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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된다는 것

  • 작성일 2022-09-23
  • 조회수 1,182

[제39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 산문 부문 장원 ?]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 40주년을 기념하여 5개년(2018~2022년)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 장원·우수상 수상작품이 게재됩니다.

 

 

할머니가 된다는 것

 

 

김복자

 

 

 

 

   며느리가 세쌍둥이를 낳았다.아들이 결혼하고 3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둘이 잘살면 된다고,손주는 생각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셋이나 생겨버렸다.병원에서는 며느리의 건강을 생각해 가장 약한 아이 하나는 포기하자고 권유했다고 한다.아들은 그러자 했지만,며느리가 그럴 수 없다고 완강히 거부했단다. 분만실에 들어간 며느리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친정어머니가 더 마음 졸이겠거니 싶어 티를 낼 수도 없었다.너무나도 작게 태어난 아이들은 며칠간 엄마 품이 아닌 인큐베이터 신세를 졌다.
   몸도 못 추스른 며느리가 어떻게 아이를,그것도 셋을 돌볼 수 있을까. 아들은 직업 특성상 쉬는 날에도 부르면 달려 나가야만 했다.며느리의 친정어머니는 전업주부인 나와 달리 직업이 있는 여성이었다.내가 짐을 싸서 아들네로 간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지방으로 내려가 아들네에서 살며 며느리를 도왔다.시집살이를 호되게 겪었던지라 나는 그러지 않겠다 다짐했다.요즘 사람들은 '시'자 붙은 것은 다 싫어한다던데,당연히 불편할 내 존재가 며느리에게 덜 거슬렸으면 했다.
   아기들은 위가 작아서 한 번에 많은 양을 먹지 못한다는 것,생활 리듬이 어른들과 아주 다르다는 것,출산 후 몇 년간은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을 거라는 것.생명의 잉태와 출산은 신비롭고 아름다운 것이라고만 하지,이런 것들은 그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며느리도 갑자기 겪게 된 숱한 변화에 혼란스러워했다.자기 몸에 일어나는 변화만으로도 벅차 보였다.
   그중 유독 작게 태어난 아이가 자꾸만 며느리를 힘들게 했다.너무나 예민해 혼자서만 기저귀 발진을 일으켰고, 며느리 품에만 안기면 울어댔다.자연스럽게 그 아이는 내가 전담으로 돌보게 됐다.사람들은 모성이라는 것이 아이만 낳으면 당연히 생기는 줄 알지만,그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내 몸이 너무 힘든 순간에는 나를 더 힘들게 하는 아이가 미워질 수도 있다.흔히 말하는 '독박육아'를 하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며느리는 신화에 불과한 모성 때문에 많이 힘들어 했다.시어머니 앞이라,그것도 결혼을 반대했던 시어머니 앞이라 더욱 힘에 겨워했다.
   언제까지나 아들네에 머물 수는 없었다.혼자 잘 지내고 있다고는 하지만 남편도 걱정이 됐고,전업주부라 해도 내 삶은 우리 집에 있기에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집에 가겠다고 하자 아들과 며느리가 혼비백산이 되었다. 고민하다 결국 가장 예민한 아이,가장 작게 태어난 아이를 내가 데리고 가 키워주겠다고 했다.그 순간은 그것이 최선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새근새근 잠든 아이를 품에 안고 먼 길을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처음엔 반대했던 남편도 검지를 꼭 쥐고 잠든 손주를 보자 마음이 풀어진 것 같았다.그렇게,본격 황혼 육아가 시작되었다.내 아이 기르는 것과 손주를 기르는 것은 확연히 달랐다. 매일 검색해가며 아기에게 좋다는 이유식을 만들어 먹였고,발달에 좋은 교육을 한다는 문화센터에 등록해 꼬박꼬박 출석했다.혹시나 할머니라는 이유로 정보가 느릴까 봐,제때 좋은 것을 해주지 못할까 봐,할머니가 키워서 그렇다는 말을 들을까 봐 내 아이 키울 때보다 더 열심히 육아에 임했다.
   다행히 아이는 네 살에 구구단을 외울 정도로 영특했다.아이는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을 반박이라도 하듯 매일 최선을 다하여 나를 사랑했다.아들,딸 키워 보내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내 품을 파고들었고,매일 작은 손으로 내 팔을 쓰다듬으며 잠들었다.그런 사랑둥이 손주를 키우는 것은 힘들지 않았다.언제 엄마,아빠 집으로 돌아가냐,그렇게 따로 떨어져 살아도 되냐.이러쿵저러쿵 입만 대면 그만인 사람들의 말들이 힘들었다.언젠가는 할머니 품을 떠나 엄마에게로 가야 한다는 것.그것이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은연중에 숙제로,짐으로,상처로 남았다.
   아이는 당연히 몇 번 못 본 엄마보다 매일 살 비비는 할머니를 더 좋아했다.명절 때나 그것도 아들이 당직이 아닐 때나 잠깐 보는 며느리는 그 예민한 아이를 싫어하는 듯했다.다가오는 아이를 밀쳐냈고 “쟤는 아빠를 너무 닮아서 싫다,애가 너무 약은 것 같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아이도 자꾸만 거부당하자 체념한 듯 보였다.집안 어른들이 내 며느리를 두고 수군댔고,나는 그것을 막지 못했다.며느리에게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다.며느리는 울면서 대답했다.산후 우울증이 너무 심하다고,자신의 삶이 망가진 게 다 저 예민한 아이 때문인 것 같다고.며느리도 안타까웠지만,이유도 모를 미움을 저 작은 몸으로 감당해내야 할 아이가 안쓰러웠다.치료를 권유했지만,며느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시간을 멈출 방법은 없었고 아이는 계속 자라났다.몇 번이나 아이를 아들네로 보내야 한다고 머리는 이해하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그렇지 못 했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혼자 조금씩 준비를 했다.아이가 내년에 입을 여름옷을 세탁하는 내내 숨죽여 울었다.그 와중에도 사정도 모르면서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시선과 싸웠다.그들은 매일 눈물로 지내는 내가 조금도 이해되지 않았으리라.
   결국 그날이 왔다.아들이 차를 가지고 와 아이와 아이 옷장을 실어 갔다. 눈물을 멈추지 못할 것 같아 겁에 질린 아이를 제대로 안아주지도 못했다. 갑자기,아이가 떠났다.나중에 아들과 연락한 딸에게 들으니 차 뒷자리에서 아이가 소리도 못 내고 눈물만 뚝뚝 흘리며 흐느꼈단다.이럴 줄도 모르고 데려와서,이럴 줄도 모르고 그 작은 아이가 주는 사랑을 다 받아서,할머니가 미안해,할머니가 너무 미안해.
   아이를 내가 데리고 키우는 동안에도 아이와 영상통화 한 번 해주지 않던 아들과 며느리는 아이를 데리고 간 순간부터 무 자르듯 아이와 내 사이를 잘라냈다.아이가 적응할 기간 동안 아들네에서 지내려고 했던 내 계획은 아들내외의 반대로 무산되었다.며느리가 이 문제로 상담을 좀 받아봤는데 전문가가 한 번에 잘라내야 한다고 했단다. 그 전문가가 누군지,정말로 그러는 게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야속할 수가 없었다.
   아이를 보내는 날,딸이 조카의 빈자리를 채워주겠다며 서울에서 내려왔다. 내가 너무 힘들어하자 딸이 자기 새언니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며느리가 아닌 아들이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았고, 밥을 먹고 있는 아이 얼굴을 보여주었다.아이는 날 제대로 쳐다보지 않았다. 울음을 삼키고 묵묵히 밥만 입에 떠넣는 아이에게 잘 지내라는 말 외에는 해줄 수가 없었다.자꾸만 울컥 눈물이 차올라서 시선을 하늘에 두었다.우는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될 것 같아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그날 이후로 아들은 전화를 끊으면 아이가 운다고 통화를 허락하지 않았다.
   아이에게 못 해준 기억만 났다.먹고 싶다던 치킨 한 번 더 사줄걸.이 장난감도 같이 들려 보낼걸.그렇게 가고 싶다던 캠핑 데려갈 걸.보고 싶다던 어린이 방송 더 보여줄걸.내가 데려와 키우지 말걸.모든 후회는 그곳으로 향했다.내 마음이 이런데 그 어린 것 마음은 어떨지 상상도 안 됐다.새로 들어간 유치원에서 찍어 보내오는 사진 속 아이는 언제나 시무룩했다.내 옆에선 내 세상까지 환해지는 웃음을 짓던 아이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입만 웃고 있어서,내 마음은 매일 무너져 내렸다.
   아직 적응을 못 한 아이는 유치원에 가면 누워만 있다고 했다.자꾸만 친구들과 싸운다고 했다.아들은 할머니가 아이를 너무 오냐오냐 키워서 그렇다고 했다.그래,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다. 이렇게 받아들이고 꼭꼭 씹어 삼키면 이 모든 것에 적응이 될까.시간에 기대어봐도 될까.할머니가 된다는 것.예쁜 손주가 셋이나 생긴다는 것.이 기쁜 일을 맞고도 감당해야 할 슬픔이 이렇게나 크다는 점에서,이렇게 숱한 날을 살아내고서도 처음 겪는 감정이 있다는 점에서 인생 참 고달프고도 재미있다는 얄궂은 생각이 든다.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아이가 겨울을 지나 새봄을 맞으면서 눈 녹듯 할머니를 향한 그리움을 닦아내고 두 발로 꼿꼿하게 서기를 바랄 뿐이다.나에게 내어준 사랑보다 더 큰 사랑으로 자신의 엄마를 안아낼 수 있길 바랄 뿐이다.

 

 

 

 

 

 

 

 

 

 

   《마로니에여성백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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