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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숨바꼭질

  • 작성일 2022-10-21
  • 조회수 1,542

[제40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 산문 부문 우수 ?]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 40주년을 기념하여 5개년(2018~2022년)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 장원·우수상 수상작품이 게재됩니다.

 

 

늦은 숨바꼭질

 

 

김복애

 

 

 

 


   계절때문은 아니지만 요즘 책을 많이 읽고 있다. 근무지 근처에서 휴게시간 30분을 알차게 보내는 방법을 찾았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계속 갖다 맞춰도 짧았던 이 시간은 근처 작은 도서관에서 책 3권을 빌리기에는 충분했다.
   도서관에 꽂힌 책들을 눈으로 훑다 문득 들어온 책 한 권이 있었다. <서울 골목길 비밀정원>. 나도 모르게 스르륵 꺼내 넘겨 보았다. 서울에서 살아내며 한 평의 땅에, 그것도 안 되며 화분으로라도 정원을 만들고야 말았던 정원쟁이들의 이야기와 사진을 담은 책이다.
   책장을 넘기던 내 손이 딱 멈춰 섰다 남산이 기둥처럼 등대처럼 우뚝 선 모습으로 보이던 나의 옛집을 작가는 언제쯤 다녀간 것일까? 사진 속 나의 동네는 내게 인사하는 것 같았다. 잘 지냈느냐고, 어찌 살아가느냐고 묻고 있었다.
   시골에서 상경한 부모님은 무수히 많은 집들을 옮겨 다니다 서계동에 정착하셨다. 당시 서울집들이 보통 그랬듯이 거미줄처럼 난 길을 따라 지렁이처럼 구불거리는 골목길이 실핏줄처럼 도시에 번져갔다. 그 길따라 올망졸망한 집들 중에 나의 집도 있었다.
   골목은 늘 아이들로 넘쳐났다. 아이들은 낮에도 밤에도 골목길을 우르르 몰려다녔다. 그대로 시골 아이로 자랐으면 꽃을 베러 들을 누볐을 시간을 비슷한 사연들로 모인 아이들과 뛰어다니며 보냈다. 그 시간들을 스릴과 모험으로 보낼 수 있었던 것이 숨바꼭질이었다.
   사람만 모이면 시작할 수 있는 숨바꼭질은 아주 공평한 놀이였다. 힘도 기술도 필요 없었다. 공기나 고무줄을 못하는 내겐 고마운 놀이였다. 숨바꼭질의 시작은 가위바위보였다. 가위바위보를 못하는 나는 영락 없이 술래다. 술래가 되는 순간 나는 빠르게 나라면 어디에 숨을까 생각하고 골목마다 콕콕 박혀 숨어 있는 아이들을 쏙쏙 찾아냈다. 아이들은 내가 술래가 되면 전봇대로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와하고 골목으로 달려갔다.
   그날도 그랬다. 숨바꼭질 하겠다고 따라나온 2살, 5살 터울 두 동생을 챙기면서도 등줄기에 땀이 나도록 숨은 친구들을 찾고 또 찾았다.
   술래가 바뀌는 사이 딸이 떠오르고 내가 술래가 되었다. 경자, 정숙이, 희경이는 이미 찾았고 내 동생 봉순이도 찾았는데 막내동생인 정희가 보이지 않았다
   다음 술래인 정숙이가 전봇대 앞에 서 있는데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도 보이지 않는다. 친구들도 다급한 나의 목소리에 함께 온 동네를 뒤져도 정희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엄마가 동생 잘 보라고 신신당부하셨는데 등줄기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검게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를 울며 뛰어다녔다. 입에 소금이 고인 듯 짜고 썼다. 도저히 내 힘으로 찾을 수 없을 것 같아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눈물범벅이 된 나를 보며 엄마가 문을 열어 주셨다. 엄마 얼굴을 보자 눈물이 왈칵 솟았다
   “엄마, 엄마, 정희가 없어졌어.”
   엄마가 고개를 돌려 집안에 대고 소리치셨다.
   “정희, 너 언니에게 얘기 안 하고 온 거야?”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동생을 찾아 다행인데도 애태웠던 시간이 서러워 눈물이 그치질 않았다. 엄마가 등을 토닥이며 안아주셨다.
   엉거주춤 남의 집 문 앞에 서 있던 다섯 살 정희의 귓가에 지나던 엄마의 목소리는 얼마나 반가웠을까. 배도 고프고 날도 저물어가는데 말이다. 알면서도 그저 좋아 저 찾을 언니는 나 몰라라 하고 엄마를 따라 집에 간 동생이 며칠 눈을 흘기는 것으로 나의 미움은 끝이 났다. 정말 동생을 잃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잠깐이지만 알았기 때문이다.
   그때 찾았던 내 동생, 정희를 50여년이 지난 지금 나는 다시 찾고 있다. 꼭꼭 숨어버린 정희를 어찌 찾아야 하는지. 방법조차 모른 채 언제 끝날지 모를 이 숨바꼭질을 오늘도 이어가고 있다.
   어느 날 엄마가 정희네 집에 들어가시겠다고 선언을 하시면서 숨바꼭질은 시작되었다. 조카도 봐주시고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로 휴직까지 했던 정희를 돌봐주시겠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문제는 정희가 네 식구 생활비를 거의 주지 않으면서 엄마는 자꾸 신용대출을 받으셨다는 것이다. 우연히 알게 된 이 사실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던 나는 하루 동행을 불러 잘 타이를 생각이었다.
   내 얘기에 정희는 붉어진 얼굴로 강냉이 튀겨내듯 한 알 한 알 분노를 내게 던져댔다.
   오빠 일 봐준다고 자기 아이를 몰라라 한 일, 파산한 오빠 때문에 아버지 재산을 날린 일, 오빠 대신 집안일을 떠맡은 일들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내 주위로 튀어 올랐다. 점점 커진 덩어리들은 어느 순간 내 가슴에 와서 박혔다.
   그날 이후로 나는 정희를 본 일이 없다. 그 사이 정희는 이사를 갔고 우리 가족 모두 주소를 모른다. 우리 가족의 전화도 모두 받지 않는다. 오직 정희의 연락만이 이 숨바꼭질을 마칠 수 있다.
   정희에게 형벌같은 이 가족 안에서 가족이라는 숨바꼭질에서 길을 잃은 정희가 이제 그만 돌아 와줬으면 좋겠다. 지나가는 엄마의 목소리에 달려가 집으로 돌아온 것처럼 엄마가 기다려주는 이시간 안에 돌아 와줬으면 좋겠다.
   어제 든 잠이 깨듯, 아침에 인사하고 나선 발걸음처럼 가볍게 노을 든 저녁 문을 열고 어서 돌아오렴. 못찾겠다 꾀꼬리. 나의 동생아.

 

 

 

 

 

 

 

 

 

 

   《마로니에여성백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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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2-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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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2-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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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2-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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