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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14-01-01

 

 


 

 

김개영

 


 

 

 

틈-김개영-삽화

 

 

   1.

    빛은 물러가고 어둠이 그 자리를 채운다. 거실 바닥의 피 얼룩이 드러난다. 크기도 점점 커져 간다. 그것은 시선이 깊어질수록 더 넓어지는 동공과 닮았다. 빛에 조응하는 속성이며 보는 이를 빨아들일 것 같은 매혹도 어쩌면 닮아 있는지 모르겠다. 얼룩은 엄마가 흘린 핏자국이었다. 경찰의 권유대로 특수 청소업체를 불렀지만 소용없었다. 청소요원들이 집안 곳곳에 코팅해 준 피톤치드 향이 사라지자 피비린내가 나기 시작했다. 피 냄새는 얼룩이라는 형상을 얻었고 얼룩은 어둠을 불러왔다.
    엄마는 내가 죽인 것이 틀림없었다. 엄마의 입술, 게 다리를 쪽쪽 빨던, 잔뜩 주름지고 불어터진 입술이 한몫했는지 모르겠다. 한바탕 매의 향연이 끝나고 나면 늘 그렇듯, 그날도 엄마는 저녁상을 푸짐하게 차렸다. 여느 날과 다른 게 있었다면 단순히 밥만 차려 준 것이 아니라, 내 앞에 앉아 함께 식사를 했다는 점이다. 그날의 메인은 대게 찜이었다. 대게의 살점을 골라 먹는 엄마의 입술은 연체동물의 빨판처럼 쉴 새 없이 꼼지락거렸다. 수많은 남자의 혀와 좆도 그렇게 쪽쪽 빨아댔을 것이다. 엄마는 껍질을 깨물어 속살을 남김없이 골라먹었다. 오도독, 오도독, 소리는 끔찍했다. 게다가 내 밥 위에 살이 통통히 오른 게 다리 하나를 올려놓았다.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평소 우리는 식사를 함께하지 않을뿐더러 그런 식의 친절은 어울리지 않았다. 유식한 말로 존재의 균열을 넘어 관계의 균열이랄까. 우리는 마주할 때마다 금 간 거울을 보듯 어긋나 있는 서로의 모습을 발견하곤 했다. 그것은 마치 피카소의 그림처럼 괴기스런 모습이었으며 난자당한 시체만큼이나 끔찍했다.
    어쩌면 멧돼지, 자기 새끼를 잡아먹던 멧돼지 때문일 수도 있었다. 마침 티브이 화면에서는 야생 멧돼지에 대한 환경다큐가 나오고 있었다. 예닐곱 마리의 새끼들이 아귀같이 어미젖을 빨아댔다. 그런데 내레이터의 목소리가 다급해지면서 어머, 어머, 딸꾹질 같은 엄마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미가 새끼들 중 가장 작은 놈 하나를 앞발로 눌렀다. 새끼가 아우성치며 몸을 비틀었다. 어미는 새끼를 앞발로 끌어와 입속에 넣었다. 오도독, 오도독, 뼈가 씹히는 소리와 함께 입속에서 뚝뚝 핏물이 떨어졌다. 엄마가 게 껍질을 씹던 소리와 놀랍도록 똑같았다. 어머머, 어머머, 엄마는 과일을 깎다 말고 연신 탄식을 내뱉었다. 어머머, 오도독, 어머머, 오도독, 왠지 박자가 잘 맞았다. 엄마의 탄식이 끝날 때마다 손에서는 식칼이 번뜩였다. 내레이터는 충격적인 장면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새끼 수를 줄이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전문가의 설명이 뒤따랐다. 단백질 보충이 된다면 일거양득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비위가 상했다. 나는 젓가락을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일어섰다.
    - 앉아!
    엄마가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건조하다기보다는 음산했다. 여차하면 또 골프채라도 들 태세였다. 감각조차 없던 엉덩이와 허벅지 부근이 뻐근해 왔다. 나는 멈칫한 채, 다시 앉지도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도 없었다. 쓰읍! 엄마의 입술에서 나는 소리였다. 살짝 흰 이가 드러나다가 입술이 굳게 닫혔다. 자신의 말을 거역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순간적으로, 집 안의 모든 공기가 엄마의 입술 사이로 빨려 들어간 듯했다. 그때, 내 무의식의 가장자리가 파르르 떨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엄마 손에 들린 식칼이 세모꼴로 씨익, 하고 쪼갰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식의 살의는 성욕처럼 강렬한 것이긴 했지만 이내 사그라지는 법이었다. 거대한 몸을 세웠다가 육지에 이르러 맥없이 몸을 허무는 파도와 같이 말이다. 다시 말하면 의식 이쪽으론 절대로 넘어와서는 안 되는 의지였다. 그런데 그 무의식의 거대한 파도가 허물어지기도 전에 내 손은 이미 식칼에 가 있었다. 식칼은 이내 엄마의 왼쪽 어깻죽지를 찔렀다. 어머, 하고 엄마는 어깨를 움츠리며 비명을 질렀다. 제기랄, 또 어머였다. 그건 비명이 아니라 이를테면 교성처럼 들렸다. 막무가내로 꽂고 들어오는 남자의 좆을 하릴없이 받아들이는 소리. 칼끝은 깊게 박히지 않았다. 그런데 성감을 실은 그 소리가 나를 자극했다. 식칼의 손잡이 부분에 내 몸의 하중이 실렸다. 어렵사리 경직된 근육을 뚫은 칼끝은 이내 근육 아래쪽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굉장한 힘이었다. 하마터면 칼 손잡이뿐만 아니라 내 손도 빨려 들어갈 뻔했다. 그때서야 엄마는 비명 같은 비명을 질렀다. 반쯤 벗겨진 사과가 내 발 등 위에 떨어졌다. 전율이 내 손을 타고 올라왔다. 식칼의 쾌감인지 나의 쾌감인지, 아님 엄마의 쾌감인지 알 수 없었다.
    - 내 … 내가, 처…처리 해…주준 거…거야.
    이런 제길, 순간 말더듬이 튀어나왔다. 이미 오래전에 고쳐진 거라고 믿고 있던 터였다. 음절과 음절 사이의 틈에서 모래가 마구 쏟아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칼에서 손을 떼자 엄마는 어깻죽지에 칼을 꽂은 채로 일어났다. 그러곤 내 쪽으로 뒤돌아섰다. 왼쪽 눈이 감기고 입은 벌어진 채 입술은 위쪽으로 살짝 돌아가 있었다. 얼굴색이 붉게 물들었고 이마엔 세 겹 굵은 주름이 그어졌다. 긴 머리카락이 왼쪽으로 쏠렸다. 어깨에서는 쿨럭쿨럭 핏물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는 고통스러워하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정말 내가 자신의 삶을 처리해 주기를 바랐던 것일까? 절망이나 분노의 표정조차 읽을 수 없었다. 엄마는 골프채를 잡는 대신, 내게 어서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그 모습은 왠지 익숙했다. 어릴 적, 집을 나설 때 자주 보았던 모습이었다. 머리와 어깨 사이에 휴대폰을 끼워 넣은 채 내 책가방을 들려주며 학교 가기를 재촉하는. 오랜만에 보는 그 모습은 내가 방금 저지른 일을 까맣게 잊게 해주었다. 덕분에 나는 크게 놀랄 것도 없이 신발을 신고 집을 나왔다.
    경찰의 전화를 받은 것은 밤 열두 시가 넘어서였다. 날을 샐 생각으로 피시방에서 죽치고 있던 참이었다. 경찰서에 도착했을 때 엉뚱하게도 아빠가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었다. 상황을 보니 결국 엄마는 죽어버린 듯했다. 경찰 누나가 나를 위로해 주었다. 오랜만의 따듯한 품속에 안겨서였는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급기야는 엉엉 울었다. 경찰에게 연락이 왔을 때가 10시 정도였다고 했다. 그렇다면 엄마는 3시간 이상 어깻죽지에 칼을 꽂은 채로 있었던 셈이었다. 사건 현장에서 아빠는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단다. 경찰은 눈곱만치도 나를 의심하지 않았다. 죽어가면서도 엄마는 어떻게 하면 아빠를 골려 줄 수 있을까 고민했을 것이다. 전화를 걸어 갖은 협박으로 아빠를 집에 오게 했을 것이다. 어깻죽지에서 벌컥벌컥 솟아오르는 핏물을 쳐다보면서 말이다. 보라구, 당신 아들 짓이거든! 이윽고 아빠가 도착했을 때, 피 칠갑을 한 엄마는 그렇게 외쳤을 것이다.

 

 

   2.

 

    거실 천장의 전등 위에는 흰 끈이 놓여 있다. 엄마가 천장 속 철제 지지대에 매달아 놓은 끈이었다. 여차하면 엄마는 저것에 목을 맬 생각으로 살았다. 그런데 죽음을 상기시키는 것은 오히려 죽음을 끊임없이 지연시키는 건지도 몰랐다. 언제라도 죽을 수 있으리란 생각이 바로 지금의 결단을 주저하게 만드는 것이다. 엄마는 죽고 싶어 안달난 사람이었다. 형이 죽고 난 후, 몇 번이나 자살시도를 했다. 아빠가 집을 나가고부터는 하루도 술을 마시지 못하면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새벽녘, 거실 창으로부터 새파란 달빛이 쏟아지던 날이었다. 거실 한가운데에 놓인 식탁 위에 엄마가 올라가 있었다. 등을 보이고 거실 밖의 달빛을 받으며 앉은 채였다. 두 무릎을 껴안고 어깨를 들썩였다. 나는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 오줌이 마려워 막 거실로 나오려던 참이었다. 나는 안방 화장대의 거울이 깨지던 날처럼 세계에 곧 쩌억, 하고 균열이 생길 거라 예감했다. 그래서 어떤 틈이, 인과율과는 무관한, 저 너머의 세계가 하얗게 이빨을 드러내리라.
    엄마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둠속에서도 마스카라가 번진, 엄마의 얼굴이 뚜렷하게 보였다. 넌 네 형을 잡아먹고 온 애야, 그렇지?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맞아, 라고 말하듯, 나는 입을 동그랗게 벌렸다. 엄마는 일어나 흰 노끈의 동그라미 안으로 머리를 밀어 넣었다. 너나 네 아비나 다 똑같은 놈이란 듯이, 그래서 똑똑히 봐두란 듯이, 엄마는 씨익 웃으며 발을 떼었다. 나는 뛰어가 엄마의 다리를 잡았다. 거의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엄마는 반항했지만 허공에 매달린 엄마의 몸은 중학생의 힘으로도 간단히 제압할 수 있었다. 식탁에 발을 디딘 엄마는 모래처럼 허물어졌다. 그때 엄마와 나 사이에 벌어진 틈은 아마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사막이었는지 몰랐다. 마구 모래가 쏟아져 내렸으니 말이다. 그 후론, 엄마와 나는 모래로 숨을 쉬는 듯했다. 거실 가득 모래가 떠다녔고 우리는 모래 속을 헤엄치듯 걸었다. 모래의 공기를 쉬었을 뿐만 아니라 모래의 밥을 먹었고 모래의 물을 마셨다. 모래의 숨을 토해 내고 모래의 오줌과 똥을 누었다.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수능을 무사히 볼 수 있었다. 아빠가 나 대신으로 죄를 뒤집어쓴 덕분이었다. 담임과 상담교사, 복지사들의 노력은 감동적이었다. 입시를 앞둔 고3생의 불행을 그들은 함께 아파해 주었다. 나는 그들의 노력에 화답하듯 평소보다 좋은 성적을 내고 괜찮은 대학의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수능이 끝난 날, 학교 친구들이 놀러왔다. 우리는 처음으로 취하도록 술을 마셨다.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하며 지낸 친구들이었다. 놈들은 대개 나무랄 데 없는 모범생이었다. 나도 본의 아니게 엄마를 칼로 찔렀을 뿐이지, 학교에선 얌전한 모범생 축에 끼었다. 술은커녕 여자 손조차 만져 본 적이 없으니.
    - 너희들은 진정한 나의 친구가 되어 주었으면 해. 물론, 나 같은 놈을 친구로서 받아 줄지는 너희들 선택에 달렸지만.
    술에 취해 내가 지껄였다. 편지글 읽는 듯한 내 말투를 친구들은 좋아했다. 어렸을 적 말더듬 치료를 받으면서 굳어진 말투였다.
    - 아빠가 그런 거지, 네가 그런 거냐? 상관없어.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 엄만 내…내가 주…죽였어.
    갑자기 혀가 굳어 왔다. 말과 말 사이에서 마구 모래가 쏟아지는데도, 바닥에 난 얼룩이며 거실에 가득한 피 냄새 얘기 따위를 지껄였다.
    - 뭐 그래도 상관없어.
    녀석들은 내 말을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았다. 나는 놈들에게 다가가 헤드록을 했다. 우리는 깔깔대며 바닥의 얼룩 위를 뒹굴었다.

 

 

   3.

 

    내가 태어나기 전에 내겐 형이 있었다. 우습게도 수영장 바닥의 배수구 틈에 발이 빨려 들어가 죽었다. 무서운 힘으로 소용돌이치는 물이 잠깐 형의 호기심을 자극했을 것이다. 그 안에 죽음이 웅크리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챈 형이 서둘러 물 밖으로 향했을 때, 죽음은 느긋하게 형의 발을 끌어당겼을 것이다. 죽음은, 그런 것이다. 이유가 없고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죽음은 이 세상 도처에 낚싯대를 대고 있거나 거미줄을 치고 있으니까. 그런 의미로 본다면 엄마도 그 희생자 중 한 명이었다. 그 죽음이라는 놈이 나를 미끼로 삼은 것이 문제이기는 했지만.
    형이 죽었을 즈음, 엄마는 뱃속에 내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빠는 형이 다시 이 세상에 온 것이라 믿었지만 엄마는 형 목숨 값으로 내가 대신 온 것이라 했다. 엄마는 갓난아이인 나를 아파트 베란다 밖에 던져버리려고도 했다. 놀란 아빠가 달려가 허공에 걸려 있던 나를 받아왔다.
    - 너도 어른이 되면 엄마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거다.
    아빠는 학교로 찾아와 말했다. 곧 새 여자와 교회에서 식을 올릴 거라고, 그 여자는 머지않아 내 동생을 낳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럼 아빠는 언제나 이해가 될까요, 라고 물으려다가 그만 두었다. 나는 와사비를 찍어 상 위에 무늬를 만들었다. 십자가가 되고 나무가 되다가 집이 되었다. 엄마와 있기 싫으면 내게로 오너라, 아빠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상 위에 난 무늬를 젓가락으로 망가뜨렸다. 비겁해, 들릴 듯 말 듯 내뱉었다. 그러곤 의자를 뒤로 빼고 음식점을 나왔다. 음식이 나오기도 전이었다. 학교 근처의 고급 일식집이었다. 학교 기숙사 방에 돌아와 나는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말더듬이 사라질 즈음 생긴 버릇이었다. 피가 비치면 혀로 쪽쪽 빨았다. 남들은 느낄 수 없는 은밀한 쾌감이었다. 덕분에 이미 열 개의 손톱은 남김없이 죽어 있었다. 엄마는 날 때릴 이유를 찾을 수 없으면 까맣게 타버린 손톱을 물고 늘어졌다. 실컷 맞고 나면 발톱이라도 물어뜯고 싶었다.
    엄마와 아빠는 별거에 들어간 지 7년이 넘었다. 아빠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이혼에 동의하지 않았다. 결국 아빠가 집을 나갔다. 그 이후론 한 번도 집에 들른 적이 없었다. 가끔 학교로 나를 찾아와 값비싼 저녁을 사주고 많은 용돈을 주었지만 그뿐이었다. 새까맣게 변한 내 손톱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기는 했지만 차마 뭐라 할 자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엄마는 아빠의 세컨드를 몇 번 찾아가 머리채를 잡고 싸웠다. 아빠의 전시회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기도 했다. 세컨드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에야, 엄마는 드잡이질을 그만두었다.

 

    세상이 틈과 균열로 가득하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학교 선생들은 말할 것도 없다. 사각의 학교 건물이나 교실 시간표처럼 공간이든 시간이든 모든 게 남김없이 꽉 짜여 있는 줄 안다. 설사 틈이 보여도 모른 척한다. 세상은 한 치의 오차나 낭비 없이 존재하거나 흘러간다고 믿는 것이다. 이를테면 세상이 레고 블록 같은 거라고 착각한다. 미리 만들어진 것을 차곡차곡 빈틈없이 끼우고 맞추고 하는 그런 세계.
    나는 언젠가 교실 천장에 틈이 열린 것을 본 적이 있다. 아마 이웃나라에서 관측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이 일어났던 날이었을 것이다. 이 세계는 가끔 그런 식으로 뒤틀리듯 틈을 살짝 보여주는지도 몰랐다. 틈 속에서 혓바닥이 튀어 나오더니 날름 한 놈을 채갔다. 주체 없이 몰려드는 졸음의 순간이었다. 녀석은 얼마 뒤, 운동장 한편에 있는 등나무에 목을 맸다. 야자시간이었다. 녀석을 발견한 사람은 교장이었다. 그는 학교 곳곳을 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물어뜯는 것으로 유명했다. 선생이든 학생이든 그 좀비 같은 영감한테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야! 너 거기서 뭐 하는 거야? 오랜만에 먹잇감을 발견한 교장은 등나무 아래 서 있는 검은 그림자에게 물었다. 물론, 그림자는 꼼짝도 않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 뭐야, 대답 안 해? 교장이 다가가 그림자의 어깨를 쳤을 때, 녀석의 몸이 맥없이 빙그르 돌았다. 뭬롱, 녀석은 혀를 길게 내민 채 눈을 치뜨고 있었다. 교장은 그 자리에서 까무러쳤다. 좀비가 시체한테 당하는 꼴이라니, 전교생은 환호했다.
    녀석은 부모 스펙도 아주 좋았다. 아빠는 변호사고 엄마는 의사였다. 공부도 나보다 훨씬 잘하고 얼굴도 되는 놈이었다. 잘난 놈답지 않게 성격도 좋아서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나도 카톡 하트를 뿅뿅 쏘아 주면서 친하게 지내자고 수작을 걸었지만 쉽게 넘어오지 않았다. 언젠가 샤워장에서 만난 녀석은 멍투성이의 내 엉덩이와 허벅지를 보고 기겁했다. 영락없는 모범생이었다. 그런데 나무랄 데 없어 보였던 놈도 어딘가 틈이 있었던 게 분명했다. 아니 어쩌면 그 완벽함 때문에 틈이 생겼는지 몰랐다. 딱 맞는 옷이 찢어지기 쉬운 것처럼 말이다.
    죽은 후에, 얼마간 녀석은 내 앞에 나타났다. 녀석은 어느새 학교 내에서 등나무 귀신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었다. 어둠과 닮은 칠판 속에서 씨익 하고 웃었다. 역시 졸음의 순간이었는데 그 형상만큼은 선명했다. 슬슬슬 칠판 분필가루가 움직이면서 사람의 얼굴과 표정을 만들었다. 분필가루의 형상은 내가 졸음을 애써 몰아내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래서 나는 형상이 나타날 때마다 되도록 졸음 상태를 유지하려고 했다. 의식은 흐려지는데 형상은 또렷해졌다. 나도 칠판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목을 매면 그렇게 황홀해? 내가 물었다. 죽여줘, 형상이 말했다. 녀석의 지퍼 부근은 정액으로 흥건했다고 했다. 진짜로 하는 것보다? 내가 다시 물었다. 너도 해봐, 너도 해봐, 녀석의 목소리는 잔잔한 물결처럼 내 귓가를 찰싹찰싹 때렸다. 미친 새끼, 똥까지 지른 놈이, 내가 외치면 녀석은 세모꼴로 웃으며 사라졌다.
    나에겐 놈이 아니라도 친구들은 많았다. 엄마나 아빠에게서 받은 풍족한 용돈은 친구들을 끌어 모으기에 좋았다. 금요일 학교를 나오면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그 다음엔 피시방이나 노래방에서 놀았다. 대개 놈들은 밤 열 시 전엔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다시 학교 기숙사로 향했다. 주말 내내 친구들과 놀고 싶었지만 녀석들은 과외와 학원수업이 꽉 차 있었다. 하긴 공부에 미쳐 사는 놈들이니. 주말 기숙사는 한가했는데 대개 나 같은 고아 아닌 고아들이었다. 이런 놈들은 아주 짜증이 났다. 기껏 학교 앞에서 어슬렁거리다가 교복에 떡볶이 국물이나 묻혀 오는 애들이었다. 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티를 팍팍 내는 것이다. 운동장 스탠드나 휴게실 티브이 앞에 멍청히 앉아 있다가 가끔은 질질 짜기도 했다. 놈들은 주말 학교에서도 철저히 외톨이였다. 만날 같은 학교 체육복만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돈도 없는 찌질이들이었다.
    가끔 학교 주위에 사는 성호라는 놈이 내 방으로 놀러오곤 했다. 정말 여자와 하지 못해 미치겠다는 듯이, 늘 억울한 표정을 짓고 다녔다. 엄마 등쌀에 주말이면 무려 다섯 군데나 학원과 과외를 뛰었지만 성적은 그리 신경 쓰지 않는 놈이었다. 놈의 노트북에는 야동이 가득했다.
    - 너 언제 최고의 사정감을 느끼는지 알아?
    화면 속에서는 활짝 열린 여자의 성기가 문어의 흡착판처럼 뻐끔거리고 있었다. 일본 야동 만화였다.
    - 뭐 상황 따라 달라지는 거 아냐?
    머리를 빡빡 깎은 남자가 여자의 사타구니에 머리통을 갖다 대었다.
    - 목 매달아 죽기 직전.
    머리통이 여자의 질 속으로 꾸역꾸역 들어가고 있었다.
    - 헐, 등나무 귀신 녀석처럼?
    질 속에 들어갔던 머리통이 다시 쑥 빠져나왔다. 머리통이 질액으로 번들거렸다.
    - 죽기 전에 제대로 느끼고 간 거지.
    머리통이 질 속에서 피스톤 운동을 했다.
    - 처음이자 마지막인 죽음과의 섹스.
    괴성을 지르던 여자가 자기보다 두 배나 덩치 큰 남자를 순식간에 빨아들였다.
    - 자식 잘도 갖다 붙이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녀석이 오른팔로 내 목을 휘감았다. 등나무 귀신처럼 진짜 느껴 볼래? 녀석이 빙글거리며 팔에 힘을 주었다. 나는 그대로 내 몸을 녀석에게 맡겼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얼굴이 시뻘게지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녀석이 팔을 풀었다. 눈을 뜨자 녀석은 조금 겁먹은 표정이었다.
    - 엄마한테 또 맞았어?
    녀석이 물었다.
    - 응.
    나는 윗몸을 일으켜 골프채를 휘두르는 시늉을 해보였다.
    - 몇 대나?
    - 백 대!
    - 헐…….
    나는 트레이닝을 벗어 허벅지를 보여줬다. 아물지 않은 피딱지가 트레이닝에 묻어 나왔다. 녀석이 기겁했다. 나는 자리를 바꿔 녀석의 목을 감았다. 녀석은 캑캑거리며 죽는 시늉을 했다. 죽였으면 좋겠어, 내가 말하자 녀석이 죽여 버려, 소리쳤다.

 

    그날, 웬일인지 엄마는 내 앞에 게 다리를 놓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과일까지 깎아 주었다. 더구나 함께 거실에 앉아 텔레비전까지 보았다. 다정하게 과일을 깎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본다는 것은 우리 모자에겐 끔찍한 일이었다. 그건 일종의 근친상간 같은 거였다. 엄마의 친절은 뱀처럼 내 몸을 칭칭 감았다. 서서히 몸을 조여 오는 것이 금방이라도 내 숨통을 끊어버릴 것 같았다. 주말 외박을 나오지 않았더라면, 혹은 엄마가 밤 외출을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함께 밥을 먹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하필 어미 멧돼지가 새끼를 잡아 처먹는 장면이 나오지 않았더라면, 아니 엄마가 최소한 식칼이 아니라 과도를 들고 있었다면, 아니, 아니 그때만큼은 좀 질식할 것만 같은 집 안에 창이라도 조금 열려 있었더라면, 내가 엄마를 칼로 찌르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 빈틈을 허락하지 않는 직소퍼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엄마의 몸에라도 틈을 내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식칼이 엄마의 몸에 틈을 만들었을 때, 실제로 나는 창문을 연 듯 상쾌한 기분이 들었으니 말이다.

 

 

   4.

 

    - 내가 아빠 대신 엄마를 처리해 주었다는 사실에 대해 아빠는 고마워해야 해.
    면회실 창 너머의 아빠에게, 예의 편지글 읽는 말투로 말했다. 아빠는 눈을 감고 있을 뿐 묵묵부답이었다. 볼까지 잔뜩 수염을 기른, 무기력하기 이를 데 없는 50대 중년 남성의 모습이었다. 성공한 예술가 특유의 패기만만한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그러고 보니 엄마는 물론이고 아빠마저 내가 처리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 잘나가던 조각가였다. 서울 인근에 위치한 아빠의 작업실은 거대한 철공소를 연상시켰다. 철을 가는 그라인더의 날카로운 소음과 철판을 두드릴 때 나는 굉음이 가득했고 여기저기서 용접 불꽃이 시뻘겋게 피어올랐다. 아빠가 즐겨 사용하는 것은 플라즈마 기법이었다. 압축공기로 철 표면에 수많은 균열과 스크래치를 내서 오돌토돌한 질감이 나도록 하는 기법이었다. 균열은 존재의 분열을, 스크래치는 세계의 폭력성을 상징한다고 했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그럴싸했다. 그 철판은 일종의 옷감 역할을 했다. 철판은 다양한 모습의 조형물로 재탄생되었다. 작품 내부에는 엘이디 조명이 설치되어 전원을 연결하면 은은한 빛이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거친 질감 때문에 메마른 강바닥이나 죽은 나무 등걸 같았던 작품이 순간 생명감을 획득했다.
    아빠의 성공적인 전시 기획 중의 하나는‘자궁’시리즈였다. 엄마와 별거에 들어간 지 꽤 되었을 무렵이었다. 검붉은 색깔의 철제 재질로 된 작품은 여성의 질을 형상화했다. 속은 비어 있었다, 깨알 같은 수많은 구멍과 미세한 균열 너머에서 빛이 쏟아져 나왔다. 질의 모습은 주름은 물론 털까지 정교했다. 한 작품은 어린 아기의 머리통이 질에서 빠져나오는 모양이었다. 반쯤 보이는 아기의 표정은 온통 일그러져 있었다. 세상을 뚫고 나오면서부터 이미 세계의 폭력성을 충분히 경험하고 있다는 듯이. 질과 머리통의 틈새에서는 강렬한 빛이 새어 나왔다. 신비와 생명력이 넘쳐흘렀다. 탄생의 환희 속에 고통이 놓여 있다는 건 참 아이러니했다. 너다, 아빠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그럼 저 자궁은 엄마의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게 엄마의 것이냐고 묻지는 않았다.
    나는 엄마의 틈을 실제로 봤기 때문이다. 조형물이 아닌 진짜 틈. 아빠가 떠나고 엄마가 매일 술을 마시기 시작했을 즈음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안방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엄마의 가랑이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화장대의 거울에 비친 모습이었다. 엄마의 그것은 아버지가 형상화한 작품과 전혀 달랐다. 눈부신 빛이 쏟아져 나오는, 생명의 환희로 가득 찬 입구가 아니었다. 시커멓고 음흉하며 금방이라도 혓바닥이 튀어나와 나를 채갈 것 같았다. 더 깊숙한 곳엔 아마도 하얀 이빨이 숨겨져 있는지도 몰랐다. 하긴 내가 그 속에서 나왔으니 잡아먹힌다고 해도 억울할 건 없었다. 진심으로 다시 돌아가라고 한다면 돌아갈 용의가 있었다. 그 활짝 벌어진 틈은 추악했지만 강렬한 매혹이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안방 욕실에서는 샤워기의 물줄기 소리가 들려왔다. 책가방을 멘 채, 나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엄마의 틈은 투명한 액체로 번들거렸다. 문어의 흡착판처럼 꿈틀댔다. 나가죽어! 그 순간 거울에 금이 쩌억, 하고 났다. 아니 어쩌면 거울은 세계의 균열을 정직하게 비추고 있었는지 몰랐다. 화장대의 거울은 여진처럼 앞뒤로 천천히 흔들렸다. 나를 발견한 엄마가 손에 잡히는 대로 뭔가를 던진 것이다. 나는 잽싸게 현관으로 도망쳤다. 탕, 하고 안방 문이 거칠게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 미안하다. 모든 게 다 내 부덕의 소치다.
    아빠는 잠자코 있다가 처음 입을 열었다. 부덕의 소치. 예술가다운 품위 있는 말이었다. 차라리 엄마처럼 나가죽어, 라고 외쳤다면 자수할 용의도 있었다. 면회를 하고 돌아오면서 아빠마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그건 내가 예전부터 바라던 바였다. 고아 아닌 고아가 아니라 진짜 고아가 되고 싶었다. 고아가 아닌데 고아인 것은 뭔가 부당한 것이다. 차라리 고아라면 부모가 없는 진짜 고아가 되는 게 맞았다.
    - 급소는 피해 갔다. 직접적인 사인은 질식사야.
    참고인 진술이 있었을 때, 형사가 부검 결과를 말해 주었다. 피는 많이 났지만 죽음에 이를 정도는 아니었단다. 대신 교살의 흔적이 뚜렷하다고 했다. 이게 다 당신 때문이야, 엄마는 앙칼진 목소리로 아빠에게 외쳤을 것이다. 아빠는 그 순간 삶의 모든 끈을 놔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전부터 두 사람 사이에 나 있던 균열이 더 이상 모래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빠는 서서히 엄마의 목을 졸랐을 것이다. 한 편의 통쾌한 복수극을 마쳤다고 생각한 엄마는 기꺼이 죽음을 맞이했으리라. 그러나 아빠에게 내부로부터 퍼져 나오는 구원의 빛은 없었을 것이다. 대신 지독한 모래 폭풍이 불어왔을 것이다. 서 있는 곳을 그대로 무덤으로 만들어버리는 모래의 폭풍.

 

 

   5.

 

    불 꺼진 거실은 어항의 푸른 형광 빛과 산소발생기 소리로 가득하다. 엄마는 사라졌지만 나는 여전히 모래입자를 내뱉었고 또 들이마셨다. 더불어 피비린내가 거실 가득 퍼졌다. 청소를 의뢰했던 업체에서는 심리적인 요인 때문이라고 답변해 왔다. 하긴 그들은 성실하게 작업했다. 현장을 청소하기 전, 그들은 소주와 어포를 가져와 간단히 제를 지내기까지 했다. 작업은 내내 엄숙하게 진행됐다. 피를 닦아낸 다음에는 고온 스팀으로 바닥을 닦았고 자외선 살균기로 바닥과 벽, 소파를 말끔히 소독했다. 마지막엔 온 집 안을 피톤치드 향으로 코팅까지 해주었다.
    언젠가부터 친구 녀석들은 핑계를 대며 나를 만나 주지 않았다. 입학 준비다, 아르바이트다, 여자 친구다 뭐다 해서 만날 시간이 없다고 했다. 어떤 놈은 벌써부터 재수학원에 등록해서 열공 중이란다. 엄마를 칼로 찔렀다는 얘기는 괜히 털어놓았다. 피 비린내가 나지 않느냐며 큼큼대던 모습은 완전 진상이었다. 녀석들이 다녀간 후론 점점 숨이 막혀 왔다. 시간이 갈수록 집이 나를 조여드는 느낌이었다. 잠을 자다가는 숨이 멈추기도 했다. 가끔 등나무 귀신이 된 녀석이 꿈속에 나타났다.
    녀석을 채 간 틈이 다시 나타났음 했다. 뒤틀어지듯 울울대다가 못 견디겠다는 듯이 벌어지는 틈. 나를 덥석 물어 삼켜 줄 것만 같은 틈. 엄마의 거시기 같은 틈. 그 속으로 나를 던져 주고 싶었다. 손톱은 마구 뜯겨지고 있었다. 피가 날 때마다 아프기보단 쾌감이 느껴졌다. 따끔따끔 붉은 꽃봉오리처럼 붉은 틈들이 돋아났다. 나는 그 틈들을 쪽쪽 빨아먹었다.

 

    바퀴벌레 한 마리가 거실을 가로지르다 멈춘다. 나도 손톱을 물어뜯다 멈춘다. 바퀴벌레는 얼룩 위에 서 있다. 뒤돌아보는 듯하더니 더듬이를 더욱 세게 흔든다. 두어 마리의 바퀴벌레가 다가온다. 불이 꺼지고 인기척이 사라지면 녀석들은 어디선가 끊임없이 지치지도 않고 기어 나온다. 녀석들은 인간에게 보이지 않는 틈이 어딘가, 도처에 있다는 걸 증거하는 존재들인지 모른다. 아무리 약을 치고 죽여도 사라지질 않는다. 나는 책을 들어 녀석들을 노려본다. 순간 움직임을 멈춘다. 자신들의 주위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한 듯하다. 녀석들은 죽음이 덮쳐오는 순간 수천 개의 알을 낳는다고 한다. 죽음이 탄생의 황홀경을 선사하는 것이다.
    거실 어딘가 틈이 열려 무수한 바퀴벌레의 알들이 쏟아져 내리는 상상을 해본다. 입을 벌리고 미친 듯이 그것들을 흡입한다. 알은 내 폐 속에서 부화할 것이고 내 몸 곳곳엔 틈이 열릴 것이다. 책을 가만히 내려놓는다. 바퀴벌레들이 바닥의 얼룩을 큼큼거린다. 얼룩이 꿈틀댄다. 마치 죽은 자를 살려내려는 의식 같다. 얼룩은 너울너울 종이처럼 흔들리다가 바닥으로부터 둥실 떠오른다. 불을 켠다. 공중에 떠 있던 얼룩의 형상이 바퀴벌레와 함께 순식간에 사라진다.
    소파에서 일어나 거실 장을 연다. 위스키와 코냐크, 럼주 등이 가득하다. 엄마가 사다 놓은 고급 양주들이었다. 자정이 넘어도 친구들은 오지 않는다. 소파 밑에 쭈그려 앉아 양주 한 병을 비운다. 일어나 거실을 한 바퀴 돈다. 사뿐사뿐, 영혼이 몸과 함께 붕 뜬다. 물속을 거니는 듯하다. 얼마 전, 형이 죽었다는 수영장에 가봤다. 평일 오전의 실내 풀장은 텅 비어 있었다. 햇빛이 수영장의 바닥까지 비추었다. 나는 그곳에 들어가 잠수를 했다. 물은 양수처럼 따뜻하고 아늑했다. 물속에 머리를 담그면 수영강사의 호루라기 소리와 수강생들의 웃음소리가 삽시간에 사라졌다. 고요한 수면 아래의 세계. 그곳에서 중력은 힘을 잃었다. 천천히 팔다리를 움직여 물속을 유영하면 피부를 쓰다듬는 물의 부드러운 감촉이 온몸으로 퍼졌다. 가끔 물속에서 입을 벌려 소리를 질러 보았다. 소리는 밖이 아니라 안에서 공명했다. 고막이 격하게 떨리고 눈알이 튀어나올 거 같았다.
    수면 위를 바라보았다. 형광불빛이 퍼져 온통 희게 빛났다. 몸을 웅크려도 보았다. 부력이 맹렬하게 작용하며 몸을 수면 위로 이끌었다. 발버둥 치듯 다시 팔다리를 움직여 바닥 아래로 잠수했다. 배수구 뚜껑을 열어 보았다. 아무리 힘을 써도 열리지 않았다. 제발이지 블랙홀 같은 강력한 수압이 나를 끌어당겼으면. 이내 심장박동이 느려졌다. 폐가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무의식의 몽롱한 경계를 넘었다. 그대로 공기가 아닌 물로 호흡하고 싶었다. 나는 엄마의 양수 속에 있었던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자 가느다란 형의 발이 보였다. 나는 형의 발목을 잡아당겼다. 순간, 형이 무섭게 물속으로 빨려 들어오고 나는 물 밖으로 내팽개쳐졌다.

 

    - 우리 아이에게 연락하지 마라. 성호맘.
    성호 이름으로 카톡 메시지가 왔다. 성호도 오긴 틀려먹은 것이다. 스마트폰을 뺏긴 채 엄마 앞에서 종종거리고 있는 성호가 떠오른다. 제 성격은 이를테면 칫솔질을 귀찮아하지만 한번 닦으면 구석구석 정성들여 닦는 스타일이랍니다. 언젠가 성호 엄마가 기숙사에 피자를 사 가지고 왔을 때 나는 편지글을 읽는 말투로 말했다. 물론 새까맣게 타들어간 손톱은 보여주지 않았다. 어머, 너 말을 재미있게 하는구나. 성호 엄마는 깔깔대며 말했다. 웃는 모습은 내 또래의 여자애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엄마보다 훨씬 젊고 아름다워 보였다. 이 아줌마의 틈은 예쁘게 생겼을까? 나는 아주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 여자는 귀엽다는 듯이 내 어깨를 쓰다듬어 주었다.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 엄마아아아.
    흡사 낙타 울음소리 같은 목소리가 내 입에서 흘러나온다. 낙타 울음소리를 듣지는 못했지만 왠지 그럴 것 같다. 내 입으로 엄마를 부르다니, 밥 위에 게 다리를 올려 주던 엄마의 행동만큼이나 뜬금없다. 나는 거실 한켠에 놓여 있던 골프채를 집어 든다. 엎드려! 나는 힘껏 외쳐 본다. 이번엔 마른 웃음이 터져 나온다. 입은 크게 열렸지만 소리는 나지 않는다. 대신 입에서 모래가 쏟아진다. 입을 다물자 귀에서 모래가 쏟아진다. 귀를 손으로 막자 이번엔 눈에서 모래가 흘러내린다. 지진이 난 듯 세상이 마구 흔들거린다. 바닥에 놓여 있던 양주병이 나뒹군다. 술이 콸콸 쏟아진다. 어둠 속 천장에 작은 틈이 벌어진다. 아빠의 작품에서 뿜어져 나오던 은은한 빛이 쏟아진다. 전등 위에 걸쳐 있던 흰색 끈이 내려온다. 흰색 혀가 부드럽게 내 목을 감는다. 몸이 허공에 뜬다. 어서 와, 어서 와. 등나무 귀신이 된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술에 젖은 얼룩이 종이처럼 울울거리더니 서서히 소용돌이 모양을 만든다. 소용돌이는 점점 커지며 내 몸을 감싼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강한 힘이 나를 빨아들인다. 황홀감이 온몸에 퍼진다. 아랫도리가 짜릿해 온다.

 

 

 

 

 

   《문장웹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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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개영
  • 2022-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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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개영
  • 2016-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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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건

  • 익명

    틈에서 나와 틈으로 사라지는... 틈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틈으로 나오는... 자꾸 들여다보고 싶은 틈이네요. 작가님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집니다.

    • 2014-01-22 21:43:41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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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정말 재밌게 읽고 갑니다!!

    • 2014-01-20 09:47:38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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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틈이 가지는 이미지들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군요. 다음 글도 기대됩니다. 건필하시길...

    • 2014-01-06 16:05:10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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