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재미나요
비평
시대와 작품을 가로지르는 눈-
비평 진송 - 남자없는 여자들
[본격! 비평] 지난 몇 년간 비평의 영역은 리뷰나 서평 등 '쪽글'의 형태로 축소되어 왔다. 폭넓은 담론을 펼칠 장이 부족하고 비평적 공론화, 활발한 논쟁 등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동시에 비평의 형태는 무척 다변화되고 있기도 하다. 작품을 읽고 그에 대한 분석을 하는 행위를 넘어 비평적 기획, 조직 등 새로운 시도가 최근 들어 늘어나고 있다.이에 《문장웹진》은 웹진이라는 매체의 특성과 공적 지면이라는 점을 활용해 '본격비평'의 장을 열어 보려 한다. 분량의 제한 없이 정액의 원고료로 자유롭게 투고를 받아 아래와 같이 게재한다. 남자 없는 여자들*- 이소호 『캣콜링』 진송 살리(지 못하)는 인간 이브 : 늘 네 생각을 해. 뭘 입고 있을지. 뭘 하고 있고 누구랑 하고 있는지. 어떤 친구들을 만나고 일하기 전에 뭘 먹는지. 어떤 샴푸를 쓰고 가족들은 어떻게 된 건지. 당신 눈과 입을 떠올리고 누군가를 죽일 때 당신이 뭘 느낄지 상상해. 아침으로 뭘 먹었는지도. 난…… 모든 게 궁금해. 빌라넬 : 나도 당신 생각해. 당신 생각하면서 엄청 자위해. (…중략…) 이브 : 원하는 게 뭐야? 솔직하게. 엿 먹일 생각 말고.빌라넬 : 평범한 거. 괜찮은 인생. 쿨한 아파트. 재밌는 직업. 같이 영화 볼 사람. 드라마 《킬링 이브 : 시즌 1》 8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수사관 이브는 사이코패스 빌라넬의 아파트로 쳐들어간다. 빌라넬의 아파트에 몰래 쳐들어가 정체 모를 파토스의 추동으로 온갖 가구들을 깨부수며 그녀의 공간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이브는, 난데없이 위와 같은 애정을 토로한다. 뒤이은 대사에서 빌라넬이 원한다 말한 것 ― 같이 영화 볼 사람 하나쯤 있는 평범하고 괜찮은 인생에서의 ‘같이 영화 볼 사람’이란 아마 이브를 염두에 둔 것이리라. 다음 장면에서, 빌라넬은 피곤하다며 빌라넬의 침대에 드러누운 이브 곁으로 다가간다. 이런 로맨틱한 순간에 빌라넬이 챙기는 것은 다름 아닌 총이다. *) 정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 등 ‘여자 없는 남자들’이라는 제목을 공유하는 텍스트들에서 빌려와 바꾼 제목이다. 이브 : (총을 안고 누운 빌라넬을 보고) 나 죽일 거야? 빌라넬 : 아니. 이브 : 약속해? 빌라넬 : 약속해. ……조금만 있다 갈래? 이브 : 그래. 빌라넬 : (이브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이브 : 나 이런 거 한 번도 안 해봤어.빌라넬 : 괜찮아. 내가 알아서 할게. 이브가 말한 ‘이런 거’란 레즈비언 섹스를 의미한다. 총을 내려놓은 빌라넬과 그녀를 마주 보고 누운 이브는 섹스를 앞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두 ‘여자’의 관계가 성적이라는 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뒤이은 이브의 행동이다. 이브는 돌연 품에서 칼을 꺼내 빌라넬을 찌른다. 빌라넬을 찌른 이후 이브의 반응은 더욱 난해하다. 그녀
작성일 2020-07-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4929상세보기 -
비평 조연정 - 문학의 미래보다 현실의 우리를
rㅣ[비평in문학] 문장웹진 비평 기획 2017년 3월부터 [비평in문학]에서는 비평적 글쓰기 형식의 다양한 방법을 비평가 자신의 실험을 통해 직접 만들어보고자 합니다. 자유로운 주제로 비평 양식에 대한 이론을 실제 비평으로 실천하는 글들이 이어질 것입니다. 비평의 효용과 기능에 대한 회의를 멈추기 어렵지만, 비평을 읽지 않고 쓰지 않는 문화가 더 낫다 생각할 수 없습니다. 비평의 새로운 정동과 문제의식을 스스로 요청하지만, 그것이 기존의 모든 비평을 폐허로 만든 자리에서만 가능하리라 판단하지는 않습니다. 한국문학 비평의 고답성 혹은 무용함에 대한 비판에 귀 기울이겠습니다. 앞으로 [비평in문학]은 ‘비평가’로서 어떤 글쓰기를 창안하고 실천할 수 있을까 하는 비평가의 고민을 구체화하는 장이 될 것입니다. 문학의 미래보다 현실의 우리를 – 문학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하여 조연정 1. 최근 한 산문에서 작가 윤이형은 자신을 “페미니즘에 입문한 여성 창작자”로 칭하며, 앞으로 어떤 서사를 써야 할 것인가에 관해 무거운 고민들을 털어놓은 바 있다. 그 중 몇 가지 질문들을 다시 써보면 다음과 같다. - 나는 앞으로 남성보다 여성이 서사의 중심이 되는 소설을 많이 ‘써야만’ 할까? - 앞으로 쓸 내 소설에서는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 순응하거나 가부장적 질서를 강화하는 여성이 나와서는 ‘안 되는’ 것일까? - 나는 페미니즘에 입문한 여성 창작자이기 때문에 앞으로 여성에 대한 어떤 멸시나 비하도 ‘현실 그대로’ 작품 속에 재현하면 안 되는 것일까? 꼭 필요해서 그런 식의 재현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 않나? 그럴 경우, 반드시 거기에 내가 작가로서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음을 명시해주어야만 하는 것일까? - 이런 고민들을 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것일까, 혹은 각성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여성’으로서의 내가 과잉 반영되어 있는 것일까? 혹은 나는 그저 여성 트위터리안-독자들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일까? 그녀들을 ‘타인’으로 여길 만큼 나는 그녀들에게서 먼가?1) 1) 윤이형, 「여성에 대해 쓰기: 너무 많은 질문들과 약간의 대답」, 『문예중앙』 2017년 여름호, p. 30. 이 중 세 번째 질문, “앞으로 여성에 대한 어떤 멸시나 비하도 ‘현실 그대로’ 작품 속에 재현하면 안 되는 것일까? 꼭 필요해서 그런 식의 재현을 해야 하는 경우 (…) 내가 작가로서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음을 명시해주어야만 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이 현 시점의 나에게는 가장 의미심장하고도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니까 이 질문은 자신의 신념이나 이상과는 맞지 않는 부정적 현실을 작품에 재현할 경우, 이제는 그 서사적 당위성에 대한 보다 엄격한 고려가 필요해졌음을 환기하는 것이다. 이는 물론
작성일 2017-08-10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7318상세보기 -
비평 노태훈 - 순문학이라는 장르 소설
[비평in문학] 2016.11.3. 최종수정 되었습니다. 비평 기획 - 한국 문학에 불만 있다? 2016년 한국 문학은 어느 위치에 자리하고 있을까요. 문학을 둘러싼 최근의 담론들 그리고 2010년대 중반 현재의 한국 사회 문화의 종합적 환경을 고려한다면 한국 문학은 어떻게 생각되고 이야기될 수 있을까요. 그보다 먼저, 현재의 복합 다층적인 사회 문화적 조건과 더불어 한국 문학은 어떤 형태와 어떤 맥락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요. 한국 문학에 대한 불만은 기실 개별 텍스트, 즉 어떤 소설, 어떤 시, 어떤 산문, 어떤 글쓰기에 바로 드러나 있는 요소들로만 환원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한국 문학을 구성하는 개별 텍스트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이야기될 수 없는 것도 분명합니다. 한국 문학에 어떤 막연한 불만이 있다면 그것은 개별적인 문학 작품들에 대한 감상과 비평이 먼저 제기되지 않았을 리 없었으리라는 것이 이번 기획의 시작점이었습니다. 이번 비평 기획은 가급적 구체적이고 실감이 되는 의견을 나누려고 합니다. 솔직해야 하는 만큼 부담스러운 일일 수 있으나, 비평가로서가 아닌, 오랫동안 한국 문학에 애정과 관심을 유지하고 있는 독자로서 한국 문학을 만났을 때 느꼈던 감상을 다시 한 번 깊이 있게 헤아려 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한국 문학의 위치와 역할 그리고 그 의미를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려 합니다. 순문학이라는 장르 소설 - 한국문학과 문학성에 대한 단상 노태훈 문학의 깊이와 좋은 작품 돌이켜보면 최근 한국 문학의 장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는지 새삼 놀랍다. 지난 신경숙 작가의 표절 사태 이후로 한국 문학이라는 어쩌면 ‘텅 빈 기호’를 구축하고 있던 여러 상황들은 뚜렷한 변화를 보였다. 단순히 한 작가의 표절 시비를 넘어서 한국 문학계 전체의 지형을 바꾸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것은 문학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만했는데, 별안간 다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을 수상함으로써 많은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신경숙 작가의 사태 이면에 사실은 한국 문학의 열등감 같은 것이 깔려 있던 것을 생각해 보면 다른 세계로부터의 ‘인정’은 한국의 독자들이 기다려 온 사건이기도 했다. 또 시단에서는 젊은 시인들의 약진으로 몇몇 작품이 대중의 주목을 받으며 모처럼 활기를 띠었고 문예지들은 새로운 옷을 입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최근 페미니즘의 기치 아래 한국 문학이 맞닥뜨리는 여러 가지 문제들은 근본적인 변혁의 씨앗이 될 조짐이 보인다. 한국 문학의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은 문단이라는 시스템의 문제를 자주 언급한다. 등단이나 수상 제도, 문예지와 출판사, 학계 및 평단의 권력 문제 등은 늘 빈번하게 거론되는 사안들이다. 그 공고화된 체제 내에서 얼마나 많은 폐해가 발생하는지는 여기에서 따로 얘기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문단이라는 구조의 문제는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제도를 개편하고 지면을 쇄신하며 대안을 찾으면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
작성일 2016-11-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6645상세보기 -
비평 오은교 - 정세랑의 많은 사람들
[젊은 비평가 특집] 최근 몇 년 간 한국문학의 흐름은 그야말로 숨이 가쁠 정도였다. 얼마나 많은 사건과 변화가 있었는지 머릿속에서 떠올리기조차 쉽지 않다. 한국문학은 달라져야 했고, 달라지고 있으며, 또 계속해서 달라져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해도 더 많은 것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고, 수많은 변화의 외침은 지금도 사방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고자 한다. 이제 막 자리매김한 '젊은' 비평가들에게 한국문학에 관한 자유로운 글을 부탁했다. 이들의 글 속에서 꿈틀대는 변화에 대한 열망과 관습을 비트는 다른 시선을 발견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목소리들이 모여 새롭게 만들어갈 한국문학의 풍경을 기대하며 '기획'의 지면을 연다. 정세랑의 많은 사람들 오은교 1. 들어가며: 정세랑의 가벼움 정세랑의 소설1)에는 의외로 재난이 잦다.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 자연재해에서부터 이유가 너무 많은 안전사고까지, 그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재난 사건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이 '의외'인 이유는 그의 소설을 마주할 때 느끼는 독자들의 기대와 관련되어 있다. 정세랑의 독자들은 그가 그려내는 재난이 완전히 불가역적인 파국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니까 재난은 있지만 그것이 완전한 재앙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는 세계, 시스템은 잦은 고장을 일으키지만 누군가는 그것을 수리하기 위해 묵묵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세계, 그것이 정세랑의 세계이다. 재난이 일상이 되어버린 우리 삶의 현장에서 제멋대로 뒤틀린 인간의 갖은 꼴들과 복잡하게 허술한 이 사회 시스템에 대한 환멸이 끝없이 밀려올 때, 정세랑을 읽는 것이 조금은 도움이 된다. 정세랑의 재난 소설들은 진지하고 웃긴다. 진지해서 웃긴 것이 아니라, 진지하지만 유머를 잃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의 장르는 씁쓸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블랙 코미디가 아니라 그 자체로 건강한 쾌감을 선사하는 소규모 히어로물에 가깝다. 작가는 인물들이 서서한 내면 변화를 통해 비로소 행동에 나서게 되는 대목을 묘사하는 대신, 인물들이 빠른 행동 전환을 통해 당면하고 있는 미션들을 클리어하는 과정을 서술하는 편이다. 복잡하고 해결이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들도 정세랑이 그려내는 인물들을 만나면 어느새 해소 국면에 접어든다. 이 간극이 정세랑의 소설을 가볍게 만든다. 가령 이런 식이다. 버섯을 잘못 먹고 환각 상태에 빠진 이들이 칼을 들고 학교를 습격하면 아무 때고 엘리베이터를 움직일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진 고등학생이 친구들을 대피시킨다. 손톱에서 자라난 세포가 강력한 방탄 소재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된 과학자는 폭발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실험실의 동료 연구자들의 가운을 훔쳐와 옷깃에 자신의 손톱을 바느질해 넣는다.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폭력적으로 돌변한 친구의 전 애인을 처치하기 위해 그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만한 물질로 만든 네일 아트를 친구에게 해준다. 대기업의 사주를 받고 학교 밑에 잠복해 나쁜
작성일 2018-12-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6540상세보기 -
비평 민경환 - 풍경을 다시 크롭하기 2
[본격! 비평] 지난 몇 년간 비평의 영역은 리뷰나 서평 등 '쪽글'의 형태로 축소되어 왔다. 폭넓은 담론을 펼칠 장이 부족하고 비평적 공론화, 활발한 논쟁 등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동시에 비평의 형태는 무척 다변화되고 있기도 하다. 작품을 읽고 그에 대한 분석을 하는 행위를 넘어 비평적 기획, 조직 등 새로운 시도가 최근 들어 늘어나고 있다.이에 《문장웹진》은 웹진이라는 매체의 특성과 공적 지면이라는 점을 활용해 '본격비평'의 장을 열어 보려 한다. 분량의 제한 없이 정액의 원고료로 자유롭게 투고를 받아 아래와 같이 게재한다. 풍경을 다시 크롭하기 2 민경환 “그런 Money 그런 Power 우리는 관심도 끊어버린 지 오래”- Red Velvet 1. 내깃돈을 내라는 문지기가 있다면, 가위바위보를 신청하려는 건 ‘지금’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텍스트에 다른 맥락을 긴급히 수혈할 것을 요구한다. 모든 읽기와 쓰기는 불가피하게 현재라는 시간에 묶여 있는 행위일 수밖에 없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요구를 벌충하려 든다면 원론적인 차원을 벗어나기 힘들다. ‘동시대’가 건네는 요청은 사사로운 관심 이상의 당위로만 답할 수 있다. 그렇다면 20년대를 여는 시점에 김홍중을, 그리고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을 다시 읽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갖는지 묻는 것으로 이 글을 시작해야 좋을 것이다. 인아영이 “진정성은 ‘1980~90년대라는 시대’가 아니라, ‘비장애인 이성애자 지식인 남성이라는 사회적인 위치’에 의해 공유되는 에토스일지도 모른”1)다고 지적했을 때, 90년대 이후를 지배해 온 논리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한계를 노출해 버렸다면 철 지난 논의를 다시 읽을 이유는 사라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순서를 뒤집어 다른 결론을 당기는 편이 옳다. 가라타니와 김홍중에 대한 재독해는 지난 10년간 반복된 착오의 순간이 현재까지 행사하는 위력들로 인해 피할 수 없다. 10년대에 우리가 당면해야 했던 비평적 풍경들을 저 두 이름과 함께 다시 읽는 것은 20년대를 차별화하기 위함이 아니라 너무도 오래 지속되는 전제들을 확인함으로써, 그 전제를 벗어나 현재를 다시 쓰고 또 다시 읽기 위함이다. 지난 역사를 모범으로 삼기 위함이 아니라, 여전히 신도를 거느린 그 무덤을 난도질하기 위해, 그게 아니라면 기념비를 파괴하기 위해 지금 바로 그 만신전에 입장해야 한다. 오혜진이 천명관을 둘러싼 비평을 읽어 가며 확인했던, “비평가들이 말하는 ‘지금-여기’가 사실은 ‘그때-거기’의 질서와 미학에 고착된 것이라는 아이러니”2)는 지난하게 반복되고 있다. 첫눈에는 큰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함께 묶어 보면 어떤 징후로밖에 볼 수 없는 장면들은 물론 비평에도 있다.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흐름에 격렬한 거부 반응을 보이는 복도훈, ‘종언’
작성일 2020-08-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1 댓글수 0 조회수 5803상세보기 -
비평 최가은 - 문보영-일기
[본격! 비평] 지난 몇 년간 비평의 영역은 리뷰나 서평 등 '쪽글'의 형태로 축소되어 왔다. 폭넓은 담론을 펼칠 장이 부족하고 비평적 공론화, 활발한 논쟁 등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동시에 비평의 형태는 무척 다변화되고 있기도 하다. 작품을 읽고 그에 대한 분석을 하는 행위를 넘어 비평적 기획, 조직 등 새로운 시도가 최근 들어 늘어나고 있다.이에 《문장웹진》은 웹진이라는 매체의 특성과 공적 지면이라는 점을 활용해 '본격비평'의 장을 열어 보려 한다. 분량의 제한 없이 정액의 원고료로 자유롭게 투고를 받아 아래와 같이 게재한다. 문보영-일기 최가은 1. 새벽 시, 새벽 일기 시간은 새벽 두 시. 강의실 내부는 평소보다 더욱 적막하다. “일기병 환자분들, 반갑습니다.” 중앙에 앉아 있던 한 여인이 유쾌한 인사와 함께 침묵을 깨면, 사람들은 둘러앉아 각자의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모임을 주최한 여자 역시 자신의 일기를 써나가는데, 제목은 「버려진 물건」 이며 우연히 길에서 인형을 발견했던 어느 하루에 관한 이야기이다.1)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전봇대 밑에 놓여 있던 “하얗고 거대한 대가리”와 우연히 눈이 마주친 ‘나’는 그 눈빛을 무시하지 못해 인형을 집으로 가져온다. 웬 대가리 하나와 함께 들어서는 ‘나’ 때문에 놀란 가족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건네는데, 그것은 주로 “버려진 인형은 주워 오면” 안 된다는 무시무시한 경고 혹은 짜증에 가깝다. 그리고 인형에 관한 미신쯤은 가볍게 넘길 줄 알아야 한다며 가족들을 안심시켰던 ‘나’에게 그날 밤, 믿고 싶지 않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게 된다. 떨리는 ‘나’의 손에 가까스로 들려 있는 핸드폰. 형형색색 펼쳐진 인스타그램 피드 너머로 보이는 그것은……. 얼마 전 헤어진 그놈의 지나치게 아름답고도 무탈한 일상이었던 것이다. 무언가 상서롭지 못한 물체가 ‘나’의 손에 들려 있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인형을 다시 버리는 만행을 저질러야 하는 걸까. ‘나’는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다. 일기를 마무리 지은 여자는 옆에 놓인 ‘거대한 대가리’의 머리를 “네 번” 쓰다듬으며 묘한 웃음을 흘린다. 일기 왕에게 전달되기 위해 인형은 오늘 특별히 이곳 강의실로 옮겨진 것이다. 영문을 모르는 환자들은 자신들의 일기병 증상을 현란하게 선보인다. 여자 옆에 고고히 앉아 있는 저 ‘대가리’를 쟁취해 내겠다는 일념 하나로. 1) 문보영, 「버려진 물건」, 블로그 일기(2018.07.21.) 2. 비평 바깥의 언어, 문보영의 일기 시인 문보영이 독자와의 만남을 위해 설계한 프로그램, ‘새벽 시 새벽 일기’의 한 풍경이다. 각자의 일기장을 매개로 교감하는 시인과 독자 간의 이 기묘
작성일 2020-12-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5646상세보기 -
비평 조강석 - 메시지의 전경화와 소설의 ‘실효성’
[비평in문학] 문장웹진 비평 기획 2017년 3월부터 [비평in문학]에서는 비평적 글쓰기 형식의 다양한 방법을 비평가 자신의 실험을 통해 직접 만들어보고자 합니다. 자유로운 주제로 비평 양식에 대한 이론을 실제 비평으로 실천하는 글들이 이어질 것입니다. 비평의 효용과 기능에 대한 회의를 멈추기 어렵지만, 비평을 읽지 않고 쓰지 않는 문화가 더 낫다 생각할 수 없습니다. 비평의 새로운 정동과 문제의식을 스스로 요청하지만, 그것이 기존의 모든 비평을 폐허로 만든 자리에서만 가능하리라 판단하지는 않습니다. 한국문학 비평의 고답성 혹은 무용함에 대한 비판에 귀 기울이겠습니다. 앞으로 [비평in문학]은 ‘비평가’로서 어떤 글쓰기를 창안하고 실천할 수 있을까 하는 비평가의 고민을 구체화하는 장이 될 것입니다. 메시지의 전경화와 소설의 ‘실효성’ – 정치적·윤리적 올바름과 문학의 관계에 대한 단상 조강석 1. 1-1. 장 바티스트 그뢰즈(Jean Baptiste Greuze, 1725-1805)는 고전주의자 디드로가 좋아했던 화가 중 한 명이다. 그는 어떤 극적인 장면을 설정하고 이를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심리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탁월했고 관객들은 그의 그림을 보면서 스스로 그런 상황에 처했을 경우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에 대해 명료하게 판단할 수 있었다. 예컨대, 「벌 받는 아들」 같은 그림은 윤리적 올바름에 대한 화가의 의지와 태도가 어떤 식으로 감상자에게 인계될 수 있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젊은 날의 방탕에 대한 대가는 크고 후회는 언제나 너무 늦게 찾아온다는 메시지가 일종의 상황극과 같은 생생한 재현적 그림을 통해 동시대 감상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전달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림1] 그런데 흥미롭게도 디드로는 그뢰즈의 그림이 지니는 교훈적 효과를 강조하면서도 이 그림에서 어머니와 부인이 취하는 지나치게 과장된 몸짓이 그림의 전언을 전달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1) 만약 츠베탕 토도로프의 표현을 빌려 이를 패러프레이즈해본다면 아마도 테마적 중심과 회화적 중심의 불일치가 양자 모두를 곤경에 빠트릴 수도 있음을, 그 결과 감상자에 대한 작용과 효과의 측면에서도 비효율적 오류를 범할 수 있음을 생각해 보게 한다.2) 1) 이에 대해서는 볼프강 울리히 지음, 조이한·김정근 옮김, 「즐거움과 유익함」, 『예술이란 무엇인가?』, 2013, pp.150-158. 참조. 2) 테마적 중심과 회화적 중심에 대해서는 츠베탕 토도로프 지음, 이은진 옮김, 『일상예찬』, 뿌리와 이파리, 2003, 참조. 1-2. 매튜 키이란은 예술과 도덕의 관계에 대해 논하면서 도덕적 선의 때문에 작품의 가치가 낮아지는 경우와 작품의 비도덕적 특성이 오히려 작품의 가치를 높이게 된 경우에 대해 각기 예를 들고 있다. 그는 이를 통해 예술과 ‘도덕적 올바름’의 태도가 지니는 관계에서 나타나는 역설을 설명하고 있는
작성일 2017-04-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5318상세보기 -
비평 김보경 - 기후위기 시대에 문학하기
[현장 비평] 《문장웹진》은 다양한 시선을 통해 폭넓은 담론을 펼칠 수 있는 ‘비평의 장’을 마련하고자 2020년 진행되었던 〈본격! 비평〉 코너를 정비하여, 2021년 4월호부터 〈현장 비평〉을 선보인다.2021년 〈현장 비평〉은 신진 문학평론가 9명이 각자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주제를 정해 매월 1편씩 발표된다. 기후위기 시대에 문학하기 : 생태주의 문학/비평의 몇 가지 의제들 김보경 0. 전염 인간의 말로 쓸 수 없음. 주어, 서술어. 쓸 수 없음. 주어, 목적어, 서술어. 쓸 수 없음. 닭은 인간처럼 말하지 않고. 관형어, 주어, 서술어. 인간처럼 생각하지 않고. 주어, 목적어, 부사어, 서술어. 인간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느끼기에 쓸 수 없음. 내가 쓸 수 있는 건 이성적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말. 이성을 신뢰하는 말. 인간의 말. 인간의 말로 기록된 역사. 인간의 말로 세운 규범. 인간의 말로 만든 문화. 인간의 말로 지은 문학. 휴머니즘. 인간이 나와 인간을 만나 인간에 대해 사유하는 문학. 인간이 인간에게 감동받는 문학. 인간에 대한, 인간을 위한, 인간만의 문학. 오직 인간만을 위한 문학. 인간이 세상의 주인공이 되는 문학.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조건으로서의 문학. 인간이 동물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드는 문학. 망각의 문학. 의인화. 닭에게 인격을 부여하는 건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나를 붙잡아 쓸 수 없음. 문장을 이어 갈 수 없음. 닭에게 인간의 목소리가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닭의 목소리가 부여될 수 있기를 바람.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쓰기. - 서이제의 「두개골의 안과 밖」1)부분 1) 서이제, 〈두개골의 안과 밖〉, 《자음과모음》 2021년 여름호. 서이제의 「두개골의 안과 밖」은 야생 철새의 분변으로부터 변이 바이러스가 창궐함에 따라 가금류에 대한 대거 살처분 명령이 내려진 한국의 상황을 배경으로 한 근미래 SF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통증에 시달리다가 새가 되어버린다는 소문이 퍼진 가운데, 10만 명의 사람들이 증발되고 새의 번식이 급증한다. 소설을 읽다보면 구제역, 조류 인플루엔자, 아프리카돼지열병, 코로나19 등 각종 바이러스가 발생할 때마다 감염 확산 방지와 방역을 이유로 동물들이 대거 살처분 대상이 되었던 역사가 매립지에 매몰된 동물 사체들의 암모니아 냄새를 통해 우리의 코를 뚫고 들어온다. 공장식 축산의 참혹한 현실이 비좁은 축사에 갇힌 수십만 마리 닭들의 울음소리를 통해 우리의 귀를 뚫고 들어온다. 이 소설에서 까치의 사진, 동일한 글자(닭, 鷄)의 반복, 한자를 활용한 새인간의 형상(羽人羽) 등은 표상적 언어의 한계를 허물며 이미지로서의 강렬한 힘을 발휘한다. 읽기보다는 보기를, 보기보다는 느끼기, 느끼기보다는 전염되기를 요구하면서. 인류학자 에두아르도 콘은 『숲은 생각한다』에서 퍼스의 기호학을 바탕으로 근대의 인간주의적인 기호학에서 벗어나 비인간 존재들의 기호 작용을 포괄하는 기호학 이
작성일 2021-08-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5267상세보기 -
비평 윤경희 - 가독성에 관하여
[비평in문학] ‘여성, 노동’같은 전통적인 주제에서 시작해 ‘문체, 주체’와 같은 비평 키워드나 ‘번역, 상호텍스트성’같은 문학적 키워드, ‘환상, 무의식’같은 인접학문 그리고 ‘빅데이터, 가상현실’같은 미래용어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문학의 키워드는 무엇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비평in문학]의 새로운 비평 기획입니다. 가독성에 관하여 윤경희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이따금 사용하는 상투어들 중 하나는 가독성이다. 그런데 가독성이란 정확히 무엇인가.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가독성의 뜻을 “인쇄물이 얼마나 쉽게 읽히는가 하는 능률의 정도. 활자체, 글자 간격, 행간(行間), 띄어쓰기 따위에 따라 달라진다”2)라 풀이한다. 거기에 “대체로 가로쓰기가 세로쓰기에 비하여 가독성이 높다”3)는 예문을 부연했다.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서는 “인쇄물이 쉽게 읽힐 수 있는 성질. 활자체, 자간, 행간, 띄어쓰기 따위에 따라 달라진다”라 유사하게 정의하고, “신문이나 서적에 흔히 쓰이는 바탕체는 다른 글씨체에 비해 가독성이 높다”4)는 예문을 들었다. 그렇다면 가독성은 타이포그래피의 영역에서 평가할 가치다. 실제로 가독성은 타이포그래피의 이론과 실제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지는 개념이다.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에서 편찬한 『타이포그래피 사전』에 따르면 가독성(readability)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강성은, 「단지 조금 이상한」, 『단지 조금 이상한』, 문학과지성사, 2013, 53쪽. 2) 국립국어연구원, 「가독성」, 『표준국어대사전 상』, 두산동아, 1999, 16쪽. 3) 위의 책. 4)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국어사전편찬실, 「가독성」, 『고려대 한국어대사전 ㄱ~ㅁ』,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09, 17쪽. 글을 읽고 이해하기 쉬운 정도. ≒ 이독성. 글의 내용과 그에 대한 독자의 사전 지식, 독서 거리와 시간, 타이포그래피 등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가독성과 종종 혼용되는 판독성은 글자의 형태를 알아보기 쉬운 정도를 말한다. 개별 글자의 판독성이 뛰어나더라도 여러 글자를 나열했을 때 가독성이 낮을 수 있으므로 두 용어는 구분해서 사용해야 한다.5) 5)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 「가독성」, 『타이포그래피 사전: A Dictionary of Typography』, 안그라픽스, 2012, 60쪽. 같은 사전에서 판독성(legibility)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개별 글자나 낱말의 형태를 분별하여 알아보기 쉬운 정도. 판독성과 가독성이 종종 혼용되는데, 가독성의 대상은 글이고 판독성의 대상은 낱말이나 글자이므로 구분해서 사용해야 한다.6) 6)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 「판독성」, 『타이포그래피 사전: A Dictionary of Typogra
작성일 2018-03-07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5161상세보기 -
비평 이희우 - 매력의 경제학
[현장 비평] 《문장웹진》은 다양한 시선을 통해 폭넓은 담론을 펼칠 수 있는 ‘비평의 장’을 마련하고자 2020년 진행되었던 〈본격! 비평〉 코너를 정비하여, 2021년 4월호부터 〈현장 비평〉을 선보인다.2022년 〈현장 비평〉은 신진 문학평론가 12명이 각자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주제를 정해 매월 1편씩 발표된다. 매력의 경제학 이희우 0. 글을 시작할 때 종종 어떤 선문답이 떠올라 망설이게 된다. 그 선문답의 내용은 이렇다. 한 스승이 제자들에게 네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사람은 일하고 있고, 한 사람은 쉬고 있고, 한 사람은 여행을 갔고, 한 사람은 공부하고 있다. 네 사람의 차이를 충분히 설명한 다음 스승이 묻는다. “이 중에 돈 욕심이 가장 많은 사람이 누굴까?” 질문에 대한 선문답식 정답은, 질문을 던진 바로 그 스승이라는 것이다. 그는 네 사람의 모든 행적을 돈과 관련된 것으로 보고 있고, 또 질문함으로써 제자들이 상황의 모든 요소를 돈과 관련된 것으로 보게끔 부추기기 때문이다. 이 선문답은 비판적 사유가 자신이 비판하는 것에 얽매이는 방식을 보여준다. 이 선문답 때문에 ‘매력의 경제’를 말하기에 앞서 고민이 되었다. 동시대 문화에 매력의 빈부격차를 조장하는 논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옳을까? 우리에게 어떤 종류의 비통함을 주입하는 논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머릿속에 한 번 떠오른 이후로 이 생각은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낳았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야말로 매력의 불공평함에 가장 집착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지만 매력의 경제라는 문제를 말하지 않고 건너뛰면, 동시대 문화에 설명되지 않는 것이 너무 많아 보였다. 그중 하나는 윤리적 판단, 미적 판단, 정치적 판단을 카레에 들어가는 구황작물처럼 한데 뒤섞는 문화적 경향이다. 잘 알려져 있듯 윤리와 미학은 칸트가 『실천이성비판』과 『판단력 비판』에서 따로따로 다룬 문제다. 칸트는 인식의 한계를 정한 것과 마찬가지로 윤리와 취미비판의 한계를 정하려고 했는데, 이것은 각각 영역의 자율성에 관한 문제이기도 했다. 가령 행위는 미적 판단이나 다른 이해 관심을 배제할 때만 진정으로 윤리적인 행위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아름다움은 도덕적 판단이나 이해 관심을 배제할 때만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일 수 있다. 즉 예술작품은 도덕의 눈치를 보거나 다른 이해 관심을 추구하면 아름답지 않다. 이것이 ‘무관심한 관심’이 의미하는 것이었다. 지금껏 수많은 이가 이러한 형식주의적 분리 혹은 자율성의 개념을 공격해 왔다. 사회학자들은 취향이나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 역시 사회 구조적·이데올로기적 산물이므로, 아름다움에 관한 판단에는 당연히 윤리적·정치적 문제가 개입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치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말할 수 있다. 정치란 감수성을 조직하고 감정을 분배하는 문제이므로, 혹은 정치적인 것과 정치적이지 않은 것을 가르는 ‘감각의 나눔&
작성일 2022-02-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5059상세보기 -
비평 복도훈 - 신을 보는 자들은 늘 목마르다
[비평in문학] 문장웹진 비평 기획 2017년 3월부터 [비평in문학]에서는 비평적 글쓰기 형식의 다양한 방법을 비평가 자신의 실험을 통해 직접 만들어보고자 합니다. 자유로운 주제로 비평 양식에 대한 이론을 실제 비평으로 실천하는 글들이 이어질 것입니다. 비평의 효용과 기능에 대한 회의를 멈추기 어렵지만, 비평을 읽지 않고 쓰지 않는 문화가 더 낫다 생각할 수 없습니다. 비평의 새로운 정동과 문제의식을 스스로 요청하지만, 그것이 기존의 모든 비평을 폐허로 만든 자리에서만 가능하리라 판단하지는 않습니다. 한국문학 비평의 고답성 혹은 무용함에 대한 비판에 귀 기울이겠습니다. 앞으로 [비평in문학]은 ‘비평가’로서 어떤 글쓰기를 창안하고 실천할 수 있을까 하는 비평가의 고민을 구체화하는 장이 될 것입니다. 신을 보는 자들은 늘 목마르다 2017년의 한국문학과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비판적인 단상들 복도훈 악의가 있지 않고서는 누구도 자신들과 다른 견해를 가질 리 없다고 생각하기에 그들은 그저 피고들의 사상만을 조사할 뿐이었다. 자신들이 진리와 지혜, 최고의 선을 소유하고 있다고 믿기에 실수와 잘못은 자신들의 반대자들 탓으로 돌렸다. 그들은 자기 자신이 강하다고 느꼈다. 신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ㅡ아나톨 프랑스,『신들은 목마르다』(1912) 1. 아카이브는 불타고 있다 오세아니아의 공용어인 ‘신어(new speaks)’에 대해 1984년에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최초의 상세하고도 혁신적인 사용설명서의 후반부에는 신어의 최종 채택 원년인 2050년 이전에 출간된 문학작품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또 그것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지에 대해 숙고하는 대목이 나온다. 오세아니아 인민 가운데는 열성적인 당원들이 간혹 있어서 특정 문학작품을 번역하거나 검열하는 대신 그것을 없애버리자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그것은 영사(英社, 영국 사회주의)의 이념에 전적으로 부합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작품들이 언젠가 절로 ‘자연사’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유연하며, 열려있기에. 우리는 성급하고 초조한 검열관이 아니기에. 시간은 전적으로 우리의 편이기에. 우리가 참조하는 문서는 신어사전 제11판이다. 그렇지만 사전을 만들기 위해 참조했던 아카이브의 서류들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아카이브는 초판 날짜가 찍히자마자 곧 잊히고 케케묵은 냄새만 풍기는 책과 먼지로 뒤덮인 서류들이 어지러이 가득 찬 바벨의 도서관이 아니다. 도서관의 출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아카이브는 서서히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그것은 스스로를 불사르면서 언젠가 한줌의 재로 변해버릴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비단 아카이브의 화염과 재가 아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완전한 무와 어둠의 도래다. 그것은 시다. 화염과 재만큼이나 무와 어둠도 옛적부터 시인들을 매혹시켜왔던 것이 아닌가. 우리는 무와 어둠으로 가득 찬 ‘도래할 책’을 기다리고 있다. &l
작성일 2017-05-08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5014상세보기 -
비평 황현경 - 나는 비평가다, 고로 나는 비평한다
[비평in문학] 비평 기획 - 한국 문학에 불만 있다? 2016년 한국 문학은 어느 위치에 자리하고 있을까요. 문학을 둘러싼 최근의 담론들 그리고 2010년대 중반 현재의 한국 사회 문화의 종합적 환경을 고려한다면 한국 문학은 어떻게 생각되고 이야기될 수 있을까요. 그보다 먼저, 현재의 복합 다층적인 사회 문화적 조건과 더불어 한국 문학은 어떤 형태와 어떤 맥락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요. 한국 문학에 대한 불만은 기실 개별 텍스트, 즉 어떤 소설, 어떤 시, 어떤 산문, 어떤 글쓰기에 바로 드러나 있는 요소들로만 환원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한국 문학을 구성하는 개별 텍스트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이야기될 수 없는 것도 분명합니다. 한국 문학에 어떤 막연한 불만이 있다면 그것은 개별적인 문학 작품들에 대한 감상과 비평이 먼저 제기되지 않았을 리 없었으리라는 것이 이번 기획의 시작점이었습니다. 이번 비평 기획은 가급적 구체적이고 실감이 되는 의견을 나누려고 합니다. 솔직해야 하는 만큼 부담스러운 일일 수 있으나, 비평가로서가 아닌, 오랫동안 한국 문학에 애정과 관심을 유지하고 있는 독자로서 한국 문학을 만났을 때 느꼈던 감상을 다시 한 번 깊이 있게 헤아려 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한국 문학의 위치와 역할 그리고 그 의미를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려 합니다. 나는 비평가다, 고로 나는 비평한다 황현경 나는 비평가다, 고로 나는 비평한다. 내게는 이 명제 하나면 충분하다. 나만 이 명제에 충분하면 된다. 이 글은 나는 충분한지를 고민한 흔적들이다. 혹여 비평가에 대한 글일 수는 있어도 비평에 대한 글은 아니다. 두서없을지언정 솔직하게 적어 볼 참이다. 그러기로 했으니 충분히 두서없어 보이기 위해 충분히 고민해야 했다는 것을 이 글에서만큼은 밝힌다. * 비평이란 무엇인가. 자랑은 아니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두서없이 적기로 작정했으니 이런 건 어떨까. 국수(國手)로 불리는 조훈현 9단이 날고 기던 시절 그의 유일한 호적수였다던 서봉수 9단은 바둑을 ‘나무판 위에 돌 늘어놓는 게임’으로 정의했다고 한다. 과연 고수의 대답이다. 또 이런 건. 가수 이문세의 영혼이었던 작곡가 이영훈은 곡을 쓸 때면 피아노 앞에 앉아 하루 마흔 잔의 커피와 네 갑의 담배를 마시고 태워서 없앴다고 한다. 삶과 음악을 맞바꾼 저 위대한 작곡가에게 음악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게 의미가 있을까. 서봉수에게 바둑이 무엇이었는지는 그의 기보가, 이영훈에게 음악이 무엇이었는지는 그의 곡들이 증명한다. 필립 로스 식으로 말하자면, 프로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필립 로스, 『에브리맨』, 정영목 옮김, 문학동네, 2009, 86쪽) 너무 거창한 예를 든 탓에 차마 묻어갈 수는 없어졌다. 그렇다면 이런 건. 비평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 없이도 할 수 있는 말이 있다. ‘비평가는 비평을 쓴다.’ 그 글은 대상(작품)을 원료로 삼아 만들어지므로 비평가의 일은 제조업, 곧 이차 산
작성일 2017-02-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1 댓글수 0 조회수 4765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