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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모든 고민-
기획 김소월 「왕십리」를 다시 읽는다
장철문 이태 전인가, 약속이 있어서 왕십리역에 간 적 있다. 상대가 조금 늦겠다고 해서 지하철역 근처를 무료하게 서성거렸다. 소월의 흉상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그 뒤쪽에는 발표 당시의 옛투로 「왕십리」가 새겨진 시비가 서 있었다. 잘되었다 싶어 느긋한 마음으로 시를 읽는데, 처음 읽은 것도 아니련만, 새삼스레 충격으로 다가왔다. 배우는 사람으로서의 의무감이 전혀 없이, 무연하게 바라본 그 시는 가슴을 흥분으로 뛰게 했다. 아무리 반복해서 읽어도 질리지 않는 첫연의 리듬감, 그 유장한 리듬감은 시어를 해석하려는 충동을 번번히 밀어내곤 했다. 그리고 그 강력한 리듬 뒤에 가려진 모호한 의미와 극적 전환들은 적잖은 시간 시를 읽고 써온 나를 당혹케 했다. 연과 연 사이의 비약적인 거리는 자칫 발이 빠질지도 모르는 도랑을 건너뛰는 현기증마저 느끼게 했다. 그런데 그 두 둔덕 사이의 간극은 유연한 리듬에 의해 천연덕스럽게 이어졌다. 모호한 의미는 그대로 젖혀두고라도 그 리듬은 강력한 정서적 울림을 가지고 밀려왔다. 에밀 슈타이거가 “시인은 음악적인 것에 우선권을 주고 싶어하는 존재”라고 한 것을 나는 나중에야 읽었다. 그때 나는 소음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된 도시 한복판에서 비 올 바람을 흠뻑 머금은 벌판 바람에 휩싸인 느낌이었다. 그 바람의 실체는 ‘님의 부재’로 인한 비애에 불가항력적으로 노출된 화자의 정감 그것이었다.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비는 올지라도 한닷새 왓으면죠치. 여드래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로 朔望이면 간다고햇지. 가도가도 往十里 비가오네. 웬걸, 저새야 울냐거든 往十里건너가서 울어나다고, 비마자 나른해서 벌새가 운다. 天安에삼거리 실버들도 촉촉히저젓서 느러젓다데. 비가와도 한닷새 왓스면죠치. 구름도 山마루에 걸녀서 운다. 1925년 시집 『진달래꽃』에 수록된 전문이다. 이 시는 1923년 『新天地』에 처음 발표되었다. 당시에는 제목 옆에 “(民謠詩)”라고 병기되어 있었으며, 3연 3행의 쉼표가 마침표로 되어 있었다. 그때 이후로 「왕십리」는 그 유려한 리듬으로 나를 자주 찾아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 시의 해석을 둘러싸고 소장학자들간에 한차례 논쟁이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정끝별 1998’ ‘김점용’에 그 과정이 소상히 밝혀져 있다. 人名에 관련한 書誌는 ‘참고자료’란에 밝힌다). 이 기회에 나는, 그때의 충격으로 내 나름대로 여러 차례 곱씹어보고 또 기왕의 연구와 논쟁들을 훑어본 기억을 살려 기존과 달리, 새롭게 읽어보려고 한다. 리듬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동안 첫 연의 기본형 ‘오다’의 반복에 의한 리듬에 대해서는 7?5조의 변격이라거나 3?4, 4?4와 같은 민요조 음수율과 더불어 여러 차례 언급되어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단 네 행으로 이루어진 한 연에서 무려 다섯 번이나 ‘오다’가 반복되면서도 말이 낭비되었다
작성일 2006-02-22 작성자 wikisoft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9696상세보기 -
기획 [공개인터뷰 나는 왜_황정은 소설가편]나는 왜 서사에 리듬을 입히는가?
연속기획 공개인터뷰 _ 나는 왜?(제8회) 나는 왜 서사에 리듬을 입히는가? - 소설가 황정은 편 정리 : 강지혜(시인) 한 번 손을 대면 좀처럼 끊을 수 없는 소설이 있습니다. 길이는 별로 중요치 않습니다. 짧거나, 길거나 일단 첫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기묘하지만 아름답고, 그리고 힘찬. 그 리듬에 우리는 몸을 맡기게 됩니다. 리듬은 억지로 만든다고 해서 쉽게 생성되는 것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딘가에서, 누군가로부터 퍼진 박동 같은 것이 우리의 어떤 부위를 톡톡톡 건들이면서부터, 아주 자연스럽게 시작되는 것이죠. 오늘은 최근 『계속해보겠습니다』라는 장편소설을 출간한 황정은 작가와 함께 소설의 리듬을 타볼까 합니다. 자 그럼, 시작해보겠습니다. 가장 하고 싶은 게 소설쓰기였으니까 ▶ 오창은(이하 오) : 원래 이 인터뷰는 딱 10명만 모시는 행사인데요. 오늘은 10명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참가해주셨습니다. 그만큼 황정은 작가에 대한 여러분의 관심이 대단하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네요. 황정은 작가님 인사 부탁드립니다. ▶ 황정은(이하 황) : 반갑습니다. ▶ 오 : ‘나는 왜’ 공개인터뷰는 여기 앉아계신 분들과 작가와 매우 밀착된 대화의 시간을 갖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래서 참여 독자가 10명이라는 것을 강조했는데요. 오늘 거의 30여명이 오셨습니다. 보다 많은 대화의 기회가 더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황 작가님, 2005년 등단하셨는데요. 일반적으로 등단하기가 쉽지 않다고 얘기하잖아요. 등단 즈음에 상황을 기억하시나요? 당시에는 어떤 마음이었나요? ▶ 황 : 저는 등단하기 전에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한 기간이 그다지 길지 않았고요. 건강이 좋지 않아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는데 건강해지고 나니 뭐든 배우고 싶더라고요. 내신 성적이 좋지 않아서 실기 비율이 높은 과목을 찾아보았고 그게 글쓰기였어요. 등단한 해엔 어떤 회사에서 1년째 일하고 있었는데 1년 내내 읽지도 쓰지도 못하고 지냈어요. 이러다가는 아무것도 못 쓰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고 신춘문예 마감을 40일 정도 앞둔 때 회사를 그만두고 단편을 썼어요. ▶ 오 : 그렇다면 왜 ‘소설을 쓰지 못하면 안 되겠다’ 생각하셨고, 왜 ‘소설’을 선택해야 했는지 궁금해지는데요. 40일 동안 집중적인 시간을 투자했을 만큼 절박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 황 : 가장 하고 싶은 게 소설쓰기였으니까. 저는 출퇴근하며 소설 쓰는 게 잘 되지 않더라고요. 쓰고 싶은데 쓸 수 없으니까 바쁘지 않을 때는 근무 중에 멍하니 키보드를 두드렸어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문장을 엄청나게 빠른 타수로. 나중에 들으니까 “쟤는 매일 뭘 저렇게 열심히 쓰고 있는 거야? 타자할 게 그렇게 많아?” 그런 불평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풉풉풉풉, 천진난만하게 쓴다는 것 ▶ 오
작성일 2014-12-08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8883상세보기 -
기획 김경욱 - 맥도날드 사수 대작전
십년감수(十年感秀)_소설 맥도날드 사수 대작전 김경욱 평양의 맥도날드 매장에 어젯밤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했다. 폐점시간에 벌어진 일이라 인명 피해는 없었다.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볼 때 누전 때문일 공산이 크지만 화재의 정확한 원인은 감식반의 조사 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으며 지난주 개성의 맥도날드 매장에 발생한 화재와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확인된 바 없다는 것이 소방당국의 공식입장이다. 내가 스무 살이 되던 해 봄, 세상은 뭔가를 지키기 위해 분주했다. 누군가는 투기성 외국자본으로부터 경영권을 지켜야 했고 누군가는 만연한 학원폭력으로부터 자식을 지켜야 했고 누군가는 신자유주의의 칼바람으로부터 생존권을 지켜야 했고 또 누군가는 백 년 만의 폭설로부터 도시의 간선도로를 지켜야 했다. 그해 봄은 지켜야 할 뭔가를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척척 안겨주었는데 우리들이 지켜야 할 것의 목록에는 심지어 ‘독도’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우호적인 주주들을 끌어모아야 했고 학교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여야 했으며 생존권 사수라는 글이 박힌 머리띠를 두르고 길바닥에 드러누워야 했고 사라진 길 위에 밤새 염화칼슘을 뿌려야 했으며 무엇보다 성난 얼굴로 일본대사관 앞으로 달려가야 했다. 전쟁처럼 소란스럽고 잔인한 봄이었다. 스무 살이 되던 그해 봄, 나에게도 ‘사수’해야 할 것이 몇 개 있었다. 장래가 불투명한 남자친구의 폭발 직전인 성욕으로부터 순결을 사수해야 했고 좀체 원망의 대상을 찾을 길 없는 아버지의 실직 때문에 파탄에 직면한 가정을 돌봐야 했다. 그리고 실체가 불분명한 위협으로부터 맥도날드 매장을 지켜야 했다. 하나같이 사수하기 만만치 않은 것들이었으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나는 그것들을 반드시 지켜내야 했다. 지켜내서 나라는 존재가 아주 쓸모없지 않다는 것을 세상에 증명해야 했으니까. 그러니 그해 봄 내가 새끼 밴 고양이처럼 독기를 품은 채 지켜내려 했던 것은 거추장스럽기도 했던 순결과 있으면 성가시고 없으면 아쉬운 가정과 하나쯤 사라진다 해도 표도 나지 않을 다국적 패스트푸드점이 아니라 안락한 미래와 교환될 수 있는 나의 ‘가치’였다. 누군가는 그것을 ‘몸값’이라 부르기도 하는 모양이다. 용돈이나 벌 요량에 파트타임으로 일하던 내가 맥도날드 매장에 매일 출근하게 된 것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실업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두번짼가 세번짼가 큰 자동차회사에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의 관리부장이었다. 나에게는 아버지의 연말성과급이 얼마인지 보너스가 있는 달이 언제인지가 중요할 뿐 그 회사가 어떤 부품을 납품하는지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어쨌거나 모든 일은 아버지의 회사가 생산라인을 중국으로 이전하면서 비롯됐다. 원자재 가격상승 압박 때문에 생산비를 절감할 수밖에 없는데 생산비 절감을 위해서는 공장의 중국 이전이 불가피하다고 경영진이 전격 발표했다. 중국 이전만이 유일한 대안이라
작성일 2013-03-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8809상세보기 -
기획 우리 모두의 힘
[2012년 장르소설 특집] 우리 모두의 힘 듀나 1. 서화영이 담임을 따라 교실 안으로 들어왔을 때, 지희를 포함한 2학년 D반 아이들은 모두 피부에 정전기가 스치고 지나가는 것과 같은 짜릿한 감각을 느꼈다. 처음에 아이들은 자기네들이 새 전학생의 외모에 반응했다고 생각했다. 화영은 인상적인 외모의 아이였다. 예쁘다기보다는 잘생긴 편이었고, 날카롭게 날이 선 얼굴은 거의 인공적이었지만, 성형수술의 결과물보다는 모델의 개성을 강조한 조각품 같은 인상을 주었다. 키가 특별히 크지는 않았지만 깡마르고 긴 팔다리 때문에 후리후리해 보였다. 보고 신기해하거나 감탄할 수는 있지만 굳이 닮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 그런 외모였다. 담임의 맥없는 소개가 끝나자, 화영은 지희 옆자리로 가 앉았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그 자리에는 박윤중이라는 남자애가 앉아 있었다. 그 아이는 사흘 동안 변종 폐렴을 앓다 죽었고, 그 뒤로 그 자리는 계속 비어 있었다. 전염병이 휩쓸고 간 뒤 학교에는 그와 같은 빈 자리가 일곱 개 생겼다. 매스컴에서는 조용했지만 유전자 해커의 짓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심지어 세금 뜯어먹는 빈민가의 노인들을 처리하기 위해 복지부에서 세균을 풀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화영은 그 자리에 그냥 앉아 있었다. 쉬는 시간이 되어도 화장실에 가지 않았고 주변 아이들과 안면을 틀 생각도 하지 않았다. 수업시간에는 프롬프트 안경의 스크립트를 낭송하듯 읽고 있는 교사들의 얼굴을 쳐다보며 가끔 책상의 터치스크린 위에 끄적거리는 것 이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과 눈이 마주치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까딱이는 게 전부였다. 그러는 동안 전학생들이 보통 거치는 통과의례는 얼렁뚱땅 건너뛰고 말았다. 점심시간 때도 화영은 혼자였다. 지희는 멸균 뚜껑을 열고 식판 안의 음식을 꼼꼼하게 챙겨먹는 전학생의 옆모습을 훔쳐보았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저 아이가 신경 쓰이는 거지? 전에 알고 지내던 아이였나? 그때 내가 저 아이에게 무언가 잘못했나? 아니면 그냥 얼굴이 내가 아는 연예인이랑 닮은 것뿐일까? 갑자기 불이 나갔다. 반 지하 식당 안은 신경질적인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불은 다시 들어왔지만, 아이들은 이전의 소란스러움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 짧은 순간 동안 무언가가 식당 안의 공기를 바꾸어 놓았다. 세 명의 여자아이들이 일제히 화장실로 달려갔다. 다 먹은 식판을 들고 일어나던 남자아이 하나가 휘청거리더니 엉덩방아를 찧었다. 누군가는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했고, 누군가는 욕을 했다. 갑자기 쩍 하고 복도 쪽 나무 벽이 갈라지는 소리가 났고, 그와 함께 구석의 작은 창문에 거미줄 모양의 금이 갔다. 수업시간이 끝나자, 지희는 같은 반 단짝 아이들 둘과 함께 수다를 떨면서, 물건을 챙겨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화영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지희는 화영으로부터 20여 미터 간격을 유지하며 천천히 뒤를 따랐다. 교문 앞에 하얀 소형차 하나가 화영
작성일 2012-07-27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8801상세보기 -
기획 [공개인터뷰 나는 왜_성동혁 시인편] 최저음부의 풍경을 그리는 소년 사도
연속기획 공개인터뷰 _ 나는 왜?(제9회) 최저음부의 풍경을 그리는 소년 사도 - 시인 성동혁 편 정리 : 안희연(시인) 내가 아는 동혁은 살갑고 밝은 사람이다. 늘 뒤에서 살뜰하게 사람을 챙기고, 분위기를 환하게 만들기 위해 자주 농담을 던지는 사람. 혼자 밥 먹기 싫다며 자주 외로움을 호소하지만 실은 모든 이들의 “옆집”(「나 너희 옆집 살아」)에 기거하며 늘 주변을 돌보는 사람. 만날 땐 그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귀가 후에는 어김없이 잘 들어갔느냐는 문자를 잊지 않는 사람. 나는 그의 다정함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가끔은 그런 그가 애틋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가 다섯 번의 큰 수술을 받고 여섯 번째 목숨을 살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꽤 쌀쌀했던 12월의 두 번째 수요일, 동혁은 ‘카페라떼’ 한 잔을 앞에 두고 편안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니까 그것은 그가 생각하고 경험하고 노래한 최저음부의 풍경들. 그 첫 이야기는 그가 병실을 나서며 바람을 맞는 순간으로부터 시작된다. 병실을 나서며 ▶ 이영주(이하 이) : 문장 웹진》 연속기획 공개인터뷰 [나는 왜], 어느덧 올해의 마지막 행사군요. 아마도 오늘은 [나는 왜] 사상 동료 시인들이 가장 많이 온 인터뷰가 아닐까 싶은데요, 우선 오늘의 주인공인 성동혁 시인의 프로필을 간단히 소개해 드릴게요. 성동혁 시인은 1985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2011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6』(민음사, 2014)이 있습니다. [나는 왜]에서 꼭 한 번 모시고 싶은 분이었는데 마침 시집이 나와서 기쁜 마음으로 초대했어요. ▶ 성동혁(이하 성) : 네, 감사합니다. 조금 어색하기도 하네요. ▶ 이 : 그 어색함을 좀 누그러뜨리고자 [나는 왜] 공식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해 볼게요. 성동혁 시인을 문학의 길로 인도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는지, 어떻게 시를 쓰시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 성 : 왜 시를 쓰게 됐는지, 어떤 계기가 있었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는데, 저는 사실 특정 시인을 동경했다거나 어떤 작품을 보고 시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 적은 없었어요. 독서도 조금 늦게, 고등학교 때 시작을 했고요.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한 것도 고등학교 2, 3학년 때 교내 독후감 대회 같은 델 나가면서부터였어요. 사실 제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건강상의 이유가 컸어요. 활동적인, 신체적인 운동을 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으니까, 대신 정신의 운동을 했던 거죠. 글을 쓰는 일은 제게 레저와 같은 것이었어요. 제 몸이랑 잘 맞았거든요. ▶ 이 : 신체적인 운동이 안 되어서 정신적인 운동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문학에 입문하게 되었다는 말씀이군요. 지금껏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대답이라 아주 신선하네요. 오늘 뭔가 인터뷰가 재미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요. 아무쪼록 우리가 시집을 읽다 보면 그 시인의 현재 상태
작성일 2015-01-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2 조회수 8603상세보기 -
기획 신용목 - 2008 서울, 젊은 작가들 참가기
2008 서울, 젊은 작가들 참가기 신용목 1. 작가들, 그리고 축제 모든 만남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어떤 만남은 전쟁의 재앙을 낳기도 하였고, 어떤 만남은 한 세계의 종말을 불러오기도 하였다. 역사상 한 문화 공동체의 결정으로서 문명과 문명의 만남은 대체로 (오로지 힘의 논리에 의해) 기우는 쪽 문명의 비극을 감수해야 했다. 아시아가, 아프리카가, 먼 아메리카가 그러하였다. 그러나 가해자로서 유럽을 설정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문화적 관점으로 볼 때) 그들 역시 자신들이 만든 비극에 대한 아픈 자성을 내적으로 두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 집단화 된 욕망의 피해자라는 것이다. 새로운 정보를 접할 때처럼 은총일 수도 저주일 수도 있는 새로운 만남을, 그럼에도 갈구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세계를 확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문화적 영토에서는 분명하다. 물질 없이 풍요로울 수 있으며 피 흘리지 않고 다칠 수 있는 것. 충돌과 충돌이 개간하는 넓은 지평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존재 확인이 그러하듯 문화는 하나 이상의 개체가 만들어 내는 관계 속에서 발생한다. 관계가 발생하는 곳은 크든 작든 사회가 만들어지고 그 표현 양식인 문화가 존재한다. 관계의 방식을 규정하고, 강제로 조율하는 법률이 문화보다 비본질적인 것은 그것이 언제나 불완전한 세계를 규정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작가들의 만남은 그 문화적 형식에 의해 형성된 내적 자아의 만남이다. 그 만남을 통해 만들어지는 어떤 것도 어쩔 수 없이 한 사회적 속성을 지니겠지만, 그것은 규정된 방식이나 강제적 조율의 범주 밖에서만 가능하다. ‘작가’라는 정체성과 상반된 ‘축제’라는 형식이 공존해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렇게 세계 20개국에서 온 20명의 작가와 한국 작가 20명이 서울에서 만나 일주일 동안 함께 했다. 한국문학번역원의 주최로 이루진 은 와 , 등으로 짜여졌다. 전체적인 행사 내용을 상세하게 전달하면 좋겠지만 홍대를 중심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 행사에 모두 참가할 수 없었으며 일주일 만에 모든 작가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기도 불가능했다. 내가 보고 만나고 느낀 행사와 작가들, 작품들에 대해서만 여기에 옮길 수밖에 없어 내심 안타깝다. (전체적인 행사 스케치는 주최 측인 한국문학번역원의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통해 볼 수 있다.) “We have no choice!" 리셉션 인사말에서 ”여러분은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라고 한 윤지관 번역원장의 말이 행사 내내 유행하였다. 멀고 낯선 나라에 와서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외국 작가들의 불만을 사전에 불식시키고, 행사를 내실 있게 꾸리기 위해 한국 작가들도 숙소에 함께 투숙하게 한 이유에 대한 설명이었다. 한국문학과 작가들을 해외 작가들과 교류하게 함으로써 한국문학의 질적 수준을 높이고 해외작가들에게 한국과 한국문학에 대한 긍정적 자세를 견지하고자 했던 행사는 그렇게
작성일 2008-05-30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8406상세보기 -
기획 2000년대 한국문학, 첫 10년을 정리한다 (1부)
[기획특집] [좌담] 2000년대 한국문학, 첫 10년을 정리한다 - 1부 - ◆ 일시_ 2010. 11. 17(수) ◆ 장소_ 예술위원회 본관 대회의실 ◆ 진행_ 복도훈(문학평론가) ◆ 참석_ 서희원, 양윤의, 이선우, 장성규(이상 문학평론가) 10년간, 작가와 작품의 경향 ▶ 복도훈___ 안녕하세요? 다들 원고 마감으로 한창 바쁘실 텐데 이렇게 대담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가 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2000년 초반부터 10년 동안의 한국소설, 그리고 그를 통한 문학의 전반적인 흐름과 경향에 대한 것들입니다. 2000년대 첫 10년 동안에 나온 한국소설과 그 경향은 이전, 곧 90년대 후반의 소설들과 변별되는 어떤 특징이 있을 것입니다. 2000년부터 2010년 사이에 나온 한국소설의 경향이나 흐름도 세분화할 수 있지만, 먼저 2000년대의 한국소설이 이전의 소설과 뚜렷하게 변별되는 특징이 있는지, 있다면 그것은 작가이거나 작품이거나 경향이거나 논쟁들이고 또 무엇 무엇일 텐데, 한 분씩 편하게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대담을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 서희원___ 『문예연감』에서 작품목록이라도 뽑아 놓을 걸 그랬나 봐요. (웃음) 작품목록을 뽑아 놓고 보면 대충 감이 잡히잖아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2000년대 초반이라고 하니까 대단히 먼 것처럼 느껴지네요. ▶ 이선우___ 네. 2000년이면 사실 10년 전이니까요. 그래서인지 2010년에 문학 좌담을 하면, 실제로는 2000년대 중·후반부터 논의되는 것 같아요. 물론 그건 단지 시간적 거리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1997년, 그러니까 IMF 외환위기 이후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 어느 정도 일관된 흐름이 있었던 것 같고, 그 이후부터는 좀 다른 흐름이 있었던 것 같거든요. 2000년대 문학을 정리할 때 중·후반 이후의 흐름을 가지고 이야기해야 할지, 1990년대의 연장선에서 2000년대 초반부터 이야기해야 할지가 문제인데……. 10년 단위의 문제점이 여기서 나타나는 것 같네요. ▶ 서희원___ 대담을 시작하기 전에 고봉준 평론가가 “리얼리즘 모더니즘 논쟁이 2000년대 초반에 있었다”라고 이야기할 때 그 순간이 아득히 먼 옛날처럼 느껴졌습니다. 지금은 그런 논쟁을 거의 안하지 않나요? ▶ 이선우___ 그런가요? 물론 예전처럼 그렇게 기계적으로 이분화하지는 않지요. ▶ 서희원___ 비평이 많이 유연해진 부분도 있고, 또 그 사이에 그 이분법이 그다지 큰 효용이 없다는 것이 밝혀진 것 같기도 하고요. ▶ 이선우___ 그런데 리얼리즘·모더니즘 논쟁과는 다소 다르지만, 순수·참여 논쟁의 새로운 버전이 최근 다시 문단을 달구지 않았나요? 분명 다른 것인데도 불구하고 같은 방식으로 반복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었고,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60년대가 소환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 양윤의___ 그런 논쟁의 지점이라면 2005년 이후 비평 담론 안에서
작성일 2010-12-10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8278상세보기 -
기획 서재의 역사
서재의 역사 ―백석의 「힌 바람벽이 있어」와 윤동주의 「별 헤는 밤」에 있어서의 세계와 문학 김수림 1. 藏書家 윤동주 1999년 민음사에서 출간된 『사진판 윤동주 자필 시고 전집』(이하 『자필』)에는 유족이 보관하고 있던 자필 원고를 비롯해서 시인 생전의 스크랩 자료, 밑줄이 그어지고 메모가 된 장서들의 사진 이미지, 그리고 그 책들의 목록, 직접 옮긴 백석의 시집 『사슴』의 필사본 노트 등이 사진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이것은 우리가 익숙히 알고 지내 왔던 개인 전집에 관한 통념과는 다른 형태로서 한 시인을 책 속에 담아 보여 준다. 즉 한 작가의 삶과 시대를 작품들로 생략?집약하면서 또한 그 작가의 작품 전체를 집대성하는 하나의 작은 세계―기념비적인 문학의 소우주를 구축하여 제시한다는 통념과는 다른 무엇으로서. 요컨대 『자필』에서 독자들이 보게 되는 것은 죽은 자가 남기고 간 역사적 유품―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유품들의 목록과 그 이미지들의 적나라한 더미 속에서 스며 나오는 유품 그 자체의 이미지이다. 물론 자필로 단 3부만이 작성된 자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유일하게 동료였던 정병욱에 의해 보관되어 1948년 정식으로 출간된 이후, 윤동주의 시와 시집 전부는 그 자체로 하나의 유품으로서의 운명을 지닌 신화적인 기록이 되었고 한국근대문학사에 있어서 서정시의 뚜렷한 전범이 되었다. ‘모든 책은 제각기 자신의 운명을 가지고 있다’―발터 벤야민은 책 일반에 관한 이 라틴어 속담을 모든 낱권의 책은 자신만의 운명을 지니고 있다는 말로 바꾸었던 적이 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경우, 그야말로 유일무이했던 낱권의 운명은 1948년 이후 무수히 인쇄된 윤동주 시집 혹은 전집 일반이 되는 것이었고, 시인으로서의 윤동주의 운명과 신화를 쌓아 그 일부가 되는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자필』 전집 역시 이러한 신화의 연장선 위에서 작가의 육필(肉筆)이라는 가장 신화적인 관념에 기대어 우리 앞에 놓인 책의 하나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적나라한 유품이란, 한 때 그 주인이었던 육체에 대해 언제나 좀 더 많은 것을 혹은 다른 것을 말해 주는 법이다. 예컨대 윤동주의 원고지로부터 그가 소유한 책들이 꽂힌 서가로 돌아서면 장서가 윤동주, 실내의 고독한 주인이었던 문학청년의 모습에 대해서 넉넉하지 못한 유품들의 목록이 말하기 시작한다. 불과 50권이 채 되지 않는 윤동주의 장서 목록에는 미요시 타쯔지(三好達治)가 번역한 프란시스 쟘(フランシス·ジャ?)의 『夜の歌』가 포함되어 있다. 구입 시기는 1940년 1월 31일. 윤동주와 백석의 독자들 모두에게 익숙한 프랑스의 목가적 성향의 시인의 이름은 식민지 시기에 걸쳐 그다지 활발히 소개된 편은 아니었다. 그러한 중에서도 두 시인의 어휘 선택과 관련된 공명을 추측해 볼 수 있을 만큼 시간적으로 가까웠던 것은 1939년 말 무렵 두 차례 있었던 손우성의 번역 정도였다. “쟈므의 一週忌를 當하야” 동아일보 학예면에 실린
작성일 2007-09-28 작성자 wikisoft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7761상세보기 -
기획 조경란 - 베를린 통신
[조경란이 만난 사람 2] 야콥 하인Jakob Hein 베를린 통신 1. 야콥에 관한 짐작 "틀림없이 그는 냉소적일 것이다. 유머감각이 있을 것이다. 아버지를 싫어할 것이다. 머리가 좋은 사람일 것이다. 말이 많고,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일 것이다. 잘난 척하기를 좋아할 것이다. 남이 뭐라고 말하든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잘 웃지 않을 것이다. 글쓰기가,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글쓰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어쩐지, 마르고 대머리일 것 같다!" 이 년 전, 그의 『나의 첫 번째 티셔츠』(2004, 샘터사)를 읽고 난 후 나는 그가 이런 사람일 거라고 짐작했다. 책에는 작가 사진이 실려 있지 않았으므로 야콥 하인이라는,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는 젊은 작가의 외모를 짐작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었다. 물론 일 년 뒤, 우리가 서로 만나게 될 거라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그와 내가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짐작한 그와 실제의 그가 너무나 똑같아서 아, 나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크리스토프 하인, 그의 아버지에 관한 짐작만 빼곤. 2. 베를린, 그의 집 "우리 집에 오지 않을래? 내 아내도 너를 무척이나 만나고 싶어 해. 하지만 우리 집은 거대한 놀이터야. 너무나 지저분하고 발 디딜 데가 없어. 너도 알다시피 나에게는 막무가내인 두 보스들이 있잖아. 너는 아마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될 걸. 정말 집이 카오스 상태야, 카오스! 그런 것에 개의치 않겠다면 와서 함께 저녁을 먹자." 그리고 그는 이메일 끝에, 내 숙소가 있는 반제Wannsee서부터 택시를 타면 요금이 너무 많이 나올 거라고 걱정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서울에서라면 모를까, 아무리 내가 길눈이 없고 방향치라고는 해도 타지에 머물 때는 웬만해선 택시를 타지 않는다. 택시를 타고 다니면 낯선 곳에 와 있다는 실감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몽상을 즐기기엔 택시는 너무나 빨리 달린다. 7월 21일 금요일. 야콥이 상세히 알려준 대로 기차를 타고 알렉산더 플라츠 역에서 내렸다. 베를린에서 가장 높다는, 365m짜리 거대한 텔레비전 타워가 보인다. 거기서 다시 택시를 타고 오 분 뒤, 나는 플렌즈라우어 베르거에 있는 그의 집 앞에 도착했다. 3. 두 달 전, [서울, 세계젊은작가 페스티벌] 지난 5월 7일부터 13일, 일주일 동안 ‘한국문학번역원’이 주최한 [젊은작가 페스티벌]이 서울에서 열렸다. 우리나라 작가 약 이십여 명과 프랑스, 체코, 영국, 일본, 헝가리 등 17개국에서 초대된 작가들이 함께 ‘문학에 있어서 새로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토론을 하고 함께 여행도 하는 그런 페스티벌이었다. 어떤 작가들이 서울에 오나? 유심히 명단을 들여다보다가 독일에서는 야콥 하인과 알리사 발저, 이 두 작가들이 오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야콥 하인, 크리스토프의 하인의 아들. 알리사 발저, 마르틴 발저의 딸. 그 두 작가와 혹시 긴 이야기를 나
작성일 2006-08-03 작성자 wikisoft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7331상세보기 -
기획 김근 - ‘김경주’라는 조각퍼즐
‘김경주’라는 조각퍼즐 김근 나는 시인 김경주와 친하지 않다. 친하지 않다는 말은 가깝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몇 년 동안 우리는 꽤 가깝게 지냈다. 그러나 단둘이 만나 술 마셔본 적도 없다. 속엣얘기를 주고받은 바도 없다. 언젠가 내게 ‘새가 되어 날아갈 것 같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그 말은 나보다는 김경주에게 소용되는 말인 듯하다. 그에 비하면 나는 붙박이 나무 같다. “바람이 불자/새들이/자신의/꿈속으로 날아”(「바람의 연대기는 누가 다 기록하나」)가듯이 그는 훌쩍 언제든 날아가버릴 것만 같다. 그의 감각적인 언어가 더듬는 것은 “삶이/닿지 않은 곳에만/가서” 젖는 메아리일지도 모른다. 관계는 위태롭다. 위태로움의 그 긴장이 우리를 아직도 만나게 하는지 모른다. 그는 요즘 자주 파란 트레이닝복 차림이다. 수염도 깎지 않은 채 나타나기가 다반사다. 푸른빛의 반팔을 밝은 긴 소매옷에 겹쳐 입은 차림이다(김경주가 반팔 티셔츠를 입은 걸 본 적이 없는 듯도 하다). 그는 집이 없다. 뭐, 물론 나도 집이 없긴 마찬가지지만, 그에게는 월세나 전세로 얻은 집도 지금 아예 없다. 급작스럽게 그렇게 됐다. 책과 짐들은 이삿짐센터에 보관된 상태다. 얼마 전 세 들어 살던 집이 재개발로 헐리게 돼 급하게 집을 비워야 했다고 한다(그의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의 집에 가봤다거나, 그의 고양이들을 직접 눈으로 목격한 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집을 누구한테도 잘 안 보여준다. 그나마 이전에 살던 집의 모양이라도 겨우 보게 된 건 TV를 통해서였다. 잠시 시인 강정이 구성작가로 일했던 프로그램이었다. 희한하게 젊은 시인들의 생활이 공중파를 타고 전국으로 떠다녔다. 그가 모았다는 피규어들 역시 구경하지 못했다. 그의 시를 통해서 우리는 그의 삶을 단편적으로 짐작할 뿐이다. 그러다 「열두 개의 마트로시카」(《문예중앙》2006년 겨울호) 같은 글에서 뒤통수를 얻어맞는다). 요즘 그는 후배 집과 작가회의 사무실을 전전하며 글을 쓰고 있다고 했다. 이상도 하지. 그에게는 이런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모양이다. 갑작스럽게 집이 헐려버리는 일 따위. 그래서 다시 떠도는 일 따위. 정주하지 못하는 바람같이. 그에게는 오토바이가 하나 있다. 그가 ‘애마’라고 부르는 83년식 60cc 콜레다 윙카다. 라이방 선그라스에 항공점퍼를 입고 단발의 퍼머머리를 휘날리며 그가 한창 오토바이를 타고 다닐 때였다. 며칠째 침울함이 그의 얼굴에서 가시질 않았다. 이유를 물었더니, 180만원을 구할 일이 막막해서 그렇다고 했다. 느닷없이 무슨? 얘기인즉슨, 이랬다. 집에서 술을 한잔 하다가 담배가 떨어져 담배를 사러갔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편의점까지 걸어가도 되는 걸, 굳이 그는 오토바이를 탔다고 했다. 편의점 못미처에서 경찰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물론 몰랐겠다. 무면허에 음주운전까지, 시쳇말로 딱 걸린 거다. 결국 그대로 경찰서
작성일 2007-08-01 작성자 wikisoft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7115상세보기 -
기획 우리에게 다녀가는 것들을 만나고 돌아온 봄날
대담 박완서(소설가) 진행?정리 김연수(소설가) 대담 내용 듣기 아직 살구나무에 꽃이 피지 않았을 무렵, 아치울 마을에 있는 박완서 선생의 집으로 찾아갔다. 바티칸에서 열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에 정부 조문사절단으로 참석했던 선생이 막 돌아온 직후였다. 급박한 일정에 파리를 경유하는 장거리 비행 일정이었는데도 선생의 모습은 그다지 피곤해보이지 않았다. “부시는 보셨나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지자, 선생은 그 날 장례식이 얼마나 큰 규모로 벌어졌으며, 어떤 예법으로 진행됐는지 차근차근 설명했다. 선생의 목소리나 말투는 소설 속 주인공을 많이 닮아 있다. 그러니까 8년도 더 지난 일인데, 잡지사에 다닐 때 선생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아직 아치울 마을이 시골 같은 정취가 남아 있었다. 선생의 집 2층 작은 창으로 계절마다 해가 어떻게 저무는지 설명하는 목소리를 듣다가 그만 선생이 방학 맞아 시골집 내려온 여고생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아유, 그게 말이지요’라든가, ‘뭐, 그냥’이라고 시작하는 것은 선생의 독특한 화법이다. 웃음소리와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 목소리는 여전했다. 지금 우리의 부채 김연수 : 이상하게 선생님 책은 병원에서 많이 읽게 됩니다. 어머니가 병원에 자주 가시는데, 작년에 또 입원하셨거든요. 그래서 병원 보호자 의자에서 『그 남자네 집』을 읽었습니다. 지금 쓰시는 글은 없으세요? 박완서 : 네. 김 : 여전히 쓰시고 싶은 글은 있으시죠? 아니, 계속해서 쓰시고 싶지 않으세요? 박 : 뭐, 그냥. 머릿속에 쓰고 싶은 게 있기는 하지만, 그걸 다 쓰겠어요? 나는 이제 긴 글은 구상을 안 해요. 김 : 단편만 쓰시게요? 박 : 글쎄요. 단편만 쓰겠다는 게 아니라, 중편에서 장편 길이 정도 되는 소설을 몇 개 정도 구상하기는 합니다. 그런데 그걸 쓰겠다고 어떤 사람과 약속을 한다든지 하는 일은 없어요. 나 자신하고도 약속하지 않아요. 김 : 그래도 꼭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있지 않나요? 박 : 대강 다 울궈먹은 것 같네요.(웃음) 김 : 처음에 문예지에 『그 남자네 집』을 발표할 때는 단편보다는 조금 긴 중편이었죠? 박 : 아니, 120매 정도 되는 단편이었습니다. 그 때 잡지사에 얘기하지는 않았는데, 다 써서 넘기고도 다 쓰지 못한 게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모자란 것 같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 전에 『엄마의 말뚝』을 쓸 때도 그랬어요. 그래서 연작으로 써볼까, 마음먹었는데 『엄마의 말뚝』 때도 그렇고, 연작으로 쓰면 조금 느낌이 다르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장편으로 만들었어요. 김 : 그 때, 더 써야겠다고 하셨던 부분은 다 쓰셨나요? 박 : 네, 다 썼어요. 김 : 어느 부분이었나요? 박 : 그 남자에 대한 얘기를 다 하지 못한 것 같아서 그랬던 것도 있고, 또 사실 그 남자 얘기보다도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더 많은 애정이 갔기 때문에…… 사실은 그랬어요. 김 :
작성일 2005-05-23 작성자 wikisoft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6821상세보기 -
기획 몸에서 출발하여 마음의 우주에 이르기까지
몸에서 출발하여 마음의 우주에 이르기까지 대담 박상륭(소설가) 진행?정리 한창훈(소설가) intro 고향을 가서 고향을 잊어버리다 서라벌예대, 이문구 가족 오관유정 유리사투리 우리말이 갖고 있는 율조성 자벌레가 나비되기 마음론에서는 배척할 것이 없다 서양철학에는 블랙홀이 있다 어느 날 소설에 많이 지쳤다. 작가들이여 독자를 상대로 데모를 하라 한번 이민은 영구한 이민이다 영원히 사라져버린 것, 그것은 고향 한창훈 선생님,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상륭 허허허. 지금 살고 있는 섬 이름이 뭡니까요? 한창훈 제가 사는 데는 거문도입니다. 박상륭 네? 한창훈 거. 문. 도입니다. 박상륭 거기서 여기까지 어려운 걸음을 했으니 저야말로 감사하죠. 한창훈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요, 길 떠나는 자에게는 이유가 세 가지 있는데, 하나는 길 자체의 유혹이고, 하나는 풍문이고, 하나는 충동이라고 하셨습니다. 박상륭 그래, 어느 경우입니까? 한창훈 저는 선생님이 오셨다는 풍문을 듣고 마음이 설레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이쪽(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저를 불러 올렸는데 그 이유는 이 기회에 선생님 뫼시고 공부 좀 배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올라왔습니다. 박상륭 허허허. 풍문을 쫒아서 충동적으로……. 한창훈 장수 고향에 최근 언제 가보셨나요? 박상륭 EBS에서 정지아 씨가 ‘작가와의 기행문’인가를 해가지고 안 갈 수가 없어서 세 시간 있다가 왔는데, 고향에 가서 고향을 잊어버렸습니다. 마음속에 그리던 고향은 초가집에 호박도 열려 있고 박도 매달려 있고 뭐 이런 거 있잖아요. 근데 가보니깐 전부 다 바뀌고 옛날에 상섭이네가 살던 데는 상섭이도 없고 이래가지고 고향을 잊어버리고 왔습니다. 안 갔으면 아직도 그런 고향이었을 건데 가서 봤기 때문에 고향이 없어져 버렸어요. 한창훈 차라리 안 가신 게 더 좋을 뻔했네요. 박상륭 고향은 거기 없습니다. 그동안에 많이 바뀌어가지고. 밖에 있던 고향이 이제 안으로 옮겨 버린 거죠. 이 세상에는 없는지도 모르죠. 한창훈 하기는 제 사는 섬도 다 바뀌어서 옛날 모습이 하나도 없는데 내륙은 더 하겠죠……. 선생님 장수농고를 나오셨는데요. 박상륭 장수농고는, 어느 분이 학문열도 있었고 정치열도 있어가지고 그것으로 어떻게 표 좀 모아 볼까 싶어서 꾸몄는데 1회는 열다섯 명이 졸업했을 거예요. 2회가 우린데 세 명이 졸업했고 그 세 명 중에 제가 3등 했습니다. 한창훈 수석 졸업하셨다고 이문구 선생님께 들었는데요. 박상륭 3등이라서 수석에 속한 겁니다. 그렇잖아요? 한창훈 이문구 선생님 글을 읽어 보면 장수농고 다니실 때 이화여대 국문과 학생과 사랑에 빠지셨다고 그러셨는데요? 박상륭 그런 적이 있었지요. 얼음판에 애들 팽이 치고 우리말로 스케또라 그러죠? 스케또도 타고……. 그 여성은 겨울철에 머슴이 업고 탔는데, 머슴이 넘어지면서 다리를 다쳤던 모양이에요. 그래가지고 한 다리를 절룩거리
작성일 2008-08-29 작성자 wikisoft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6803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