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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면 벚꽃이 되고 싶었다

  • 작성자 난바다
  • 작성일 2023-12-27
  • 조회수 419

슬슬 매미 소리가 내 귀를 괴롭히고꽃 향이 서서히 옅어지고 있을 때나는 나와 오래된 친구를 만났다작년에 많이 만나던 것과는 달리 올해에는 다소 많이 만나지 못한 친구였다. (그 당시에는.) 우리는 카페에 앉아 자연스럽게 음료를 하나 시켰고 그 친구가 음료를 주문하러 간 사이에 나는 창가를 바라보았다아마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 때의 계절은 딱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때의 경계선그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몇 개월이나 된 이야기라 어찌 보면 시시해 보일 것이고 너무 늦은 글이라 느껴질 수도 있을까 봐 이 글을 쓰면서도 사실 걱정이 많다이제 와서 이 글을 쓰는 이유가 궁금할 수도 있고 말이다굳이 이 글을 쓰게 된 까닭을 말하자면 단순히 변덕 때문이 아니라 이 글을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이 글의 주인공은 내가 아닌 다름 아닌 내 친구이니까나는 이 글에서 철저한 관찰자 시점에 놓인 사람이다그리고 이 글은 많이 아프고 또 아픈 이야기들이 많이 들어 있을 것이다내 친구와 나의 많이 아픈 상처들아물었다고 하기 보단 우리끼리 그냥 덮어두고 모른 척 해 두었던 그 많은 자잘한 스크래치들나는 이 글을 통해 나의 상처들을 말하려고 한다.

 

일단 그 친구와의 만남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고 하면 사실 그 전부터 이상한 점들이 많이 있었다일 월 달부터 그 친구가 나의 무수히 많은 연락들을 무시했던 것과 갑작스레 학교가 끝난 뒤에 연락한 것그리고 우리가 중학교 졸업 후에 왔었던 작은 카페에 온 거까지단순히 넘길 수 있는 일일 수도 있겠지만 왜인지 모르게 난 그럴 수 없었다만난 친구가 그 찝찝한 날씨에도 긴 팔을 입어서인지아니면 그 긴팔 사이로 흰색 붕대가 보여서인지알 수 없다나는 최대한 웃는 낯짝을 유지하며 창가 자리에 앉아 친구에게 물었다잘 지냈어그러자 친구는 웃으며 답했다아니.

 

곧이어 우리가 주문한 음료가 도착하고 나는 차가운 에이드를 한 입 마셨다너의 음료는 이 계절과는 맞지 않는 따뜻한 핫초코였다김이 나는 핫초코를 너는 홀짝 들이키고는 담담히 말했다.

 

죽으려고 했었어.”

 

일상생활을 얘기하듯이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너의 자태에 나는 무심코 그 말을 넘길 뻔했다얼음이 얼음과 부딪히는 소리가 그리도 큰 줄은 그 때처음 알았다와그작와그작입 안에 들어온 얼음이 너무 차가워 나도 모르게 얼음을 씹고 말았다이가 차가웠다그리고 아팠다그렇지만 그것보다도 더 차가웠던 것은 너의 표정말투였다.

 

그리 슬픈 말을 하면서도 너는 무덤덤해 보였다너는 평소와 다름없었고 한 가지 딱 한 가지만 달라진 점이 있다고 하자면 너의 긴 팔 안에 감춰진 그 상처들일 것이다네가 이어 말하기를죽으려고 했는데 죽지 못하였고죽고 싶었는데 죽기 싫었다고네가 내뱉는 말 한 마디한 마디가 모순 덩어리이건만나는 그 말에 무슨 반응을 해야 할지 생각도 하지 못하고 너의 얼굴만을 쳐다보았다울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너는 웃고 있었다.

 

사실 너는 모르겠지만 나는 한참 전부터 너를 이슬 같다고 느꼈다아니어쩌면 안개 같다고 느꼈다내가 전에 보았던 뮤지컬 대사에는 그런 말이 있다햇빛을 받아 사라지지도 못하고비가 되어 내리지도 못하는 안개너는 그 안개처럼 늘 어떤 것의 경계선에 서 있었다그래서 우리가 그 때 봄과 여름의 경계선에서 만났던 걸까우리는 첫 만남부터 그랬다우리의 시간들은 모두 어느 곳에 속하지 못하고 경계선에 있었다그래서 우리가 지금까지 친구인 거일 수도 있다우리가 친구로 지내온 시간은 우리가 살아온 시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긴 시간이건만 나는 아직 너에 대해 잘 모른다아마 너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너 자신마저도 너에 대해서 모르니까.

 

너희 가족들은 너를 모두 철없이 여기고 말썽꾸러기로 생각한다네가 잘 웃어서라는 다소 허무맹랑한 이유였다오히려 나는 네가 너무 빨리 철이 들어 안타까웠는데너희 가족들 역시 너를 이해하긴 어려웠던 걸까내가 아는 너에 대한 사실 몇 가지만 풀어도 모두가 너를 향해 감탄을 할 것이다너는 잘 웃고 친구들에게도 놀림을 많이 받았지만 그럼에도 공부는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했으며 집안 사정이 어려웠기에 매일 밤 알바를 했다너는 알바를 하는 와중에도 문제집을 들고 다녔다학원에 다니지 않고 내게 수학 문제를 물어보는 네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나는 숙제도 하지 않고 내게 물어보는 너를 향해 답하길 바빴다그만큼 너는 내게 있어 소중한 존재이며 사랑스러운 이였다.

 

그런 네가 잠시나마 흔들렸을 때를 조심스레 추측해 보자면 아마 작년 겨울일 것이다그 날은 폭설 주의보가 내려 흰 눈이 펑펑 내리고 있을 때였다나는 학원이 끝나 네가 학교 점심시간에 먹고 싶다던 아이스크림이 떠올라 몰래 사고 네게 전해줄 작정이었다너희 집에 거의 다 다다랐을 때 네가 전화를 걸었다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너는 한 마디를 내뱉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너희 아버지가 매우 아프다는아주 짧은 말.

 

그 때부터는 내가 어떻게 너희 집으로 갔는지 모르겠다정신이 들어보니 네가 내 앞에 있었고 너는 내게 몇 번 보여주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안겨 울고 있었다나는 네가 그리 무너진 것을 본 적이 별로 없었다나에게 너는 늘 크고 단단한 존재였던지라 너의 울음소리에 나는 그저 너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는 행동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이기적이게도 문득 그 순간에 몇 년 전 너와의 일이 떠올랐다그니까 내가 몇몇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 적에 내게 먼저 다가와 준 너의 모습이내게 같이 급식을 먹자고 손을 내민 너의 작은 손가락이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그 모습이 떠오르니 우습게도 나 역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내가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 위로 눈이 덮였다우리의 머리 위로도 눈이 덮였다내 입에 들어가는 것이 눈인지 눈물인지 헷갈렸다. 조심스레 추측해보자면 차가운 것은 눈이고 따뜻한 것은 눈물이라는 것. 그것 하나만이 내가 명확하게 기억하는 유일한 것이다.

 

그 날 부로 너에게서 연락이 끊겼다그 이 후일 주일 간은 계속해서 문자를 보냈다너는 읽기만 할 뿐 답장은 없었다너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았을까전전긍긍하던 나날의 연속이었다네가 나중에 엄청 걱정했냐고 물었을 땐 많이는 안 했다고 답했으나 사실 애가 타지 않았다고 하자면 그건 거짓말이다너에게서 언제 연락이 올지 몰라 맨 날 무음 처리를 하던 내 휴대폰 벨소리를 최대로 키워놓고 알림 소리가 울리는 것이 싫어 맨 날 알람을 껐던 내가 너의 채팅방은 가장 위에다 고정한 채 알람을 최대로 키웠다그럼에도 너는 겨울과 봄이 지나가는 그 시절까지 내게 연락을 주지 않았다솔직히 너를 원망도 했었던 것도 같다우리가 지내던 시절이 며칠이고 우리가 보낸 추억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데너에게 있어 나와의 무게는 이 정도밖에 되지 않았나 싶어 괜히 내가 너에게 했던 행동들을 되짚어 보곤 했다.

 

그래서 너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을 때에 내심 반가우면서도 화가 났었다하지만 나는 아주 바보 같은 사람이라 너의 모습을 보니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그리고 네가 뒤이어 하는 말에 나는 내가 시킨 에이드 잔만 만지작거릴 수밖에 없었다위로의 말을 건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선뜻 먼저 내뱉지 못한 까닭은 감히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감이 안 잡혀서...

 

웃는 너의 낯짝이 미우면서도 말을 꺼내지도 못하는 내가 더 미웠다너는 그런 나를 보며 그저 여유롭게 핫초코만을 마실 뿐이었다그 모습이 내심 얄미워 그냥 참고 있는 눈물을 터트릴까생각도 해보았지만 그것은 너무 교활한 수법 같았다나는 조용히 너의 모습만을 바라보았다그러자 한참의 정적을 지키고 있던 네가 다시 웃으며 말을 꺼냈다.

 

이왕이면 봄에 죽고 싶었어봄이 가장 따뜻하잖아벚꽃도 피고.”

 

그 말을 듣자 네가 아주 어렸을 적 내게 말해주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봄에 죽은 사람들은 벚꽃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그 말그 말을 듣고 나는 그럼 이 무수히 많은 벚꽃들은 다 봄에 죽은 사람들이냐고 물었고 너는 그 물음에 이리 답했지봄이 사계절 중 가장 따뜻하니까겨울에 죽는 거는 너무 가혹하잖아라고너는 당연하다는 듯 그리 답했다.

 

봄에 떠난 사람들은 다 벚꽃이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그 시절에는 그리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알 것도 같았다봄만큼 그 찬란한 계절에 떠난 아프고 아팠던 모든 이들에게마지막으로 봄의 그 따스함과 사람들의 웃음소리그리고 벚꽃그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신이 그랬든신이 아닌 다른 전지전능한 누군가가 그랬든 간에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건 그것 하나였다.

 

죽지 마."


아마 내가 그 때 너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아니 내가 그 때 학원에 평소처럼 일찍 갔었더라면 너는 무수히 많은 벚꽃잎들 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을까. 그 생각을 하니 무심코 내뱉은 말은 고작 그 세 글자였다. 네가 감성적인 편이 아니건만너는 그 말을 듣고 펑펑 울어댔다. 그 세 글자가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우습게도 너의 우는 모습에 나 역시 애써 참아왔던 눈물을 한순간에 터지고 말았다카페 알바생은 우리가 무슨 신파를 찍고 있는 것은 아닐지고민할 수도 있을 것이다그만큼 우리는 펑펑 울었고 우리가 친구가 된 지 정확히 십 년이 되던 해의 봄은 그렇게 넘어가고 있었다. 너로 인해 밤낮 가리지 않고 잠을 이루지 못한 시간들은 그 세 글자를 통해 사그라졌다. 창 밖에는 봄의 마지막 벚꽃이 지고 있었다.

 

너와는 지금은 일주일에 네 번 이상 만날 정도로 자주 만난다너의 아버지는 몇 달이 넘는 병원 치료 끝에 회복이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던 몸이 회복되어 다시 걸으실 수 있게 되었고 유년 시절 병원 치료를 거듭하던 너의 형제 역시 지금 완쾌해 행복한 학생 시절을 보내고 있다고 너는 말했다여담으로 알바는 이제 그만 두어 홀가분하다고그러면서 네가 덧붙인 말이 뭐였더라살아보니 나쁘지 않다고 하였던가다른 의미가 담긴 웃음을 보이는 너의 모습은 그 때보다도 더 사랑스러웠다겨울의 정점인 이 시점이 올해 봄보다 덜 추웠다나는 이제 곧 우리가 맞이할 또 다른 봄이 기대가 된다.


마지막으로,

 

봄이 되면 벚꽃이 되고 싶었던 모든 이들에게.

봄이 되면 벚꽃이 되고 싶었던 지난해의 너에게.

봄이 되면 벚꽃이 되고 싶었던 어린 시절나에게.

 

이 글을 조심스레 올리며 곧 다가올 봄을 기다리기로 했다.

 

-우리의 봄은 벚꽃보다 영원하고 찬란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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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모든 이들에게

글틴을 알게 된지 6개월, 글틴에서 글을 쓰게 된 지는 어느덧 5개월이 지났다. 열여덟, 어떻게 보면 입시에 집중해야 할 나이에 글틴을 알게 된 것은 꽤나 늦은 나이였다. (매일같이 내가 하루라도 빨리 글틴을 알았더라면, 이라는 말로 후회하고 있다.) 사실 그 때의 나는 공모전을 알아보고 있었고 글틴에 글을 꾸준히 올리는 것은 꽤나 힘들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왜인지 모르게 그 때의 나는 글틴이라는 사이트에 당당히 내 이름을 올리고 싶었다. 아마 내가 처음에 글을 쓰게 된 것도 문학이 아닌 웹소설이었기에 더욱 그랬던 거일지도 모르겠다. 웹소설 역시 훌륭한 글의 장르라 생각하지만 순수문학에 빠진 이후로 그와 관련된 분야에서 활동하고 싶었으니까. 그 날로 당장 글틴에 가입을 하고 ‘난바다’라는 어떻게 보면 유치한 필명으로 활동하게 된 것은 그니까 순전히 나의 호기심과 모험심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글을 쓰는 일이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스트레스를 받는 과정이고 열여덟이라는 나이에 입시 스트레스와 글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겹치면 힘들지 않겠느냐는 주위의 걱정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지난 5개월 동안 글틴을 통해 글을 쓰며 글에 대한 즐거움을 다시 정의내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그 5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나라는 사람은 참 많이도 바뀌었다. 모태 게으름이었던 내가 글을 꾸준히 쓰기 시작하고. 전에 쓰고 싶다고만 막연히 생각하던 소재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늘 생각만 해오던 일들을 실천하고자 노력했다. 내가 지금껏 써오던 글은 소설과 시뿐이었는데. 글틴에 오고 나서부터는 감상과 비평과 수필에도 맛이 들려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진 것만 같아 흡족하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 역시 수필이다.) 예를 들어 감상과 비평이라는 부문은 나라는 사람이 쓰기엔 굉장히 어려운 분야라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어휘력도 좋지 못하고 배움도 짧은 사람이라, 아직까지도 글을 쓸 때에 어떻게 써야 할지 한참을 고민해야 한다. 전에 멘토님께 지적을 받았던 것처럼 같은 문장을 반복한다거나, 또는 굳이 높은 표현을 써서 가독성을 떨어트리는 것처럼. 내 글에는 나 역시 미처 발견하지 못한 흠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그 지적을 받았을 때, 처음엔 정말 그런가 당혹스러운 면이 없잖아 있었고 다시 살펴보면 정말로 그 부분이 이상하다는 것이 내 눈에도 보여 놀랄 때가 많았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이 감상과 비평 부문에 글을 쓰면 오히려 책의 본질을 내가 흐리게 만들 것만 같아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감상과 비평에 글을 올리게 된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만큼이나 책을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글을 읽는 것이 좋았고, 그 글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기도 했으며 나 역시 글틴에서 올라온 감상과 비평 글을 보며 많은 감명을 받기도 했으니. 필연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이 야심한 밤에 내가 잠 대신 글을 쓰기를 선택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글을 사랑하는지 대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글틴에 오고 나서 힘들었던 기간도 있었다. 사람의 욕심은

  • 난바다
  • 2024-01-31
바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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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바다
  • 2023-12-02
밤하늘에선 위성도 빛이 나겠지

나는 소설을 좋아한다. 본래는 책을 좋아하지 않았으나 어느 순간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하게 되면서 자신만의 세상을 가진 작가들의 이야기를 보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비록 이과들로 점령된 우리 가족들 사이에서 추상적인 부분이 많이 있는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기엔 나의 가족들은 계산적인 면들이 다소 있지만 나는 오히려 이런 부분들을 즐기는 편이다. 어떤 사람들이 보기에 내가 돌연변이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또 다른 이들은 어째서 너 하나만 이렇게 눈에 띄는 것이냐며 놀랄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 난 이런 나만의 특별함을 소설보다도 더 좋아한다. 일단 내가 소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오래 전에 같이 지내던 친구로부터 시작되었고 그것이 이어지게 된 것은 소설만이 가진 매력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매력에 사로잡힌 나는 중학교에서도 소문난 소설 광으로 유명했다. 그 당시, 지금보다도 나는 더 소설에 열광적이었고 그 결과, 나는 선생님께 찾아가 당당하게 소설 동아리를 만들게 해달라고 주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주장은 단칼에 거절당했다. 지금 되돌아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동아리 담당 선생님은 누구고 부원들은 누구고 우리는 무슨 활동을 할 것인지 말도 하지 않고 무작정 ‘소설 동아리를 만들어 주세요!’ 라고 주장하다니. (심지어 나는 그 때 이미 생물부에 가입한 상태였다.) 아마 선생님 눈에는 작은 생쥐가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치즈를 달라고 외치는 꼴이 아니었을까. 이런 발칙한 행동 탓에 같은 교무실을 쓰시던 독서 선생님께 나는 눈도장이 당당히 찍혔다. 독서 선생님의 일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아이들이 책을 읽게 한 뒤, 그 책을 독서 감상문으로 쓰도록 하는 업무였다. 물론, 초등학교 졸업에 불과한 아이들이 독서 감상문을 진심으로 쓰는 일은 많진 않았다. 장난스러운 말투로 뭐가 재밌었고 뭐가 슬펐고 뭐가 무서웠습니다, 라고 쓴다거나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독서 감상문을 그대로 베끼거나. 책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는 아이들 가운데에서 유독 열심히 쓰던 내 독서 감상문과 학교에서 가장 무섭기로 유명한 선생님 앞에서 당돌하게 고개를 치켜 든 모습에 크게 감명을 받으신 모양인지 그 날, 독서 선생님께서는 따로 수학 시간에 나를 부르셨다. 애들의 부러움 섞인 눈빛을 받으며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독서 선생님을 따라갔다. 독서 선생님이 내게 쥐어주신 것은 손원평 작가님의 「아몬드」였다. 선생님께서 그 후, 뱉으신 말씀은 딱 한 마디였다. ‘다음 시간까지 이 책으로 독서 감상문 써서 가지고 와볼래?’ 나는 짧게 ‘네’라고 대답했다. 중간 중간 독서 감상문을 쓰면서 사서 선생님께 조언도 듣고 틈틈이 책을 읽었다. 「아몬드」를 이미 읽었지만 사서 선생님께서 감상문을 쓰면서 한 번 더 보는 것은 어떠냐는 말씀을 따라 난 처음으로 같은 책을 두 번 읽었다. 분명 첫 번째 읽었을 때에 울지 않았건만. 나는 두 번째 읽었을 당시, 엉엉 소리 내어 울면서 보았다. 방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워낙 요란하여 엄마가 놀라 나를 달래 주기도 했다. 그러다 왜 우냐

  • 난바다
  • 2023-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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