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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은 천국에 갈 것이라 굳게 믿는 이들이 모인 지옥

  • 작성일 2025-01-01

   자신만은 천국에 갈 것이라 굳게 믿는 이들이 모인 지옥


서효인


   지상에 빛이 쏟아져 

   그들의 허연 입김과 

   몸을 섞었다. 


   내 할아버지에게서도 같은 냄새가 났었다. 하루치 노동을 끝내고 돌아와 유황처럼 냄새를 뿜었다. 씻겨지지 않는 그것들을 매단 채 모로 누워 텔레비전을 보았다. 천국에 갔을지는 모른다. 그의 장례식에는 동네 교회의 집사와 간사가 여럿 모여 찬송가를 불렀다. 찬양하였다. 


   불쑥 쏟아지는 빛에 눈을 찡그렸다. 장창을 든 천사가 다가와 서명을 요청하였다. 나는 이름만 적으면 천국에 갈 수 있는 건지 물었다. 천사는 말했다. 믿는 자는 의심할 자격이 없거늘. 내 할아버지는 끝내 문맹이었으나 이름만은 적을 줄 알았다. 그렇다면


   그는 천국에 갔을까. 하나 그는 여기에 없고 믿는 자들에게서는 할아버지의 냄새가 났다. 그들은 사역 중이었다. 일하는 중이었다. 매달려 있었다. 노동을 마친 할아버지는 기도 없이 저녁을 먹었다. 나는 천사의 연명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냄새인지 빌듯이 말아 쥔 손을 인중에 대고 골똘했다. 할아버지는 산업재해로 손가락 둘을 잃었다. 봉합 수술은 실패했다. 스피커에서 천둥이 울린다. 우리가 승리했습니다! 겨울의 빛은 늙음처럼 공정하고, 그 아래에서 천사들의 얼굴이 허옇게 밝았다. 그것은 


   믿는 자의 얼굴 

   믿는 자의 찬양 

   믿는 자의 소문 

   믿는 자의 믿음 


   믿는 자들이 어깨를 파닥이니 몸이 지상에서 두 뼘쯤 떠올라 땅에 발이 닿지 않았다. 겨드랑이를 펄럭일 때마다 냄새가 온 세상을 쥐어팰 듯 퍼져 나갔다. 깃발이 펄럭였다. 문득 나는 우리 할아버지 천국에 갔을까. 아니면 이제라도 이름을 적을까. 고민인데‧‧‧ 어디선가 그의 음성 들린다. 저들은 저들의 죄를 모른다. 아니, 


   안다. 사라진 천사를 찾아 바닥에 

   코를 대고 개처럼 킁킁거리니 

   기도하는 자세가 되었다. 

   지상의 빛이 재가 된 이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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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5-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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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misfits
    감동했어요

    노조 간부들을 비판하는 내용처럼 느껴져요. 처음엔 너무 어렵고 메타포가 강렬해서 이해가 안됐는데.. 계속 곱씹어보니 도덕적 위선, 교만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가진 글 같네요.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외치는 것들.. 빛(진리) 라는 것은 결국 바닥(지상)에 있었다는 뜻일까요. 마지막에 믿던 것을 잃고 바닥에 웅크린 화자가 기도하는 모습 같기도, 절망하는 모습 같기도 한 부분이 정말 인상적이에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2025-03-27 17:47:27
    misfits
    감동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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