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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가방

  • 작성일 2022-10-04
  • 조회수 941

[제37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 산문 부문 우수 ?]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 40주년을 기념하여 5개년(2018~2022년)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 장원·우수상 수상작품이 게재됩니다.

 

 

노란 가방

 

 

황은아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색으로 표현한다면 노란빛이 아닐까?
   처음 입학할 때의 노란 옷, 노란 가방. 유난히 은행나무가 많아 가을이 되면 온통 노란빛으로 물든 시골 초등 학교가 있었다.
   나의 첫 발령지이기도 한 이 곳은 전교생이 70명이 되지 않는 아주 작은 학교였다.
   이 곳엔 부모의 이혼이나 맞벌이로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맡겨진 아이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 건강상의 이유로 친척집에 맡겨진 아이들등 조금은 부족한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은행 나무가 노란 옷으로 갈아입을 때즘 얼굴이 동그랗고 이마가 넓으며 큰 눈에 미간 사이가 넓은 조금은 부족한 장애를 지닌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었던 나의 예쁜 제자 미혜가 생각이 난다.
   은행 나무 색깔을 닮은 병아리 책가방을 메고 목에는 가재 손수건을 두른 1학년 여자 친구 미혜.
   미폐는 수업 시간 늘 자신의 이름을 쓰는 연습을 했다. 조용했지만 살짝 미소 짓는 얼굴이 예쁜 아이였다.
   어느 날 짝꿍이 큰 소리로 불렀다.
   “선생님 미혜 가방에서 콩이 떨어져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가방에서 노란 작은 알갱이들이 또르르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미혜 가방을 보니 노란 메주콩이 잔뜩 들어 있었다.
   그 날 난 미혜네 집으로 전화하니 고모라는 분이 받았다. 미혜가 콩을 가져 왔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미혜는 그 다음날 콩으로 만든 손두부를 3모 가져왔다.
   다행히 봉투 안에 넣어 있어 미혜의 가방이 젖지는 않았다. 그 날도 전화를 했고 고모는 다시는 안 가져 가도록 당부한다고 했다.
   어느 날 부터인가 가끔 한 가지 물건을 잔뜩 가져 오는 미혜의 가방 속이 궁금해졌다.
   미혜는 어느 날에는 언니의 필통과 연필을 잔뜩 넣어 가지고 왔다. 그리고 며칠 후에는 가방이 제법 무거워 뭔가 하고 보니 백원, 오백원짜리 동전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미혜야, 이런 것은 들고 오면 안되요. 고모가 힘들게 번 돈이니 소중하고 잃어버리면 안되거든요. 우리 미혜는 이걸 왜 가져 왔어요?”
   “가지고 싶어서요.”
   “가지고 싶더라도 네 것이 아니면 가지고 오면 안된단다.”
   미혜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혜는 가끔 친구의 필통도 자신의 가방 속에 넣은 적이 있었다. 이 일로 짝꿍은 굉장히 속상해 했었다.
   어느 날 교실에 5000원 도난 사건이 있었다. 친구들은 모두 고의는 아닐지라도 무언갈 가방에 많이 넣는 미혜의 짓일 거라며 몇몇 여자 친구들이 미혜의 책상 앞에 모여 미혜를 추궁했다.
   “미혜야, 네가 가져 갔지? 내 돈 돌려줘.”
   미혜는 무심한 듯 대다도 안하고 책상에 엎드렸다. 순간 그 친구는 미혜의 가방을 들어 지퍼를 열고 안에 것이 잘 보이지 않자 거꾸로 뒤집어 쏟았다. 가방에서 검은 봉투가 쏟아지며 네모난 두부가 바닥에 떨어져 여기저기 흩어졌다.
   “얼른 내 돈 줘! 오늘 그 돈으로 엄마 생신 선물 사야한단 말이야.”
   미혜의 하얗게 갈라진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싫어! 싫어!”
   미혜는 두부를 가방에 담으며 많이 울었다. 나도 같이 흩어진 두부를 담으며 친구를 의심하면 안된다고 다독였던 기억이 난다.
   그 날의 도난 사건은 다른 친구의 고백으로 밝혀지고 오해한 친구는 미혜에게 사과를 했다. 미혜는 다시 조용한 아이로 돌아 왓고 여전히 가방에는 집에서 가져 온 무언가가 매일 한 가득이었다.
   “선생님, 미혜 수업 시간에 과자 먹어요.”
   가방을 보니 이 번엔 쌀과자가 한 가득이었다. 나는 미혜 고모에게 전화를 하고 이 과자는 친구들과 나눠 먹었다.
   “미혜야, 이 과자 친구들과 나눠 먹을까? 네가 가방에서 한 개씩 나눠 주렴.”
   미혜는 가방에서 꺼낸 쌀과자를 친구들에게 나눠 주었고 친구들은 쌀과자를 먹으며 행복해 했다. 그 후로 미혜는 가방에 먹을 것을 가져 와 친구들에게 나눠 주었고 친구들도 집에 있는 밤이나 고구마 이런 것들을 삶아와 친구들에게 나눠 주었다.
   미혜에게 가방은 가지고 싶은 것을 담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가방 문을 열어 베푸는 가방이 되었다.
   20년 전의 작은 사건은 인생에서 나에게 많은 의미를 주었다. 나이가 먹을수록 철이 들고 넉넉해져야 하는데 점점 인색해지고 가방 문을 닫는 나를 보며 오늘은 전철에서 나와 계단을 오르며 가방 문을 열었다. 그리고 5000원 짜리 치폐를 힘들어 하는 할머니 바구니에 넣었다. 분명 열어서 돈이 나갔는데 나의 마음은 무엇인가 더 채워진 것 같다.
   잃을까봐 들킬까봐 꽉꽉 닫았던 가방의 문을 조금만 연다면 아마도 마음의 가방은 더 무거워질 것이다. 벅차고 꽈차오르는 마음으로 삶이 더 윤택해질 것이다. 난 이것을 미혜의 마음, 미혜의 순수한 노란 가방을 통해 배운다.

 

 

 

 

 

 

 

 

 

 

   《마로니에여성백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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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2-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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