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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극장

  • 작성일 2024-04-01
  • 조회수 965

   원형극장


고은경


     부유하는 청춘의 페르소나. 그를 수식할 때 곧잘 쓰이는 말이었다.

   초미세먼지가 서울 전역을 뒤덮은 지 닷새째였다. 우리는 지하철역 앞에서 만났다. 두이는 마스크 끈을 최대한 당겨써서 눈 밑이 도드라진 모습이었다. 결막염에 걸린 그녀의 눈이 빨갰다. 안 그래도 큰 눈이 더 크고 돌출돼 보였다. 그녀가 쓴 마스크도 내 것보다 큼지막했다. 뭐가 저렇게 커 하고 생각하다 두이의 얼굴이 내 얼굴보다 작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보다 키가 크고 얼굴은 작은 두이. 나보다 시선을 끄는 매력이 있는 두이. 아무 옷이나 툭 걸쳐도 자신만의 아우라를 풍기는 그녀였다. 신경 써서 입어 봤자 어딘가 촌스러운 나와는 달랐다. 오늘도 두이는 언뜻 부조화한 느낌의 후드 티와 체크 스커트를 입었지만 꽤나 멋스러웠다. 싸구려 시계조차 두이의 손목에 둘러져 있으니 빈티지해 보였다. 공연 시작까진 이십 분 정도 여유가 있었다. 포근한 날이 반갑지 않다고 시시덕대며 우리는 극장을 향해 걸었다.

   두이가 예매한 연극이었다.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발레든 재즈 콘서트든 한 달에 한 번 공연을 보는 것이 우리의 공동 취미이자 최고의 호사였다. 두이는 라이브 연주가 있는 카페에서 피아노를 쳤고 나는 백화점 행사 매대에서 자잘한 액세서리를 팔았다. 아르바이트 수입으로 대형 공연을 관람할 때면 적잖이 부담이 됐지만 어릴 때부터 계속해 온 습관 같은 것이라 그만두지 못했다. 대신 우리는 다른 부분에서 소비를 아꼈다. 옷과 가방, 비싼 화장품 같은 물건들을 거의 사지 않은 덕분에 공연을 볼 수 있었다.

   “무슨 냄새지?” 두이가 물었다.

   “코 막힌 거 알잖아.” 나는 비염이 심해 냄새를 잘 맡지 못했다.

   “시궁창 냄새 같기도 하고, 구려.”

   아까보다 시야가 흐려져 있었다. 공기가 뿌옇다 못해 누런빛을 띠었다. 두이는 그 공기에서 냄새가 난다며 툴툴거렸다. 찌푸린 얼굴을 보자 가면의 뚫린 곳으로 튀어나온 코처럼 기억 하나가 불거졌다.

   “초등학교 때 기억나? 우리 연극했던 거. 두이 넌 왕이었고 난 요리사였잖아.”

   “그래, 기억나. 근데 네가 왕 아니었나?”

   “아냐. 내가 던진 닭다리가 네 얼굴로 날아갔었어.”

   “맙소사, 그랬지. 그 기름진 게 내 뺨을 맞혔었어.”

   “애들이 어찌나 웃어댔는지. 그런데도 넌 눈 하나 깜짝 안 했어. 내 사과를 받으면서 구린 느낌을 생생하게 얼굴로 표현했지. 그때 내가 무슨 생각 했는지 알아?”

   “무슨 생각?”

   “두이는 큰 인물이 될 거야.”

   “큰 인물은 개뿔. 입에 침이나 바르고 얘기해.”

   전깃줄에 까마귀 떼가 앉아 있었다. 먼지구름을 몰고 온 전령들처럼 촘촘하고도 기괴한 모습이었다. 까마귀 너머 멀찍한 곳에선 신축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렇게 먼지 잔뜩 낀 날 어떻게 작업을 하는지 뭔가를 파내고 깨부수는 소음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가림벽 광고에 그려져 있을 대단지 조감도는 희미하기만 했다. 두이가 까악 소리를 냈다. 전깃줄에 앉은 새들이 꼭 아파트 완공을 기다리는 조합원들 같다고 했다. 우리는 허공을 응시하는 까마귀들 밑에서 걸걸한 소리로 웃었다.

   두이의 얼굴에 닭다리를 맞힌 건 실수였다. 그러나 그 순간 남몰래 느낀 감정이 묘했다. 얼굴에 전기가 오른 듯 솜털이 일어서던 감각. 닭다리가 교실 바닥에 떨어지고 두이가 제 뺨을 매만질 때 밀려오던 찌릿함. 나는 당황스러워 도화지로 만든 요리사 모자를 고쳐 썼었다. 이런 걸 느껴도 되나. 정당한가. 두이는 같은 반 친구인데. 결국 닭다리를 주워서 있어야 할 자리에 놓은 사람은 두이였다. 의연하게 왕 역할을 마친 뒤에야 얼굴에 묻은 기름기를 닦아내는 두이의 모습이 경이로웠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기꺼이 두이를 따르고 그녀에게 휘둘려도 좋다고 생각한 것은.

   “눈은 괜찮아?” 자꾸 눈을 비비는 두이를 보며 내가 물었다.

   “눈곱이 껴. 이런 꼴로 이오를 만나고 싶진 않은데.”

   연극의 주인공 이오는 우리 둘 다 좋아하는 배우였다. 대표작 <파우스트>에서 악마 역을 맡아 특유의 멜랑콜리한 이미지와 연기력으로 인정받았었다. 노래 실력이 뛰어나 뮤지컬 무대에 서기도 했다. 조연으로 활약한 영화 한 편에서도 그 존재감을 각인시킨 유망주였다. 이쯤 되면 더 큰 판에서 놀고 싶어 할 법한데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건 연극 무대라며 소극장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뾰족한 귀가 두드러진 얼굴.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분위기. 그러나 테두리 밖에서 테두리 안을 흘겨보는 듯한 눈빛과 웅숭깊은 첼로 선율을 닮은 목소리는 독보적이었다. 몸짓에는 계산된 강약과 그 자신도 통제하지 못하는 카리스마가 공존했다. 이오가 희대의 살인마를 연기하든 선량한 소시민을 연기하든 우리는 그를 이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극장은 이오의 모교 캠퍼스 내에 위치한 야외 공연장이었다. 건물 외벽에 연극 포스터가 붙어 있었는데 이오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학교로 들어가는 사람들과 큰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 갈피를 못 잡고 헤매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먼지 농도가 더 짙어졌구나 하는 감이 왔다.

   매표소에 사람이 없었다. 공연장도 뿌예서 텅 빈 것처럼 보였다. 웅성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객석이 가득 찬 걸 몰랐을 것이다. 빈자리를 찾아가다 누군가의 발을 밟고 말았다. 그 상황에선 발을 밟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간신히 자리에 앉았지만 무대 역시 안개로 가려진 형국이었다. 우리가 이오를 볼 수 없듯이 이오도 우리를 볼 수 없을 터였다. 얼마쯤 기다리자 단상 쪽에서 기척이 났다. 연극 관계자인 듯한 사람이 마이크에 대고 아아 했다.

   “정말 죄송하지만 오늘 공연은 못 할 것 같습니다.”

   낯익은 목소리였다. 객석에서 작은 환성이 터져 나왔다.

   “열심히 준비했는데 이런 말씀을 드리게 돼서 속상하네요. 주최 측에서 환불이나 교환 처리를 해드린다고 하니 안전하게 돌아가시고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눈앞에 두고도 이오를 볼 수 없다니. 그러나 지금껏 들어온 그의 말소리와 노랫소리를 통틀어 가장 매력적인 음성이었다.

   너도나도 휴대전화 손전등을 켰다. 이오는 무대에서 내려가고 없었다. 두이와 나는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 공연장 밖으로 향했다. 중국발 영향이 분명 있잖아. 북서풍 길목에 차단 숲을 만들어야지.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며칠째 바람이 안 불더라고. 공기 순환이 안 되는 거야. 나는 뉴스에서 대기과학자란 사람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다른 환경 문제와 똑같아요. 사업장이든 개인이든 덜 쓰고 덜 버리려 하는 것이 미세먼지 해결의 실마리지요. 그러나 내 발밑을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에 이르자 누구의 말도 곧이 믿을 수가 없었다.

   계단을 오를 땐 아찔해서 식은땀이 흘렀다. 칸들이 제법 높아 힘에 부쳤다. 발을 헛디디기라도 하면 너나없이 굴러 떨어질 태세였다. 두 손 두 발을 다 써서 기어오르다시피 했다. 나만 그렇게 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가까스로 맨 위 칸에 올라섰을 때 뒷사람이 밀어 앞에 있던 두이와 부딪쳤다. 두이가 중심을 잡으려고 몸에 힘을 주는 것이 느껴졌다.

   학교 밖도 온통 잿빛 세상이었다. 건물도 사람도 윤곽만 보일 뿐이었다. 가시거리가 몇 미터나 될지 가늠이 안 됐다. 극장에서 밀려 나온 사람들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그냥 거기 앉아 있을걸. 이거 다 걷힌 다음 움직여도 됐잖아. 에이, 언제 걷힐 줄 알고 기다려. 두이와 나는 술렁거림을 뒤로한 채 지하철역 방향으로 걸었다.

   “먼지 때문에 행사 매출 안 나온다고 걱정했을 때보다 더한데.”

   “공연장에서 무슨 일 생기는 줄 알았어. 이렇게 나와서 천만다행이야.”

   다행이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쿵 하고 큰 소리가 났다. 차들이 부딪친 것 같았다. 귀를 찢는 타이어 마찰음이 이어지더니 또 한 번 쿵 소리가 울렸다.

   “까딱하면 우리도 치이겠다.”

   두이와 나는 최대한 벽 쪽으로 붙었다. 우리처럼 걷고 있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앞서가는 두이에게 멈출 의향은 없는 듯했다. 어디든 안에 들어가자고 할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별안간 몸을 휘청였다. 도도록한 뭔가를 밟은 것이다. 무릎을 쭈그리고 그걸 주워들었다. 뾰족한 귀였다. 파란 보석이 피어싱 된 사람의 귀. 도넛형 귀걸이의 정중앙에 사파이어가 박혀 있었다. 냅다 소리를 지르고 던져버리지 못한 이유는 그 귀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아서였다.

   “왜 그래?” 두이가 걸음을 멈추고 되돌아왔다.

   “귀를 주웠어.” 나는 목소리를 낮췄다.

   “귀? 사람 귀 말야?”

   “응, 사람 귀.”

   “그럼 그게······.” 두이의 빨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파이어는 이오의 탄생석이었다. 그의 귀만 들여다봐 온 건 아니지만 탄생석으로 피어싱 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알파벳 ‘O’의 한가운데서 파란 보석이 퍼뜩 빛났다. 다른 쪽 귀에 ‘I’만 달고 있을 이오가 잃어버린 이니셜을 찾아 나설 게 틀림없었다. 두이가 스카프를 풀어 이오의 귀를 싸맸다.

   “무슨 일이지?”

   “얼마나 아프겠어. 빨리 찾아서 붙여 줘야지.”

   “대체 누가 잘랐을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왜 아니야? 나쁜 놈한테 당한 거면.”

   “이오 스스로 잘랐을 수도 있지.”

   나는 ‘이오가 왜’ 하고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망설여졌다. 두이는 꽁꽁 싼 귀를 소중히 가방에 넣었다. 언젠가 자신의 목소리 연기를 들려줘야 한다고 했다. 그것을 한쪽 귀로만 듣게 할 순 없다고도 했다. 두어 번 헛기침한 뒤 샤프하면서 진중한 남자 목소리로 ‘자넨 미치광이야’ 하는데 흡사 고갱 같았다. 오래전부터 성우를 꿈꿔 온 그녀였다. 한때 성우 학원을 다닌 적도 있었다. 그러나 경쟁률이 상상을 초월했고 얼마 안 되는 자리마저 유명 연예인들이 차지하는 경우가 빈번해 입지가 좁았다. 이젠 AI까지 성우 역할을 대신한다고 난리였다. 두이의 목소리는 한 번 들으면 잊지 못할 만큼 독특한데. 어떤 역할을 맡아도 감쪽같이 해낼 텐데.

   한번은 두이가 연기를 해서 나 대신 알바비를 받아 준 적도 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공연 리뷰를 올리는 일이었는데 약속한 날이 지나도 돈이 들어오지 않았다. 한차례 만나 본 담당자는 급여 떼먹을 인상은 아니었다. 바빠서 잊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덤덤함이 오래가지 못한 이유는 몇 푼 안 되는 수입이 내 생활에 퍽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말해야 하나 기다려야 하나 속을 끓였다. 먼저 말을 꺼냈다가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건 아닌지, 다음번 일할 기회를 놓치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됐다. 내 사정을 들은 두이가 바로 전화를 걸었다. 아주 고상한 목소리로 말이 되게끔 고위층 사모님 행세를 했다.

   양해는 개나발 양해! 목소리 톤을 유지하며 그렇게 말했을 때 흠칫 놀랐다. 두이 안에 다른 사람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물러서지 않았고 무서울 게 없어 보였고 위협적이기까지 했다. 두이와 닮았지만 결코 같지 않은 사람. 해묵은 사진 위의 먼지를 불어 날리듯이, 깊은 데서 파낸 뼈 마디마디를 솔로 털듯이 그를 지켜보았다. 전화를 끊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돈이 들어왔다. 비열한 자식이네. 두이가 휘파람을 불었다. 우리는 원 플러스 원 마라탕을 시켜 혀가 얼얼하도록 먹었다.

   길 건너편에서 뭔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몇몇 사람이 고함치고 탄성을 내질렀다. 눈에 안 보여도 거리를 휘젓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이오를 찾아야 하는데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쪽으로 건너오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렸다. 두이가 내 팔을 잡아당겼다. 다시 급하게 걸음을 옮겨야 했다. 인적이 뜸한 곳에 이르러 극장 측에 전화를 넣었다. 받는 사람이 없어 이오의 소속사에 알릴 생각도 해봤다. 두이가 꺼림칙하다며 차라리 큰길가 대학병원에 가서 묻자고 했다.

   위쪽에서 까마귀들이 울었다. 유리 깨지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맞는 길을 가고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이런 날 밖으로 나온 게 후회막심이었다. 그러나 이오에게 귀를 돌려줘야 한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어느 건물에선가 환풍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더 높은 곳에서 들려온 프로펠러 소리가 환풍기 소리를 덮었다. 서해 상공을 난다는 먼지 관측 항공기가 여기까지 왔나. 탄소를 돌로 바꾼다던 초대형 공기청정기는 어떻게 됐지. 거대한 청정기가 미세먼지를 빨아들이면 우리는 수색 항공기에 올라 이 잡듯 이오를 찾아다닌다. 그런 상상을 하는데 뿌연 공기가 느리게 일렁였다. 수색이 만만할 것 같아? 조소하듯 저지하듯 군데군데 끈적하고 미끈해 보였다. 누런 공기 방울 하나가 내 뺨에 와 닿았다. 손가락으로 찔러도 터지지 않았다.

   “공기의 딸들은 하늘로, 하늘로 날아갔습니다.”

   두이가 중얼거렸다. 우리가 본 무수한 공연들 중 하나는 <인어공주>가 아니라 <공기의 딸들>이었다. 안데르센의 원작에서 인어공주는 물거품이 되지 않았다. 왕자를 찌르지 않았고 신부의 행복을 깨뜨리지도 않았다. 인간을 위해 좋은 일을 하겠다 마음먹곤 공기 요정으로 거듭났다. 사랑에 눈먼 바보인 줄 알았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인어공주에겐 이상이 있었다. 두 다리를 얻어 바다 밖 미지의 세상을 걸어 보고 싶었다. 죽은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영혼이란 걸 얻어 지고하게 가꿔 보고 싶었다. 인간이 되어 인간 왕자에게서 사랑과 영혼을 나눠 받고자 했지만 결국 자신의 순수함으로 이상에 닿았다. 인간 세상보다 높이 있는 천상에까지. 두이와 나는 그녀가 사랑스러웠다. 그런 그녀가 지금은 아파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두이처럼 눈곱을 떼어내고 나처럼 코를 들이마시진 않을까. 어떻게 된 공기 요정인데.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속상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앞서 걷던 두이가 갑자기 멈춰 섰다. 그 바람에 두이의 뒷목덜미에 코를 찧었다.

   “밟혔어.”

   “뭐?”

   “까마귀가 내 머릴 밟고 날아갔어. 발톱이 느껴졌어.”

   “까마귀인지 비둘기인지 어떻게 알아.”

   “아까 전깃줄에 앉아 있던 놈들 있지. 그놈들 중 한 마리일 거야.”

   “오늘은 참 별일이 다 생긴다.”

   “까마귀 발톱은 한 번이면 충분한데.”

   누군가 뒤에서 부딪혀 왔다. 까마귀가 아니라 성인 남자였다. 체구는 작은 편인데 몸이 퍽 단단했다. 그가 비틀거리며 목쉰 소리로 미안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남자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걸음을 뗐다. 얼마쯤 가고서야 한쪽 어깨에 멨던 내 크로스백이 없어졌다는 걸 깨달았다. 고작 삼만 원짜리 가방이지만 휴대전화와 신용카드가 들어 있었다. 단말기 할부금이 얼마 남았더라. 카드는 결제일 이후 한 번도 안 썼지. 까마귀 타령을 하다가 가방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었다.

   “할일이 있어.” 두이를 불러 세웠다.

   두이의 휴대전화로 분실신고를 했다. 고객센터 번호를 검색하고 키패드를 누르고 신고 절차를 밟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통화를 마쳤을 땐 진이 다 빠져 있었다. 전화기를 쥐었던 손이 축축했다. 우리를 둘러싼 공기도 눅진하기만 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았고 조금 덥게 느껴질 정도였다. 두이가 가방을 뒤져 구멍이 여러 개 뚫린 물건을 꺼냈다.

   “이걸 깜박했네.”

   플라스틱으로 된 오카리나였다. 피아노만 치는 게 아니라 오카리나도 불 줄 아는 나의 친구. 두이가 <레 샹젤리제>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 그런 걸 부냐고 한마디 하려는데 듣다 보니 이오도 부른 적 있는 곡이었다. 한 차례 출연한 음악 방송에서 꿈꾸듯이, 행복한 여행자를 연기하듯이 노래했었다. 혹시 그의 한쪽 귀에도 이 연주가 닿을까. 들으면 다른 쪽 귀를 찾으러 오지 않을까. 마음을 살짝 내려놓고 휘파람으로 선율을 따라갔다. 어느새 눈앞에 격자형의 에펠탑이 세워졌다. 파리의 미세먼지로 흐릿했지만 에펠탑은 에펠탑이었다. 서서히 먼지가 가시고 철탑이 선명해졌다. 몇 년 전 우리는 초특가 에어텔 패키지로 서유럽 배낭여행을 떠났었다. 파리 뭐 별거 없네. 꾀죄죄한 꼴을 하고 샹젤리제 거리를 걸으면서도 스스럼없이 그런 말을 뱉을 수 있었다. 서점과 향수 가게에 들러 아무것도 사지 않았는데 세상을 다 가진 사람들처럼 웃어 젖혔다. 몽마르트르에 가서야 로트레크의 그림이 담긴 엽서를 한 장씩 고르고 언덕에 퍼질러 앉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남자아이 두 명이 오카리나를 불었다.

   인생에 몇 번 오지 않을 순간이었다. 하늘과 구름과 바람이 사이좋은 형제들처럼 어우러졌고, 그 풍경을 대하는 최고의 자세는 그저 넋을 놓고 바라보는 것이었다. 청아한 음악이 귀까지 즐겁게 해줘서 더없이 큰 선물을 받은 것 같았다. 그들은 <레 샹젤리제> 말고도 몇 곡을 더 연주했다. 제목은 모르지만 음색에 초록이 묻어나고 잎사귀가 돋아날 것 같은 음악이었다. 두이와 나는 말없이 귀를 기울였다. 연주가 끝나 앉아 있던 사람들이 드문드문 박수 칠 때에야 두이가 내 얼굴을 살폈다. 울었어? 그제야 나도 모르게 울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두이는 기억한 것이다. 너무 좋으면 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겼던 것이다.

   “카페에서 오카리나도 불어 보지.”

   “사장 누나가 피아노 연주를 좋아해.”

   “그 사람이 중요한가?”

   “아마도. 사장은 바지사장 같고.”

   “누나란 사람은 어떤데?”

   “특이해. 늘 마스크를 끼고 우산 같은 양산을 써. 마스크 벗은 얼굴은 본 적이 없어. 어디가 아픈 것 같기도 하고.”

   두이는 무슨 말인가 더 하려다 멈칫했다. 악기를 가방에 넣고 지퍼를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마저 얘기해 봐.”

   두이의 손을 더듬어 잡았다. 그녀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거지같아. 사장 말이야. 자꾸 남은 뱅쇼를 먹이려 하는 건 어찌어찌 넘길 수 있는데······.”

   두이가 손을 빼려고 했지만 아귀힘을 더 주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몸속의 피가 빠르게 도는 것 같았다. 얼굴에 열이 올라 마스크를 턱까지 내려야 했다. 혹시나 두이가 정신을 잃었던 건 아닐까. 몸도 못 가누고 무슨 개수작이냐고 소리치지도 못했던 건 아닐까. 그런 두이는 꿈에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오랫동안 다듬어 온 곡이 있어. 그러니까 나만 아는 내 자작곡이. 그걸 치는데 사장 놈이 허밍으로 따라 하는 거야. 등 뒤에서, 소름 끼치게.”

   두이가 작곡까지 하는 줄은 몰랐다. 물론 그녀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걱정한 일이 벌어진 게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그러나 정말 다행일까. 작곡 같은 걸 해본 적 없는 내가 두이의 두려움을 고스란히 느낄 순 없었다. 충혈된 눈을 연신 깜빡이며 악보를 채워 가는 그녀의 모습만은 뚜렷하게 그려졌다. 어째서 닭다리가 떨어질 때처럼 묘한 기분이 엄습하는지 나 자신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참고 버티는 건 사장 누나 때문이야. 그 사람이 종종 동생을 혼내 줘. 양산을 폈다 접었다 하면서. 한번은 그런 말을 하더라. ‘내 카페에서 연주하는 사람들은 다 아티스트다.’”

   또다시 허밍 짓거리를 하면 사장 누나에게 고해바칠 거라고 두이가 덧붙였다. 이상하게 목이 메어 그녀를 끌어안았다. 도리어 내 등을 토닥이던 두이가 답답한지 마스크를 벗어 던졌다.

   “‘아티스트’란 말은 나쁘지 않았어.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 없는데.”

   “아티스트 맞지 뭘.”

   “내가? 이오 같은 사람이 아티스트지.”

   “‘이오 같은 사람’은 또 없어. 이오는 이오 한 명뿐이야. 너도 그렇고.”

   두이는 두이 한 사람이다. 나는 그 사실을 잘 알았고, 그것이 점점 명징해지고 풍성해져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할까 봐 두려웠다. 꽃의 여왕 같은. 미지의 건축물 같은. 해가 지지 않는 밤과 같은. 두이의 잠재력이 궁금하면서도 모른 척하고 싶었다. 부러우면서도 껄끄러워 거리를 두고 싶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카페에 가보지 않은 건 그 때문이었다. 빛나는 모습으로 악기와 한몸을 이룰 두이 옆에서 사람들이 금세 싫증 낼 물건이나 파는 내 처지가 초라해질 것이 뻔했다. 그녀에게 고백하고 싶었다. 내 얄팍한 자존감을 지키느라 너에게 가지 않았다고. 네 재능과 가능성에 기꺼이 박수 보내지 못했다고. 그 음흉한 사장을 알아볼 기회를 놓쳐버렸다고. 나는 공기의 혼탁함에 기대어 입을 벌렸으나 끝내 말하지 못했다. 대신 두이를 안고서 네가 못 할 일 같은 건 없다고 속삭였다.

   그사이 먼지가 옅어진 것 같았다. 두이의 얼굴이 좀 전보다 선명해 보였다. 자신은 건재하다는 듯 웃음 짓고 있었다. 여기다 싶은 쪽으로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먼지가 약간 걷혔어도 안개 속을 헤매는 기분을 떨치긴 어려웠다. 바닥마저 물렁하게 느껴졌다. 하늘과 땅의 경계가 사라진 세상에서 우리의 겉과 속도 뒤섞인 듯했다. 역이 이렇게 멀었나. 걸어도 걸어도 목적지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엉뚱한 방향으로 와버렸는지도.

   잰걸음 소리가 가까워 왔다. 누군가 달려오고 있었다. 아니 이 상황에 달리기를 하면 어쩌자는 거죠? 두이와 내가 떨어질 새도 없이 그가 우리 사이로 뛰어들었다. 두이는 벽에 몸을 부딪쳤고 나는 중심을 잃은 채 넘어졌다. 바닥을 짚을 때 작고 뾰족한 것들이 손바닥에 박혔다. 몇 군데 피가 배어나는 게 보였다. 언제고 맡아 본 듯한 독한 냄새가 알싸하게 코를 뚫었다.

   “향수병이 깨졌나 봐.”

   “찔렸어? 유리 빼야 되는데.”

   두이가 코를 박고 내 손바닥을 들여다봤다. 그 손이 내 손 아닌 양 뜨악해하다 고개를 돌렸다. 화장품 가게의 쇼윈도가 박살나 있었다. 한때는 중국에서 온 관광객과 보따리상으로 북적였지만, 수요가 줄어든 데다 편집숍과 온라인 몰에 밀려 파리 날리던 곳이었다. 깨진 향수는 오크향 같았다. 내가 일하는 매대 옆에서 향수 매장 알바생이 종종 나눠주던 시향지의 그 향이었다. 아니, 훨씬 강한 냄새였다. 돌로든 둔기로든 창문을 부수고 독약 같은 향수를 집어 나온 사람은 관광객이 아닐 것이다. 두이가 고약하다며 투덜거렸다.

   어쩌면 이오는 이 거리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었다. 내 의견을 말하자 두이도 같은 생각이라고 했다.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하듯 귀가 든 가방의 끈을 쥐어 보였다. 유리에 찔린 손바닥이 찌르르했다. 이오의 파란 보석이 그의 귀에서 내 손바닥으로, 우리의 마음으로 옮겨왔다. 간간이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차가 다니긴 하는 모양이었다. 두이가 목청을 가다듬더니 마이크를 잡은 사람처럼 말했다.

   “네, 여기는 도심의 한 대학가입니다. 저는 지금 미세먼지로 뒤덮인 길을 걷고 있는데요. 얼마나 엉망진창인지 말도 못 해요. 이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는 검은새 양을 만나 봤습니다. 검은새 양, 심정이 어떤가요? 아아, 우리더러 시끄럽다 불길하다 갖은 모함을 하더니 이게 무슨 일이죠 깍. 검댕이 공기는 자기들만 마시는 게 아니니까 깨끗하게 돌려놓으라고 해요. 자, 옆자리의 검은새 군도 할 얘기가 있나 본데요. 흠흠, 우리 꼴 안 보겠다고 총을 쏘는 양반들도 계시던데. 스모그에 벌레 구덩이까지 퍼뜨릴 작정이 아니라면 총구녕에 이마 대고 미래를 당겨서 보시길 까악. 잘 들었습니다. 현재 이 지역의 미세먼지 수치는······.”

   두이는 대본도 없이 미세먼지 실황을 중계했다. 새된 소리와 굵은 소리를 잇달아 낸 그녀의 연기에 마음이 어수선해졌다. 전깃줄에 앉은 까마귀들이 올려다보였다. 오래 묵어 잿빛이 된 레이스처럼 고고하고 치렁치렁한 실루엣이었다. 덩치 큰 차가 물을 뿌리며 지나갔다. 차가운 물방울이 손등에 튀었다. 퍼뜩 장소가 눈에 익다고 느꼈다. 건물 간판을 찾아보니 아까 벗어났던 이오의 모교였다. 근방에서 울음소리인지 신음소리인지 모를 기척이 들렸다. 문 안쪽에 누군가 쓰러져 있었다. 그의 얼굴에서 피가 흘렀고 연기에 그을린 듯한 향이 풍겼다. 우리는 납작 엎드려 쓰러진 사람을 살폈다. 뒤이어 다급하게 서로의 얼굴을 마주 봤다.

   “이오잖아!”

   “눈 좀 떠요. 내 말 들려요?”

   두이가 손끝으로 이오의 뺨을 두드렸다. 이오는 눈을 가늘게 뜨나 싶더니 이내 감고 말았다. 무대 위에 섰어야 할 그가 왜 무대 밖에 쓰러져 있을까. 그것은 오늘 일어난 일들 중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구급차를 부르려 했으나 두이의 휴대전화가 방전돼 있었다. 두이가 이오의 얼굴에서 ‘I’ 달린 귀와 ‘O’가 있어야 할 자리를 확인했다. 나는 입고 있던 카디건을 벗어 이오의 잘린 쪽 얼굴에 둘렀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한쪽씩 맡아 그를 부축했다. 늘어진 이오는 호리호리한 체형임에도 꽤 무거웠다. 그에게서 풍기는 오크향이 낯설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죠?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입을 다물었다. 두이 역시 정신을 차리게 할 의도였는지 취소된 공연 이야기를 꺼내다 말았다. 우리의 어깨에 의지한 아티스트는 좀처럼 기운을 되찾지 못했다.

   “괜찮을 거야.” 두이가 숨 고르듯 말했다.

   “이오는, 우리의, 메피스토니까.” 나도 숨이 가빠 조금씩 끊어 대꾸했다.

   손에서 놓으면 고꾸라질 듯한 이오를 쳐다봤다. 그가 깨어나길 바라며, 제자리로 돌아오리란 여망을 담아서. 이오는 기억할까. 그가 무대 위에서 무슨 짓을 해도 우리는 눈을 떼지 않았었다. 대사를 어물댈 때도, 삑사리가 났을 때도, 광기에 사로잡혀 살인을 저지를 때도. 두이와 나는 그의 내면에 도사린 연기의 악마에게 오롯이 설득당하곤 했다.

   이오가 극 중에서 죽였던 인물은 아무 잘못이 없었다. 그는 원칙주의자였다. 가정에 충실했고 절제된 생활을 했다. 거래처와의 관계도 원만했으며 법 없이도 살 사람이었다. 백만장자는 아니지만 평생 돈 걱정은 안 해도 될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쿠알라룸푸르에서 살고 싶어 했다. 정확히 말하면 여름과 가을을 서울에서 보내고 겨울부터 봄까지 쿠알라룸푸르에서 지내는 여생을 꿈꿨다. 그리 나쁜 생각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그만한 재력과 추진력이 있었다. 가족들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오에겐, 이오가 분한 운전기사에겐 전혀 다른 문제였다. 우선 겨울부터 봄까지 그의 차를 몰 수 없었다. 일자리가 반토막 나는 셈이었다. 게다가 가장 추운 계절에서 가장 건조한 계절을 지나는 동안 그의 구레나룻과 턱선을 훔쳐볼 수 없었다. 수고했다며 다정하게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을 온전히 느낄 수 없었다. 생각만 해도 눈앞이 깜깜해졌다. 이오는 버림받은 기사였다. 그동안 쌓아 온 것은 다름 아닌 신의였는데 사랑을 송두리째 잃은 것처럼 절망스러웠다. 기사는 주군을 태운 채 목적지 없이 도주했다. 고백과 협박도, 싸움과 살인도 모두 차 안에서 이루어졌다. 급정거처럼. 경적소리처럼. 공연을 마친 이오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도려내고 싶다고 토로했었다. 사람을 꼭 닮은 인형의 목을 조르며 살인 연습을 했던 날들을.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사는 일은 너무 소모적이니까.”

   두이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오의 몸도 덩달아 움찔한 것 같았다.

   “나라면 도저히 못 할 일이야.”

   어떻게든 이오의 입장을 이해하고 싶었는데 말하고 나니 시답잖아서 스스로가 한심했다.

   “이오도 두려웠을 거야.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감정을 불러오는 건 번번이 실패하고 또 실패해야 할 가시밭길이니까.”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와 이오의 머리 위에 앉았다. 이오도 두이처럼 발톱을 느낄까. 먼지층이 두터워진 건지 까마귀 무게가 보태진 건지 어깨가 더 무겁게 느껴졌다. 두이와 나는 걸음을 멈췄다. 쫓아내기도 전에 먼지의 전령은 날아가 버렸다. 뭔가가 반짝하더니 까마귀와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저놈이 ‘I’를 물어갔어.”

   “귀걸이를? 기껏 ‘O’를 찾았더니.”

   그러나 귀걸이보다 중요한 것은 이오였다. 이오의 귀라고도 할 수 있었다. 지금 그에게 귀걸이가 뜯겨 나간 것쯤은 아픔도 아닐 터였다. 우리는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정신 차려요.” 두이가 애써 말을 이었다.

   “당신은 증명해 보였잖아요. 원하는 걸 갖지 못한 사람, 가질 수 없는 걸 가지려는 사람이 어떤 힘으로 움직이고 마는지.”

   두이의 말에 반응하듯 이오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우리는 온 힘을 다해 그의 손을 주물렀다. 번갈아 그의 이름을 호명하며 부축을 계속했다. 불빛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길에 몸과 마음을 맡기듯 걷고 또 걸었다. 우리가 이오의 눈이자 두 귀였다. 서로 의지하면서 이오와 함께 가려는 마음을 놓지 말아야 했다. 앞쪽에 큰 건물이 흐릿하게 드러났다. 드디어 병원이구나 싶어 한숨이 나왔다.

   입구까지 가는 길도 순탄치는 않았다. 바람이 강해지면서 회오리가 일었다. 불투명한 공기가 나선형으로 돌았다. 보이지 않는 손이 굴착기 삽으로 허공을 긁는 것 같았다. 꺼끌꺼끌한 모래가 눈에 들어갔다. 두이도 나도 곧게 서 있기가 버거웠다. 이오를 내려놓을 수 없어서 더 힘껏 붙들었다. 발밑이 흔들렸다. 누군가 땅속 깊은 곳의 종을 한 방 쳤다. 병원 밖에 혹은 안쪽에 묵직한 물체가 떨어진 모양이었다. 모래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저절로 기침이 나왔다. 우리가 몸을 뒤치자 바람도 허리를 비틀었다. 일생 품어 온 뭔가를 토해 낼 듯 맹렬했다. 이오의 머리칼이 공중으로 치솟았다. 그대로 두면 로켓처럼 날아갈 기세였다. 우리는 이오를 사이에 둔 채 서로의 어깨를 부둥켜안았다. 엉성한 벙커 안으로 바람이 몰아치지 않길, 이오와 그의 남은 ‘O’를 지킬 수 있길 빌었다.

   둘 다 힘이 빠져 바닥에 널브러질 즈음 바람이 잠잠해졌다. 모래와 먼지가 쓸려간 덕분에 시야가 트였다. 우리 앞에 우뚝 솟은 건물이 공사장의 아파트란 걸 알 수 있었다. 외장 작업이 안 된 건물은 먼지까지 뒤집어써서 거무칙칙했다. 뚫려 있는 공간마다 까마귀가 들어앉은 게 보였다. 우리를 내려다보는 본새가 근엄하기 짝이 없었다. 아파트의 주인은 바로 자신들이라고 위엄이라도 세우는 듯했다. 까마귀보다 기운 없는 이오는 여전히 어둠 속이었다.

   “병원은 어디지?”

   “잘못 왔어. 반대쪽이야.”

   “어째 같은 데서 뱅뱅 도는 것 같은데.”

   우리는 가까운 잔디밭에 이오를 눕힌 뒤 양옆으로 앉았다. 잠시 숨만 돌리기로 했다. 두이보다 내가 더 땀을 흘리고 밭게 숨 쉬었다. 이 상황에 이오가 깨어나면 부끄러울 것 같았다. 그가 다친 상황에 걸맞지 않은 감정이었다. 부끄러움에 또 한 번 부끄러워져 얼굴을 붉혔다. 두이가 택시를 잡기 위해 먼저 일어섰다. 나는 이오의 얼굴을 보다가 찻길 옆에 서 있는 두이의 뒷모습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익숙한 모습이 왠지 모르게 아뜩했다. 우리가 같은 꿈을 꾼 적이 있었나. 돌이켜보는데 어떤 기억이 섬광처럼 눈을 부시게 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둘이서 지갑 하나를 주웠다. 여기저기 긁히고 실밥이 풀어진 가죽 지갑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 물건의 빛깔과 생김새를 기억한다. 그리라면 그릴 수도 있다. 현금이 삼십만 원 넘게 들었던 것도 잊지 않았다. 당시 파출소에 갖고 가자고 한 쪽은 나였다. 두이는 내 말을 듣고 얼굴을 찡그렸다. 그 표정에 주눅 들어 눈만 끔벅이고 있었다. 나를 달랠 심산인지 두이가 멋쩍게 웃어 보였다. 책가방에서 잡지 한 권을 꺼내더니 접어놓은 부분을 펼쳤다. 뮤지컬 광고였다. 이 돈이면 두 사람 다 볼 수 있다고 무슨 대사를 치듯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집에선 학대를 받고 학교에선 왕따를 당하는 또래의 여자아이가 주인공이었다. 안개 낀 날이면 그 아이한테 예기치 않은 힘이 생겨 주변에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간다는 이야기였다. 가슴이 뛰었다.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보고 싶은 마음을 배기지 못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두이의 제안을 거절할 깜냥이 내겐 없었다. 우리는 돈만 빼낸 지갑을 우체통에 넣었다. 처음 들어간 번듯한 극장에서 좋은 자리에 앉아 공연을 보았다. 주인공이 슬픔과 희열을 동시에 노래하는 클라이맥스에서 학교의 창문들이 무너져 내렸다. 그 순간 우리는 같은 꿈을 꾼 것이 틀림없었다. 언젠가 무대에 올라 우리만의 연기를 하자고.

   깨져 나가는 창문 아래로 교생 선생이 지나던 길이었다. 그가 눈을 크게 뜨고 입은 벌린 채 위를 올려다봤다. 콧날이 긁히기 전에, 혓바닥이 베이기 전에 유리 파편들은 공기 방울로 바뀌었다. 다치면 안 될 사람을 위한 마법이었다. 학교 일보다 우주 만물에 관심이 많고 심성은 여려서 세상 만만하기로 소문난 교육 실습생, 그가 이오였다. 안경을 쓴 이오는 어눌하면서도 섬세했다. 유일하게 주인공을 지지했지만 기필코 학교의 주인들을 위해 능력이 쓰이길 바랐다. 그는 공기의 왈츠에 맞춰 춤추고 노래할 자격이 있었다.

   뒤쪽에서 희한한 음악이 들려왔다. 피아노 소리 같기도 하고 다른 건반 악기 같기도 했다. 나는 공사장 쪽으로 돌아서서 소리를 좇았다. 두이도 내 옆에 와 고개를 기웃거렸다. 놀이터가 될지 운동시설이 들어설지 모를 공터에 피아노 한 대가 나와 있었다. 높은 데서 던져진 듯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모양새였다. 더는 연주할 수 없을 것 같은데 누군가 느리게 건반을 눌렀다. 악기의 형체처럼 허물어진 소리가 났다. 솔은 솔이 아니고 라도 라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선율에서 삐딱한 애조가 느껴졌다. 애조가 하염없이 달려가는 지점이 어디인지 어렴풋하게 알 것 같았다. 망가졌음에도 울리는 악기가 우리 내부의 현들을 조율해 나갔다. 피아노 너머로 짙은 색 양산이 아른거렸다.

   두이가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어쩌면 피아노와 어우러질 오카리나였다.

   “이오를 깨우고 싶었어. 내 목소리 연기보단 이게 나을 거라 생각했어.”

   오래전의 닭다리가 포물선을 그리며 지금 이곳의 잔디밭 위로 떨어졌다. 나는 두이가 이끄는 대로 이오의 마음속을 유랑했다는 걸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우산 같은 양산이 있다면 펼치고 싶었다. 그 아래가 영원한 피난처는 아닐지라도. 먼 미래든 가까운 시일이든 접어야 할 순간이 올지라도.

   “극장은······ 어디지?” 두이와 내가 기다리던 목소리였다.

   뒤돌아봤을 때 이오는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고통스러운지 인상을 찌푸린 채였다. 카디건으로 싸맨 얼굴이 무력하고 불안정해 보였다. 그 얼굴이 우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객석에서 무대에 집중하듯 그렇게 우리를 좇았다. 어쩌다 귀를 잃어버렸는지 묻고 싶었다. 누구와 싸웠냐고. 당신을 몰아세운 경쟁자냐고. 아니면 까마득히 멀어진 당신 자신이냐고. 그러나 우리에게 귀가 있다는 말만 목청껏 외쳤을 뿐이다. 피아노 소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검은 건반의 샵과 플랫이 높디높게 튀어 올랐다. 박수처럼. 변조된 환호처럼. 오카리나가 떨어졌지만 두이는 줍지 않았다. 까마귀가 날아간 쪽에서 택시가 달려오고 있었다. 우리는 이오를 일으켜 세웠다. 그 차를 잡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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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4-01
알파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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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4-01
양파가 들어간 토마토 수프

양파가 들어간 토마토 수프 김나현 1 엄마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원룸 안에서 그 냄새를 해결하지 못할 거라고 했지만, 결국 양파가 들어간 토마토 수프를 끓였다. 수프는 메인 재료가 양파와 토마토가 맞나 의심이 들 만큼 동그란 기름이 둥둥 떠 있었다. 돼지고기에 붙은 비계 때문이거나 양파를 볶을 때 버터가 들어간 탓인 듯했다. “이렇게 먹어야 제 맛이야.” 제 맛? 양파가 들어간 토마토 수프에 과연 그런 게 있을까? 엄마의 기분에 따라 혹은 우리 가족의 재정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수프의 맛이었다. 그러고 보면 금전적 여유가 있을 땐 소고기가 잔뜩 들어가곤 했다. 여유랄 게 없을 땐 몇 조각의 고기만 들어간 야채수프에 가까웠다. 그 수프는 마녀 수프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다이어트 음식으로 각광받기 훨씬 전부터 우리 집의 시그니처 메뉴였다. 다른 집 엄마들이 된장찌개나 김치찌개를 특기로 내세울 때, 엄마는 양파가 들어간 토마토 수프를 주력으로 삼았다. 깊은 맛의 토마토 수프, 따뜻한 쌀밥, 그 위에 계란 프라이를 올리면 특별히 다른 반찬이 필요하지 않았다. 엄마의 수프에 특별한 비법은 없었다. 냉장고 안의 남은 재료에 양파와 토마토를 넉넉히 넣고 끓일 뿐이었다. 그래서인가 그 수프의 이름은 자연스럽게 양파가 들어간 토마토 수프가 되었는데, 어떤 이들은 종종 그것을 토마토가 들어간 양파 수프라고 부르기도 했다. 어쨌거나 내가 먹어 본 어떤 수프도 엄마가 만든 수프 맛을 따라오지 못했다. 이웃들이 엄마의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 해도 그 맛은 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것은 엄마의 장기이자 우리 집의 자랑이었다. 그 수프가 이제 내 신경을 건드렸다. 방 안에 겹겹이 쌓인 냄새 때문에 짜증이 밀려왔다. 어떤 냄새든 밀폐되면 지독해진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주방 후드의 환풍기를 켜고 침대를 밟고 올라가 창문을 열었다. 쌀쌀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들이마시자 어딘가 모르게 매캐함이 밀려왔다. 그건 이웃집에서 흘러온 담배 냄새 따위가 아니었다. 공기 질이 좋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도로변 오피스텔은 어쩔 수 없었다. 미세먼지가 있든 없든 주위는 옅은 안개에 휩싸여 흐릴 때가 많았다. “그만 내려와. 상이나 펴.” 접이식 탁자를 펼치고 엄마와 마주 앉으니 다섯 평 원룸이 꽉 차는 듯했다. 받침대에 냄비를 내려놓은 엄마는 할 말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편안히 수프 맛을 음미하기에는 엄마의 눈치가 보였다. 나는 무슨 소리를 들을까 내심 마음을 졸이며 먼저 입을 열었다. “저번 집보단 낫지 않아?” 그 집은 방충망에 벌레가 자주 들러붙었다. 작은 날벌레도 아니고 엄지만 한 크기였다. 그게 집으로 날아 들어오곤 했다. 오래된 주택의 2층집에 딸린 셋방이었다. 화장실은 밖에 있었다. 부엌은 없었다. 그에 비하면 여긴 화장실이 집 안에 있고 부엌도 딸려 있었다. 그러나 엄마는 줄곧 말이 없었다. 한동안 이어진 침묵에는 그 돈을 갖고 겨우 이런 곳밖에 구

  • 관리자
  • 202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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