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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소리 공개방송 발표 신작시] 비누

  • 작성일 2014-04-01
  • 조회수 2,003

 

[문장의 소리 공개방송 발표 신작시]

 

 

비누

 

 


배수연

 

 

 

 

 

새 비누가 생겼다

 

손바닥 위에
각이 지고
투명한

 

코를 대면
찻잔에 두른 금테처럼 가느다란 향기

 

말간 비누 안에는 꽃송이들이 피어 있었다
어린 동생과 나는 그 꽃잎을 만지고 싶어
빨래를 하러 숲으로 달렸다

 

물을 길어 질긴 가지와 낙엽들을 문지르면
푸른 거품 속에서
폭죽 같은 향이 터지고
부푸는 거품에 떠다니는 동생의 작은 어깨

 

우리의 온몸에 떼죽음 같은

 

거품이 삭은 자리마다 이끼가 피었다
우리는 이끼 위에 쓰다 만 비누를 던져 놓고
맨가슴으로 누워버렸다

 

잠이 든 사이

 

비누 안의 꽃잎들이 빠져나와
우수수 숲을 기어 다니는 것을
감은 눈으로도 볼 수 있었다

 

 

 

 

   《문장웹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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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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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 - 신작시 「비누」 감상하러 가기 [...]

    • 2014-04-10 04:25:09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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