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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눈

  • 작성자 송희찬
  • 작성일 2024-02-28
  • 조회수 407

"세상의 모든 것은 시가 될 수 있다." 내 문학 선생님인 김명희 소설가겸 시인이 본인 유튜브 강의에서 했던 말이다. 이 말의 뜻은 음악, 미술, 생명 공학, 물리학 기타등등  세상의 모든 것은 시의 소재가 될 수 있고 작품으로 재탄생 할 수 있다는 뜻으로 난 해석을했다. 지난 반년간 글틴에 들어가 보면 미술, 음악 ,역사와 물리학,심지어 문인 선배들의 작품까지 등장시키는 작품들이 시 계시판과 소설 계시판에 있었다. 이는 신기했고 참신했다. 또한 문학이 할 수 있는 일 중 정보 전달의 원리까지 나타났다. 이를 보고 결코 글틴에 있는 청소년 문인들의 실력이 떨어진다 볼 수 없다.  창의력과 같은 부분에서 역으로 기성 문인들 보다 좋을 수 있다. 특히 몇몇 시를 보면 다양한 시어들이 등장하고 사물에 대한 신선한 재해석이 들어가 있다. 사물에 대한 신선한 재해석은 시인이라면 누구나 지녀야할  시인의 눈이다. 이는 "사차원 아니야?" 라는 질문을 받을 수 있다.  내가 만난 문우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의 대다수가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 심지어 내 가족들까지도 그렇다.그만큼 시인의 눈은 특별하면서 이상하다. 


내가 최근에 준비하고 있는 시 공모전들은 다여섯까지 정도 된다. 그 중 시제가 바다인 공모전이 있다. 보통 일반 사람들은 바다라고 물으면 "추억,해변,수평선,파도,그리움,여행" 이정도가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이런 생각 대신 다른 생각들을 해야한다. 예를들어 재난,인재,연인,유년시절처럼 직접 연관 되어 보이지 않는 것들을 생각해야한다. 내가 이 대회에 제출할 작품도 재난,인재,편지등을 바다로부터 생각을 했다. 시 한 편은 세월호 사건을 그렸고 다른 편은 동일본 대지진의 해일 상황 마지막은 떠난 이에게 전해지지 않는 바다의 편지를 주제로 썼다. 이에 대한 부모님의 반응은 그렇게 좋지 못했다.  ."바다라고 하면 즐겁고 신난 이미지인데 너는 왜 이런 시만 써?" 내 시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부모님께 "원하는 바다가 뭐야?"라고 물었다. 부모님의 말을 들어보니 수산시장에  나와 있는 신선한 회들,바다를 뛰놀고 있는 생선들을 말했다. 나는 너무 식상한 시가 될 것 같아 이에대한 시를 쓰고싶지 않았다. 그러나 신선한 수산시장의 회로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제 빨리 컴퓨터 앞에 앉아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 시가 바로 글틴에 올린 <수산시장> 이라는 시였다. 위 시는 아동이 수산시장에서 회를 뜨고 있는 사장과 죽어가는 생선을 보며 만감이 교차하는 내용의 시다. 이를 보고나서야 부모님은 웃었다. 저번에 보여준 시들보다 순수하고 일반적이라 즐거워 하는 것 같았다.


이후 시를 내가 부모님께 잘 읽어주지 않았지만 엄마가 최근 멘토링을 받은 <문어의 꿈 >이라는 시를 읽고 놀랐다가  해석을 말을 해주니 한 숨을 쉬었다. 위 시는 샤브사브 뷔폐 셀러드 바에 나온 타코야끼를 보고 아동 암 환자가 생각이나서 쓴 시다.  문어의 별명은 가쓰어브시 없는 타코야끼 이 둘의 공통점은 머리카락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을 보고 항암치료로 의하여 머리가 빠진 환자의 모습을 떠올렸다.그리고 가쓰오브시와 타코야끼의 관계를 생각해서 문어를 아동으로 그려 놓았다. 그래서 암에 걸린 아이가  친구들과 뛰어놀고 싶은 마음을 쓴 시였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밝은 시의 분위기 때문인가?  아무도 이 주제를 떠올리지 못한 것 같다. 문우도 부모님도.심지어 기성 시인이신 멘토님들도 해석이 어려워하신 것 같아  멘토링 댓글에 위 내용을 써드렸다. 그리고 엄마는 내게 "어렵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생각이 특이해."라며 말했다. 이는 칭찬이면서 비꼬는 느낌이 들어 기분은 좋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엄마의 말을 그냥 귀를 기울이며 들었다.왜냐 시인의 눈을 더 다채롭게 키우기 위해서다.

 

 시인의 눈은 한 순간에  태어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의 시선과 나만의 생각으로 계속 사물에게 질문할 때 상상력과 시선이 태어난다. 나만 너무 믿지말고 타인의 생각도 들어야한다. 이 모든 대화들은 시가 될 수 있다. 시가 되지 못해도 시의 눈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 참신하고 좋은 생각은 언제나 일상에서 나온다. 언제나 물음의 정신과 경청의 자세를 가지며 시를 쓰면 언젠가 신선한 창의력이 훅하고 튀어나오지 않을까?  그러면서 시인의 눈은 특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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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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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3일 고등학교 입학 하루 전이다. 이 날 난 글을 많이 써보겠다는 마인드로 생활을 했다. 수필도 한 편, 소설도 한 편, 비평도 한 편 그리고 시는 타 공모전 것 까지 5편 이상 쓸 계획이었다. 왜냐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게 되면 글을 쓸 여유가 적어지고 남들 다 공부하는데 홀로 글을 쓰며 공부를 느슨하게 하면 않될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모든 욕심에는 그 것을 막는 초기 단계들이 있다. 신은 우리가 욕심을 가지고 살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벨탑을 부스고 탐욕의 악마 바알제붑과 같은 것을 만들었다. 나도 이 막음 단계에 들어간 것 같았다.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는 고등학교 입학의 불안이라는 아이를 낳게 되었다. "왜 시가 써지지 않아!" 나는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그러자 엄마는 "그럴 때는 쓰지 않는거야." 라고 답을 했다. 나는 엄마의 그런 말에도 글을 쓰려고 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손과 몸이 떨리고 이상했다. 이를 엄마도 느꼈을까? "쓰지말고 어서 자. 너무 떨지마."라고 내게 말했다. 나는 할 수 없이 글을 쓰지 못했다. 글을 쓰면 쓸수록 학교에 대한 불안이 많이 커져갔기 때문이다.2024년 3월 4일 입학이다. 하늘은 무거운 것만 같았다. 나는 부들부들 떠는 몸을 가지고 아침밥을 먹었다. 그러나 소화는 평소와 달리 쉽게 되지 않았다. 아마 긴장이라는 아이가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는 계속 "떨지마 그리고 눈치 보지 마. 어깨 펴!" 라고 말을 했다. 나는 부자연스러운 미소를 엄마에게 보내고 집을 나가 버스에 발을 옮겼다. 버스에는 옛날 학원 친구였던 K가 있었다. K와 나는 가벼운 손 인사를 주고 받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냐 지금 내가 죽을 것처럼 많이 힘들기 때문이었다. 무엇에 홀린듯 심장은 계속 지진을 만들고 숨은 계속 과호흡 상태가 되었다. 이를 막아보려고 숨을 크게 셔보지만 효과는 거의 없었다. 약간의 작은 눈물이 흘러나올 때 쯤 학교 앞 버스 문이 열렸고 나는 발을 땅에 놓을 수 있었다. 나는 이 마음을 가지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생각보다 많이 힘드네."라고 말을 했다. 엄마는 나에게 "떨지 마. 괜찮아. 이 것을 이겨내야 해."라고 말을 했다. 나도 안다. 그러나 모르는 척 하고 싶다. 내가 무작정 학교와 친구들을 피하면 은둔형 외토리 즉 히키코모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이가 되기 싫었고 사회 생활을 잘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나는 숨을 천천히 들이키기로 했다. 해결 방안은 바로 독서다. 나는 책가방에서 은유의 이라는 책을 피고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친구들의 시선과 내 기침{틱 성 기침+감기 기침}이 어울려져 책의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2024년 3월 5일 긴장의 하루가 또 지난 새로운 불안의 날이다. 이 날은 7교시 처음부터 끝까지 내 힘으로 버텨야 한다. 정신과에서 어제 받은 신경안정제를 먹고 학교로 출발했다. 그러나 내 불안도는 감소되지 않고 일정했다.7교시 영어 독서 수업 OT까지 끝

  • 송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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