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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임가영 - 게임과 작가[편집위원 기획-Game & Writer] 게임과 작가1) 임가영 예술을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나는 20대 중반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 모두 기억나지는 않는다. 나는 그림이 좋다거나 무언가를 만드는 게 좋다는 이유로 예술을 하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현대미술’이 좋았다. 더 정확하게는 ‘예술’이 무엇인가에 대한 경계 설정에 관여하는 시도들이 좋았다. 더불어 ‘작가’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도 좋았다. 위대한 창작자의 숙련된 솜씨와 천재적 재능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것들을 작품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관객이나 독자들에게 창작의 공을 돌리는 시도들이 공감이 갔다. 말하자면 나는 ‘저자의 죽음’을 목격하기 위해 현대미술을 택했다. 예술을 하기 전 나의 전공은 정치외교학이었고, 처참한 학점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관심이 갔던 과목이 ‘정치철학’이었던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또는 그때까지 나는 그림을 그려(웹툰 어시스턴트와 게임 캐릭터 원화가) 돈을 벌고 있었는데, 한 번도 나 자신을 창작자로 생각한 적이 없었고 한 번도 내 그림에서 예술 비슷한 것을 느껴본 적이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래서 미대를 들어갔고, 내가 관심을 가졌던 것들에 대한 작업을 하기 위해 애썼다. 미술 갤러리 안에서 카레를 끓여 나눠 먹거나 지역의 경찰과 청소년이 다 같이 둘러앉아 청소년 범죄율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작품들을 리서치하고, 이러한 참여형 미술을 둘러싼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와 클레어 비숍(Claire Bishop), 그랜트 케스터(Grant Kester)의 담론적 논쟁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어렴풋이, 나는 그게 내가 원하는 것들이라고 생각했고 역량이 되는 한도 내에서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이론은 이론일 뿐인 듯했다. 저자의 죽음이라는 말을 믿고 예술을 시작했는데, 저자는 좀처럼 죽지 않았던 것 같다. 한 교수는 술자리에서 내게 “너는 아직 작가는 아니야.”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작가는 ‘자기 일을 책임지고 해낼 수 있는 사람, 혹은 그에 준하는 물질적, 비물질적 중심점’처럼 느껴졌다. 작품을 만들고 그것을 관객에게 보여준 다음 그 과정을 포트폴리오에 잘 기록해서 다음 전시 기회를 얻어낼 수 있는. 다른 교수는 작가가 에고가 강하고 별나야 한다는 식으로 말했다. 나는 작가가 그런 것인 줄 알았다면 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현대미술은 일종의 폰지 스킴(Ponzi scheme)처럼 나를 가짜 약속으로 끌어들였던 걸까? 아니면 나는, 남들에게는 당연한 것을(아무리 이런저런 반작가적 실천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선언이나 담론이 존재한다 해도 결국 제도는 안정적인 창작자–수용자 모델 속에서 지속되며, 이것은 사실 ‘저자의 죽음’ 자체와는 관련이 없다는 사실 같은 걸)
작성일 2026-05-01 댓글수 0상세보기 -
기획 이태형 - 주사위 신의 가호가 당신에게 있기를[편집위원 기획 – Game & Writer] 주사위 신의 가호가 당신에게 있기를 이태형 1. 게임 준비(Rule Book) 시내에 하나밖에 없는 완구점의 창고에 불이 났습니다. 전소된 창고에 다녀왔다는 아이들은 온전한 장난감을 몇 개씩이나 집어 왔다고 합니다. 당신도 친구와 함께 화재 현장을 향해 달려갑니다. 잔해 위로 중년의 여성이 울면서 욕설과 함께 타다만 물건을 손에 잡히는 대로 던집니다. 쥐 떼 같은 아이들은 아랑곳없이 눈에 불을 켜고 온전한 물건을 찾습니다. 당신과 함께 온 친구는 망설임 없이 쥐 떼 무리에 합류합니다. 당신은 친구의 눈에서 평소와 다른 광기를 느낍니다. 광기가 당신에게 친구처럼 무리에 합류하라 명하며 그로 인해 당신이 얻을 혼돈의 기쁨에 대해 속삭입니다. 당신이 그 무리에 합류하기로 했다면 민첩(2)을 테스트합니다. 합류하지 않기로 했다면 의지(1)를 테스트합니다. ➜ 합류하기로 하고 민첩 테스트에 성공했다면 당신은 곰 인형 1개와 무작위 일반 물품 1개를 얻습니다. 당신에게 무법자 또는 생존자 특성이 있다면 추가로 지식(1)을 테스트합니다. 성공했다면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핑계를 떠올립니다. 실패했다면 당신은 잠시 죄책감을 느낍니다. 정신력 1을 잃습니다. 무법자 또는 생존자 특성이 없다면 정신력 2를 잃습니다. 민첩 테스트에 실패했다면 당신은 여성이 던진 물건에 맞아 잔해에 미끄러져 넘어집니다. 오른손으로 잔불을 짚어 손에 화상을 입습니다. 체력 1을 잃고 화상 카드를 얻습니다. 힘(2)을 테스트할 수 있습니다. 테스트하기로 해서 성공했다면 무작위 일반 물품 1개를 얻습니다. 이 정도 화상은 당신에게 아무것도 아닙니다. 실패했다면 손 골절 카드를 추가로 얻습니다. 무모하게 일어나려다 미끄러져 더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손 골절이 있는 동안 당신은 한 손 보조도구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테스트하지 않기로 했다면 화상 카드를 뒤집고 즉시 지시를 따릅니다. 물품 획득 여부와 상관없이 시나리오 시트에 ‘불탄 창고에서 물건을 훔쳤다’고 기록합니다. ➜ 합류하지 않기로 하고 정신력 테스트에 성공했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당신은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납니다. 친구는 당신과 그 자리에 함께 갔던 사실도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정신력 테스트에 실패했다면 광기가 여전히 당신도 합류하라고 귀에 계속 속삭입니다. 정신력의 최대치 1이 줄어듭니다. 당신은 가만히 서서 이 장면을 눈에 담습니다. 이 풍경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입니다. 시나리오 시트에 ‘불탄 창고를 약탈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고 기록합니다.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1890~1937)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개념인 크툴루 신화(Cthulhu Mythos)를 기반으로 하는 보드게임에서 일어날 법한 상황을 ‘장소 조우’로 재구성한 글이다. 결과로만 본다면 물품을 2개나 훔치고 자기합리화를 통해 불이익을 피하는 첫 번째 선택이 가장 좋은 판단 같아 보인다
작성일 2026-05-01 댓글수 3상세보기 -
기획 박서련 - 모르면 죽어[편집위원 기획 – Game & Writer] 모르면 죽어 박서련 근황 얘기에 영 소질이 없다. 웃길 의도가 없었는데 상대를 박장대소하게 하거나 전혀 어두운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한 소재로 분위기를 망치거나. 요즘은 게임도 그렇게 재미 있지가 않아요. 최근에는 이 말을 좀 자주 했다. 별생각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를 말한 거지만 듣는 분마다 놀라셔서 내가 더 놀랐다. 헉 진짜요? 서련 씨가요? 작가님이요? 그게 그렇게 의외이실까, 약간은 머쓱해하다가 내가 한 말이 왠지 ‘요새 밥도 맛이 없어요’처럼, 그러니까 중증 우울증 환자의 말처럼 들릴 수도 있음을 조금 의식하곤 했다. 그럼 이제 여가 시간에 뭘 하세요? 요즘엔 뭐가 재미있어요? 그래도 여전히 게임을… 합니다. 안 하는 게 아니고요 재미있지는 않아도 그냥… 해요. 전보다 게임 하는 시간이 줄어든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수습하듯 덧붙이곤 최근에 삭제한 어떤 게임을 떠올린다. 영주가 되어 한 도시국가를 경영하고 연맹의 일원으로서 왕국 간의 전쟁에 참전하는 콘셉트의 모바일 게임이었는데, 삭제하기 직전 확인한 플레이 타임은 대략 700시간 정도였다. 작년 이맘때였나, 한국인 유저가 별로 없을 때 시작해서 다국적 연맹에 가입했고 이따금 인도네시아에 사는 여성 연맹원과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이런 게임에서 아시안 여성 게이머를 알게 되어서 좋아요. 나도 그래요. 연맹원들에게 내가 한국인 여성인 것을 밝히고 받은 메시지는 대체로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한국에서도 인기가 있나요?’ 같은 것이었고, 그 사람과 내가 마지막으로 주고받은 대화도 내가 잘 모르는 케이팝 아이돌 그룹에서 역시 크게 관심 없는 멤버가 탈퇴했다는 소식에 대한 거였다. 상대방이 아주 슬퍼했기에 나는 그 주제에 그리 관심이 없으면서도 최선을 다해 그를 위로하려 애썼다. 그 며칠 후에 별다른 개연 없이 그 사람이 다른 왕국(이 게임에서 ‘왕국’은 서버를 의미한다)으로 이주했다. 뒤따라 이주할 만큼 그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이제 그 사람과 대화할 수 없으니 더는 이 게임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들었다. 내가 떠난 후에 나의 성은 연맹 내 등급이 차츰 떨어진 후에 연맹에서 자동 탈퇴될 거다. 그러면 연맹 사냥터 인근 개꿀 자리에 위치한 내 성이, 연맹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방해물처럼 여겨질 거다. 그럼 연맹원들이 내 성을 공격하겠지. 성이 충분히 데미지를 입으면 왕국 내 랜덤 위치에 자동 이동하게 되니까. 그렇게 되기까지 한 일주일 걸리려나? 길면 2주? 이 게임을 그만두기로 마음먹기 직전 나는 전투력 1억을 막 넘긴 상태였다. 축하해, piupiu. 아이디가 기억나지 않는 어떤 연맹원이 연맹 채팅 채널에서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서야 내 성의 전투력이 그 정도라는 것을 알았다. 내 성을 공격할 때 연맹원들은 애를 좀 먹으려나? 아니겠지, 우리 연맹에는 일
작성일 2026-05-01 댓글수 0상세보기 -
기획 김승일 - 게임에 대한 글[편집위원 기획 – Game & Writer] 게임에 대한 글 김승일 1. 내 친구랑 나는 운동을 싫어한다. 담배를 좋아한다. 하지만 우리는 매번 담배를 끊자고, 운동도 열심히 해보자고 각오를 다진다. 오래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뇌신경에 게임을 직접 연결할 수 있는 기계가 나올 거다. 그 기계로 VR MMORPG를 해야 한다. 적어도 그게 나올 때까지는 살아야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임은 아직 해보지 않은 게임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학 작품도 아직 내가 읽지 않은 작품이다. 그래서 시인이 된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직접 아직 없는 것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게임을 만드는 모임도 만들었다. 셋이서 10년 동안 게임을 구상하기로 했다. 10년 후에 무조건 게임이 나와야 하는 것은 아니다. 10년 더 걸릴 수도 있다. 그렇게 계속 미루기만 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 모임의 이름은 원래 ‘베이퍼웨어 프로젝트’였다. 근데 혹시 언젠가는 진짜로 게임을 만들 수도 있으니까, 모임 이름을 ‘언메이드’로 정했다. 우리는 일단 우리가 만들 게임에 대한 글을 써서 책을 내기로 했다. 2. 만들어지지 않은 것을 사랑하는 것도 좋지만, 이미 만들어진 것에 대해서 글을 쓰는 것도 좋다. 게임에 대한 글을 사랑한다. 내가 사랑하는 게임에 대한 글은 게임을 죽이는 글이다. 게임을 죽여서 세상에 없는 게임으로 만드는 글이다. 나는 게임 방송을 딱히 즐겨 보지 않는다. 게임 방송은 게임을 죽이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시청자가 게임을 직접 하는 대신 게임 방송을 본다. 그것도 게임을 즐기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게임에 대한 글이라고 별다른 것도 없다. 내가 아직 해보지 않은 게임의 공략, 비평, 에세이를 읽으면 언제나 그 게임을 직접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하지만 게임에 대한 글이 흥미로우면 흥미로울수록, 이상하게 게임을 실제로 구매하지는 않게 되었던 것 같다. 물론 게임의 근본적 재미는 직접 뭔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게임 방송의 시청자가 게임을 구매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클리어하는 데 100시간 걸리는 게임의 방송을 100시간 동안 시청한 시청자가 다시 100시간의 모험을 떠나기 위해 게임을 구매할 확률은 확실히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게임 방송이 게임을 죽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게임 방송이야말로 게임을 가장 생생하게 잘 전달하는 매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플레이하면 다양한 변수들이 생길 수 있지만. 어쨌든 게임 방송을 본 다음 게임을 하면 방송에서 본 것들을 똑같이 만날 수 있다. 오히려 게임에 대한 글이 문제다. 게임에 대한 글은 게임을 결코 생생하게 전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게임 에세이는 이미 서비스가 종료된 온라인 게임에 대한 글이다. 내가 오늘 원래 쓰고자 했던 글도 라는 게임에서 만난 친구들 얘기였다. 시인은 추억을 죽이는 사람이라고 한다. 추억을 풀어놓으면 추억은 실제보다 단순
작성일 2026-05-01 댓글수 0상세보기 -
기획 최예솔 - 우아한 세계에서 현관 닫기[문장웹진 다시 읽기] 우아한 세계에서 현관 닫기 ― 황인찬「현관을 지나지 않고」(2015년 10월호 수록) 최예솔 5월의 리뷰를 시작하기에 앞서 한 가지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내가 지독한 집순이라는 점이다. 내가 집을 사랑함에 있어서 계절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기온이 오르고 꽃이 피고 온갖 가정의 달 행사로 거리가 북적거려도 나는 집에 있는 것이 좋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이 추우나 더우나 집이 좋다. 집은 언제나 집이고 나는 그 안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느낀다. 바깥이 유독 불안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내가 집에 있을 때, 거실 소파에 누워 있을 때 가장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바깥의 내가 가짜라는 건 아니지만. 바깥의 나는 목이 늘어난 잠옷을 입거나 푹신푹신한 쿠션을 머리와 다리 아래에 각각 두 개씩 끼고 있거나 앞면이 어디든 관계없이 대충 이불을 휘둘러 덮고 있을 수 없다. 몇 시간 동안 누워서 소설만 생각(쓰지 않고!)할 수도 없고 내 베란다의 식물들을 가만 바라보거나 시든 잎을 잘라주면서 혼잣말을 할 수도 없다. 그것은 내게 불편한 일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집 밖의 나는 보통 불편한 사람인 것 같은데 아무래도 이게 사실이라는 점이…… 가장 불편한 일이다. 이제까지 내가 집(보다는 나의 집을 향한 사랑)에 대해 구구절절 늘어놓은 것은 내가 이번에 리뷰를 쓰기로 마음먹은 시 역시 집에 대한 시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시를 읽는 동안 가만히 집을 떠올리는 것이 좋았고 그게 내 집도 아닌 남의 집임에도 불구하고(심지어 누구의 집인지도 모른다!)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런데 이 시가 그렇게 마냥 편안하고 좋고 재미있는 시였느냐고 하면, 그렇지는 않다. 현관을 지나면, 이 현관을 지나면, 불 꺼진 거실이 보이고, 낡은 소파가 보이고, 그 소파에 누우면 서늘한 기분이 들겠지 식탁이 보이고, 식탁보가 보이고, 빈 의자가 보이고, 의자의 네 발에 씌워 둔 테니스공이 보이고, 꽃무늬 벽이 보이고, 벽에 붙은 두 연인의 오래된 사진이 보이고, 낮은 탁자와 그 위에 놓인 빈 쟁반이 보이고, 낡은 유리장이 보이고, 유리장 안으로 그릇이나 항아리 따위가 보이고, 항아리의 흐린 무늬가 보이고, 유리장은 닫혀 있고, 닫혀 있는 많은 문들이 보이고, 불은 꺼져 있고,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너는 언제까지나 물을 틀어 두고, 그밖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현관을 지나면, 이 현관을 지나면, 물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죽은 사람의 혼령을 마주하는 일이 자꾸 계속되겠지 현관을 지나면 그런 일이 벌어지겠지 그러니 앞으로는 이 집을 나가지 말자 ―「현관을 지나지 않고」 전문 「현관을 지나지 않고」에서 현관을 지나면 보이는(혹은 보이리라 여겨지는) 것은 당연하게도 화자의 상상을 따라간다. 화자가 그려보는 집 안의 풍경은 그다지 낯설지 않고 어디선가 한 번쯤 마주친 집 안의 풍경이라고 해도, 혹은 내가 살았던 어느
작성일 2026-05-01 댓글수 0상세보기 -
기획 허희 - 스스로 고른 빛[편집위원 기획 – 작가들의 필명] 스스로 고른 빛 허희 1. 주어진, 선택한 이름 본명은 주어진다. 그것은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먼저 도착해 있다. 이름으로 불리고 거기에 반응하며, 어느 순간 명명된 내가 곧 나라고 믿으며 자란다. 그러한 점에서 본명은 숙명과 비슷하다. 삶의 첫머리에 놓인, 직접 쓰지 않은 나의 첫 단어. 반면 필명은 스스로 취한다. 이러한 선택이 자율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시대 정신, 언어 감각, 타고난 기질 등이 개입하니까. 그럼에도 마지막에 나의 의지는 남는다. 새로운 이름으로 한번 살아 보고 싶다는 미래형의 소망이 필명에 깃든다. 그래서 필명은 완성된 자아의 명패라기보다, 아직 닿지 못한 어떤 상태를 향한 선언에 더 가깝다. 그러기에 왜 필명을 쓰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대략 두 갈래의 답이 떠오른다. 하나는 일상을 살아가는 나, 글 쓰는 나를 분리하기 위한 실용적 장치라는 설명. 다른 하나는 본명보다 조금 더 문학적 자아를 추구한다는 낭만적 소명이다. 실제로 나의 경우 필명은 어떤가 하면, 그 두 지점 사이 생활의 편의와 문인-되기의 욕망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태어난다. 그러기에 필명을 둘러싼 사정은 꽤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직접 이름 하나를 골라 자기 앞에 내세우려면 오랫동안 자신을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필명은 자기를 향한 해석의 과정이자,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장의 행로를 설정하는 제일 짧은 서문이라고 할 만하다. 내 필명은 ‘허희’다. 성은 내 본래 성인 양천 허씨의 ‘허’이고, ‘희’는 ‘빛날 희’다. 여기에는 극적인 계시나 비밀 따위는 없다. 다만 이러한 고민은 품었다. 필명으로 불릴 때 나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어떤 글쓰기의 윤리를 두 음절로 새겨야 하나. 따져 보면 필명의 두 음절 안에는 내가 어쩔 수 없이 이어받은 것(계보)과 내가 갖고 싶었던 것(지향)이 나란히 들어 있다. 사람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전적으로 주어진 것도, 온전히 자기가 만든 것도 아닌 존재. 물려받은 것 위에 스스로를 덧쓰고, 선택한 것을 통해 과거를 다시 반추하며 산다. 반은 유산이고 반은 결심인 셈이다. 나는 이름이 한 사람의 캐릭터를 표상하는 한편으로, 그에 따라 그 사람을 조금씩 바꾸어 놓는다고 여겼다. 운명론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필명은 애초에 그러려고 지은 이름이 아닌가. 사람들은 필명으로 나를 부르고, 나는 그 이름으로 원고를 보내고 서명한다. 호명이 누적될수록 필명은 실체화되고 힘을 갖는다. 필명이 가면과 다른 이유도 거기 있다. 가면은 상황에 따라 벗을 수 있지만, 오래 사용한 이름은 어느새 나와 일체화된다. 그러니까 필명은 나에게 자기를 감추는 수단만은 아니었다. 자기를 재발명하는 방법이었다. 필명에는 묘한 이중성이 있다. 사적으로 고른 이름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공적으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나는 사소한 일에 마음이 흔들리고, 어떤 날은 쓸 문장을 한
작성일 2026-04-01 댓글수 0상세보기 -
기획 이자켓 - 옷장과 언어[편집위원 기획 – 작가들의 필명] 옷장과 언어 이자켓 저는 작가로 마주하는 첫 만남에서 대부분 필명에 관한 질문을 받습니다. 그럴 때 꺼내입는 자켓은 한 벌이 아닙니다. 제게는 각기 다르게 디자인된 자켓이 여러 벌 있고 매 시기 골몰하던 것을 나름대로 다르게 직조해 보며 다른 답을 해 봅니다. 각기 진의를 담은 것이라 하나만 꼽아 진실이라 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번 글은 그중 한 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매번 다르긴 하여도 나름대로 규칙이 있다면 ‘자켓’을 말할 때 문학을 빼놓은 적은 없습니다. 필명에 관한 질문은 질문자에게서 비롯된 것이지만, 저는 그보다 이전에 ‘자켓’에 대한 질문자이기에 이 명명에 문학을 둘러싼 어떤 관점이 깃들어 있음을 염두하고 있으니까요. 문학은 무상을 가장한 유상의 것입니다. 자연히 주어지는 것 같지만 물질적 지불이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 형태의 지불은 따르기 마련이고 그러한 점에서 거래처가 불분명한 자영업과도 같습니다. 그러한 인위 속에서 예상치 못한 덤이 따라옵니다. 신기루 같은 덤은 원두 찌꺼기가 담긴 쓰레기봉투를 내놓을 때, 건너편 상점의 불이 꺼졌을 때, 공산품을 포장하고 있을 때 거미처럼 있다가 사라집니다. 이 가게는 폐점한 다이보 커피가 여전히 연중무휴하듯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런 태도를 따릅니다. 매일 옷을 입고 생활하는 것처럼 때로는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을 잊으며, 한편으로 옷을 입어야 하는가 되물으며 가게를 열고 닫지요. 저는 특별히 옷을 모으거나 자주 구매하지 않습니다. 더불어 빈티지와 구제를 구분하며 옷의 내력과 미학을 따르는 이도 아닙니다. 다만 옷을 입고 살기에 되도록 편하고 잘 맞는 것을 갖추어 오래도록 입습니다. 지금 옷장에 있는 옷들은 대개 10년이 넘었거나 비교적 새것인 제품들은 제 성정을 잘 아는 이들에게 선물 받은 것입니다. 제가 추구하지 않아도 삶에는 여러 변화가 있겠습니다만, 제가 의도를 가지고 추구하는 변화는 문학에서 일어나는 것들이면 충분하다고 여겨왔습니다. 작년 봄에는 꿰맬 수 없이 해진 것들을 정리하였으니 어떤 옷들은 이미 그리고 아직 내가 착용하는 옷들은 무형이 되어 갑니다. 나도 그렇게 되어 갑니다. 내게는 주요한 옷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린 시절 시장에서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사다 준 잠바의 모습을 한 것인데 짙은 쪽빛에 표면이 매끄러운 것입니다. 스포츠를 위한 바람막이 디자인이었고 지금도 즐겨 입는 필드 재킷의 디자인과도 닮았습니다. 품이 넉넉하고 부담 없이 입기에 좋은 것이었습니다. 나도 그렇게 되어 갑니다. 그것을 입고 그와 비슷한 색채의 어둠 속에서 맹꽁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것을 입고 배드민턴을 치러 한겨울에 나섰다가 추위에 떨며 스테인리스로 된 벤치에 웅크려 있을 때 친구들과 이름 모를 동네 아이들이 패딩을 벗어 제 위에 쌓아 두기도 했습니다. 그때 옷더미 속에서 포근한 어둠을 보았고 드문드문 소리치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것을
작성일 2026-04-01 댓글수 0상세보기 -
기획 김봄 - 미완의 봄, Primave[편집위원 기획 – 작가들의 필명] 미완의 봄, Primave 김봄 이십 대 중반, 나는 강남구 신사동에 작은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을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나온 지 6개월도 안 된 시점이었다. 다년간의 아르바이트 경험으로 커피와 샌드위치를 만드는 것은 자신 있었다. 회사만 아니면 된다, 뭔가 작게라도 만들어 팔 수 있는 가게를 해 보자, 그런 마음으로 사방을 떠돌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강남시장 인근을 걷다 가게 자리를 발견했고 나는 몇 주 동안 매일같이 가게 앞으로 출근해 시간대별·연령별 유동 인구를 조사했다. 신사대로와 압구정대로 사이를 가로지르는 꽤 널찍한 골목길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유동 인구가 많았다. 커피 선호도가 높은 소호 사무실이 많은 동네였고, 연령대도 청장년층이 많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권리금도 없이 월세 30만 원만 내면 되는 자리였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굳은 의지만 가지고 결심한 바를 밀어붙였다. 그런데 정작 가게를 계약한 다음부터는 모든 게 물음표로 남았다. 내 머릿속에는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이라는 막연한 테마만 존재했을 뿐 어떤 콘셉트로 가게 이미지를 만들 것인지도 정리되어 있지 않았다. 가게 이름도 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그런데, 무어라 부르지?” 나는 난데없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그렇게 쿨하고 힙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미 그 골목 곳곳에 즐비한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들처럼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만들 생각도 없었다. 수중에 가진 돈으로 어림없는 일이기도 했다. 커피 가게의 정체성은 커피 원두가 좌우하는 법이니 나는 이태리 원두 ‘라바짜’를 사용하기로 한 것에서부터 가게 콘셉트를 잡아가기로 했다. 당시 주변 가게에서는 9,800원짜리 코스트코 스타벅스 원두를 사서 쓰거나, 그와 비슷하거나 더 낮은 가격으로 유통되는 영세업자들의 원두를 사다 썼다. 대상에서 만든 ‘로즈버드’라는 전문 브랜드는 가격도 품질도 괜찮은 편이었지만 내 입에는 좀 가볍게 느껴졌다. 진하면서 크레마가 풍부한 커피를 만들어 승부하고 싶었기에 나는 대담하게도 44,000원짜리 라바짜 원두를 선택했다. 1킬로그램 원두 한 봉지에 100잔 정도 커피를 만들 수 있는데, 컵과 뚜껑, 컵 홀더, 빨대와 같은 부자재와 우유 등의 식재료 가격을 따져 보면 다른 가게에 비해 마진율이 크게 떨어졌다. 이문이 좀 적게 남더라도 하고 싶은 걸 하려고 도전하는 것이니만큼 나는 공들여 인테리어를 시작했다. 가게는 작아도 이탈리아 원두를 쓰느니만큼 정통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고 가게 이름을 이탈리아어에서 찾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여러 단어들을 후보군에 올려놓고 고민하다가 ‘봄’을 뜻하는 ‘프리마베라(Primavera)’로 결정했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실개천이 녹아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흐르는 발음이 마음에 들었다. 오페라 주역 여성 가
작성일 2026-04-01 댓글수 0상세보기 -
기획 최예솔 - 우리가 만든 유령들[문장웹진 다시 읽기] 우리가 만든 유령들 ―김종옥 「유령의 집」(2014년 2월호 수록) 최예솔 유령이란 무엇일까? 내가 아는 유령으로는 오페라의 유령 에릭, 꼬마 유령 캐스퍼, 닌텐도 게임 ‘동물의 숲’에 등장하는 NPC 깨빈 정도가 있다. 말하자면 아주 대중적인 유령일 것이다. 물론 각자 가진 서사나 특징은 다르지만 이들이 어쩌다 유령이 되었나를 생각하면 일단은 죽어야 한다. 에릭은 사회적으로 죽었고(결국에는 진짜로 죽지만), 캐스퍼는 실제로 죽었으며(잠깐 다시 살아나기도 한다), 깨빈은 잘은 모르겠지만 죽었기 때문에 유령이 되었을 것이다(그럼에도 플레이어를 유령이라 부르며 무서워한다). 그렇다면 죽은 사람이 죽지 않고, 소위 말하는 언데드(undead)로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위에 적은 대중적인 유령처럼 이제 유령은 단지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적인 면모를 가진 캐릭터로 소비된다. 죽은 사람에게 이야기를 덧입히고 공포를 떨쳐 내려는 것은 그 주체가 산 사람이라는 점에서 당연한 과정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우리에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일임과 동시에 죽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는 어떤 것이니까. 모르는 채로 맞이하는 일은 두려운 법이다. 그렇다면 산 사람의 두려움이 유령을 만들었을까? 그건 오로지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일까? 죽음은 유령의 선행조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령이 단지 죽음의 다른 얼굴이라는 추측은 너무 단순한 것 같다. 어쩌면 우리가 두려워하는 모든 것들이 유령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할까? “정말 괜찮아. 우리가 무슨 그런 사이도 아니잖아. 그리고 결국 오빠는 전화했잖아.” “그랬지.” “그러니까 괜찮잖아. 오빠가 나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해서 내가 사라져버리는 건 아니야.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 않아? 봐. 내가 이제 오빠 앞에 있잖아.” 김종옥의 「유령의 집」에서 남자는 여자와 함께 간 호텔에서 유령의 존재를 느낀다. 남자는 한동안 여자에게 전화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여자에게 잘 곳을 제공하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점에서 모종의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두 사람의 관계는 결코 평범한 연인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연락하지 않은(혹은 하지 못한) 시간에 대해 변명한다는 점에서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는 것 같지만, 여자와의 관계가 남들의 시선에 어떻게 보일지를 신경 쓴다는 점에서 동시에 사랑을 배반한다. 아마도 우리는 이 관계 역시 사랑인 동시에 사랑이 아닌, 죽었지만 죽지 않은 유령적 존재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여자는 “우리가 무슨 그런 사이도 아니”라고 말하지만 남자의 반응은 유령처럼 희미하다. 여자는 남자와 함께하지 않는 시간에도 당연히 존재하지만, 남자의 부름에 의해서만 실존한다. 남자는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상상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 상상을 부정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남자에게 여자는, 이 소설
작성일 2026-04-01 댓글수 0상세보기 -
기획 홍순인 - 비비디바비디부[편집위원 기획 – 문학, 음악, 장면들] 비비디바비디부 홍순인 이거 제가 쓴 건데 들어 보세요. 나는 ‘네튤농’이라는 포크 밴드에 소속된 ‘작가’다. 밴드에 작가가 웬 말이냐고 따진다면 뭐라고 할 말은 없다. 네이버에서도 네튤농을 등록할 때 밴드에 작가라는 포지션은 있을 수 없다며 결국 나를 퍼커션으로 소개하게끔 했기 때문이다. 사실 고작 열여섯 가지 유형으로 인간 유형을 분류하는 건 신봉하면서 전 세계 보편적인 밴드 구성에 반기를 드는 것도 우스운 일이고. 뭐, 고분고분 인정하면서도 서운하긴 했다. 참고로 나는 INFP다. 아무튼, 이 이야기는 시를 써 가면 죄다 디테일한 묘사뿐이라 시인이 될 수 없다는 평가를 받던(싱잉랩 정도는 할 수 있겠다는 평가도 있었다.), 화성학의 기초도 떼지 못했지만 밴드의 일원으로서 약 100회가량의 공연을 해낸 돌팔이 음악가이자, 국내 최대 포털 사이트에서는 비록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그런, 정말 그런 내가 포크 밴드에서 ‘작가’로 살아가게 된 어떤 우연에 관한 이야기다. 때는 바야흐로 2013년, 대학교 4학년 1학기에 축제 위원장을 맡으며 학교 축제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였다. 당시 학교 축제 기획에 도움을 주었던 기획사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대학원에 진학하여 진짜 시에 대해 공부하고자 했지만 너처럼 노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어떻게 책상에 앉아 있겠냐는 주변의 만류로 기분 좋게 기획사에 입사했다. 나는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특히 ‘이규범’을 만났다. 나와 같이 하루하루 일을 쳐내 가며 밤이 되면 야근을 하다가 술을 마시고 좁은 방에 여럿이 구겨져 자고 다음 날에는 이걸 또 반복했다. 대학원에 가면 불행해진다지만 기획사에 가도 불쌍해지는 건 매한가지였다. 다만 그런 의미 없는 날들 속에서 이규범이 나와 달랐던 점이 하나 있었는데, 이규범에게는 ‘싱어송라이터’라는 꿈이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신기했다. 어떻게 싱어송라이터가 된단 말인가. 이규범은 노래도 못 했고 가사도 못 썼다. 나는 회사의 기획서와 제안서 내의 글과 카피를 대부분 담당하고 있었고, 평소 인디 밴드 음악을 굉장히 많이 들었기 때문에 이규범은 가사와 관련해 나에게 많은 것들을 물어보았다. 나는 싱잉랩 정도는 할 수 있는 여러 단어들을 제안해 줬고 종종 밤늦게까지 회의실에서 같이 노래를 불렀다. 꿈이 있다는 게 부럽다기보다 나도 싱어송라이터가 되어 보면 어떨까 막연한 상상을 해 보던 밤이었다. 그로부터 1년 뒤 이규범은 회사를 떠났다. 정이 많이 들어서 나는 눈물을 흘렸다. 진심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이규범이 첫 앨범을 낸다며 찾아왔다. 나는 그 앨범의 소개 글을 써 주었다. 솔직히 좋다는 말을 할 수는 없어서 안티팬의 입장에서 소개를 하는 글을 써 주었다. 나는 진심을 담은 글로 편하게 족발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그 후로 이규범은 두 장의 앨범을 더 냈고, 나는
작성일 2026-03-01 댓글수 12상세보기 -
기획 오웅진 - 대먹튀 시대에서 예술의 쓰임에 관하여[편집위원 기획 – 문학, 음악, 장면들] 대먹튀 시대에서 예술의 쓰임에 관하여 오웅진 벨라 타르가 세상을 떠났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번역 신간이 집에 도착한 직후 그의 부고 소식을 들어 공교롭다는 생각을 했다. 소식을 듣고 멍청하니 인터넷을 뒤적거리다 우연히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벨라 타르의 1994년도 영화 〈사탄탱고〉의 한 주인공 이리미아스 역할을 했던 배우(Víg Mihály)가 동시에 이 영화의 음악 감독이었다는. (실은 주인공 같은 건 없다, 감독에 따르면 자신의 영화에서 굳이 주인공이라면 ‘시간’ 정도)1) 작품에서 그가 분(扮)한 역할을 설명하자면, 아니 그를 쉬이 욕할 수 있도록 거칠게 요약하자면 ‘곗돈을 들고 튄 계주’쯤 된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마을에서 여자아이 하나가 죽는다. 아이의 죽음, 그로 인한 공통의 슬픔을 바탕으로 마을 사람들은 각자의 집 가장 깊숙한 곳에 박아 두었던 돈을 모으게 되는데, 계주는 그 돈을 들고 튐으로써 스스로를 사탄과 편히 겹쳐 보게 돕는다. 소설은 카프카의 짧은 문장을 인용하며 시작한다. “그러면 차라리 기다리면서 만나지 못하렵니다.”2) 앞서 언급한 떠난 계주를 기다리는 것 이외에도, 작품 속 마을 사람들 삶의 대부분은 기다림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리고 외람되지만, 나는 이 글을 통해 음악이란 게, 혹은 춤이라는 게 실은 곗돈을 들고 튄 저 악마 같은 계주쯤 되는 것은 아닌지 말해 보고자 한다. 소설 『사탄탱고』가 세상에 나온 것은 1985년, 그의 최근작 『헤르슈트 07769』가 쓰인 것은 2021년이었다. 꽤 많은 시간이 흘렀기에 그가 좀 변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의 첫 장을 펼쳐보고 안도했다. 짧은 문장 한 줄이 나를 반겼다. “희망은 실수다.”3) 그가 여전히 아무것도 믿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나로 하여 그를 믿게 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중 다수가 음악인인데, 이는 독자에 따라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다만 예컨대 누군가 주말마다 부장님에 의해 호출되어 산을 탄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어쨌든 그가 산에 성실히 오르고 있으니 산악인이라 충분히 불릴 자격이 있다고 믿는 이라면, 이 소설 속 다수의 인물을 또한 능히 음악인이라 불러도 좋다. 소설에선 부장님 대신 ‘보스’라는 이름으로 음악인들의 리더를 달리 부른다. 보스는 바흐에 관하여 얘기하길 좋아한다. 그리고 단원들 역시 보스가 바흐에 대해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건 그들이 바흐에 관해 듣길 좋아한다는 말과는 사뭇 다르다. “보스는 그들이 바흐에 대한 보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리허설이 중단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결코 깨닫지 못했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카나 심포니는 아마추어 음악가들로 자기 악기에 어느 정도 능숙하게 다루긴
작성일 2026-03-01 댓글수 0상세보기 -
기획 아를 - 지문 너머로 하나의 선율이[편집위원 기획 - 문학, 음악, 장면들] 지문 너머로 하나의 선율이 아를 lilysacredlily · 20251228_slowslofi playset 최초의 기억은 들렸던 것이다. 할머니의 불경 읽는 소리. 할머니는 늘 자기 전에 적혀 있는 그것들을 소리 내어 읽어 주었다. 할머니가 나를 부를 때, 그리고 나에게 이야기할 때와는 또 다른 생경한 목소리와 리듬으로 그것들은 발화되었고 그 목소리는 음악처럼 들렸다. 할머니는 거기에 분명히 있었지만 어느 영겁 너머 다른 차원에서 내려오는 작은 신의 목소리처럼 들렸기에 그 소리의 흐름 속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나 또한 내가 무엇인지, 내가 있는 곳을 잊어버렸다. 그 뜻 모를 말들을 할머니의 입을 통해 전해 듣고 있었지만 그것들은 거의 기도처럼, 주문처럼, 노래처럼 들렸다. 다른 누군가에 의해 전해지고 또 쓰인 것들이 할머니의 목소리를 통해 나에게로 전해졌고 어린 나는 그것들을 어설프게나마 소리 내어 보기도 했다. 그 유년의 밤 동안 할머니는 나의 유일한 이야기꾼이었으며, 어린 나의 두 귀가 되어 주는 밤의 훌륭한 안내자였다. 구전. 우화. 신화. 전설. 민담. 시대를 넘어서도 계속되는 이야기들. 되풀이되는 노래 같은 것들. 요정. 고블린. 거인. 요괴. 도깨비. 기사와 문지기. 바드와 리라. 검과 용사. 광장의 하프 소리. 그것들은 때때로 꿈속을 수호하며 때론 일상의 그림자들이 되어 호출하면 응답할 것만 같았다. 들려지는 것들이 쓰여질 때, 쓰여진 것들이 들릴 때. 적혀 있는 것들이 그들의 입을 통해 귀로 전해지는 것. 반복해서 전해지고 지금도 여전히 전승되고 있는 것. 어느 날 들렸던 하나의 목소리가, 어느 한 구절이 누군가를 살렸다면, 그로 인해 살아갈 수도 있다면 그것은 신앙과 무엇이 다를까. 그들이 나에게 무언가를 빌어 준 것은 아니다. 그들의 목소리에 기대어 계속 갈 수 있었던 수많은 시간들로부터 지금도 계속되는 어떤 순간들이 지속될 수 있었을 뿐이고 그다음이 있기를 그 순간들로부터 감히 바랄 수 있었던 것이다. 늘 목숨처럼 붙들고 있지만 동시에 늘 너무 아득하기만 한 것에 대해 대체 무엇을 쓸 수 있을까. 그 고민의 끝에 일주일도 안 되어서 나는 병원에 입원을 해야 했다. 며칠 동안 정신이 몇 번이나 나갈 것 같았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셀 수 없을 정도로 꿈을 정말 많이 꿨는데 잠깐의 꿈에서 할머니의 불경 읽는 소리가 들렸다. 꿈속의 소리였겠지만 귓가에서 목소리는 오래 머물렀다. 병실의 침대가 아니라 이제 마침내 내가 가고 싶은 곳에 나는 온 건가? 눈을 뜨면 나의 옆에 누워 그것을 읽어 주는 할머니는 없었지만 나는 들었다. 이곳을 넘어서, 시간을 넘어서, 세월을 넘어서. 그 밤 이전의 무수한 밤들로부터, 그 밤의 영겁 너머로부터 들려오는 것 같았던 목소리를. 초연해지고자 열망하는 마음을 이미 초월해 있는 곳으로부터 목소리는 들린다는 것이. 나의 뼈의 일부는 부러졌고 언제까지 누워 있어야 할지 그때는 몰랐다. 부서진 건 뼈뿐
작성일 2026-03-01 댓글수 0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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