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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은 천국에 갈 것이라 굳게 믿는 이들이 모인 지옥

  • 작성일 2025-01-01
  • 조회수 608

   자신만은 천국에 갈 것이라 굳게 믿는 이들이 모인 지옥


서효인


   지상에 빛이 쏟아져 

   그들의 허연 입김과 

   몸을 섞었다. 


   내 할아버지에게서도 같은 냄새가 났었다. 하루치 노동을 끝내고 돌아와 유황처럼 냄새를 뿜었다. 씻겨지지 않는 그것들을 매단 채 모로 누워 텔레비전을 보았다. 천국에 갔을지는 모른다. 그의 장례식에는 동네 교회의 집사와 간사가 여럿 모여 찬송가를 불렀다. 찬양하였다. 


   불쑥 쏟아지는 빛에 눈을 찡그렸다. 장창을 든 천사가 다가와 서명을 요청하였다. 나는 이름만 적으면 천국에 갈 수 있는 건지 물었다. 천사는 말했다. 믿는 자는 의심할 자격이 없거늘. 내 할아버지는 끝내 문맹이었으나 이름만은 적을 줄 알았다. 그렇다면


   그는 천국에 갔을까. 하나 그는 여기에 없고 믿는 자들에게서는 할아버지의 냄새가 났다. 그들은 사역 중이었다. 일하는 중이었다. 매달려 있었다. 노동을 마친 할아버지는 기도 없이 저녁을 먹었다. 나는 천사의 연명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냄새인지 빌듯이 말아 쥔 손을 인중에 대고 골똘했다. 할아버지는 산업재해로 손가락 둘을 잃었다. 봉합 수술은 실패했다. 스피커에서 천둥이 울린다. 우리가 승리했습니다! 겨울의 빛은 늙음처럼 공정하고, 그 아래에서 천사들의 얼굴이 허옇게 밝았다. 그것은 


   믿는 자의 얼굴 

   믿는 자의 찬양 

   믿는 자의 소문 

   믿는 자의 믿음 


   믿는 자들이 어깨를 파닥이니 몸이 지상에서 두 뼘쯤 떠올라 땅에 발이 닿지 않았다. 겨드랑이를 펄럭일 때마다 냄새가 온 세상을 쥐어팰 듯 퍼져 나갔다. 깃발이 펄럭였다. 문득 나는 우리 할아버지 천국에 갔을까. 아니면 이제라도 이름을 적을까. 고민인데‧‧‧ 어디선가 그의 음성 들린다. 저들은 저들의 죄를 모른다. 아니, 


   안다. 사라진 천사를 찾아 바닥에 

   코를 대고 개처럼 킁킁거리니 

   기도하는 자세가 되었다. 

   지상의 빛이 재가 된 이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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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할 차례

노래할 차례 윤은성 선언했던 이들이 집 밖으로 나서고 있었다. 나를 위해 기도해 줘. 그리고 함께 이야기하자. 법정에 서기 전이었다. 소들이 편안해 보여. 떨고 있는 그에게 속삭였다. 내가 한 말들이 미래에 관한 건지 짐작에 불과한지 묻지 않은 채였다. 그는 벌금형을 받았다. 소들이 자면서 서로에게 나직한 노래를 불러 주는 것을 그가 사는 마을에선 평범한 축복으로 여겼는데 작은 언덕과 초원들이 벌써 많이 사라지고 있었다. 가장 노래도 잘하고 돈도 잘 벌어다 주는 소들이 택해지면 모두 얼어붙거나 울적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너무 끔찍했어. 서로의 눈과 귀를 가려 주다 가도 우리는 다시 얼굴을 들여다봤다. 그때도 노래를 하자고. 그건 어려운 일일 수 있겠지만 소와 함께 풀과 과일을 먹지 않았다면 알아듣기 어려울 선언 이후의 노래를. 전보다 더 가난해졌다. 새롭고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온 풍성하고 단순한 요리를 함께 나누었다. 노래가 아닌 것은 이제 보이콧 하자. 나는 소가 하는 말을 천천히 옮겨 적었다. 서로의 먹을 것을 챙기며 노랫말을 생각하는 슬픔들이 비밀스럽게 자랐다. 이른 아침 법원으로 향했던 이들이 마을로 돌아오고 있었다. 다시 새롭게 불복종할 차례였다.

  • 관리자
  • 2025-03-01
남아 있는 여름

남아 있는 여름 윤은성 풀이 있는 길을 알아. 나는 시멘트 포장된 희고 거친 잔물결 무늬가 팬 길을 기억한다. 비탈과 볕과 그늘을 기억한다. 나는 사라진다. 목욕탕 옥상 위에서 누운 채 깨어났다. 빗방울이 닿고. 당신을 떠올렸다. 불렀다. 거기에 시가 있었단 걸 어렴풋이 느꼈다. 잠의 둥근 모양이었다. 헤엄치는 마음으로 저녁을 맞았다. 얼굴에 이끼가 피고. 잔물결 무늬에 물이 고였다. 내 등에선 풀이 거세게 자랐다. * 돈이 필요하지 않았고 그래도 돈이 필요한 날들이 한없이 이어졌다. 더운 계절이 이어지고 있을 때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이, 여자와 아이들이, 서로의 머리맡에 감자나 익은 앵두, 옥수수를 두고 갔다. 목사님은 찾아와서 이마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해 주고 가셨다. 내가 아팠던 게 감기 때문인지, 태어났기 때문인지, 마을의 가부장이 누구인지 알아 버렸기 때문인지 조금 헷갈린다. 헷갈리지 않는다. 마을의 언니들이 종종 나를 안아 주거나 나를 버렸다. 버리는 인형들을 내가 주워 왔다. 지나다니는 아이가 없으면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 나는 없음을 알았다. 자꾸 흙의 색이 붉거나 검게 변했다. 죽지 않은 개, 잡히지 않은 개, 버린 개, 홀로 살아난 개, 뜬 장 밖으로 어떻게 나왔는지 알 수 없는 개들이 산을 오르고 내려왔다. 나는 있음을 알았고, 사라짐을 알았다. 죽임도 알았다. * 내가 아빠를 찾으러 간 길에서는 커다란 뱀과 작은 뱀을 차례로 봤다. 커다란 뱀이 나를 보고 놀란 눈치였다. 나는 사라지지 않고 뱀에게 나타났다. 뱀에게는 시가 필요가 없는지, 뱀에게 시는 나의 시와는 또 다른 무언가인지 조금은 궁금하다. 슬픔과 분노를 구분하지 못하는 남자들이 우리 집엔 많았다. 풀이 집에 많듯이. * 옆 마을 돈사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나는 시가 돼지의 몸으로 타 버린 걸 상상했다. 목이 마르고 글자들이 살에 눌어붙었다가 부서지는 시간 내내 그러니까 아주 오래 타고 있는 시를 봤다. 뉴스 안쪽으로 그리고 그 바깥으로 화염이 인다. 돼지는 형체가 남았다. 나는 내 얼굴과 팔을 자주 더듬었다. 마른세수를 했다. 알 것 같은 남자가 뉴스에서 울었다. 내가 태어난 이유가 문화적인 이유에서였다고 생각하면 내 입안 양쪽 볼과 배 안에 누른 살점들이 차오르는 기분이 든다. 치아에 살점이 붙고 썩는 기분이 든다. 붙어서 함께 썩는 시를 봤다. 옥상이 있던 작고 흰 페인트칠 된 건물은 내가 성인이 되기 전 부수어졌다. 부수어지다 무너졌다. 무너졌고 더 부수어졌다. 아랫집 노인이 결국 담을 다 고치지 못하고 돌아가셨고 내 아이가 담 위에서 놀 때 마침 무너졌다. * 아랫집 노인이 태몽을 자꾸 내게 일러 주러 온다. 풀이 자라라고 내버려둔 담장들이 풀 속에서 시처럼 놓여 있었다. 돈사에서 돼지들이 다시 태어나려 했다. 돈사 바깥의 시들이 돼지를 다시 임신시키려 했다. 덜덜 떨며 풀포기

  • 관리자
  • 2025-03-01
오기로 한 날

오기로 한 날 전욱진 네가 방에 슬픔을 치워 놓았다고 뿌듯해하기에 아무 말 하지 않기로 한다 오기로 한 날이잖아요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네 나는 모른 척하기로 하고 네가 방문을 열면 먼저 놀라워할 준비 방 안에 들어서서 맘껏 즐거워할 준비 어떻게 이걸 혼자 다 할 수 있었느냐 물으면 너의 대답은 명료할 것이기에 나는 거기에 맞춰 소리 내면 될 것이다 오기로 한 날이니까 서로가 동시에 같은 말을 했다는 사실에 우리는 유쾌해져서 함께 웃음 지을 것이다 같이 지내는 이 방에 이제 슬픔이란 없으며 그 형편에 금방 적응한 사람처럼 굴 것이다 저녁이 되면 우리는 한동안 맛보지 못했던 음식들을 나눠 먹고 술도 마셔서 모처럼 어지간히 취할 것이다 그러나 식탁 앞에는 너와 나만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정이 넘으면 너는 방으로 가고 내다 버린 슬픔을 도로 가져오기 위해 나는 천천히 외투를 입기 시작할 것이다

  • 관리자
  • 2025-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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