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재미나요
시
문장의 시선-
시 정우신 - 가타카
가타카 정우신 살아남은 포유류의 척수에 바늘을 꽂고 이동 중이었지 피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피를 돌리지 않아야 한다는 걸 늦게나마 깨달았다네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는 거 아니었겠나 분해되고 싶었지 우주처럼 꽃잎을 떨어트리려는지 다른 꽃잎과 묶으려는지 알 수 없는 바람이 불고 사랑이라는 말은 미래를 속이기 좋았네 당신은 일찍이 그걸 믿지 않았지 아니면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에게 피부를 내주었던가 한쪽 눈을 감으면 아직도 당신이 바라보던 세계가 보인다네 세계라는 말도 역시 참 질기고 우리의 욕망을 분배하기 좋았지 꽃잎을 하나 둘씩 흩날리며 더 해보라는 듯이 당신은 나의 얼굴로 미소를 짓고 있네 내가 비난했던 사람들 대부분은 나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 덩어리가 완성되길 기대했다네 과연 나는 먹음직스러운가 종교를 알아보게 피를 교체한 다음날은 당신이 살던 시절이 자꾸만 나타나 끔찍하다네 그럴 때면 샐러드를 만들고 술을 데우지 목숨이 하나밖에 없던 시절…… 불행을 물려줄 수 있었던 인간의 마지막 세기…… 당신은 무슨 일이든 항상 여지를 두었으니 내가 생각하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겠지 사실 그 비겁함을 닮고 싶었네 더 취하기 전에 자화상이나 그려 보게 무책임하고 완벽한 시스템을 가장 왜곡된 나의 진실을 뽑아낼 수 있지 않겠나 내가 유전시키고 있는 이 포유류의 낭만은 무엇이었을까 다음 새떼를 아직도 기다리는지 당신은 긴 잠에서 깨어나질 않고 나는 절단된 나의 다리로 기어가 군침을 흘려 보는 것이네
작성일 2020-01-01 댓글수 0상세보기 -
시 이제니 - 무화과나무 열매의 계절
무화과나무 열매의 계절 이제니 그 시절 나는 잘 말린 무화과나무 열매처럼 다락방 창틀 위에 조용히 놓여 있었다. 장례식 종이 울리고 비둘기 날아오를 때 불구경 간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오빠는 일 년 내내 방학. 조울을 앓는 그의 그림자는 길어졌다 짧아졌다 짧아졌다 길어졌다. 넌 아직 어려서 말해 줘도 모를 거야. 내 손바닥 위로 무화과나무 열매 두 개를 떨어뜨리고 오빠도 떠나갔다. 기다리지도 않는데 기다리는 사람이 되는 일은 무료한 휴일 한낮의 천장 모서리같이 아득했다. 오빠가 떠나자 남겨진 다락방은 내 혼잣말이 되었다. 열려진 창밖으론 끝없는 바다. 밤낮 없이 울고 있는 파도 파도. 주인을 잃은 마호가니 책상 위에는 연두 보라 자주 녹두 색색 종이테이프 지우개 연필 증오 수줍음 비밀 비밀들. 도르르 어둠의 귓바퀴를 감아 넣듯 파랑파랑 종이꽃을 접으며 나는 밤마다 오빠의 문장을 읽었다. 누구에게도 보내지 않을 편지를 쓰고 또 쓰는 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미워하는 고백의 목소리. 오빠의 공책 위로 지우개 가루가 검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돌아오지 않는 것들은 언제까지 돌아오지 않는 것들일까. 기다리는 것들은 언제까지 기다리는 것들일까. 어제의 파도는 어제 부서졌고 오늘의 파도는 오늘 부서지고 내일의 파도는 내일 부서질 것이다. 모두 어디에 계십니까. 모두 안녕히 계십니까. 밤이면 착하고 약한 짐승의 두 눈이 바다 위를 흘러 다녔다. 끝없이 밀려갔다 밀려오는 물결들. 끝없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가없음. 그것이 나를 울면서 어른이 되게 했다. 열매를 말리는 건 두고두고 먹기 위해서지. 잘 말린 무화과나무 열매를 씹으며 나는 자라났고 떠나간 사람들보다 더 많은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또다시 무화과나무 열매의 계절이 돌아오고 있었다.
작성일 2008-06-30 댓글수 0상세보기 -
시 배교배교 박참새 예수는 좋겠다 애비가 없어서
작성일 2024-05-01 댓글수 3상세보기 -
시 김연덕 - 재와 사랑의 미래
재와 사랑의 미래 김연덕 구멍 난 빛 축소된 세계가 마주 선 유리만큼 견고해 보존액의 무심함 세세하고 아름다운 수식 같은 상처로 무섭게 쪼그라들 나의 뇌는 근현대관 한가운데 전시될 것이다 도시는 숨긴다 바삐 뛰며 규격대로 배워 온 언어 최대한의 최소한의 팽창의 시간 꿈 없이 새로 부서지는 커다란 어깨 해 지는 거실 비스듬히 세워 둔 키 큰 식물이 흐르는 빛 잃어버린 정신에 집중하듯 조금씩 기울어지면 나는 불타는 도로가 한눈에 내다보이는 창가에 앉아 지금으로부터 칠십 년 전 나의 할머니가 아내 앞으로 남긴 편지를 읽네 버석거리는 너무 많은 꽃들로 뒤덮인 아내의 이마 실밥 풀린 아내의 소매와 밑단이 흙속에서 어둡게 움직일 만큼 지친 리듬 평평한 잠에 빠져들 만큼 서정적이고 고전적인 문장들로 조합된 편지 느리고 차가운 환하고 사나운 시간처럼 스며드는 도로의 난폭함과 열기를 전등 삼아 나는 아내 대신 기나긴 답장을 쓰네 사람들은 이제 조명이나 조각난 영혼 같은 단어 숨과 숨 사이를 무모하고 상징적인 모양으로 잇는 문장부호와 교정부호 잘 쓰지 않아요 그러므로 이 편지는 내 손녀의 손녀들에게 손녀들의 강한 손끝에게 전달될 마지막 샘플이 될 것입니다 감춘 눈물 암호가 될 것입니다 공중으로 떠오르는 작은 잉크병 교정되듯 빈 거실이 간략해진다 - 아내와 나는 때때로 이곳에 말없이 누워 뇌 주름 사이사이 연결된 영사장치로 언어 너머 뒤엉킨 부끄러움을 서로의 빛과 절망을 천천히 건너다보곤 했네 들이치는 빗줄기를 긁힌 과거를 주석과 잡음 산발적인 그림자를 극복하고 여러 차례 보완된 이 영사장치는 실제보다 선명하고 진실 돼 보여 우리는 입을 열어 우리다운 문장을 만들거나 편지를 교환할 필요가 없었네 안전한 긴 전선으로 흘러들던 슬픔은 알아차리기도 전에 고이거나 굳어버리곤 했네 보던 것을 듣게 되면 뜨거운 숲에 노출되면 미립자가 만들어내는 희미한 풍경 반복되는 기억무늬에 사로잡히면 순간을 늘려 송출하던 얇은 유리판 번갈아 깨어나던 눈동자들을 내부가 다 부어버린 짧은 침묵을 왜 기대 없이 속속들이 알게 되는 것일까 이해하고 이해받게 되는 것일까 커튼을 찢고 차갑게 빛나는 식물 도로가 아내가 부드럽게 헝클어트리던 노을 내 얼굴 씻고 싶어요 저 증기 숲 같은 센서 그만 꺼줘요 서로의 평면거실에 평소보다 오래 접속했던 어느 겨울 낮 두 손 가득 전선을 말아 쥔 아내는 말했고 나는 집 안 곳곳 흩어져 녹아내린 문장부호와 산산조각 난 서로의 입김들 속에 꼬박 한 계절을 보내야 했네 쉼 없이 새로 얼어붙던 작아지던 해 우리는 마주 앉아 연필 깎는 유일한 부부가 되었네 - 창과 창을 이어 달리는 수척한 빗물 늦은 잠 환한 전쟁을 치르는 아내의 소매 당신 너머 도시들을 봐버렸어요 눈 감은 당신 자꾸 넘어졌어요 실수로만 돌아오는 아내 곁에서 나이 든 나 조금 남은 빛을 지운다 - 낮과 밤을 어린 시절을 조용한 분노로 이글대던 덤불과 숲을 어떻게 건너왔나 어떻게 이토록 따뜻한 햇빛 어지러운 평화 속에서 멀쩡히 요
작성일 2020-04-01 댓글수 1상세보기 -
시 김연덕 - white bushwhite bush 김연덕 죽은 듯이 잠자고 깨어난 아침 나는 차가운 연기 속수무책 영토를 넓히는 얼룩들처럼 살아 움직이는 나를 보았다 계단에서 마당에서 처음 보는 현관 앞에서 기도하고 체조하며 어지럽게 얼어붙은 첫 공기와 서성이던 나는 나를 감싸고 보호하던 기름진 빛이 늦은 창피 한 겹이 사라졌구나 나 오늘부터 내가 살아 보지 못한 몸으로 살게 됐구나 지대가 높은 구조가 아름다운 이 저택에서 낙엽들로 부산스럽던 지붕 아래서 우기다 눈물 흘리다 갑작스레 쫓겨날 때까지 지친 뿌리 마당 곳곳 파고드는 몸집으로 잠들기까지 긴긴 세월 대저택을 사랑하던 자 벽과 가벽 사이에서 허둥대던 자를 위한 새 이파리 새 현실이 주어졌구나 생활기도도 체조도 잘 되는구나 깨달았는데 우기던 계단과 창백하게 변색된 이파리 어제까지 오르내리던 얼굴은 대낮에도 정확히 알아볼 수 없었다 죽은 듯이 다시 잠에 빠져들 수 없었다 나는 사랑을 위해 너무 많은 상상력을 사용해 왔다
작성일 2020-04-01 댓글수 0상세보기 -
시 김복희 - 새 인간
새 인간 김복희 새 인간을 하나 사왔다 동묘앞 새 시장에서 새 인간을 판다는 소문을 들었다 내가 원하는 바로 그 새처럼 우는 법을 배운 새 인간이 동묘앞 새 시장에 매물로 나올 거라는 소식이었다 날개가 있지만 날 수 없고 곤충과는 달리 머리 가슴 배로 구성되지 아니 하였으며 다족류가 아니며 두 쌍의 팔 다리를 지녔고 갈퀴는 성장 환경에 따라 생겨날 수도 있고 영영 생기지 아니 할 수도 있고 큰 소리로 웃지 않으며 달리지도 않으며 먹어선 안 될 것들이 많아 병들기 쉽지만 청결한 잠자리를 유지해 주면 동반 인간의 반평생 가까이 살고 평생에 단 한 번 번식하며 때에 따라 번식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인어를 키운다는 녀석들에게 보란 듯이 내 새 인간을 말해 주고 싶었으니까 나는 새 인간을 하나 사왔다 엊그제도 친구 하나가 산소공급기 청소를 깜빡하는 바람에 죽어버린 인어를 하수구에 흘려보내다가 주인집에서 정화조 청소를 하는 바람에 크게 곤욕을 치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음식물 쓰레기는 쓰레기봉투에 버리라는 이야기였다 새 인간을 사러 갈 것이라고 말하자 친구는 수조를 잘게 부숴 종이봉투에 넣는 중이라면서 세상에 그런 새 인간이 어디 있느냐고 비웃었다 날지 않는 새 인간은 들어 본 적도 없고 새 인간이 날지 않는다면 기형이거나 날개 밑 근육을 절제했을 가능성이 높으니, 불법일 거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범법자가 되어서 도망쳐야 한다면, 자수를 결심할 때까지 자기 집에서 하루 이틀 정도는 재워 줄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집주인 때문에 새 인간은 출입 금지이니 새 인간 문제는 알아서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가 사랑하는 새 인간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보여주고 싶었으니까 나는 새 인간을 하나 사러 동묘앞에 걸어갔다 새 인간을 재울 깨끗한 잠자리를 만들어야 해서 아침은 굶고 현금을 준비해 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흥정을 대비해 프로처럼 보이는 주머니가 많이 달린 조끼를 입고 목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의 새 인간 나의 새 인간이 되어 주세요 나는 인사말을 연습했다 내가 원하는 바로 그 새 인간의 잠든 모습이 보일 것만 같고 새 인간이 잠든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 방바닥을 조용히 닦는 것 옷을 개키는 것 새 인간이 입을 잠옷을 수선하기 위해 돈을 벌러 나가는 것 그래서 무슨 일을 해야 새 인간과 더 오래 함께 있을 수 있을까 궁리하면서 나는 동묘앞으로 향했다 새 인간이 혹시 날아가 버리려고 하면 어떡하나 업자가 날아다니는 새 인간을 데려와 버려서, 내가 그 새 인간이 마음에 들어버려서, 날아가 버릴 것을 알고도 새 인간과 살기로 결정해 버리면 그런 비극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처리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새 인간을 하나 사러 나의 새 인간을 가지러 두 시간을 걸어갔다 새 인간은 지금 팔랑거리며 잠들어 있다 생각보다 새 인간이 너무 가벼워서 놀라워하며 으깨질 것 같아서 두려워 벌벌 떨면서 새 인간을 받아들어 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버스가 너무 흔들렸고 큰 소리로 통화하는 사람이 있어 새 인간이 깰까 봐 두려웠다 새 인간이 집에
작성일 2017-08-01 댓글수 0상세보기 -
시 성기완 - 단물
단물 성기완 당신이 선녀탕을 나와 무화과나무 속으로 사라졌어요 나는 얼른 물쿵뎅이 신발을 꺾어 신고 당신을 따라 갔죠 어디 계세요 어른어른 푸른 이파리 사이로 당신 흰 다리가 널을 뛰더니 붉게 익어 흐드러지기 직전의 무화과가 당신 치마폭에 하나 가득 당신이 씹두덩 같은 그걸 쭉 찢어주자 나는 오돌오돌 치모 끝 돌기 같은 씨가 징그럽게 촘촘히 박힌 그 속살을 입술에 즙 묻히며 받아먹어요 아 밍밍하고 지려 맛없어 투덜거리자 하나 더 먹어봐 이게 달콤하지 않니 당신이 그렇게 말하며 이번엔 아예 헤벌어지도록 익은 그걸 내 입에 대주자 나는 숨이 막혀요 이로 씹을 틈도 없이 혀끝에서 녹아드는 그 속살을 비로소 알아봐요 이 맛이로구나 수줍고 담담한 요런 달콤함이야말로 진짜 달디 단 자연의 맛이로다 단물이 줄줄
작성일 2007-10-29 댓글수 0상세보기 -
시 김지연 - 재세계
재세계(reworlding) 김지연 지나간 일은 다 잊자 지나간 일은 다 잊는 거야 그는 이 대사의 다음 장면에서 죽었다 영화 속에서 영화는 계속될 것 같았고 그 사람은 영원히 아무것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영원히 잊게 될 것이다 핸드폰 불빛이 신경 쓰여서 도무지 영화에 집중할 수 없었어 극장에 꽉 들어찬 어둠은 그 작은 불빛 하나 숨겨 주지 못하고 주인공은 십이월 밤거리의 쏟아지는 불빛 때문에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것도 알아보지 못한다 오래된 거리를 걸으면 가로수들은 영원히 자랄 것 같다 정원수의 손에서 떨어지는 잎사귀와 뚝뚝 분질러지는 나뭇가지의 미래를, 잔디가 깎이는 동안 우수수 떨어지는 머리통을 다 기억하면서 십이월은 어디에서나 커다란 나무에 작은 전구들이 주렁주렁 매달리고 불빛이 들어오고 빛을 끄고 불을 켜면 다 똑같아 보이는 세계의 근원은 이제 전기라고 인간은 빛보다 한참 느린 속도로 움직이면서 원하는 만큼의 빛을 만들 수 있다 운전자가 죽은 다음에도 계속 달릴 자동차를 가질 수 있다 이것은 생명의 낭비를 줄여 주는 기술입니다 그러나 너무 환한 곳에서는 생명을 낭비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높은 조도에서는 사물을 정확하게 인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밝게 빛나는 하늘과 흰옷을 입은 사람을 구별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세계는 점점 더 낮은 조도로 진화하고 있어 매년 이십 퍼센트 정도의 광량이 감소하고 있대 희박한 태양광 아래에서 낮아지는 조도의 세계에서 우리는 함께 희박해지겠지 정말 좋은 일이다 좋은 미래가 오면, 도로 위에서 공들여 식별해야 할 산 것들이 없는 그런 미래가 온다면 생명이 낭비되는 일도 없을 거야 앞서 걸어가는 사람의 등에 죽은 짐승의 등이 포개져 있다 너는 어쩜 죽어서도 이렇게 따뜻하고 부드러운지 짐승의 등을 어루만지며 아름답다 감탄하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자리에서 아름다움은 시작되었다 이것은 전기로 작동되는 신이 들려준 이야기다
작성일 2020-01-01 댓글수 0상세보기 -
시 임유영 - 부드러운 마음
부드러운 마음 임유영 어데 그리 바삐 가십니까, 동자여. 바지가 다 젖고 신도 추졌소. 뜀뛴다고 나무라는 게 아니라 급한 일이 무엇이오. 이보, 여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 지금 아랫마을 개가 땅을 판다기에 바삐 가오. 개가 주인도 안 보고 밥도 아니 먹고. 빼빼 말라 거죽밖에 남지 않은 암캐가 땅만 판다 하오. 그 개 물 주어 봤소? 그 물 주러 가는 길이요, 그래 내가 이래 다 쏟아 온데 사방이 추졌소. 동자승아, 동자여, 뚜껑 단단히 닫고 가소. 여기 물 더 있으니 모자라면 부어 가소. 보온병에 뜨신 커피 있으니 이것도 가져가소. 필요 없소, 필요 없소. 무슨 개가 커피를 먹는답디까? 당신 행색 보아하니 혹 땡중이오? 우리 주지스님 힘이 장사다. 그 개 다 틀렸다, 개가 땅을 파면 죽는다. 동자가 쌩하게 뛰어 개 키우는 집에 가보니 개는 벌써 구덩이에 죽어 늘어져 있었다. 동자가 개에게 물 뿌리려는 것을 주인이 잡아 옷을 싹 벗겨 빨아 새 옷으로 갈아입히고 개 무덤에 흙을 뿌리게 하였더니 동자가 엉엉 울다가 개 무덤에 대고 아이고 개야, 개야, 너 전생에 사람이었는데 외로이 죽고 개로 태어났다가 또 혼자 죽으니 두 번 다시 태어나지 말라, 태어나지 말라 수차례 외쳐 일렀다. 동자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작성일 2021-01-01 댓글수 1상세보기 -
시 Beautiful Stranger
Beautiful Stranger 신이인 돈 많은 영감탱이에게 편지를 쓴다 사탕 내놔 너네 가게 돈도 많으면서 줬다 뺏는 게 어디 있냐 한번 줬으면 구기고 다시 쓴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두루 평안하신지요? 덕분에 저는 오늘도 눈과 입이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사장님의 제과점은 우리 마을의 명물이지요 이렇게 편지를 보내게 된 것은 다름 아니라 단종된 품목에 관해 여쭙고 싶어서입니다 예 그것이지요 잘 아실 겁니다 환각 버섯이 들어가고 껍질을 깔 때마다 색이 바뀌는 사탕이요 촌스럽지 않게 슬퍼했고 기쁘면 톡톡 튀었습니다 이해받지 못할 얘기를 좋아했고요 뒷맛은 천진하고 또 술 비슷했어요 여름에 잘 어울리고 축제에 잘 어울렸던 아니 사탕이 있는 곳이 곧 축제였던 그것은 제 첫 사탕이었습니다 사탕이 이렇다는 것을 처음 알아버린 거예요 (맞아요 저는 환자입니다 저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거 사장님도 아시겠죠 그러니까 그런 사탕을 만든 거잖아요) 혀가 세 갈래로 갈라지는 병이 있잖아요 어떤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그렇고 또 어떤 이들은 학창 시절에 그렇게 되기도 하고요 어른이 되어서야 혀를 갈라뜨려 보고 놀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학계에서는 그걸 병이라고 한다네요 아무튼 한번 환자가 되면 단맛을 느끼기 쉽지 않으니까요 더 정확히는 이런 겁니다 달다는 게 달지 않고, 때론 떫고, 그런데 이상하게, 먹지 말라는 게 달아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개미를 주워 먹다가 아빠한테 들켜 머리를 맞았습니다 목조 건물의 벽을 핥다가 경비인을 기절시켰습니다 방문을 잠그고 주머니에서 쥐 발톱을 꺼내 허겁지겁 삼키는데 누가 보고 있을까 간담이 서늘해졌다가 서글퍼졌습니다 아무도 없을 때 거울을 보고 입을 벌리면 괴물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환자라면 누구나 이런 기억을 갖고 있지요 그래서 대개는 군것질거리에 관심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당신은 만들었던 겁니다 유리 조각을 벽과 벽지 사이의 곰팡이를 책장에서 기어 나오는 반투명한 벌레를 싱크대 뒷면에서 잊혀진 채로 있던 파리 알들을 먹으면 죽는다고 소문났지만 사실은 안 죽는 울긋불긋 버섯들을 넣어서 아름다운 사탕을 만들었습니다 화려했어요 이상했어요 내가 몰래 먹던 것들이 과자 가게에 나왔다는 게 예쁘다는 게 인기가 있다는 게 문전성시를 이루는 제과점에 슬쩍 줄을 서서 나도 과자를 즐기는 사람인 척 해보았습니다 일부러 다른 초콜릿이나 쿠키를 집었다가 놓기도 하면서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 티 나지 않게 끼어들면서 사탕을 샀습니다 달았습니다 아무도 제 병을 모를 것 같았어요 희한하게도 그건 평범한 사탕처럼 보였거든요 조금 개성적인 그렇지만 그래도 사탕인 돌려주세요 제발 그렇지만 이제는 너무 늦었지요 저도 알아요 그렇지만 돌려달라고 떼라도 쓰고 싶은 걸 어떡하나요 영감탱이야 나는 매일 기도했어 당신이 행복하기를 그러나 당신은 늘 행복하였고 그 사실은 우리의 행복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이 불행이 구구절절 길어져 당신의 불행에 닿기를 바라기 시작했던 거야 재수없게 진짜 싫다 이게 네 업보다 사람들에게 멋대로 마약을 팔아버린 죄 입맛
작성일 2021-07-01 댓글수 2상세보기 -
시 오드 - 선우일란, 빵의 비밀
선우일란, 빵의 비밀 김민정 순간의 어떤 스프링 같은 용솟음을 치기어린 허기로밖에 말할 수 없었으므로 나는 먹었다. 가라앉지 않는 체증으로 날마다 삶을 증거 하는 재미, 쏠쏠하여 전봇대마다 속을 게워낸 흔적 동그마니 개와의 영역다툼에 혈안이던 어느 날, 종아리에 난 이빨자국을 보았다. 너덜너덜 남은 살점을 떼어먹기 위해서라도 넌 또 오리라, 피 흘리며 흘린 피 마를까 머큐로크롬을 부어가며 빈혈의 내가, 쓰러지는 척의 내가 눈을 떴을 때 나는 주둥이만 남은 비루먹은 개로 누군가에게 업혀가는 중이었다. 이봐요 왈, 누구세요 왈왈, 대체 어디로 가는 거예요 왈왈왈 말은 곧 짖음이었고 밀가루를 옴팡 뒤집어쓴 누런 러닝셔츠의 한 사내가 대나무 발을 헤치고 윔블던베이커리에 들어서는데 아픈 개 소리로 신음하던 그녀, 선우일란이 퇴주그릇같이 넙데데한 젖퉁이를 출렁이며 텔레비전 밖으로 기어 나오는 것이었다. 갓 구워낸 빵들은 땀내도 참 향긋하구나, 효모의 숨쉬기 운동으로 부풀대로 부푼 사내의 자지는 소시지 빵 밖으로 삐쳐 나는 문고리에 목이 묶인 채 가물가물 졸음에 빠져들었고 자이드롭에서 떨어지며 질러대는 사내의 비명에 오우-마이-갓! 튜브용 마요네즈를 흔들어 짜듯 사방팔방 튀어버린 슈크림이라지만 순간의 어떤 닻 같은 드리움을 허기어린 치기로밖에 말할 수 없었으므로 나는 굶었다.
작성일 2005-06-02 댓글수 0상세보기 -
시 강성은 - 고딕시대와 낭만주의자들
고딕시대와 낭만주의자들 강성은 뾰족한 첨탑 위에 갇힌 누군가 구름에 편지를 써요 그럴 때 구름은 검은 빗방울을 뚝뚝 떨어뜨리지요 구름의 얼룩진 편지를 읽는 어떤 이들은 울음을 멈추고 검은 강물 속으로 몸을 던집니다 도시엔 무서운 전염병이 돌고 녹색의 박쥐 떼가 공중을 날아다닙니다 창백한 입술을 잃은 자들은 곧 두 손과 머리털을 잃고 두 눈알과 심장을 잃었지요 점점 희미해져 우리는 우리를 잃었지요 당신과 나의 비밀 이야기는 입 속에서 입 속으로 공기와 밤의 중얼거림을 통과하고 얼룩진 편지는 얼룩 고양이가 물고 밤의 담장 너머로 사라집니다 우리는 내일의 날씨를 예측할 수 있지만 내일의 악몽을 점칠 수는 없었어요 빗방울은 때로 격렬하게 내립니다 한 방울 뒤에는 수천만 우주의 모든 물방울들이 뾰족하고 오래된 첨탑 위의 편지는 전해 오는 이야기 속에서 날마다 더 아름다워져 갑니다 우리는 첨탑 위로 답장을 보내는 법을 모르고 얼음이 어는 순간과 얼음이 녹는 순간 슬픔의 음역을 영원히 알 수 없겠지만.
작성일 2008-05-30 댓글수 0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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