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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 작성일 2008-02-01


고은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한원균




1. 요약


고은은 첫 시집 『피안감성』(1960)부터 최근 시선집 『어느 바람』(2002), 시집『부끄러움 가득』(2006) 그리고 연작시 『만인보』(1986?2007) 26권 등 100권이 넘는 시집, 산문집, 소설집을 출간하였다. 일단 집필의 분량은 한국 근대문학 사상 전례가 없는 경우에 속한다. 이는 글쓰기에 관한 한 ‘광기’의 작용이 아닌가, 라는 평을 들을 만한 요인이다.

그의 초기 시는 허무주의와 죽음에 대한 상상력으로 가득하다. 작고한 평론가 김현이 탁월하게 지적했듯이 그의 허무주의는 ‘누이 컴플렉스’로 요약되는 일종의 시적 장치였다. 하지만 1950년대의 전후 폐허를 딛고 문단에 새롭게 등장한 신세대로서의 세대의식과 당시 유행하던 모더니즘적 제스처 또한 그의 시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다. 그의 시적 특징인 논리적 비약은 선적(禪的) 요인이 강한 것이며, 이것이 소위 1970, 80년대 민중주의적인 요인과 결합되어 ‘리얼리즘적인 선시’(백낙청)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1970년대의 전태일 분신사건을 통해 현실에 눈을 떴다고 하는 고은은 독재정권과의 투쟁을 통해 자기 시의 현실적 입지를 넓혀 갔다. 그러나 현실정치와 ‘거리의 시’가 난무하던 시절에도 고은은 선적인 시들을 많이 발표하였는데, 연구자들이 이를 간과한 측면이 많았다. 가혹한 고문이 자행되던 1980년대 감옥에서 구상하였다는 『만인보』 연작은 현재 진행 중인 글쓰기에 속하며, 시인은 종종 『만인보』야말로 시인의 자기 확인이 가장 절실하게 이루어지는 시쓰기라고 말한다. 최근 시인은 『만인보』 연작을 30권으로 종결하겠다고 말한 바 있어, 작품의 구조적 특징과 언어 사용, 인물 선택 및 시인의 역사의식에 관한 다각적인 연구가 진행될 것이라 예상된다. 

1990년대 이후 고은의 시는 한 마디로 ‘인륜성과 보편성’의 문제에 다가서 있다. 예를 들면 남북분단의 문제는 단순히 한반도만의 문제가 아니며, 전쟁의 종식과 가난의 극복은 이제 세계사적인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 시인의 판단이다. 최근 유랑하듯이 세계를 ‘떠돌면서’ 시낭송회 및 강연 등에 참석하는 시인의 모습은 한국적인 모순으로부터 배태된 시인의 상상력이 인류사적인 문제로 다가서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고 판단되며, 모순의 보편성에 대한 상호 확인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2. 작품 개작에 관한 사항


고은은 개작하기로 유명한 시인이다. 일단 발표한 시를 시집으로 묶을 때는 어김없이 개작을 시도한다. 그는 두 번 전집을 출간하였는데, 1983년 민음사 전집(2권)과 2002년 김영사 전집(38권)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거의 모든 시들이 개작되었다. 고은의 개작에 대한 연구자들의 의견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개작은 개작 당시의 정황이 고려될 수밖에 없으므로 원본의 의미를 훼손한 것이기 때문에 원시집이 발간되었을 때의 작품으로 전집을 다시 출간해야 한다는 의견과, 개작은 시인의 시적 활동성이 강하다는 증거이므로 개작본이 정본이라는 의견이 그것이다. 문제는 시인이 고희를 넘기고서도 시에 대한 열정과 이를 통한 자기 확인의 욕망이 강하다는 점이다.

어떤 작품을 정본으로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는 전적으로 연구자의 판단에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초 발간본이 지니는 미학적 아우라는 존중될 필요가 있으며 왜 개작이 이루어졌고 개작의 과정에서 그 의미는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밝히는 일이 또 하나의 작업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졸저, 『고은 시의 미학』, 한길사, 2001, 제1장 참조)



3. 소통 가능성의 요인


고은의 시가 한국의 울타리를 넘어 세계인들과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진단한다면 다음 세 가지로 요약이 가능하다.

첫째, 세계인들은 아마도 고은의 초기 시에서 좀 더 미학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할 것이다. 지속적으로 자신을 훼손된 존재로 인식하는 1960년대의 고은은 4?19세대의 혁명적 감수성이 무너져 버린 데 대한 부끄러움의 자의식에 견줄 만한 시대성을 포회하고 있다. 전후의 절망적인 현실 상황에 대한 내면적 성찰이 ‘죽음의식’과 ‘병적인 상상력’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이같은 태도는 예술의 보편적 미학 원리와 닿은 부분이기도 하다.

둘째, 시를 통한 현실 모순, 즉 정치적으로 암담했던 시절의 한국적 현실을 잘 드러냈다는 점이다. 문학이 삶의 조건을 개선하고 더불어 살아간다는 점의 의미를 환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할 때 1970, 80년대 고은의 시는 이러한 역할에 충실했으며, 이 점은 서구의 독자들에게 호소하는 특징으로 작용할 수 있다.

셋째, 최근 고은은 여전히 식지 않는 문학적 열정을 바탕으로 세계사적인 모순에 대하여 노래하고자 한다. 팔레스타인 분쟁과 유럽의 민족분쟁 등 그는 한국의 국지적인 모순을 통해서 인류의 문제를 진단하고 있으며, 이것이 최근 그의 시가 보편적인 의사소통의 매개가 되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4. 고은을 다시 읽는 이유 1)

 

지금 고은을 다시 읽어야 한다면 이는 다음 몇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첫째, 한국시의 정치적 상상력, 혹은 현실주의적 지평을 심화, 확대시키는 데 그의 시가 크게 기여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정치적 상상력을, 단순히 부도덕한 정권에 맞서 싸우는 일에 국한하지 않고 삶의 조건을 개선하고자 하는 일련의 담론행위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할 때, 1973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된 김지하 석방 운동 등으로부터 팔레스타인 소년의 비극적 죽음을 애도하는 2002년의 작품 「신록」에 이르기까지, 그는 김지하, 신경림 등과 함께 현실 모순에 대한 적극적인 ‘인식’ 행위를 통한 문학적 ‘실천’을 지속한 시인으로 기록될 것이다.

둘째, 고희(古稀) 이후 그의 시는 국내적인 모순의 극복과 함께 세계사적인 문제를 적극적으로 포회한다는 사실이다. 남북 분단의 극복이라는 모티브는 우리 문단의 오래된 주제의 하나이면서 사실상 문학적 자의식의 형성에 중요하게 작용한 요인이라 할 수 있다. 1980년대를 정점으로 분단 극복을 향한 문학적 열망은 새로운 방법론과 대안을 요구받기에 이르렀는데, 가령, 탈북자의 문제에 대한 문학적 관심 등이 두드러진 예에 속한다. 1990년대의 포스트모더니즘 논의는 한국문학을 급격히 탈정치주의의 길로 들어서게 했지만 산적한 현실 문제에 대해서 많은 작가, 시인들은 침묵했으며, 논리와 이론의 자기 재생산을 통한 문단 권력의 비대화만을 초래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고은은 소위 민중주의적 세계관을 내면적인 성찰의 계기로 전환하면서 한국 내의 모순뿐 아니라, 인류사의 문제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드러낸다.   

셋째, ‘미당이 여든 살이 넘도록 현역시인으로 남았던 점은 장한 일이나, 일부를 빼고 나면 환갑이 지난 뒤의 창작은 긴장 풀린 관광객의 기록이나 객담에 가까운 것들’2) 이었다는 관점에 비추어 볼 때, 고은의 시는 일정한 수준의 시적 긴장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고은의 초기 시에서 나타난 비문과 논리적 비약이 종종 연구자들의 지적사항이 되고 있음은 사실이지만, 시적 연륜이 쌓여 갈수록 그의 시는 한층 미학적 완성도를 높여 가고 있다는 것 역시 주목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이 점이, 사물을 비약적으로 파악하는 고은 특유의 화법을 폄하하는 데 동원될 수는 없을 것이다. 고은을 둘러싼 논쟁에서 자주 목도되는 현상 가운데 하나는 그의 시가 지니고 있는 미학적 특질과 세계관의 문제보다는 주로 문단 정치와 권력의 문제에 근접되어 있다는 점으로, 이는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3) 

최근 고은의 시는 다음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을 보인다. 하나는 삶의 경험을 좀 더 직접적으로 드러내 보임으로써 비판적 지성이 강조되는 ‘정신의 시(Poesie des Geist)’를 구축한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보편 언어’로 명명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관의 모색이다. 개별 작품은 하나의 완성된 세계라는 의미에서 이데올로기를 지니지만, 고은에게 시는 개별적 특성으로서 미적 세련성을 지향하기보다는 세계관의 외화 형태에 가깝다. 화자와 시인의 경험적 간극을 최소화하는 시쓰기를 통해 그는 자신의 삶과 시를 완벽하게 통일하고자 한다. 그의 삶이 곧 시이고, 시를 위해 삶은 존재한다. 시는 그의 존재를 추인하는 타자이다. 지금 그는 민족이라는 협소한 개념에서 벗어나 언어의 호환성에 초점을 둔,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라는 새로운 가치관을 지향하고 있다. 이는 지역성 특수성을 인간이해라는 보편적 차원으로 승화시키려는 시적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문장 웹진/2008년 2월호》




※후주

1) 이 부분은 졸고, 「발견과 여정」(『비판과 성찰의 글쓰기』,청동거울, 2005)에서 일부 가져왔음을 밝힌다.

2) 백낙청, 『어느 바람』(창작과 비평사, 2002), 발문, p, 279

3) 몇 년 전 고은의 「미당 담론-자화상과 함께」(《창작과비평》,2001, 여름)는 미당 서정주 시의 미학적 위상에 관한 논의보다는 오히려 고은의 정치적 역학 관계에 대한 논란을 가져왔다. 이 글이 발표된 지 얼마 후에는 중앙의 한 유력 일간지 문화면에 「문단, 친고은파vs반고은파, 시인 고은 평가 ‘극과 극’」(〈동아일보〉 2001.9.17)이라는 황당한 기사가 실렸다. 기사의 요점은, 당시 문단은 친고은파와 반고은파로 나뉘는데 기자는 필자의 저서 『고은 시의 미학』(한길사, 2001)과, 남진우 씨의 『그리고 신은 시인을 창조했다』(민음사, 2001)를 두고 각각 친고은파와 반고은파의 대표적인 예라는 것이다. 필자는 이 기사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하여 기자의 이메일로 보냈으며, 이 내용은 9월 20일자 〈동아일보〉 인터넷 판에 게재된 바 있다.  또한  최근의 논란 가운데 하나는 황종연 교수의 글「민주화 이후의 정치와 문학-고은 ‘만인보’의 민중-민족주의 비판」(《문학동네》, 2004, 겨울)이다. 이 글에서 황 교수는 고은의 『만인보』를 우리 시대 ‘최고의 민중주의’ 작품으로 평가하면서 일련의 비판을 가한다. 여기에 대해서 하정일 교수의 비판(「황종연 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정치와 문학’을 비판한다」,〈교수신문〉, 2004.12.12)이 있었고, 황종연 교수의 반론(「민중상의 탈물신화 필요」,〈교수신문〉, 2004.12.16)이 이어졌다. 여기에 필자는 문학논쟁의 정치적, 권력적 고려를 배제하면서 미학적 성찰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시는 현실을 재현하지 않는다」,〈교수신문〉, 2004.12.26) 있다.      




<참고 문헌>


 한원균, 『고은 시의 미학』, 한길사, 2001 

 _____ , 「발견과 여정」,『비판과 성찰의 글쓰기』, 청동거울, 2005

 _____ , 「민족주의와 세계언어」『비판과 성찰의 글쓰기』, 청동거울, 2005

 _____ . 「고은이라는 타자」,『비판과 성찰의 글쓰기』, 청동거울, 2005

 _____ , 「역사적 진실과 문학적 진실」, 《시와정신》, 2006, 가을호

 _____ , 「고은시의 ‘누이콤플렉스’ 극복 과정」, 『한국문예창작』, 제12호, 20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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