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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색깔로 탐색하는 문학의 장-
모색 고비읍 - 아무 문제 없음
아무 문제 없음 고비읍 오른쪽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입을 틀어막고 참아 보려는 듯하지만, 결국은 끕끕 새어 나오는 소리. 내 바로 왼편에 앉은 아이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내기 바빴다. 사방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온 건 무대 위의 한 남자애가 울기 시작하고서부터였다. “부족한 저에게 이렇게 많은 사랑을 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드려요. 그 사랑 다 돌려드릴 수 있도록 더 노력할게요. 저를 사랑받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셔서 감사…….” 그 애는 울먹이느라 말을 다 끝내지 못했다. 누군가가 크게 그 애의 이름을 연호하자 팬들이 한목소리로 그 애의 이름을 외쳤다. “연홍아, 울지 마!” “연홍아, 사랑해! 더 많이 사랑할게!” “최연홍! 행복하자!” 반짝거리는 옷을 입고 예쁘게 화장을 하고 눈부신 조명을 받는 무대 위의 남자애를, 이미 많이 행복해 보이는 그 애를 팬들은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나는 커다란 공연장 안을 둘러보았다. 2만 명이 앉아 있는 이 공연장 어딘가에 송리윤도 있었다. 다른 팬들처럼 송리윤도 그 애를 보고 울었을까. 더 사랑해 주겠다고 외쳤을까. 따로 연락도 한 적 없고, 밥 한 번 같이 먹은 적 없지만 그 애는 송리윤에게 사랑받았다. 아무 이유 없이. 아무 대가 없이. 세븐플래닛은 마지막 무대라면서 팬들에게 함께 부르자고 했다. 팬들은 노래 가사 전체를 다 알고 있는지 막힘없이 따라 불렀다. 3시간쯤 콘서트가 진행되는 동안 세븐플래닛이 불렀던 노래 대부분은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노래들이었다. 애초에 나는 세븐플래닛에 관심이 없었다. 멤버가 몇 명인지, 이름이 무엇인지도. 관심도 없는 세븐플래닛 콘서트 티켓을 산 건 오로지 송리윤 때문이었다. “여러분, 오늘 즐거웠나요?” “네!” “행복했나요?” “네!” “저희도 너무너무 즐겁고 행복했어요.” 멤버들은 돌아가면서 엔딩 멘트를 던졌다. 아까는 우느라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던 최연홍이 이번에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세븐플래닛과 가디언이 함께한 지 벌써 5년이 됐어요. 이만하면 한 가족이나 다름없어요. 그러니까 우리 평생 서로 사랑하고 아껴 줘요. 알았죠?” 팬들은 큰 소리로 “네!” 하고 대답했다. 어딘가에서 송리윤도 같이 외치고 있을 것만 같았다. “뭐야? 할 말 있어?” 송리윤이 근처에서 쭈뼛대는 내게 물었다. “저기…….” “쉬는 시간 다 끝나 간다. 아까운 시간 잡아먹지 말고 빨리 좀 말해 줄래?” “나도 갔었어, 어제. 세븐플래닛 콘서트 말이야.” 혹시나 반가워해 주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송리윤의 얼굴을 흘끔 쳐다보았다. 하지만 송리윤의 표정은 변함없었다. 여느 때처럼
작성일 2022-10-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033상세보기 -
모색 김젬마 - 너와 나의 알싸한 세계
너와 나의 알싸한 세계 백온유, 『페퍼민트』(창비, 2022) 김젬마 재난이 남긴 것들 백온유의 『페퍼민트』는 준비 없는 재난 앞에 닥친 기약 없는 기다림과 불투명해진 미래를 견디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소설은 ‘프록시모 바이러스’ 후유증으로 식물인간이 된 엄마를 돌보는 ‘시안’과, 슈퍼 전파자라는 낙인으로 두려움과 불안함을 안고 사는 ‘해원’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전염병이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시안과 해원은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였지만, 바이러스가 삶에 침투하자 이들의 평범한 일상과 관계에 균열이 생긴다. 식물인간이 된 엄마의 세계가 멈추고 자신의 미래까지 멈춰버린 시안은 돌봄 노동을 수행하느라 정작 자신의 세계여야 할 학교와는 단절된 삶을 살아간다. 그저 자신의 하루를 견디고 버티며 사는 것 외에는 그 어떤 희망이나 미래를 품을 수 없는 고단한 삶 속에 놓여 있는 시안의 일상은 위태롭고 무력할 뿐이다. 엄마가 깨어날 거라는 희망보다 엄마의 죽음을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진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엄마를 누구보다 꼼꼼하고 세심하게 돌보지만 결국 모든 정성과 노력들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들에 지쳐 있다. 한편 슈퍼 전파자라는 무차별 공격으로 인한 불안함에 시달린 나머지 자신의 이름을 ‘지원’으로 개명하고, 이사와 전학을 선택한 해원은 자신의 과거를 감추고 마치 바이러스가 자신의 삶에 없었던 것처럼 평범하게 살아간다. 가족만큼이나 끈끈했던 두 사람은 우연한 계기로 6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지만 이들의 공백은 쉽게 메워지지 않는다. 이 공백은 두 사람의 잃어버린 시간과 멀어진 마음의 거리만큼 복잡하고 난해한 감정들을 담고 있다. 그렇게 다시 만난 시안과 해원은 서로에게 불편함을 느낀다. 시안은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해원을 보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그동안 자신을 짓눌러 왔던 감정의 화살을 해원에게 돌린다. 해원은 유일하게 자신의 과거를 아는 시안의 등장이 당혹스럽기만 하고 지난 시간을 들추는 것 같아 불편하다. 희망 없는 현실을 견디고 있는 시안과 과거로부터 도망쳐 평범한 삶을 꿈꾸는 해원, 이 두 사람은 다시 연결될 수 있을까? 고여 있는 삶 재난을 준비할 시간도 없이 엄마와 이별을 한 시안은 식물을 돌보듯 엄마를 간병한다. 엄마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은 엄마가 썩지 않도록 기저귀를 자주 갈아 주는 것뿐이지만, 시안은 엄마의 미각을 깨우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엄마가 좋아하던 페퍼민트 차를 매일 우려 입에 적셔 준다. 시안은 매일 같이 차를 우리며 어린 시절을 회상할 뿐 아니라, 절망과 무력함으로 점철된 일상에 작은 희망을 품으며 나름의 의식을 행하고 있다. 엄마는 고여 있는 것 같다가도 우리 삶으로 자꾸 흘러넘친다. 우리는 이렇게 축축해지고 한번 젖으면 좀처럼 마르지 않는다. 우리는 햇볕과 바람을 제때 받지 못해서 냄새가 나고 곰팡이가 필 것이다. 우리는 썩을 것이다.(98쪽) 시안이 오랜 간병 경험으로 얻은 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연민의 시
작성일 2022-10-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939상세보기 -
모색 남지원 - 나쁜 사랑
[청소년소설] 나쁜 사랑 남지원 1. 지렁이 밤사이 내리던 장대비가 물러가고 푹푹 찌는 아침이었다. 나는 아파트 단지가 끝나는 놀이터 샛길에서 내 오랜 벗이자 청박쥐왕 오광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른세수로 호기롭게 눈곱을 떼면서 땅바닥에 떨어진 나뭇잎을 슬리퍼로 끌어와 뒤로 차버리기 연습을 반복 중. 현재 시각 오전 7시 20분. 보통 우리가 등교하던 시간보다 일렀으나 그래도 광수 자식, 아니 내 벗인 청박쥐왕에게 문자를 넣어 바로 튀어나오라고, 안 그럼 먼저 간다고 해놓고서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이게 다 성가신 옆집 때문이었다. 사나이 가는 길을 막는 것은 언제나 옆집 낭자 혹은 아낙인 것이다. 옆집 사는 동갑내기 지설연의 등교 시간은 대략 7시 40분. 잘못하다 아파트 복도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밤새 안정을 되찾은 나의 공력이 한순간에 뚝, 맥이 끊기기 때문이다. 나는야 강한 남자, 파주고 1학년 백미응왕 이로운. 모름지기 무림의 고수는 여자에게 잡혀 살지 않는 법. 때는 바야흐로 강호를 평정하고 입신양명에 힘쓸 시기인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은 몇 달 전 입학한 파주고를 이 몸이 슬슬 접수하려 하는 중요한 시기이고. 무릇 강호의 실력자는 옆집 사는 같은 반 여학생 따위에게 호색한으로 몰린다 하여도 제 갈 길을 갈 뿐, 신경 쓰지 않는 법이다. 흠, 그렇고말고. 대신 쿠울하게. 최대한 남자답고 무심하게. 알아서 피할 뿐. 그렇게 나, 이로운. 7시 20분에 집을 나와 천하를 나의 발아래에 두려고 하고 있었다. 시선을 틀다가 꼴사납게 펄쩍 튀어 올랐다. “깜짝이야.” 지렁이. 팔뚝만한 지렁이다. 웅덩이에 엄청나게 거대한 놈이 떠 있었다. 비온 뒤라 나온 건가. 나뭇가지를 주워와 쪼그리고 앉아서 슬슬 건드려 보았다. 어릴 적 논에서 많이 봤었다. 그 시절 지렁이만 보면 징그럽다던 어린 내게 아빠는 말했었지. 비가 오면 흙 구멍 속으로 물이 들어가 산소가 줄고 이산화탄소가 늘어나서 지렁이가 구멍 밖으로 기어 나오는 것이라고. 흙을 숨 쉬게 해주는 고마운 동물이니 예뻐해 주라고. 징그럽지 뭐가 예쁘냐는 내게 아빠는 말에는 힘이 있다고 했다. 그러니 예쁘다, 예쁘다 해보라고. 아, 예쁘고 굵기도 하여라. 이놈은 필시 여러 해를 살아낸 지렁이 문파의 대왕 줄지렁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꿈틀거리는 이놈을 계속 보고 있자니 어째 좀 모양새가 남자 거시기와 비슷해 보이기 시작했다. 아차. 상상해 버렸다. 남사스러운 상념은 내공을 쌓는 데 좋지 못한 법이거늘. 그런데도 한참을 빨려 들어갈 듯 지렁이에게서 눈을 땔 수 없었다. “지렁이네?” 불쑥 내 얼굴 옆으로 들어온 이는 광수였다. 번쩍 일어나 우산을 검 삼아 그를 노렸다. “청박쥐왕. 늦게 온 죗값을 치르라.” “잠깐만. 으, 징그러. 얘네 자웅동체란 거 아냐? 근데 짝짓기는 둘이 필요하다더라?” 징그럽게 웃기는. 같은 남자로서 부끄럽구나. 광수가 지렁이를 밟을 뻔해서 나뭇가지로 풀밭 쪽으로
작성일 2022-09-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798상세보기 -
모색 김젬마 - K-할머니의 이름은
[리뷰 - 청소년소설] 기존 〈글틴스페셜〉이 9월호부터 〈Part.g〉로 변경되었습니다. 〈Part.g〉는 청소년 대상의 성장소설은 물론 창작희곡과 그래픽노블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과 '리뷰'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K-할머니의 이름은 유은실, 『순례 주택』(비룡소, 2021) 김젬마 불편한 것들에 대하여 동화나 청소년소설에서 노년 여성 캐릭터는 대개 죽음이라는 소재와 연관되거나 주인공에게 정서적인 위안을 주고 성장을 돕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들은 주로 돌봄 노동과 모성의 주체로 호명되다 보니 자신의 이름보다 누군가의 어머니 혹은 할머니로 불려 온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자신을 이런 방식으로 규정하는 호칭들에 매우 민감한 이가 있으니, 바로 『순례 주택』의 건물주 순례 씨다. 75세인 순례 씨는 어머니, 할머니, 사부인, 동거녀 등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과 가족 단위로 엮이는 호칭들을 불편해한다. 이러한 호칭들은 순례 씨의 다채로운 삶과 이력들을 괄호 칠 뿐 아니라 순례 씨의 바운더리를 침범하는 무례함을 담고 있다. 순례 씨는 사별한 남자친구의 손녀인 수림을 손녀가 아닌 최측근으로 호칭 정리하며 할머니와 손녀라는 전형적인 관계 방식에서 벗어난다. 그는 ‘순하고 예의바르다’의 순례(順禮)에서 남은 인생을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의 마음으로 살기 위해 순례(巡禮)로 개명할 만큼 자신의 이름에 대한 애착과 소명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가족으로 소환될 뿐 정작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 경험이 없는 ‘K-할머니’의 이름은 자신을 옭아매는 규범적인 호칭들을 하나씩 덜어내며 재정의 된다. 순례 씨는 호칭뿐만 아니라 물질과 돈을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 때문에 필요 이상의 것들을 덜어내는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한다. 이산화탄소를 마구 배출하는 인간들과 쓰고 남는 돈, 썩지 않는 쓰레기가 인생 최대의 고민인 그는 푸짐하고 손 큰 할머니의 밥상이 아닌 노동력을 최소한으로 하는 간단하고 소박한 밥상을 차린다. 순례 씨는 정직하게 땀 흘려서 노동하는 삶을 추구하며 세상과 물질에 욕심 없는 다소 초월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자기만의 경계가 매우 뚜렷한 인물이다. “월세 밀리는 건 참아도, 분리배출 제대로 안 하는 건 못 참”(80쪽)을 만큼 그는 순례 주택의 생활 수칙에 있어서만큼은 엄격하고 단호하다. 이렇게 순례 주택 입주민들은 공용 생활 수칙과 자신의 바운더리를 지키며 사는 것을 중요시하고, 무엇보다 이들은 “자기 힘으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53쪽)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유은실의 『순례 주택』은 고정된 공간과 다양한 인물들의 대화를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되며 기본적으로 순례 주택이라는 공동체의 복작거리는 삶을 그린다. 이는 사건이 인물과 장소의 활용도가 높고 이를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는 시트콤의 형식과 비슷하다. 『순례 주택』은 등장인물의 이름, 나이, 직업, 특징 등을 세세하게 묘사하며 이
작성일 2022-09-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996상세보기 -
모색 임형진 - 팬데믹 시대의 연극적 일상
[리뷰 - 창작희곡] 기존 〈글틴스페셜〉이 9월호부터 〈Part.g〉로 변경되었습니다. 〈Part.g〉는 청소년 대상의 성장소설은 물론 창작희곡과 그래픽노블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과 '리뷰'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팬데믹 시대의 연극적 일상 - 이수진 희곡-텍스트 「이선생은 피곤하다.」 임형진 “성과사회, 활동사회는 그 이면에서 극단적 피로와 탈진 상태를 야기한다. 이러한 심리 상태는 부정성의 결핍과 함께 과도한 긍정성이 지배하는 세계의 특징적 징후이다. 그것은 면역학적 타자의 부정성을 전제하는 면역학적 반응이 아니라, 오히려 긍정성의 과잉으로 인해 유발되기 때문이다. 과도한 성과의 행상은 영혼의 경색으로 귀결된다.”1) 한병철 이수진 작가의 희곡-텍스트 「이선생은 피곤하다.」는 전통적인 드라마 방식을 유지하면서도 포스트드라마적 요소가 동시에 발견되는 독특한 성격을 지닌 작품이다. 텍스트에 장착된 일상의 재현성은 사건의 개연성, 그리고 플롯과 장면의 개별적 완결성에 영향을 미친다. 작가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을 설정함으로써 시대에 반영된 언어와 사회적 행동이 구체적으로 드러날 수 있게 하였다. 이들의 사회적 관계를 발생시키는 ‘학교’는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일상의 문제들을 정치하게 드러내는 연극적 공간으로서 기능한다. 일상에서 비롯된 갈등의 요인들은 이 작품의 사건 구성과 그것의 개연성을 통하여 합리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노출된다. 이 과정에서 희곡-텍스트 「이선생은 피곤하다.」의 전통적인 연극적 정서가 구축되고 또한 발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작품은 사건 자체에만 집중하지 않는 특징을 보인다. 작가가 제시한 사건은 끝까지 명료하게 해결되지 않는데, 이를 해소하기 위한 어떠한 힘이나 능력, 논리적인 방식은 개입되지 않는다. 이 작품이 사건의 해결을 목표로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후반부로 이어지면서, 인간의 자아가 분열되는 순간을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인물의 자아분열은 이성과 합리성의 실패와 그것의 불가능성, 그리고 현실의 한계와 모순을 지각하도록 지시하는 포스트드라마적 정서와 감각의 작동방식을 공유한다. 사실적인 일상의 묘사와 사실적일 수 없는 인물의 분열방식은 상호대칭적 관계에 따른 갈등의 무게와 이질적 질감을 느끼게 할 것이다. 1) 한병철, 김태환 옮김, 『피로 사회』, 문학과지성사, 2012, 66쪽. 사회적 공간 작품의 배경은 한국의 한 인문계 남자 고등학교이다. 이 공간은 팬데믹 이전의 전통적인 학교 환경과 일정한 차이를 보인다. 텅 빈 교실에는 두 개의 스크린이 있으며, 그 뒤에는 칠판이, 스크린 앞에는 교사용 책상과 그 앞에는 학생이 사용하는 빈 책상이 놓여 있다. 무엇보다도 학생이 없는 빈 책상은 대면 방식이 아닌, 비대면 온라인 수업이 진행된 학교의 최근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담임인 이선생의 컴퓨터와 핸드폰 역시 동일한 연극적 공간성을 부여받는다. 이선생과 학생들은 이 장치를 통해 온라
작성일 2022-09-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070상세보기 -
모색 임형진 -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리뷰 - 창작희곡] 기존 〈글틴스페셜〉이 9월호부터 〈Part.g〉로 변경되었습니다. 〈Part.g〉는 청소년 대상의 성장소설은 물론 창작희곡과 그래픽노블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과 '리뷰'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1) - 윤지영 희곡-텍스트 「황금동의 죽음」 임형진 “나 자신의 죽음과의 관계는 비록 그것이 예감이나 예지의 차원에서라 할지라도 앎이나 경험을 의미하지 못한다. 우리는 알지 못하며, 설령 죽음이 무화(無化 aneantissement)라고 해도 그 무화에 대해 관여할 수 없다.” 2) 임마누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1906-1995) 윤지영 작가의 희곡-텍스트 「황금동의 죽음」은 다소 복합적인 연극-내부-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 작품은 일상의 사건과 행동을 담담하게 재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물과 공간, 상황과 환경 사이에 ‘보이는’ 물리적 요소와 ‘보이지 않는’ 내면적 요소는 문학적 텍스트를 넘어 연극의 수행적 특성으로 이어지게 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여섯 인물(character)은 단순히 인간-존재로서만 설정되어 있지 않다. 여기엔 동물도 포함되는데, 바로 황금동이란 이름을 가진 개다. 작가는 이 개가 50세에 가까운 건장한 사람이며,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구체적으로 말한다. 이러한 극적 장치는 우화적(allegory) 특성이 강조된 상징(주의)적 연극을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동시대 사회와 일상의 보이지 않는 실체를 연극적으로 목격하게 만드는 ‘새로운 사실(주의)적’ 특징을 예상하게 한다. 그리고 개와 인간의 대화가 동시적으로 어긋나는 소통의 불가능성은 부조리극을 연상하게 만든다. 그러나 개와 관련된 연극적 장치의 주요한 목표 지점은 바로 그 존재를 사실적으로 재현하지 않음으로써 획득하게 될 인간에 대한 성찰의 가능성에 있다. 인간이 개의 정서를 혹은 개가 인간의 정서를 확보하려는 연극적 시도와 노력은 독자의 문학적 수용과 해석을 “공동현존(co-present)”3)의 신체화 과정에 이르는 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동물이 포함된 「황금동의 죽음」의 여섯 인물은 인터넷 포털 신문의 사회면에서 간혹 볼 수 있는 유형이다. 그러나 이들은 일상 속 내 주변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들은 분명히 사회 어딘가에 존재하지만 독립적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양가적(ambivalent)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제목에 제시된 개의 죽음은 잘 드러나지 않는 누군가의 소외된 상태를 강조하려는 의도와 연관돼 보인다. 작품 속에서 우리 눈에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소외의 양상과 흔적들은 존재자의 관계성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만든다. 동물의 실존을 이야기하기 위해 포스트휴먼(posthuman)에 대한 개념적 정리가 필요하겠지만, 이 작품의 개의 역할은 연극을 위한 알레고리적 장치로서 기능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조금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 이유는 이 개가 동물의
작성일 2022-08-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005상세보기 -
모색 이선생은 피곤하다.
[창작 - 희곡] 기존 〈글틴스페셜〉이 2021년 9월호부터 〈Part.g〉로 변경되었습니다. 〈Part.g〉는 청소년 대상의 성장소설은 물론 창작희곡과 그래픽노블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과 '리뷰'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이선생은 피곤하다. 이수진 등장인물 이선생37세. 서울의 한 인문계 남자 고등학교 1학년 3반 담임. 코로나19 때문에 난데없는 온라인 수업을 하느라 고군분투 중이다. 지황1학년 3반의 학생 학생1~121학년 3반의 학생들. 각자 이름은 있지만, 이선생에게는 그저 학생일 뿐이다. 무대 무대는 텅 빈 교실이다. 무대 중앙에는 커다란 스크린이 두 개 있다. 그 뒤로 스크린에 가려진 칠판이 보인다. 스크린 앞에는 교사용 책상이 있고, 그 앞에는 학생들의 빈 책상이 있다. 스크린은 2개로 중앙의 큰 스크린에는 이선생의 노트북 화면이 투사된다. 오른쪽의 다소 작은 스크린은 세로로 길쭉하며, 이선생의 휴대폰 화면이 비춰진다. 마치 책상 위의 듀얼 모니터처럼 이선생의 사이버 세상을 보여준다. * 이 작품은 현실 세계의 이선생과 인터넷 속의 학생들 사이의 대화로 구성된다. 채팅창의 대화는 네모 안에 이탤릭체로 표시하였다. 1장. 조회 불이 희미하게 켜지면 텅 빈 교실이다. 작은 스크린이 켜지며, 이선생의 휴대폰 속 세상이 나타난다. 휴대폰 화면은 건강상태 자가진단 앱이 켜진 상태이다. 자가진단 앱은 교육부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매일 아침 학생과 교직원의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서다. 앱에는 ○○고등학교 교사 이민지라는 초기 로그인 화면이 뜬다. ‘나의 건강상태 진단’ 항목으로 화면이 바뀐다. 몇 가지 질문이 뜬다. 질문1. 귀하는 현재 코로나19가 의심되는 아래 의 임상 증상이 있나요? 질문2. 귀하는 오늘 신속항원검사를 실시했나 요? 질문3. 귀하 본인이 PCR 검사를 받고 그 결 과를 기다리고 있나요? ‘아니오’에 체크되는 모습이 보인다. ‘오늘 우리 반 참여 현황’으로 화면이 바뀐다. 1학년 3반 학생들의 이름과 명단이 보인다. 명단 옆에는 실시한 학생들의 상태가 보인다. 1번 강민기 정상 2번 김시헌 미실시 3번 김창현 미실시 4번 김현우 정상 5번 김지황 정상 6번 배원이 정상 : : 20번까지 이어지는 학생들의 명단이 보인다. 화면이 깜빡인다. 화면 캡처를 한 듯 보인다. 화면이 카카오톡 창으로 바뀐다. ‘1학년 3반 단톡방입니다.’라는 제목이 떠 있다. 조금 전의 명단을 캡처한 사진이 단톡방 창에 올라간다. 이선생의 메시지도 올라간다. 이선생 (메시지) 자가진단 하세요. 교실 문이 열리고 이선생이 들어온다. 한 손에는 노트북, 한 손에는 휴대폰을 들고 있다. 이선생은 휴대폰 화면으로 시계를 확인한다. 이선생 (혼잣말로) 7시 50분. (메시지를 치며) 8시 전까지 자가진단 완료하세요. 이선생은 노트북을 교사용 책상 위에 올린다. 전원선을 꽂고 컴퓨터를 켠다. 손길이 다급하고 분주하다. 카톡! 소리가 울린다. 작은 스크린에
작성일 2022-08-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666상세보기 -
모색 윤지영 - 황금동의 죽음
[창작 - 희곡] 기존 〈글틴스페셜〉이 2021년 9월호부터 〈Part.g〉로 변경되었습니다. 〈Part.g〉는 청소년 대상의 성장소설은 물론 창작희곡과 그래픽노블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과 '리뷰'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황금동의 죽음 윤지영 등장인물 황영서 (18세) 금여사 (82세) 석자연 (18세) 황금동 (황금동은 개다. 하지만 50세에 가까운 건장한 사람,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강지수 (18세) / 수의사(40대 중반) 1인2역 1. 강둑 개껌을 문 채 유모차 안에 누워 있는 황금동, 몸이 커서 꽉 낀다. 그런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하고 있는 황영서, 많이 맞았는지 얼굴이 상처투성이다. 영서석자연이 또 때렸어. 황금동(하품) 영서걔는 항상 가랑이를 벌리고 앉더라. 황금동(관심 있게 듣는다) 영서남자 선생님들 앞에선 더 쫙 벌리고 앉고. 황금동(입 모양만) 오! 영서변태들. 황금동(눈치 보며 다시 개껌을 핥는다) 영서야, 평소엔 벌점이니 뭐니 말도 잘하는 새끼들이 석자연이 가랑이를 벌리고 앉으면 왜 입을 다물까? 자식 같은 애 팬티를 보면서 뭐라도 상상하는 걸까…… 이 자식아! 주인님 말씀하시는데 낑낑이라도 대야 할 거 아니야. 황금동(콧구멍 벌렁거리며) 아우, 얘 오늘 그날인가. 영서자연이 그년이 또 팼다고. 황금동며칠 전에 3반 강지수랑 한 판하고 안 그래도 잡티 많은 얼굴에 손톱자국까지 난 화풀이를 너한테 한 거잖아. 영서며칠 전에 3반 강지수랑 한 판하고 안 그래도 잡티 많은 얼굴에 손톱자국까지 난 화풀이를 나한테 한 거라니까. 황금동(고개를 끄덕인다) 영서(황금동이 무슨 말을 했나 갸웃하며 황금동을 보다가 말을 꺼내려고 하면) 황금동잡티 하나 없이 곱디고운 하얀 얼굴 니가 참아야지, 누가 참겠니. 영서잡티 하나 없이 곱디고운 하얀 얼굴 내가 참아야지, 누가 참아. 참으면 반이나 간다고 황금동고등학교 졸업은 해야 사람구실 한다고. 둘이(동시에) 며칠 전에 이쪽 세상 빠이빠이하고 위쪽 세상으로 간 금여사가 그랬잖아. 둘 다 입을 다문다. 황영서는 유모차를 끈다. 영서……석자연이 또 때렸어. 황금동나쁜 년이네 그거. 영서걔는 항상 가랑이를 벌리고 앉더라. 황금동미친 거 아니야? 황영서와 황금동, 무대 밖으로 사라진다. 2. 방 작은 상 하나를 두고 금여사와 황영서 늦은 저녁을 먹고 있다. 상에는 김치찌개가 놓여 있다. 금여사(김치찌개에 숟가락을 푹 담그면) 영서에이즈 환자랑 이렇게 같이 퍼먹어도 안 옮을까? 금여사야! 영서아니, 좀 궁금해서. 과학적으로다가. 금여사넌 이제껏 낳아 주고 길러 준 은혜를 이렇게 갚냐. 영서그치? 금여사뭐? 영서낳았지? 금여사아 머리 아파. 영서낳은 거 맞네. 그런 걸 손녀라고 여지껏 구라를 까냐. 금여사……니 엄말 내가 낳았으니까, 거 뭐시냐. 비유. 비유 몰라? 국어 시간에 안 배워? 영서쪽팔리지? 금여사뭐? 영서18년간
작성일 2022-07-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267상세보기 -
모색 어단비 - 식물인간
[창작 - 희곡] 기존 〈글틴스페셜〉이 9월호부터 〈Part.g〉로 변경되었습니다. 〈Part.g〉는 청소년 대상의 성장소설은 물론 창작희곡과 그래픽노블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과 '리뷰'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식물인간 어단비 등장인물 남자 여자 기타 외 1명 무대 와이드한 무대 위, 센터에 침대, 침대 옆 협탁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무대 바닥 상하수 양옆으로 마킹테이프가 화살 표시처럼 붙어 있고. 군데군데 겹쳐진 선은 마치 너비와 길이 x, y같다. 암전 상태인 무대를 걷는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 이내 들려오는 외 1명의 목소리 외 1명유엔 산하 IPPC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과학자들이 기후변화에 관한 비관적인 미래를 전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IPPC에 따르면 금세기 말까지 지구의 온도는 산업화 이전 대비 3도 이상으로 앞당겨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체 조명 in 상하수 양옆으로 마킹테이프가 화살 표시처럼 붙어 있는 무대 무대 중앙 침대엔 남자 여자 누워 있다. 외 1명이 수화를 하며 대사를 이어 가고 하수에 스탠드처럼 서 있는 기타는 8박자로 탭 댄스를 추기 시작한다. 외 1명(수화를 함께하는) 이에 과학저널 네이처는 뼈를 깎는 탄소배출 억제와 지구온난화 억제 조치를 하지 않으면 2100년 자칫 지구는 여섯 번째 대멸종과 더불어 죽기 전 인류재앙을 보게 될 것이라며 경고했다. 점점 격렬해지는 탭 소리, 기타의 탭 댄스는 처절해 보이다 이내 조금씩 잦아든다. * 외 1명은 계속해서 무대가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고 현 상황을 수화로 설명한다. 남자(잠시 뒤 놀란 듯 잠에서 깨며 자리에 앉아 호흡하는) 여자(뒤척이며 깨어나며) .......왜 그래? 꿈꿨어? 남자(호흡 고르며) ... 하아... 하아... 어...? 어.... 여자(배를 감싸며) 어휴 놀래라... (호흡 고르며) 노티스 지금 몇 시야? 남자(탭 댄스 속삭이듯 작게 치며) 지금 시간은 여섯 시 삼십 분입니다. 남자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어? 여자그런가 봐. 남자슬슬 준비해야겠네. 여자응. 남자너는 언제야? 여자다음달. 남자지겹다 지겨워. 여자물 줄까? 남자응. 고마워. 여자(침대 옆 협탁에 놓인 이름표가 붙여진 300ml 물통을 건네는) * 300ml 물통엔 시간대별로 하루 먹을 양이 눈금 표시 되어 있다, 남자(표시된 눈금만큼 먹는) 여자(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중앙 창문을 바라보는 것 같은) 근데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남자(여자를 바라보는) 기타(탭 댄스 점점 격렬하게 추는) 여자(겁에 질린 목소리로) 자기야..? 남자왜? 여자잠깐만 이리 와봐. 남자(귀찮아서) 아 왜? 순간 통행금지 사이렌 소리가 무대 안에 가득 퍼진다. 탱크 소리 점점 커지는, 그때 포탄소리 쾅! 여자꺄아아아아. 남자(잔뜩 몸을 움츠린 뒤 고개 드는) 뭐야!? 여자빨리 이리 와보라고!!! 남자(창문 쪽으로 걸어가는)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무대 안으로 탱크 수십 대의 그림자. 남자서울 한복판에 웬 탱크
작성일 2021-12-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091상세보기 -
모색 양근애 - 물들지 않고는 가까이할 수 없는 세계
[리뷰 - 창작희곡] 기존 〈글틴스페셜〉이 9월호부터 〈Part.g〉로 변경되었습니다. 〈Part.g〉는 청소년 대상의 성장소설은 물론 창작희곡과 그래픽노블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과 '리뷰'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물들지 않고는 가까이할 수 없는 세계1) 양근애 고통을 느끼는 존재의 권리 2019년 7월 경기도의 한 종돈장에서 돼지가 구출되었다. ‘새벽이’라는 이름을 얻은 돼지는 생추어리(sanctuary)에서 올해 두 살 생일을 무사히 맞았다. 종돈장에서 태어난 돼지는 6개월 만에 도축된다. 그렇게 한 해에 천 팔백여 마리의 돼지가 도축된다고 한다. 새벽이는 동물권단체 직접행동 디엑스이(DxE)코리아 활동가들이 ‘공개구조(Open Rescue)’했다.2) 돈을 주고 돼지를 사 오는 것이 아니라 농장주의 허락 없이 불법으로 구조한 사례였다. 생추어리는 미국의 동물권 활동가 진 바우어가 만들어낸 공간으로 공장식 축산 등으로 피해 입은 동물들의 ‘안식처’이자 ‘피난처’다. 구조된 새벽이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폐허가 된 지구에 마지막 남은 인류처럼 외로웠던 것은 아닐까. 다행히 ‘새벽이생추어리’에 최근 ‘잔디’라는 돼지가 구조되어 새벽이와 함께하게 되었다. 제약회사의 실험동물이었던 잔디는 새벽이와는 다르게 경계심이 없어 사람에게 잘 다가온다고 한다. 동물도 인간들처럼 다 다른 외양과 성격을 가진 고유한 존재다. 인간만이 고유한 존재라는 환상은 근대 이후를 오래 지탱시켰다. 직립보행, 사회성, 자의식, 지능 등을 토대로 인간과 인간 아닌 존재를 구분하는 것이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잘 알려져 있듯, 피터 싱어는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를 토대로 ‘동물 해방’을 주장했다.3) 벤담은 인간과 동물을 나누는 기준은 ‘논리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가’, ‘말을 할 줄 아는가’가 아니라 ‘고통을 느끼는가’라고 보았다. 피터 싱어 역시 인간이 다른 종들이 누리지 못하는 권리를 가지는 것은 인간이 일방적으로 부여한 지위일 뿐, 종차별은 인종차별과 차이가 없다고 했다. 동물과 인간을 종이라는 기준으로 나누고 차별하는 것은 인종차별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1978년 10월 15일, 유네스코에서 ‘세계 동물 권리 선언’이 발표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세계 인권 선언이 선포된 지 삼십 년 만의 일이었다. 세계 동물 권리 선언 제1조는 “모든 동물은 생태계에서 존재할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이 권리의 평등은 개체와 종의 차이를 가리지 않는다”, 제2조는 “모든 동물의 삶은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에서 동물은 권리 없는 ‘물건’에 해당한다.4) 생명 없는 유체물과 같이 취급하는 것이다. 최초로 동물권을 인정한 독일은
작성일 2021-12-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507상세보기 -
모색 배시현 - 어떤 경기
[창작 - 희곡] 기존 〈글틴스페셜〉이 9월호부터 〈Part.g〉로 변경되었습니다. 〈Part.g〉는 청소년 대상의 성장소설은 물론 창작희곡과 그래픽노블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과 '리뷰'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어떤 경기 배시현 등장인물 이보현, 강승주 두 인물 모두 30대 초반 이상의 연령으로, 구체적인 나이와 성별은 무관하다. 시간은 달이 갓 뜨기 시작해 아직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지 않은 초저녁, 장소는 잡초가 곳곳으로 우거져 사람이 잘 오가지 않는 곳이라는 게 바로 눈에 들어오는 근린공원이다. 어슴푸레한 조명 속에서, 작은 크로스백을 메고 있는 승주 들어와 공원 주변을 둘러본다. 태도는 산책이라도 나온 듯 여유롭고 편안해 보이지만, 눈빛은 수상하리만큼 형형하다. 중간 중간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는 모습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도 하다. 그러던 중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자 승주, 공원을 나선다. 잠시 뒤 보현이 스마트폰을 보며 공원 안에 들어선다. 이미 여러 번 둘러본 SNS 피드를 또 한 번 새로고침하며 걷던 보현은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한다. 보현깜짝아. 보현은 다시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하며 걸음을 옮긴다, 보현뭐 재밌는 일 없나. 보현의 맞은편으로 승주 들어온다. 보현을 발견한 승주는 반가운 얼굴로 다가가 인사한다. 승주안녕하세요! 보현(무심코 흘긋 고개를 들었다가 승주가 자신을 똑바로 보고 있자) ……저요? 승주네, 안녕하세요! 보현네…… 안녕하세요. 보현은 승주를 인사성 좋은 주민 정도로 생각하며 지나친다. 여전히 시선은 스마트폰에 박혀 있다. 보현을 빤히 지켜보던 승주는 보현이 완전히 나가기 전에 보현을 불러 멈춰 세운다. 승주손님. 보현(뒤돌아보며) 저요? 승주네, 손님. 보현(이상한 사람인가 싶어) 저 손님 아닌데요? 무슨 손님을 찾으시는 건지……. 승주아니시긴요, 이보현 손님 맞으시잖아요. 보현네? (경계하며) ……누구세요? 누구신데 절 아세요? 승주저 모르세요? 우리 나름 인연 깊은 사인데. 보현……누구신데요? 승주제 머리스타일이 작년이랑 달라서 그런가? 저 강승주예요. 보현(기억하려 애쓰며) 혹시 저랑 친구……? 승주와, 정말 저 누군지 모르시나 보네. 진짜 섭섭하다. 저는 손님 처음 본 날 머리스타일부터 옷 색까지 다 기억하는데. 보현(경계하며) 누구세요? 승주가 대답하지 않고 자신만 쳐다보자, 보현은 찝찝함에 그냥 지나치려 한다. 승주동북산로 37 에이빌라 203호 이보현 손님. 보현(뒤돌아서며) 뭐야? 누구세요 진짜? 누구신데 제 개인정보를. 승주시골집 강승주요. 보현시골집? 그게 뭐…… (기억이 나) 잠깐, 설마? 보현이 기억을 되짚는 사이 승주는 스마트폰에서 보현이 올린 글을 찾아 읽는다. 승주‘포장 주문하러 간 가게에서 진상 취급당해 기분
작성일 2021-11-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421상세보기 -
모색 양근애 - 지구의 시간과 비인간 행위자
[리뷰 - 창작희곡] 기존 〈글틴스페셜〉이 9월호부터 〈Part.g〉로 변경되었습니다. 〈Part.g〉는 청소년 대상의 성장소설은 물론 창작희곡과 그래픽노블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과 '리뷰'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지구의 시간과 비인간 행위자 양근애 1. 인류세의 역설과 비인간 존재 인류세(Anthropocene)라는 새로운 지질학적 연대는 1995년 노벨상을 수상한 대기화학자 파울 크뤼천이 제안한 말로 알려져 있다. 지구의 역사에서 지금은 신생대 제4기의 마지막인 홀로세(Holocene)에 해당한다. 만칠천 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났음을 알린 흔적을 바탕으로 2008년에 결정되었다. 과학자들은 인간의 능력이 지구의 생태계를 파괴할 정도로 강력해졌다며 새로운 지질학적 시기를 주장한다. 인류세를 두고 일어난 과학적 논쟁과 정치적 담론이 뜨겁게 전개되고 있다. 홀로세의 종말을 고하고 인류세를 명명하는 과정의 논란은 덜 알려져 있을지 몰라도, 이산화탄소의 과다 배출과 거대한 플라스틱 쓰레기 섬, 엘니뇨, 라니냐 현상, 지구온난화 등이 지구를 향한 경고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홀로세까지 지질시대를 구분한 동력은 자연이었지만, 인류세는 지구를 변화시킨 인간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인류에 대한 위협으로 돌아오고 있다. 인류세의 역설은 기후 위기와 환경 담론을 넘어 정치경제적 문제, 나아가 사회문화적 문제로 이어진다. 인류세 담론은 지구와 지구 밖에서 인간과 비인간이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역사적 주체임을 자임하던 인간은 인류세의 위협 앞에서 주체의 자리를 의심받게 되었다. 인간중심주의와 서구적 근대의 이분법에 대한 비판과 반성은 인간의 지위 역시 객체로 놓는 존재론이나 포스트 휴머니즘, 신유물론과 만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관점이 인류세를 몰고 온 인간의 책임을 덜어낸다는 뜻이 되어서는 안 된다. 최근의 문학예술이 인간을 중심에 놓지 않고 인공지능 로봇, 동물, 자연, 사물 등 비인간을 조명하고 있는 흐름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연극에서도 인간이 아닌 비인간 객체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포스트 휴머니즘 논의나 신유물론의 관점에서 해석될 여지가 있는 작업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무대 위에 존재하는 배우라는 인간을 상정하지 않을 수 없는 연극에서 비인간은 어떻게 그려질 수 있는가의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연극이 멸종된 미래 사회에 등장한 로봇 배우를 다룬 , 은 자신을 로봇이라고 주장하는 성수연 배우의 천연덕스러운 연기를 믿는 연극적 약속으로 진행될 수 있었다. 로봇만의 문제는 아니다. 동물과 사물은 또 어떠한 방식으로 무대 위에서 존재할 수 있을까. 일종의 의인화를 수반하지 않고 비인간을 무대화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이 글은 그러한 질문 혹은 상상을 놓지 않고 비인간을 다룬 희곡, 그 중에서도 로봇이나 사물, 광물 등을 다룬 희곡을 살펴보고자 한다. (동물에 관한 희곡의 이야기는 추후에 이어 나가고자 한다.) 웹진 《연극in》의 희곡 코너에는 2020년부터 &lsquo
작성일 2021-11-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862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