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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의 딸들

  • 작성일 2025-01-01

   비비안의 딸들


유호민


   “금고 좀 비워 놔. 곧 갈게.” 

   남편의 전화는 길지 않았다. 그러나 그 짧은 통화에 모든 것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이 집 어디에도 피할 수 있는 공간은 없다. 고민할 여유는커녕 필요조차 없이, 결정의 순간이 떠밀려 왔다. 금고 속에 있던 수천 장의 종이를 상자에 옮겨 담으며 희빈 씨를 생각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이번 학기 수업이 시작하던 날이었다.


   ‘나는 xxx xxx xxx xxx 이다’

   화이트보드에 그렇게 쓴 강사가 돌아서서 수강생들을 마주 봤다.

   “나는, 여러분에게 시 쓰기를 가르쳐 줄 수 없는 시인 김인하, 입니다.”

   구립 도서관의 초급 시 창작반 첫 수업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다음 순서는 자기소개였는데 ‘구체적이고 창의적인 한 문장으로’라는 단서를 붙이자 강의실 안의 모든 사람이 고개를 숙였다. 강사는 나를 지목하고, 나는 수줍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초급 시 창작을 여덟 번째 수강하는 대치동 쌍둥엄마, 입니다.”

   수강생 몇 명이 작은 소리로 웃었다. 

   “저렇게 소개하시면 만년 초급을 못 면하십니다.”

   강사의 말에 폭소가 터졌다. 팔 년 전 시 창작 강의가 처음 열렸을 때, 강의실을 휘익 둘러본 그는 나를 회장으로 찍었다. 평균 연령 60세쯤 되는 강의실에서 그중 젊고, 그리고 반듯해 보이는 내 인상 때문일 터였다. 뭔가 민망해서 “회장은 다른 분이 하시고 저는 총무 할게요,” 했더니 그는 선선히 “그럼 총무 하세요,” 했지만 그걸로 끝, 나는 회장 없는 만년 총무가 되어 수업을 보조하는 경지에 이르게 된 거였다.

   분위기가 편안해지자 신입회원들을 한 명씩 지목해 나갔다. 대부분은 이름과 나이를 밝히는 소심한 자기소개, 일부는 조금 더 자세한 소개를 하고, 한두 명은 나름 참신한 시도를 하다가 괴상망측한 결과가 되곤 하는데, 희빈 씨는 그중 마지막에 속했다. 정확히 기억은 못 하지만 비 오는 사막에서 꼬리 잘린 전갈 황 희빈, 그런 식으로 스스로를 소개한 거였다. 잠깐 뜨악한 정적이 흘렀다. 강사는 곧 “황 희빈 씨, 잘린 게 아니라 숨긴 것 같은데요?” 은근히 추어 주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수업이 끝난 후 서둘러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시어머니가 오기로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식사 준비는 식당에 주문해 둔 요리를 포장해 오는 걸로 끝냈다. 신경 써야 하는 일들은 따로 있으니까. 삶이 편안해지는 요령 1호는 새로 산 비싼 물건들은 눈에 띄지 않게 하는 것, 더 중요한 팁은 숨겨야 할 물건은 가격만으로 정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새로 산 가방과 친정어머니와 같이 갔던 여행 사진 액자를 들고 드레스 룸으로 들어갔다. 

   남편 양복들 아래에 있는 금고. 가정용치고 꽤 큰 금고의 문짝을 열자 세 개의 서랍이 드러났다. 서류와 통장들이 들어 있는 맨 위 칸에 납작한 탁상용 액자를 넣었다. 두 번째 칸은 소소한 액세서리들로 자리가 없고, 제일 큰 마지막 서랍을 잡아당겼다. 

   부잣집 며느님은 금고에 넣을 게 그리 많다며? 친정엄마가 무슨 자랑을 하고 다녔는지 숙모가 빈정댔지만 그 서랍은 숙모 기대와는 달리 현금다발이나 보석이 아닌 A4용지가 가득 들어 있다. 맨 위에는 헨리 다거, 20세기 초중반 소설가 겸 화가였던 은둔자의 일대기가 놓여 있다. 습관처럼 읽어 나가다가 이럴 때가 아니지, 정신을 차렸다. 가방 넣을 공간을 만들기 위해 종이를 꺼내기 시작했다. 가벼움의 대표인 종잇장들도 수천 장이 되면 무겁다. 특히 종이에 적혀 있는 글자들이 묵직할 때는. 뭉치째로 내 손을 빠져나간 종이들이 내 발등을 덮으며 널브러졌다.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명품 백 따위를 위해 금고를 산 게 아니잖은가. 금고 속 아늑하고 안전한 공간은 내 종이들이 있을 자리다. 나는 종이를 주워 서랍 안에 차곡차곡 다시 눕히고 헨리 다거로 덮은 후 금고를 잠갔다. 

   일단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자 시어머니가 안방을 뒤지고 수납장들을 열어 보는 상상에 불안해졌다. 시어머니가 오면 안방을 차지하고 우리 부부는 유학 간 아들과 기숙사에 있는 딸아이 방으로 흩어져 잔다. 나는 딸애 방 옷장 안에 가방을 넣고 딸애에게 ‘할머니 오심. 엄마 보물 니 방 옷장에 보관^^;;’ 메시지를 보냈다. 사 온 음식들로 상 차릴 준비를 해 놓고 양파 하나를 팬에 볶아서 온 집안에 직접 요리한 듯한 냄새를 피워 놓았다. 집안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고속 터미널로 시어머니를 마중 나갔다. 시어머님의 아드님은 오늘도 늦게 귀가하시고 하루 종일 집에서 어머님 맞이할 준비를 한 며느리는 어머님과 화기애애 화목한 시간을 보냈다. 내가 구립 도서관에서 시 창작을 배우는 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xxx xxx xxx하고 싶다’ 

   두 번째 시간의 수업 주제였다. 강사는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솔직하게 말해 보라며 또 나를 지목했다. 그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무엇이었을까. 강의실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고 나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가방을 숨기는 짓으로 시작해서 닷새를 효도에 바친 후유증이나 풀어 볼까. 

   “나는 명품을 마음껏 지르고 플렉스하고 싶다.” 

   강사가 플렉스가 뭐냐고 물었다. 젊은 강사가 플렉스라는 유행어를 모르지는 않을 테고, 소위 국비 장학생들을 위한 배려였을 것이다. 정식 명칭 경로 할인 수강생들은 우린 귀가 어두우니 큰 소리로 말해 줘, 농담 같은 진담을 했다.

   “요새 젊은 애들 돈 사치하고 자랑하는 거요, 그걸 플렉스라고 하더라고요.”

   간단히 돈지랄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그러지 않는다. 정숙하게 그러나 강의실 뒤까지 다 들리게 큰 소리로 말하고 멋쩍은 척 호호, 웃음소리도 내주었다. 

   강사가 나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시 쓰기는, 내 안의 자기 검열자를 죽이는 걸로 시작됩니다.”

   그가 강좌 때마다 하는 말 중의 하나였다. 처음에는 교실 전체를 향해 하던 말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나를 쳐다보면서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건 나의 자격지심, 강사는 온 교실을 둘러보며 부연 설명을 했다. 무의식 속에 스스로를 검열하는 검열자가 있습니다, 그 검열자가 내 안의 진정한 감정을 검열하게 놔두지 마세요, 그 검열자를 죽이지 않고서는 진정성 있는 시를 쓸 수 없습니다···.

   여덟 번 강좌마다 들은 비슷비슷한 욕망들, 젊은 연하남과 찐한 연애를 해 보고 싶다느니, 남편과 아이들 없이 나를 위한 시간을 갖고 싶다느니, 한 명씩 말해 나가다가 하얀 레이스의 투피스와 모자, 심지어 하얀 레이스 장갑까지 맞춰 쓴 할머니 차례에 이르렀을 때. 이따금 있는 촌극이 벌어졌다. 

   “나는 지금, 여러분들에게 희망을 보여 주고 싶습니다.”

   결연한 태도로 그렇게 말한 할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 희망봉 너머 망망대해, 푸른 물결 흰 구름, 자작시를 외운 것이었다. 최근 남아프리카 여행을 하며 희망봉에 갔었는데 그때 느낀 것들을 시로 썼다나. “저는 여행기를 시로 쓰는데요, 작년에는 미국에 가서 자유의 여신상을 봤는데요,” 여차하면 브라보콘을 높이 든 녹색의 여신이여, 그때 쓴 시도 읽어 줄 기세였다. 강사가 지금은 수업을 계속해야 하니 다음 기회에, 조심스레 저지했지만 보기만 해도 근지러운 레이스 장갑을 낀 손을 내저으며 잠깐만요, 곧 끝나요, 막무가내였다. 강사는 다음 타자를 지목해 버렸다. 희빈 씨가 걸렸다. 

   “나는 노벨 문학상을 타고 싶다.”

   어이쿠. 경험상 그런 식의 대답을 해 놓고 키들거리는 신입 아저씨들은 기피 대상 1호였다. 염불보다 잿밥, 수업보다 회식, 아줌마들이 대부분인 모임에서 원맨쇼를 하다가 조만간 사라질 사람들이다. 그러나 여자들은 달랐다. 이런 여자들은 본인이 눈총을 받는 줄조차 모른 채로 끈질기게 출석한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여기 분위기는요, 그냥 무난하게 행동하는 게 무난해요,’ 충고도 해 주고 ‘가끔 회식이 있는데 문자로 공지를 드리니 항상 확인 부탁드리고요, 강제성 있는 건 절대 아니니 참석 안 하셔도 괜찮아요,’ 확실히 말을 해 주어야 한다. 자칫하면 친목질하고 회비 걷는다고 불평을 하다가, 심한 경우 민원을 넣는 만행을 저지른다. 나는 희빈 씨를 따로 만나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차나 한잔 같이하자고 제의하자 기쁜 듯이 수락하는 걸 보니 은근히 외로운지도.

   희빈 씨는 어깨에 커다란 에코백을 둘러메고 한 손에는 종이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돈이 필요해서 중고 거래로 팔려는 물건이 들었다고 했다.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머뭇대는 내게 희빈 씨가 느닷없이 결혼했냐고 물었다.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제 얼굴에 주, 부, 라고 커다랗게 쓰여 있지 않나요?”

   누구라도 나를 보는 순간 알아차린다. 웬만한 사람들은 살림 잘하실 것 같아요,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한다. 결혼한 지 이십 년이 되었고 대학생인 쌍둥이 남매가 있다고 하자 희빈 씨도 말했다.

   “저는 이혼했고 아이는 없어요.” 

   누구와 마주 앉든 어색하지 않은 나였지만 당황스러웠다. 

   “마트에서 일하는데 퇴근 후엔 피곤해서 아무것도 못 해요, 차라리 입주 도우미로 일하는 게 방세도 절약하고 시간도 많을 것 같은데···.”

   뭐라고 조언해야 할지 더 난감해졌다. 침묵이 거북해져 나답지 않게 실례가 될 수도 있는 질문을 해 버렸다. 평소 궁금했지만 묻지 않고 있었는데. 

   “이름이 독특하고 예뻐요. 본명이세요?”

   희빈 씨는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뜬금없이 물었다. 

   “혹시 비비안 마이어 아세요?”

   그러고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비비안 마이어는 사진을 찍으려고 남의 집 유모가 되었어요. 아이들을 산책시키면서 거리 풍경을 찍을 수 있으니까요···.’ 소위 아웃사이더 아티스트로 분류되는 사진작가 비비안 마이어에 대해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시 창작반에서 시인도 아닌 사진작가 이야기를 할 때는 최소한 상대방이 관심이 있는지 확인 정도는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희빈 씨의 이야기를 적당히 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새로운 학기에 적응해 가던 어느 날, 휴대폰 메시지 알림음이 연속적으로 울려 댔다. 오래전 수강했던 시 창작 강좌의 채팅방에 누군가가 무슨 공모전에서 수상했다는 소식으로 축포가 터져 있었다. 모두들 각양각색의 축하 이모티콘을 날리며 야단법석이었다. 나도 분주한 채팅방에 끼어들어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이런 자리를 그냥 넘기면 섭하죠, 총대를 메고 운을 떼자 물론이죠, 저도 참석이요, 호응이 오면서 축하연 인원이 구성되었다.

   도서관 문학 강좌 수강생 사회는 의뢰로 좁은 바닥이다. 도서관마다 작가 초청 특강, 독서 클럽, 여러 종류의 문학 강좌들이 있는데 강좌마다 친목 모임이 생기기 마련이고, 때로는 스터디 그룹 같은 게 결성되기도 했다. 인원이 빠져나가면 알음알음으로 충원도 하고 소문을 듣고 스터디 그룹을 찾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게다가 상당수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 발을 담그기 때문에 한두 다리만 건너면 아는 사람을 만나기 마련이었다. 축하연 모임 날 희빈 씨 이야기가 나왔다. 

   희빈 씨는 소설 반에도 다닌다는데 거기에서도 특이한 인상을 남긴 모양이었다. 오랫동안 함께 공부한 사람들을 다른 곳에서 마주쳐도 못 알아보는가 하면, 반대로 가까운 지인들끼리 모여 앉은 자리에 눈치 없이 끼어 앉는 일도 다반사. 친한 이들끼리 나누는 대화에도 불쑥 끼어든다고 했다. 희빈 씨 때문에 당황했던 에피소드가 하나둘 나오며 악의 없는 웃음판이 벌어졌다. 우습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한 이야기들 중 하나가 신경을 끌었다. 뭐 하나 꽂히면 다른 사람 반응은 눈에 아예 안 들어오나 봐. 전에 한 번은 나는 알지도 못하는 비비안 뭐시깽인가 사진작가 얘기를 막 늘어놓는데, 정말 나한테 왜 이러시는 거예요 하고 싶더라니까? 

   희빈 씨가 이야기하던 그 비비안 마이어를, 나는 알고 있었다. 헨리 다거에 대해 찾다가 알게 된 이름이고, 반대로 비비안 마이어를 검색해 보면 헨리 다거에 비교하는 글들을 흔히 보게 된다. 헨리 다거 소설 주인공이 비비안 가의 딸들인 것도 내게는 특별하게 느껴졌다. 비비안 마이어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도 찾아보았었다. 

   <Finding Vivian Maier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영화를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상세히 기억한다. 비비안 마이어는 일생 동안 목에 카메라를 걸고 아이들을 산책시키며 거리의 사람들을 찍었지만 작품을 발표할 기회는 전혀 없었다. 노년의 그녀는 의지할 데 없는 빈민이 되었고, 유료 창고에 보관하던 사진과 필름들은 상자째로 경매에 넘겨졌다. 영화를 만든 건 그 상자를 우연히 낙찰받은 청년이었다. 그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이 되살아나 나를 숨 막히게 했다. 그녀가 말년에 겪어야 했던 지독한 궁핍과 외로움도 무섭고, 인생을 바칠 만큼 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 인생을 바쳐 그 일을 한 끝에 사후에나마 얻게 된 성공을 미칠 듯이 부러워하는 나 자신도 무서웠다. 가능하다면 그 감정을 금고 속에 넣고 잠가 버리고 싶었다. 희빈 씨가 비비안 마이어를 언급했을 때 서둘러 자리를 뜬 것은 그 때문이었다. 

   

   다음번 수업 날에는 폭우가 쏟아졌다. 비를 뚫고 참석한 수강생은 겨우 여섯 명. 강사는 책상을 이리저리 밀어서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앉도록 했다.

   “오늘은 내 안의 검열자를 죽이는 실습을 해 보기로 하죠. 솔직하게 자기소개를 해 보세요. 솔직하게 말해도 안 죽어요.”

   이번에도 강사는 나를 지목했다. 하지만 8년 총무 경력에 이런 수업은 처음이었다. 나는 우물우물 대답했다.

   “저는, 쌍둥이 엄마예요. 교육열 높은 대치동에서 쌍둥이를 키우다가 아들은 유학 보내고 딸은 의대에 보냈습니다.”

   강사는 그게 다예요? 하더니 이 이상한 실습의 시범을 보였다. 저는, 하고 잠깐 말을 멈추더니 잠시 후 여덟 살 때 처음으로 도둑질을 했습니다, 하고 말했다. 엄마 지갑에서 동전을 꺼내거나 가게에서 사탕을 훔치는 어린애를 생각하고 미소가 떠오를 순간 그가 출신 중고등학교 이름을 말했다. 언제나 거침없는 그답지 않게 우물거리는 발음이어서 고동중고등학교인지 고봉중고등학교인지 잘 구분되지 않았다. 어느 쪽이건 처음 듣는 학교였다. 그는 힘든 일을 해낸 사람처럼 후우, 숨을 고른 후 천천히 말을 이었다. 

   “서울 소년원의 다른 이름이죠.”

   그렇게 시작해서 상처투성이 어린 시절을 짧게 회상한 강사가 다시 나를 보았다.

   “아, 저는, 저도,”

   나는 한참 머뭇댄 끝에 겨우 입을 열었다.

   “친정이 가난해요. 시댁은 부유해서, 괜히 눈치가 보이고··· 힘든 면이 있어요.”

   정말 그게 다예요? 하는 시선을 끝으로 강사도 더 이상은 나를 보지 않았다. 먼저 자원한 건 희빈 씨였다.

   “저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하고 결혼했는데, 몇 년 지나자 남편 마음이 바뀌었어요. 하지만 아이가 생기면 나는 완전히 사라질 것 같아서, 이 년 전에 이혼하고 혼자 살기 시작했어요.” 

   지난번에 내가 듣기를 거부했던 이야기를 하는 희빈 씨 등 뒤에 어두운 창문이 있었다. 창문에 그어지는 빗줄기가 빛나고 멀리서 번개가 번쩍였다. 먼 거리를 달리느라 번개보다 한참 늦은 천둥이 딴소리인 척 쿠르릉 작은 팡파르를 울렸다.

   다음 자원자는 첫날 희망봉을 읊던 레이스 할머니였다. 

   “나는 험한 인생을 살아왔어요.”

   그렇게 운을 떼고는 정말 험한 이야기를 한참 풀어놓은 후 레이스 장갑을 낀 두 손을 들어 보였다. 

   “그 흔적이 두 손에 고스란히 남아 있어요. 아무리 좋은 옷을 차려입어도 흉터투성이 거친 손이 내 과거를 그대로 보여 줘요. 그래서 이렇게 장갑을 낍니다. 이제 과거는 보지 않아요. 고생한 보람에 운도 따라 편한 노후를 맞이했고, 세계를 여행하고 시를 쓰며 살아갑니다.”

   숙연해진 강의실에 할머니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전에 유럽 여행을 하면서 여행 시를 써 둔 게 있는데 들려 드리고 싶네요.”

   할머니는 오 런던탑, 아아 베르사유를 시작했고 강사도 할머니를 막지 못했다. 

   

   예과 1학년 첫 중간고사가 끝난 주말 집에 온 딸아이는 할머니의 전화를 흉내 냈다. 네 엄마에게 돈을 주었으니 명품 가방 하나 새로 사라, 네 옷장 속의 가방은 중년용 브랜드니 엄마 드리라는 거였지만 ‘이 모든 게 다 할머니가 해 주는 거다’를 은근히 강조하는 시어머니 화법이 그대로 드러나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시어머니는 닷새 동안 아무 참견 안 하고 점잖게 있었지만, 떠나던 날 느닷없이 연지 가방 하나 사 줘라, 하며 큰돈을 주는 건 나 없을 때 손녀 옷장을 뒤져 봤다는 이야기. 딸애는 명품 백은 필요 없다며 현금으로 달라고 했다. 

   딸 연지는 나를 닮았다. 공부도 잘하고 야무진 데다가 얼굴까지 예쁜 딸애 덕에 학교에서도 은근히 대접을 받았고 학부모회에서도 신망을 얻었다. 쌍둥이 아들 연우는 좀 달랐다. 연우는 남편을 닮았고 학년이 올라가며 두 아이는 점점 격차가 벌어졌다. 시어머니가 사주인가 점인가를 보고 왔다며 연우는 제 누나와 함께 있으면 기를 못 편다고 떼어 놓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제안했다. 조기 유학을 보내는 게 어떨까요? 해외 유학을 보내는 이유치고는 전근대적이었지만 시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용을 대주겠다는 뜻이었다. 

   아들아이는 미국의 시누이에게 보내 남 보기 그럴듯한 유학생이 되었고, 오롯이 정성을 쏟은 딸애는 의대생이 되었다. 무능한 아들이 말아먹을까, 가난한 며느리가 친정에 빼돌릴까, 걱정하던 시어머니도 재산을 넘겨주기 시작했다. 친정 언니는 팔자가 늘어졌다고 부러워했다. 

   할머니 흉내로 나를 한참 웃긴 딸애는 교양과목 중 제일 인기 있다는 문학 수업 이야기를 시작했다. 

   “수필 과제를 엄마가 써 주는 애들이 있어. 기껏 수강 신청 성공하고 뭐 하는 건지.”

   “엄마가 써 줬는지 어떻게 알아?”

   그러자 딸애는 한 손에 있지도 않은 가상의 과제 종이를 들고 조용히 읽기 시작했다.

   “가족이 모두 외출한 고즈넉한 아침 시간, 햇살이 비치는 식탁에 혼자 앉아 차 한 잔의 여유를 누려 봅니다.”

   감상 넘치는 목소리로 한 문장을 읽은 후 손에 든 가상의 종이를 말아 쥐고 흔들었다.

   “이게 스무 살짜리 대학 신입생의 글입니까?”

   까랑까랑한 여교수 흉내에 배꼽을 잡는 내게 딸아이가 뜬금없는 제안을 했다.

   “나 어릴 때 엄마가 글짓기 봐준 거 기억나는데, 썩히기엔 재능이 아까워. 엄마도 한번 해 봐.”

   “엄마들이 숙제해 준다고 실컷 흉보더니 뭔 소리야?”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딸애는 손사래를 쳤다. 

   “문화센터에 글쓰기 교실 같은 것도 있을걸? 내가 하나 등록해 줄게.”

   가슴이 쿵쿵거렸다. 딸아이는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검색을 시작했다. 어쩌면 새로운 길이 열릴 수도 있다는 희망인지, 혹은 그토록 피하고 싶은 길로 떠밀려 갈지도 모른다는 불안인지,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온몸에 열감이 번져 나갔다. 시 쓰기를 배운다는 말은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학부모 모임, 동창회, 요가 강습, 아파트 주민회의 둘레길 걷기 모임, 모두 당당히 나가고 있지만 시 창작 강좌만은 비밀이었다. 얘, 쓸데없는 짓 하지 마, 나는 소심하게 항의하고 안방으로 들어왔다. 

   가슴이 진정되지 않고 점점 뜨거워져 드레스 룸으로 들어간다. 남편 양복 아래 금고를 열고 마지막 서랍을 잡아당긴다. 순국한 군인의 유해를 덮은 국기처럼 맨 위에 놓여 있는 종이 묶음을 집어 들었다.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읽기 시작했다. 비현실의 왕국을 창조자.

   ‘헨리 다거. Henry Joseph Darger Jr. 1892년 4월 12일~1973년 4월 13일’

   첫 장은 그렇게 시작한다. 미국 시카고 태생으로 4살 때 모친을 잃고 8살 때 고아원으로 보내졌다가 다시 정신병원에 강제 수용. 16살 때 병원을 탈출해서 평생을 청소부로 살던 헨리 다거의 약력이 적혀 있다. 그리고 그의 사망 후 집 안에서 발견된 것들이 다음 장에 이어진다.

   「비현실의 왕국에서(In the Realms of the Unreal)」,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헨리 다거가 평생에 걸쳐 집필한 일만 오천 쪽의 소설이다. 원제목은 「비현실의 왕국이라고 알려진 곳에서 어린 노예들의 반란으로 인해 야기된 글랜데코-에인절리니안 전쟁 폭풍 속의 비비안 걸스 이야기」. 가상의 행성에서 비비안 집안의 일곱 딸들이 어린 소녀 노예들과 함께 잔악한 지배자 존 맨리 일당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가 한없이 벋어 나간다. 그리고 수백 장에 달하는 삽화들. 화려한 꽃들과 기다란 뱀의 꼬리를 가진 날개 달린 괴수들, 아름다운 행성에서 동화 같은 나날을 보내는 소녀들, 그리고 존 맨리의 군사들에게 목이 매달리고 내장이 튀어나온 채 참혹하게 처형당한 소녀들의 모습이 이어지는 장대한 그림들.

   헨리 다거의 기록들을 한 장씩 넘기면 알 수 없는 불안감이 혈관 속을 흐르기 시작한다. 아차 길을 잘못 들면 헨리 다거의 삶에 도달할 것만 같은 서늘한 불안함이 나를 태울 것 같던 뜨거움을 식힌다. 나는 이 뜨거움이 시작하던 때를 기억한다. 

   

   처음 시 창작반 수업을 신청한 팔 년 전. 그 무렵의 나는, 아주 괜찮았다. 쌍둥이가 크면서 여유가 생긴 건 물론이고 찌질찌질 푼돈을 주던 시부모가 지원을 대폭 늘려 줬다. 친정의 친척들이 걔가 그렇게 잘 산다며, 부러워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학창 시절의 은사님과 친구들은 너는 뭐라도 할 줄 알았는데, 말끝을 흐렸고, 나는 자꾸 안 괜찮아졌다. 친정 오빠는 너는 배가 부른 거라는 진단을 내려 줬고, 시부모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게 내 눈에 보였다. 나는 아무도 몰래 시 창작반에 등록했다. 동네 도서관 무료 강좌, 죄짓는 것도 아닌데 왜 숨겨? 스스로에게 묻기도 했지만 답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고, 아들아이와 남편이 내 첫 시에 보인 반응은 역시나 내 짐작대로였다. 

   나의 첫 시는 아들아이의 컴퓨터에 저장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간 동안 아들 방에 있는 컴퓨터에 시 창작반의 첫 과제를 쓴 거였다. 그날 오후, 학교에서 돌아와 컴퓨터를 켜던 아들이 폭소를 터뜨렸고 남편이 문을 열고 기웃거렸다. 아이가 큰 소리로 내 시를 읽고, 남편이 그게 대체 뭐냐고 물었다.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나는 아이를 밀치고 마우스를 낚아챘다. 친구가 보내 준 거라고 둘러대고 삭제해 버렸다. 남편을 끌고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았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TV를 봤다. 남편은 내 친구가 썼다는 시에도, 시를 쓴다는 친구에게도, 아무 관심이 없었고, 평소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불안하고 불쾌한 중에도 수업은 다음 날 이른 아침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써 놓은 과제를 삭제해 버렸으니 다시 해야 하는데, 내게는 혼자 종이 한 장 펼쳐 놓고 글을 쓸 공간이 없었다. TV를 보던 남편은 소파에 앉은 그대로 하품을 하고 휴대폰을 꺼냈다. 그 당시 최신형 갤럭시 휴대폰, 까맣고 납작하고 얄밉도록 매끈한 표면에 남편의 손이 슥 스치자 아홉 개의 점이 나타났다. 남편이 내 쪽을 흘긋 보더니 자세를 바꾸는 척 몸을 조금 돌렸다. 휴대폰의 암호가 나에게 보이지 않도록, 이라고 생각됐다. 남편은 내게 휴대폰 비밀번호를 알려 주지 않았다. 은행 계좌는 내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휴대폰만 예외였고, 나도 모든 통장과 인감도장이 내 것인데 그까짓 휴대폰쯤은, 상관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반쯤 돌아간 어깨와 나를 가로막은 등짝을 보고, 나도 반대편으로 몸을 돌렸다. 내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을 스치자 나타나는 아홉 개의 점들에 잠금 해제 패턴을 그렸다. 아무도 보지 않는 내 우주가 열리고, 나는 휴대폰 메모장에 과제를 하기 시작했다. 

   태초에. 거북이 있었다. 

   브라마의 배꼽에서 연꽃 줄기가 자라고 

   검은 거북 한 마리 피어나 

   번쩍이는 등껍질엔 아홉 개의 점들 

   ‘실행하려면 잠금 해제 패턴을 그리세요’ 

   거북의 목소리에 나는 움츠러든다 

   검은 문 안의 갤럭시는 너의 우주로 흐르고 

   나는 홀로 그 문에 갑골문자를 새기나 

   뜻이 없는 문자에 거북은 답이 없고

   검은 문은 열리지 않아 나는 여전히 혼자 남다 

   이튿날 아침, 휴대폰에 쓴 과제를 A4용지에 옮겨 적고 열여섯 장을 복사했다. 회원들에게 한 장씩 돌리고, 강사의 탁자에 한 장을 올려놓고, 남은 한 장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회원들이 소곤소곤 인사를 나누는 동안 강사는 칠판에 단어들을 적어 나갔다. 사랑, 죽음, 영혼, 운명, 창조, 파멸, 영원, 어둠, 태양, 하늘, 별, 은하수, 우주, 고독, 외로움, 홀로, 아스라이, 아슴프레···, 많은 단어들을 적은 다음 강사가 단호하게 말했다. 

   “이런 단어들은 시에다 쓰면 안 되는 단어들입니다.”

   나는 내 과제 복사물에서 ‘우주’와 ‘홀로’를 찾아 두 줄을 그어 지웠다. ‘태초’와 ‘갤럭시’도 지웠다. 피드백 받은 것을 여백에 메모하자 흰 종이가 만신창이가 되었다. 실망스러웠고, 창피했고, 상처받았다. 다시는 시 같은 건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 저녁, TV 보는 남편 옆에 앉아 있다가 나는 또다시 내 휴대폰을 꺼냈다.

   나의 갤럭시에 들어오려는 자, 잠금 해제 패턴을 그릴지어다

   문을 지키는 거북과 암호를 나누고 그날의 일기를 적기 시작했다. 

   레이스 할머니가 여행 시를 쓰듯이 나는 그렇게 시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내 노트북을 갖고 싶었지만 노트북 갖고 뭐하게? 남편의 질문에 할 말이 없었다. 내 노트북을 사 봤자 남편이 화투 게임을 하려고 열어 볼 게 뻔하기도 했다. 일기는 종이에 써서 숨겨 놓고 시 수업 때는 그중 괜찮은 것을 골라 16장을 복사해서 수업에 제출했다. 내가 처음 쓴 시를 큰 소리로 읽으며 웃던 아들아이가 원망스러웠다. 내 안 깊은 곳에 아이에 대한 원망이 쌓이고, 둔한 아이도 그 눈치를 챘는지 점점 더 어긋나갔다. 얼마 후 시어머니의 점괘를 핑계로 아이를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다. 일기의 분량이 늘어나며 숨길 곳을 찾다가 대형 금고를 사고, 아무도 모르게 시 창작 강좌 초급반만 다니기를 8년째. 초급반을 되풀이하는 이유는 중급반 강좌는 남편이 집에 있는 저녁이나 주말에 하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매일 밤 잠을 설쳤다. 이렇게 아무도 몰래 시를 쓰다가 삼십 년쯤 지난 후, 늙은 내가 하얀 레이스 장갑을 끼고 금고 속에 있던 종이 뭉치를 꺼내 합평에 내놓는 악몽을 꾸었다. 혼자 있을 때면 오오 그 장구한 세월, 아아 그 찬란한 역사가 이어지는 시를 읽는 레이스 할머니의 자리에 머리가 허연 내가 구부정하니 서서 태초의 거북이가 어쩌구, 그 무렵엔 단종 되어 이름도 잊혀졌을 갤럭시가 저쩌구 읽고 있을 미래가 떠올라 무서워졌다. 갑자기 끼지도 않은 레이스 장갑이 가려워서 손등을 긁었다. 

   시 창작 수업 교실에서 희빈 씨가 보이지 않은 날, 나도 모르게 손을 긁고 있는 걸 깨달았다. 희빈 씨에게 무슨 일 있냐고 문자를 보내자 마트의 휴무일이 바뀌어서 시 수업을 취소하고 다른 도서관에서 소설 수업을 듣는다는 답이 왔다. 만나자는 제의를 하자 흔쾌히 좋아요, 하는 답이 왔다. 나도 모르게 입가가 올라갔다. 황희빈이 뭐라고, 혼자 속으로 불퉁거렸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손등의 근지러움이 가라앉았다. 

   약속한 날, 희빈 씨의 소설 반 수업이 있는 도서관 휴게실에서 기다리며 벽에 붙은 시화들을 보았다. 어르신 한글 교실 수강생들의 시가 전시되어 있었다. 한평생 문맹의 한에서 겨우 벗어난 노인들의 시가 초등학교 아이들 같은 서툰 글씨로 씌어 있었다. 작품 하나하나가 모두 진솔한 감동이 가득해서 대학까지 졸업하고도 시 쓰는 법을 배운다고 수업을 듣는 게 창피해졌다.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데 희빈 씨 목소리가 들렸다. 문해교실 시화전 처음 보세요? 제가 이 도서관에서 제일 좋아하는 거예요.

   두 번째 대화는 첫 번째에 비해 훨씬 나았다. 상대방은 아랑곳없이 본인 이야기만 하는 건 여전했지만 어차피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스스로도 모르는 상태였으니 상관없었다. 희빈 씨는 자기가 글을 쓰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했다. 

   “벽에 전지 다섯 장을 붙여 놨어요. 생각나는 걸 즉시 써 놓고 언제든지 한꺼번에 보려고요.”

   벽면을 메모로 도배를 한다? 다 쓴 글도 금고 속에 숨기는 나로서는 딴 세상의 이야기였다.

   “혼자 사니까 가능해졌죠. 전남편은 질색을 했어요.”

   그리고 희빈 씨는 또 비비안 마이어 이야기를 했다. 

   “본 가족과 인연 없이, 새 가족도 만들지 않고, 인간관계에 연연하지 않고 평생을 혼자 사진을 찍으며 살아갔는데 그 사진들은 인간미가 넘친단 말이죠.”

   그 말을 듣자 희빈 씨가 비비안 마이어에 관심이 많은 이유를 이해할 것도 같았다. 비비안 마이어와 본인을 넘나들며 한참 이야기하던 희빈 씨가 내게 작품을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작품이요? 작품이라 할 만한 게 없어요.”

   내가 쑥스러워하자 희빈 씨가 말했다.

   “본인이 좋아서 썼으면 본인이라도 작품 대접을 해 줘야죠.”

   집에 돌아와서 휴대폰 친구 목록에 ‘희빈 씨’를 들여놓았다. 그러고 보니 희빈 씨는 유일하게 그룹에 속하지 않은 ‘친구’였다. 내 친구들은 거의 모두 어떤 그룹의 일원으로 알게 된 사람들이었다. 학교 동창, 아이들 친구 엄마들, 이런저런 모임의 회원들. 나는 어느 그룹에서나 자연스럽게 섞여 들었고, 그 그룹의 모든 사람과 잘 지냈다. 그러나 내가 개인적으로 다가가 친구가 된 사람은 희빈 씨가 처음이라는 자각은 조금 놀라웠다. 

   

   주말에 집에 온 딸아이는 양손에 가득 짐을 들고 있었다. 

   “재수해서 연영과 가려고,” 

   기숙사 방을 정리해서 나왔단다. 

   “할머니가 가방 사라고 주신 돈으로 연기 학원도 등록했어.”

   너무 놀라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 흉내 잘 내는 거 엄마도 알잖아?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냐. 인간에 대한 통찰력이 있어야 되는 거야. 나 좋은 연기자가 될 자신 있어. 엄만 딸의 재능이 아깝지도 않아?”

   공부는 다 때가 있다고, 어떻게 들어간 의대인데, 졸업 때까지는 학교 연극반에서 활동하고 배우는 의사 면허 딴 다음에 하라고 권해 봤지만 똑똑한 아이에겐 통하지 않았다.

   “여배우야말로 때가 있지. 의사 면허 따고 인턴 레지던트 하면 서른인데, 서른 살에 시작해서 여주인공 엄마 역이나 하라고? 차라리 공부를 나중에 하는 게 낫지.”

   남편은 화를 냈지만 똑똑한 딸아이의 상대가 되지 못하고 나를 쳐다봤다. 어머니에겐 말하지 말아야겠지? 안절부절못하는 꼴을 보자 문득 딸아이의 선택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지 않은 길. 나는 그 길에 대해 아는 게 없지만, 그 길에 대해 알 것 같은 친구는 한 명 있었다. 

   “따님 문제라니, 아이도 없는 제게 무슨 상의를요?”

   의아해하면서도 희빈 씨는 반가워했다. 사람들 없는 곳에서 만나자고 했더니 자기 집으로 오라고 했다. 희빈 씨 같은 사람들은 자기 집에 사람을 들이지 않고 벽을 쌓을 거라 생각했는데 뜻밖이었다. 나는 새로 산 원피스를 입고 공들여 화장을 했다. 새로운 문을 두드리는데 예의를 갖추고 싶었다.

   희빈 씨의 집은 예상했던 것처럼 어수선했다. 벽에는 전지 여러 장이 붙어 있었다. 종이를 벽에 붙여놓고 메모한다던 그것이었다. 벽 가까이 가자 종이에 깨알같이 쓰인 글씨들이 보였다. 종이 한 장마다 하나의 이야기. 중심 서사의 흐름이 세로축에 쓰여 있고 세부 에피소드들을 각각의 위치에 적어 놓았다. 희빈 씨가 차를 준비하는 동안 하나씩 훑어보다가 마지막 다섯 번째에 이르자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배경은 문화센터 글쓰기 교실, 화자는 관찰자 입장에서 주인공을 보고 있었다. 그 주인공이 유복하고 원만하고 성실한 주부라는 걸 알아차린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뿌옇게 흐려진 글자들이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초점이 맞지 않아 읽을 수가 없었다. 언제 다가왔는지 나를 보는 그녀의 시선이 느껴졌다. 

   “재미있어 보이세요? 저도 제일 흥미로운 소재라서.”

   그녀는 빙글빙글 웃으며 나를 도발했다. 머리채라도 잡기를 원하는 걸까? 큰 종이의 마지막을 장식할 장면을 실제로 보고 싶어서? 인간관계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게 이런 걸 의미하는 거였어? 친한 척 내밀고 있는 찻잔을 엎어 버리고 싶었지만 물론 나는 그러지 않는다.  

   “아차, 중요한 일을 까먹고 있었네요. 가 봐야겠어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그녀, 황희빈의 집을 나왔다.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금고를 열고 내 비현실의 왕국 연대기를 꺼내 읽는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이야기들이 유려한 시어로 표현되어 있다. 내 상상력은 이 세상의 중력을 비웃으며 날아오르고, 내 언어는 진부한 정의를 깨부수고 세상에 없던 개념을 만들었다 해체한다. 내 안에서 나를 지켜보는 검열자의 시선을 우회해서 비현실의 왕국을 일으킨다. 안락함이 보장된 하루하루를 보낸 후 소파 한구석에 쭈그러져 숨은 채 손바닥보다 작은 휴대폰에 틱틱틱틱 고치고 또 고치던 나의 일기. 나는 금고 앞에 앉아 내 하루하루의 기록을 읽어 나간다. 사람들이 놀라고 두려워하고 역겨워할 나의 연대기, 나는 종이 속에서 숨어있는 이야기를 읽는다. 암호를 내놓지 않으면 산 채로 구워 먹으리라. 거북의 등껍질은 불길에 갈라져 터지고, 갑골문자는 스스로 암호를 새겨 다른 은하로 통하는 문을 연다, 나는 은하의 주인이 된다, 나의 시를 비웃은 왕자를 추방한다, 멍청한 왕과 멍청한 왕을 위해 나를 이용하는 모후를 목매달아 배를 가르고 창자를 꺼낸다, 날아오르는 내 날개를 잡고 매달리는 친정 식구들의 손목을 자른다.

   

   피가 나도록 손등을 긁던 나를 끌어낸 건 남편의 전화였다. 

   “금값이 떨어져서 어머니가 골드바를 사셨대,” 금덩어리 몇 톤을 샀다는 건지, “당신 금고 좀 비워 놔. 곧 갈게.” 남편과 시모가 금고를 열기 전에 내 시들을 치워야 한다는 뜻이었다. 고민할 여유도, 필요도 없었다. 내가 어떤 결정을 할지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나는 수천 장의 종이를 상자에 옮겨 담았다. 그러나 다시 상자를 열고 휴대폰 카메라에 한 장 한 장 내 시를 담는다. 수십 번 셔터를 누르다가 아직도 수천 장이 남아 있는 박스를 본다. 이 집 어디에도 시모의 지배를 피할 곳은 없고, 사진 한 장 못 남기고 폐지 수거함에 던져질 내 시들. 억울했다. 금괴 따위를 위해 금고를 산 게 아니잖은가. 금고 속 아늑하고 안전한 공간은 내 시들이 있을 자리인데, 그 공간에서 내 시들을 꺼내 폐지로 버리는 나 자신이 치욕스러워 스스로에게 변명해 본다. 

   금괴 때문이 아니야. 어차피 세상 빛을 보여 줄 생각도 없고 능력도 없잖아. 

   나는 상자를 들고 일어선다. 상자가, 수천 장의 종이가, 종이에 적혀 있는 내 시들이 무겁다. 상자는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터져 버리고 내 시들은 쏟아져 내린다. 내 시들은 산사태처럼 허둥대는 내 발등을 덮친다. 마지막으로 펄럭 떨어진 종이 묶음은 군인의 유해를 덮은 국기처럼, 아니, 마귀를 봉인한 부적처럼, 맨 위를 덮었던 헨리 다거의 약력과 작품들이었다. 그 종잇장이 내 손등을 스치며 작은 핏방울이 점점이 배어 나왔다. 쓰라림과 가려움이 공존하는 불쾌한 감각에 손등을 긁는다. 제풀에 놀라 멈추었다가 참지 못하고 다시 긁는다. 이렇게 계속 긁다가 힘줄이 드러나고 종국에는 손등의 뼈를 긁어 댈 것 같은 초조함 속에서 다시 생각한다. 봐, 어차피 모두 발견되었잖아?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들도, 잔혹한 헨리 다거의 글과 그림들도, 결국은 모두 발견되어서 이 머나먼 동방의 도시에서 내가 보고 있잖아. 만에 하나 황희빈인지 장희빈인지 못돼 처먹은 년의 소설이 대박이라도 나면 이 착하고 경우 바르고 우아한 귀부인의 실체가 들통나 버릴 수도 있는걸. 그러느니, 이 수천 장의 종이들, 어차피 사라지지 않을 나의 실체, 그래.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들은, 사후에라도 온 세계를 놀라게 했잖아? 퍼뜩 불거져 나온 가당찮은 명예욕이 부끄러워 다른 변명을 찾아본다. 

   적어도, 황금 따위에 밀려 버리지는 않겠어. 

   나는 다른 상자를 찾는 대신 다시 금고를 연다. 피가 맺힌 손등을 새 원피스에 닦고 차곡차곡, 내 시들을 정리해 금고에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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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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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4-01

문장웹진 소설

완벽한 이야기

완벽한 이야기 박진호 푹푹 찌는 날씨 탓에 간이 화장실에서 뿜어 나오는 냄새가 더 지독했다. 화장실 옆 연병장 구석에는 이미 본부 인원 사십 명 정도가 모여 있었다. 행보관 얼굴은 평소보다 더 심하게 구겨져 있었다. 일요일 아침부터 부대 전 인원을 집합시킨 걸 보면 또 무슨 심기가 꼬인 게 틀림없었다. 나는 빠릿하지 못한 이등병 소리를 들을까 싶어 티 나지 않게 슬쩍 무리 안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위병소에서는 아침마다 식당의 잔반을 수거해 가는 트랙터의 모터 소리가 들렸다. 잔반통의 누린내를 맡은 건지 아니면 이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인 건지 청산이와 계백이가 군견 철장 안에서 짖어 댔다. “범인은 알아서 튀어나와.” 행보관이 손가락으로 간이 화장실 옆을 지나는 콘크리트 배수로를 가리켰다. 거기엔 손바닥 크기만 한 거뭇한 물체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덫에 걸린 쥐나 두더지 같기도 했다. 햇빛을 받은 표면이 몸을 뒤틀 때마다 청록색으로 반짝였다. 행보관이 팔을 한 번 휘젓자 유려하게 움직이던 덩어리가 일시에 공중으로 흩어졌다. 수십의 파리 떼에 엉겨 있던 속살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저기서 작게 욕이 터져 나왔다. 모양이며 크기며 주위에 널브러진 휴지 조각이며 그건 누가 봐도 사람의 똥이었다. 날아올랐던 파리들이 일사불란하게 다시 하나의 덩어리로 뭉쳤다. 어제저녁까지만 해도 배수로는 깨끗했으니 모두가 잠든 밤사이 누군가 싸지른 게 틀림없었다. “안 나오면 오전 내내 전부 군장 메고 연병장 뺑뺑이다. 좋은 말 할 때 빨리 나와.” 7월 한여름, 그것도 일요일 오전부터 군장을 돌고 나면 오늘은 물론이고 다음 주 내내 근육통과 몸살로 고생할 게 뻔했다. 하필 오늘따라 주간 근무도 잡혀 있지 않아 빠져나갈 구석이 없었다. 다들 정체 모를 범인을 원망하면서도 한편으론 어딘가 켕기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도와 시기의 문제였을 뿐 부대 리모델링 공사가 시작된 이후로 언젠가는 터질 거라 예상했던 일이었다. 이따금 길을 잘못 들어선 사람들은 우리 부대를 지방 도시의 작은 초등학교 정도로 오해하곤 했다. 머드축제로 유명한 도시였고 인근 기차역에서 렌터카를 빌려 해수욕장을 검색하면 서너 번째 추천 경로로 부대 근처 비포장도로가 뜬다고 했다. 호기심에 후순위 경로를 택한 사람들은 어김없이 길을 헤매다 부대로 연결되는 막다른 길에서 차를 세웠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시골 학교의 정취에 취해 담장 너머로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댔는데, 이를 저지하는 게 위병소 앞을 지키는 경계 근무자들의 주요 일과 중 하나였다. 뒤로는 야트막한 야산이, 옆으로는 논과 슬레이트 지붕을 덧씌운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작은 부대였다. 철망을 얹은 담장 안에 연병장과 2층짜리 적갈색 벽돌 건물이 자리 잡고 있어 모르는 사람이 보면 시골의 작은 분교로 착각할 만했다. 외부인들만 그런 게 아니었다. 이곳 대대에 있는 오십여 명 모두는 해안 초소에 파견 나간 다른 중대들을 지원하는 행정병들이었으므로 가끔은 군

  • 박진호
  • 202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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