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을 지울 수 없다면 죽은 것이다
- 작성일 2025-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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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을 지울 수 없다면 죽은 것이다
이위발
벌거숭이들 속에서 발에 집착하는 사람, 거친 돌을 잡거나, 때밀이를 잡거나, 제거기로 발바닥을 문지르는 사람, 지우는 사람, 깎는 사람, 허리 굽거나, 백발이거나, 주름이 깊은 사람, 발바닥을 왜 문지르는지, 왜 지우는지, 왜 깎는지 이해 불가능했던 젊은 시절,
살아온 날의 퇴적층이 발에서 갈라지고, 터지고, 벗겨져, 제거하기에 좋다는 경석, 현무암, 화산석으로 문질러 보고, 지워 보고, 깎아 봤지만 이틀이 멀다 하고 생기는 척추동물의 표피, 물에도 소금에도 녹지 않고, 효소에도 분해되지 않는 단백질, 발에서 분출되는 삶의 흔적, 문질러 지워야만 되는 본능의 몸부림을,
“늙었다는 증거”라고 단언해버리는 아내 옆에서, 신문지 펴 놓고 발바닥에 축적된 상피를 문지르자 하얀 눈처럼 흩뿌려지는 내 뼛가루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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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 작렬뒤끝 작렬 이위발 너는 시들어 가는 꽃을 보며 ‘아름답다’라고 말했지, 뒷모습보다는 말라 가는 꽃잎이 더 성스럽다고 했지, 아니지, 아름다운 것은 한순간이지, 누군가 찰나는 이럴 때 쓴다고 했지, 아니지, 뿌리에서 태어나는 꽃들은 관심과 애정, 신뢰와 믿음이 전부라고 했지, 아니지, 시들어 가는 꽃 속엔 슬픔과 아픔, 증오와 고통도 함께 있다고 했지, 너는 그때 하필이면 판도라를 떠올렸지, 왜라는 의문을 던졌지, 답은 명쾌하게 들렸지, 상자를 열었을 때 일곱 가지 죄악이 나왔다고 했지, 늙는다는 것도 그중에 하나라고 말했지, 시든다는 것과 늙는다는 것은 동격이라고 했지, 비참하고 비통했지, 아니지, 상자에서 나오지 못한 희망을 마침표 전의 쉼표라고 했지,
- 이위발
- 2025-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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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위발
- 2021-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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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위발
- 2021-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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