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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호 슬픈 모더니즘―모세이자 아론인

  • 작성일 2017-06-01
  • 조회수 1,767

기획의 말

2017년 커버스토리는 <그곳>입니다. 문학 작품에 대한 감상을 이미지로 다시 되새기는 작업 속에서 폭넓은 독자층과 소통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슬픈 모더니즘―모세이자 아론인

함 성 호

어느 날 신은 모세를 부른다. 이집트에 살고 있는 히브리인들을 데리고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떠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모세는 저어한다. “나는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모세의 까닭이었다. 모세는 아마도 어눌한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사유형 인간이었고, 그래서 신은 그의 형 아론에게 히브리인들을 설득하는 역할을 맡긴다. 이렇게 해서 말을 하는 자와 생각하는 자가 분리되면서, 저 황금 송아지의 파국이 마련된다. 왜 신은 한 사람에게 말과 사유를 같이 주지 않았던가? 신은 때때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벌인다. 대천사 가브리엘이 마호메트에게 나타나 신의 말씀이 적힌 두루마리를 펼치며 그에게 명령했을 때도 그렇다. “읽어라!” 까막눈이었던 마호메트는 어리둥절해한다. “저는 글을 읽을 줄 모릅니다.” 이번엔 아마 가브리엘이 당황했을 것이다. 뭐지? 이 두루마리는 왜 준비한 거지? 당황한 후에 나온 명령이 “(그럼, 내가 읽어줄 테니까) 들어라!”였다. 그래서 마호메트는 신의 말을 들었고, 그것을 외웠다. 꾸란의 음악성은 마호메트가 그것을 읽은 게 아니라 외웠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는 항상 자신을 가리켜 시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불만을 가졌다. 모세와 아론의 불일치, 예언자와 시인의 간극은 얼마나 아슬아슬한 것인가?
시인 김정환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이 아슬아슬한 간극과 만난다. 그의 말은 단정적이지 않지만 분명하고, 그의 시는 단정적이지만 모호하다. 또 그의 시는 관념적이지만 슬프고, 관념적이어서 더 슬프다. 그의 걸음걸이는 더 슬프다. 그는 상체를 거의 움직이지 않고 걷는다. 힘이 들어가지 않은 그의 몸은 가끔 움직인다. 보도블록에 걸렸을 때나 그렇다. 왠지 그의 신발 때문에 그렇다는 생각도 든다. 그의 신발은 항상 조금 커 보인다. 덜컥 덜컥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술집에 앉아서 얘기할 때도 그의 상체는 잘 움직이는 것 같지 않다. 팔만 움직인다. 그레고르 잠자가 어느 날 눈을 떴을 때 벌레로 변한 자신의 몸을 버둥거리듯이 그렇게 그의 팔은 움직인다.

“육체는 슬프다, 라고 말한 것은 랭보였다. 어느 날 아침 불안한 잠에서 깨어 보니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의 몸이 거대한 벌레로 변해 있는 걸 알았다, 는 카프카 소설 <변신>의 첫 대목이다. 예수와 거의 동시대를 살았던 오비디우스가 쓴, 최초의 본격(신화-역사) 소설 제목 또한 <변형(들)>이다. 카프카의 <변신>은 그렇게 소설의 최초와 직결된다. 오비디우스 이래 (몸의) 변형은 소설-상상력의 근간이었다. 그렇다면, 카프카에게는 기존-상상력 자체가 저주였을까?”1)

1) 《프레시안》 「김정환의 할 말, 안할 말」(17)

김정환에게는 기존-문법이 저주이다. 나는 그가 리얼리스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모더니스트이다. 아니, 그런 말보다는 그가 인정하든 안 하든 간에 “김정환은 모더니즘의 적자이다.”라고 나는 자주 얘기하고 다닌다. 그에게는 비루한 삶에 대한 슬픔이 있고, 현실이 그러한 만큼 그것대로의 의미를 시에서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정한 모더니스트는 항상 리얼리스트이기도 하다. 우리가 “육체는 슬프다”라고, 인식하는 그 지점에서 육체는 다른 것이 된다. 노래 같은 것이. 마호메트가 신의 말씀이 시로 오인되는 것을 경계한 것과 달리, 노래는 육체가 되는 것을 거리끼지 않고, 육체는 기꺼이 노래가 된다. 모세는 어쩌면 성화 속에서 표현되듯이 건장하고 굳건한 사내의 이미지가 아닐지도 모른다. 슬픈 육체를 가진 사내였을 수도 있으리라. 신의 부름에 대답한 “나는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라는 말은 겸손이 아니라 핑계일 수도 있다. 그는 이집트를 떠나기 싫었던 것이 아닐까? 아주 자주 김정환은 술자리에서 노래를 부른다. 그의 노래는 그의 몸과 함께 유장하게 흘러나온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은 그의 몸이 유일하게 소리통 구실을 하는 것이다. 그의 노래는 한적한 술집에 눈을 내리고 천장에 기러기를 풀어 날게 한다. 모세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을까?
사유하는 인간이자 노래하는 인간인 모세는 신의 부름보다 자기 고장을 더 사랑했던 사람이었지 않았을까? 그러나 신의 명령을 어길 수 없었던 슬픈 육체를 가진 한 인간으로서, 모세는 세 살 위인 형 아론의 웅변과 함께 이집트를 떠난다. 이것이 모세의 슬픈 여정이고, 몸이고, 모더니즘의 슬픔이다. 거역할 수 없는 운명과 사랑에서, 노래와 함께 있지만 웅변과도 가야 하는 이 비참함 속에서 모더니즘은 생동한다. 이 슬픈 모더니즘에서 천재를 읽은 한 젊은 시인은 이렇게 고백했던 적도 있다. “나/나에게서/이성복 김정환 황지우의 천재를/기대 말라” 시의 시대라고 불렸던 80년대에 저 세 시인과 나란히 어깨를 견줘야 했던 윤성근 시인은 아예 그들과 비교당하기를 거부했다. 그들을 천재의 반열에 올려놓고 자신은 그 버거운 짐에서 자유롭고자 했던 것이다. 그랬던 그는 죽었고, 천재들은 살아남았다. 이 또한 모욕이다.

그런데 어떤 생이 실은 그렇지 않겠는가?
누구나 슬픔은 처음부터 재능이 없고 처음부터
평범할 수도 없다. 그건 썩어가는 육체의 일을
영혼이 대신하는 어떤 혼선(混線) 같은 거.
사랑이 육체의 유일 가능한 영혼이고, 슬픔이 영혼의
유일 가능한 물질이라는 거.
사랑 아니라 후유(後遺)와 단속(斷續)이 처음부터
처음부터 슬픔의 몫이라는 거, 갈수록 스스로
거덜 나며 깊어진다는 거.
육체의 슬픔이 슬픔의 육체로 되는
소리가 선율로 이어지는 것이 누구에게나
단 한 번이므로 누구에게나 전부이고 누구에게나
단 한 번 전부의 나아감일 것이다.
생은 그것으로 적셔져야 가까스로 의미에 달하는
더한 괴물이었을 수 있다.2)

2) 『소리 冊曆』 「11월」중에서

쇤베르크의 오페라 <모세와 아론>은 미완이다. 모든 미완의 작품에는 이유가 있지만 미완일 수밖에 없는 작품도 있다. 모세와 아론의 갈등을 주축으로 이루어지는 이 오페라는 웅변하는 인간인 아론에게는 리리코 드라마틱(lirico dramatic) 테너로 노래하게 하지만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인 모세에게는 슈프레히게장(sprechgesang)으로 노래하게 한다. ‘말하듯 노래하기’라는 슈프레히게장은 쇤베르크가 창안한 기법인데, 전통적인 오페라의 두 기둥인 레치타티보와 아리아가 통합되는 19세기 오페라에 대한 반역들 중의 하나였다. 초창기 오페라는 일정한 형식 없이 말하듯 빠르게 소리 내는 레치타티보 형식이 일반적이었다. 그 후 선율을 강조하는 아리아 중심의 오페라가 확립되었고, 19세기는 이러한 두 흐름의 통합을 추구했다. 쇤베르크의 슈프레히게장은 아리아 중심의 오페라에서 말로 노래를 해체하는 구실을 한다. 웅변하는 인간 아론의 유려한 아리아에 눌변의 인간 모세의 슈프레히게장이 틈을 만들어내고 순수한 음악체계를 흔든다. 그리고 김정환은 소리로 다시 말의 체계를 흔들어 놓으려고 한다. 그의 장시 『소리 冊曆』은 계몽의 시대가 이제야 끝났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쇤베르크가 아론의 유려한 아리아에 끌려 들어가는 우리를 모두 우상에 맹신하는 히브리인들로 만들어버리듯이, 김정환은 이제 더 이상 계몽적인 문법체계는 끝났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표현’이라는 말을 버리고 ‘감당’이라는 단어를 선택한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슬픔의 문법’은 그렇게 나타난다. 그는 ‘감당’하기 위해서 수천 년 이래 예술의 관심사였던 ‘표현’의 문제를 던져버린 것이다. 그가 ‘음(音)’이라는 단어보다 ‘소리’라는 단어를 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의미를 뛰어넘는 선율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3) 쇤베르크가 ‘말하듯 노래하기’로 유려한 아리아를 흔들어 놓듯이, 의미를 뛰어넘는 선율은 당연히 ‘소리’로 나타날 수밖에 없고, 그 소리는 당연히 다른 문법을 요구한다.4)
모세가 잠시 떠난 사이 아론은 불안해하는 히브리인들을 달래려고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황금 송아지 상을 만든다. 돌아와 그것을 본 모세는 아론에게 불같이 화를 낸다. 아론은 말한다. “너의 관념은 말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나의 말은 그들에게 보여주지 못하니 다만 나는 그들의 눈과 귀에 기적을 행했을 뿐이다.” 아론은 자신은 자신의 임무를 다한 것이라고 모세에게 반발한다. 이에 모세는 아론이 만든 상 때문에 자신의 말이 모욕당했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아론은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너의 석판도 사상의 일부인 상에 지나지 않느냐?” 모세는 절망하며 율법이 새겨진 석판을 깨버리며 절규한다. “오 말이여, 나에게 없는 너. 말이여!” 모세에게 아론의 말이 있었다면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을까? 말은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없다. 어떤 표현도 여기서는 죄 비껴 나간다. 단지 우리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가 있을 뿐이다. 김정환은 의미를 뛰어넘는 선율인 소리를 통해 말이 할 수 없는 것들을 감당하고자 한다. 그의 ‘슬픔의 문법’은 모세의 사유와 아론의 말이 한 몸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모세에게 ‘없는’ 말과 아론에게 ‘없는’ 사상이 ‘없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기에 성립한다. 그것은 그가 “어떤 소리는 바로 그렇게 말하는 소리이고 모든 소리가/그렇게 말하는 소리일 때가 있다.5)고 할 때 이루어지는 ‘의미를 뛰어넘는 선율’이 문법이 되는 순간이다.
어쩌면 그는 말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사안에 대해서는 단정적으로 짧게 말하고 지난 얘기를 할 때는 스타카토로 뚝뚝 끊으며 말하는데, 말하는 자신을 스스로 의식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다른 이의 말을 듣고 있긴 한 것 같은데, 별로 주의해서 듣지는 않는 것도 같다. 그가 긴 얘기를 늘어놓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는 노래를 하는 모양이다. 노래를 할 때가 그가 가장 길게 얘기하는 때이다.

3) 《문예중앙》 2016년 겨울호 대담「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슬픔의 문법’」
4) 그는 조사를 조심스럽게 가려 쓰거나 일부러 쓰지 않음으로 해서 소리글자인 한글을 마치 뜻글자처럼 보이게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소리글자의 가독성이 없어지면서 그의 문장은 의미가 없는 소리의 부호 같이 보인다.
5) 『소리 冊曆』 프롤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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