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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逆)겨워’와 ‘역(力)겨워’의 거리

  • 작성일 2005-08-19

 

심선옥(문학평론가)


1. 이별과 사랑의 시인, 소월

소월 김정식은 명실 공히 ‘사랑’의 시인이다. 그의 시가 지금까지 대중들에게 널리 읽히고 있는 가장 큰 이유도 ‘사랑’ 때문이다. 소월의 시는, 사랑에 빠져 있는 순간의 열정이나 황홀함보다, 사랑이 떠나려고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 이별한 뒤에도 사랑이 어떻게 지속되는지에 대해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 준다. 실제로 한국의 근대 서정시들은 사랑의 얼굴을 정면에서 바라보는 것보다 사랑의 뒷모습, 사랑의 그림자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독특한 정서를 형성해 왔다. 최초의 자유시라고 일컬어지는 주요한의 「불놀이」(1919)를 비롯하여 소월의 「진달래꽃」(1922)과 「초혼」(1925), 한용운의 「님의 침묵」(1926) 등이 대표적이다.


이별을 체험하고 표현하는 방법은 시인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한 예로 한용운은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부었습니다.”(「님의 침묵」)라고 하여 이별의 슬픔에 빠져 있는 현재의 부정적인 감정의 상태에서 벗어나 미래의 희망적인 세계로 빠르게 옮겨 가고자 한다. 이에 비해 소월의 시는, 이별을 돌이킬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고 깊은 슬픔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이별의 슬픔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샘솟아나는 사랑의 언어를 길어 올린다. 이러한 소월의 시 세계는 애이불상(哀而不傷), 한(恨)이라는 민족 정서를 형상화한 것으로 평가받아 왔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감상주의(感傷主義), 체념(諦念)의 미학으로 비판받기도 하였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왜 일어난 것일까? 또 이별한 뒤에도 어떻게 사랑이 멈추지 않고 지속될 수 있는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이별의 상황이나 이유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질문은 매우 상식적이지만 시인의 감정 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 지금부터 소월의 대표적인 작품 「진달래꽃」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2. “나보기가 역겨워”의 문제성

「진달래꽃」은 1922년 7월 《개벽》에 처음 발표되었다. 당시 소월은 스무 살이었으며,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군 곽산면을 떠나 서울의 정동에 있는 배재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편입해 다니고 있었다. 예전에 그가 다녔던 오산중학교가 1919년 3월, 만세운동을 주동했다는 이유로 일본 헌병들의 손에 불타 버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학업을 중단한 뒤 소월은 3년간 고향집에서 실의의 나날을 보내다가 뒤늦게 상경하여 편입한 것이었다. 이때 소월은 이미 결혼하여 고향집에 아내와 두 딸, 구생(1919년생)과 구원(1920년생)을 두고 있었다. 또한 「진달래꽃」은 《개벽》에 발표될 때 제목과 함께 ‘민요시’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근대 자유시 양식이 확립되기 전인 1920년대 초까지, 시의 형식 명칭을 ‘소곡’ ‘단곡’ ‘산문시’ 등으로 규정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지만 ‘민요시’라는 명칭은 「진달래꽃」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그런 이유로, 이 시는 ‘민요시’라는 범주에서 지금까지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이 글에서는 「진달래꽃」의 주제인 ‘사랑’과 ‘이별’의 관점으로 되돌아가서 시를 다시 읽어 보고자 한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진달래꽃」 전문


먼저, 이 시가 구성하고 있는 시적 상황을 살펴보자. 한때 사랑했음에 분명한 두 사람이 이별을 앞두고 있다. 사랑을 버리고 떠나려는 주체는 시적 화자가 아니라, 시의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임’이다. 시적 화자도 눈앞에 닥친 이별이 거역할 수 없는 현실임을 순순히 인정한다(“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그런데 ‘임’이 떠나려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시적 화자는 그 이유를 “나보기가 역겨워”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1연과 4연에 반복해서 나타나는 만큼, 시의 의미를 해석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역겨워’라니? 이별의 슬픔과 고통도 순순히 받아들일 만큼 ‘나’는 간절히 임을 사랑하는데 그 임은 “나보기가 역겨워” 떠나려 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역겹다’는 말을 국립국어연구원에서 발행한 『표준국어대사전』(두산동아, 1999)에서 찾아보면 “역정(逆情)이 나거나 속에 거슬리게 싫다”라고 풀이되어 있다. 다시 ‘역정’을 찾아보면 “몹시 언짢거나 못마땅하여서 내는 성 = 역증(逆症)”으로 풀이되어 있다. 소월이 평안북도 태생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북한의 과학원 언어문학연구소 사전연구실에서 발행한 『조선말사전』(과학원출판사, 1960)에는 어떻게 풀이되어 있는지 찾아보았더니 ‘역겹다’는 “역정이 나게 겹다”로, ‘역정’은 “몹시 언짢거나 마땅찮게 여기어 내는 성”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리고 ‘역겹다’의 용례로 「진달래꽃」의 첫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김이협이 편찬한 『평북방언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1)에는 따로 수록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뜻풀이에 따르면 “나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이라는 구절은 ‘나를 보기가 몹시 언짢거나 못마땅하게 여겨져서, 그렇게 나를 보기가 싫어져서 헤어지려 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것이 지금까지 이 구절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이었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요즘 독자들에게 ‘역겹다’는 말은 ‘비위가 상해서 구토가 날 것 같다’라는 좀 더 강한 의미로 사용된다. 그런 독자들에게 「진달래꽃」의 사랑과 이별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상상해 보라. 나를 보기가 토할 것처럼 싫어서 떠나는 사람의 발밑에 꽃을 뿌리고 또 죽어도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으니, 이건 마치 순종적인 여인상을 그린 고전 사극(史劇)에 등장할 법한 이야기거나 그도 아니면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종의 엽기 취향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3. ‘역(逆)겨워’로 읽기

그러면 소월이 「진달래꽃」을 발표했던 1920년대에는 “나보기가 역겨워” 이별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었을까? 그가 배재고등보통학교를 다니던 시대에 근대식 학교 교육을 통해 신지식과 신문물을 접한 조선 청년들의 가장 큰 관심거리는 ‘사랑’이었다. 1920년대의 ‘사랑’은 오늘날의 ‘사랑’과는 그 무게와 의미가 달랐다. 배우자의 얼굴도 모르고 부모들의 결정에 의해 결혼이 이루어지던 시절에, 서로의 이상(理想)과 감정(感情)이 통하는 청춘 남녀 간의 자유로운 ‘사랑’이야말로 근대인임을 증명하는 중요한 표징(表徵)이 되었다. 당사자의 뜻에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중매결혼과 조혼제도를 거부하고, 결혼은 자유로운 ‘사랑’의 결과로서 성립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청년들 사이에 강하게 일어났다. 사회적으로도 근대 사상의 핵심인 ‘자유’와 ‘개성’을 실현하는 방법으로써 ‘자유연애’가 옹호되었다. 또한 ‘자유연애’는 아버지 세대가 주도하는 봉건적인 관습에 대한 반항이자 도전이기도 하였다. 비록 늦깎이 학생에다 기혼자였지만 소월도 이러한 시대적인 분위기에 초연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1926년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비관하여 현해탄에 몸을 던져 정사(情死)한 극작가 김우진과 가수 윤심덕의 ‘사랑’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거니와, 이와 비슷한 자유연애 사건들이 당시의 신문과 잡지에 자주 오르내렸다. 이런 사건들은, 미혼의 남녀가 집안의 반대로 맺어지지 못하는 것보다 주로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고향에 부인을 둔 남자가 유학 중에 신여성이나 기생과 사랑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사정이 이러했기에, 찬란한 사랑의 기쁨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안타까움과 이별의 슬픔이 1920년대 문학과 예술의 주제가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낭만적인 연애시와 연애소설, 연애서간집이 청춘 남녀들의 가슴을 울리며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자리에 올랐다. 이 작품들에서 그려진 사랑은 한결같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기에 그 애절함이 더욱 강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의 감정은 더욱 낭만적인 빛깔로 채색되었다. 그리고 사랑의 대상과 감정이 낭만적일수록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비극성은 더욱 커졌다.

이렇듯 낭만적인 사랑의 분위기가 흘러넘치던 때, 사랑하는 사람이 “나보기가 역겨워” 떠나려 한다는 「진달래꽃」의 표현은 매우 파격적이 아닐 수 없다. 그런 표현이 가능한 상황을 굳이 유추해 보자면, 도시의 신문물을 접하고 신여성의 매력에 눈을 뜬 기혼 남자가 구시대적인 용모와 풍습에 젖어 있는 본부인을 떠나려 할 때를 가정해 볼 수 있겠다. 실제로 1921년 3월의 《개벽》에는 <최근의 우리 사회의 현상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비슷한 내용을 다룬 글이 실려 있었다.


재판소에서 사건접수 기록을 보면 이혼사건이 반수(半數)나 점하였으니 남녀의 교육이 균일치 못하고 조혼의 악습이 전래하여 오던 오늘날 조선 사회에는 피치 못할 일이올시다. 이혼의 이유는 허다불일(許多不一)할 터이나 대개는 기혼 배우(妻)가 자기의 이상(理想)하는 바에 정합(情合) 못되는 것, 기혼 배우가 신식적 취미에 부적합한 것, 내용의 여하보다도 용모, 외장(外裝)과 표정, 의행(儀行)이 신시대 여자와 같이 심정에 만족치 못한 것, 생활을 유지키 난(難)한 경우(하급계급 외에는 예외), 기혼 배우의 지식 부족, 연령의 차이 등이 가장 많은 제1의 원인이 될 것이고 제일 중요한 결혼에 관계되는 공동생계의 능력 부족, 가정살림에 태만, 무식, 남자 명령에 역행, 가족에 대한 불순(不順), 무덕(無德), 병질(病疾)은 제2의 원인이 될 줄로 생각합니다. 또 남자나 여자나 결혼의 요구조건이 제2의 내실적 조건보다도 제1의 외양적 조건이 될 줄로 생각합니다.


이 글은 당시에 이혼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게 된 현상을 개탄하면서 그 이유를 밝히고 있다. 특히, 과거에 결혼을 유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던 경제적인 문제나 도덕적, 건강상의 문제는 부차적인 것이 되고 최근에는 배우자의 외형적인 조건, 부부간의 이상(理想) 차이가 이혼의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이 글의 내용 중에서 흥미를 끄는 것은 “용모, 외장(外裝)과 표정, 의행(儀行)이 신시대 여자와 같이 심정에 만족치 못한 것”이라는 대목이다. 그러면 「진달래꽃」에서 “나보기가 역겨워”라는 구절도 이런 현실을 염두에 두고 표현한 것이었을까. 일반적으로 ‘역정(逆情)이 나는 마음 상태’란 상대편의 외모나 성격, 행동거지에서 유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사실이 그러하다면 「진달래꽃」은 1920년대에 유행했던 낭만적인 사랑의 시가 아니라 당대의 사회 현상을 반영한 현실주의적인 작품으로 해석될 새로운 가능성을 갖게 된다.(오해를 막기 위해 덧붙이자면, 소월과 부인은 금슬이 매우 좋았다. 주변 어른들의 눈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랑채에서 부인의 무릎을 베고 책 읽기를 즐겼으며, 그가 서울과 동경에 유학할 때는 부인이 힘들까 봐 친정에 가 있게 했다. 또 부인에게 술을 가르쳐 동네 주막에서 함께 술을 마신 뒤 어깨를 나란히 하여 귀가하는 일도 잦았다고 한다.)


4. ‘역(力)겨워’로 다시 읽기

그래도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가장 먼저 드는 의문은 소월의 시에서 ‘역겨워’와 같이 부정적인 느낌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단어가 「진달래꽃」 외에는 사용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소월의 시에 나타난 부정적인 어휘들을 살펴보면, “꺼림칙한 괴로운 몹쓸 꿈”(「서로 믿음」), “모질던 사람은 죽어서 지옥간다고”(「돈과 밥과 맘과 들」), “몹쓸음을 둔 사람 그 나의 사람”(「맘에 속의 사람」), “물 속에 몸을 던진 몹쓸 계집애”(「고락」) “얼마나 비꼬인 계집애든가”(「고락」) “내 맘에 미욱함이 불서럽다고”(「달밤」) 등이 최상급 수준이다. 이러한 경향은 당시에 발표된 다른 시인들의 시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상대편을 노골적으로 폄하하는 ‘역겨워’와 같은 단어는 사용된 예를 찾기 어렵다. 개성적인 시 세계를 창조한 시인일지라도 자신이 몸담고 있는 시대의 보편적인 정서와 언어 감각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진달래꽃」의 “나보기가 역겨워”라는 구절은 어딘가 돌출적이고 무리한 용례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역겨워’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을까? ‘역겨워’는 한자어 ‘역’과 부사형 어미 ‘겨워’가 결합된 단어이다. 소월은 이런 형태의 한자 합성어를 즐겨 사용하였다. 예를 들어보면, “구만리 긴 하늘을 날아 건너 / 그대 잠든 품속에 안기렸더니, / 애스러라, 그리는 못한대서”(「구름」), “아아아 허수럽다 바로 사랑도 / 더욱여 허수럽다 살음은 말로”(「바닷가의 밤」), “험구진 산 막지면”(「야의 우적」) 등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여기서 ‘애스러라’는 ‘애(哀)+스러라’이며 ‘허수럽다’는 ‘허(虛)+수럽다’이고 ‘험구진’은 ‘험(險)+구진’으로 구성된 한자 합성어이다. 같은 방식으로 ‘역겨워’는 ‘역(逆)+겨워’로 해석되어 왔다.

그런데 ‘역겨워’가 ‘역(逆)겨워’ 뿐 아니라 ‘역(力)겨워’로도 해석될 수 있는 가능성을 파인 김동환의 시에서 발견하였다.


박 넝쿨 뻗은 담장 밑 낡은 우물가에

하얀 박꽃을 물 항아리에 띄워 연달아 이어 나르는

그 맵시 차마 한꺼번에 다 보기 역거워

오늘은 먼- 발치에서 나리꽃 같은 뒷맵시만 바라보고

내일날 시원한 눈시울을 여겨보려 합니다.

남겨두고 이튿날 기다려지는 이 안타까운 기쁨이여.

                         -김동환, 「내일날」(1940) 전문


백운청천 저 하늘에 하올 말씀 하도 많으이. 구름 따라 가버린 분이길래 구름 좇아 도로 오실 것이나 이 한밤을 혼자 보내기 역거워 이 심장 바람에 피우려는 뜻 그대 아실는가, 알아서 받아 주실는가.

                          -김동환, 「춘원초(春怨抄)」(1942) 부분


「내일날」은 낡은 우물가에서 물 길어 나르는 이의 맵시에 반해 버린 시적 화자의 안타까운 사랑의 마음을 낭만적인 어조로 노래한 시이며, 「춘원초」는 구름처럼 떠나 버린 임을 향해 애타는 그리움을 호소하고 있는 시이다. 두 시에는 “그 맵시 차마 한꺼번에 다 보기 역거워”와 “이 한밤을 혼자 보내기 역거워”라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서 “역거워”는 시의 문맥 상 ‘역(力)+거워’ 즉 ‘힘겨워’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


현대의 한글 표기법을 기준으로 할 때 「진달래꽃」의 ‘역겨워’와 위의 시들에 사용된 ‘역거워’는 다른 단어이다. 그러나 조선 총독부의 ‘언문철자법’ 개정안(1930)과 조선어학회의 ‘한글맞춤법통일안’(1933)이 공표되기 전까지 우리말에는 공식적으로 통일된 표기법이 없었다. 그리고 문어(文語)와 구어(口語)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아서 발음이 나는 대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았고, 경성어(뒷날 표준어의 기준이 되는 서울말)와 서도어(평안도방언 중심의)가 표준어의 주도권을 다투며 혼용되고 있었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한다면, 비슷한 발음을 가진 ‘역겨워’와 ‘역거워’가 같은 의미의 단어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1920년대의 한글 표기 상황과 김동환의 시들을 근거로 할 때, 「진달래꽃」의 “나보기가 역겨워”를 ‘역(逆)겨워’ 즉 ‘나를 보기가 몹시 언짢거나 싫어져서’라는 기존의 의미가 아니라 ‘역(力)겨워’ 즉 ‘나보기가 힘겨워’로 해석하는 새로운 가설을 제기해 볼 수 있다. ‘역겨워’를 ‘힘겨워’로 뜻풀이하여 「진달래꽃」을 다시 읽어 보자. 그러면 시에서 구성하고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한때 사랑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사랑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너무 힘겨워서 임이 나를 떠나려 한다. 나는 임의 마음을 알기에 떠나는 임을 붙잡지 못하고, 임이 더 힘겨워할까 봐 눈물도 흘리지 못하고 떠나는 임의 발밑에 애타는 사랑을 담아서 진달래꽃만 뿌린다. 이렇듯 ‘역겨워’를 ‘힘겨워’로 해석해 보면, 시의 간절한 느낌이 더욱 살아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역(逆)겨워’로 해석했을 때에는 임에 의해 일방적으로 사랑이 파기(破棄)되고 나는 버림받았지만, ‘역(力)겨워’로 해석했을 때에는 임과 나의 사이에 깊은 공감과 연민의 정이 흐른다. 이러한 공감과 연민이 있었기에, 소월의 시들이 이별의 슬픔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샘솟아 나는 사랑의 언어를 길어 올릴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진달래꽃」의 의미가 ‘역(逆)겨워’와 ‘역(力)겨워’의 어느 쪽에 있는지 아직 확정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역(力)겨워’를 뒷받침할 수 있는 좀 더 많은 이론적? 실증적 근거들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다만 관습적으로 이해되어 온 이 구절을 시의 문맥에 충실하여 다시 읽어 봄으로써 「진달래꽃」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새롭게 되살아나는 시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문장 웹진/200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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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봄, Primave

[편집위원 기획 – 작가들의 필명] 미완의 봄, Primave 김봄 이십 대 중반, 나는 강남구 신사동에 작은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을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나온 지 6개월도 안 된 시점이었다. 다년간의 아르바이트 경험으로 커피와 샌드위치를 만드는 것은 자신 있었다. 회사만 아니면 된다, 뭔가 작게라도 만들어 팔 수 있는 가게를 해 보자, 그런 마음으로 사방을 떠돌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강남시장 인근을 걷다 가게 자리를 발견했고 나는 몇 주 동안 매일같이 가게 앞으로 출근해 시간대별·연령별 유동 인구를 조사했다. 신사대로와 압구정대로 사이를 가로지르는 꽤 널찍한 골목길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유동 인구가 많았다. 커피 선호도가 높은 소호 사무실이 많은 동네였고, 연령대도 청장년층이 많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권리금도 없이 월세 30만 원만 내면 되는 자리였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굳은 의지만 가지고 결심한 바를 밀어붙였다. 그런데 정작 가게를 계약한 다음부터는 모든 게 물음표로 남았다. 내 머릿속에는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이라는 막연한 테마만 존재했을 뿐 어떤 콘셉트로 가게 이미지를 만들 것인지도 정리되어 있지 않았다. 가게 이름도 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그런데, 무어라 부르지?” 나는 난데없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그렇게 쿨하고 힙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미 그 골목 곳곳에 즐비한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들처럼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만들 생각도 없었다. 수중에 가진 돈으로 어림없는 일이기도 했다. 커피 가게의 정체성은 커피 원두가 좌우하는 법이니 나는 이태리 원두 ‘라바짜’를 사용하기로 한 것에서부터 가게 콘셉트를 잡아가기로 했다. 당시 주변 가게에서는 9,800원짜리 코스트코 스타벅스 원두를 사서 쓰거나, 그와 비슷하거나 더 낮은 가격으로 유통되는 영세업자들의 원두를 사다 썼다. 대상에서 만든 ‘로즈버드’라는 전문 브랜드는 가격도 품질도 괜찮은 편이었지만 내 입에는 좀 가볍게 느껴졌다. 진하면서 크레마가 풍부한 커피를 만들어 승부하고 싶었기에 나는 대담하게도 44,000원짜리 라바짜 원두를 선택했다. 1킬로그램 원두 한 봉지에 100잔 정도 커피를 만들 수 있는데, 컵과 뚜껑, 컵 홀더, 빨대와 같은 부자재와 우유 등의 식재료 가격을 따져 보면 다른 가게에 비해 마진율이 크게 떨어졌다. 이문이 좀 적게 남더라도 하고 싶은 걸 하려고 도전하는 것이니만큼 나는 공들여 인테리어를 시작했다. 가게는 작아도 이탈리아 원두를 쓰느니만큼 정통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고 가게 이름을 이탈리아어에서 찾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여러 단어들을 후보군에 올려놓고 고민하다가 ‘봄’을 뜻하는 ‘프리마베라(Primavera)’로 결정했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실개천이 녹아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흐르는 발음이 마음에 들었다. 오페라 주역 여성 가

  • 김봄
  • 202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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