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재미나요
시
문장의 시선-
시 연우 - 애프터 이미지애프터 이미지 연우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 차 밑에서 죽은 고양이를 봤다 친구는 늘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팔을 괸 채 창밖 바다를 보며 오기로 한 사람들의 얼굴을 그리며 나의 얼굴은 상상 속에서만 정확히 떠올릴 수 있는데 도화지 위로 옮기는 순간 전부 흩어져 버린다고 했다 친구는 지우개 가루를 가리키며 얼굴은 사실 이런 것이라고 했다 내가 죽은 고양이를 볼 때 친구는 죽은 고양이의 미래를 볼 것이다 흙에 스며들고 하수구 밑을 흐르다 봄비가 되어 내리는 쓰러진 가로수의 뿌리로 되돌아가기도 하는 친구가 기다리던 사람들의 발끝에 겨우 닿은 길이 되기도 하는 미래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그것을 큰 비닐에 담아 흙에 묻었다 아니면 투명한 방탄유리 벽 너머에 박제하자고 기계처럼 견고하게 만들자고 사라지는 것들에게서 들리는 망가지는 소리는 무서우니까 쇠로 적힌 일기와 겨울바람 새어 나오는 악몽을 납땜하면 안전해지는 걸까 더 부서지기 전에 그래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비스듬히 걸으며 흙 속 뿌리로 돌아가지 못하는 유리 벽 뒤에서 얼굴 잃은 금속 소음이 되어 사는 미래의 친구를 생각한다 다음날 깨끗해진 골목에서 친구를 부르면 친구가 나타날 것 같다 차 밑에 손을 넣으면 젖은 흙냄새 골목 모퉁이를 돌며 길처럼 고요해지는 자세를 연습하고 그늘진 판잣집 문을 열고 들어가면 책상에 앉아 그림 그리는 친구가 있다 지우개 가루가 테이블 위에 흩어진다 이렇게 많은 얼굴이라니 조금 징그럽지 않아? 물으면 친구는 휘파람을 불며 이렇게 많은 얼굴들이 온다니 기쁘지 않아? 물었다 창밖 파도가 잦아들었다 친구의 뺨을 만지면 차갑고 선명했다 하지만 친구는 이런 건 얼굴이 아니라고 했다 선분으로 그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기록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우리는 잠시 말이 없다 약간 젖은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둔다 네 개의 희고 작은 발이 나란히 테이블 밑에 있다 매번 무섭고 이상하도록 늦게 도착해서 미안해 여기는 조용하구나 친구는 고양이를 고양이에게로 나무를 나무에게로 되돌릴 때라고 한다
작성일 2026-05-01 댓글수 0상세보기 -
시 연우 - TopographyTopography 연우 큰사람이 되렴, 어려서부터 어른들이 걸었던 아름다운 주문 주름은 온몸 되어 나는 정말 큰 사람이 됐고 몸이 이렇게 자라다니…… 칫솔로 이를 긁으면 잇몸에서 흐르는 모래 더 커다란 샤워기가 필요해 발치에서 개미들 수근거린다 길을 달리면 검은 뒤통수의 개미들, 끝없는 굴 속으로 도망친다 내가 재난이라니! 팔과 다리가 매일 아침 한 뼘씩 자란다 방에서 나와 걸음을 떼면 엄마가 종이비행기처럼 접힌다 펴지지 않는 선분 신비로운 보랏빛 무늬가 돋아나는 엄마 등도 온통 주름 축축한 솜처럼 누가 뭉쳐다 버린 구름처럼 엄마 여전히 바닥에 누워 계신다 눈을 마주치고 싶어서 몸을 접는다 두 번 네 번 여덟 번 (왜 더 접히질 않는지!) 반듯해진 끝에서 만나요 도시 밖으로 나가면 누군가 모퉁이를 접어 두고 간 숲이 나온다 미루나무보다 미루나무 그림자가 더 빨리 자라는 나의 등뼈 너머로 우거지기도 하는 숲은 집이 되어 나는 영영 커져서 산이 된다 숲 한가운데 누워 젖은 구름 덮고 잠들어도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기억은 모두 바깥의 꿈 끓는 솥에서 피어오르는 상한 옥수수 연기와 빗물 새던 집은 경험한 적 없다고 적는다 큰사람보다는 이름표 없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 잠들기 위해 침대의 태도를 이해하는 울고 있는 사람의 등에 딱 맞는 굴곡의 가슴을 가진 사람 텅 비도록 가득 찬 괄호가 불리는 순간을 기다리며 생일에는 가족들을 숲으로 초대했다 그들은 너무 커버린 나를 보지 못했다 낮에는 산책로를 걷고 밤에는 바위에 앉아 별을 봤다고 했다 며칠을 기다려도 내가 오지 않았다고 그랬다 나는 그때 밤이 나의 초능력인 듯 간만에 무서운 게 없고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들이 이렇게 커진 나를 자랑스러워하길 바랐다 그러나 가족들은 지친 얼굴로 이제 됐다며 돌아가려 한다 참을 수 없는 건 그들이 나의 등 밑에서 며칠을 보내다 내가 엎드려 울던 그 풍경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작성일 2026-05-01 댓글수 1상세보기 -
시 심선자 - 다면적 인성 검사다면적 인성 검사 심선자 하늘이 움직인다. 개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짖는다. 닭이 알 낳는 놀이를 하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당신에겐 전체 맥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자연스러운 대화가 어렵습니다. 의사가 말한다. 그게 고민의 시작점입니다. ㄴㄴ 는 네네가 아니라 노노입니다. 가까운 곳의 화분과 약간 멀리 서 있는 소나무 얼마나 자주 물을 주어야 하나요? 때를 자주 놓칩니다. 이유가 없는 게 이유입니다. 어쩌면 제 삶에 이유라는 게 별로 없는지도 몰라요* 당신의 어머니는 좋은 사람입니까? 나의 어머니는 좋은 사람입니다. 길을 걸을 때 바닥의 금을 밟지 않으려고 신경 쓰는 편입니까? 금을 만나면 뛰어넘기 위해 애를 씁니다. ㅇㅇ 은 응응이 아니라 우웩우웩입니다. 아주 많이 그런 편입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까? 남들 눈에 안 보이는 게 보인 적 있습니까? 당신이 숨겨온 것들 모두 여기로 가져와 주세요. * 영화 「The Canyon」 중에서
작성일 2026-05-01 댓글수 1상세보기 -
시 심선자 - 뿌려뿌려 심선자 여름이 빵 터지면 그 사이를 빨리 지나간다 손에 쥔 공을 움켜잡으면 손힘이 세진다고, 내가 무서워한 여름 폭우 속을 더 지나와야 한다고, 테니스 코트로 나를 밀어내는 자세로 그는 시작을 외치며 무서워하지 마 팔을 더 크게 벌려서 목을 휘감으면 목을 조르는 팔이 생겨나고 손목이 흔들린다는 말에 내가 흔들리고 있다 테니스 라켓으로 힘껏 공을 뿌리치면 공은 더 먼 곳으로 뿌려지지 않고 어디를 보세요, 공을 안 보고 공을 더 먼 곳으로 보내야 합니다 넘어가는 공은 보지 마세요 의지는 의지대로 넘어지려다가 (공을) 뿌려 (공은) 뿌려진 채로, 담을 넘어서 …려다 멈칫하고 오늘은 멀리 가지 않은 것들이 테니스장에 남았는데 어둠이 나를 밟고 지나가려다 그림자를 더듬고 있다 여름을 통과하지 못한 채 쪼그리고 앉아 흘러내리는 여름을 주워 담고 있다
작성일 2026-05-01 댓글수 0상세보기 -
시 사강은 - 맹물 샤워맹물 샤워 사강은 우리가 수감 중일 때 교도관이 말했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여길 나갈 수 없을 거야 그때마다 너는 내 귀 막으며 흘려들어 말과 경고가 묽어질 수 있을까 법과 체계가 적셔질 수 있을까 나는 가려워서 등을 긁었다 아침 체조 시간 운동장 너는 모래에 침 뱉어 진흙 만들고 먼지바람으로 충혈된 내 눈에 발랐지 바른 것 위로 모든 불어 넣을 수 있지 후 하면 숨결로 새 생명도 탄생시키지 너의 가장 더러운 것이 나의 가장 깨끗한 것보다 깨끗하고 빛나 더럽고 진득한 내 눈에서 맑고 묽은 것 태어나 뚝뚝 흐를 때 너는 받아다가 쑥쑥 잘도 키워냈지 정오 자율 종교 시간 너의 기도 한 바가지 퍼담아 내 귀에 뿌리면 모래 한 줌 우수수 떨어지고 내 등 뒤로 지옥불 데워지고 너 혼자 키워낸 것들 하나둘 던져버리고 등줄기에 땀 흘러 냄새가 나니까 나는 얼른 씻으러 가야 해서 어떻게 내가 널 저주할 수 있겠어 내가 죽인 인간들 전부 천국에 살려뒀는데 어떻게 네가 날 구원할 수 있겠어 나만 두고 가석방될 텐데 심심한 너의 구형은 맹탕 같아서 이윽고 천사가 벽을 뚫고 널 데리러 왔잖아 물거품처럼 넌 사라졌잖아 탈옥수 찾던 교도관 눈에 물 튀겨서 눈물 흘렸잖아 난 혼자 씻을 시간 없잖아 너 혼자 천국 갈 때
작성일 2026-05-01 댓글수 1상세보기 -
시 사강은 - 찬물 세례찬물 세례 사강은 출소 날이 되자 문이 열렸다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나를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다 밖은 너무 밝았다 어릴 때 분명 빨강으로 칠했던 태양의 흰 줄기 때문에 눈을 감았다 나는 씻지 않아 냄새가 났다 경적을 울리는 하얀 카니발 한 대 욱여넣어 주는 두부 한 모 세게 쥔 채 건네는 자판기 종이컵 커피 한 잔 울면서 얼른 가려 주는 마스크와 낄낄대며 흩뿌리는 밀가루 눈을 뜨면 주위에 온통 흰 것들이었다 하나의 흰 것이 한 사람씩 데려가고 있었다 나 혼자 검게 남아 냄새 풍기고 있을 때 흰 줄기 사이로 한 사람이 걸어 들어왔다 어디서 본 적이 있지만 전혀 모르는 어딘가 나와 닮았지만 아예 다른 어쩐지 먼 친척 같기도 한 그가 다가와 오백 밀리리터 생수 한 병을 건넸다 나는 그걸 마시기보다 부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냄새나고 가렵고 더럽고 엉망인 것들이 기어다녀서 까맣게 씻긴 적 없는 어깨만 겨우 적셨을 때 그는 친절히 뚜껑까지 따서 한 병을 더 쏟고 쏟고 쏟아지고 쏟아지는 젖지 않고 흘러내리는 여전히 같은 몸 일곱 병째 뚜껑을 열던 손을 붙들고 소용없다고 말하자 그는 태연히 더러우니까 씻어야 하고 물을 쓰면 된다고 희지 않고 투명하게 엎어주고 그는 돌아섰다 흰 속으로 희게 몇 년 만에 돌아온 집 현관문 앞에는 이 리터 생수 여섯 묶음이 놓여 있었다 그제야 나는 목이 말랐고 내 몸에서는 여전히 냄새가 났다
작성일 2026-05-01 댓글수 1상세보기 -
시 나하늘 - 일러두기일러두기 나하늘 ∙ 굵은 글자체로 된 부분은 원서에서 이탤릭체로 표기된 부분이다. 대문자 표기는 강조점을 찍는 것으로 대체하였다. ∙ 이 책의 원제는 다의적인 해석이 가능한 표현이다. ‘고통’ 또는 ‘사랑’이라는 직역을 피한 것은 의미가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가능한 건조한 표현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이 책이 하고자 하는 일이 “마음이나 생각 따위가 어느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독려하는 일이라면, 영어 번역본 제목이 저자의 의도에 가장 가까운 번역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곁에 삶이 널려 있다는 점이 삶이 실재한다는 사실을 의심하게 한다는 것, 또한 이와 관련한 저자의 후기 저술의 태도를 고려해 이 책에서는 지금의 표현으로 옮겼음을 밝혀둔다. ∙ 괄호( )는 원저자의 것이며, 대괄호[ ]는 이해를 돕기 위하여 옮긴이가 추가한 것이다. *김희영 역, 롤랑 바르트 저, 『사랑의 단상』의 '일러두기'로부터.
작성일 2026-05-01 댓글수 1상세보기 -
시 나하늘 - 과흡연자과흡연자 나하늘 나를 보러 온 친구가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어디서 흡연을 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디서든 피울 수가 있는 거야 여긴 흡연자들을 위한 도시구나 생각했지 이 도시와는 달리 길 가면서 흡연하기는 정서상 한국에서 엄격하게 금지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흡연자의 권리에 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친구는 좀처럼 웃지 않는데 만약 당신이 장수한 애연가 이름을 몇 개 알고 있다면 친구를 웃길 수 있다 먹일 수 있다 입힐 수 있다 씻길 수 있다 재울 수 있다 깨울 수 있다 살릴 수 있다 안을 수 있다 잊을 수 쓸 수 있다 졸업할 수 있다 그 장면에서 고다르가 이따만 한 시가를 피우더라 친구가 그렇게 환하게 웃는 건 처음 봤다 속죄받을 수 있는 사람 같아 친구는 담뱃갑 앞에 그려진 경고 사진을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몸이 아플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나는 말했다 그래서 우리가 친구라고 벌받을 것 같다고 단 거 먹은 거 그런 생각한 거 밤새운 거 오래 잔 거 미워한 거 좋아한 거 물 마신 거 꿈꾼 거 말한 거 말 못 한 그 장면에서 그 장면으로부터 웃게 만들 수 있다고
작성일 2026-05-01 댓글수 0상세보기 -
시 김한규 - 뒤에서뒤에서 김한규 뒤로 간다 뒤로 빠진다 뒤가 애초다 앞을 지우고 뒤가 앞이다 다시 앞을 없앤다 한 생 따위가 아니다 생을 절멸하였다 뒤였다 뒤에서 일어나는 것을 뒤에서 지웠다 막후의 막후로 뒤가 된다 뒤라고 말할 필요가 없는 뒤다 보이는 것이 없고 볼 것이 없는 뒤로 색을 갖지 않는다 말없는 빛이 섞인다 검은 것도 아니고 어두운 것도 아니다 갖지 않은 앞이 발생하는 것을 거듭 돌아서는 뒤다 여지가 없는 시원으로 뒤가 되면서 시원을 없애고 있다 뒷면으로 면의 속사정을 뒤로 지웠다 뒤의 일과 뒤가 필요한 배후를 갖지 않으며 뒤로만 있다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내놓을 필요가 없다 구걸이 없다
작성일 2026-05-01 댓글수 0상세보기 -
시 김한규 - 아닌 게 아니라아닌 게 아니라 김한규 졸음을 쏟아내며 오고 있다 사후 경직의 콘크리트 사이로 고양이의 발바닥보다 소리 없이 오고 있다 이불을 걷어찰 수도 일어날 수도 없이 온다 조명탄도 방화벽도 소용없이 오고 있다 어떤 것도 들리지 않고 보여줄 필요 없이 오는 중이다 겨우 눈을 뜨고 팔을 휘저어본들 오는 것을 중단하지 않는다 질문을 꺼뜨리며 오고 있을 뿐이다 흔적이나 표시 따위도 아무런 실천도 없이 오고 있다 냄새도 징후도 없이 움직이지 않는 채로 오고 있다 올 것이 오면서 오는 것을 모르게 오고 있다 가로막는 무엇을 막론하고 끊임없이 올 뿐이다 예정도 도착도 없이 오고 있는 것이다 일말의 예감이나 예언도 없이 한 치의 연착도 없이 오는 중이다 팽개칠 것도 담을 것도 없이 오고 있다 끝까지 끝이 없이 오고 있을 따름이다 무엇을 막론하고 오고야 만다 오는 것이 오고 있다 오고 나서도 올 것이 도착하지 않은 채로 있다
작성일 2026-05-01 댓글수 0상세보기 -
시 금시아 - 창조적인 날이면창조적인 날이면, 금시아 아마 한 때 안개이거나 노을이었을지도 모를 흉터와 얼룩 가득한 저 몸빛, 하염없이, 우두커니, 저 아래 아득한 호수 언저리를 오래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헉헉 기슭을 올라오는 먼 산 그림자와도 유독 친근해진다지 그 커다란 몸에서 물풀과 물고기 떼 헤엄치거나 다슬기들 흥얼흥얼 기어다니고 아무리 닦고 문질러도 마른 살갗에서 물이끼 향 진동하는 창조적인 날이면, 새들도 곤충들도 그 몸에 들어 은밀히 사랑을 하고 간다지 삐뚤빼뚤한 고대 문자 같거나 벌레가 한입 베어 먹고 남긴 것 같은 문양들 넝마처럼 피어있는 총성들은 애면글면, 오묘하고 신비한 단 한 번도 멈춘 적 없는 지상에서 가장 의심스러운 꽃들의 미로라지 총알 바위*, 전장을 지나는 계절의 모진 배후에도 그저 묵연하고 처연한 그 이름, 시간은 무위, 라고 부른다지 * 강원 춘천 배후령에 있는 총알 바위
작성일 2026-05-01 댓글수 0상세보기 -
시 금시아 - 공기 베틀공기 베틀* 금시아 재채기가 났습니다 첫울음이 태어났습니다 마당가 감나무와 집오리 한 마리가 눈이 맞았습니다 눈이 맞는다는 것은 낯선 두 세상이 체온과 간격과 모양을 엮어 또 하나의 신탁을 짓는 일입니다 공경 말고는 어떤 다정도 절제한 사건은 완벽해서 그들의 신탁은 조화로웠습니다 폭풍우가 휘몰아칩니다 빈번한 시행착오입니다 좀체 종잡을 수 없어 함부로 흐트러지거나 뒤섞여버린 공기는 혹독하고 무심합니다 똑같은 밀도의 이야기가 없어 무적의 가벼움은 때때로 세상을 벌거벗기거나 실격시켜 버립니다 그들은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두 이야기는 분리되었습니다 지그시 감은 눈 속으로 휘청휘청 이야기가 지나가면 눈물은 작은 재채기에도 저 멀리까지 번집니다 기쁘거나 슬프거나 상관없습니다 평온하든 불평하든 또 태어나고 흩어집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무의미가 의미일까요 태어나고 사라진 마당의 질서는 잔혹동화일까요 낮과 밤이 태어난 모든 첫 숨 이야기, ‘공기 베틀’입니다 감나무에 감꽃 흐드러지고 오리들 모여 맛있게 쪼아 먹고 있습니다 뭉쳐지면 재앙 같은 공기라 해도 간절하면 기적도 빈번합니다 전화벨이 울립니다 첫울음을 파툼이라 배웁니다 * ‘공기 베틀’ - 조선 갓셜 『스토리 애니멀』에서 인용
작성일 2026-05-01 댓글수 0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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