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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통해서 본 ‘디스토피아’의 의미

  • 작성일 2005-11-21
  • 조회수 3,567



 



 

유토피아란 ‘인간이 이성에 의해 기획하고 만들려는 이상사회’를 말합니다. 그러나 역사상 실험된 유토피아는 유토피아가 아니었습니다. 최인훈의 『광장』에서 보듯이, 자유주의 유토피아든 사회주의 유토피아든 모두가 우리가 꿈꾸던 이상사회는 아니었다는 말이지요. ‘유토피아가 아님’, 바로 여기에서 비(非)-유토피아라는 뜻의 합성어 디스토피아(distopia)가 탄생했습니다. 따라서 디스토피아란 유토피아를 만들려는 그 어떤 시도가 빚어낸 어두운 그림자인 셈이지요. ‘실패한 유토피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1984년 발표된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은 우리 문학사에 매우 보기 드문 작품입니다. 무엇보다도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문제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그렇지요. 하지만 정작 이 작품은 ‘천국’이라는 이름을 빌어 어떤 새로운 유토피아를 보여주려 하거나 아니면 그것이 실패한 어느 디스토피아를 고발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 점에서 『당신들의 천국』은 자유주의적 유토피아에 대한 고발인 헉슬리(A. Huxley)의 『멋진 신세계』나, 사회주의적 디스토피아에 대한 비판인 오웰(G. Orwell)의 『동물농장』, 『1984년』등과 구분되지요.

 

『당신들의 천국』은 오히려 - 주어진 극한 상황 하에서도 -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는 ‘그 어렵고 힘든’ 길을 보여주려고 노력합니다. 이 점에서 이 작품은 다시 최인훈의 『광장』과도 갈라섭니다. 『광장』도 유토피아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것에 이르는 어떤 ‘긍정적 길’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못했지요. 단지 실험된 유토피아들이 디스토피아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을 뿐입니다.

 

이와는 달리 『당신들의 천국』은 유토피아를 향해 나아가는 우리의 길이 주어진 역사적, 사회적 정황 아래에서 어떻게 하면 성공하고, 또 어떻게 하면 실패할 수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려 ‘나름대로’ 애를 씁니다. 한마디로 ‘유토피아공학에 대한 처절하고도 치밀한 보고서 내지 길라잡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럼, 이 길라잡이가 인도하는 길을 따라가 볼까요? 그 길이 옳은지 그른지, 또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를 따져보는 일은 우선 뒤로 미루지요.       

 

 


‘천국’으로 향하는 그 어렵고 고단한 길

(제1부)


모두 3부로 구성된 이 작품은 나환자들의 집단거주지인 소록도 (전라남도 고흥군 소재-관리자 주)에 조백헌이라는 신임 원장이 부임하면서 시작됩니다. 군의관이자 현역 대령인 조백헌 원장은 그곳 나환자들에게 새로운 천국을 만들어주려는 진정과 열정을 가진 인물이지요. 그는 부임 후 가진 첫 연설에서부터 정정당당, 인화단결, 상호협조를 내세우며 섬을 “여러분의 새로운 낙토”로 개혁하려는 강한 의지를 내보입니다.


 

하지만 원생들은 원장의 말을 “귓등에도 스치지 않는 것”같이 흘려버리고, 보건과장인 이상욱은 신임 원장 역시 ‘자신의 동상’을 세우려는 인물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게 되지요. (다시 말해서) 섬에 나환자의 천국을 세운다는 미명하에 실제로는 자신의 명예욕을 충족시키려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여기에는 이 섬의 역사가 지난 30 여년을 두고 길러온 뿌리 깊은 불신이 자리하고 있지요.


 

일제강점기 말, 주정수라는 원장이 있었답니다. 그가 처음으로 “이 섬을 나환자의 복지로 꾸밀 것”을 약속했고, 그의 선의에 감동한 원생들은 감동적인 박수를 아끼지 않았지요. 그리고 자신들을 희생해가며 낙토건설사업에 열성적으로 참여하였답니다. 공동의 목표 앞에서 원장과 원생들의 구분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던 거지요. 

 

그러나 일이 진행 되어감에 따라 원생들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배반의 맛을 보게 됩니다. 일이 하나씩 완성될 때마다 원장은 차츰 성취욕에 눈이 멀어갔지요. 그래서 새로운 일거리들을 자꾸 만들어냈고, 그것을 위해 원생들은 점점 더 많은 강제노역과 수탈에 시달리게 된 겁니다. 이 섬에 “어느 도회의 한복판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넓고 호사스런 공원”이 건설되었을 때의 정황을 작가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주정수는 크게 만족했다. 그러나 원생들은 물론 만족할 수 없었다. …… 섬 안의 시설이 한 가지씩 늘어갈 때마다 그만큼 섬 전체가 천국에 가까워지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더 지옥으로만 변해가고 있었듯이, 이번에도 이 섬에는 공원이 하나 더 늘고 그곳에 바쳐진 자신들의 노력과 희생이 크면 클수록 그 노력이나 희생의 크기만큼 섬은 점점 더 낙원과는 인연이 멀어져갔다.”  

 

드디어 원장과 원생들의 이익과 목표가 갈라서고,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드러나기 시작한 거지요. 게다가 엎어진 데에 덮치는 격으로 권력에 아첨하는 무리들이 원생들에게 헌금과 노역을 강요하여 주정수 원장의 동상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매월 20일을 ‘보은 감사일’로 정하여 원생들에게 참배하게끔 했답니다. 주정수 원장은 이 모든 일을 단지 모르는 척 묵인했지요.

 

지배자의 우상화! 그것은 - 언제나 어느 사회에서나 - 지배자의 통치에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피지배자들의 희생을 지속시키려는 도구로 사용되어왔지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 겁니다. 그렇게 되자 주정수 원장은 어느 ‘보은 감사일’에 원생의 손에 살해되어 자신의 동상 밑에 쓰러지게 됩니다. 이번에는 원생들 쪽에서 배반을 한 것이지요. 처음에는 지배자 쪽에서, 그 다음에는 피지배자 쪽에서 배반을 한 겁니다.

 

이 때부터 이 섬에 불신과 배반의 악순환이 시작된 거지요. 불신을 하기 때문에 배반이 정당화되고, 배반을 하기 때문에 불신이 정당화되는 일이 돌아가며 일어난 겁니다. 그 후에 열 명도 넘는 신임 원장들이 부임했지만, 그들 역시 언제나 ‘자신의 동상’을 가슴 속에 품고 왔다가, 더러는 성공하고 더러는 실패하고 돌아갔답니다. 그럴수록 섬에 남는 것은 배반뿐이었고요.

 

이것이 보건과장인 이상욱이 소설의 처음부터 경계하고, 원생들이 마지막까지 두려워한 ‘자신의 동상’이라는 말에 담긴 ‘상호배반’의 역사지요. 물론 이상욱이 그토록 민감한 감시와 불신의 태도를 한시라도 누그러뜨리지 못하는 데에는 그의 출생에 숨겨진 개인적 비밀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의 아버지가 주정수 원장의 동상을 지어 바치자고 선동했던, 그 결과 비참한 최후를 맞았던 바로 그 사람이었지요. 1부가 대강 여기에서 끝이 납니다. 

 

 


(제2부)


 

 

조백헌 원장은 이 길고 어두운 불신과 배반의 역사를 끊고 자신이 계획한 천국을 건설하기 위해 건의함 설치, 장로회 조직과 같은 여러 민주적 제도를 만드는 등 최선을 다 하지요. 그리고 축구팀을 만들어 건강한 사람들과 겨루어 우승하던 날 이내 천국 건설을 위한 자신의 사업계획을 내놓습니다. 득량만 간척사업이지요. 이 사업을 통해 원생들과 그 자손들이 농토를 갖고 건강한 사람들처럼 살게 해주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원생들의 반응은 언제나처럼 차갑기만 합니다. 그러나 조 원장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배반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자, 원생들은 자신들도 역시 신의를 지킬 것을 맹세하고 비로소 간척사업에 동참하기 시작하지요.

 

이후 자연과 인간의 투쟁과 좌절, 인간과 인간의 싸움과 배반이 힘겹게 진행됩니다. 폭풍과 지반침하로 인해 솟아오르던 뚝은 번번이 가라앉았지요. 그때마다 조백헌 원장은 원생들을 ‘강압적으로라도’ 독려해야만 했습니다. 또 그 때마다 이 섬에 숨어 사는 길고 어두운 불신과 배반의 역사, 곧 주정수 원장이 만든 ‘자신의 동상’이라는 악령이 다시 꿈틀거렸지요.      

 

그러던 어느 날 당국에서 파견한 작업 조사반이 섬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간척사업장을 당국에서 인수하려고 하지요. 조백헌 원장은 이를 막으려 애쓰다가 다른 병원으로 전출 명령을 받게 됩니다. 떠나기 전에 사업의 완성을 보고자 하는 조백헌 원장은 모든 사실을 원생들에게 알리고 공사를 더욱 독려하지요. 원장의 헌신적인 노력에 마음이 움직인 원생들은 조백헌 원장의 전출을 막기 위한 서명운동을 벌입니다.

 

이 때 보건과장인 이상욱이 다시 ‘자신의 동상’이라는 악령의 부활을 경계하며, 원장에게 서명운동을 중단하게 하고 곧바로 섬을 떠날 것을 충고하지요. 사업의 완성을 보고자 하는 것은 원장의 욕심이며, 사업이 완성될 경우 섬이 - 주정수 원장에게 그리했듯이 - 스스로 동상을 지어 바칠 것이라는 겁니다.

 

“그냥 섬을 떠나 주십시오. 원장님께선 때가 왔을 때 그냥 이 섬을 떠나주시기만 하면 그만입니다. 그리하여 이 섬에 남아계심으로써가 아니라 이 섬을 떠나심으로써 섬사람들 스스로 저들을 위한 원장님의 동상을 지니도록 해주십시오.”라고 (이상욱은) 간곡히 당부하지요.

그리고 자신도 몰래 섬을 탈출합니다.

 

조백헌 원장은 이상욱의 말을 이해하진 못했지만, 어쨌든 그도 간척사업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섬을 떠나지요. 이때 원생들의 대표 격인 황희백 장로가 조백헌 원장에게 말합니다. 원장이 ‘자신의 동상’을 스스로 짓지 않음으로써, 섬사람들은 드디어 “제 손으로 제가 지어 지니게 될 그런 동상, 아무도 목메어 끌어내리고 싶어 할 자가 없는, 이 섬이 우리 문둥이들의 것으로 남아있는 한 오래오래 이곳에 남아있어야 할 단 하나의 동상”을 처음으로 갖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여기에서 2부가 끝나지요.

 

 


(제3부)


 

 

7년 후, 조백헌은 다시 섬에 들어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군인 신분이 아니고 민간인 신분으로, 원장이 아니고 개인으로 오지요. 계기가 된 것은 조백헌 원장보다 한 발 먼저 섬을 떠났던 이상욱이 보내온 한 통의 편지였습니다.

 

그 편지의 핵심은 같은 운명을 살지 않는 사람 사이에선 믿음이 생길 수 없고, 서로의 믿음이 없는 한 아무리 헌신적인 사랑이나 봉사도 자기도취적 동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지요. 그래서야 공동의 목표를 가질 수도 없고 이룰 수도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조백헌 원장은 이번에는 “여러분의 진정한 낙토”를 만들어 주려는 원장이 아니고, 운명을 같이 하는 한 사람의 민간인으로서 ‘우리들의 천국’을 만들려는 새로운 꿈을 갖고 온 겁니다.

 

소설은 조백헌이 윤혜원과 서미연의 결혼식에서 할 축사를 연습하는 장면으로 막을 내립니다. 신랑 윤혜원은 비록 음성 판정은 받았다지만 여전히 문둥병자이고, 신부 서미연은 건강한 처녀이지요. 그래서 조백헌은 이렇게 말합니다. “흙과 돌멩이보다는 사람의 마음이 먼저 이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이 윤혜원과 서미연 두 사람의 결합은 그 두 사람의 처지가 특히 남다른 바가 있었던 만큼 사람의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일 가운데 더욱 더 뜻이 깊고 튼튼한 결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이들이 - 나환자와 건강인이 - 서로 운명을 같이 하면서 여기에서 나온 믿음과 사랑을 바탕으로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나갈 ‘우리들의 천국’의 희망이자 상징이라는 말이지요.     

 

 


자유로 가는 길, 사랑으로 가는 길



 

 

언제든 이 세상에 천국이 이루어진 때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당신들의 천국’만은 이 땅 위에 언제나 있었지요. 고대 전제국가의 왕들, 중세 봉건국가의 제후들, 근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자본가들, 사회민주주의 국가의 당원들, 곧 힘을 가진 자들의 천국은 언제 어디에나 존재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힘없는 자들의 지옥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의 제목인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말에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권력구조와 착취구조가 이미 암시되어 있는 거지요. 즉,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제목에는 ‘우리들의 지옥’이라는 말이 이미 전제되어 있다는 겁니다.

 

작가 이청준은 이렇듯 ‘역설적’ 또는 ‘냉소적’으로 보이는 제목을 붙인 이 작품을 통해 ‘당신들의 천국’을 ‘우리들의 천국’으로 바꾸어가는 방법을 보여주려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것이 역사상 행해진 숱한 혁명들과는 달리, ‘지배자의 천국’을 ‘피지배자의 천국’으로 바꾸자는 식으로 전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우리들의 천국’은 또 다른 ‘당신들의 천국’임을 작가가 이미 알고 있다는 말이겠지요.

 

그래서인지 작가는 그보다 훨씬 원대한 꿈과 기획을 이 작품에 실었습니다. 지배자와 피지배자 모두를 포괄하는 ‘우리’ 곧 ‘우리 모두’의 천국으로 가는 길을 보여주려 한다는 거지요. 이러한 해석은 작가가 ‘천국’을 만드는 방법으로 자유, 사랑 그리고 무엇보다 ‘운명을 같이 함’을 내세우는 것을 통해 증명됩니다. 

 

우선, 자유는 보건과장 이상욱에 의해 주장됩니다. 그는 천국은 “그 설계 내용이 얼마나 행복스러워 보이느냐보다는 그것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들의 선택 여부와 내일의 변화에 대한 희망이 어느 정도까지 허용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확신하지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상욱에게는 주정수 원장이 제시한 “나환자의 복지”든 조백헌 원장이 역설하는 “여러분의 진정한 낙토”든 모두 진정한 천국으로 들리지 않았던 겁니다. 그것들이 소록도 나환자들의 자유에 의해 선택되고 희망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것을 완벽하게 만들어 갈수록 그것을 살아야 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숨막히는 지옥”이 되어버린다는 겁니다. 

 

하지만 황희백 장로는 자유에 대해 부정적입니다. 그는 자유란 좋은 것이지만, 그것은 누군가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싸워 얻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에 “빼앗아 가지려니 싸움질을 해야 하고 싸움질을 하다 보니 그 사이에 자연 의심과 원망과 미움을 익히게 마련”이라는 겁니다. “걸핏하면 섬을 빠져나가려는 것도 그렇고, 원장이 문둥이들을 위해 아무리 피땀을 흘려줘도 믿지 못하고 고마워하지 못하는 것도 그렇고, 사람을 용서 못하는 것, 믿지 못하고 의심하고 질투하는 것 모두가 그 자유라는 거 한가지로만 행하려 해온 허물”이라는 거지요. 

 

그래서 황희백 장로는 천국 건설의 전제조건으로 사랑을 내세웁니다. “자유라는 건 싸워 빼앗는 길이 되어 이긴 자와 진 자가 생기기 마련이지만, 사랑은 빼앗는 길이 아니라 베푸는 길이라서 이긴 자와 진 자가 없이 모두가 함께 이기는 길”이라는 거지요. “자유라는 것에 사랑이 깃들기는 어려워도, 사랑으로 행하는 길에 자유가 함께 행해질 수도 있다.”라고도 합니다. 한마디로,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서로를 사랑하는 가운데서, 아니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구분조차 없는 곳에서만 ‘우리들의 천국’은 비로소 이루어질 것이라는 거지요.     

 

옳은 말이지요. 백번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서 작가 이청준의 정치철학 내지 유토피아공학은 한계를 드러내 보입니다. 그가 천국 건설의 해법으로 제시한 사랑이란 엄밀히 말하자면 종교적 해법이지 사회공학적 해법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예수나 불타의 말씀이지 루소, 볼테르, 몽테스키외나 마르크스, 엥겔스의 이론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운명을 같이 해야만 갈 수 있는 길


 

 

우리가 오늘날 추진하고 있는 사회공학인 민주주의에는 - 비록 그가 선거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더라도 - 통치자가 있기 마련이고, 그와 통치를 받는 사람들 사이의 대립은 불가피합니다. 민주주의란 단지 통치가 통치 받는 자들의 ‘동의’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지, ‘사랑’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이청준의 유토피아공학은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오늘날의 민주주의의 이상에서 이미 벗어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당신들의 천국』의 작가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 걸음 더 밀고 나아가 자신이 말하는 ‘유토피아공학으로서의 사랑’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려 하지요. 조백헌이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와 전개되는 3부의 내용이 그것입니다. 소설의 구조로만 보면 없어도 그만인 - 있어서 오히려 혹 같은 - 여기에서 작가는 ‘유토피아공학으로서의 사랑’이 우선 ‘운명을 같이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함을 주장합니다. 

 

운명을 같이 하는 사이에서만 불신과 배반이 없는 ‘절대적인 믿음’이 생기고, 이 절대적 믿음을 근거로 해서만 자기도취적 동정이 아닌 진정한 사랑이 싹트며, 그 사랑에 의해서만 ‘당신들의 천국’이 아닌 ‘우리들의 천국’이라는 공동의 목표와 소망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지요. 즉, ‘우리들의 천국’으로 가는 길은 오직 ‘운명을 같이 하는 것’에서 나오는 믿음, 사랑, 소망에 의해서만 열린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일찍이 바울(Paul, ? ~ 67)이 「고란도전서」13장에서 강조한 ‘하나님의 나라’로 가는 바로 그 길이지요. 우연일까요? 아니면 작가의 의도일까요? 물론 이청준이 말하는 천국은 ‘지상의 천국’이고, 바울의 천국은 ‘천상의 천국’이지만, 그럼에도 각각의 천국으로 가는 길은 같다는 말인가 봅니다.

 

아무튼, 이렇게 운명을 같이 하는 자들이 그들 스스로의 자유에 의해 선택하고 희망한 천국만이 - 설사 그것이 행복해 보이지 않을지라도 - ‘당신들의 천국’이 아니라 ‘우리들의 천국’이라는 거지요. 타인에 의한 천국이 아니고 자신에 의한 자생적(自生的)인 천국이라는 말입니다.

 

사실인즉 모든 천국, 모든 유토피아란 당연히 이렇게 얻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행복할 뿐 아니라 행복할 만한 가치도 갖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이상욱은 조백헌 원장에게 보낸 편지에 “원장님께서 저들의 천국을 원하신다면, 이 섬의 진정한 주인이어야 할 저들에게도 그들 스스로 자기들을 시험해볼 기회를 주십시오.”라고 쓴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천국, 곧 운명을 같이 함으로써 생긴 믿음, 사랑, 소망에 의해 자생적으로 건설된 것이 아니라, 타인에 의해 설계되고 추진된 유토피아는 - 설사 그것이 아무리 행복해 보일지라도 - ‘디스토피아’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이 도달한 최종 결론입니다.
 


끝이 없는 길


 

 

이청준은 『당신들의 천국』개정판 서문에서 다음같이 자문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제 우리에겐 한 작은 섬의 이름으로 대신해서 불렀던 그 ‘당신들의 천국’을 ‘우리들의 천국’으로 거침없이 행복하게 바꾸어 불러도 좋은 때가 온 것인가.” 이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자유이지만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며, 그래서 개정판을 내게 되었다는 말도 합니다.

 

슬픈 일이지만, 우리는 이청준의 생각에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어쩌면 그의 말대로 “다행스러워할 일이 못 될지도 모르지만” 작가는 앞으로도 숱하게 『당신들의 천국』의 개정판을 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들의 천국’은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왤까요? 우리가 운명을 같이 하려 하지 않아서일까요? 서로에게 믿음이 없어서일까요? 사랑이 없어서일까요? 소망이 없어서일까요? 아니면 ‘우리들의 천국’에 대한 꿈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일까요?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계몽주의자들 가운데서도 유일하게 민주주의를 지지했던 루소(J. J. Rousseau, 1712-1778)조차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어려움에 대해 그의 『사회계약론』(1762)에 다음같이 표현했다지요. “민주주의란 말을 엄밀한 의미로 해석하면 진정한 민주주의는 아직 존재하지도 않았고, 또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 만일 신(神)들로 구성된 인민이 있다면, 그 인민은 민주정치를 할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신이 아닌 우리는 그것을 이제라도 포기해야 할까요? 그리고 절망해야 할까요?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만일 우리가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사회’로 가는 길을 포기한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일까요? 그때 우리는 어떤 길을 가고 있을 것이며, 우리 자신을 뭐라 불러야 할까요? 한번 생각해보시지요!

 

차라리 우리는 아직 존재하지도 않았고, 또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를 ‘우리들의 천국’에 대해 오히려 희망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것을 향해 부단히 한 걸음씩 다가가야 하지 않을까요? 비록 ‘끝이 없는 길’일지언정 그것이 ‘인간의 길’이 아닐까요? 한번 생각해보시죠!

 

 

“그런 때가 올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섬이 끝끝내 실패하지 않으려면

   그 때는 결국 와야겠지요. 그게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라도 ……”

- 『당신들의 천국』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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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0-27
고양이의 안부를 묻다

청소년 테마소설 세상 속으로 _ 제4회 고양이의 안부를 묻다 이성아 소녀는 고양이를 안고 있었다. 물방울이 맺힌 소녀의 머리카락에서는 샴푸 냄새가 은은하게 풍겼고, 고양이도 막 목욕을 마친 듯 털이 보송보송했다. 보송보송한 털의 유혹이 너무나 강렬해 나도 모르게 쓰다듬을 뻔했다. 소녀는 나와 또래처럼 보였다. 그러나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는 이국의 사람들처럼 어색했다. 아파트 하수구 관이 막혔는데, 지금은 밤중이라 공사를 할 수 없으니 아침에 공사할 때까지 물을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 지구 반대편의 언어라도 되는 듯 나를 바라보는 소녀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소녀는 나보다는 고양이와 더 잘 통하는 것 같았다. “고양이는 영물이야. 공연히 곁을 주면 나중에 해꼬지나 당한다니까.” 아줌마가 내게 하던 말이다. 고양이는 소녀의 품에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고양이에게조차 수모를 당한 듯 명치끝이 짜르르 아려왔다. 나에게도 고양이가 있었다. 높은 담을 사뿐히 뛰어올라 얼음사니처럼 우아하게 걸어 다니던 고양이에게 나는 다미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음식물 찌꺼기를 모아두었다가 다미에게 주면 아줌마는 소리를 꽥 질렀다. “고양이 밥 주지 말란께. 야가 뭔 똥고집이래.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을까이.” 식당 알바는 힘들었다. 처음엔 청소하고 설거지나 하면 된다고 하더니 술손님들이 많으면 서빙에서부터 고기 잘라 주는 일까지 이것저것 가릴 여유가 없었다. 취한 남자들이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아래위를 훑어보거나 손이며 엉덩이를 쓰다듬으려고 할 땐 온 몸의 솜털이 다 곤두서고 구역질이 나오려고 했다. 그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 건 기차 화통을 삶아먹은 것 같은 아줌마의 목청이었다. 내 평생 목소리가 그렇게 큰 사람은 처음이었다. 고작 17년밖에 안 산 내가 평생이란 말을 쓰긴 좀 그렇지만, 아마 평생을 곱절로 살아도 그렇게 목청이 큰 사람은 만날 것 같지 않았다. 별 것 아닌 일에도 아줌마는 고함을 질러댔다. 간혹 뭔가 날아가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깨지는 건 하나도 없었다. 양은냄비나 플라스틱 바가지, 물통이나 양푼, 철판 뒤집개나 슬리퍼 같은 것들이었다. 나는 살얼음판 위를 걸어 다니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일했다. 수돗물을 세게 틀면 안 되고, 설거지할 때 개수대 밖으로 물이 튀면 미끄러지므로 안 되고, 식탁은 젖은 행주로 닦은 다음 반드시 마른 행주로 닦아야 하고, 기름 묻은 그릇은 오래 두면 안 되고, 안 되는 것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걸을 때 엉덩이를 흔들어도, 무표정해도, 큰 소리로 웃어도 아줌마는 고함을 질렀다. 내가 아무리 조심해도 화낼 일은 얼마든지 있었다. 많이 나온 전기세와 갑자기 오른 임대료, 갑자기 쏟아지는 비, 햇빛이 들이치는 창, 똥 마려운 것처럼 끙끙거리는 개새끼, 시끄러운 오토바이소리, 그리고 뭘 해도 마음에 안 드는 생선 구잇집 아줌마. 소정은 아줌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 웹관리자
  • 2012-10-16
단 한 번의 기회

청소년 테마소설 성취와 좌절_제4회 단 한 번의 기회 이명랑 자식을 바꿀 수 있을까? 나라면…… 절대로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아빠, 엄마라면? 나는 빠르게 주위를 훑어본다. 운동장을 둥글게 에워싼 광장식 계단을 꽉 메운 사람들. 대부분 오늘 테스트에 임하는 아이를 자녀로 둔 부모들이다. 열심히 자녀들을 응원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나는 아빠, 엄마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고 생각한 순간, 차가운 은빛으로 빛나는 안경이 눈에 들어온다. 아빠다. 아빠 옆으로 엄마와 할아버지, 할머니도 앉아 계신다. 컥, 숨이 막힌다. 우리 가족이 앉아 있는 곳을 확인하자마자 누군가 목을 조르는 것처럼 숨이 막혀온다. 흰 현수막 위에 금빛으로 화려하게 새겨진 글자들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VIP. 금빛으로 빛나는 VIP라는 글자들 옆으로 봉황 두 마리가 이제 곧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듯이 날개를 펼치고 있다. 그 활짝 편 날개 옆에 우리 가족은 앉아 있다. 비좁은 자리에 앉아 서로 어깨를 부대끼며 자식들을 응원하다 말고 어른들은 가끔씩 VIP석을 곁눈질한다. 대놓고 쳐다보지는 못하지만 이따금 VIP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훔쳐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부러움과 질투심이 묘하게 뒤섞여 있다. 저기 앉아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지? 얼마나 돈을 많이 벌어야 VIP석에 앉을 수 있는 거야? 아들아! 봤지? 네 눈에도 저기 VIP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너만이라도 제발 저 자리에 앉아다오! 사람들이 던지는 수많은 물음표들과 느낌표들을 아무렇지 않게 상대하며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그 옆에서 아빠, 엄마보다 더 태연하게 발밑의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바로 내 가족이다. 어른이 되면 나도 저 자리에 앉을 수 있을까? 앞으로도 나는 우리 가족의 일원일 수 있을까? “자! 전원 출발선 앞으로!” 사회자가 붉은 깃발을 번쩍 들어올린다. 와─ 하는 함성과 함께 수많은 아이들이 출발선 앞으로 달려간다. 나도 질세라 뛰어간다. 시작이 절반이다, 라고 아빠는 늘 말한다. 맞는 말이다. 시작에서부터 뒤처지면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다. 나는 내 앞을 가로막고 달리는 아이들 두, 세 명을 어깨로 밀치며 앞으로 뛰어간다. 누군가 내가 했던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내 어깨를 밀치고는 빠르게 내 앞을 스치고 달려 나간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키가 큰 녀석이다. 누가 너 따위에게 질 줄 알고! 나는 어금니를 악문다. 간신히 내 어깨를 치고 달려간 녀석보다 한 발 앞서 출발선 앞에 도착했다. 다행히 정중앙이다. “모두 집중! 첫 번째 미션이다! 참가 인원은 모두 100명, 카트는 50개! 먼저 뛰어가 카트를 잡는 사람만이 장을 볼 수 있다!” 순식간에 사회자의 설명이 끝났다. 사회자는 번쩍 들어 올렸던 붉은 깃발을 밑으로 내리고 출발선 앞에 서 있는 아

  • 웹관리자
  • 2012-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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