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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소설의 미래

  • 작성일 2005-12-21
  • 조회수 650


 

 

왜 한국인들은 무협소설을 읽나

 

 

지난 회에서 보았듯이 부침은 있지만 무협소설은 추리나 SF에 비해 한국에 꽤 잘 정착한 장르입니다만, 이건 세계적으로 드문 현상이기도 합니다. 무협영화는 세계적으로 널리 보급되었고, 지금도 세계 여러 나라 관객들에게 즐겨 감상되고 있습니다만, 무협소설을 읽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중국, 그리고 중화권의 나라들뿐입니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무협소설은 1998년에야 처음으로 소개되었었고, 그나마 별로 주목을 끌지 못한 채 묻혀버렸다고 합니다.

 

저는 무협온라인게임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이나 유럽 사람들을 만나기도 합니다만, 그들에게 무협을 설명하려면 아주 애를 먹습니다. 그들에게는 무협 문화가 아주 낯선 것이거든요. 현실의 중국도 아니고, 역사적 사실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판타지도 아니고……, 대체 무협, 무림이라는 세계는 어디를 말하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운 게 당연합니다.

그럼 왜 한국에서는 무협이라는 장르가 인기가 있을까요. 심지어 저 같은 한국인이 직접 쓰기도 하게 된 이유가 뭘까요?

 

서울대학교 중문과 교수이자 문학평론가인 성민엽 선생님은 무협소설에 대한 관심이 남달라서 중국에서 열리는 무협관련 세미나에도 참석하곤 한다고 합니다. 거기서 중국인들에게 한국의 무협문화를 알리면 매우 놀란답니다. 화교도 아닌 순수 한국인들이 무협소설을 읽는다고 하는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창작도 한다고?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났을까요? 왜 세계적으로 보면 중국인과 화교권에서만 인기 있는 무협소설이 한국에서도 통하고 있을까요?

 

 

무협의 매력은 '이야기의 힘' 

 

 

저는 무협작가로 십여 년간 작품 활동을 해왔고, 무협게임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무협의 역사와 자료에 대한 조사 활동도 해왔고, 기회가 될 때마다 언론매체에 무협을 소개하는 칼럼도 연재해 왔습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이 그것입니다.
왜 무협인가? 무협의 매력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가장 간단한 대답은 재미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무협은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대답이 안 됩니다. 판타지도 재미있고 추리소설도 재미있습니다. 게임도 재미있고 영화도 재미있습니다. 삶과 세계에 대한 진지한 탐구를 담은 본격문학 중에도 재미있는 것은 수없이 많습니다. 재미의 범위와 층차는 너무나 다양해서 단지 재미있다는 한 마디로는 무협만의 고유한 매력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다른 장르나 매체와 차별화된 무협만의 재미가 따로 있을까요?


단언해 말하기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순수하게 제 의견으로만 받아들여질 것으로 믿고 말하자면, 무협의 재미는 이야기의 힘에서 나옵니다. 동어반복 같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그 힘에서 재미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인생과 세계에 대한 진지한 고찰도 없고, 현실에 대한 반성도 없고, 깊이 있는 철학도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것보다는 더 흥미로운 이야기, 더욱더 독자와 관객에게 자극을 줄 수 있는 이야기, 적어도 이걸 보는 동안은 다른 생각을 못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하고자 노력하고, 그 노력이 어느 정도 성공하면서 성립되는 것이 이야기의 힘이라는 것이죠.


애초에 무협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의 전기문학이 그런 것이었습니다. 어디선가 들은 흥미로운 이야기, 진짜인지는 묻지 마시라는 식의 이야기 말입니다. 

 

 

상상 속 무림의 세계가 내 눈앞에 

 

 

그런데 이런 이야기의 힘은 판타지에서도 발휘될 수 있고, 실제로 발휘되는 요소입니다. 무협이 판타지와 다른 부분은 무엇일까요?

 

그건 그 이야기가 발 디디고 있는 세계의 차이에서 비롯하는 것입니다. 무협만이 발휘하는 이야기의 힘, 이야기의 독특함은 무림이라는 배경세계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말이지요. 무협을 즐기는 독자, 혹은 관객은 그냥 복수극, 그냥 영웅담, 그냥 드라마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무림이라는 이 독특한 세계 위에서 벌어지는 복수극, 영웅담, 드라마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이 무림이라는 세계는 중국과 한국에 약간 다르게 받아들여집니다.

 

중국인에게 있어서 무협이란 무엇일까요? 그들에게는 무협이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무엇이나 가능하던 시절을 말해주는 옛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홍길동이 있다면 그들에게는 자객 형가가 있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무협이 그들에게는 역사일 수도 있습니다. 장길산이나 임꺽정이 우리에게 갖는 의미를 생각해보세요. 딱 그와 같은 것이 김용 소설에 등장하는 곽정이니 진근남에게 있는 것입니다.


대만과 홍콩에 있어서는 이게 또 각각 다릅니다. 지금처럼 중국이 개방정책을 펴기 전에는 대만, 홍콩에 사는 중국인들에게 있어서 중국이란 동경의 땅이었습니다. 수많은 대만과 홍콩의 무협작가들이 그렸던 무림이란 직접 가보고, 살아보고 쓰는 생생한 현장기록이 아니라 가보지 못한 땅, 상상 속에서 미화된 땅이었던 것입니다.


한국에서 이러한 거리감, 비현실성은 극단적으로 커집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한국에서의 무협이란 그 기본 성격에 있어서는 판타지와 다름없습니다. 비현실적인 공간, 환상 속의 공간이라는 것입니다. 명나라와 청나라의 모습들이 대충 얽혀진 시공간에 무협적 환상이 한 겹 덧씌워진 데다가 한국인이 중국을 생각하는, 홍콩 영화를 통해서, 혹은 무협소설 그 자체를 통해서 무의식적으로 만들어진 모습을 통해 왜곡되어진 세계, 그것이 무협이 배경으로 하고 있는 중국과 무림의 이미지입니다.

 

 

비현실이 주는 그 무한한 자유

 

 

이렇게 만들어진 중국과 무림이라는 공간은 한국인에게 있어서는 현실의 한 곳, 한 국가가 아니라 허구적 공간개념이 됩니다. 그것은 현대 소설에 있어서 ‘있을 법한 허구’를 드러내기 위한 공간적 배경이 아니라 ‘로망스적인 비현실성’을 드러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된 공간인 것입니다. 이러한 설정을 통해 작가는 독자를 현실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공간으로 몰입시킬 수 있었던 것이죠.


한국인에게 있어서 한국이라는 땅은 현실입니다. 그것도 아주 무거운 현실입니다. 미디어에서는 매일같이 북한 핵문제를 말하고 미국, 중국, 일본과의 갈등을 다룹니다. 저 북한산과 지리산에는 주말마다 수만 명의 인파가 몰려 인간이 밟지 않은 땅이 없습니다. 한국의 중악숭산이라고 할 서울 남산에는 소림사 대신 서울타워가 서 있습니다. 이런 공간에서 비현실을 꿈꾸기란 너무나 어렵죠. 현실의 무게가 너무나 압도적이기 때문입니다.

 

비현실이 왜 필요한가요? 그게 있음으로 해서 자유로워지기 때문입니다. 현재와 현실, 나를 둘러싼 공간과 시간에서 자유로워짐으로써, 심지어 물리법칙과 나라는 존재, 그 자기정체성에서조차도 이탈함으로써 상상력은 자유를 얻게 되고, 억눌린 욕망들이 그 대상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환상 속에서 위안을 찾고, 때로는 그 터무니없는 과장들과 허상들 속에서 진실한 자기와 마주보게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역설적으로 무협에 있어서는 역사적 고증이나 실제의 모습이라는 것이 그리 의미가 없어지게 됩니다. 오히려 저는 저렇게 확보된 비현실의 공간에서 한 발 더 나가는 것이 옳다고 믿습니다. 더 자유로운 공간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더 자유로운 발상으로 무림이라는 세계를 꾸며가는 것이 이 시점에 필요하다고 본다는 것입니다. 그게 전편의 마지막에서 말한 장르의 파괴, 혹은 발전, 또 혹은 새로운 장르의 출현입니다.

 

 

우리 역사, 문화 다룬 한국적 무협을

 

 

이제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현실의 중국과 판타지의 중국을 구분하지 않음으로써 성립되던 무협적 세계의 애매함은 한편으로는 현실의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는 가까운 땅으로 바짝 다가옴으로써, 다른 한편으로는 보다 판타지적인 공간이 소개됨으로써 양쪽에서 공격을 받아 토대가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우리는 소림사에 달마역근경을 익힌 전설의 고수가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경공이니 장풍이니 하는 것이 다 중국인 특유의 허풍임을 알고 있습니다. 모르고 있을 때 중국과 무림은 판타지의 영역이었지만 알게 되면서부터는 현실의 땅으로 끌어 내려집니다.

 

한편으로 판타지의 영역은 더 이상 중국이라는 애매한 공간을 빌려오지 않아도 되게 되었습니다. 그냥 환상의 땅 아르카디아라고 해도 이야기는 얼마든지 펼쳐 나갈 수 있습니다. 작가들도, 독자들도 더 이상 그런 것을 따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럼으로써 무협의 존재기반 자체가 흔들리게 된 것입니다.

 

이건 이미 중국에서도 보이고 있는 현상입니다. 고답적인 무협의 법칙들을 무시, 파괴하고 이질적인 요소인 판타지와 섞어놓은 퓨전 경향, 청소년에게 쉽게 다가가는 개그 경향의 소설이라는 것은 무협이 현대의 대중문화와 섞이면서 반드시 겪었어야만 할 하나의 길인지도 모릅니다. 그게 이미 몇 년 전부터 현실화 되고 있지요.

 

한편으로 저는 우리가 보다 한국적인 무협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한국적인 무예소설, 시대소설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우리의 역사와 우리의 문화를 가지고 재미있는 읽을거리를 만들어내는 건 작가로서의 책무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바로 이 작업이 위에서 말한 것처럼 현실의 무거움 때문에 그리 쉽지 않기는 합니다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한 번 시도해 볼 만도 하지 않습니까?      <끝>

 

 

(필자소개)

 

좌백

좌백은 필명이고 본명은 장재훈입니다.
1965년 강원도 동해에서 태어나서 숭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95년 무협소설 [대도오]를 써서 작가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현재까지 [생사박], [혈기린외전], [천마군림], [비적유성탄] 등을 써왔습니다. 얼마전에는 구룡쟁패라는 컴퓨터 게임 시나리오를 썼으며 '논리의 미궁을 탈출하라'는 청소년용 철학서(랜덤하우스 중앙)을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역시 무협작가인 진산과 결혼해서 8살 난 아들 우진이를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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