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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니에여성백일장 [장원-시/제43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플라시보 효과 - 차은지
[제43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 장원-시] 플라시보 효과 차은지 궁금하지 않았지만 옆집 꼬마의 소원은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것이란다. 갑자기 든 생각이지만 나는 나이를 불문하고 이기는 데 늘 최선을 다하지. 네가 어린애여도 말이야. 그리고 내 소원은 지구가 멸망하는 거란다. 누렇게 바랜 에코백에서 막대사탕 하나 건낼 뿐이다. 그럼 작은 머리통이 앞으로 쏟아지며 감사를 표하지. 그래 엄마 몰래 실컷 누리렴. 자고로 약은 써야 제맛이라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안주는 막대사탕 하나면 충분하지. 조금 품이 드는 짓이긴 해도 쭈글쭈글한 껍질을 깔 때면 옆집 꼬마의 소원에 동참하고 싶어진다. 지구는 혀로 굴리지 않아도 알아서 굴러다녀 북극과 남극이 뒤집힐 일도 없지. 시간이 지나 녹을 일도 없다. 빙하가 녹기야 하겠지만 그건 달콤해진 소주를 입안에 털어 넣는 것만큼 아무 상관 없는 일이다. 흡연구역이 되어버린 금연구역. 자주 오작동을 하는 화재 비상벨과 더 이상 대피하지 않는 사람들. 러닝머신 위를 달리다 엎어진 친구는 숨을 헐떡이며 죽을 것 같아 정말 이대로 죽고 싶다고 그럼 죽어…. 라고 말할순 없지. 규칙을 어기면 인생이 조금 달콤해진다. 꼬마야 우린 멸망이 아니라 멸종을 향해 가고 있는 거야 7평 원룸에선 꼬마의 목소리가 굴러다닌다. 머지않아 빨갛게 부풀어버린 꼬마를 담지 못하고 방이 무너질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게 소원이니? 물으니 탕후루가 먹고 싶단다. 어제의 일은 까맣게 잊었다는 얼굴로 그럼 내 소원은 네가 탕후루를 먹다 이가 빠지는 거야 그것만큼 달콤한 멸종도 없다.
작성일 2025-11-26 댓글수 1상세보기 -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장원-산문/제43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쓰레기는 언제 쓰레기가 되는가
[제43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 장원-산문] 쓰레기는 언제 쓰레기가 되는가 원지호 쓰레기는 언제부터 쓰레기이고 또 언제부터 쓰레기가 아니게 되는 걸까? 접시 위에 예쁘게 놓여있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순간의 음식, 음료가 사라지는 순간의 페트병, 김치 국물이 번지는 순간의 흰 휴지와 점멸하다 꺼지는 순간의 전구. 그 특이점 같은 순간에. 도달해야 쓰레기는 쓰레기가 되는 것일까? 나는 할머니의 낡은 수레 구석에 앉아 그녀와 함께 아침부터 저녁까지 골목 골목을 누빈다. 처음 다시 태어난. 뒤로는 낯선 세상과 사람들을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금방 지루해졌다. 그런 내 눈에 들어온 건 길거리에 나뒹구는 불쌍한 쓰레기들이었다. 그들의 시작과 끝에 대한 심오한 관심이 생겼다. 그러니까, 저들도 분명 누군가의 손끝에서 태어나 명명된 순간이 있었을 텐데. 초코파이 박스, 콜라, 수박 껍질, 종이컵, 나이키 신발 등등등…. 어느새 이름들은 다 사라지고 그냥 다 쓰레기. 그 세 글자로 끝이 난다. 우리 할머니가 하루 여덟 시간을 쉼 없이 돌아다니며 줍는 폐지들의 처지도 그렇다. 그래도 그 폐지들은 그나마 상황이 좀 낫다. 할머니가 그들을 고무상에 데려가 새 삶을 줄 테니까. “아가, 오늘은 징하게 덥다잉.” 아무튼 오늘은 이런저런 사유마저도 사치일 정도로 덥다. 매년 날씨는 왜 이렇게 더워지는지. 폭염경보가 내린 오늘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흐물흐물 녹아내릴 것만 같다. 할머니가 늘 상 틀어놓는 텔레비전 속 아나운서는 쓰레기들 때문에 지구가 점점 뜨거워진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구가 뜨거워지는 건 사람들의 변덕 때문이다. 저기 수레에 실린 곰 인형만 봐도 그렇다. 한때는 보송한 귀여움을 자랑하며 사랑을 받았을 인형이 이제는 볼품없이 거꾸로 처박혀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 위로 쌓이는 폐지들, 더 많은 폐지들…. 내 까만 눈에 까만 주름들 틈새로 비질 비질 흐르는 할머니의 땀방울이 보인다. 저 깡마른 팔과 다리가 바쁘게 움직인다. 길거리의 모든 폐지들을 위해서 말이라도 할 수 있다면 ‘할머니’ 오늘은 쉬는게 어때?‘ 라고 했을 텐데. 입이라곤 하나 있지만 미소만 지을 줄 알고 무용지물이니, 나도 참 쓰레기 출신답다. “아휴! 폭염경보여, 경보! 해 쨍쨍할 땐 좀 쉬라니까. 믄일나요. 아니, 뭘 이렇게 또 많이 가져왔어?” 평화 고물상 아저씨다. 아, 마음씨 좋은 아저씨. 할머니에게 유일하게 따뜻한 시선을 건네는 사람이다. 그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유난스럽게 소리치며 할머니를 맞는다. 할머니는 머쓱하게 웃는다. 새벽부터 쓰레기를 모은 수레엔 구원을 받을 폐지들이 한가득이다. “요즘 폐지 가격이 많이 내려서 나도 많이 줄 수가 없네. 미안해요.” 항상 웃는 할머니의 얼굴이 굳는다. 꼬깃꼬깃한 지폐, 구원의 값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벌 말을. 나야 고맙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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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니에여성백일장 [장원-아동문학(동화)/제43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설기와 비밀가죽 - 김주영(유영)
[제43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 장원-아동문학(동화)] 설기와 비밀가죽 김주영 해저에 굴러다니는 하얀 산호조각, 파도가 만질만질하게 만든 유리병 조각, 갈색 가리비 조개껍질, 바위에 붙어서 자라는 따개비, 못난이 흑진주. 그 애가 준 팔찌에는 쓰레기처럼 보이는 것들이 대롱대롱 달려있다. “할망! 그거 쓰레기 아니라고 몇 번 말해.” 할망 손에서 그 애가 준 팔찌를 뺏었다. 조글조글 주름진 할망 얼굴에 물음표가 떴다. 쓰레기가 아니면 대체 무엇이냐는 표정이다. 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할망에게도 그 팔찌의 비밀을 말할 수 없다. 왼쪽 손목에 팔찌를 끼고, 그 애와 헤어졌던 용머리 바닷가로 나갔다. 지난해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나는 그 애와 처음 만났다. 물질하러 나간 할망이 바다 근처에는 얼씬도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나와 청개구리 사이엔 어른의 말을 듣지 않는 공통점이 있다) 파도가 거세서 그런가. 바닷가에는 그날따라 애들이 없었다. 나는 물에 들어가지 못하니까 모래장난만 쳤다. 그때, 우웅 하고 노래처럼 부는 바람결 사이로 훌쩍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바람이 아니었다. 홀린 듯이 따라갔다. 내 또래의 여자애가 포구 주차장 한가운데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갈치처럼 눈부신 은빛 머리칼을 허리까지 늘어뜨리고, 호모 사피엔스 나 입을 가죽옷을 걸친 아이. 아는 호기심을 참지 못했다. 울상인 그 애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툭툭 노크하는 것처럼 어깨를 두드렸다. “여기서 뭐해?” 그 애가 눈을 깜빡였다. 금빛을 띠는 초록 눈 외국인인가? “이거 내 건데” 하얀 트럭의 바퀴 아래에 무언가 끼워져 있었다. 짧고 보송보송한 털옷이었다. 어두운 잿빛 털에 동그란 점이 찍힌 게 모피처럼 보이기도 했다. 12살이 입기엔 너무 촌스러운데. 그 애에게 계속 말을 걸고 싶었다. “내가 뭐 도와줄까?” “아무리 밀어도 이 하얗고 뚱뚱한 게 움직이지 않아….” “당연하지. 트럭이잖아.” 그 애는 트럭이란 단어가 낯선 듯 했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난 트럭 주위를 요리조리 둘러봤다. 앞 유리에 적힌 연락처를 읽었다. 역시, 앞집 사는 할아버지였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할아버지는 금세 나타났다. “할부지. 얘 제 친구인데, 소중한 게 아래 깔렸대요. 도와주세요.” “암. 우리 이은이 부탁인데, 들어주고말고.” 할아버지가 트럭에 시동을 걸었다. 앞바퀴가 조금 움직였다. 그 애는 자기 몸보다 커다란 그 옷을 재빨리 꺼냈다. 나와 그 애는 할아버지에게 고맙다고 인사했다. 눈물을 뚝 그친 그 애가 초승달처럼 웃었다. 피부가 하얗고 투명해서 더 환하게 보였다. “고마워.” 나도 덩달아 기뻐서 웃었다. “다행이야. 근데 너 여기 안살지? 이름이 뭐야?” “나는 설기. 넌?” &ldq
작성일 2025-11-26 댓글수 0상세보기 -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우수상-시/제43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삐에로와 대파 - 이소명
[제43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 우수상-시] 삐에로와 대파 이소명 슬픔은 삐에로의 분장이다 유명한 기자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울거나 웃지 않고 강 밑으로는 내려가지 않는다 다만 매일 아침 대파 화분에 물을 주고 안부를 물으며 커피를 마신다 하루 만 보를 걷고 저녁은 꼭 만들어 먹는다 대파를 아주 많이 사용한다 대파를 썰면 눈이 붓는다 과학자처럼 인과관계가 분명한 것이 좋다 자다가 가끔 화분이 말을 걸어오면 나는 느릿느릿 몇 마디 대꾸하고서 냉동실로 걸어 들어간다 아침은 대파 잎을 타고 흐르는 빛 줄기처럼 눈부시다 나는 매일 쥐어짜는 얼굴로 침대에서 깨어난다 대파는 무침도 될 수 있고 구이도 될 수 있고 크림치즈도 될 수 있다 뿌리가 있으면 계속해서 살아서 자라서 나를 먹인다 슬픔은 아이스팩이다 어느 과학자가 썼다 나는 냉동실에 얼려둔 나를 전부 꺼내서 수레에 싣고 강가로 간다 다리 위로 촛불을 밝힌 사람들의 행렬이 밝게 일렁인다 무언가를 참는 순간이 가장 뜨겁다 울음은 목울대 아래서 삶만큼 길어진다 나는 그 아래서 긴 레인코트를 입고 땀에 푹 젖어 강을 향해 얼려둔 나를 하나씩 던진다 강 표면에서 물보라가 철썩 철썩 일어난다 이내 입을 천천히 다물고 일렁인다 견디듯이 사람들이 막 다리의 절반을 건넜다 강의 건너편에서는 불꽃놀이가 시작되고 있었다 나도 강둑에 올라가서 보았다 몹시 아름다웠다 언젠가 흙과 함께 섞은 부드러운 뼈 한 줌처럼 불꽃의 잔해가 흘러내린다 사실 그건 나와 어떤 과학자가 개발한 죽어도 죽지 않는 시간과 마음을 상자에 담아 쏘아올리는 새로운 장례풍습이었다 후련할 줄 알았는데 나는 한쪽 얼굴이 자꾸 흘러내리는 것 같다 사람들은 각자의 대파 화분을 향해 천천히 나아간다 유명한 기자는 부지런히 썼다 촛불과 행렬은 삐에로의 기술이다 스크린도어에 산발적으로 비치는 익숙한 분장 쌓이는 어둠 속에서 삐에로가 무언가를 견디는 동안에도 그녀의 베란다에서 대파는 자란다
작성일 2025-11-26 댓글수 0상세보기 -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우수상-산문/제43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루저클럽-현라희
[제43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 우수상-산문] 루저클럽 현라희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그것’이라고 하면 보통 되묻는다. “그게 뭔데요?” 스티븐 킹 소설이 원작인 영화 ‘그것’이요. 재차 답하면 대화는 거기서 뚝 끊긴다. 혹은 몇 초의 정적 뒤 나라는 사람에 대한 소감이 한 줄 영화평처럼 달리곤 한다. “좀 이상한 구석이 있어요.” 그거 피에로가 애들 겁주는 영화 아닌가. 말이 덧붙기 시작하면, 소위 최애 영화가 상기된 것만으로 신이 나 떠들려던 것을 꿀꺽 삼킨다. 머쓱하게 웃고 마는 목구멍 아래엔 ‘그 영화 부제가 루저클럽이거든요. 아이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그것이란 존재가 빨간 풍선을 든 광대로 표현된 건데…….’ 어쩌고저쩌고. 채 뱉지 못한 문장이 가시처럼 걸리고 만다. 광대 공포증이 없단 이유로 그저 호기롭게 본 호러영화가 최애 영화가 된 이유는 간단하다. 다 보고 나니 더 없는 성장영화였던 탓이다. 저마다의 두려움과 상처를 가진 아이들은 서로 연대하며 피에로로 시각화된 그것을 결국 잠재운다는 결말. 별거 없이 쪼그라든 피에로를 보며 생각했다. 길고 집요한 괴롭힘 치곤 지나치게 시시한 엔딩이라고. 이 영화를 처음 봤을 즈음의 나는 생애 첫 이사를 한 직후였다. 태어나서 계속 살아온 집은 작은 골목의 주택이었는데 아빠가 돌아가시고 더 이상 그곳에서의 생활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진 탓이다. 엄마와 아빠의 손길이 몇십 년 동안 쌓인 집이 철거되고, 애지중지 가꾼 마당의 꽃나무가 뽑혀 나가는 걸 나는 이사 후에도 구태여 보러 갔었다. 내가 태어난 기념으로 심었다는 감나무가 뽑혀 나가는 순간에는 발인 후 처음 눈물이 터지기도 했다. 나에겐 그것이 마치 두 번째 장례식처럼 다가왔다. 영원할 것만 같던 세계의 끝을 문득 살아남아 지켜보는 기분. 그날 분명히 알았던 것 같다. 나의 빨간 풍선 든 피에로는 이별이구나. 그게 사람이든, 무엇이든, 내가 만들어 온 세계들과의 안녕. 그리고 죽는 순간까지 그것이 계속 나를 따라다닐 불멸의 피에로라는 것도. 생각해 보면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끝이 못 견디게 슬펐다. 불가항력의 이별들. 그 영화를 보기 전에도 말이다. 초등학교 한 학년을 마치고 담임 선생님을 보낼 때마다 목 놓아 울었고, 좋아하던 과자가 단종되면 다신 군것질 같은거 안 할 듯 서러워했다. 엄마조차 유난하다던 내게 뜻밖의 힌트를 준 건 동네의 겨우 한 살 많던 혜림 언니였다. 언니의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고, 언니는 4남매 중 막내였기에 고학년 혹은 고등학생의 오빠, 언니들이 하교하기 전까지 우리 집에 있곤 했다. 단종을 예고한 과자봉지를 울음보처럼 터뜨리곤 눈물 젖은 이별 먹부림을 하던 내게 언니가 그랬다. “엄마랑 아빠 돌아가실까 봐 무서운 거야?” 의아해하는 내 어린 눈에 불현듯 언니의 얼굴 위로 어른의 표정이 스쳤다. “너희 부모님은 할머니,
작성일 2025-11-26 댓글수 0상세보기 -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우수상-아동문학(동시)/제43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쓰레기의 재탄생 - 이복
[제43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 우수상-아동문학(동시)] 쓰레기의 재탄생 이복순 오늘도 보물을 주웠어 아주 쉬워 그 애만 졸졸 따라다니면 그 애가 흘리고 간 초콜릿 껍질 반짝반짝 빛이 나 문제집 사이에 쏙 그 애가 흘리고 간 지우개 가루 보슬보슬 따뜻해 휴지에 싸서 쏙 주울 수만 있다면 그 애 눈물방울 땀방울도 줍고 싶었어 그딴 쓰레기 뭐하게? 눈치 없는 짝이 물었어 감히! 쓰레기라니! 마음이 삐었나봐 그 순간 그 애가 성큼 성큼 다가오는 게 아니겠어? 심장이 쿵! 땀이 삐질! “내가 흘린 마음도 주웠어?” 오늘도 역시 보물을 주웠어
작성일 2025-11-26 댓글수 0상세보기 -
마로니에여성백일장 [공감상/제2회 마로니에온라인백일장] 심금[心琴] - 한남희[공감상/제2회 마로니에온라인백일장] 심금[心琴] 한남희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으니, 학원에 보내달라는 내 말에 엄마는 수돗가의 물바가지를 들어 내 머리통을 내리쳤다. 날마다 허구한 날 아버지에게 얻어맞고 사는 엄마였다. 눈두덩이에 시퍼런 멍이 가실 일은 없었다. 자식새끼들 때문에 못 죽고 산다는 말을 달고 사는 엄마였다. 너희 때문에 못 살겠다는 말은 시의 댓구 마냥 세트로 붙어 다녔다. 하필 쌀 씻느라 수돗가에서 분주하던 엄마에게 말을 꺼낸 내 잘못이 컸겠지. 기껏 참고 또 참다 꺼낸 말 한마디로 죄 없는 플라스틱 물바가지만 산산조각 내고 말았다. 주인집 할머니는 애들 머리 때리면 머리 나빠져서 공부 못한다고 말렸지만, 엄마는 가시나들이 공부 잘해서 뭐 하냐며 들은 체도 안 했다. 물바가지와 파리채 또는 연탄집게 등 손에 잡히는 걸로 엄마는 자식들을 때리고 겁주었다. 남편에게 받은 구박이 자식에게 전염되는 게 흔하던 시절이었다. 살아남는 게 최우선인 정글 같은 집에서 자란 아이는 음악학원을 거절당한 후 모든 욕망이 거세된 채 그림자 인간으로 자랐다. 중학교 졸업하고 바로 공장에 취직하였다. 공부 많이 해봐야 팔자만 세질 뿐이라는 강력한 신념을 가진 부모가 80년대에도 있었다는 걸 믿을 수 없는 사람도 많겠지만, 실제로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자주 때리고 욕하고 나가 죽어라 악을 써대긴 했지만, 때때로 좋은 엄마이기도 했다. 후에 검정고시를 봐서 고졸 학력을 취득했고, 엄마의 바람대로 스물세 살에 결혼했지만, 결혼을 위한 결혼은 3년을 넘기지 못했다. 공장을 떠돌고 식당에서 일하며 바닥을 훑으며 살다가 병을 얻는, 구제가 어려운 삶을 살았다. 욕받이로 살던 아이는 제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했고 그럴 만한 용기도 없었다. 일하지 못하고 생계가 어려워졌을 때 기초 생활 수급자가 되었다. 부끄러웠지만 국가가 나를 돌봐준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몸을 추스르며 쉬고 있을 때 구청 소식지에서 문화원 문화학교 홍보를 발견했다. 첼로 수업이 눈에 띄었다. 어린 시절 바이올린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가 두들겨 맞았던 날이 떠올랐다. 욕망이 거세된 줄 알았는데 첼로 수업이라는 문장에서 가슴이 뛰었다. 수급자는 50% 할인이라는 문구에 용기가 났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수업 날을 기다렸다. 개강일이 되었을 때 조금 떨렸고 가지 말까 하는 마음도 생겨났지만, 일단 부딪쳐 보기로 했다. 네 명의 수강생과 첼로를 옆에 세워둔 선생님을 만났다. 왜 첼로를 배우고 싶은지에 대해 선생님이 물었다.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었던 적이 있었는데 비슷한 악기인 첼로 수업이 생겼기에 왔다고 했다. 속사정을 내보이지 않았다. 구질구질하지 않은 척하는 게 나름의 내 특기다. 첼로 선생님은 콘트라베이스 같은 느낌의 사람이었다. 묵직한 몸집과 저음의 목소리로 첼로라는 악기에 대해 알려주었고 다음 시간부터 악기 수업을 시작하려면 악기를 대여해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첫 시간이니 선생님의 악기를 체험하는 시간을 가져
작성일 2024-10-30 댓글수 0상세보기 -
마로니에여성백일장 [공감상/제2회 마로니에온라인백일장] 그렇게 숨을 쉬면 된다. - 정희선[공감상/제2회 마로니에온라인백일장] 그렇게 숨을 쉬면 된다. 정희선 쏟아지는 햇살 탓이라 변명하면서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았다. 왜 갑자기 이렇게도 눈물이 나는지 당황스러웠다. 다행히 더운 날씨 탓에 주변은 조용했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는지. 멍하니 한참 바다를 바라보았다. 괜찮다며 울어도 된다고 토닥이듯 뒤척이는 바닷소리가 울음으로 급해진 내 호흡을 진정시켰다. “휘잇!” 길게 뿜어 나오는 한숨이 휘파람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제주의 세화 바다 앞에서 나는 울었다. 일상이 많이 힘들었지만, 꾸역꾸역 참고 버틴 시간이었다. 장애를 가진 아버지를 대신해서 가난한 친정을 책임져야 했던 장녀로, 28개월 차이의 두 아들을 키우는 엄마로, 20여 년을 쉬지 않고 달리던 직장인으로 그 모든 역할이 버거워 허덕이던 때였다. 더는 견딜 수 없다고 여겼고, 직장에 휴직을 던지고 홀로 제주로 떠난 시간이었다. 오롯이 나로만 서 있고 싶었다. 간절하게 그러고 싶었다. 그렇게 도망치듯 도착한 곳이 제주 구좌읍의 세화 바다였다. 그렇게 처음 만난 바다 앞에서 나는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거친 삶의 덩이들을 뭉텅뭉텅 토해냈다. 숨을 쉰다는 것이 이리 낯설다니. 갓 태어난 아기 마냥 찡하니 가슴을 타고 아픔이 전해졌다. 그 아픔을 달래듯 적당히 비린 바닷바람이 나를 훑고 지났다. 숨을 쉬라고, 그렇게 쉬면 된다고, 잘 견디었다고 잘했다고 나를 응원해 주는 것 같았다. 숨비소리! 제주 해녀들의 절박한 삶의 소리가 아이러니하게도 휘파람 소리를 닮았다고 하여, 흔히들 해녀들의 휘파람 소리라 전해지는 숨소리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에게 숨을 쉬라 토닥이던 그 바다가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길의 이름이 숨비소리 길이었다. 순간, 삶이라는 거친 바다에서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기만 하던, 그 탓에 똑바로 숨 한번 내쉬지 못한 내 삶이 스쳤다. 그렇게 나는 운명처럼 이끌려 제주 세화 바다 앞에 섰고, 울음으로 쏟아지는 나의 숨을 바다는 과하지 않게 토닥였다. 그렇게 나는 그 바닷길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가방을 뒤적여 노트북을 꺼냈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문서를 열어 나를 적어나갔다. 이미 그곳의 주인이던 갯강구들이 낯선 이방인의 발길에 화들짝 놀라 도망을 쳤다. 그들에게는 미안했지만, 그 공간에 같이 있고 싶었다. 이 바다 곁에 더 있고 싶었다. 갯강구처럼 웅크리고 바다 앞에 앉아, 바다의 결에 맞추어 숨을 쉬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내 옆으로 갯강구들이 천천히 돌아왔다. 나라는 인간은 별로 위험하지 않다고 여겼는지 내 발 앞까지 겁도 없이 다가오는 갯강구도 있었다. 어린 시절 징그럽다고 여기며 비명을 질렀던 그들이었는데, 그 순간은 신기하게도 같은 바다를 공유하는 동지처럼 반가웠다. 아니다. 그들이 먼저이니 내가 이 바다의 순서로는 후배가 아닐까? 바다의 청소부로 해롭지 않다고 알려졌지만, 징그러운 생김 탓에 바다 여기저기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하니. 저 갯강구들의 삶도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을 거라 여기
작성일 2024-10-30 댓글수 0상세보기 -
마로니에여성백일장 [공감상/제2회 마로니에온라인백일장] 첫사랑 - 장미교[공감상/제2회 마로니에온라인백일장] 첫사랑 장미교 캡모자를 거꾸로 쓰고 있는 너는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한여름의 더위에 불룩 솟아오른 두 광대뼈가 복숭아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하얀 피부에 붉게 물든 그 광대뼈를 손으로 꾹 눌러보고 싶은 욕구가 일었다. 나도 모르게 그 얼굴을 한참 쳐다보자 너는 민망한 듯 눈길을 돌리며 딴청을 피웠다. 촬영 중 쉬는 시간이어서 주위에는 왔다 갔다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나는 그 속에서 오로지 너의 얼굴만 보였다. 그 하얀 복숭아 속살 같은 너의 얼굴에서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촬영이 끝나고 며칠 후, 나는 너에게 만나자는 연락을 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너는 흔쾌히 그러자며 답을 해왔다. 너의 동네에서 만난 우리는 조용한 이자카야에 가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너는 훨씬 더 곱고, 다정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술잔에 술을 따라주고, 휴지로 내 입가를 닦아주는 너의 행동이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그래서였나 보다. 얼큰하게 취한 채 이자카야에서 나와 한강으로 걸어가면서 난 너의 손을 잡았다.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듯이 떨려서, 네가 손을 뿌리칠까 봐 입술까지 파르르 떨어가면서도 나는 장난스레 웃었다. 너는 나의 손을 꽉 쥐고 다른 손으로 이어폰을 꺼내 내 귀에 꽂아 주었다. 한강으로 가는 내내 우리는 말없이 두 손을 맞잡은 채 은은한 발라드에 더 취해갔다. 너를 향한 내 마음이 친구를 동경하는 마음인지, 사랑하는 마음인지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너를 만나기 전 많은 생각을 했었다. 여자를 좋아하는 여자도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내 주위에 그런 사람은 없었다. 나중에 지나고 생각해 보니 어쩌면 너무 틀에 갇혀 있던 내가 미처 눈치채지 못했을 확률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나에게는 처음이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고민 상담을 해보았을 때, 누군가 스킨십을 해보라는 말을 했었다. 그럼 너를 향한 나의 마음이 친구로의 감정인지, 사랑인지를 알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살짝 땀이 차오른 너와 나의 포개어진 손을 계속해서 의식하고 있었지만, 나는 아직도 나의 마음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심장에서는 계속해서 두근거리는 떨림이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나는 나의 마음을 확신할 수 없었다. 우리는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서 한강 둔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내가 맥주를 마시며 복잡한 마음을 잠재 우려 한강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자, 너는 내 앞에서 모래에다가 커다란 그림을 그렸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리곤 가끔 나를 돌아보며 티 없이 맑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날이 더워서 금방 지친 너는 내 옆으로 와서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가 나는 충동적으로 너의 입술에 내 입술을 가져다 댔다. 너는 잠시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천천히 내 입술을 너의 혀로 적셨다. 그때 너에게서는 달콤한 복숭아 향이 났다. 내가 좋아하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복숭아 향에 젖어 나는 눈을 꾹 감고 너의 리드에 나를 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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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니에여성백일장 [공감상/제2회 마로니에온라인백일장] 방문을 열면 계절이 - 방민의[공감상/제2회 마로니에온라인백일장] 방문을 열면 계절이 방민의 이번 여름은 억셌다. 외출하는 순간마다 오늘도 많이 더워서 쉽게 지쳐버릴 거라고 생각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현관문을 열면 사방에서 눅눅한 빛이 쏟아질 것 같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대단한 걸 하지 않아도 마음이 쉽게 물러버렸다. 작년 여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나는 에어컨 바람을 맞다가 머리가 아파지면 방에서 나왔다. 아무도 없는 거실은 한여름이었다. 나는 집에서 창고로 쓰이는 작은 방에 들어갔다. 똑같이 더웠지만 햇빛이 들지 않아 바닥이 조금 서늘했다. 이곳엔 오랫동안 읽지 않은 책들이 높게 쌓여 있다. 그 책을 보면 십 년이 더 지났음에도 나는 금방 유년 때로 돌아갔다. 몸을 웅크리고 누웠다. 그때의 여름은 딱 이 정도였던 것 같은데, 하는 생각들. 마른 햇빛과 이따금 불어오던 바람. 모래 속으로 손을 집어넣으면 축축하고 시원했다. 나는 노곤해졌다. 적어도 이곳에서 드는 잠은 안전할 거라는 확신이 있다. 여긴 그녀가 남긴 것들의 전부가 있으니까. 일곱 살 무렵에 나는 원래 살고 있던 아파트에서 돌연 논두렁과 매운탕 가게가 있는 곳으로 이사를 갔다. 새로 살게 된 집 바로 옆에는 미군 부대가 있었는데 부대 입구를 지키고 있던 두 남자의 표정은 이 시골의 무료함만큼이나 느슨하고 우울했다. 아버지는 줄곧 그 군인들과 인사를 나눴다. 갈수록 집에는 비상식량이 늘어났고 나는 그 텁텁하고 자극적인, 어설프게 가공되어 조미료 맛만 남아버린 미트볼이나 라면 밥으로 지루함을 달랬다.어떤 것도 내 호기심과 흥미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집과 부모의 일터에는 경계가 없었다. 정확히는 부모의 일터에 집이라는 공간이 끼어든 셈이었다.총 네 개의 컨테이너가 직사각형의 꼭짓점처럼 위치했고 이를 둘러싼 더 커다란 직사각형 전체가 고물상이었다. 가설 펜스가 고물상과 삭막한 논밭의 경계를 지켰다. 펜스 바깥으로는 ‘미래 비철’이라고 쓰인 파란색 간판이 붙어 있었고, 그건 아주 멀리서부터 생경하게 눈에 띄었다. 집이 왜 이 모양이지, 하다가도 높고 두꺼운 가벽을 보다 보면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아버지가 작업하는 공간은 오빠와 내가 방으로 쓰는 컨테이너 옆이었다. 여름이면 그곳에서 습한 공기로 인해 철근의 부패한 냄새와 알루미늄 캔 속에 말라붙은 끈적한 설탕 냄새가 뒤섞여 났다. 아버지는 가만히 앉은 채 용접을 했다. 나는 보안면을 쓴 그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봤다. 섬세하게 움직이는 손짓을 따라 했다. 용접이 끝난 뒤 아버지는 충혈된 눈을 지그시 감았다. 나는 그때마다 쪼르르 달려가 이것저것 캐물었다. 알면서도 매번 물었다. 불꽃이 타닥거리며 날아오르는 움직임이나 바닥에서 가볍게 구르는 신비한 현상이, 이를테면 한낮의 불꽃놀이가 꽤 흥미로웠다. 나는 아버지의 설명을 다 알아듣지 못했지만 떨어져 있던 걸 다시 이어 붙이는 게 어렵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었다. 조악하게 이어진 철근들은 아버지의 발밑에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어머니는 대부분의 시간을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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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니에여성백일장 [공감상/제2회 마로니에온라인백일장] 바다 속으로 사라진 어른의 시작 - 김민아[공감상/제2회 마로니에온라인백일장] 바다 속으로 사라진 어른의 시작 김민아 스무 살이 되던 날, 나의 네모났던 세상이 변했다. 세상은 스무 살을 어른의 시작이라 말했지만,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한 채 스무 살이 되었다. ‘어른이 되는 것’이라는 막연한 설렘과 두려움 속에서 나는 여전히 미완성된 존재였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건은 스무 살의 내가 어른이 되는 과정을 뒤흔들었다. 그날 나는 친구들과 함께 벚꽃이 보이는 대학교 강의실에 앉아 있었다. 오후 강의가 시작되기 전, 휴대폰에 울린 알림은 단순한 뉴스 속보처럼 보였다.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또 하나의 사고일 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생존자 수색 소식으로 꺼지지 않는 뉴스와 그날의 사건은 스무 살의 시작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나와 같은 또래의 청소년들이 배에 있었다. 그들도 나처럼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날 이후가 그들의 ‘어른이 되는 날’이 될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바다속으로 가라앉았다. 영영 어른이 되지 못한 채. 스무 살의 나는 그들을 안타까움과 먹먹함으로 떠나보내며, 어른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책임을 의미하는지 처음으로 느꼈다. 매일 버스를 타고 학교로 향하는 나날이 고통스러웠고, 강의실은 교수님과 동기들의 웃음 대신 슬픔으로 가득 찼다. 기말고사에는 이 사건을 규명하는 문제가 출제되기도 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어른이 된다는 것이 단지 나이를 먹는 것 이상의 깊은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월호 사건은 내가 처음으로 마주한 상실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성장’이라는 것이 단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 배에 타고 있던 학생들의 미완성된 삶을 목격하며, 어른이 되는 것이 얼마나 불확실하고 예측 불가능한 과정인지 알게 되었다. 우리네 삶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때로는 아무런 예고 없이 비극이 찾아와 모든 것을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스무 살의 벚꽃이 피기 시작하는 봄날에 배웠다. 나는 어른이 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감했다. 나를 둘러싸고 있던 반경 1km의 익숙한 세상은 더 이상 나의 전부가 아니었다. 점차 경계가 무너지고 넓어지면서 전에 없던 불안감이 찾아왔다. 익숙했던 것들이 멀어지고, 새로운 환경이 낯설게 다가왔다. 낯선 거리와 낯선 사람들. 내가 어디에 속하는지 알 수 없는 혼란 속에서 헤매는 날들이 이어졌다. 새로운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마음을 열기 쉽지 않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적응하는 일은 생각보다 버거웠다. 무엇보다도 어른이 되어 처음으로 마주한 상실감은 가슴을 억누르는 고통으로 다가왔다.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익숙했던 것들을 잃어가는 과정은 마치 나를 둘러싼 세계가 천천히 무너져 내리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나는 이러한 혼돈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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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니에여성백일장 [대상/제2회 마로니에온라인백일장] 엄마의 곱사등이 - 이재숙[대상/제2회 마로니에온라인백일장] 엄마의 곱사등이 이재숙 파릇파릇하고 통통한 배추가 소금물에 절여지며 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이렇듯 김장철이 되면 배추처럼 절여져 짠 내가 날 것 같은 엄마가 그리워진다. 엄마는 풋풋한 열아홉에 동갑내기 남편을 만나 강원도 정선 아우라지에 가난한 집 외며느리로 시집을 왔다. 그렇게 노란 배춧속같이 달짝지근하게 스무 해를 살다 서른아홉에 남편을 잃고 쪼개어진 반쪽 배추가 되었다. 치매 걸린 시할머니와 한량인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그리고 열세 살 나부터 한 달도 안 된 막내까지 오 남매가 오롯이 엄마의 몫으로 남겨졌다. 엄마는 일 년을 울고 나더니 어린 두 여동생을 할머니에게 맡기고 보따리 행상을 시작으로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동구 밖도 나가본 일이 없던 엄마였지만 우리와 살아내기 위해 서울 평화시장에서 옷과 양말 등을 사 와 머리에 이고 행상을 했다. 경험 없는 장사이다 보니 만만한 친정 동네부터 찾아갔다. 그때는 대부분 현금 대신 곡식으로 값을 냈다. 지금처럼 차가 많아 교통이 좋은 게 아니다 보니 그 곡식을 다시 이고, 먼 거리를 걷고 또 걸어 하루 이틀 만에 돌아오곤 했다. 없는 집 맏딸인 나는 방학 때면 엄마를 따라가 받은 곡식을 이고 와야만 했다. 엄마 심정을 모르진 않지만 발은 아프고 갈 길은 멀어 어린 마음에 짜증이 나고 입이 한 발쯤 나온 그런 내 모습에 엄마 마음은 얼마나 속상했을까. 배추의 겉잎처럼 생활에 치이던 엄마는 몇 년 후 우리를 공부시키겠다고 학교 다니는 삼 남매만 데리고 강릉의 단칸방으로 이사를 하고 시장 노점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엄마는 박힌 돌처럼 한자리에서 수십 년을 감자와 메밀 부침개를 몸에 냄새가 배도록 뒤집었다. 엄마의 손맛으로 단골손님도 늘어나고, 잔칫상에는 메밀전이 있어야 하는 영동지방의 풍습 덕에 장사가 잘되었다. 그렇게 우리 식구를 위해 하루를 부쳐내는 엄마의 삶이었다. 갈라진 가슴에 한 바가지 쓰라린 소금이 더 뿌려졌던 건 농사짓는 할머니에게 맡겨져 엄마의 온기 없이 들꽃처럼 자라는 두 여동생이었다. 엄마를 보고 싶은 어린 두 딸의 목마름과 그 자식을 향한 젊은 엄마의 안타까운 서러움은 젖은 갈잎처럼 가슴에 붙어 켜켜이 쌓여 피딱지로 앉았을 것이다. 막내가 초등학교 입학 때까지, 그 위 넷째는 중학교 졸업 때까지 엄마와 떨어져 살면서 암으로 투병하는 할머니의 대소변을 사발로 받아내며 학교에 다녔다. 그러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넷째와 할아버지까지 강릉으로 와 비로소 가족이 모여 살게 되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져 누워계시니 고달픔은 배가 되었다. 엄마가 장사하는 낮에는 누구든지 닥치는 대로 할아버지의 대소변을 치웠다. 그리고 밤에는 오롯이 엄마 당신의 고단한 몫이었다. 그나마 할아버지가 일 년 만에 돌아가셔서 우리 가족의 무거운 짐 하나를 덜 수 있었다. 온종일 장사하고 절인 배추의 몸으로 돌아오면서도 엄마는 일거리를 들고 왔다. 그 밤에 우리는 공부하다가도 도라지 껍질 벗기기, 미역 줄거리 잘게
작성일 2024-10-30 댓글수 0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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