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토미한테 오지 않으니 토미가 바다로 가는 거로군, 어떻습니까
- 작성일 202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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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바다가 토미한테 오지 않으니
토미가 바다로 가는 거로군, 어떻습니까? *
김륭
어머니, 누워서 밀고 있다. 요양병원 침상에 누워서 자꾸
아버지를 밀고 있다. 이젠 나도 좀 누워 봐요. 죽기 전에
다리라도 좀 편히 뻗어 봐요. 물갈퀴가 비치기 시작한 어머니 발에 채여 둥둥 떠내려가는 아버지,
아버지 무덤을 나는 모르는 척 눈감아 주는 것인데, 밤새 보호자용 간이침대에 누워 밑줄 그었던 문장을 따라가다 문득 막다른 골목 시멘트벽에 그려 놓은 바다를 떠올린 것인데, 요양보호사가 말했다.
식사 시간이에요. 침대 좀 세워 주시겠어요? 나는 토미가 아닌데
나는 어머니 발밑에서 으르렁거리는 바다를 잡아와 미역국 끓이고 조기라도 한 마리 굽고 싶었을 뿐인데, 나는 정말 토미가 아닌데, 떠내려가는 아버지를 잡아와 어머니 곁에 가만히 눕히고 싶었을 뿐인데, 요양보호사가 또 말했다.
이봐요, 침대를 좀 더 세워 주시겠어요.
* 안토니오 타부기, 『인도 야상곡』에서
부고
눈싸움하는 아이들을 보고 눈사람이 말했다
곧 봄이 올 것이다, 눈사람은 햇빛 어른거리는 길 위의 코끼리처럼 *
우아하게 내가 가장 추웠거나 뜨거웠던 날의 기억들을
가만히 식탁 위에 올려놓을 것이다
꽃들이 국밥 먹으러 오길
기다릴 것이다
* 우밍이, 소설 제목 「햇빛 어른거리는 길 위의 코끼리처럼」에서 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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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2020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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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달프고 사나운 황인숙 느지막이 장년 훌쩍 지나 만난 나의 반려 내 젊은 날 친구랑 이름 같은 누군가 돌아볼지 몰라요 아니, 재길이 그대 부른 거 아니에요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제기라알!” 시도 때도 없이 길바닥에서도 짖어 부르는 내 반려욕 사납고 고달픈 맘 달래 줍니다 사실 나는 내 반려욕을 사랑하지 않아요 못나기도 못났으니까요 어디서 그렇게 나 닮은 욕을 만났을까요 만나기는 뭘 만나 내 속으로 낳았지
- 관리자
- 2024-05-01
글 쓰는 기계 김응교 사실 기계들은 자기 프로그램을 업데이트 할 기계적 고독이 필요하여 자기만의 기계실에서 밤새 작동한다 그를 누구도 볼 수는 없겠지만 껍질이 날아간 뼈다귀 로봇 등 뒤 상자 서너 박스에는 유영을 멈춘 지느러미들 생선집 좌판에 파리 날리는 근간 시집들이 옆으로 누워 있다 그의 얼굴은 점점 기계를 닮아 가고 책 모양 사각형으로 바뀌어 옆으로 누운 가자미, 눈알과 손가락만 남아 상상력이 냉동되면 어떤 창작도 휘발되고 너무 많은 과거의 형태와 언어가 얼어붙어 더 이상 신선한 속살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 기계에게도 컨베이어에 실려 뜨거운 화덕에서 태워질 운명이 다가온다
- 관리자
- 2024-05-01
멍쯔 삼촌 김응교 내 피의 4분의 1에는 몽골 피가 흐르고 아마 4분의 1은 옛날 중국인 피가 흐를지 몰라 내 몸에는 지구인들 피가 고루 섞여 있을 거야 그니까 삼촌이라 해도 뭐 이상할 거 없지 중국에 삼촌이 산다 삼촌이 쓴 책에 역성혁명이 나오는데 우리는 비슷한 혁명을 몇 번 경험했지 제자가 많다는데, 나는 삼촌으로 부른다 중국인은 멍쯔라 하고 한국인은 맹자라 하는 멍멍, 차갑게 웃을 중국인 삼촌 우리는 계속 역성혁명을 하고 있어 불은 든 프로메테우스들이 많아 멍쯔 삼촌, 우린 심각해요
- 관리자
- 2024-05-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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