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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문학과 장르 문학

  • 작성일 2005-05-22
  • 조회수 1,557



 

<영화로도 만들어져 인기를 모았던 조앤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

 

어떤 작품들이 있나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 청소년이 읽는 소설의 80%가 장르문학이라고 합니다. 요즘 대여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협, 판타지 소설이겠지요. 무협이라는 건 무협지라고도 부르는 무협소설을 말하는 것이고, 판타지란 달리 ‘팬터지’라고도 하는 장르 환타지 소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어떤 분은 영어 발음을 그대로 사용해서 ‘팬터지(Fantasy)’라고 부르기도 합니다만, 실제 나오는 책들이 ‘판타지’라는 명칭으로 장르를 표기하고 있습니다. 내용을 살펴보면 넓은 의미에서의 팬터지 문학, 즉 환상문학이 아니라, 특정한 얼개 위에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으니 장르 판타지라고 부르는 게 옳겠습니다.

 

서양은 물론 이웃 일본에서도 판타지 소설은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유명한 작품으로는 영화로도 크게 인기를 끈 「반지전쟁」이나 곧 영화로 개봉한다는 「나니아 연대기」, 그리고 아마 누구나 다 읽어보았을 「이상한 나라의 앨리」와 같은 것도 판타지에 속하지요.


한국 작가가 쓴 작품 중에도 이영도의 「드래곤라자」나 「눈물을 마시는 새」 같은 역작이 있지요. 「드래곤라자」는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렸다고 합니다.

 

무협소설은 중국에서 시작되어 60년대에 한국에 소개된 장르입니다. 원산지인 중국에서는 지금 김용이라는 작가가 대단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이 작가의 작품은 80년대에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가 근래 다시 번역되어 소개되고 있습니다.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등이지요.
한국 작가들도 꽤 있습니다. 저도 그 중 한 사람이지요.

 

이외에도 장르문학으로 꼽히는 것은 SF소설, 추리소설, 로맨스소설, 그리고 요즘 인기를 끈다는 인터넷 감성소설 등이 있습니다. SF소설은 science fiction, 즉 과학소설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공상과학소설이라고들 말했습니다만, 요즘은 그냥 SF소설이라고 부릅니다. 유명한 SF소설로는 영국의 H. G. 웰즈가 쓴 「타임머신」, 「우주전쟁」, 올더스 헉슬리가 쓴 「멋진 신세계」 같은 것이 있습니다. 「타임머신」과 「우주전쟁」, 그리고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같은 소설들은 영화화도 되었으니 보신 분들이 있을 겁니다.

 

한국에서는 스타워즈처럼 SF적인 설정을 기본으로 한 영화는 인기를 끌면서도 소설은 그다지 인기를 못 끄나 봅니다. 한국인 중에도 듀나라는 필명의 작가가 「면세구역」을, 이곳 게시판을 담당하시는 이문영씨가 「피그로이드」라는 SF소설을 내기도 했습니다만, 전체적으로 보면 그다지 활발하게 창작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추리소설도 십여 년 전에는 꽤 인기를 끌었습니다만, 요즘은 한국작가의 활동이 저조합니다. 대신 추리소설의 고전인 코난 도일의 「홈즈 시리즈」나 아가사 크리스티 전집 같은 것이 다시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로맨스소설은 그냥 연애소설과는 조금 다릅니다. 장르 로맨스라고나 할까요. 장르소설로서의 특징을 지닌 연애소설이라고 풀어서 설명할 수도 있겠군요.

 

왜 장르라고 부를까? 

 

 이제 장르라는 말에 대해 생각을 좀 해보지요.
장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아래와 같이 나옵니다.

 

장르 [genre] 

 

요약
:공통의 특징을 지닌 사물의 무리.

 

본문
:생물학상 용어로서는 종(種) 다음에 오는 ‘속(屬)’의 뜻이고 문학· 예술 분야에서는 부문· 양식· 형(型)을 뜻한다.

 

문학에서는 종래에 문체를 ‘조(調)’, ‘풍(風)’과 같이 구분하여 사용하였으나   현재는 운문과 산문의 구분, 시· 희곡· 소설· 평론 등의 구분, 더 나아가 정형시· 자유시· 소네트 등으로 세분할 때 장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또 회화에서는 특별한 의미로서 풍속화를 가리켜 장르라고 부를 때도 있다. 이것은 비교적 작은 화면에 일상적인 비근한 제재를 그린 ‘장르 바(비속한 양식)’가 축소되어 일컬어진 것이다.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가져옴)

 

사실, 종래의 문학에서는 백과사전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시나 희곡, 소설 등의 분류를 장르라고 불러왔습니다. 그래서 소재나 배경, 혹은 성격에 따라 소설을 분류해 놓고 그것을 장르문학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는 의견도 많지요.

 

이 경우 장르문학이라는 말은 좀더 세밀한 분류에 따른 것이라는 변명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소설이라는 장르 속에 다시 소재와 배경, 성격에 따라 나뉘어지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분류된 성격에 아주 집착하고 있는 것이 장르문학이고, 장르소설입니다. 그건 각각의 분야를 소개할 때 더 자세히 이야기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가 위에서 말씀드린 몇 가지 분류를 사용하고 있지만, 외국의 경우엔 그보다도 더 세밀하게 분류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14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한 기사담소설, 해양소설, 서부시대를 배경으로 한 서부소설, 알 카포네와 같은 갱들을 다룬 갱스터소설 등등, 이런 식이지요.


불량식품 취급받는  장르소설들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에서 장르문학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읽으면 안 되는 불량도서로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극구 말리는 소설이 바로 장르소설이지요. 요즘에는 교과서와 참고서 외에 뭘 읽어도 말리는 부모님이 많다고는 합니다만, 그 중에서도 장르소설은 유달리 구박받는 종류의 책일 것입니다. 집에서 보다간 부모님에게 꾸중을 들을 테고, 학교에서 보다간 선생님에게 압수당할지도 모르죠.

 

장르문학, 특히 무협소설과 판타지소설은 이런 걱정을 들을 여지가 충분히 있습니다. 저 자신도 무협소설을 쓰고 있지만 청소년에게 읽힌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거든요.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창작되는 대부분의 장르소설은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쓰여지는 것입니다. 그만큼 선정적이고 폭력적이지요.

 

어떤 소설들은 맞춤법도 제멋대로인데다 문장도 잘못된 것이 많은데 그대로 책이 되어 나오는 것도 있습니다.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 전개에다 청소년의 입맛에는 달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결국은 해로울 게 분명한 불량식품 같은 소설도 있습니다. 그러니 선생님과 부모님들이 걱정하실 만도 하지 않겠습니까.

 

장르문학이라고 다 나쁜가?

 

하지만 위에서 예로 든 여러 작품들처럼 장르소설 중에도 청소년이 읽어도 유익한 작품들이 없지 않고, 무엇보다도 현재 청소년들이 주로 읽고 있는 작품이 장르문학이라는 현실을 피해갈 수는 없겠지요. 게다가 알고 보면 장르문학이라는 것이 그렇게 부정적인 모습만 있는 게 아닙니다. 「해리포터」가 선정적이고 폭력적이던가요? 「반지전쟁」은 어떻습니까? 문제는 장르문학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한국에 도입되어 지금 읽히고 있는 장르소설들 중에 나쁜 것이 많다는 것이지요. 장르작가들이 반성해야 할 문제입니다만, 이걸 음성적으로 읽게 만드는 한국 문단의 반성도 역시 필요할 것입니다.

 

문단의 어른들이 반성해야 할 것은 또 하나 있습니다. 청소년이 읽어서 유익하고, 청소년을 위해 창작된 작품들이 극히 드물다는 것입니다. 장르소설만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문단은 성인 독자 위주로 창작되고 움직여 왔습니다. 60년대와 70년대에 오영민, 조흔파 선생님 등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여러 작품을 써왔지만 그 후로 청소년 문학의 맥은 단절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덕분에 불량식품에 비유되는 장르문학이 청소년을 사로잡은 것입니다

 

주목할만한 새로운 움직임들

 

최근에는 문단에서도 이런 상황을 반성하고 청소년 문학을 새롭게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저는 그런 움직임과 함께 장르문학의 정화와 도약 역시 시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 장르문학의 현재 상황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계속 이렇게 진행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 그래서 장르문학의 역사와 특징을 살펴보고 옳은 모습과 방향은 어떤 것인지 알아보는 것이 이 글을 시작으로 이어질 일련의 장르문학 소개글들의 목적이 될 것입니다.

 

장르소설을 읽는 것은 무엇보다도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소개할 글들을 읽고나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을 것입니다. 기대해 주세요. <계속>

 

<필자소개>

 

 좌백은 필명이고 본명은 장재훈입니다.


1965년 강원도 동해에서 태어나서 숭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95년 무협소설 [대도오]를 써서 작가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현재까지 [생사박], [혈기린외전], [천마군림], [비적유성탄] 등을 써왔습니다.
역시 무협작가인 진산과 결혼해서 8살 난 아들 우진이를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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