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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작가, 잊었던 것들을 보여주는 사람

  • 작성일 2005-11-21
  • 조회수 231


평소 책읽기와 문학, 그리고 문화에 관심있는 청소년들이 장래에 도전해 볼 만한 일은 어떤 것이 있을까. 물론 모든 이들이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어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펼칠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다. 이즈음의 우리 사회는 문학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창의적인 인재를 요구하고 있기도 한데... 이런 관점에서 평소 문학과 책읽기에 관심있는 청소년들이 이후 나름대로 흥미를 느끼고 또 평소 쌓아온 자기만의 재능을 발휘하며 살아갈 만한 여러 직업의 세계를, 이미 그 업종에 몸담고 있는 관계자들로부터 전해 듣는 시간을 만들어 본다. (편집자주)

 

 

<극작가 김정숙선생님과의 인터뷰>

 

"연극, 관객과 하나가 되는 행복"


- 행복을 알 듯, 고통을 알아가는 글쓰기 

    

 

 


잠시… 객석의 불이 꺼진 것처럼 날이 어두워지자, 대학로주변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한 편의 연극이 이 저녁, 이 거리를 가득 메운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대학로는 매일매일 연극이라는 ‘열정’으로 가득 차오른다. 그 ‘연극’이 서 있는 자리는 이 곳 대학로에 일찍이 터를 잡은 나무처럼 밑둥치가 굵고 뿌리가 깊다. ‘한번 그 연극을 보아라’

 

대성황을 이루고 있는 소극장 쪽으로 황급히 뛰어가는 한 쌍의 여인이 바쁘다. 그의 손에 들린 꽃다발이 바쁘게 내 코끝을 스쳐지나간다. 연극이 상연되는 내내 관객들은 출처를 알 수 없는 가을 꽃향기에 취해 있으리라. 이 저녁에 연극을 한 편 관람하는 이들은 행복에 젖으리라.

 

오늘 만나기로 약속한, 극작가는 어느 인연으로 ‘무대’를 사랑하는 되었을까? 이런 저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삐에로 복장을 한 배우가 팸플릿을 나눠주면서 바쁜 발길을 붙잡는다. 내 앞전에서 길을 헤매던 걸음 몇이, 고민하다, 그가 안내하는 공연장으로 들어가 버린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조금 전까지 무심히 보았던, 삐에로의 얼굴에 있던 ‘희극’과 ‘비극’의 얼굴을 동시에 생각해 낸다. 아니 ‘희극’과 ‘비극’이 공존해 있는 이 부박한 삶을 생각해 낸다, 그 골목의 벽면에 다닥다닥 붙은 ‘포스터’를 뚫어지게 본다.

 

대학로… 이 서늘한 계절에 떨어진 나뭇잎은 도심에서 도심 끝으로 밀려가고 있다. 인간의 고독도 이 계절엔 자꾸만 안으로 오그라든다. 그 황량한 길에 이제 막 리모델링을 끝내고 서구식 외관을 드러낸 카페, 모든 내부가 이렇게 따뜻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카페의 내부로 들어선 몸들은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커피 잔을 드는 데도 여유를 부린다.

 

그 조그만 카페의 환한 불빛 속에서 ‘연극’ 에 대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 난생 처음 연극이라는 걸 보게 된 이들이, 연극에 대해 이 세상에서 제일 많이 아는 사람들처럼 웃고 떠드는 가운데 진지하다. 그들의 옆 좌석에서 나는 오랫동안 한 길을 걸어온 극작가 김정숙 선생님을 모셔놓고 그의 일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요즘 많이 바쁘시죠.

… 네. 아주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바리’라는 작품 때문에 요즘은 더 바쁘지요.


=‘바리’라는 작품은 어떤 작품인가요? 짤막하게 말씀해 주시죠?


… 원전(原典)이 무속신화로서, 버려진 바리가 자신을 버린 부모를 살리기 위해 지옥에 가서 생명수를 구한다는 ‘효(孝)’를 앞세운 이야기죠. 또 가장 소외되고 약한 것이 생명을 되살린다는 멋진 이야기입니다. 2005년 11월 4일부터 9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되고요.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극작가’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요?

… ‘극작가’란 그 무엇을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없는 것을 찾아서가 아니라 잊고 있었거나, 버려졌거나,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서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말하는 ‘보여주는 사람’이라는 말의 의미를 곰곰 이해해 보셨으면 싶네요. 


=선생님이 하시는 극작가란 일의 매력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요?

… 함께 꿈을 빚어 나가는 작업의, 과정의 묘미가 인생을 느끼게 해준다는 데에 이 일의 매력이 있어요. 참 매력적인 일이죠.


=지금까지 이 일을 하시면서 어느 순간에 가장 큰 보람을 느끼셨나요?

… 공연과 관객이 하나가 되어 어우러져 모두 행복할 때 가장 큰 감동이 찾아오죠. 그 순간은 잊을 수 없는 행복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죠.


=선생님의 작품세계에 영향을 주신 분들은 어떤 분들이 계신가요?

… 권정생 선생님 그리고 마더 테레사 수녀가 있어요. 이 분들은 이 세상을, ‘함께 살이’에서 자신의 직분을 알고 모두 행복해 지도록 노력했죠. 그 정신을 존중하며 살고 싶었어요. 제 작품에는 이 분들의 영향이 있다고 말할 수 있고요.


=선생님, 극작가로서의 어려움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 행복을 알 듯, 고통을 알며 나 보다 더 어려운 이들을 생각하고 이 고통을 지나야 만나게 되는 보람이 있죠. 이런 과정이 극작가에게 온다고 봐야 할 거예요. 고통을 알아가는 것 그것이 어려움으로 부딪힐 때가 있어요.


=선생님 작품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

… ‘강아지똥’ 이라는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이 작품은 누구나 고민하는 삶의 존재에 대한 이유를 지극히 낮은 곳에서 찾아 낸 보물 같은 작품이죠. 삶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 다시 겸손하게 삶을 바라 볼 힘을 주는 샘물 같은 작품입니다.


=선생님의 경우는 연극을 볼 때, 어떤 부분에 많은 관심을 갖고 보나요?

… 사람을 진정으로 표현하고 있는가? 하는 부분을 세밀하게 관찰하죠. 단순히 흥행(상업적)대상으로 이용하지 않는가? 하는 부분도 경계해서 보고 있고요. 이 점은 ‘사람’이라는 부분을 ‘진정’으로 표현하고 싶은 제 개인의 욕구이기도 하구요. 아무튼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보고 있어요.
 

=우리 연극의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 사회전반에 걸친 문화에 대한 이해가 높아져야 한다고 봅니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세상에 익숙하기보다는 ‘만들어가는’ 일에도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답게’ 사는 삶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청소년이 되길 희망합니다. ‘고민’하지 않는 사람보다는 ‘고민’을 해서 얻는 삶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차 극작가가 되고 싶은 청소년들은 이제부터 무얼 준비해야 하나요?

… 일단 공연을 많이 보세요. 그리고 즐기세요. 좋은 공연, 나쁜 공연 가리지 말고 많이 보시는게 가장 큰 공부가 될 것입니다. 제 경우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공연을 보고 무대에 ‘홀려’ 평생 연극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백하건데 제 인생 최상의 선택은 극장에서 공연을 보았기 때문에 이뤄졌습니다.


=극작가로서, 극단 대표로서의 향후 선생님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 지금은 우리 뮤지컬 ‘블루 사이공’ 10년 기념 공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동일한 월남전을 소재로 한 ‘미스 사이공’의 한국 라이센스 공연과 동일한 시기에 공연 될 것 같아 우리 뮤지컬의 현주소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네요.


<인터뷰 후기>

 
극단의 대표이며, 연출가로서의 일도 열정적으로 하고 있는 선생님께 편협하게도 ‘극작가’로서의 일만 짤막하게 묻게 된 것이 실로 죄송스러운 일 같다. 또 하나의 생각, 과연 그 누가 이 비극적인 삶을 비껴갈 수 있을까. 혹은 그 반대로 살 수 있을까. 그것이 혼재해 있는 게 차라리 …

 

 

*극작가 김정숙 선생님 약력


1960년 서울 출생.
1976년고등학교 1학년 가을 - 연극을 만나다. 
        국립극장에서 제1회 대한민국 연극제 수상작 '물도리동'을 관람함
        

1982년 극단 에저또 방태수 대표님을 만나 워크샵에 참가하므로 입단
       이문수, 장희용, 김진구, 김복희, 독고영재, 황병도 선배님

       을 모시고 첫작품 '농녀'의 진행으로 연극을 시작함 
              
1984년 "마지막 키스를 당신께 - 윌리엄 인지/작"으로 연출 데뷔
         영원한 나의 뽀르뚜까 울엄마, 울아버지 제작 

1989년 ‘모시는 사람들’ 창단

           

작품들

 

창작뮤지컬 - 우리로 서는 소리, 꿈꾸는 기차, 들풀, 블루 사이공, 바리 외

악극 - 비 내리는 고모령, 아빠의 청춘

드라마 - 병국이 아저씨, 몽연,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 외

어린이 연극 - 반쪽이전, 꺼꿀이전, 사랑의 선물 방정환, 쌀밥에 고깃국, 콩쥐랑 팥쥐랑,

               강아지똥 외 나 어렸을 적에.


수상경력

 

뮤지컬 대상 - 희곡상

백상예술대상 - 희곡상

서울 어린이 연극제 - 희곡상, 제작상

 

<필자소개>

 

 

이기인 (李起仁)


인천 출생


200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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