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란 무엇인가 (제4회)
- 작성일 2012-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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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연재_4회]
야구란 무엇인가
김경욱

다음날 아침을 먹고 난 뒤에도 사내의 분주한 마음은 짐을 꾸렸다 풀기를 반복한다. 선뜻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시간만 허비한다. 문제는 아이다. 아이를 데리고 갈 수도 혼자 두고 갈 수도 없다. 맡길 곳도 없다. 이번에도 사내는 결정을 유보하기로 결정한다. 일단 아이를 데리고 가기로 한다. 데리고 갈 수 있을 때까지는 데리고 다닌다. 그 다음은? 그때 가서 고민하기로 한다.
아이는 거미집 안에 엎드린 채 도화지에 뭔가를 끼적이고 있다.
뭐 해?
아이는 대답이 없다.
진구야, 뭐 해?
아이는 여전히 대꾸가 없다. 귀가 없는 사람처럼 군다. 뭔가에 집중할 때 아이의 얼굴은 고집스러워 보인다. 고집스러운 겁쟁이의 얼굴이다.
아이는 도화지를 가득 채운 커다란 동그라미를 신중한 얼굴로 쪼개고 있다. 잠과 식사와 독서와 휴식과 놀이와 공부가 아이의 하루를 나누어 가진다. 아이는 노란 색연필로 놀이와 휴식을 칠한다. 노란 색연필로 식사와 공부를 칠한다. 잠과 독서도 노란 색연필로 칠한다. 노란색이 아이의 하루를 빈틈없이 채울 때까지 사내는 묵묵히 기다린다. 아이의 하루가 노래진다. 아이의 여름방학이 노래진다. 사내는 궁금하다. 아이의 머릿속도 노랄까? 뇌와 뇌수도 노랄까?
진구야, 아빠랑 어디 갈 거니까 필요한 것들만 가방에 담아라.
어디?
여행.
여행?
그래, 여행.
어디로?
아이가 자신의 동그랗고 노란 방학을 들여다보며 묻는다. 사내는 당황한다. 여행이라는 거짓말이 너무 쉽게 들통 난 것 같다. 어쩌면 이 머릿속이 노란 아이는 모든 것을 훤히 꿰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망상의 올가미 속에서 버둥거린다. 사내의 머릿속이 노랗게 질린다.
여기저기.
여기는 어디고 저기는 어디야?
아이는 여전히 자신의 동그랗고 노란 방학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런 때는 아이가 눈을 맞추지 않는 게 고맙다. 거짓말을 다듬을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아빠가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
아빠 친구?
아이의 머릿속이 털어놓는 단순함에 사내는 안도한다. 머릿속이 노란 것으로 가득 찬 이 아이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만큼이나 아무것도 모른다.
그래. 아주 오래 전부터 아는 친구.
언제부터?
진구가 태어나기 전부터.
몇 년도부터?
천구백팔십년부터.
왜 만나러 가?
빚이 있어.
아빠가 빚졌어?
아니.
친구가 빚졌어?
그래.
얼마나?
많이.
얼마나 많이?
엄청 많이.
십만 원?
그것보다 많아.
백만 원?
돈으로 갚을 수 없을 만큼 큰 빚이야.
그게 얼만데?
하늘만큼 땅만큼.
하늘은 얼마고 땅은 얼마야?
몰라.
왜 몰라?
진구야!
아빠 친구는 어디 살아?
서울.
싫어.
서울이 왜 싫어?
싫어.
서울랜드도 가고 63빌딩도 가고 잠실야구장도 갈 거야.
잠실야구장?
그래. 그러니까 꼭 필요한 것만 가방에 담아.
꼭 필요한 것만.
그래, 꼭 필요한 것만.
사내도 길 떠날 차비를 한다. 아주 먼 길이 될 것이지만 준비할 게 많지는 않다. 하나뿐인 양복을 장롱에서 꺼내 바지를 꿰어 입고 상의 안주머니에 칼과 주사위와 청산가리를 챙겨 넣는다. 칼은 염소를, 주사위는 동생을, 청산가리는 자신을 위한 것이다.
팀장에게 전화를 건 사내는 당분간 쉬어야겠다고 말한다. 어차피 아이를 데리고 일을 할 수는 없다. 팀장은 사내의 청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몇 가지 핑계를 준비했던 게 머쓱하고 허탈할 정도다. 섭섭하기까지 하다.
아이는 입을 벌리고 있는 가방 앞에서 고민 중이다. 방바닥에는 아이의 손때가 묻은 장난감들이 저요, 저요 소리치며 주먹을 치켜들고 있다. 노아의 방주에 타려는 동물들 같다. 아이가 아끼는 토마스 기차와 티라노사우루스도 주먹을 흔들고 있지만 스파이더맨이 그려진 가방은 이미 배가 불룩하다.
사내는 거미인간의 뱃속에 든 것들을 꺼내 확인한다. 곤충부대, 파브르 곤충기, 땅콩 캐러멜, 야구글러브. 대홍수 이후 지구는 곤충이 야구를 하는 행성이 될 것이다.
가방이 가득 찼어. 하나만 더 골라.
아이는 장고 끝에 나침반을 집어 든다.
나침반은 왜?
나침반이 집에 데려다줄 거야.
아이는 가방 지퍼를 닫는다. 이번에는 아이의 눈이 놀이용 텐트로 향한다. 간절한 갈망을 담은 눈이다.
그건 안 돼.
사내는 미리 못을 박으려 하지만 헛손질만 하는 기분이다.
아빠.
아이의 뒤통수가 못처럼 뾰족해진다.
집을 짊어지고 다닐 수는 없어.
달팽이.
너는 달팽이가 아니잖아.
달팽이.
김진구!
달팽이.
사내의 경고에도 오히려 아이의 뒤통수는 점점 더 뾰족해진다. 어떤 망치로도 다스릴 수 없는 못이 된다.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벽 깊이 다리를 묻고 있다. 박을 수도 뺄 수도 없는 못이다. 끝까지 박을 수도 완전히 빼낼 수도 없다면 뭔가를 걸어 두는 수밖에. 쓸데없이 못을 박았다는 비난을 듣지 않도록. 그런데 대체 뭘 걸어 두지?
사내는 벽에 걸린 아이의 옷을 모조리 여행 가방에 꾸린다. 아이의 속옷과 칫솔도 챙긴다. 진짜 여행을 떠나는 것 같다. 여행을 떠난다는 거짓말이 사내의 기분을 들어 올리지만 사내는 금방 속이 거북해진다. 아이를 속였다는 거북한 사실이 뱃속에서 더러운 거품을 물고 있다. 어릴 적 탱자나무 가시로 고름을 짠 것처럼 배를 찔러 그 더러운 거품을 터뜨리고 싶지만 사내에게는 탱자나무 가시가 없다. 탱자나무가 없다.
아이는 문단속한다며 부산을 떤다. 창문을 몽땅 걸어 잠그더니 수도꼭지와 가스밸브도 확인하고 전기 플러그마저 빠짐없이 뽑아낸다. 선풍기가 텔레비전이 라디오가 전기주전자가 전기밥솥이 전기의 젖꼭지에서 떨어져 나와 죽는다. 경건한 의식을 주도하는 사람처럼 고집스럽고 차가운 표정이다. 그간 집 안을 채운 게 바람과 수돗물과 가스와 전기였던 것처럼 집이 텅 빈 느낌이다.
사내는 아이가 영영 돌아오지 못할 것처럼 유난을 떠는 게 영 못마땅하다. 사내가 진실 위에 덮은 거짓의 장막을 들추는 것 같아 영 불편하다.
그만 하면 됐어.
전기가 새어 들어오면 돈이 새어 나가.
사내는 정전기에 찔린 것처럼 움찔한다. 그것은 사내가 어렸을 적부터 어머니가 입에 달고 다니던 말이다. 아이의 입에서 어머니의 말이 튀어나오고 있다. 집이 텅 빈 것은 느낌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그동안 집을 가득 채웠던 바람과 수돗물과 가스와 전기의 어머니가 사라진 것이다. 사내는 바람과 수돗물과 가스와 전기의 어머니가 담긴 오동나무 상자를 보자기로 싸고 단단히 매듭을 진다. 오동나무 상자에 담긴 바람과 수돗물과 가스와 전기가 한 방울도 새어 나가지 않도록.
바깥에는 물오른 여름이 작열하고 있다. 봉고 문을 열자 탱탱볼 같은 열기가 훅 튀어나온다. 사내는 짐칸에 널린 공구를 한쪽으로 치우고 공간을 확보한 뒤 두 번의 왕복으로 아이의 집과 옷가지와 어머니를 옮긴다. 근처 슈퍼에 걸어가 소주 한 병과 껌 한 통을 산다. 소주는 아버지를, 껌은 동생을 위한 것이다.
마침내 떠난다. 길을 나선다. 복수의 길을 나선다. 이번만큼은 끝장을 볼 것이다. 하늘이 두 쪽 나도 끝장을 볼 것이다. 사내는 안전벨트를 매며 이를 악문다.
봉고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뜨거운 김을 토해 낸다. 불의 전차가 따로 없다. 에어컨을 켜보지만 뜨거운 바람이 나온다. 사내는 에어컨을 끄고 차창을 내린다. 아이도 조수석의 창을 내린다. 속도를 높이자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바람이 창으로 몰려든다. 바람도 불의 채찍 같다.
사내는 차의 속도를 떨어뜨린다. 불의 채찍질이 잦아든다. 봉고는 바람의 채찍질을 피해 느릿느릿 달린다. 바퀴 밑으로 말려 들어가는 아스팔트가 쩍쩍, 발바닥에 들러붙는 것 같다. 발바닥이 끈적거린다. 여름이 끈적거린다. 회색 콘크리트 숲이 듬성듬성해지고 진짜 숲의 초록 우듬지가 파란 하늘의 가장자리에서 빛나며 숨통을 튼다.
초록이 무성해진다. 초록이 점점 무성해진다. 초록이 점점 더 무성해진다. 고요하게 폭발하는 태양의 에너지가 초록을 속성으로 키우고 있다. 저 멀리 시립공원묘지가 초록의 경사를 만들어내며 붉은 땅 위로 솟아오른다. 무덤들이 솟아오른다. 저기 죽은 아버지가 서 있다.
아버지의 무덤은 다른 무덤들과 다르지 않다. 겉보기에는 그렇다. 동그랗고 파랗다. 파란 돔이다. 파란 돔 아래 아버지가 시퍼렇게 서 있다. 아버지의 분노가 서 있다. 동생의 원한을 풀어 주기 전에는 편히 누울 수 없다는 아버지의 유언이 고개를 빳빳이 들고 서 있다. 아버지를 눕히지 않기 위해 어머니는 묘혈 파는 일꾼들에게 웃돈을 찔러줘야 했다. 아버지의 관이 수직의 구덩이에 들어갈 때 사내는 관이 뒤집히지 않았는지 불안했다. 한동안 사내의 꿈에 아버지는 물구나무 선 채 등장했다. 머리가 아프다고, 머리가 터질 것 같다고 호소했다. 꿈에서 깨면 사내는 머리가 아팠다. 머리가 터질 듯 아팠다. 꿈속에서 물구나무를 서기라도 한 것처럼.
사내는 아버지에게 소주를 올렸다. 동생을 잃은 뒤로 아버지한테서는 술 냄새가 떠나지 않았다. 혈관을 술로 채운 것 같았다. 심장에 붙은 불을 더 큰 불로 끄려는 사람 같았다. 수가 틀리면 집 안 마른자리에 뿌리던 기름을 몸속에 들이붓는 듯했다. 바지자락을 붙들며 말릴 사람이 없어서였을까. 동생을 잃은 뒤 아버지는 집구석을 태워버리겠다며 기름통 뚜껑을 따는 일이 없었다. 소주를 먹으며 점점 강성해진 불은 결국 아버지를 삼키고 말았다. 아버지는 화병으로 죽었다.
야구중계를 보다 뒷목을 잡고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간 아버지는 반짝 정신을 차리자마자 대뜸 물었다. 해태는? 졌어요. 7대 4로 깨져부렀어요. 사내는 무심코, 평소처럼, 거짓말에 대한 혐오와 거짓말이 가져올 결과에 대한 두려움의 박자에 맞춰 사실을 말했다. 아버지의 얼굴이 검붉게 일그러졌다. 검붉게 일그러진 홍채가 사내를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사내를 낙담과 절망의 구덩이로 떠밀던 눈빛이었다. 죽은 게 동생이 아니라 너였다면, 이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
낙담과 절망을 오려붙인 눈동자가 축축해져 흐릿해지고 흐릿해진 눈자위에서 맑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자신의 인생이 패배했다는 판결을 받은 것처럼 눈물을 흘렸다. 사내는 그 장면을 오래오래 잊을 수 없었고 사실대로 말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해태가 이겼다고 거짓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선의의 거짓말을, 하얀 거짓말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지만 사내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새까만 참말이었다. 아버지는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영원히 눈을 감았다.
야구도 잠든 새까만 밤이면, 새까만 밤에 짓눌린 더 새까만 꿈속에서 사내는 창백하게 중얼거리곤 했다. 해태의 패배가, 해태가 패배했다는 새까만 참말이 아버지를 죽인 것이라고.
무덤 주위의 풀은 유난히 파랗다. 파란 하늘보다 더 파랗다. 이쪽이 하늘이고 저쪽은 하늘의 반영 같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땅속에 물구나무 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똑바로 서 있는 것이다. 이런 하얀 망상에 고무되어 사내는 목구멍의 용기를 긁어모아 하얀 거짓말을 하기로 한다.
아부지, 어제는 해태가 이겨부렀어라. 10대 2로 허벌라게 이겨부렀당게라.
사내의 하얀 거짓말이 파란 무덤 위에 나풀나풀 날아간다.
어제는 비가 와서 경기를 못 했잖아. 그리고 이젠 해태 아니야.
무덤 자락의 개미굴에 코를 박고 있던 아이가 개미굴에 대고 소리친다. 모든 무덤들이 깨어날 만큼 큰 소리로 새까만 참말을 외친다. 저 캄캄한 옛날 어두운 병실에서 사내가 아버지에게 그랬던 것처럼. 모든 아들이 아비를 죽이는 단호하고 순수한 방식으로.
파란 무덤으로 나풀나풀 날아가던 하얀 나비가 은빛 거미줄에 걸려 옴짝달싹 못한다. 이곳 파란 묘지가 파란 하늘이고 저 위쪽은 이곳의 반영이어서 아버지가 땅속에 물구나무 서 있는 게 아니라 하늘나라에 똑바로 서 있다는 하얀 망상의 날개가 구겨지고 접히고 바스라진다. 아버지가 다시 검은 땅속에 거꾸로 처박힌다. 아버지는 물구나무다. 물구나무가 중얼거린다. 썩을 놈들, 밥 묵고 거시기만 하믄서 거시기를 거시기밖에 못 허냐.
사내는 눈자위가 쓰리다. 눈물은 아니다. 아직은 눈물의 시대가 아니다. 사내는 이를 악문다. 이를 악문 소주 뚜껑을 딴다. 파란 소주병에서 맑은 소주가 흘러나와 무덤을 파랗게 적신다. 소주를 한 방울도 남김없이 뿌린다. 웃자란 풀도 솎아낸다. 절은 생략한다. 조만간 아버지를 만나게 될 테니까. 그러면 아이는? 절을 시켜야 할까?
사내는 아이를 돌아본다. 아이는 개미굴 입구에 소주병 주둥이를 묻는다. 소주병이 물구나무 선 채 땅에 박힌다. 파란 소주 꽃이 피어난다. 눈먼 개미 한 마리가 파란 유리꽃줄기를 더듬더듬 기어오른다. 다른 개미들이 일렬로 뒤를 따른다. 파란 유리꽃잎으로 검은 수액이 타오른다. 파란 공허를 수직의 질서로 검게 채운다. 아빠 앞에는 아빠의 아빠, 아빠의 아빠 앞에는 아빠의 아빠의 아빠, 아빠의 아빠의 아빠 앞에는 아빠의 아빠의 아빠의 아빠. 아이도 결국 아빠의 뒤를, 아빠의 아빠의 뒤를 따른 아빠의 뒤를 따를 것이다. 개미들의 질서정연한 행렬이 선택의 무게를 덜어 준다. 사내는 아이에게도 절은 시키지 않는다. 언젠가 아빠의 아빠를 만나게 될 테니까.
사내는 아버지의 무덤을 뒤로 하고 동생의 무덤으로 향한다. 시립묘지를 뒤로 하고 국립묘지로 향한다. 회색 도심 언저리로 불자동차처럼 최단거리로 재빨리, 법정최고 속도로 접근한다. 속도를 줄여야 할 것 같은 길은 피한다. 외곽순환도로에 올라탄다. 순환도로는 도심의 테두리를 완만한 곡선으로 달린다. 차는 많지 않다. 라디오를 켠다. 여행 기분을 내는 것이다. 청취자가 전화로 노래 실력을 뽐내는 프로다. 잘 부르면 상품도 받는다.
사내의 귀에는 모두 가수다. 사내는 노래 부르는 것은 질색이지만 듣는 것은 좋아한다. 대개는 감탄하면서 듣는다. 입은 없지만 귀는 있다. 좋은 청중이다.
우등상을 놓치는 법이 없던 동생은 노래도 잘했다. 팝송도 술술 따라 불렀고 심지어 공부할 때도 노래를 흥얼거렸다. 암기할 내용에 곡조를 입혀 외우는 것이었다.
동생은 운동도 잘했다. 동생에게는 공을 다루는 재주가 있었다. 동생이 공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공이 동생을 쫓아다니는 것 같았다. 특히 야구를 잘했다. 초등학교 때 야구부에 들겠다고 했다가 아버지한테 뺨을 맞았다. 아버지가 동생을 때린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공부를 못 했다면 동생은 가수나 야구선수가 되었을 것이다. 노래 잘하는 야구선수나 야구 잘하는 가수가 되었을 것이다.
일인 일 특기. 사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의 교훈이었다. 교장은 훈화 때마다 강조했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하나씩 재주를 주셨다. 여러분도 하느님이 주신 재주를 갈고닦아 이 나라와 민족에 꼭 필요한 인재가 되어야 한다. 사내는 교장의 말이 수상쩍었다. 동생에게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를 주신 하느님이 자신은 깜박한 것 같았다.
초등학교 시절 사내의 통지표에는 늘 이렇게 적혀 있었다. 소극적이지만 정직하다. 공을 잘 차면 축구선수가 되고 발이 빠르면 달리기선수가 되고 그림을 잘 그리면 화가가 되고 거짓말을 잘 지어내면 작가가 되지만 정직한 사람은? 정직이 밥 먹여 준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다. 그러니 정직은 재주가 아니다. 하느님이 깜박한 게 아니라면 선물보따리에 쟁여 둔 재주가 사람 머릿수 만큼인 게 분명하다. 그래서 두 개의 재주를 받은 사람이 있으면 한 명은 빈손이 되고 세 개의 재주를 받은 사람이 있으면 두 명이 빈손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동생을 미워하거나 시기하거나 질투한 적은 없다. 사내에게 동생은 늘 웃는 미친 동생이고, 늘 웃으면서 졸졸 따라다니는 동생이어서 미워할 수 없었다. 하느님이 사내의 주머니에 슬쩍 넣어 준 재주가 있다면 미친 듯 웃고 미치도록 졸졸 따라다니는 재주 많은 동생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이었다.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는 아버지를 바랐던 동생은 스스로가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는 아버지가 될 것이었다. 그 일만 없었다면.
사내는 넥타이 매듭을 매만진다. 어머니 장례 때 맸던 까만 넥타이다. 넥타이가 영 어색하다. 목이 아니라 심장이 답답하다. 넥타이가, 광택도 무늬도 없는 소극적이고 정직한 까만 넥타이가 목이 아니라 심장을 꽉 조이고 있는 것 같다. 넥타이 매듭을 느슨하게 풀자 도로의 곡선도 느슨해지고 햇볕도 느슨해지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자랑도 느슨해진다. 하지만 조수석에 앉은 아이의 얼굴은 과속탐지 카메라처럼 삼엄하다. 맞은편에서 달려온 차가 씽 지나칠 때마다 눈을 깜박인다. 아이는 맞은편 차량의 속도를 감시하는 카메라다. 주변을 경계하는 토끼다. 하느님이 아이에게 준 재주는 뭘까? 수틀리면 제자리에서 빙빙 돌기? 화나면 소리 지르기? 말대꾸 안 하기? 말하면서 딴 데 쳐다보기? 구석에 처박혀 있기? 노란 음식만 고집하기? 초등학교 교장의 말대로 하느님이 절대로 깜박하는 분이 아니어서 누구에게나 재주를 하나씩 나눠줬다면…… 그분이 아이에게 준 재주는…… 정직함이겠지.
사내는 넥타이의 매듭을 더 아래로 잡아당겨 늘어뜨린다. 심장이 헐거워진다. 회색 스카이라인도 헐거워진다. 차창 너머로 풀 냄새가 빽빽해진다. 빽빽해진 풀 냄새 위로 국립묘지를 안내하는 표지판이 솟아오른다. 망월동. 동생이 누워 있는 곳이다. 머리가 깨지고 어깨가 부서지고 폐가 찢어진 동생이 누워 있는 곳이다.
차를 주차장에 세우고 사내는 동생에게 간다. 아이가 졸졸 따라온다. 어릴 적 동생 같다. 아이의 눈썹이 부드러워졌다. 붉은 흙과 파란 잔디가 아이의 긴장을 누그러뜨리는 것 같다. 하지만 무덤을 지키는 회색 비석들 때문에 아이의 미간이 딱딱해진다.
동생의 묘에 아이를 데려오기는 처음이다. 동생에 대해 얘기한 적도 없다. 동생의 그림자에 대해서도 얘기한 적 없다.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던 동생이었지만 동생이 죽은 뒤 동생의 이름조차 입에 올릴 수 없었다. 동생의 이름을 입에 올리면 혀가 타버릴 것 같았다. 활짝 피지도 못한 동생의 재주들이 혀를 태워버릴 것 같았다.
동생 앞에서 사내는 넥타이 매듭을 다시 조이고 주머니에서 껌 한 통을 꺼낸다. 슈퍼의 껌 진열대를 샅샅이 뒤져 구한 인삼껌이다. 기대는 안 했는데 아직도 그 껌이 살아 있어서 좀 놀랐다. 사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훔쳤던 물건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정직한 외톨이였던 사내를 끼워 준 후줄근하고 정직하지 못한 패거리를 따라 옆 동네 구멍가게의 사각지대를 슬쩍했다.
구멍가게를 슬쩍하러 패거리에게 가는 길에도 동생은 웃으면서 졸졸 따라왔다. 성, 어디 가. 동생은 웃으면서 물었다. 물으면서도 웃었다. 따라오지 마. 사내가 쏘아붙였지만 동생은 여전히 실실 웃었다. 따라오지 마. 집에 가. 사내가 동생에게 소리쳤다. 동생은 계속 들러붙었다. 씹고 버린 껌처럼 찰싹 들러붙었다. 사내는 동생이 난생처음 귀찮아졌다. 나에게는 재주꾼 동생이 아니라 못난 친구들이 필요해. 재주꾼 동생을 혹처럼 달고 나타나면 못난 친구들한테 웃음거리가 될 거야.
사내는 동생이 땅속으로 꺼졌으면 했다. 사내는 저만치서 따라오는 동생을 향해 돌을 던졌다. 따라오지 마. 돌이 사내의 고함과 함께 동생의 발치에 떨어졌다. 동생은 그래도 웃으며 따라왔다. 사내는 화가 치밀었다. 이번에는 동생이 아니라 동생의 웃음을 향해 돌을 던졌다. 돌멩이가 동생의 웃음을 향해 날아갔다. 동생의 웃음이 가까스로 돌을 피했다. 동생의 웃음이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사내는 걸음을 재촉했다. 뒤를 돌아보고 싶은 마음을 꾹꾹 밟으며 걸었다. 뒤를 돌아보면 소금기둥이 되리라. 그 이야기를 생각할 때마다 사내는 오싹했다. 소금기둥이 되는 건 무섭지 않았다. 결국 뒤를 돌아보게 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더 무서웠다.
골목을 돌기 전 사내는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불길한 예감이 빗나가는 게, 무서운 경고가 헛소리가 되는 게 무서운 사람처럼. 하지만 소금기둥이 된 것은 사내가 아니라 동생이었다. 저 멀리 공터 끝에서 동생은 손톱만 한 소금기둥이 되어 서 있었다. 어쩐지 손톱만 한 소금기둥이 손톱처럼 씩 웃고 있을 것만 같았다.
눈먼 구멍가게에서 슬쩍한 인삼껌 한 통을 사내는 통째 입에 넣고 씹었다. 처음 훔친 것은 그렇게 하는 법이라고 패거리의 우두머리가 거만하게 말했다. 사내는 죄책감 한 통을 볼이 미어터지도록 질겅질겅 씹었다.
시간이 지나면 대개의 죄책감은 죄와 함께 늙게 마련이지만 어떤 죄책감은 오히려 젊어지기도 한다. 도둑질에 대한 죄책감이 희미해질수록 동생에 대한 죄책감은 또렷해졌다. 동생 몫을 빼두지 않은 게 미안했고, 동생에게 돌을 던진 게 미안했고, 동생을 귀찮아한 게 미안했다. 동생이 죽어 누워 있는 땅 앞에 선 지금은 동생이 땅속으로 꺼져버렸으면 하고 바랐던 게 죽도록 후회스러웠다. 사내가 곱씹는 죄책감에서는 어김없이 인삼 맛이 났다.
사내는 껌을 몽땅 꺼내 껍질을 벗긴 뒤 동생의 발치에 내려놓았다. 동생은 껌 한 쪽도 오래오래 씹고 책상 밑에 붙여 두었다가 다시 오래오래 씹곤 했다. 동생의 입은 한동안 심심하지 않을 것이다.
진구야, 절해.
싫어.
아빠 동생이야.
싫어.
인사하면 통닭 사줄게.
켄터키 프라이드치킨.
알았어.
아이가 관절인형처럼 어색한 동작으로 절을 한다.
아빠는?
아이가 무릎을 털며 묻는다.
나중에. 아빠는 나중에.
조만간 만나러 갈 거야. 인사는 그때. 사내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흙에 섞인 작은 돌조각을 집어 멀리 던진다. 손톱만 한 돌조각이 멀리멀리 날아간다.
봉고도 멀리멀리 날아간다. 아니, 달려간다. 가야 할 길이 멀고멀다. 과연 이 고물차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먼 길을 떠나야 하는 운전자의 상식적인 노파심이 자꾸만 자동차정비소를 돌아보게 만들지만 사내는 그런 노파심을 외면하고 무시하고 거꾸러뜨린다. 자동차정비소는 치과와 같으니까. 작은 걱정을 들고 가면 언제나 의외의 큰 골칫거리를 안겨 준다. 엔진오일을 채우러 가면 점화플러그도 갈아야 하고 타이어도 갈아야 한다고 겁을 준다. 미리미리 찾아가든 버틸 때까지 버티다 가든 견적은 다르지 않다.
도시의 북쪽 톨게이트로 가는 길에는 자동차 정비소가 자주 눈에 띈다. 노파심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 놓지 못한 것이다. 사내는 경마용 말처럼 앞만 노려보지만 관자놀이에 사이드미러가 달린 것처럼 주변의 가게들이 휙휙 다가왔다 멀어지면서 망막에 흔적을 남긴다. 특별한 풍경이랄 것은 없다. 뱃속에 회충이 들어앉은 것처럼 매운 시멘트 냄새를 좇아 흘러 다녔던 도시들의 길거리 모습과 다르지 않다. 주유소와 교회 사이에 이런저런 음식점들이 옥수수 알갱이처럼 들어차 있다. 그런 풍경이다. 성경 말씀처럼 짐승의 영혼은 땅 밑에 묻혀서 검은 기름이 되고 인간의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 흰 구름이 된다. 검은 기름과 흰 구름 사이에는 노란 옥수수들이 서 있다.
출출하지만 주유소와 교회 사이에 알알이 박힌 음식점들도 그냥 지나친다. 주유소와 교회 사이에 가지런히 늘어선 옥수수 알갱이들이 우수수 밀려난다. 반쯤 뜬눈으로 아침을 맞은 조바심이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지 않는다. 일단 고속도로에 올라타고 허기는 휴게소에서 달래자고 속삭인다. 조바심 앞에서 사내의 귀는 종이처럼 얇아진다. 종이로 오려붙인 귀가 된다.
톨게이트를 지나 고속도로에 오르자 종이 귀가 다시 두툼해진다. 뭐든 두툼한 게 좋다. 삼겹살도, 지갑도, 가슴도. 핏발 선 조바심이 두툼해진 가슴에 이마를 기댄 채 꾸벅꾸벅 존다. 오직 달리는 것에만 골몰하는 고속도로의 단순성이 사내의 복잡한 신경 나사를 풀어 준다. 다른 길은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안식을 준다.
고속도로의 단순성 위에서도 아이는 졸지 않는다. 번을 서는 초병처럼 눈을 똑바로 뜨고 귀를 쫑긋 세우고 단조로운 정면을 두 눈 부릅뜨고 주시한다. 빳빳한 종이를 오려서 조수석에 붙여 놓은 미어캣이다.
정말로 아이는 초병 노릇을 한다. 서울 320킬로미터. 표지판의 속삭임을 크게 복창한다. 반대편 차선에서 달려드는 차를 향해 총을 들이대며 암호를 요구하는 것 같다. 반대편의 차들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음으로써 아이의 시험을 통과한다. 오늘 낮의 통행 암호는 침묵이다. 파랗고 네모난 침묵을 앞세우고 장성과 백양사가 무사통과한다.
배고파.
아이가 소리친다. 배고프다는 말을 백 번은 한 사람처럼 날카롭게 소리친다. 유레카! 배고프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깨달은 사람처럼 호들갑스럽게 소리친다. 단숨에 서울까지 달려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사실에 사내는 절망하면서 안도한다.
알았어. 다음 휴게소에서 쉴게.
사내가 대답한다.
앞차의 그림자가 차 밑에서 기어 나와 오른쪽으로 자라고 있다. 시계 대신 그림자를 살펴보는 것은 공사판에서 생긴 버릇이다. 시계는 넥타이를 매고 일하는 사람들이나 들여다보는 것이다. 땀을 흘리지 않고도 뭔가를 해내는 사람들 말이다. 땀이 눈으로 흘러드는 사람들은 시계를 볼 수도 없다. 그림자가 오른쪽으로 자라고 있다면 뱃가죽이 등뼈에 달라붙을 때다.
첫 번째 휴게소가 봉고를 낚아챈다. 사내는 휴게소 화장실에서 방광을 비운 뒤 뱃가죽과 등뼈 사이에 뭔가를 채워 넣기 위해 식당으로 향한다. 식당 입구 옆에서 닭튀김 냄새가 지글거린다. 지글거리는 기름 거품 속에서 닭 조각이 노랗게 튀겨지고 있다. 아이를 위해 닭튀김을 산다. 우묵하고 넓은 종이사발에 닭의 반쪽이 조각조각 담긴다. 본래의 형체와 색깔을 칼과 기름에게 내준 반쪽 닭이 사내의 가슴 속에서 아버지라는 깃발로 나부낀다. 새끼의 입에 먹이를 집어넣는 어미 새처럼 가슴을 한껏 부풀린다.
사내는 식당에 들어가 칡 냉면을 주문한다.
아이도 가벼워진 방광을 덜컹거리며 맞은편 의자에 앉는다.
자, 후라이드치킨.
사내가 닭 반쪽을 아이 앞으로 민다.
아이가 종이사발을 요리조리 살피더니 인상을 구긴다.
프라이드치킨 아니야.
사내의 얼굴도 구겨진다.
후라이드치킨이잖아.
프라이드치킨.
후라이드치킨 맞잖아.
켄터키 프라이드치킨.
아이가 소리 지른다.
여기에는 이것뿐이야.
켄터키 프라이드치킨! 켄터키 프라이드치킨! 켄터키 프라이드치킨!
아이의 얼굴이 파래진다. 파란 토끼가 된다. 파란 토끼는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을 노래 부른다. 고개를 앞뒤로 흔들며 노래 부른다. 켄터키 프라이드치킨, 켄터키 파란 프라이드치킨, 파란 켄터키 프라이드치킨, 파란 켄터키 파란 프라이드치킨.
주변의 눈들이 아이를 돌아본다. 파란 토끼의 파란 노래를 간보고 뒤적이고 찔러 본다. 희한한 재주를 부리는 새끼원숭이를 보듯 값싼 호기심을 동전처럼 던진다. 아이의 발치에 동전들이 떨어지고 구르고 쌓인다. 주변의 눈들은 엷은 기름막이 낀 것처럼 느끼하고 불쾌하다. 느끼하고 불쾌한 시선이 이제 이쪽을 향하는 것 같다. 손 때 묻은 동전 같은 시선이 새끼원숭이를 학대하고 착취하는 불한당에게 쏟아진다. 무대 앞으로 끌려나온 관객처럼 사내는 당황하고 안절부절못한다. 사내의 얼굴도 파랗게 질린다. 겨드랑이는 빨갛게 뜨거워진다. 심장이 작고 단단한 공이 되어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숨을 쉴 수 없다. 심장이 목에 걸려 있는 것 같다.
알았어. 진짜 켄터키 프라이드치킨 사줄게.
사내는 백기를 든다. 파란 켄터키 노래가 뚝 그친다. 때에 전 동전들도 각자의 주머니로 돌아간다.
사내는 억울하다. 학대하고 착취하는 불한당은 자신이 아니라 아이다. 파란 토끼다. 파란 켄터키 프라이드토끼다. 파란 켄터키 프라이드토끼가 자신의 심장을 가져가려고 했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파란 켄터키 프라이드토끼에게 굴복했다는 사실이 목구멍을 꽉 막고 있다.
사내는 칡 냉면을 버린다. 후라이드치킨도 버린다. 사내는 물통에서 찬물을 한 컵 받아 마신다. 입안 가득한 물이 심장으로 쫄쫄쫄 내려간다. 목에 걸려 있는 것은 심장도, 파란 켄터키 프라이드토끼에게 굴복했다는 자괴감도 아니다. 목구멍에 걸린 것은 아이다. 아이는 버리지 못한다. 아이는 칡 냉면도 후라이드치킨도 아니어서 고속도로휴게소에서 버릴 수 없다.
아이를 목구멍에 담은 채 사내는 차에 시동을 건다. 차가 고속도로 위로 올라선다. 노란 차선을 밟고 달리는 기분이다. 담장 위를 달리는 기분이다. 유리 조각이 박힌 담장을 달리는 기분이다. 염병할 켄터키 프라이드치킨 때문이다. 염병할 진짜 켄터키 프라이드치킨 때문에 고속도로에서 내려와야 한다.
전주, 라고 적힌 표지판을 따라간다. 염병할 진짜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을 찾아간다. 염병할 진짜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은 지도에도 없다. 지도에도 없는 켄터키를 찾아 지도책 속의 전주를 펼친다.
이 가까운 도시는 처음이다. 시멘트 냄새를 따라다닌 사내의 인생이 비껴간 도시다. 도청과 시청이 지도 아래쪽에 붙어 있다. 가장 번화한 쪽에 판돈을 걸기로 한다. 사내는 넓어지는 길로, 차가 많아지는 도로로 갈아탄다. 넓고 복잡한 길을 따라가면서도 주변을 샅샅이 살핀다. 켄터키치킨은 보이지 않는다. 켄터키는 보이지 않는다. 켄터키는 대체 어디에 처박혀 있는 걸까? 여기에 켄터키가 붙어 있기는 한 걸까? 도청과 시청의 갈림길에서 머뭇거리다 사내는 도청을 택한다. 시청보다는 도청이 클 테니까.
은행과 은행 사이에 식당과 카페와 술집이 즐비하다. 도시의 심장부에 들어선 것이다. 사내는 속도를 늦추고 도시의 심장 주변을 빙빙 돈다. 켄터키는 없다. 켄터키라는 염병할 보물은 없다.
사내는 길가에 차를 대고 행인에게 큰소리로 묻는다. 켄터키라는 염병할 보물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젊은 남자애는 모르겠다며 고개를 젓는다. 몇 사람 더 붙들고 물어보지만 소득은 없다. ‘켄터키’라는 말이 갑자기 우스꽝스럽게 들린다. 우스꽝스러운 질문을 던진 학생처럼 창피하다.
114한테 물어봐.
아이가 대시보드 위에 놓인 사내의 휴대폰을 집어 들며 말한다.
사내의 콧잔등에 수치심이 확 타오른다. 왜 그 생각을 미처 못 했을까. 이게 다 염병할 켄터키 때문이다. 짜증과 피로가 몰려온다.
그럴 참이었어.
사내는 퉁명스럽게 쏘아붙이고 휴대폰을 낚아챈다. 세상의 모든 멍청이들이 켄터키를 찾고 있는지 114는 통화 중이다. 신호대기음을 한참 들은 뒤에야 목소리가 들린다. 켄터키 프라이드치킨 전화번호를 묻자, 어느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인지 되묻는다. 켄터키가 여러 개인 모양이다. 아무데나 불러 달라고 하자 목소리는 사라지고 기계음이 등장한다. 기계음이 불러 주는 숫자를 사내는 머릿속에 주워 담기 위해 복창한다. 하지만 휴대폰 버튼을 누르다 멈칫한다. 전화번호의 허리가 잘려 나갔다. 잘려 나간 번호를 아이가 큰 소리로 외친다. 사내의 손가락이 아이의 목소리에 맞춰 마지못해 움직인다.
달리는 전파에서 뛰어내린 가늘고 높은 목소리가 사내의 손가락 사이로 파고든다. 가늘고 높은 목소리가 날아온 곳은 전북대 앞이다. 지도를 보니 도시의 북쪽 끝이다. 도청에서 가까운 켄터키가 있는지 묻자 가늘고 높은 목소리가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사내는 휴대폰을 귀와 어깨 사이에 끼우고 번호를 손바닥에 볼펜으로 적는다.
사내는 손바닥을 보며 전화를 건다. 이번 켄터키는 허스키 보이스고 시청 근처다. 사내는 위치를 묻는다. 허스키 보이스가 노래하듯 위치를 알려준다. 사내는 지도에 받아 적으려다 만다.
책은 깨끗이. 어떤 책이든 마찬가지. 그래야 동생에게도 새 책. 책을 더럽히지 않는 것은 사내의 또 다른 재주. 물려줄 동생이 없으니 이제는 죽은 재주. 인삼껌을 훔쳤을 때 정직이라는 재주도 죽었으니 사내의 수중에 재주라고는 꽝. 꽃이 피지 않는 나무가 있고 향기 없는 꽃이 있고 날지 못하는 새가 있고 비를 내리지 못하는 구름이 있듯 무엇에게나 누구에게나 하나씩 재주를 주는 하느님도 가끔은 깜박. 그런데 하느님은 저 아이를 빚을 때도 깜빡? 그렇다면 저 토끼는 내 자식이 틀림없지. 눈에서는 눈, 이에서는 이.
웃긴 소리지만 어머니는 저 아이가 용왕의 아들이라고 했지. 어느 점집을 다녀온 뒤였어. 너무 귀한 분이라 팔아야 한다나. 아이의 배냇저고리를 인적 없는 들판에서 태웠지. 태워서 팔았지. 노래 못 하는 바람에게, 눈물 없는 구름에게, 울지 못하는 폭포에게, 꽃이 없는 나무에게. 하느님이 깜박한 것들에게 귀하고 귀하신 분을 팔아넘겼지. 그래야 내가 무사할 거라고, 명대로 살 거라고.
시청을 가리키는 표지판을 따라가다 보니 저기 켄터키 할아버지가 웃고 있다. 은퇴한 하느님처럼 인자하게 웃고 있다. 마침내 염병할 켄터키에 도착했다. 하지만 휴게소에서부터 따라온 분노는 아직 목구멍에 걸려 있다. 파란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이 아직 목구멍에 걸려 있다.
사내는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자마자 프라이드치킨을 주문한다. 켄터키는 아이의 천국, 에어컨은 빵빵하고 프라이드치킨은 노랗다.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은 정말 샛노랗다. 노란 닭을 노란 기름에 튀겨낸 것 같다. 아이는 염병할 진짜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을 진짜 맛나게 뜯어먹는다. 큼지막한 닭튀김 조각을 순식간에 해치운다. 이럴 때는 겁에 질린 초식동물이 아니라 위풍당당한 육식동물이다. 염병할 토끼가 아니라 호랑이다.
천천히 먹어.
사내의 목소리가 딱딱하면서 부드럽다. 염병할 켄터키 할아버지의 인자한 목소리다. 호랑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닭 조각을 새로 물어뜯는다.
콜라 시켜 줄까?
환타.
사내는 큰 소리로 환타를 주문한다.
마지막 닭 조각 앞에서 아이의 턱이 느리고 신중해진다. 호랑이가 아니라 고양이가 된다.
더 시켜 줄까?
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사내는 닭튀김 조각을 두 개 더 주문한다. 아이의 턱이 다시 빠르고 대담해진다. 고양이가 아니라 호랑이다. 호랑이가 돌아왔다. 사내는 돌아온 호랑이를 흐뭇한 눈길로 바라본다. 아무렴. 물어뜯을 때는 호랑이처럼 달려들어야지.
사내는 켄터키라는 천국을 느긋하게 둘러본다. 종업원도 탁자도 의자도 바닥도 벽도 깔끔하고 시원시원하다. 벽에 걸린 텔레비전도 최신형이다. 텔레비전은 어제 야구경기의 하이라이트를 보여주고 있다. 곰과 독수리의 경기. 사내는 느슨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자막이 오른쪽 테두리 밖에서 뛰어나와 왼쪽 테두리 밖으로 종종거리며 달려간다. 오늘 중계방송 안내다. 호랑이가 군산에서 사자와 맞붙는다. 군산. 사내의 눈꺼풀이 빠르게 찰칵거린다.
봉고는 켄터키를 떠나 다시 고속도로에 올라탄다. 사내는 땀범벅이다. 태양은 봉고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이마 위에도 팔뚝 위에도 무릎 위에도 발목 위에도 태양은 있다. 가속페달의 축도 태양에 박혀 있다. 엔진 속에도 기름통에도 태양이 들어차 있다. 태양이 북쪽으로 달린다. 북쪽 지평선을 향해 달린다. 천국을 맛본 아이는 켄터키의 달처럼 조용하다.
얼마 후 군산행 이정표가 태양을 피해 하늘에서 내려온다. 운전대에 눌어붙은 사내의 손이 까닥거린다. 저만치 고속도로에서 내려서는 커브길이 나타난다. 커브길이 가까워진다. 사내는 충동적으로 운전대를 꺾는다. 차가 고속도로에서 떨어져나가 커다란 원을 그린 뒤 서쪽으로 머리를 내민다.
아빠.
아이가 소리친다. 빨간 목소리. 경로 이탈을 경고하는 적색경보.
알아. 군산에 가는 거야.
아빠 친구는 서울에 살잖아.
야구 보고 가자.
야구?
군산에서 경기를 한대.
군산에서 야구를 해?
그래 오늘은 군산에서 경기를 해.
오늘은 군산에서 야구를 해.
아이의 콧구멍이 넓어진다. 켄터키라는 천국이 떠난 자리에 야구라는 천국이 들어앉는다. 귀하신 분이 흡족해한다. 사내는 오른쪽 갈빗대 아래가 뻐근해진다. 간이 있는 자리다. 토끼를 꼬드겨 용궁으로 데려가는 거북이가 된 기분이다. 군산이라니. 이게 다 염병할 켄터키 때문이다. 염병할 켄터키 덕분에 염병할 죄책감이 누그러진다. 토끼를 꼬드겨 용궁으로 데려간 거북이가 죄책감 때문에 괴로워했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 없다.
차가 서쪽으로 달린다. 태양도 계속 따라온다. 태양은 이제 서쪽하늘로 내려온다. 서쪽 하늘 아래에는 태양을 숨길 낮은 구름도 높은 산도 없다. 파란 논이 융단처럼 펼쳐진 채 태양을 조금씩 끌어내리고 있다. 벼들이 태양이라는 어미 새를 향해 입을 한껏 벌리고 있다. 띄엄띄엄 뿌려진 늙은 마을마다 늙은 나무 그늘이 늙수그레하다. 왼쪽 지평선 끝으로 바닷물이 밀려든다. 들판 깊이 파고드는 바닷물은 논처럼 파래서 들판의 일부처럼 보인다. 왼쪽의 바닷물이 점점 멀어지는가 싶더니 지평선이 되어 사라진다.
한참 뒤, 반대쪽 지평선 너머에서 바닷물이 다시 나타난다. 작은 도시가 거대한 바다를 거느린 채 나타난다. 군산이다. 사내의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야구 때문이 아니다. 토끼 때문도 아니다. 토끼의 어미 때문이다. 저 오래된 항구도시에는 토끼의 어미가 있다. 집 나간 토끼 어미가 있다. 토끼가 토끼의 꼴을 완전히 갖추기도 전에 집을 나간 염병할 토끼 어미가 있다.
사내는 야구장으로 곧장 차를 몬다. 이 도시를 찾은 이유를 향해 달린다. 야구장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탁 트인 들판 가운데 기념비처럼 서 있는 구조물이 야구장이다. 이른 시각이지만 꾸물거리다가 표가 동날지도 모른다. 여기는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의 도시가 아닌가.
사내는 조수석의 아이를 힐끔 쳐다본다. 아이는 탐험가의 얼굴로 낯선 도시를 뜯어보고 있다. 야구라는 만능열쇠가 아이의 경계심을 해치웠다. 아이의 입이 오물거린다.
뭘 먹어?
껌.
무슨 껌?
인삼 맛 껌.
아이가 껌을 내밀며 대답한다.
어디서 난 거냐고?
무덤에서.
그 껌은 아빠가 아빠 동생한테 준 거야.
죽은 사람도 껌을 씹어?
사내는 말문이 막힌다.
아이의 말은 사내의 말문을 막는 재주를 가졌다. 아이의 손은 여전히 물러서지 않는다. 껌을 받지 않으려면 그럴 듯한 이유를 찾아내야 한다. 사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껌을 받아든다. 아이가 사내의 손을 주시한다. 받은 껌을 입에 넣지 않으려면 역시 그럴 듯한 이유를 찾아내야 한다. 사내는 껌을 입안에 넣는다. 아이는 사내의 입을 주시한다. 입안에 넣은 껌을 씹지 않으려면 또 역시 그럴 듯한 이유를 찾아야 한다. 사내는 껌을 씹는다. 입 안 가득 인삼 맛이 퍼진다. 갑자기 속이 거북해진다. 아이가 씹어 먹은, 샛노란 기름에 샛노랗게 튀긴 켄터키가 자신의 뱃속에 쟁여진 것처럼 속이 거북하다. 메스껍다.
사내는 몰아치는 바람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길바닥에 침 한 번 뱉지 않은 사내지만 참을 수 없는 메스꺼움에 껌을 훅 뱉는다. 껌이 휙 날아간다. 그래도 메스꺼움은 가라앉지 않는다. 사내는 부르르 몸을 떤다. 이 도시를 향해 충동적으로 차를 돌린 진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심장 박동이 빨라진 진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메스꺼움의 진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지금 뱃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메스꺼움은 저 옛날 찰거머리처럼 들러붙던 사랑스런 미친 동생을 떼어내기 위해 돌멩이를 던졌을 때의 메스꺼움이다. 귀찮다고, 따라오지 말라고, 땅속으로 꺼져버리라고 저주를 퍼부으며 돌을 던졌을 때의 무섭도록 더러운 느낌이다.
아빠, 왜 껌을 벌써 뱉어?
아이의 목소리가 추궁한다.
사내는 입을 꾹 다문다. 침을 꿀꺽 삼킨다. 인삼 맛이다. 무섭고 더러운 인삼 맛이다.
(다음 호에 계속)
《문장웹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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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소설
낫과 밤낫과 밤 김경욱 글이 써지지 않는 밤에는 낫을 들고 나갔다. 새로 이사한 아파트 베란다 창고에 낫이 있었다. 지구 반대편부터 끌고 온 캐리어를 집어넣다 발견했다. 열네 시간 훌쩍 넘는 비행으로 내 몸뚱이마저 낯설었지만, 물음표 모양으로 희번덕거리는 그것은 낫이라 불리는 물건이 분명했다. “하진 씨, 이게 뭐예요?” 아내에게 큰 소리로 물었다. 반말하지 않기. 서로의 이름 부르기. 그게 유일한 결혼 조건이었다. 부부간에 요요, 해서 애가 들어서지 않는다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지켜 온 혼인 서약이었달까. “보면서 물어요?” 하진 씨는 베란다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다 안다는 투로 말했다. “웬 거냐고요.” 내가 고쳐 물었다. “전에 살던 사람들이 빠뜨렸나 봐요. 일부러 연락하기 애매해서 그냥 뒀어요. 가져갈 거면 가지러 오겠죠.” 낫을 맨 안쪽으로 밀어 넣고 창고 문을 닫았다. 주말농장에서 썼는지 산소 벌초에 썼는지 몰라도 낫의 주인이 찾으러 올 것 같지는 않았다. * 하진 씨가 고르고 계약한 아파트였다. 이사도 하진 씨 혼자 했다. 재건축 얘기가 도는 단지였다. 이미 확정 단계라 했던가. 상관없었다. 내게 있어 집이란 밤을 새워 글 쓰는 곳을 뜻하니까. 나 자신을 코너로 몰아넣을 두 개의 벽만 있으면 되니까. 이곳은 세상의 구석, 나의 북극점, 나의 두벌식 자판, 나의 저장하기. 부동산 계약서에도 대법원 등기소에도 올리지 못할 나만의 주소. 번지수가 어떻게 되든 노트북을 펴는 자리가 바로 나의 집이다. 맞다. 나는 작가다. 지금껏 쓴 책이라야 장편소설 한 권뿐이지만. “집주인이 갑자기 들어와 살겠다네요.” 하진 씨가 이사할 집을 급히 구해야 한다고 전화했을 때 나는 열두 시간 시차 너머에서 노트북 화면만 노려보던 참이었다. 미국 북동부의 한 주립대학에서 운영하는 국제창작프로그램 지원 자격은 오직 책 한 권. 나를 위한 레지던시 같았다. 어느 날 화재 경보에 놀라 잠옷 바람으로 레지던시 숙소를 뛰쳐나가면서도 나는 노트북부터 집어 들었다. 몸만 빠져나온 외국 작가들이 엄지를 치켜들며 말했다. “너, 작가 맞구나.” 그런 영어는 못 알아들을 수 없다. 일간지 기자 출신 작가라면. 작가 두 글자 앞에 군더더기처럼 붙곤 하는 수식어가 못내 거슬리던 사람이라면. 중학생 때부터 기자가 되고 싶었다. 낙엽이 흩날리는 샹젤리제 거리에서 버버리 코트 깃을 세운 특파원이 주머니에 한 손을 꽂은 채 보도하는 모습에 마음을 빼앗겼다. 대학도 불문과에 갔다. 방송국에 서너 번 떨어지고 신문사로 방향을 틀었다. 틀어진 건 연애도 마찬가지였다. 부부 소리를 들으며 붙어 다니던 여자친구와도 졸업하자마자 헤어졌다. 사귀는 동안에도 왜 사귀게 된 건지 알 수 없었다. 기억나는 건 제대하자마자 참석한 신입생 환영회에서 여자친구가 마실 막걸리
- 김경욱
- 2023-12-01
문장웹진 소설
고양이를 위한 만찬[단편소설] 고양이를 위한 만찬 김경욱 “발소리 안 났어요?” 여자가 귀를 쫑긋 세우며 물었다. 꽃무늬 원피스에 기름투성이 에이프런을 두르고 한 손에는 비닐장갑, 다른 손에는 국자를 쥔 채였다. 조리대 가득 새 접시들이 어지러이 놓여 있었다. 재작년 블랙프라이데이에 사들이고 한 번도 쓰지 않은 레녹스 디너 세트였다. 보타이 차림의 판매원은 반영구적이라고, 금혼식 전에 하자가 생기면 군말 없이 환불해 주겠노라 너스레를 떨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선득한 느낌 때문이었을까. 왠지 모르게 진저리치면서도 여자는 금테 장식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식사 도중 느닷없이 정전이 찾아와도 헛숟가락질 하는 일은 없을 거라더니, 금빛 테두리는 퇴창을 낮게 파고드는 막바지 햇살에 타오르듯 빛났다. 연중 해가 가장 긴 날이었다. 여자가 등지고 선 부엌의 맞은편에는 그늘이 짙게 드리워 있었다. “바람이었겠지.” 언더셔츠 바람으로 식탁 앞에 웅크린 남자가 퉁명스레 대꾸했다. 얼굴은 눈에 띄게 불콰했다. “풍경소리는 못 들었는데…….” “팔 달린 놈이면 벨을 눌렀겠지.” 남자는 위스키 잔 위로 양주병을 기울였다. 라벨에는 뿔이 탐스러운 순록 머리가 그려져 있었다. “벨은 대체 언제 바꿔 줄 거예요?” “멀쩡한 벨을 왜?” “소리가 마음에 안 든다고 몇 번이나 말해요? 오밤중에 파이어 알람이라도 울리는 것처럼 깜짝깜짝 놀란다고요.” 여자가 손에 비닐장갑을 꿰려 애쓰며 말했다. 손가락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자꾸 엇나갔다. “국자를 내려놓으면 되잖소.” “마음이 급해서 그래요. 잔소리 말고 불이나 좀 꺼줘요. 시금치 데치는 냄비.” “한창 주님을 영접 중인데…….” 남자는 두 손으로 식탁을 짚고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무릎을 펴는 순간 입에서 ‘끙’ 하는 신음이 반사적으로 새어 나왔지만 부엌 한구석으로 어기적어기적 걸음을 옮겼다. 가스레인지의 불꽃은 네 개. 냄비 뚜껑마다 쉭쉭 김이 뿜어져 나왔다. 남자는 가장 요란한 소리를 내는 불꽃을 죽였다. “거기 말고 그 위.” 남자는 가스레인지 레버를 거칠게 돌리고 허겁지겁 양주병 앞으로 돌아갔다. “옷 좀 제대로 걸쳐요.” “내 집에서 옷차림도 맘대로 못 하나?” “손님 오잖아요.” “내 손님인가?” “기억 안 나요? 입국한 지 며칠 안 되었을 때. 너무 고단해서 파이어 알람이 요란하게 울리는데도 곯아떨어져 있다 소방대원한테 끌려 나가다시피 했잖아요. 로비로 피신한 투숙객 중 속옷 바람은 우리뿐이었어요. 얼마나 창피하던지. 차라리 진짜 불이라도 났으면 싶었지 뭐예요.” 여자가 시금치의 물기를 조물조물 짜내며
- 김경욱
- 2017-04-01
문장웹진 소설
야구란 무엇인가 [마지막 회]장편연재_마지막 회 야구란 무엇인가 김경욱 병원을 나서는 사내는 사냥꾼의 얼굴을 되찾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염소를 찾아내야 한다. 하늘이 무너졌지만 솟아날 구멍을 뚫어야 한다. 실제로 구멍을 뚫었다. 간호사실 책상 서랍에서 슬쩍한 명함. 염소의 가족이 찾아오면 연락 달라며 보험회사 직원이 남긴 명함. 염소는 보험회사 쪽에 기웃거리지 않을까. 쥐도 새도 모르게 줄행랑 친 염소가 섣불리 꼬리를 드러낼까? 꼭꼭 숨어버리면? 하늘이 무너지는데 겨우 바늘구멍을 뚫었다. 제로손해보험 영업팀장. 이름 밑에 휴대폰 번호만 달랑 적혀 있다. 이상한 명함이다. 사내는 명함 속 휴대폰 번호로 전화를 건다. 신호음이 길게 이어진 뒤 굵고 낮은 남자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보세요. 보험회사죠? 아닌데요. 제로손해보험 아닙니까? 아, 맞아요. 수화기 저쪽의 말이 빨라진다. 엎지른 것을 주워 담는 목소리. 석연치 않다. 염소와 관련 된 것은 하나같이 다 수상쩍다. 무슨 일로? 거시기 명함을 보고……. 돈 쓰시게? 아님 받을 돈이 있으신가? 남자의 말에는 주저하는 기색이라고는 없다. 닳고 닳은 점원이 물건을 권하는 말투다. 받을 돈이라고? 혼란스럽지만 사내는 상황을 파악하려고 애쓴다. 적어도 보험회사는 아니다. 염소에게 돈을 줄 사람이 아니라 돈을 받아내려는 사람이다. 일단 미끼를 던져 보기로 한다. 받아야 할 돈이 있습니다. 사무실로 찾아오쇼. 사무실이 어디죠? 사내는 남자가 불러 준 주소를 명함에 받아 적는다. 서울이고 가리봉께다. 사내는 여관으로 달려간다. 아이는 거미집에 엎드려 『파브르곤충기』를 큰 소리로 읽고 있다. 사내는 부산스레 짐을 챙긴다. 세면대에 늘어놓은 세면도구를 비닐봉투에 챙기고 객실 의자 등받이에 널어 둔 속옷을 거둬들인다. 그제야 아이가 관심을 보인다. 집에 가? 아이는 『파브르곤충기』에게 묻는다. 찾을 사람이 있어. 어서 짐 챙겨. 친구? ‘친구’라는 말이 거슬리지만 말씨름할 시간이 없다. 그래. 친구 병원에 있어. 지금은 없어. 친구 다 나았어? 몰라. 친구 어디 갔어? 몰라. 친구 아니야. 어서 짐이나 챙겨. 사내가 버럭 소리 지르며 거미집을 철거한다. 바닥에 널린 곤충부대를 스파이더맨 가방에 쓸어 담는다. 질풍처럼 짐을 꾸린다. 마지막으로 냉장고에서 어머니를 꺼낸다. 오동나무 상자가 서늘하다. 아이는 벽에 붙은 생활계획표를 조심조심 떼어내고 있다. 벽의 심장이라도 떼어내는 것처럼 신중하다. 복장이 터지지만 사내는 입술을 깨물며 참는다. 더 다그치다 잠자는 파란 토끼를 깨우면 곤란하다. 염소를 깨운 것만으로 어리석은 짓은 충분하다. 카운터로 내려가 숙박비를 치르고 차에 오른다. 전에 왔던 길을 되짚어 도시의 북쪽으로 올라간다. 서울하고도 가리봉이라면 다른 길, 질러가는 길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익숙한 길만 고집한다. 도시의 북쪽에서 120번 고속도
- 김경욱
- 2012-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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