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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호 오규원과 명동

  • 작성일 2017-03-01
  • 조회수 2,433

기획의 말

2017년 커버스토리는 <그곳>입니다. 문학 작품에 대한 감상을 이미지로 다시 되새기는 작업 속에서 폭넓은 독자층과 소통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오규원과 명동

윤성희

2017-03

겁없이, 턱없이, 길없이,
사람들이 들어간다

1
학교가 그리워지는 날이 있다. 명동역 3번 출구로 나와, 둘둘치킨을 지나치고, 명동 주민센터와 퍼시픽호텔 사잇길로 들어가 걷다가, 발모아족발집에서 풍겨 오는 냄새를 맡고, 꼴찌라는 술집의 아주머니가 가게 준비를 하는 것을 구경하고, 숭의서점 앞을 지나면서 주머니에 시집 한 권 살 돈이 있는지를 가늠해 보다가, 봄이 되면 라일락향이 진동하는 건물 앞에 서면, 그 학교가 나온다. 내가 그리운 학교는 드라마센터 건물이 있는 학교 본관도 아니고 지금 안산에 있는 그 학교도 아니다. 작고 낡은 4층짜리 건물. 서울예대 하면 나는 건물 맨 위층에 오규원 선생님의 방이 있던 그 건물이 생각난다. 오규원 선생님 방이 4층에 있어서인지 시 수업은 주로 그 건물 3층 강의실에서 이루어졌다. 봄이면 옆 건물에서 라일락향이 강의실로 건너왔다. 강의실은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침을 삼키는 일조차도 조심스러웠다. 수업을 듣기 전이면 하도 긴장을 해서 배가 사르르 아파 올 지경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수업이 끝나면 어서 다음 주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합평 시간에 선생님이 “밑줄을 그어 보자.” 하고 말하면 우리들은 모두들 말없이 펜을 들었다. 보온병에서 따뜻한 물을 한 잔 따라 마신 후 선생님은 천천히 몇 개의 단어와 몇 개의 문장을 읽었다. “그것만 빼고 다 지워라."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며칠 끙끙대며 쓴 시들이 한순간 사라지는 순간. 하지만 선생님이 밑줄을 그어 준 문장들만을 읽어 보면 이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상투적이고 관습적인 언어들이 내가 쓴 시에 가득했구나! 선생님은 엄격하셨다. 그 엄격함은 언어의 엄격함, 논리의 엄격함이었다. 나는 시인도 아니고, 시도 잘 모르지만, 그래도 학교가 그리워지는 날이면 가끔 '현대시작법'이라는 책을 펼쳐 본다. 그 책을 펼쳐 보면 나도 모르게 허리가 반듯해진다.

2
선생님의 명동 연작시를 읽는다. 눈으로 한 번 읽고 소리 내어 한 번 읽고, 그리고 노트를 펼쳐 시를 적어 본다. 그러다 보니 이 시를 생전 처음 읽어 보는 사람이 된 기분이 든다. 낯설다. 선생님은 명동이라는 제목으로 다섯 편의 시를 쓰셨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명동 하면 명동 연작시보다 <간판이 많은 길은 수상하다>라는 시와 <프란츠 카프카>라는 시가 더 생각난다. <프란츠 카프카>는 "시를 공부하겠다는 / 미친 제자와 앉아 / 커피를 마신다 / 제일 값싼 / 프란츠 카프카"라는 구절 때문에 명동이 연상되는 것일 터이다. 문예창작과에 막 입학한 신입생에게는 시를 공부하겠다는 제자와 앉아 있는 이 커피가게가, 프란츠 카프카를 파는 이 커피가게가, 명동 어딘가 존재하는 곳일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학생 때 선생님이 이 시를 합평 수업을 마치고 댁으로 돌아가시는 길에 썼을 것이라고 마음대로 상상했다. "4월의 개나리가 전경보다 더 많"은 서울의 간판. 4월이면 남산에 개나리가 만개해서일까? <간판이 많은 길은 수상하다>라는 시를 보면 나는 이 시가 명동 연작시인 것처럼 읽히곤 했다. "더러는 건물의 마빡이나 심장 / 한가운데 못으로 꽝꽝 박아 놓고 / 더러는 문이란 문 모두가 간판이다" 나는 학창 시절 명동의 번화가를 걸으면서, "간판이 많은 집은 수상하다"라는 구절을 중얼거려 보곤 했다. 그러고는 그 길을 걷는 선생님의 모습을 상상해 보곤 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선생님이 걷는 모습을 뵌 적이 별로 없다. 선생님의 뒷모습이 생각나지 않는다.

3
명동에는 구둣가게가 많았다. 금강제화. 에스콰이어…… 이런 유명 브랜드는 몇 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사용했는데, 꼭대기에 커피숍도 갖추고 있었다. 근처보다 커피 값도 싸고 사람도 많지 않아서 서너 시간 수업이 비면 나는 그곳에 가서 놀았다. 커피 값이 쌌던 이유는 아마도 신발을 사러 온 손님들을 위한 카페였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곳에서 노트에 무언가를 끄적이고, 소설책도 읽고, 시집도 읽었다. 그러면서도 구두는 사지 않았다

명동 4

반쪽만 빨간 구두 한 켤레가 간다
점점만 빨간 구두 한 결레가 닿는
점점의 길을 끊으며
전폭적으로 검푸른 구두 한 켤레와
부분적으로 검붉은 구두 한 켤레와
나란히 가다가 에스콰이아 앞에서
나나리찌 앞에서
비제바노 앞에서
브랑누아 앞에서
뒷굽을 들었다가 내리며 내렸다가 비틀며
기울며 나란하지 않게…… 그렇게

사랑이여, 길인 사랑이여, 길의 끝에서
만나는 섬의 심장이여, 말보다 먼저 지어놓은 절이여
너의 따로따로 외로운 육체는…… 그렇게

명동 연작시를 찬찬히 읽다 보니 이 시가 유독 나를 머뭇거리게 만들었다. "반쪽만" "점점만" "전폭적으로" "부분적으로" 이 단어들에 힘을 주어 다시 한 번 시를 읽어 본다. 왜 "반쪽만 빨간 구두"라고 했을까? 왜 “점점만 빨간 구두 한 켤레가 닿는 / 점점의 길을 끊으며"라고 했을까? 나는 명동의 어느 건물 옥상에 앉아 명동 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구두를 구경하는 나를 상상해 본다. 그러다 나를 버리고, 이 구두를 관찰하는 화자를 상상해 본다. 반쪽만 빨간 구두와 점점만 빨간 구두에 대해. 전폭적으로 검푸른 구두와 부분적으로 검붉은 구두에 대해. 나는 이 말을 알 것 같으면서도 또 모를 것 같으면서도…… 그랬다. 왜 그럴까? 곰곰 생각해 보니 소설의 언술 방식이 오래 몸에 익어버린 탓이었다.
이 시를 읽고 며칠이 지난 후 나는 문득 예전에 갔던 어느 여행이 떠올랐다. 여행지는 파키스탄이었다. 파키스탄의 시장을 구경하다 나는 빨간 구두가 잔뜩 진열된 구둣가게를 본 적이 있었다. 그걸 본 순간 히잡을 쓴 여성들은 검은색이나 회색 구두만 신을 것이라는 편견을 가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여행지에서 나는 어느 사원 앞에 앉아서 길을 걷는 사람들의 발을, 그 신발을, 사진으로 찍었다. 내 앞으로 다가오는 구두. 오른쪽으로 걸어가는 구두. 왼발만 사진 귀퉁이에 남은 구두. 세 켤레가 나란히 있는 구두. 그 사진만 보아서는 그곳이 어느 나라인지 알 수 없을 터였다. 그때 그 사진을 찍던 순간이 문득 떠오른 것은 아마도 명동의 저 연작시가 내 마음에 어떤 작용을 일으킨 것일 터이다. 나는 반쪽만, 점점이, 전폭적으로, 부분적으로, 라는 단어들의 징검다리를 건너 "말보다 먼저 지어 놓은 절"이라는 글에 다다르게 되는 과정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러자 이내 쓸쓸해졌다.
그 감정은,

발꼬락은 비좁은 하이힐 속에서
태아처럼 꼼자락거리리
그대,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느냐
<명동 5>

라는 다음 연작시에 고스란히 연결된다. 어디에 서 있는지, 어디쯤 가고 있는지, 그 물음에 대답하지 못한 채 명동 한복판에 서 있다. 하이힐의 중심이 어디로 기울어 있는지를 물으면서.

4
선생님의 회갑 기념 문집을 출간하고 얼마 뒤 선생님께 편지가 한 통 왔다. 2002년 2월의 일로, 건강 때문에 회갑 기념 모임을 갖지 못하게 되자 제자들에게 편지를 보내주신 것이었다. "꽃그늘로 새가 찾아들면 그때 만나자"라는 편지였다. 거기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꽃 피고 새 울면 그때 한번 만나자'라고 하지 않고 '꽃그늘로 새가 찾아들면……'이라고 한 것은 기온의 변화까지 감안한 표현이다.(꽃그늘을 새가 찾는다는 것은 그만큼 기온이 상승한 것일 게다??! 물론 의문부호 두 개와 느낌표 한 개를 구태여 붙인 것은 '그럴까? 정말 그럴까? 정말 그럴 거야!'를 말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알 것이라 믿는다.)

그때 나는 이제 막 첫 소설집을 낸 신인이었는데, 선생님의 이 편지를 읽고는 곧장 선생님의 강의실로 돌아간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꽃 피고'와 '꽃그늘로 새가 찾아들고'의 차이. 그렇게 언어를 세심하게 사용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편지에서나마 다시 뵐 수 있었으니. 나는 그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글을 쓸 때면 늘 이 문장을 떠올렸다. 꽃 피는 계절과 꽃그늘로 새가 찾아오는 계절의 차이에 대해. 그렇게 명료하게 써야 한다, 그렇게 중얼거리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그해 꽃그늘로 새가 찾아들어도 선생님을 뵙지는 못했다. 학생들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신 것도 그해였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의 명동 연작시 중 한 편을 읽어 본다.

명동 1

명동 입구, 하고도 맑은 대낮

옛날 옛적에 박새가 날며
또는 굴뚝새가 날며 흔들어 놓았을 나뭇가지 두어 개
아직도 멈추지 않고 그대로 흔들리고 있는
그 길로
들리지 않는 비비새나 두어새 소리 사이의 길로
지리산 화엄사의
그 불이문을
그 둘이 아닌 문을
멈추지도 않고, 뒤돌아보지도 않고, 주저하지도 않고
덜컥덜컥
사람들이 들어가듯

겁없이, 턱없이, 길없이
명동이 무슨 산의 문인지나 아는지
사람들이

오래전 박새가, 또는 굴뚝새가 흔들어 놓았을 나뭇가지가 아직도 흔들리고 있는 명동 입구. 이 시에서 명동은 현재와 과거가, 서울과 지리산이 하나로 포개진다. 그 포개진 입구를 사람들이 들어간다. 겁없이, 턱없이, 길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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