을 하고 당신의 자녀는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해서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요지로 몇몇 학부모들과 상담을 하고 “헬로우 에브리원!”이라며 손을 흔들며 세 개의 강의실에 들어가 다시 손을 흔들며 “테이크 케어!”로 강의를 끝냈다.

어두운 강으로 담배연기를 흘려보내고 있는데 휴대폰이 커다란 울음으로 제 존재를 알려온다.

“헬로우!”

“영어 하지 마! 왜 빨리 안 와? 그러다 흰둥이랑 새끼들 죽으면 엄마가 책임질 거야?” 

“지금 열심히 가고 있어. 저녁 먹었어?”

읍사무소 옆 또오래 분식점의 텔레비전에 코를 박고 있는 딸을 찾아 집에 도착하자마자 개새끼들 분유를 데워 창고로 간다. 종일 굶어 배가 고팠는지 먹는 시늉은 하지만 제 어미젖을 빨던 왕성함은 찾아볼 수 없다. 얼굴이 반쪽이 된 어미에게도 낮에 회식자리에서 슬금슬금 싸 왔던 돼지갈비를 내밀며 이산의 아픔을 위로한다. 어서 빨리 잠들어 이 긴 하루를 마감하고 싶을 뿐이다. 

심하게 무언가 앓는, 신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잠이 들었던가 보다.

“엄마, 무서운 소리가 나.”

“새끼들이 우는 거야.”        

딸이 다시 잠이 들고도 점점 커지는 소리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뒷마당을 돌아 창고로 다가간 순간 난 그만 짐승처럼 낮게 비명을 토해낸다.

녀석이 열리지 않는 창고 문에 머리를 짓이기며 앓고 있다. 달려가 창고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흰둥이는 새끼들에게로 날아간다. 세 마리 새끼들은 바람처럼 달려들어 어미의 젖을 하나씩 꿰찬다.

그래, 니 새끼들 니 맘대로 실컷 먹여라.   

어미 품에 뛰어들어 젖꼭지를 하나씩 물고 빨아대느라 정신이 없는 새끼들을 흰둥이는 그보다 천 배는 정신없이 혀로 핥는다. 

온 집안의 불이란 불은 모두 밝힌다. 마당으로 나가 찔레 넝쿨을 맨손으로 걷어내기 시작한다. 푸른 가시들의 총공격에 잠들기 전 애와의 대화가 진군나팔로 울려온다. 

“엄마, 나, 아빠 없어도 돼. 흰둥이만 있으면.”

“엄마도 남편 없어도 돼. 너만 있으면.”

뚝, 뚝 붉은 피가 대지로 스며든다. 자유는 피를 먹고 자라긴 한다.《문장 웹진/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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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5-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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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5-08-01
목소리들

목소리들 조시현 언제나 문은 예상치 못한 순간 열렸다. 막무가내로 파고들어 오는 목소리처럼. 무방비하게 책을 읽던 주하는 일순 얼어붙었다. 어디에도 남지 않을 목소리를 마음껏 낭비하는 그 감각에 한껏 빠져들어 있던 차였다. 신발장 옆 화장실, 왼쪽에 침대, 오른쪽에 주방이 전부인 한 뼘짜리 원룸은 현관에 서면 한눈에 전부 들어왔다. 계약 내용은 27일 하루를 온전히 비워 주는 것. 지금껏 한 번도 어긴 적 없었기에 주하는 대처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물끄러미 상대를 바라보았다. 시선에 섞인 질책의 의미를 읽은 남자가 검지로 뺨을 긁었다. “어, 죄송합니다.” 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남자가 재차 입을 열었다. “오려고 온 건 아니고. 매달 27일마다 뭘 하는 거냐고, 여자 혼자 종일 웃었다 울었다 별짓을 다 한다고 하도 그래서. 여기 방음 잘 안되거든요. 방 빌려드리는 거야 돈도 받고 어렵진 않은데 혹시나 불법적인 일은 안 되니까 확인차 온 거예요. 그래도 뭘 하는지는 알아야 하니까. 쫓겨나면 곤란하거든요. 미리 말씀 안 드린 건 저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근데 연락처도 모르고.” 하지만 남자의 눈은 안쪽을 꼼꼼하게 살폈다. 미처 감추지 못한 호기심이 묻어났다. 주하가 가져온 거라곤 책 두 권과 머그컵, 도라지청이 전부였다. 남자가 거기서 뭔가를 알아챌 것만 같아 가슴이 마구 뛰었다. 그야 불법적인 일이 맞았으니까. 주하가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걸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남자가 별안간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플라스틱 카드를 내밀었다. 구재정. 인공지능융합대학원. 학번까지. 주하는 사진과 남자를 번갈아 보았다. 덥수룩한 갈색 곱슬머리. 멀끔한 얼굴. 무엇보다 핸드폰을 쥐고 있는 가늘고 예쁜 손가락이 눈에 띄었다. 같은 방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쓰고 있는 사람. “다른 뜻 있는 거 아니고요. 저 정말 여기 살거든요. 이 이름으로 입금 주셨잖아요.” 이름은 맞지만 학생일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다. 생각을 못 했다기보단 관심이 없었다고 해야 더 맞겠지. 알고 있었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었겠지만 인공지능융합대학원이었다니. 침묵이 이어지자 눈을 굴리던 남자가 서둘러 문을 열었다. “음, 일 없는 거 확인했으니까. 저는 갈게요. 계약 파기하는 거 아니죠? 제가 잘못한 건 맞지만 정말 조심해야 하거든요. 아르바이트를 또 할 수는 없어서요.” 횡설수설하던 구재정은 머리를 박박 긁더니 재빨리 사라졌다. 약속을 어긴 건 맞지만 그걸 보니 기분이 크게 상하지는 않았다. 위아래층 목소리가 간혹 들리기는 했지만 그 정도로 방음이 안 되었다는 것을 그녀는 잊고 있었다. 한 층에 세 개여야 할 집에 가벽을 세워 열한 개로 늘려 놨으니 당연한 사실인지도 몰랐다. 더 조심했어야 했는데. 한 번 깨어진 감흥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주하는 다시 차를 끓였다. 굳이 도라지차. 이렇게 된 와중에도 목을 관리하고 있다니. 멍청하기는. 이제 연극을 보

  • 관리자
  • 2025-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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