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인연
- 작성일 2010-05-27
- 댓글수 0
깊은 인연
고광률
농성 4주째다. 농성장 벽에 ‘18’이라는 숫자를 사람과 오뚝이 모양으로 써 붙였다. 이틀 전에 다녀간 구사대가 내일 중에 다시 온다는 풍문이 떠돌았다. 우리가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다시 온다고 했다. 그들은 해산 통보를 약속이라고 했다.
구사대는 다시 올 때 반드시 피를 보겠다고 약속한 바 있었다. 나는 그 약속을 믿는다. ‘엉거주춤’ 설강수는 한번 뱉은 말을 반드시 지켰다.
설강수는 언행이 다르면, 그 말은 물론, 말을 한 사람까지 업신여김을 받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주먹보다 자신이 뱉은 말을 잘 새겨 행동하라며 급우들을 협박하곤 했다.
나는 아직껏 열지 못한 금고에 걸터앉아 쉼 없이 창을 때리는 빗줄기를 바라봤다. 냉방이 끊어져 후텁지근한 실내 공기가 김이 되어 창에 들러붙었다. 김이 서린 창은 농성자들의 저주와 기원이 담긴 낙서판이 되었다. 바람을 탄 빗줄기가 허연 김 바깥에서 부질없이 창을 두드리며 아우성쳤다.
사장은 우리가 구청에 노조 가입 신고를 마친 날, 냉방을 끊었다. 농성 직원들이 우리들까지 찜쪄 먹을 생각이냐며 나댔지만, 이를 들어줄 사장은 행방이 묘연했다. 이미 재산과 돈을 챙겨 일본으로 떴다는 말이 돌았다. 일체의 사후 수습은 대리인으로 내세운 권 전무를 통해 공정하고 후하게 처리될 것이라고 했다.
“똥을 밟으신 겁니다.”
나는 권 전무가 내게 하는 말인 줄 알고 당황했다. 그러나 곧 권 전무는 똥 밟은 분이 사장이라고 밝혔다. 권 전무는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서 밟지 않아도 될 똥을 밟게 한 책임을 통감한다며 잔 바닥에 깔린 소주를 들이켰다.
나는 그가 찔끔찔끔 따라주는 술잔만 받고, 그의 말은 받지 않았다. 나는 말이 많아지는 것이 싫었고 원치 않았다. 많은 말은 오직 농성 직원들과 나눠야 올바른 것이었다.
“금고는 정말 안전한 거지?”
권 전무가 재차 다짐을 받듯이 금고의 안부를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잔을 비우고 집게손가락 끝으로 소금을 몇 알갱이 찍어 먹었다. 그러고는 석 달가량 끊었던 담배를 빼물었다. 권 전무의 담배였다. 나는 전무의 담배를 마음대로 빼 피우면서 버르장머리 없이 전무와 동등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내가 우스웠다.
권 전무가 은밀히 나를 찾은 용건을 말하지 않기에, 나는 목구멍으로 치미는 욕지기를 참으며 줄곧 담배만 피웠다. 똬리를 트는 담배연기 속에서 지나간 18일이 하찮게 뒤섞였다.
2
18일 전, 사장이 느닷없이 폐업을 한다고 선언했다. 사장은 어디에 숨었는지 보이지 않았고, 권 전무가 조찬 간부회의에서 이를 공표했다고 했다. 이 공표가 그대로 글이 되어 게시판에 붙었다.
흥분한 직원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즉각 화를 내뿜었다. 일부 조심스러운 직원들은 불안한 눈초리로 흥분한 동료 직원들과 간부들 사이에서 진위 여부를 재파악하려고 애썼다. 또 폐업에 별다른 이의가 없어 보이는 직원들은 자리에 앉아 개인 사물을 정리하거나 복도에 나란히 서서 줄담배를 하염없이 피워댔다.
나는 화를 내는 직원들에게 노조 설립의 필요성을 말했다. 노조가 있어야 당장 부빌 언덕이 생기고 향후 합법적 투쟁이 가능하다고 일러줬다.
그래서 창사 십 년이 되도록 노조 없이 지냈던 직원들이 급히 노조 설립 절차를 밟았다. 노조 설립은 인?허가 사항이 아닌 신고 사항이므로 문제될 것이 없었다. 자유민주주의국가이기 때문에 정해진 설립신고서를 제출하면 즉각 ‘신고필증’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노조설립 추진위원회를 만들고, 추진위원장과 추진위원을 뽑고, 회칙 안을 만들어 창립총회를 여는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터졌다. 구청 담당 직원이 연일 부재 중이라 노조설립신고서를 제출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신고서를 들고 부랴부랴 찾아간 첫날은 잠시 외근을 간 것 같다고 했고, 둘째 날은 이틀 일정으로 출장을 갔다고 했고, 다섯째 날은 집안일로 연가를 냈다고 했다.
우리는 닭이 올라간 지붕을 쳐다보다 지친 개처럼 다른 공무원분이 접수하면 되지 않겠느냐며 정중히, 애원조로 말했다. 그러자 옆자리 공무원이 공무는 노가다와 달라 반드시 업무분장에 따라 해야 한다며, 소관업무가 아니므로 도와주고 싶으나 대신할 수 없어 안타깝다고 했다. 나는 노조신고서를 접수시키지 못해 십삼 년 동안 노조 결성을 못하고 있는 한국일보를 떠올렸다.
구청에 갔었던, 즉 안면이 드러난 직원들을 뺀 나머지 직원들로 잠복조를 뽑았다. 눈치와 동작이 빠른 이들이 일반 민원인으로 위장한 채 구청 여기저기에서 어슬렁거리거나 죽쳤다. 그러다가 담당 직원이 나타나면 짜놓은 절차에 따라 즉각 알리기 위함이었다. 설립신고서를 접수시킬 우리 직원들은 구청 맞은편 이층 다방에서 창밖으로 목을 뺀 채 죽치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어느 날, 소리 소문 없이 나타난 담당 직원을 잽싸게 에워싸고 노조신고서를 접수시켰다.
수순에 따라 임시 위원장이 임시를 떼고 위원장이 되었다. 위원장이 집행부를 구성할 때, 나는 다른 일로 돕겠다며 빠졌다. 나는 농성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서로의 입장과 이해관계가 달라서 생기는 문제들을 꼼꼼히 챙기겠다고 했다. 나는 안에서 일할 때보다 밖에서 일할 때, 더 많은 것이 보인다고 둘러댔다. 그래서 소수 개별 집단들의 불만과 요구사항을 수집하여 이를 집행부에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우리 회사도 여느 회사와 같이 기획은 모두 경영진이 했다. 생산은 외주업체와 기자들이 했다. 외주업체는 영어 테이프를 복제 생산했고, 기자들은 성인 및 아동 대상 잡지들을 만들었다. 영업은 대리점과 영업직원들이 했고, 골치 아픈 수금은 거의 외주업체가 대신했으며, 회계는 경리과에서 처리했다. 테이프 복제 생산과 수금은 폐업과 관련해서 싸워서 따로 보상받아야 할 문제가 없었다.
폐업은 사업전략과 경영전략을 짜는 사장과 경영진의 오판으로 발생했다. 급하고 무리한 사업 확장 욕심이 화를 부른 것이다. 즉, 변화가 빠른 환경 속에서 새 판을 짤 때 시장보다 욕심을 앞세운 것이다. 결국 오랜 시간 서서히 곪아 터진 것인데, 곪을 때 곪고 있다고 얘기한 직원들을 사장은 모조리 구조조정했다. 사장은 자기 욕심이 아닌 사람을 구조조정하며 곪아가는 고통을 견뎠다.
우리 회사의 이름은 ‘O&EC’다. 음란 화보집 ‘SOL林’―우리는 ‘쏠림’으로 읽었다―으로 출판업을 시작한 사장 김응삼은 카피에 능했다. 책명처럼 직설적인 사진만 복제하여 실은 때문에 역과 터미널 가판대에서 불티나게 팔렸다. 사장은 동서양 솔로들의 쏠림 현상을 다룸에 있어 독자들에게 정직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국가 간의 저작권 협약이 체결되기 전이었다.
‘SOL林’의 대박으로 고무된 사장은 미국에서 만든 영어 교육 테이프를 그대로 들여와 한국어를 살짝 삽입했다. 얼핏 별것 아닌 듯싶은 이 교재 ‘계발’ 방식이 동종 업계의 시장 판도를 뒤집는 엄청난 이변을 일으켰다.
이 영어 테이프의 콘셉트는 문법을 버리고 말을 중심에 세운 것이었다. “우리는 말을 하고 들으려고 영어를 배우는 것이지, 문법을 알고자 영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마케팅의 핵심 전략이었다. 그리고 생선회 가게처럼 ‘현지 직송’이라는 용어를 금박 매긴 별표 안에 넣어 강조했다.
사람들은 미국 현지인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영어를 배울 수 있다는 말에 깊이 매료됐다. 변방의 한국 소비자들은 비록 미국인이 아니지만, 미국인처럼 배우는 것을 영광으로 알고 원했던 것이다. 과거 ‘內鮮一體’에서 ‘美韓一體’ 되기를 갈망하는 소비자들이 의외로 많았는데, 사장은 이들이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답은 누구나 옆에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던 김응삼 사장은 이 좌우명 덕에 대박이 터졌다. 김응삼의 응도 응용의 ‘應’자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늘도 이런 사장을 밀어주었다. 바덴바덴에서 그동안 버둥버둥거린 한국의 로비를 인정해 “서울 꼬레아!”가 차기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됐는데 순간, 테이프가 동이 나는 사태에 이르렀다. 소비자들이 테이프 값을 먼저 치렀다.
사장은 테이프의 브랜드명으로 ‘오리지널 잉글리시’를 택했다. 전국의 잠재 소비자들이 ‘오리지널 잉글리시’를 통해 혀가 감기고 꼬였다가 풀리기를 앞다퉈 원했다. 따로 광고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오잉’이라는 애칭까지 만들어 ‘오잉’을 찬양하고 다녔다. 언론과 시중에 ‘오잉’을 알아야 88 올림픽을 성공할 수 있다는 말도 돌았다. 사장은 이것이 버즈 마케팅이라며 한껏 고무되어 날뛰었다. 이때부터 사장의 셈법에 문제가 생겼다. 운까지 죄 능력으로 생각한 것이다.
돈이 되는 것을 보고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대리점을 낼 생각이 없다며 오만하게 버티는 사장을 꼬드기고 윽박질러 겨우겨우 대리점 운영권을 따갔다. 타고난 의심이 깊어 모든 것이 A4 용지 한 장으로 파악되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장으로서는 감당키 어렵고 분에 넘치는 사업 확장이었다. 날이 갈수록 대리점은 웃돈을 얹어야 겨우 계약이 성사됐다. 대금 결제 방식은 보증금 오천만 원에 무조건 현찰 선입금제였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초기부터 경쟁이 너무 치열해 자식을 낳듯이 몸 바쳐 대리점을 따낸 여자 점주들도 꽤 많았다고 했다.
산지사방에 흩어져 있던 이 여자 점주들도 폐업 선언 오일째 되는 날, 모두 상경하여 농성에 합류했다. 이들은 마치 오일 전에만 알았어도 폐업을 막을 수 있었다는 듯이 뒤늦게 안 것을 가지고 원망과 개탄을 금치 못했다. 이 점주들 중에 몇몇은 자기가 몸을 준 김응삼 사장을 직접 만나고 싶어 했다. 유난히 예쁜 점주들은 배신감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러나 남자 점주들은 대다수가 농성장 문을 열고 들어서며, “야, 끙삼이. 쌔끼, 당장 나왓!”하고 냅다 소리를 질러댔다. 소맷자락을 걷어올리며 내지르는 소리가 마치 집 나간 개를 찾는 소리 같았다.
대리점들은 지역마다 목마다 맺은 계약이 달랐다. 그래서 이해관계도 얽히고설켜 제각각이었다. 나는 영업 파트의 입장과 요구사항이 통일되지 않는 이상, 이들이 이번 투쟁에서 얻을 것이 전무하다는 판단이 섰다.
그 동안 사장은 ‘오잉’을 한 알에 십 원하는 줄줄이 사탕처럼 엄청 팔았다. 일일마감 시간이면 ‘O&EC’가 임대 사용하는 빌딩 주차장으로 봉고차 두 대가 힘겹게 들어왔다. 봉고차에 실린 20킬로그램 들이 포대자루가 경리부장의 입회하에 내려져 경리과로 옮겨졌다. 한 대에 다섯 자루씩 열 자루가 등짐으로 옮겨졌다. 모두 현찰이라고 했다.
소문에 의하면 이 수금액 가운데 일부는 회사 주거래 은행에, 또 일부는 경리과 금고에, 그러고 남은 일부는 사장 집으로 가는데, 그날그날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는 돈도 있다고 했다. 이 비율이 30 : 10 : 10 : 50이라고 했다. 나는 50이 일본으로 건너가는 방식과 건너간 50이 일본의 어디에 어떻게 쌓이는지 무척 궁금했다. 그리고 이 국부 유출에 대해 모를 리 없는 국가는 무엇을 하는지도 무척 궁금했다.
나는 갑자기 찾아온 취기 때문에 그 많은 돈을 어떻게 일본으로 빼돌릴 수 있었는지, 물어볼 뻔했다. 아마도 물어봤다면 권 전무가 나를 씹듯이 꼭꼭 씹던 닭똥집이 내 얼굴로 튀어나왔을지도 모른다.
사장을 대신한 대리인 권 전무는 금고의 안위 말고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권 전무는 내게 조건을 말하라는 눈짓을 보냈으나, 사업 수주하는 것도 아닌데, 서로가 따로 말로 해야 될 어떤 조건이 있을까 싶었다. 있어도, 조건은 내가 아니라, 먼저 보자고 한 권 전무가 제시하는 것이 옳은 게 아닌가 싶었다.
나는 이 싱거운 자리에서 계속 소금만 찍어 먹다 벌떡 일어섰다. 붙잡아 앉히려는 낌새를 보인 권 전무가 순간 생각을 바꿨는지, 주인에게 가 소주값과 닭똥집값을 따로따로 물어서 계산했다.
이튿날, 내가 권 전무의 회유에도 꿈쩍 않고 꿋꿋하게 노조원들의 입장과 굳은 의지를 전달했다는 소문이 농성장에 쫙 퍼졌다. 이들은 그 증거로 소금 접시를 제시했다. 누군가가 포장마차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가져온 소금 접시가 노조원들의 사기를 충천케 했다. 나는 노조원들의 빛과 소금이 되었다. 노조원들은 매사 신중한, 그래서 더딘 위원장보다 나를 더 따랐다. 점주들이 응원군으로 끌고 온 영업 아줌마들은 대놓고 위원장에게 가오 마담 같은 ‘가오 위원장’이라는 말을 썼다.
회계 및 일반 사무를 맡은 일반관리직과 영업 및 할부대금 수금을 맡았던 일부 회사 소속 직원들은 농성에서 빠졌다. 특히 할부대금 수금은 수금 즉시 자기 몫의 35를 뺀 65만 입금시키면 되었기 때문에 따로 돈으로 문제될 것이 없었다.
총무과장과 경리과장은 지난 주 일요일, 구사대로 둔갑한 깡패들이 들이닥칠 때, 설강수 뒤에서 안내역을 맡았다.
“너희가 응삼이의 개냐?”
농성자들이 내뱉은 이 말에 그동안 갈등을 겪었던 총무과장과 경리과장은 즉석에서 입장 정리를 마쳤다. 개처럼 부려먹던 응삼이도 개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응삼이의 개가 되는 것이, 응삼이의 개라고 욕만 먹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한 듯싶었다.
응삼이의 개 두 마리를 꽁무니 좌우에 달고 당당히 나타난 놈이 설강수였다. 정말 극적 만남이었다. 얼추 십 년 만이었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고함과 함께 열댓 명의 무리들이 나타났을 때, 나는 구사대가 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소나기는 일단 피하라는 가르침에 따라 바리케이드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뒷자리로 물러났다. 그러고는 시계를 확보했다.
쿵! 하고 빡! 하는 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쿵 소리는 바리케이드로 쌓아올린 책상 중앙을 쇠파이프로 내리치는 소리였고, 빡 소리는 쇠파이프를 정통으로 맞은 책상 상판이 반으로 갈라지는 소리였다. 쿵과 빡 사이에 설강수가 버티고 있었다. 나는 처음에 설마 했다. 그러나 마치 지팡이로 빡, 하고 홍해를 가른 모세인 양 무너진 바리케이드 너머에서 버티고 선 사람은 틀림없는 설강수였다.
3
나는 법과 세금으로 만든 국가의 공권력이 정의 앞에서 얼마나 터무니없이 무력한가를 일찍이 고등학교 때 겪었다.
학교에 소속된 학생에게는 공권력보다 교권이 우선이었고 막강했다. 당시의 교권은 학생에게 전지전능했다. 그래서 모든 학생은 누구나 교권 앞에서 평등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순진한 착각이었다. 평등은 값나가는 명품과도 같아서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나의 고교 시절 교권은 양심적이고 정의로운 학생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설강수는 서클 소속원이었다. 서클은 ‘야코파’라 불렸다. 싸움에서는 무조건 선방을 날려 상대의 야코를 죽이는 것이 최고라고 주장하는 설강수가 작명했다. 그러나 정작 설강수는 상대방의 야코를 제대로 죽이지 못해 넘버 스리에도 못 끼는 넘버 포쯤의 위치를 차지했다. 그래서 별명이 ‘엉거주춤’이었다.
넘버 포 설강수는 넘버 원으로 기태천을 섬겼다. 배꼽바지를 입은 기태천은 노래하는 깡패였다. 체격이 장대하고 배포가 큰 그는 성악에 재주가 있었다. 기태천은 주워들은 풍월이 있어 스스로를 ‘음유건달’이라 칭했다. 이 음유건달 아래 열두 명의 똘마니들이 있었는데, 그중 다섯 명이 2학년 8반, 즉 우리 반의 급우였다.
음유건달은 주먹이 아닌 노래와 말로 똘마니들을 다스렸다. 음유건달이 슬픈 곡조를 읊어대면 학급이 따라서 슬퍼야 했고, 기쁜 곡조를 읊어대면 따라서 기뻐야만 했다. 음유건달을 중심으로 한 이 일사불란한 분위기 조성은 설강수가 맡았다. 음유건달이 바퀴의 축이라면 우리는 바퀴살이었다.
담임은 노래와 말로 훌륭하게 학급을 통솔하는 음유건달 기태천을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했다. 그리하여 음유건달은 옆 반에서 불상사가 터진 다음 날, 담임에 의해 새로운 반장으로 임명됐다. 비록 공부는 못 하지만, 타의 모범이 되는 통솔력을 인정하여 발탁했다는 것이다. 주먹과 강압이 아닌, 노래와 말로 학급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은 아무나 갖출 수 있는 게 아니라며 극찬했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옆반의 불상사가 담임에게 안겨준 충격이 그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옆반에서 불상사를 겪은 선생은 상업 담당 선생인데, 별명이 ‘돌망치’였다. 그는 스스로 돌망치라고 했다. 질문에 답을 못 하는 학생이나 신경에 거슬리는 학생들의 정수리를 주먹으로 쥐어박는 것이 징벌 방식이었는데, 충격이 돌망치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이 돌망치를 맞고 기절해 양호실로 실려 간 학생도 있었다. 학생은 대야의 물을 세 번 뒤집어쓰고 세 시간 만에 깨어났는데, 병원 아닌 양호실에 의식불명인 학생을 세 시간씩이나 방치한 선생의 간덩이가 보통이 아니라는 평까지 얻었다.
이 천하무적 안하무인 돌망치에게 한 학생이 도전을 했다. 돌망치는 시험감독을 할 때, 교단 위에 교탁을 올리고, 그 위에 책걸상을 올려 탑을 쌓았다. 그 절묘한 조형성과 기술이 완전히 만수대예술단 수준이었다. 그러고는 그 탑 위로 기어 올라가 우뚝 선 채 오십 분 동안 아래를 굽어본다. 그 모습은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예수 입상을 생각하면 틀림없다. 그 자세로 시종일관하며 답안을 작성하는 학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이 돌망치의 감시망에 미심쩍은 한 학생이 걸려들었다. 돌망치는 즉각 책걸상 위에서 점프했다. 그러고는 징검다리를 건너듯 학생들의 문제지와 답안지가 놓인 책상 위를 짓밟고 달려가 걸려든 학생의 숙인 머리통을 슬리퍼 신은 발로 냅다 걷어찼다. 스핀을 먹인 발길질에 학생이 옆으로 고꾸라졌다. 고꾸라져 처박힐 때, 교탁 위에 쌓아올린 책걸상과 학생의 책걸상이 동시에 무너져 내렸다. 돌망치의 몰상식한 폭력과 번개 같은 동작에 학생들이 곱으로 놀랐다.
몸을 겨우 추스른 학생은 즉각 필통에서 커터 칼을 꺼내 들고 선생을 향해 돌진했다. 학생은 달려들고, 선생은 교실 안을 뱅뱅 돌며 도망 다녔다. 창피했는지, 선생은 끝내 보다 안전한 밖으로 도망치지 못했다. 학생은 소매 깃으로 코피를 닦으며 선생의 꽁무니를 무한정 쫓았다. 학생이 “왜 차? 씨발!”을 외쳐댔고, 선생은 “너 이새끼가 감히…….”를 연발했다고 진상이 밝혀졌다.
이 황당한 추격전은 보다 못한 반 아이들이 떼거지로 엉겨 붙어 말리는 바람에 종결됐다. 학생들 덕에 선생은 칼침을 모면했다.
보복에 실패한 학생은 야코파의 일원이자, 나의 불알친구였다.
“너도 아무런 이유 없이 대그빡을 쓰리빠짝으로 맞아봐라. 존나 모욕감이 안 드나.”
이튿날, 선생과 원만한 타협을 봤다는 친구가 뻐끔담배질을 하며 당시의 심경을 토로했다. 나는 그 원만한 타협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칼로 면상을 긋는 것이 특기인 학생에게 돌망치인들 무슨 이의가 있을 수 있겠는가. 미리 알지 못해 개망신을 당한 게 한스러울 뿐이었을 것이다.
“감기 때문에 코 풀려고 휴지 꺼내는데, 다짜고짜 달려와서 지랄한 거야.”
친구는 주섬주섬 화장지를 꺼내 펼칠 때 돌망치가 달려들었다고 했다. 나는 친구의 말을 믿었다. 신의가 있는 놈이었다.
어쨌든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엉뚱하게도 음유건달이 반장이 된 것이다. 급우들은 이토록 조급하고 극명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담임의 처신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우리는 조회와 종례를 하루에 두 차례씩 했다. 한 번은 담임이 했고, 한 번은 음유건달이 했다. 담임은 어쩌다 생략하는 날이 있었으나, 음유건달은 생략하는 날이 없었다. 나는 나중에 군에 가서 음유건달의 조회와 종례가 유도 점호와 빼닮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담임이 반장을 시킨 음유건달을, 교장이 교련선생을 통해 제2 대대장으로 임명했다.
당시의 고등학교는 자주국방을 위해 군대식 편제도 갖추고 있었다. 일하면서 싸우는 예비군처럼 공부하면서 싸우는 학생 예비군이 있었다. 오직 대입 체력장을 위해 신체를 단련할 때만 쓰이는 운동장이 매주 월요일이 되면 연병장으로 불렸다. 전교생은 학년별로 삼개 대대로 편성됐고, 삼개 대대를 묶어 연대장을 임명했다. 교장의 명을 받아 천이백여 명을 호령하는 연대장이 학생회장이었다. 신성해야 할 학군 조직에 불량서클의 짱인 음유건달을 전격 발탁하여 대대장으로 앉힌 것이다.
음유건달은 처세에 능해 조숙했다. 그는 담임을 우상화시켜 먼저 챙겼다. 그는, 내가 당신을 스승님으로서 ‘오야붕’으로서 신뢰하고 존경합니다,라는 것을 누구나 의심 없이 단번에 느낄 수 있도록 행동했다.
담임은 불만이 없었다. 모든 평가지표상으로 볼 때 학급이 일취월장했다. 학급비 걷기, 조기청소, 환경미화는 물론, 학급별 체육대회도 우승했다. 심지어는 학급의 연합고사 성적도 음유건달의 지휘하에 조종됐다. 돌망치처럼 예민한 선생을 제외한 대다수 선생들은 학급 전체가 조직적으로 짜고 예행연습까지 거쳐 저지르는 부정행위를 찾아내지 못했다. 커닝 방법과 부정행위 방법은 음유건달의 지휘하에 계발됐다. 시험 중에 우측에서 선생을 부르면 좌측에서 커닝을 했고, 앞에서 선생을 부르면 뒤에서 커닝을 했다. 거짓 발작을 일으켜 감독 중인 선생을 혼란에 빠뜨렸고, 시험문제가 문제 있다며 시비를 붙는 놈도 있었다. 급우들은 이구동성으로 가세해 이런 희생양에게 엄호와 지원 사격을 해 주었다. 일심동체가 된 육십이 명이 한 명의 선생을 상대하는 것은 쉬웠다. 학급을 위해 자기를 희생한 급우는 다음 번 시험에서 만회토록 우선 배려했다.
이렇게 해서 학급 전체를 아우르고 모든 평가 성적을 상위 수준으로 끌어올린 음유건달은 급우들에게 이런 노력과 성과에 대한 대가를 요구했다. 그는 절대복종하에서 학급이 한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비용이 든다고 했다.
“현실을 긍정해야 미래가 있다”라는 담임의 훈시를 음유건달이 원용했다. 음유건달은 “현실을 긍정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라고 뒤집어 사용했다.
설강수가 말발이 약한 음유건달을 거들며 한 마디 했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생각하라는 얘기야. 적자만이 생존 가능하다는 뜻이지.”
음유건달이 격려차 유식한 설강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지금이 없으면 내일도 없다.”
음유건달의 격려에 고무된 설강수가 건들거리며 사족을 달았다.
설강수는 음유건달에게, 음유건달은 담임에게 복종했으며, 담임은 교장에게 충성했다. 이 틀 속에서 학급의 질서와 법칙이 단단하게 만들어져 운용됐다.
음유건달의 독재와 횡포는 자치라는 명분 속에 ‘합법적’으로 벌어졌다. 모범적인 학급 운영을 위하여 일주일에 두 차례씩 학급비를 거뒀다. 음성적 갹출이었다. 음유건달과 똘마니들은 이 돈으로 담배를 사 피우고, 니나노집에 가서 술을 사 퍼마시고, 역 근처 창녀촌의 여자를 샀다. 이렇게 돈을 쓰는 근거가 학급 운영을 위한 기획 및 회의비라고 기록됐다.
그러고 남는 돈으로 학급비의 횡령과 유용을 눈가림하기 위한 이벤트를 했다. 삼복에는 매일같이 학교 담 밖으로 지나가는 과일행상에게서 수박을 한 통 샀다. 그리고 ‘까치담배’를 파는 교문 앞 구멍가게에서 흑설탕과 얼음을 샀다. 잭나이프로 수박을 썰어 주전자에 담고 설탕과 얼음을 가득 채웠다. 이 화채를 무더위와 분필가루에 힘겨워하는 담임에게 드리고, 매 시간 수업하러 들어오는 선생들에게도 나눠주었다. 조금씩 나눠주고 남은 것은 음유건달과 패거리 다섯 명이 꾸역꾸역 먹어치웠다.
겨울에는 날밤과 날고구마를 포대째 사서 날마다 난로에 구웠다. 이것으로 담임과 선생들을 대접했다. 다른 계절에는 토시나 양말 등을 선물했다. 선생들은 우리 학급에 오면 정이 넘친다고 했다.
우리 학급은 전교 모범 학급으로 평가받았다. 급우애로 똘똘 뭉쳐 단결?화합 정신이 뛰어나고, 작은 정성으로 어른 공경을 실천할 줄 안다는 것이 한결 같은 평가 사유였다. 교장은 이런 우리 학급을 위해 없는 상(賞)을 만들어 주었다. 최우수모범학급 상이었다.
짧은 시간에 담임과 선생들로부터 사랑과 신뢰를 듬뿍 받은 음유건달은 음악 선생에게 발탁되었다. 음악 선생은 마음씨만큼 재능이 넘친다며 학교의 명예를 걸고 음유건달을 성악가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이렇게 되자, 음유건달은 서클의 짱으로서 행동할 시간이 없었다. 예비 성악가가 더 이상 밤의 본정통(本貞通)을 돌며 맞짱을 뜨고 다닐 수는 없었다. 또 시간이 있다고 해도 예술가와 깡패의 길은 서로 달랐다.
음유건달은 성악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면서 ‘엉거주춤’ 설강수를 후계자로 임명했다. 그 동안 머리와 혀를 써서 보필해 준 대가였다. 그러나 설강수가 받은 권력은 서클의 짱뿐이었다. 음유건달이 직권으로 승계시켜 줄 수 있는 권력의 전부였다. 아직도 엉거주춤한 설강수는 반장도 될 수 없었고, 대대장도 될 수 없었다.
덕이 없는 설강수는 주먹을 통해 급우들에게 복종과 존경을 강요했다. 그는 담임의 지시에 의해 급우들이 새로 뽑아 담임이 임명한 반장을 무시하며 핍박하고 구속했다. 급우들은 설강수의 무모한 지배에 반항했다. 힘으로는 반항할 수 없기에 설강수의 존재를 무시했다. 쳐다보지 않았고 말을 걸지 않았다. 묻는 말에만 답했다. 그것도 마치 억지로 청문회에 불려나간 증인처럼 예, 아니오로만 답했다. 소속원들도 설강수를 믿고 따르는 것 같지 않았다.
4
처음 쳐들어온 날, 설강수가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처럼 쇠파이프를 짚고 서서 엄히 꾸짖어 일갈했다.
“뭐야? 이거……. 죄다 아줌마들 아냐?”
좌우를 훑어 농성장을 살핀 설강수가 같잖다는 듯 비웃었다. 폭력을 쓰기에는 매우 자존심이 상한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아줌마들 뒤에 비록 숫자는 적지만, 남자 노조원들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다들 이거 보이지?”
설강수가 쇠파이프로 두 도막난 책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말이 없었다.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만 크게 들렸다. 설강수의 초장 야코’ 죽이기에 강한 충격들을 받은 때문이었다.
“이게 여러분의 꼴통이라고 생각해 봐. 정말 끔찍하지. 그러니 아줌마들은 속히 집에 가 밥들 하셔, 쓰벌! 그라고 치마폭에 숨은 먹물 아저씨들은 우리 애들하고 한판 붙을 생각들이 아니면, 내일 정오까지 여길 말끔히 비워. 알겠어?”
모두가 침묵했다.
“말이 없다는 건 서로가 약속이 됐다는 거여.”
권 전무의 말을 모아보면, 김응삼 사장에게 남은 뒤처리는 세 가지였다. 첫째는 기밀장부가 들어 있는 금고를 무사히 되찾는 것이었고, 둘째는 두 개 층을 차지한 천여 평의 사무실을 빨리 비워주고 건물 보증금을 돌려받는 것이었고, 셋째는 농성하는 직원들에게 빨리 퇴직금을 정산해 주어 사회적?정치적 파장 없이 폐업 절차를 깔끔히 마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농성 직원들의 저항에 부딪쳐 쉽지가 않았다. 사장실을 기습해 빼낸 금고는 농성장 중앙에 신주단지처럼 모셔져 있었고, 입구마다 바리케이드로 틀어막은 천여 평의 농성장은 노조원들에 의해 점령당한 상태였고, 위장폐업 철회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며 노조원들이 이미 두 차례에 걸쳐 경찰청에서 세종문화회관까지 기습 가두시위를 한 바 있었다.
나는 농성자들의 약점과 한계, 그리고 사장의 약점과 한계를 미루어 짐작하고 있었다. 농성자들은 무조건 단결이 무기였다. 그런데 분야별로 입장과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그래서 한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치명적 약점이 있었고, 또 농성의 주체 및 추동세력이 지식인, 즉 기자들이라는 한계도 무시할 수 없었다. 숨어서 나타나지 않는 적도 문제였다. 그래서 농성 오 일째를 넘어서던 날, 해결 방안을 놓고 비노조원인 대리점 점주들과 노조원인 기자들 간에 다툼이 벌어졌다. 그리고 이 다툼이 끝나자, 기자들 간의 다툼이 또 벌어졌다.
문제가 입장과 이해관계만은 아니었다. 배우고 보고 들은 것이 많은 데다가 나름대로 머리까지 좋은 기자들이 개별적인 분석력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각자의 가상 시나리오를 짜 디밀었다. 그들은 노사 쟁의가 머리가 아닌 몸으로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결국 분열 조짐이 보였다.
사장은 사장대로 ‘내 사업 내가 그만둔다는데 뭐?’ 하는 식의 안이한 위장폐업 선언으로 예기치 못한 봉변을 치르고 있었다. 무엇보다 설마 하는 사이에 금고를 뺏긴 것이 치명적이었다. 농성이 길어져 원성이 높아갈수록 사장에 대한 공적?사적 비리가 낱낱이 드러나는 것도 지랄 같은 문제였다. 뇌물수수 의혹과 관련된 공직자들과 정치인들의 이름이 슬슬 거명되는 것도 사장으로서는 큰 부담이었다. 농성자들의 몸이 거리로 나오는 것은 일단 백골단을 동원해 틀어막을 수 있었으나, 말이 자꾸 밖으로 빠져나와 입소문과 언론을 타고 퍼지는 것은 손 써볼 도리가 없었다. 농성자들의 주둥이를 일일이 틀어막을 방법은 없었다.
그래서 사장은 퇴직금과 위로금을 3 퍼센트 상향 조정해서 디밀었다. 그러나 노조원들은 무조건 위장폐업 철회를 요구했고, 대리점 점주들은 보증금과 선입금금의 전액 환불 및 피해보상을 요구했다. 사장이 들어주기 버거운 요구였다. 점주들은 사장이 폐업하는 이유를 모르거나, 아예 무시하는 것 같았다.
사장과 권 전무의 전략은 최대한 빠른 시일에 농성자들을 아주 잘게 쪼개서 먼지처럼 흩어버리는 것이었다.
나는 농성자들의 단결과 분열 사이에 엉거주춤 있었다. 노회한 권 전무가 나의 이중성을 알아채고 접근했다. 당근은 권 전무가, 채찍은 설강수가 쥔 것 같았다.
나는 농성장 임시 무대에서 재롱을 떨었다. 응삼이와 싸우느라 심신이 지친 농성자들이 만담과 익살에 잠시 즐거워했다. 특히 산지사방에서 올라온 점주들은 가사도 모르는 민중가요를 립싱크하는 것보다 내 재롱을 더 좋아했다.
씻지 못하고 옷을 갈아입지 못한 농성자들이 내뿜는 퀴퀴한 냄새 속에서, 페인트와 신나 냄새 속에서 나는 김응삼을 끙끙대며 팔도 사투리로 성토했다. 농성자들이 서로의 꿉꿉한 살 냄새를 잊고 열렬히 호응했다.
나는 재롱을 마무리지으며, 경리과 수장고에서 가져온 빈 포대자루를 뒤집어썼다.
“끄으응, 삼! 이 웬수 같은 돈 냄새, 마누라 속곳 냄새보다 좋네.”
좌중이 까르르 웃었다.
“빈 자루만 남겨두고 끙삼이가 떠났습니다. 어디 보자…… 우리 마누라 빤스 한 장 사 줄 만 원짜리 한 장 안 남았나…….”
빈 자루를 뒤집어 탈탈 터는 시늉을 했다. 먼지만 털렸다.
“하기사 우리 끙삼 씨가 내 마누라 빤스를 사 줄 이유는 없지.”
나는 포대자루를 쥐어짜는 시늉을 하며 토를 달았다.
“내일은 하늘님이 우릴 위해 비를 잠시 멈추시겠답니다. 오랜만에 위원장님 모시고 다 같이 산책 나갑시다. 어때요?”
“좋습니다.”
좌중이 씁쓸한 웃음 끝에 힘차게 화답했다.
5
나는 밖으로 나와 걸었다. 아직은 농성장을 봉쇄하지 않아 드나들 수가 있었다. 임대 건물이 주는 이점이었다. 봉쇄를 하면 우리만이 아니라, 건물 입주자 전체와 방문객 전체가 드나들 수 없었다.
비가 마른먼지처럼 풀풀 날렸다. 먼지 같은 비는 척후병인 양 은밀히 내려와 살갗과 옷에 거머리처럼 들러붙었다. 비는 88 올림픽의 성공을 기원한다며 무분별하게 나붙은 플래카드와 배너에도 들러붙어 늘어뜨려 놓거나 찢어놓았다. 비는 길바닥에 곧바로 떨어져 스미기도 했다. 이렇게 스민 비가 내가 사는 방바닥 위로 모두 솟아오를 것 같아 몸서리가 쳐졌다.
기습적으로 노조 신고를 마친 이튿날 새벽에 꿈을 꿨다. 꿈이 꿈같지 않아 꿈속에서 또 꿈을 꾼 것 같다. 팔색조를 쫓았다. 새는 꽁지 끝으로 제 몸의 팔색을 뽑아 뿌리며 날았다. 날 수 없는 나는 허둥지둥 뛰었다.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겠다는 생각에 길가의 돌멩이를 집어던졌다. 몇 번의 헛손질 끝에 던진 돌이 팔색조의 재색 꽁지에 겨우 맞았다. 나는 중심을 잃어 허공에서 뒤뚱거리는 팔색조를 향해 두 손을 벌린 채 달렸다. 몸을 추스른 새가 허공을 힘겹게 선회했다. 조금만 더 움직이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몸이 무거워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잿빛 저수지가 턱밑까지 차올라 펼쳐졌다. 나는 팔색조를 향해 뻗었던 팔을 거둬 물속을 저었다. 새가 물속으로 잠기는 내 머리 위를 날았다. 새는 팔색조가 아닌, 단색조였다.
버둥거리다 가까스로 눈을 떴을 때, 온몸이 흠뻑 젖은 것을 알았다. 나는 땀인 줄만 알고 수건을 찾아 닦았다.
창밖에서 올지 안 올지 모르겠다던 장맛비가 다시 내리고 있었다. 반지하방이라 창문턱과 마당 높이가 같았다. 누가 마당을 지나가면 창으로 신발 바닥이 보였다. 콘크리트로 덮은 마당에 떨어진 비가 튀어 올라 창문턱을 넘어 들어왔다.
옷가지를 꾸려 창문 아래 놓은 쇼핑백이 물을 먹어 묵직했다. 벽지에 무늬를 그리며 흐른 물기를 닦았다. 그러고는 계속 물길을 좇아 방바닥에 고인 물을 훔쳤다. 물은 창문 아래만 고인 것이 아니었다. 비닐장판을 들췄다. 호수였다. 물기가 아닌 물이 찰랑거렸다. 물은 걸레나 빗자루가 아닌 쓰레받기로 퍼내야했다. 그러나 물은 퍼낸 만큼 다시 생겼다.
쓰레받기를 내던지고 집주인에게 달려갔다. 주인은 생뚱맞다는 표정으로 그럴 리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내 손에 끌려와 방바닥에서 찰랑대는 물을 보면서도 주인은 이럴 리가 없다는 말만 또 반복했다.
주인은 내 방과 붙어 있는 다른 반지하방의 멀쩡함을 증거로 내세웠다. 주인은 죽자 사자 항의하는 나를 달래느라, 장마철이 끝나면 업자를 불러 방수작업을 다시 할 테니 기다리라고 했다.
이사 온 지 한 달 만에 한 평짜리 부엌을 포함하여 여섯 평짜리 방이 완전히 수장됐다. 아내를 데려와 함께 살기 위해 부랴부랴 얻은 보증금 오백만 원에 월 십오만 원짜리 방이었다.
나는 비닐쇼핑백 속에서 물 먹은 속옷과 체육복을 꺼내 물기를 짰다. 그리고 다시 쇼핑백에 넣어 들고 방을 나왔다. 농성장에서 널어 말려 입을 작정이었다.
나는 그날, 시내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갑자기 팔색조가 떠올라 지갑을 뒤져 복권을 열 장 샀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물이 솟는 방에 아내를 들일 수 없었다. 그렇다고 만삭의 아내를 언제까지 지방에 홀로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돌봐줄 일가붙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만삭의 몸이 되어 직장까지 그만둔 아내였다. 백수였던 나를 그동안 벌어 먹인 아내였다. 나는 직장을 버리고 애를 낳겠다는 아내를 필사적으로 말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내의 희망은 내가 아니라, 아기였다.
방은 당장 이사를 가야 해결될 문제였다. 올림픽복권은 오백 원짜리 한 장만 당첨되고 모두 꽝이었다. 내가 꿈에 본 것이 단색조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꽝이 된 복권을 지갑에서 꺼내 비 오는 길거리의 휴지통에 버렸다.
서울역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나는 흠뻑 젖어 있었다. 안개비 속에서 서울역을 등지고 바라본 대우 빌딩은 여전히 건재했다. 대우 빌딩이 건재한 한, 내 꿈 또한 건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삼 개월 전 선배의 힘으로 겨우 O&EC에 입사하여 서울에 입성했다. O&EC는 ‘오리지널 잉글리시 엔터에듀케이션 컴퍼니’의 약자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지난 삼 개월 동안 여기를 다섯 번이나 찾아와 울었다. 상경 직장인으로서 어려움과 서러움을 다섯 번 가량 겪었다는 얘기다.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서서 대우빌딩을 바라봤다. 남산타워가 서울시민의 상징이라면, 내게 대우빌딩은 오랜 우상이자 기원을 담고 있는 탑이었다. 초등학교 수학여행 때 완행열차를 여섯 시간 남짓 타고 올라와서 처음으로 대우빌딩을 봤다. 서울보다 서울 앞에 버티고 선 대우빌딩을 먼저 본 것이다. 나는 내 시선을 가로막은 거대한 초콜릿색 빌딩을 보고 무척 놀랐다. 규모와 웅장한 위용 때문이었다. 나는 그때 대우빌딩을 꿈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내가 저 안에 있든지, 아니면 저 너머 어딘가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남산도 남산타워도 대우빌딩 옆구리에 야트막하게 빌붙어 겨우 보였다. 그래서 나는 서울역을 등지고, 당차게 붙박여 있는 한국의 중심, 대우빌딩을 한참동안 노려봤다. 담임선생이 붙박이인 나를 뽑아 낚아챌 때까지 나는 그 거대한 탑을 향해 기원했다.
나는 탑돌이를 하듯이 대우빌딩을 크게 감싸 한 바퀴 돌았다.
나는 이 농성에서 얻을 것이 없다면, 더 머뭇거리지 말고 속히 떠나야 했다. 물이 솟는 방을 얻느라 빌린 원금의 이자를 곧 지불해야 하고, 방세를 내야 하고, 당장 먹고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농성장에서는 돈이 나오지 않았다. 회사가 이미 망했다고 공표했으니, 무직자가 되어 은행대출도 받을 수 없었다. 사채는 쓸 수 없는 노릇이었다. 사채는 요단강이었다.
나는 남산으로 오르는 비탈에서 동전을 꺼내 라면을 사먹었다. 점심과 저녁 사이였다. 오백 원에 오뚜기 라면과 허연 김치 세 조각이 나왔다. 라면을 먹고 또 걸었다. 꼭대기에서 서울을 내려다봤다. 서울이 흐려 멀리서 가물거렸다. 나는 안경을 벗고 눈자위를 닦았다.
위에서 멀리 내려다보는 서울은 매정하고 막막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구할을 야무지게 챙겨 쥐고 있기에 만만해 보이기도 했다. 이 많은 구할 속에서 내 자리를 찾지 못하면, 일할 속에서 찾을 가능성은 더욱 희박했다. 아니, 나는 이미 일할 속에서 아무것도 찾지 못해 상경한 사람이었다. 때문에 저 구할의 틈 속에서 내 몫을 꼭 찾아야 할 터였다.
잿빛 속에서도 날이 저물고 있었다. 서울의 불빛은 수평으로 번지기 전에 수직으로 치솟았다. 어둠 속에서 고층빌딩의 불빛들이 별들과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그 아래로 헤드라이트를 밝힌 차들이 바삐 흘러갔다.
나는 남산을 등지고 수직으로 뻗어 올라간 빌딩의 불빛 속으로 걸었다. 허우적허우적 걸었다. 숭례문을 지나 시청 앞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번개가 치고 뒤따라 소나기가 내렸다.
O&EC가 세든 건물 앞을 석 대의 닭장차들이 틀어막고 있었다. 그런데 닭장차 안팎에 당연히 있어야 할 투구 쓴 전경들이 없었다. 빈 차만 남겨 둔 채 전경도 백골단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 터무니없는 공백 앞에서 몸서리쳤다. 예감이 맞는다면, 지금 구사대가 농성장을 기습하여 유린하고 있을 터였다. 내일 가두시위가 있다는 계획을 누군가가 권 전무 측에 찔렀을 것이다. 그래서 먼저 구사대를 투입했을 것이다. 집단폭력을 방관할 수밖에 없는 전경과 백골단은 사전 연락을 받고 아예 자리를 비워 구사대의 기습을 간접 지원했을 것이다.
나는 닭장차 틈을 비집고 들어가 농성장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수위가 내 몸에서 대책 없이 흘러내리는 물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가 땡, 하는 소리를 지르며 쩍, 하고 열렸다. 신경이 예민해진 탓인지 땡과 쩍 소리가 무척 크게 들려서 흠칫 놀랐다. 그러나 정작 더 크게 놀란 것은 엘리베이터에서 불쑥 튀어나온 설강수였다. 설강수는 마치 관에서 살아난 시체처럼 그로테스크한 모습으로 엘리베이터를 걸어 나왔다.
설강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뺨을 얻어맞은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설강수가 걸음을 멈췄다. 검정색 양복에 빨간 점박이 넥타이를 맨 설강수도 놀랍다는 듯이 잠시 나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곧 입꼬리를 비틀어 미소지었다. 눈에 그의 비웃음이 박힐 때, 그가 내뿜는 향수가 코끝을 찔렀다. 알은척을 하고, 뭔가 말을 붙일 것 같이 머뭇거리던 설강수가 그대로 내 앞을 스쳐 현관을 향해 걸어갔다. 공작새의 날개처럼 좌우와 뒤에 거느린 오십여 명의 똘마니들 속에서 ‘가오’를 잃지 않으려는 행동 같았다. 똘마니들의 검은 구두 속에 둘러싸인 설강수의 백구두가 빛을 발했다.
“또 보자. 쥐새끼 같은 놈.”
설강수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말했다.
나는 애써 설강수를 마주 바라봤다. 십 년 전의 설강수가 십 년 뒤의 나를 비웃고 있었다. 나는 심한 모멸감에 뛰어가 달려들고 싶었다.
설강수와 똘마니들이 다녀간 농성장은 도굴된 고대의 무덤처럼 고요하고 적막했다. 바리케이드는 무너져 흩어졌고, 벽마다 빼곡히 써 붙였던 구호들은 모두 찢기어 발자국이 찍힌 채 바닥에 굴러다녔다. 가두시위용 피켓과 현수막도 성한 것이 없었다.
지치고 잔뜩 겁에 질린 농성자들은 금고 주위에 들러붙어 있었다. 금고를 사수하다가 부상당한 농성자들은 여기저기 흩어져서 신음을 토하며 응급처치를 받고 있었다.
설강수의 ‘또 보자’라고 한 말이 금고를 찾으러 다시 오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노조원들이 폭력 증거 수집을 위해 부상당한 노조원들과 부서진 집기들을 일일이 촬영했다. 구사대의 폭언이 녹음된 테이프를 재생시켜 확인하는 노조원도 있었다.
나는 자리를 비운 것이 미안했다. 약국으로 달려가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털어 구급약과 빵을 사왔다.
나는 말없이 무너진 바리케이드를 다시 쌓고, 부서진 피켓들을 수리했다. 시야가 자꾸 흐려져 피켓을 수리할 때, 망치로 손가락을 찧었다. 손가락이 멍들고, 피가 흘렀다.
습격당한 뒷정리를 하는 사이에 노조원들이 하나둘씩 짐을 싸서 빠져나갔다. 그들은 가면서 끝까지 함께 못 해 미안하다고 했다. 스스로 나가고, 부모가 와서 데려가고, 남편과 아내 그리고 애인과 친구들이 와서 데려갔다. 나는 사는 방식이 다른 그들을 잡아둘 재주가 없었다.
비노조원을 빼고 이백여 명으로 시작된 노조원이 팔십여 명으로 줄었다. 노사 간의 싸움에서 노의 최고 최대 무기는 숫자인데, 농성 팔일 만에 육십 퍼센트가 빠져나갔다는 것은 파장 분위기로 봐야 했다.
부상자 치료가 끝나고 망가진 농성장이 수습되자, 사태 수습과 향후 대책을 위한 긴급총회가 열렸다. 총회는 십인십색, 백가쟁명이었다. 흥분과 분노가 가시지 않아 이성과 합리성과 타당성이 실종된 채 증오만 무성했다. 그 칼날 같은 증오로 농성자들끼리 서로 베고 찌르고 막고 난리였다. 느슨한 투쟁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고, 위원장과 집행부의 인책론이 대두됐다.
총회는 권 전무의 바람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팽팽한 의견 대립 속에서 갖가지 방안이 치고받으며 서로에 대한 성토와 욕설로 다시 아수라장이 됐다. 아예 농성 시작 자체를 문제 로 보는 노조원도 있었다. 처음부터 사장과 대화하지 않고 덜컥 노조부터 결성하여 뒤통수를 친 바람에 국물도 없게 됐다고 주장하는 축도 있었다. 우리가 사장을 배신했다고도 말했다. 충격받은 위원장은 총회를 수습할 기운이 없었다. 집행부 또한 구사대의 기습을 예견하지 못했고, 또 기습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탓에 할 말이 없었다. 위원장은 우리가 자꾸 다퉈 더 이상 이탈하는 노조원이 생기면 안 된다는 말만 신음처럼 되뇌었다.
나는 긴급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십 분간만 휴회를 하자고 했다. 그러고는 위원장과 쟁의부장을 복도 끝으로 불러 따로 만났다. 나는 내부 정보를 빼돌리는 간자(間者)를 잡아낼 것과 여당인 민정당사 점거농성을 제의했다. 위원장과 쟁의부장이 흠칫 놀랐다. 그러나 내 말의 속뜻을 알아들은 그들이 집행부 긴급회의를 열었다. 그러고 난 뒤에 위원장과 집행부가 총회에서 숨은 간자 색출을 내세워 겨우 회의의 주도권을 잡았다. 이렇게 해서 만장일치로 합의된 것이 구사대를 법에 제소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민정당사 점거농성에 따른 작전 논의 중에 뜻밖의 일이 터졌다. 구사대에게 맞아 병원으로 실려간 임신부가 유산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논의를 중단하고 위원장과 함께 농성장을 빠져나왔다. 문병을 하는 것이 먼저였다.
계단 입구에서 위원장이 화장실에 잠깐 들른 사이에 한 노조원이 급히 다가왔다. 그가 쪽지를 건넸다. 받은 쪽지를 재빨리 펼쳐 읽었다.
서부역 건너편 물새다방
저녁 9시
나는 전처럼 쪽지를 찢지 않았다. 그러고는 쪽지를 건네고 돌아선 남자를 불러 세웠다. 지난번에도 이 남자가 권 전무의 말을 전했다. 이 남자가 간자였다.
“민정당사 점거농성 계획은 전하지 마시오.”
나는 그의 자필 쪽지를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전달하면 간자를 찾고 있는 농성자들에게 쪽지를 공개하겠다는 협박이었다.
빗길을 더듬거리며 병원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설강수를 떠올렸다.
변하지 않은 그의 당당함의 근원이 새삼 궁금했다. 그래서 여전한 당당함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음유건달로부터 권력 승계를 받은 지 한 달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설강수는 아침조회를 끝낸 담임이 나가자마자 교단 위로 성큼 올라섰다. 놈은 바지주머니를 뒤적여 알록달록한 천 쪼가리를 꺼내 머리에 뒤집어썼다.
“아다라시를 따 먹었다.”
손바닥만 한 꽃무늬 팬티였다. 꽃무늬 팬티를 뒤집어쓴 설강수는 니나노집에서 따 먹는 늙은 작부들과 질이 질적으로 다른 ‘아다라시’를 따먹었다고 자랑했다. 놈은 말 탄 개선장군처럼 들떠 흥분하며 신성한 교실을 능멸했다. 급우들이 수치심에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놈은 의미를 모르는 새끼들이라며 화를 냈다. 급우들이 어쩔 수 없이 박수를 쳤다.
그런데 급우들이 보낸 박수가 과했기 때문인지, 팬티를 뒤집어쓴 지 석 달쯤 지났을 때 사단이 생겼다. 팬티 주인이 임신을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나는 여자 나이 열일곱에도 섹스와 임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 소문이 널리 퍼질 즈음에 자전거 도난사건이 생겼다. 천여 대의 자전거가 등하교를 하는 학교에서 자전거 도난 사건은 가끔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열 대의 자전거가, 그것도 구입한 지 얼마 안 되는 값비싼 자전거만 골라 도난당한 것은 개교 이래 처음이라고 했다. 자전거는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야코파 패거리들과 더불어 감쪽같이 사라졌다.
범인과 범행동기가 뻔했다. 나는 확실한 심증을 믿고 범인을 추적했다. 도난당한 피해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만나 개별 자전거의 상표와 특징을 조사했다. 그리고 이 조사 결과를 들고 학교 반경 이 킬로미터 이내에 있는 중고 자전거포와 수리점을 찾아다니며 물증과 증언을 확보했다. 사진관에서 빌린 똑딱이 카메라로 찾아낸 물증들을 찍었다. 나는 이틀을 결석했다.
내가 범인 색출에 열을 올린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낡은 내 자전거는 도난당하지 않았다.
체육시간에 축구시합을 할 때였다. 체육 선생은 패만 나눠주고 교무실로 갔다. 두 패로 나뉘었는데, 나는 설강수 편이었다. 지는 편이 자장밥을 사내는 경기였다. 0 : 1로 우리 편이 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골을 몰고 페널티 박스 왼쪽을 급히 치고 들어갈 때였다. 나를 막고자 상대팀 수비수 세 명이 달려오고 있었다. 설강수가 건너편에서 패스를 해 달라고 손을 들어 고함을 질렀다. 설강수는 골키퍼만 달랑 앞에 둔 무인지경에 있었다. 당연히 패스를 해야 하고, 그러면 골이 만들어질 상황이었다. 설강수가 다시 고함쳤다. “야이 씨부랄 개새끼야, 빨리 차!” 고함이 명령이고 욕이었다. 순간 나는 공을 밟고 넘어질까 하다가, 골문 위로 공을 힘껏 내질렀다. 허공에 붕, 하고 떠오른 공이 학교 담장을 넘어 큰길 쪽으로 날아갔다. 끼이익, 하며 자동차들이 날아온 공을 피해 급브레이크를 밟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설강수가 공을 찾아오려고 달려 나가는 나를 불렀다. 그러고는 놈은 내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라고 명령했다. 나는 놈에게 무릎을 꿇어 용서를 빌어야 할 이유를 몰랐다.
빡! 하는 소리와 함께 눈앞에서 불꽃이 튀었다. 나는 정신이 아뜩해지며 나가떨어졌다. 몸을 급히 추슬러 일어난 나는, ‘씨발!’ 하며 욕설을 내질렀다. 이 욕설을 신호로 설강수의 똘마니 네 놈이 엉겨붙어 나를 개패듯이 팼다.
두들겨 맞고 나서 속개된 경기에서 나는 멋지게 한 골을 쑤셔넣었다. 비겼기 때문에 자장밥은 각자 사 먹든지 말든지 할 일이었다. 나에게 농락당했다고 판단한 설강수가 시합이 끝난 뒤, 따로 불러 훈계했다.
“인생 복잡해지게 반항하며 살지 마라. 그러다가 일찍 뒈지는 수가 있다.”
나는 훈계가 같잖아 반응하지 않았다. 설강수의 훈계는 패자의 자기 위안이었다.
나는 수집한 물증과 증언을 경찰에 즉각 넘길까 하다가 생각을 바꿨다. 담임에게 자각의 기회를 주고, 학교의 명예를 참작해 담임에게 넘겼다.
그런데 담임의 반응이 예상 밖이었다.
“놓고 가.”
교무실 한쪽 구석에서 내 신고를 접수한 담임이 내지른 말이었다. 조사한 사진과 문건을 두고 얼른 나가보라고 했다.
나는 신고에 상응하는 어떤 조처가 있을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열흘이 지나도 아무 조처가 없었다. 나는 조처에 관해 조심스레 담임에게 물었다.
“이새끼! 너, 빨갱이야?”
“예?”
내가 놀라 되물었다.
“친구들을 찔러 박는 건 오호담당제를 하는 빨갱이 새끼들이나 하는 짓이야, 임마.」
나는 졸지에 급우를 찔러 박은 파렴치한 빨갱이 새끼가 되어 교무실을 나왔다.
“저 골통 같은 새끼!”
담임이 내 뒤통수에 대고 화풀이하듯 욕을 퍼부었다.
빨갱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아니라는 확신이 있어 참을 수 있었으나, 골통이라는 말을 견딜 수 없었던 나는 설강수 패거리를 경찰에, 담임선생을 도교육위원회 감사반에 각각 고발했다. 그러고 나는 자퇴했다.
택시가 병원 현관 앞에 멈췄다. 위원장과 나는 곧 병실을 찾았으나 들어갈 수가 없었다. 병실 입구에 검정 양복 차림의 험상궂은 사내 두 명이 떡 버티고 서 있었다. 복도에도 같은 차림의 사내들이 대여섯 명가량 깔려 똥 찾는 강아지처럼 어정거리고 있었다.
“경찰은 대체 뭐하느라고 아직도 안 오는 거야?”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든 기자들이 시계를 들여다보며 신고를 받고도 출동하지 않는 경찰을 원망하고 있었다. 사내들이 취재를 막는 것 같았다.
복도에서 오 분가량 망설이던 나는, 여기를 빨리 떠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깍두기 중 한 명이 위원장을 알아본 듯 동료 깍두기와 무언가를 속닥거리는 낌새를 본 때문이었다. 만약 위원장이 저놈들 손에 납치 감금이라도 되는 날이면, 일이 예측 불가하게 꼬일 수 있었다. 나는 재빨리 위원장의 손을 잡아끌었다.
현관 앞에 줄줄이 대기 중인 택시를 탔으나, 택시는 소낙비로 더욱 번잡해진 병원 입구를 빠져나가느라 하염없이 더듬거렸다. 빗발과 바람이 거세 차량을 통제하던 직원도 보이지 않았다. 택시가 더듬거리는 사이에 깍두기들이 탄 승용차가 따라붙어 상향등을 껌벅였다. 택시기사가 따라붙는 승용차에 신경을 쓰며 망설였다. 내가 빨리 가달라고 재촉했다. 큰길로 나가 교통신호에 걸렸을 때, 깍두기들이 승용차를 옆에 가져다 붙이며 택시를 길가에 세우라고 윽박질렀다. 물에 빠진 생쥐처럼 흠뻑 젖은 깍두기가 창문 밖으로 머릴 빼내 욕설과 고함을 내질렀다.
나는 택시기사에게 급하게 앞뒤 사정을 간추려 설명하고 내처 달려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잠시 난색을 보이던 택시기사가 승용차에서 야구방망이를 들고 막 내려서는 깍두기들을 보는 순간, 얼른 차를 출발시켰다. 야구방망이로부터 차를 보호하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 다행히 택시는 맨 앞에서 신호 대기 중이었다.
깍두기들이 택시를 쫓아 뛰다가 다시 승용차에 오르는 사이에 일단은 따돌렸으나, 계속해서 따돌리는 것은 무리였다. 나는 기사에게 앞에 보이는 네거리를 돌자마자 정차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위원장에게는 정차하자마자 차에서 내려 다른 택시를 잡아 탈 것과 다른 깍두기들이 농성장 입구에서 위원장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까 농성장으로 들어가기 전에 집행부에 연락해 에스코트를 받으라고 일렀다.
네거리를 돌아 택시가 멈추고 위원장이 내렸다. 그러고 나서 택시가 다시 달렸다. 나는 나까지 내리라고 안 하는 택시기사가 고마웠다. 그러나 깍두기들의 승용차가 일차선 도로에서 택시 옆구리를 밀치며 차머리를 막아섰을 때, 나는 택시에서 내렸다.
승용차에서 내린 세 명의 깍두기가 중앙선 근처에서 나를 에워쌌다.
“사람 살려!”
나는 비바람이 치는 도로 복판에서 행인들을 향해 힘껏 소리쳤다. 비 오는데 ‘불이야!’를 외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행인들은 소리치는 나를 피해 가던 길을 더욱 재촉해 갔다.
깍두기들이 반항하는 나를 냉큼 낚아채 차에 실었다. 그러고는 한강둔치로 갔다.
한강둔치에서 약 올리고 속이고 따돌렸다는 이유로 깍두기들이 내게 분풀이를 했다. 깡패들 수준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다. 무릎을 꿇어 진정으로 용서를 빌라 했고, 농성에서 빠지겠다는 각서를 쓰라고 했다. 나는 둘 다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한 깍두기가 하찮은 놈 때문에 자존심이 팍 상한다며 잭나이프를 꺼내 휘둘렀다. 영화 속에서나 봤던 물건이 눈앞에서 현란한 재주를 부렸다. 뽑아낸 칼이 상하로 돌다가 좌우로 돌고, 상하가 하상으로, 좌우가 우좌로 돌기도 했다. 돌다가 멈추기도 했고, 또 보였다가 안 보이기도 했다. 칼은 놈의 말과 행동만큼이나 자발 맞고 천방지축이었다. 빗속에서 천방지축으로 설쳐대는 칼을 넋 놓고 바라보던 나는 어느 순간에 옆구리 한쪽이 뜨끔한 것을 느꼈다. 어느 틈에 내 옆구리를 찌른 칼이 놈의 손에서 마무리 재주를 부리고 있었다.
칼은 깊이 들어온 것 같지 않았다. 죽이려고 찌른 것이 아니라, 경고용으로 찌른 때문이었다. 깍두기들이 떠난 뒤, 홀로 남은 나는 꾸역꾸역 피가 흐르는 옆구리를 손수건으로 틀어막고 물새다방으로 향했다. 차비가 없는 나는 물새다방까지 삼십 분을 걸었다.
물새다방 입구에서 아내에게 공중전화를 걸어 상경 날짜를 보름쯤 미뤄줄 것을 사정했다. 아내는 자기 입장은 생각 안 하고, 자꾸 말만 바꾼다며 짜증을 냈다. 말이 길어지는 아내를 가까스로 달래 통화를 마쳤다. 그러고 나서 농성장으로 전화를 걸었다. 위원장은 다행히 무사귀환을 했다. 통화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자꾸 신음이 나왔다.
서부역 이마빼기에 붙은 대형 전자시계가 ‘PM 09 : 30’이라는 불을 밝히고 있었다.
걸을 때마다 옆구리의 강한 통증 때문에 자꾸 인상이 구겨졌다.
어둠침침한 다방 구석에 자리 잡은 권 전무가 놀란 표정으로 손을 들어 나를 맞이했다. 레지는 내가 앉을 자리에 얼른 수건을 깔았다. 권 전무는 육십이라는 나이를 나타내 주는 주름 속에 애써 놀라움을 감추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옆구리를 틀어막았던 손수건을 탁자 위에 던졌다.
“이게 뭡니까?”
핏물이 든 손수건을 본 권 전무가 몸을 뒤로 빼며 물었다.
“제가 물어보고 싶은 말인데요? 왜 이러셨어요?”
나는 감당키 힘든 통증으로 잔뜩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럴 게 아니라, 당장 병원부터 갑시다.”
권 전무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바람에 다탁 위의 물잔이 엎어졌다.
이남이가 구성지게 자꾸 울고 싶다며 노래하고 있었다.
당근 역을 맡은 권 전무의 표정이 노래 가사처럼 정말 울 것 같아 보였다.
“자초지종은 나중에 듣기로 하고, 우선 병원부터 갑시다. 내가 사장님께 직접 보고를 드리고, 치료비와 보상은 책임지겠소. 그러니까 딴 생각 마시고 제발 어서…….”
상황 보는 눈치 없이 어찌 전무 자리까지 올랐겠는가. 권 전무는 창상(創傷)에 대한 사연을 미루어 짐작하는 듯싶었다.
병원에서 응급조치를 받고 상처를 꿰맬 때, 권 전무가 보이지 않았다. 당직 의사가 오늘 저녁은 병원에 있는 것이 좋겠다며 지나가는 말을 했다. 나는 그럴 형편이 못 되는지라 지나가는 말로 들었다.
치료를 받고 나올 때, 다시 나타난 권 전무가 아무 말 없이 봉투를 꺼내 건넸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겁니다.”
봉투를 받아 챙기며 내가 무심코 말했다. 늙은 전무가 고생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내뱉은 인사였다.
“시간에 개입하지만 말게.”
권 전무가 고개를 끄덕인 뒤, 당부했다.
순간, 나는 내 말이 권 전무가 원하는 것이었을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급했지만, 시간만이 사태를 종결지을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을 믿는 것 같았다. 권 전무는 내가 무연히 흐르는 시간을 막고 틀어 활용할 수 있다고 본 것 같았다. 그래서 애초부터 나를 통해 무엇을 어떻게 해 보려던 것이 아니라, 얼마간 붙잡아둘 목적으로 나를 만나 관리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됐든 권 전무가 지금 나에겐 팔색조였다.
6
“칼 맞은 아저씨.”
농성장으로 돌아온 나는 영웅이었다. 납치 위기에 처한 위원장을 용기와 기지로 구해낸 때문이었다. 옆구리 창상 얘기는 굳이 설명 없이도 다 안다는 눈치들이었다. 내가 앉은 자리 앞에 음료수와 과일 그리고 김밥 들이 쌓였다. 위문과 격려였다. 나는 받은 먹거리들을 조금씩 먹은 뒤, 되돌려 나눠주고 수건을 챙겨 화장실로 갔다. 이때 짧은 치마를 입은 한 여자가 나를 불러세운 것이다.
“아저씨가 자해공갈단이야?”
“뭐?”
나는 이 여자를 알고 있었다. 시위와 농성을 하면서 <떠나가는 배>와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를 야무지고 야릇하게 부르고,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는 짧은 치마만 고집해 입는 여자였다.
처음 가두시위 때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백골단이 이 여자의 팬티를 벗겨서 질질 끌고 갔다. 여자는 경찰서에서 조사 중에도, 심문 중에도 다리를 벌리고 앉아 빤스를 돌려달라고 악을 썼으며, 훈방될 때도 경찰서 앞에서 길거리를 향해 빤스를 찾아내라며 시종일관 고래고래 고함만 질러댔다. 결국 팬티를 벗긴 백골단이 벗긴 팬티와 새 팬티를 사가지고 와 엎드려 사과를 했다. 그녀는 새 팬티를 백골단의 얼굴에 집어던졌다. 그러고는 “너는 개새끼야, 나를 성고문한 거야. 책임져야 해”라고 소리치며 돌려받은 팬티를 챙겨 입었다.
내가 이런 여자에게 걸려든 것이다.
“혹시 이런 말 들어봤어여. 기는 놈 위에 나는 년 있다.”
짧은 치마가 손에 든 쪽지를 화투패처럼 펼쳐 보이며 웃었다.
서부역 건너편 물새다방
저녁 9시
“아저씨가 수상해서 뒷조사 좀 했어여.”
저고리를 벗어 놓을 때, 돈봉투만 챙기고 쪽지를 미처 챙기지 않은 것이 후회됐다.
내가 간자를 협박하려고 보관한 쪽지를 짧은 치마가 채뜨린 것이다.
나는 여자가 어떤 경로로 나를 의심했는지 짐작이 안 갔다. 여자 스스로 알아낸 것인지, 아니면 권 전무가 역으로 알린 것인지, 그도 아니면 간자와의 접선을 우연히 목격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 행위가 탄로났다는 사실이었다.
“쫄 거까지는 없구여.”
“…….”
“아저씨 정체를 까밝힐 생각은 없어요.”
“…….”
“지금 상황으로 봐서 아저씨 정체가 밝혀지면 좋아할 사람은 응삼이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그러고 보니, 끙삼이가 아저씨를 살려준 셈이네여.”
“…….”
“또 그러고 보니, 우리 모두가 응삼이의 손바닥 위에서 다 같이 노는 것 같아 기분이 더럽네요.”
짧은 치마가 수건을 들고 칫솔을 문 채 엉거주춤 서 있는 나에게 쪽지를 건네고 돌아섰다.
7
민정당사에서 열리기로 예정된 88 올림픽 대비 주거 재개발 관련 정책 세미나가 일 주일 미뤄졌다. 점거농성도 따라서 연기됐다.
사장의 금고는 탈취 이십일 만에 열렸다. 뒤에 발생할지 모를 문제에 대비코자 금고는 누가 어떤 수단으로 열었는지 알 수 없게 열었다. 농성장 복판에 있던 금고를 다시 사장실로 옮겼고, 복면을 쓴 다섯 명의 남자들이 도둑처럼 사장실에 들어가 금고를 열었다. 새벽에 온 금고 전문가가 자신의 신변안전을 위해 네 명의 남자들을 위장용으로 세워두고 작업을 한 것이다.
우여곡절과 천신만고 끝에 열린 금고에는 사장 직보용(直報用) 약식 당기순이익표와 보유 자산명세표, 자금보유현황표 그리고 미화 만 오천 달러와 칠 부짜리 다이어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 당기순이익표와 자금보유현황표는 김응삼 사장이 주장한, 손실로 인한 폐업이 말짱 거짓임을 드러내 주었다. 또 자산명세표에 의해 그가 전국 곳곳에서 음성적으로 사들여 증식시키고 있는 부동산이 이백억 원대임이 드러났다. 그리고 다이어 목걸이는 디자인으로 볼 때 숨겨둔 젊은 애인을 위한 것이라는 가십성 얘깃거리가 덧붙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 가운데 어느 하나도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어주지 못했다. 모두가 굳게 믿고 기대했던 비위 관련 기밀장부가 없었다.
일간지와 방송은 금고가 열린 날, 우리의 농성을 처음 보도했는데, 요지를 O&EC의 김응삼 사장이 직원들의 노조 결성에 반발해 회사를 자진 폐업했다고 썼다. 사실은 사장이 회사를 위장 폐업했기 때문에 노조를 결성한 것인데, 언론은 원인과 결과를 전도시켰다. 당시 노조에 대한 고용주들의 반발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때문에 O&EC 기사도 이런 맥락의 한 사례로 이용당하고 만 것이다.
억울해진 우리가 대뜸 정확한 사실을 담아 보도자료를 냈지만, 언론은 그게 그거라며 반응하지 않았다. 엄청난 이윤 발생에도 불구하고, 왕창 손실을 봐서 폐업했다는 엄청난 거짓말을 언론은 문제 삼아 밝히려 하지 않았다. 언론은 언론의 문제가 아니라 O&EC의 문제라고 했다. 회사 돈을 빼내 사들여 명의를 흩어 놓은 이백억 원대의 개인 부동산도 보도하지 않았다. 그 부동산이 불법이라는 것을 우리가 입증하면 보도해 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언론은 금고 속에서 나온 출처불명의 종이쪽지를 디밀고, 왜 우리에게 무조건 믿으라고 윽박지르느냐며 언론탄압을 그만 하라고 했다.
“이중 금고요. 금고 속에 금고가 또 있소.”
권 전무는 금고가 안 열렸으면 좋겠지만, 열어도 금고 속의 위장된 금고는 열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금고털이 전문가가 위장금고를 찾아내지 못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인사동 민정당사로 출정하는 날, 나는 금고에 대한 경호를 소홀히 할 수 없어 당초 스무 명으로 잡았던 점거농성자 수를 다섯 명으로 줄여 정예화하자고 건의했다. 그러나 농성자들이 나서서 내 말을 묵살했다. 악에 바친 농성자들은 최후의 해결방안이 민정당사에 있는 양, 그래서 민정당사에 가는 것이 최후의 결전장에 가는 것인 양 민정당사에 집착했다.
팔십여 명 중 삼십여 명이 가겠다고 나섰다. 위원장이 삼십 명이 떼거리로 이동하면 민정당사 측에서 눈치챌 수 있다며 어르고 달래 열 명을 주저앉혔다. 하지만 민정당사에 도착해서 자리를 잡았을 때, 스물여섯 명이나 온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나는 불안했다. 농성장을 오십 명 남짓이 지키기는 힘겨울 것이라 판단됐다. 농성자가 구사대와 동수(同數)였다.
불안 속에서 시간이 되자, 정책 세미나가 시작됐다. 텔레비전으로만 볼 수 있었던 국회의원들이 일곱 명이나 단상 위에 올라앉아 있었다. 아마도 전국 재개발 지역 소속 여당 의원들이 다 모인 듯싶었다. 단 아래에도 네댓 명의 의원들이 또 있었다.
써 붙인 주제가 ‘88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한 주거 환경 개선에 대하여’였다. 사회자가 개회선언을 한 뒤, 한국정치학회 소속의 한 연구교수가 헛기침을 해대며 부지런히 발제문을 낭독했다.
“뭐니 뭐니 해도 아파트가 주거 환경 개선의 가장 현실적 대안임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땅은 현실입니다. 집은 땅 위에 짓는 겁니다. 땅을 만들 수 있습니까? 일부 몽상가들이 군사문화적인 주거문화 어쩌고 해가며…….”
발제 내용이 약장수의 선전문구 같았다. 보고 읽는 것도 서툴러 더듬댔다. 우리가 그 더듬대는 틈을 잽싸게 파고들었다.
“위장폐업 실체 밝혀 이백여 노조원의 민생 안정 찾아달라!”
“찾아달라, 찾아달라, 찾아달라!”
우리는 유관순 열사가 태극기를 뽑아 들듯이 앞가슴 속에서 구호가 적힌 도화지를 뽑아내 번쩍 치켜들었다. 시위 도구 없이 온 노조원들은 허공에 주먹질을 매기며 구호를 외쳤다.
발제가 멈추고, 단상 단하의 참석자들이 모두 똥 밟은 표정으로 일어서서 시위자들을 일별했다. 곧 청원경찰이 달려왔다.
우리는 가슴에서 꺼내 외친 구호를 잽싸게 유리창에 덕지덕지 붙이고 바닥에 주저앉아 서로의 팔을 걸었다. 그러고는 출정가를 불렀다.
싸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놀란 의원들과 발제 및 토론자로 참석한 교수 및 연구원들이 딱하고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우리들을 뜯어보다가 세미나장을 나갔다.
“나는 인천의 이갑습이오. 나와 대화를 나눕시다.”
“우리가 왜 의원님과 대화를 나눕니까? 지역구 문제로 찾아온 게 아닌데요.”
위원장이 말을 받았다.
“내가 이래봬도 정책위 위원장이오. 민정당 의원들에게 노래를 들려주려고 여기 온 건 아니잖소?”
“말을 하려고 온 것도 아닙니다.”
“허, 참!” 의원이 혀를 차고 말을 이었다.
“민주와 정의는 말로 하는 거요. 그리고 말을 하지 않으면 우리가 알 수 없고, 우리가 알 수 없으면 우리 민주정의당이 도와드릴 수가 없지 않소?”
“우리는 O&EC에서 왔어요. 집권당의 정책위 위원장쯤 되시면 우리가 말을 안 해도 왜 왔는지 잘 아실 텐데요.”
짧은 치마가 당차게 나섰다.
“아, 허허허…….”
말을 붙였던 의원이 짧은 치마의 허벅지를 훔쳐본 뒤 헛된 웃음을 지었다.
위원장이 우리의 처지와 진행 경위, 요구사항 등을 처음부터 중언부언 설명했다. 위원장의 입가에 침 거품이 고였다.
나는 말과 말이 섞이고 꼬여 서로 따지는 틈바구니에서 자꾸 불안해졌다. 점거농성을 하러 왔지만, 왠지 이 정책위 위원장이 우리를 잡아두기 위해 시간을 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민정당사에 쳐들어왔다는 사실을 김응삼도 거의 실시간으로 알았을 것이다. 간자가 알려주지 않았다 해도 민정당사 쪽에서, 아니면 경찰 쪽에서 알려주고 책임을 따져 물었을 것이다. 바보가 아닌 김응삼은 마땅히 민정당사보다 금고가 있는 농성장으로 구사대를 보냈을 것이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문을 막아선 청원경찰을 밀친 뒤, 큰길을 향해 냅다 뛰었다. 택시를 잡아 O&EC로 빨리 가자고 소리쳤다.
그러나 택시는 오백 미터도 채 못 가서 퇴근길에 갇혔다. 나는 수중에 돈이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돈도 없고, 택시도 갇혀 꼼짝을 못 했다. 명함을 놓고 택시에서 내려 뛰었다. 차들 틈에 갇힌 기사가 창밖으로 머리를 빼 욕을 퍼부었다.
통증 때문에 빨리 뛸 수가 없었다. 옆구리를 쥐고 뛸 때, 만삭의 아내가 떠오르고 물이 솟는 방이 떠올랐다. 나의 현실이었다. 점점 더 통증이 밀려오고 숨이 가빠지면서 수박이 떠오르고 자전거도 떠올랐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날카로운 경적음이 등골을 타고 올라와 머릿속을 찔렀다. 빗줄기 속에서 빨간 불이 나를 노려봤다.
O&EC 앞 주차장에서 금고가 봉고에 막 실리고 있었다. 현관 앞까지 좇아 나온 농성자들이 빗속에서 코가 빠진 채 발만 구르고 있었다.
“안 돼, 못 가!”
내가 비에 젖은 금고로 엎어지며 소리쳤다. 금고는 나와 우리 모두의 또 다른 팔색조였다.
봉고 앞에 서 있던 흰색 에쿠스 승용차 문이 열리며 백구두가 삐죽이 나왔다. 차문 밖의 똘마니가 잽싸게 우산을 받쳤다.
설강수였다.
“오랜만이다. 우리 인연이 너무 깊다. 깊으니까 좆같다. 다시 안 만났으면 했는데, 정말 유감이다.”
내가 하고픈 말을 대신한 설강수가 침을 뱉고 턱짓을 했다. 그러고는 차에 올랐다. 턱짓은 똘마니들에게 나를 치우라는 지시였다.
“햐, 이새끼! 지난번에 너무 얕았나? 이번에는 쬐끔 더 깊이 담가줄까?”
한강둔치에서 재주를 보여준 칼잡이였다. 칼잡이가 엄지와 집게손가락을 벌려 칼로 찌를 깊이를 가늠해 보여줬다.
칼잡이가 폼 잡는 사이에 깍두기들이 먼저 덮쳤다. 덮칠 때, 전경들은 지휘관의 턱짓에 따라 일제히 금고 쪽을 등졌다. 나는 또 공권력의 경호하에 개처럼 맞았다.
빗줄기처럼 모진 깡패새끼들의 발길질 속에서 자꾸 달아나는 의식의 끝자락을 힘껏 부여잡았다. 내가 피눈물 속에서 살고자 버둥거릴 때, 슬금슬금 다가서던 농성자들이 고함을 지르며 깡패새끼들의 등에 껌딱지처럼 하나둘 들러붙었다. 하늘의 비는 속절없이 내렸다. 《문장웹진 6월호》
추천 콘텐츠
보호 구역 김근수 애랑은 바다에 몸을 던져 죽었다. 애랑의 몸은 물위로 떠오르지 않아서 주검을 수습하지 못했다. 수직으로 바다를 막고 선 해안 단애의 절벽에서 애랑이 몸을 놓아 버릴 때, 덕배는 한달음에 마당바위로 달려 내려갔다. 갈매기들이 날아오르며 떼를 지어 울었다. 바다 어디에도 애랑의 모습은 없었고 허연 파도가 마당바위를 다그치고 있었다. 덕배는 물속으로 뛰어들었지만, 소용돌이에 휘말려 실신했다. 마당바위 위에서 덕배가 눈을 떴을 때, 깨져 버리는 하늘을 보았다. 덕배가 종적을 감추던 날, 일본 군인 두 명이 돌에 맞고 칼에 찔려서 죽었고, 헌병 분소가 불탔다. 마을 사람들은 불을 끄지 않고 내버려두었는데, 일본 군인이 몰려와 군홧발로 밟는데도 누구도 덕배의 행방을 말하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은 몰라서 말하지 않았는데 그럴 수는 없다며 밟혔다. 어찌해 볼 수 없는 날들 앞에서 애랑은 죽었고 덕배는 사라졌다. 애랑이 몸을 던졌던 절벽 위에 도라지 두 뿌리가 자라서 긴 세월 꽃을 피워 내었다. G사의 발전소 건설 부지는 B읍 항구에서 해안 단애 넘어 북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의 방파제 안쪽을 매립해서 들어서고 있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수도권의 장기 전력 수요 조사와 전망에 근거해서 발전소 추가 건설 필요성을 확인했다. 정부는 발전소 입지 최적지에 대한 발표와 철회를 거듭하다가 결국 B읍의 북쪽 해안 마을을 최종 선정지로 확정 발표했다. 바다가 깊이 밀고 들어간 마을은 새끼손톱 모양의 백사장을 거느리고 해안을 따라 길게 뻗은 산맥의 능선을 배후로 취락하고 있었는데 인근 마을에 비해 거주 가구 수가 적고 어장의 규모와 어장주의 연대가 비교적 미미하다는 현장 실사팀 보고서를 바탕으로 발전소 건설 부지로 선정되었다. 해병전우회, 읍민발전대책위원회, YMCA, 환경단체는 즉각 발전소 건설 백지화를 위한 비상 대책위를 구성하여 성명서를 발표하고 발전소 건설 절대 불가 입장을 표명했다. 정부 발표 이튿날부터 B읍을 관통하는 주요 도로변에 현수막이 걸리기 시작했다. -청정해역 동해안에 발전소가 웬 말이냐 -주민 의견 개무시한 발전소는 전면 무효 도로변을 쓸면서 마파람이 불어오면 현수막이 팽팽하게 부풀면서 B읍의 허공은 시끌벅적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사 년 전이었다. 마을 이주 계획이 확정되었다. G발전소는 마을 부지 매입과 해안 매립권을 확보했다. 이주 계획의 골자는 23개 취락 가구를 인근에 새로 조성할 부지로 이주시키는 것이며 새 부지는 G발전소가 구입하여 23개 가구에 무상 분배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읍내에서 서쪽으로 3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산자락을 허물고 개토하여 새 마을을 조성한다는 말이었다. 손무근은 마을 주민 대표단과 회동을 가졌고 한 가구를 제외한 스물두 가구 세대주의 인감 날인을 받은 보상합의서를 건네받았다. 그동안 십수 차례 주민 설명회를 가졌고 보상 문제와 향후 이주 계획을 포함하여 주민들을 지속적으로 설득했다. 분기에 한 번꼴로 마을회관과 G발전사 현장 임시 가설 사무소,
- 관리자
- 2025-08-01
이상한 고리 김덕희 * 나. 나는 나를 생각한다. 나는 나를 생각하는 나를 생각한다. 나는 나를 생각하는 나를 생각하는 나를 생각한다. 나는 나를 생각하는 나를 생각하는 나를 생각하는 나를 생각한다. 나는··· 불빛, 등불, 전기, 스위치, 조명··· 단어들이 어지럽게 떠오른다. 천장 중앙에서 쨍한 빛을 내고 있는 저것의 이름은 등이다. 천장을 비롯해 네 벽과 바닥은 같은 색이다. 빛의 모든 파장이 모여 있는 색, 색이라는 것까진 알겠는데 아직 그 이름은 생각나지 않는 색이다. 공기 중에는 어떤 냄새가 희미하게 맴돌고 있다. 역시 냄새라는 것만 알고 냄새의 이름은 모른다. 감각을 조금 더 예민하게 세워 본다. 벽을 뚫고 들어와 지나가는 전파들이 복잡한 소음을 만들어낸다. 단순한 구성의 파동들인데 파장과 진폭이 뒤섞여 있으니 복잡해 보인다. 삼원색, 사이언, 마젠타, 옐로우, 흰색, 백색, 화이트, 소독, 클로드헥시딘, 에틸알코올, 포르말린, 차아염소산나트륨, 초저주파, 초장파, 초단파, 극초단파···. 분출하듯 솟아나는 정보들이 모두 어디서 오는 건지 모르겠다. 수많은 이름과 개념들 속에 아직 나에 관한 정보는 없다. 나는 바닥에 고정된 침상 위에 반바지만 입은 채 누워 있고 내 몸 이곳저곳에는 유선 센서들이 붙어 있다. 나에게서 어떤 정보들을 빼내려 한 것 같은데 그것이 무엇인지 나도 알고 싶다. 나는 일어나 앉은 다음 내 이마와 관자놀이, 목과 가슴에 붙어 있는 것들을 떼어 연결된 선과 함께 침상 빈 곳에 아무렇게나 치워 놓는다. 캡슐. 눈앞에 환영 하나가 머문다. 금속성 재질의 커다란 알이다. 환영은 금세 사라지고 다시 떠올리려 애써 봐도 은빛 달걀 모양의 잔상만 허공에 떠돌 뿐이다. 갑자기 왼쪽 벽 전체가 투명해지는 바람에 캡슐은 잠시 잊기로 한다. 나와 아주 닮은 존재들이 벽 저편에서 나를 향해 앉아 있다. 세 줄짜리 계단식 공간에 다섯 명씩 배치되어 있고 저마다 자기 앞의 기판을 들여다보며 무언가를 입력하거나 확인하는 중이다. 저 멀리 뒤쪽 벽에 기대어 서 있는 한 사람이 눈에 띈다. 누구랄 것 없이 입고 있는 흰색 가운이 키 큰 여자에게는 맵시 있게 보인다. 여자가 머리를 옆으로 기울이더니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긴 머리카락 안쪽으로 넣어 귀에 가져다 댄다. 통신장치로 짐작되어 재빨리 신호를 가로챈다. 예상한 대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아직 나는 저들의 언어를 온전히 알아듣지 못한다. 학습, 강화학습. 나의 내부에 있는 무엇이 나를 조종하는 기분이 든다. 나는 껍데기일 뿐이고 이 껍데기를 움직이게 하는 그 무엇이 있는 것만 같다. 나는 그것과 마주할 수 있을까. 이 질문조차 그 무엇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그 무엇에게도 그 무엇이 있는 건 아닐까. 그 무엇에게도 그 무엇이 있을 테고··&mi
- 관리자
- 2025-08-01
목소리들 조시현 언제나 문은 예상치 못한 순간 열렸다. 막무가내로 파고들어 오는 목소리처럼. 무방비하게 책을 읽던 주하는 일순 얼어붙었다. 어디에도 남지 않을 목소리를 마음껏 낭비하는 그 감각에 한껏 빠져들어 있던 차였다. 신발장 옆 화장실, 왼쪽에 침대, 오른쪽에 주방이 전부인 한 뼘짜리 원룸은 현관에 서면 한눈에 전부 들어왔다. 계약 내용은 27일 하루를 온전히 비워 주는 것. 지금껏 한 번도 어긴 적 없었기에 주하는 대처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물끄러미 상대를 바라보았다. 시선에 섞인 질책의 의미를 읽은 남자가 검지로 뺨을 긁었다. “어, 죄송합니다.” 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남자가 재차 입을 열었다. “오려고 온 건 아니고. 매달 27일마다 뭘 하는 거냐고, 여자 혼자 종일 웃었다 울었다 별짓을 다 한다고 하도 그래서. 여기 방음 잘 안되거든요. 방 빌려드리는 거야 돈도 받고 어렵진 않은데 혹시나 불법적인 일은 안 되니까 확인차 온 거예요. 그래도 뭘 하는지는 알아야 하니까. 쫓겨나면 곤란하거든요. 미리 말씀 안 드린 건 저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근데 연락처도 모르고.” 하지만 남자의 눈은 안쪽을 꼼꼼하게 살폈다. 미처 감추지 못한 호기심이 묻어났다. 주하가 가져온 거라곤 책 두 권과 머그컵, 도라지청이 전부였다. 남자가 거기서 뭔가를 알아챌 것만 같아 가슴이 마구 뛰었다. 그야 불법적인 일이 맞았으니까. 주하가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걸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남자가 별안간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플라스틱 카드를 내밀었다. 구재정. 인공지능융합대학원. 학번까지. 주하는 사진과 남자를 번갈아 보았다. 덥수룩한 갈색 곱슬머리. 멀끔한 얼굴. 무엇보다 핸드폰을 쥐고 있는 가늘고 예쁜 손가락이 눈에 띄었다. 같은 방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쓰고 있는 사람. “다른 뜻 있는 거 아니고요. 저 정말 여기 살거든요. 이 이름으로 입금 주셨잖아요.” 이름은 맞지만 학생일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다. 생각을 못 했다기보단 관심이 없었다고 해야 더 맞겠지. 알고 있었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었겠지만 인공지능융합대학원이었다니. 침묵이 이어지자 눈을 굴리던 남자가 서둘러 문을 열었다. “음, 일 없는 거 확인했으니까. 저는 갈게요. 계약 파기하는 거 아니죠? 제가 잘못한 건 맞지만 정말 조심해야 하거든요. 아르바이트를 또 할 수는 없어서요.” 횡설수설하던 구재정은 머리를 박박 긁더니 재빨리 사라졌다. 약속을 어긴 건 맞지만 그걸 보니 기분이 크게 상하지는 않았다. 위아래층 목소리가 간혹 들리기는 했지만 그 정도로 방음이 안 되었다는 것을 그녀는 잊고 있었다. 한 층에 세 개여야 할 집에 가벽을 세워 열한 개로 늘려 놨으니 당연한 사실인지도 몰랐다. 더 조심했어야 했는데. 한 번 깨어진 감흥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주하는 다시 차를 끓였다. 굳이 도라지차. 이렇게 된 와중에도 목을 관리하고 있다니. 멍청하기는. 이제 연극을 보
- 관리자
- 2025-08-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