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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엘료의 『연금술사』를 통해서 본 ‘자기실현’의 의미

  • 작성일 2005-10-04
  • 조회수 909


 

 

코엘료의 『연금술사』는 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장 소설이란 일반적으로 주인공이 젊은 시절에 하는 방황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것을 통하여 자기 자신과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 드디어 혹은 새롭게 - 인식하게 됨으로써 성숙해 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지요.


이러한 소설은 유럽문학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영국에서는 C. 디킨스의 『데이비드 커퍼필드』, S. 모옴의 『인간의 굴레』, J.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 등의 성장소설이 있고, 프랑스에서는 스탕달의 『적과 흑』, 발작크의 『잃어버린 환상』, 프로베르의 『감정교육』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특히 독일에서는 일찍부터 성장소설이 발달하였지요. 괴테의 『빌헬름마이스터의 수업시대』는 이러한 소설의 시작이자 대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데미안』, 『싯탈타』, 『나르시스와 골드문트』 등 대부분의 H. 헤세의 소설들과 G. 그라스의 『양철북』, 토마스 만의 『마의 산』 등은 뛰어난 성장소설로 평가 되고 있지요.


 성장소설이 특히 유럽에서 널리 만들어지고 또한 사랑을 받는 이유에 대해 K. 모르겐스테른이라는 독일 작가는 “다른 어떤 소설보다 더 많이 독자들을 성숙시키기” 때문이라고 했지요. 그래서 그는 성장소설을 “소설중의 최고의 소설이며 소설의 본질”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브라질 출생으로서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코엘료의 『연금술사』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로 우리를 다른 어떤 소설보다 더 많이 성숙시키려는 것일까요?

 

 

                             꿈을 좇는 청년 - 산티아고

 

 

코엘료의 『연금술사』는 짧지만 신비롭고,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산티아고라는 평범한 양치기 청년이 있었습니다. 남다른 것이 있다면, 그가 오직 꿈을 좇아 산다는 것이지요. 때문에 그에게는 양을 치는 일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어릴 때부터 그가 간직해온 “가슴에 큰 꿈을 이루는 것, 바로 세상을 여행하는 일”을 위해 그는 “물과 음식 그리고 밤마다 몸을 누일 수 있는 안락한 공간”인 아버지의 집을 떠나 갈증과 허기로 가득 찬 초원을 떠도는 양치기가 된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언제든 “안달루시아 초원이 싫증이 나면 양떼를 팔고 선원이 될 수도” 있고, “바다에 물리면 수많은 마을과 수많은 여인들, 그리고 행복해질 수 있는 수많은 다른 기회들을 알아볼 수도” 있는 사람이기도 하지요.


그러던 어느 날, 산티아고는 어떤 아이의 손에 이끌려 이집트 피라미드에 가는 꿈을 꾸게 됩니다. 그 아이는 "만일 당신이 이곳에 오게 되면 당신의 숨겨진 보물을 찾게 될 거예요.”라고 말하지요. 연이어 두 번이나 같은 꿈을 꾼 산티아고는 “인생을 살맛나게 해주는 건 꿈이 실현되리라고 믿는 것이지”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보물을 찾으러 이집트로 떠납니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양들을 팔고, 그토록 그리워하던 양털가게 소녀도 뒤로한 채 말이지요. 아버지의 집을 떠나던 때와 마찬가지로 또다시 안락을 떠나 고난의 길을 택한 겁니다.


그 여정에서 산티아고는 집시 여인, 늙은 왕, 도둑, 늙은 크리스털 상인, 연금술을 연구하는 영국인 화학자, 낙타몰이꾼, 아름다운 사막의 여인 파티마 등을 만나며, 여러 가지 남다른 체험과 고생을 하게 되고 결국에는 죽음의 목전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일찍이 늙은 왕이 해준 다음 같은 말들을 가슴에 간직하고 그 모든 것을 이겨내지요.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 내는 것이야 말로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부과된 유일한 의무이지. 세상 만물은 모두 한가지라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결국 산티아고는 연금술사를 만나게 되고, 마침내는 만물과 대화하는 ‘하나의 언어’를 이해하게 되어 그 스스로 영혼의 연금술사가 되지요. 그러자 그 다음에는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서, 큰 보물도 찾게 되고 아름다운 여인 파티마도 얻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제 궁금해지는 것은 “이 책에서 코엘료가 말하는 연금술이란 과연 무엇일까?”지요.
 
                 연금술이란 무엇인가

 

 

연금술이란 본래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되어 아랍에서 발달한 원시적인 화학기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연금술은 단순한 화학기술만은 아니었고 거기에 신비적, 주술적, 원시 종교적 요소가 결합되어 있었지요.

그 바탕이 된 생각은 대강 다음과 같았습니다.

 

세상 만물은 기본이 되는 네 가지 원소(불, 공기, 물, 흙)들이 적당한 비율로 섞여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것들을 다시금 잘 배합하면 금도 얻어낼 수 있으며, 결국에는 우주의 신비를 간직하고 불로장생할 수 있는 마법의 금속인 ‘철학자의 돌’까지도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연금술사들은 예컨대 납이나 쇠 같은 여러 가지 금속들을 녹여도 보고, 그것에 수은을 섞어도 보는 여러 가지 실험들을 했던 겁니다.   


중세 유럽은 아랍으로부터 많은 문물을 받아드렸기 때문에 12세기 무렵 연금술에 대한 라틴어 번역서가 기독교문화권에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교황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부 성직자들이 이것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여 기독교와도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6세기 과학혁명이 이루어지면서 단순한 미신으로 밝혀지면서 연금술은 차츰 쇠퇴하기 시작하였으며, 합리주의가 확립된 17, 18세기부터는 그 모습을 완전히 감추었지요.

 

그런데 20세기에 와서, 스위스의 위대한 심리학자인 C. 융(1875-1961)은 연금술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했습니다. 그는 그의 저서 『연금술에서 본 구원의 관념』에서 납덩어리에서 금을 만들어 내려는 연금술사들의 작업이 심리학 상으로는 자기 자신의 무의식을 찾아내어 스스로를 완성시키는 ‘개성화 과정’이었다는 점을 강조했지요. C. 융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체로 연금술의 작업에서는 화학적 실험뿐 아니라 화학용어와 유사한 언어로 표현되는, 일종의 정신적인 과정을 다루고 있다. … 그가 추구하는 금은 어리석은 자가 생각하는 ‘비천한 금’이 아니라, ‘철학적인 금’ 혹은 ‘기적의 돌’, ‘눈으로 볼 수 없는 돌’ …이었다.”

한마디로 연금술사는 납이나 쇳덩어리를 금으로 만들어가는 작업을 통해, 자신 안에 감추어져 있는 자기(自己)를 발견해냄으로써 납덩어리 같이 쓸모없는 자신을 금덩어리 같은 자신으로 만들어갔다는 거지요. 때문에 당시 연금술사들에게는 “건강, 겸손, 거룩함, 순결, 힘, 승리, 믿음, 희망, 사랑, 친절, 인내, 올바른 절도, 영적인 통찰, 그리고 순종”과 같은 열네 가지의 덕목이 요구되었었다고도 합니다.

 

코엘료의 『연금술사』에서 연금술을 공부하는 영국인 화학자가 몰랐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던 거지요. 그는 오직 ‘어떻게 하면 납을 금으로 만들 수 있을까’에만 몰두했고, 자신 안에 감추어져 있는 자기(自己)를 발견해내는 일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결코 연금술사가 될 수 없었던 겁니다.    

 

 

                                      연금술사가 되는 길

 

 

사실 알고 보면, 고대와 중세의 연금술사들은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것같이 ‘물질적 금을 만드는 일’과 C. 융이 발견한 ‘정신적으로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일’ 이 두 가지 모두를 원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책의 맨 마지막에 있는 <작가의 말>에 썼듯이, 코엘료도 자신의 젊은 시절 연금술에 대한 오랜 연구와 방황을 통해 이것을 간파했던 것입니다. 코엘료의 『연금술사』에 나오는, 늙은 왕이 산티아고에게 들려준 이야기가 그것을 잘 나타내 보여줍니다.

 

어떤 상인이 행복의 비밀을 알아오라며 자기 아들을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현자에게 보냈답니다. 그래서 그 젊은이는 사십일 동안이나 사막을 걸어가 산꼭대기에 있는 아름다운 성에 이르렀지요. 그곳에 현자가 사는 집이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젊은이의 말을 들은 현자는 우선 자신의 아름다운 집을 모두 구경하고 오라고 했지요. 하지만 그동안 기름이 담겨진 찻숟갈을 가지고 다녀야 하는데 기름을 한 방울도 흘리지 말고 다녀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젊은이는 집안을 모두 둘러보았는데, 오직 찻숟갈에만 신경을 쓰다보니 아무 것도 보질 못했지요. 그러자 현자는 젊은이에게 다시 가서 집안의 아름다운 것들을 모두 살펴보고 오라고 했습니다. 젊은이는 이번에는 편안한 마음으로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보았지만, 그 사이에 숟가락의 기름이 흘러 없어져 버렸지요.
현자 중의 현자인 그 사람은 “내가 그대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요. 행복의 비밀은 이 세상 모든 아름다운 것을 보는 것, 그리고 동시에 숟가락 속에 담긴 기름 두 방울도 잊지 않는데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코엘료가 연금술이란 행복한 사람이 되는 비결이며, 그것은 ‘현실적으로는 물질적 금을 만드는 일’ 곧 이 세상 모든 아름다운 것을 경험해 보는 것이며 동시에 ‘정신적으로는 자기 안에 있는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일’ 곧 숟가락 속에 담긴 기름 두 방울도 잊지 않는 것에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지요. 코엘료는 중세의 연금술사들의 비법을 마침내 알아차린 겁니다. 그리고 그는 이어서 우리에게 이렇게 당부합니다. 우리도 역시 연금술사가 되어야만 한다고! 그래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

 

 

                                   자기의 신화를 사는 비결
                

코엘료는 누구든 연금술사가 되려면 “자기의 신화를 살라.”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자기실현’을 하라는 거지요. C. 융의 언어를 빌리자면, ‘개성화 과정’을 거치라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할 수 있느냐에 있는 게 아니겠어요? 왜냐하면 누구나 산티아고처럼 ‘이집트에 가면 보물을 찾을 수 있다’는 식으로 꿈을 통해 자기의 신화를 알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대부분 무엇이 자기의 신화인지 곧 어떻게 하면 자기실현을 이룰 수 있는지를 모릅니다. 이에 대한 해법을 그는 <작가의 말>에 자기의 스승인 람이 들려준 이야기로 써놓았습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어느 수도원을 찾았을 때, 사제들은 시를 낭송하기도 하고, 성화를 그려 보이기도 하며 경배를 드렸다지요. 그런데 그 중 맨 끝에 제대로 교육을 받지도 못한 볼품없는 사람이 있었는데, 곡마단에서 일하던 아버지로부터 배운 공을 가지고 노는 기술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재주였습니다. 그래서 사제들은 그가 경배 드리는 것을 막았지만, 그는 진심으로 아기 예수와 성모께 마음을 바치고 싶어 주머니에서 오렌지 몇 개를 꺼내 공중에 던지며 놀기 시작했다지요. 그러자 아기 예수가 환하게 웃으며 손뼉을 쳤고, 성모께서는 오직 그 사람에게만 아기 예수를 안아볼 수 있도록 허락했다는 겁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자기의 신화를 사는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그것은 다른 어떤 특별한 것이 아니라, ‘오직 진실한 마음으로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지요.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산티아고가 보여준 것과 같은 용기도 필요합니다. 산티아고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결정해야할 매순간마다 자신의 신화를 살기 위해서 ‘안락함을 버리고 고난을 택하는 용기’를 가졌지요. 그런데 바로 그 고난이 곧 납을 녹여 금으로 만드는 연금술사의 용광로가 된 것입니다.

고난이 어떻게 납을 금으로 만드는 용광로가 될 수 있냐고요? 독일의 철학자 하르트만(Nicolai Hartmann)은 그의 책 『윤리학』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난도 가치이다. 고난이 어째서 가치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불행을 견뎌낼 능력이 없는 자에게 고난은 가치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견뎌낼 만큼 충분히 강한 자는 고난을 통하여 스스로 강해진다. 즉 그의 인간성과 도덕성이 증대한다. 이런 사람에게는 고난이 또한 가치이다. 고난은 도덕력의 시련이다. 깊은 도덕적 능력을 일깨워주는 촉매제 구실을 한다. 그래서 인간의 활동력을 증대시킬 뿐만 아니라 인간의 도덕적 감성 및 이해를 심화시킨다. 우리는 고난을 통하여 자신의 마음 깊이뿐 아니라 남의 마음의 깊이도 알게 된다. 아니, 인생 전체의 깊이를 알게 된다. 가치를 판단하는 눈이 확장되고 예민하게 된다. 고난을 통하여 인격이 높아짐과 동시에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능력도 커진다. 위대한 고난을 거친 후에 얻는 엄청난 기쁨과 행복감. 그가 스스로 취한 것은 고난이었는데, 구하지 아니한 행복이 그에게 주어진다.”

 

산티아고가 안달루치아 초원에서 그리고 이집트 사막에서 스스로 취한 고난을 통해 얻어낸 것은 바로 이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연금술이 아니겠어요?

    
   “연금술의 작업과정은 물질의 변화가 아니라 정신의 변화를 나타낸다.”  - C.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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