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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설계하는 사람들-출판기획자

  • 작성일 2006-02-20
  • 조회수 632


 

 

‘한겨레’ 문학담당 기자인 최재봉은 어느 글에서 ‘책은 왜 읽는 것일까?’에 대한 자문자답에서 “그것은 다르게 생각하기 위해서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글에서, 우리는 책을 통해 우리가 모르던 것을 알게 되고,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 꼭 그렇지만은 않음을 깨닫게 된다는 점을 환기시킨다. 또한 책을 읽으면서 기존의 지식과 가치관을 재확인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첨언한다.

 그는 덧붙여 철학자 니체의 말을 적절히 인용하고 있다.  “사람들은 책을 포함한 사람들로부터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것 이상을 빼낼 수 없는 법”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말은 ‘옳고’ 동시에 ‘틀림’이다. (옳으면서 동시에 틀릴 수 있는 것이야말로 책의 세계에 어울리는 역설이라고 그는 말한다) “니체의 이 말을, 자기 안에 잠재되어있는 어떤 것을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발견하게 된다, 는 것으로 이해”하겠다고 그는 말한다. “그렇게 드러나지 않고 감추어져 있던 어떤 것을 포함해서, 책은 기존의 상식과 주장을 뒤집어엎는 데에 본디 기능이 있다.” 고 역설한다.

 책과 관련하여 누구보다 ‘최전선’에서 많은 글을 쓰고 있는 최재봉 기자를, 또 다른 기자가 인터뷰한 글에서(<한겨레> ‘문학소년 최재봉, 문학기자 최고봉되다’_ 김미영 기자. 2005.12. 26일자 게재) “독자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은?” 하고 기자가 그에게 마지막으로 물었을 때, 그의 입에서 불쑥 튀어나온 한 권의 책이 있었다. 그 책을 나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책은 바로 휴머니스트라는 출판사가 펴낸 『대담』이라는 굵직한 책이었다. 『대담』은 지난해 한겨레신문사가 전문가와 함께 선정한 ‘올해의 책’이었다. 익히 입소문을 통해서 알고 있는 훌륭한 책이었지만 그의(책더미 속에 파묻혀 사는) 입을 통해서 다시금『대담』을 소개받는 느낌은 솔직히 또 다른 느낌이었다.

 어떤 사연으로 『대담』이 기획되어 나오게 되었을까? 그때부터, 『대담』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이 책을 기획한 선완규선생님(사진 아래 왼쪽)을 수소문해서 꼭 이런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다. 생각해 보니 출판기획자라는 직업이야 말로 기존의 상식과 주장을 뒤집어엎는 이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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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완규 선생님이 기획해 세상에 내놓은 책들>

 

 

날이 춥습니다. 선생님. 마음까지 춥네요. 황우석 쇼크에 사학법 개정 논란, 게다가 주가폭락 등등 요즘 분위기 정말 냉랭하네요. 책을 기획하시는 분으로서 요즘의 사회적 분위기를 어떻게 보고 계신지요?



= 우리 사회의 치우침 현상은 아직 여전한 것 같아서 좀 씁쓸해요. 다원적이고 다양한 생활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은데, 보편적인 어떤 하나만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일들이 일상이나 공적 영역에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아요. 특히 국가나 회사 단위로 벌어지는 일들이 개개인의 다양성을 계속 짓누르는 장치로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줄기세포 사건의 진행과정을 보면 그런 것이 잘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명의 신비를 풀어가는 과정이었잖아요. 생명의 신기원을 구현해낸 과학자도 국가와 애국이라는 ‘수사’로 일관했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회 역시 그 발언을 그대로 가져왔잖아요. 욕을 먹어도 할 수 없지만, 저는 좀 다르게 보거든요. 생명의 탄생과 설계라는 점도 그렇고, 비가시적인 영역이라 할 수 있는 극미시세계를 보는 사람들의 발언이 극히 비생명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고, 사회 역시 ‘돈’이라는 것으로 받아들이잖아요. 물론 경제적 효과는 무시하지 못하는 것이지만, ‘돈’과 ‘경제적 이익’의 방향만으로 가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의 실체를 밝혀가는 과정도 역시 쏠림의 방향으로 갔습니다. 황우석 선생님 관련 책들 역시 마찬가지지요. 위인전이었습니다. 고난의 길을 걸어와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죠. “그 사람은 이걸 하기 위해 태어났다” 이렇게 구성되었잖아요. 사건이 모두가 원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황우석 선생님 관련 책들을 구입한 독자들의 항의가 잇따르자, 어떤 서점에서는 환불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하더군요. 이번 사건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은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희대의 사건’이었다는 ‘가십’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 사회를 우리가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생각들이 교환되어야 해요. 이와 관련한 출판물들이 출간되어야 하겠지요. 인간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생각하는 사회문화적 담론이 활발해져야 합니다. 계속해서 국익이나 과학적 성과, 영웅이라는 사회문화적 분위기라는 사회담론으로는 ‘생명’을 이야기하는 데 아무런 성찰이나 비전을 주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병술년’ 올 한 해의 책들은 예년과 비교할 때, 대체로 ‘큰 줄기’에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 같은지요? 혹시 예상하고 있는 일들이 있는지요.



= 글쎄요. 그런 예상을 하기는 무척 힘들어요. 트렌드나 베스트셀러 중심으로 출판 이야기를 구성한다면 저는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인문학을 중심으로 출판을 생각하는 입장에서라면 저는 ‘지식의 생산’과 ‘지식의 유통’ ‘지식의 소비’라는 세 가지 차원에서 큰 흐름을 이야기할 수 있을 듯합니다. 과거의 책이 저자 편집자 독자라는 명확히 구분되는 세 영역에서 구성되었다면, 지금은 저자 편집자 독자라는 명확한 관계가 모호해지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IT미디어로 상징되는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모델이 진화하는 방식을 보세요. 서로 쓰고 읽고 퍼가고 하는 방식이죠. 개인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출판 미디어는 새로운 생산과 유통 소비 방식을 창안해야 합니다.
전통적으로 있어져온 저자 중심의 책과 저자+편집자+디자이너+독자가 책을 만드는 또 다른 생산방식의 책이 본격적으로 등장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기획출판물의 비중이 상당히 높아질 것 같습니다.



최근의 출판시장은 어떤가요? 작년에는 매출이 300억원이 넘는 몇몇 출판사가 있는가 하면 그 반대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다 결국은 문을 닫은 중소 출판사가 있는데요. 이런 사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양극화 현상은 우리 사회 모든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어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영역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요. 숫자로 거의 모든 것이 계량화되는 근대사회에서 최고와 최저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문제는 중간이라는 ‘사이공간’에 다양한 형태나 양식들이 존재한다고 보거든요. 중소형 출판사 역시 사이공간에 어떻게 존재하면서 자기를 구성해갈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이공간에 있으려면 질문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하고 싶은 출판을 하면서 이상활동을 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양극화라는 차원에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차원에서 생각해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죠.. 왜냐면 중소형출판사가 대형출판사가 되어야 해결되는 것이라면 문제는 심각합니다. 출판 경영, 정책 등의 지원은 사이공간에서 어떤 일들을 벌일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바꿔야 그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한 출판사의 내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출이라는 숫자로만 자신의 영역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 너머에 새로운 가치를 스스로 발견하지 못하면 견디기 힘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출구 또는 돌파구가 생겨납니다. 하나 더 추가하면 세상일이 의도된 대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생각해요. 우연을 어떻게 만나는가? 이런 능력이 필요해요. 그 능력이 ‘돈 버는 능력’으로만 보여지면 곤란해요. 무수한 능력들이 세상에 존재하기에 무수한 우연을 만나는 다양한 능력이 필요합니다.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좀 늦은 질문인데요. 선생님이 하시는 출판기획자는 ‘출판’영역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요? 우리 청소년들을 위해서 좀 상세히 얘기해 주시죠?



= 출판기획자는요 디자이너(설계자)입니다. 하얀 종이 위에 자신이 그리고 싶은 어떤 사물을 표현하는 설계자(디자이너)입니다. 사물 주변에 여러 풍경이나 소품들이 등장하는데, 이런 것까지 고려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직접 그리는 것은 아니죠. 내가 원하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을 찾고, 소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나고, 또 모여진 재료들을 어디에 어떻게 할 것인지를 논의하면서 최종 결정을 하는 사람이죠. 또 하나 보태면 그림을 완성한 뒤 그것을 공적 영역에 내놓으면서 “이 작품은 이런 가치를 지닌 작품이다”라고 알려서 그것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그 그림을 볼 수 있도록 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인문학 분야를 전문으로 생각하는 편집자입니다. 교양의 영역과 연구의 영역에서 독자들이 어떤 책을 마음속으로 욕망하는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어요. 생각한 대로 책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메모하면서 다른 사물이나 현상을 보는 것과 그냥 보여지는 사물이나 현상을 보는 것! 처음에는 똑같이 보는 것이지만 나중에는 전혀 다른 형태로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죠. 꾸준함! 기다림! 등등의 단어가 생각나는군요. 편의상 영화의 감독, 드라마의 PD(연출자)자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이라 보면 될 듯하네요.



글쓰기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이 일을 좀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실제로 선생님의 경우는 이곳저곳에 많은 글을 발표하고 계신 걸로 아는데. 어떤가요. ‘출판기획’과 집필활동을 겸하는 선생님의 경우는 출판기획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나요.



=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모두 느끼겠지만, 생각을 하면서, 글을 구성하고 쓰면서 많이 배우게 됩니다. 지식의 섭취보다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앞으로 어떤 부분을 더 생각해야 할지 등에 대해서요. 이때 정말 소중한 것은 자신이 현재 어느 지점에 있는지가 정확히 드러나기에 무척 좋아요. 다른 사람의 비난이나 평가는 그 다음에 생각할 문제이지요. 그리고 다른 분들의 평가나 비판은 매우 소중하거든요. 그거 잘 새겨들으면 득이 되지요. 해는 절대로 되질 않아요. 자신이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가능성이 눈앞에 있는데, 욕이나 비난 정도는 받아들여야죠. 글쓰기는 쓰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과정이라서, 저는 열심히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상상력․창의력은 “다르게 생각하기” “다르게 보기” “다르게 쓰기” 등등의 과정에서 얻어지는 거라 생각하는데요. 남과 다른 차원에서 어떤 것을 본다는 것은 후에 엄청난 다른 것을 생각하게 되잖아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그런 거잖아요. 나의 시각에서 그리고 저쪽의 시각에다가, 그 둘을 보는 또 다른 관찰자의 시각을 넣은 것이거든요. 다르게 생각하기를 시작하면 정말 재밌어요. 독특하게 보이고, 뭔가 있어 보이고 등등. 여기서부터 출발하게 되는 것이죠.

선생님이 하시는 이 일에 보람에 대해서도 묻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이 일의 보람과 어려움을 함께 말씀해주시지요?



=우리나라에서 출판사에서 일하는 편집자들은 사실 보람과 보상이 분리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모든 편집자들이 그렇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가장 큰 보람은 책을 쓴 저자나 출판사가 생각한 것만큼의 성과가 있을 때이겠지요. 양질의 평가와 좋은 판매 상황 지표가 나오는 것이지요. 주로 겨울에 지표들이 나오잖아요. 연말이면 방송과 신문 등의 미디어에서 ‘올해의 책’을 선정하여 발표합니다. 우리 출판사 책 중에 내가 주도적으로 참여해 기획하고 편집한 책이 선정되면 기분이 좋아요. 저는 그런 점에서 운이 매우 좋은 편집자 중의 한 사람입니다. 2001~2005년까지 매년 한 두 권씩은 선정되었으니까요. 특히 TV 책을 말하다 올해의 책에는 매년 한 권씩 선정되었습니다. 《깊이와 넓이 4막 16장》(김용석, 2002년), 《오만과 편견》(임지현 사카이 나오키, 2003년), 《시간과 공간의 문화사》(스티븐 컨, 2004년),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진중권, 2005년), 《대담-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도정일 최재천, 2005년》 등이지요. 자랑이 심하죠. 그래도 뭐 내놓을 것이라곤 이런 것들 밖에 없으니.....



이전에 기획하신 책들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어떤 책인가요?



=‘대한민국 지식 사회의 열린 횡적 소통’이라는 개념으로 기획된 휴머니스트의 대담 시리즈 중의 하나였습니다. 인문학자 도정일(경희대 영어학부 교수, 비평이론)과 자연과학자 최재천(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생물학)이 ‘생명공학 시대의 인간의 운명’을 테마로 2002년부터 2005년까지 벌인 10여 차례의 대담과 4차례의 인터뷰를 책으로 엮어낸 것이지요.(사진왼쪽) 이 책은 ‘대한민국 지성사 최초의 프로젝트’였습니다. 외국의 사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두 문화의 대화입니다. 프랑스 책들을 보면 대담 기획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저희들의 기획과는 달라요. 그들이 특정 테마만을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면(푸코나 들뢰즈, 데리다 등이 했지요) 우리는 보다 큰 틀에서 근본적인 것에서부터 현실적인 부분까지 물꼬를 트는 방식이지요. 시간과 노력, 그리고 엄청난 인내가 요구되기도 합니다.
인문학자 도정일과 자연과학자 최재천이 “생명공학 시대의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삶의 문제를 넓고 깊게 들여다보는 책입니다. 대담 전체를 관통하는 관점은 최재천은 ‘생물학의 관점’에서 인간의 과거 현재 미래를 고찰하고 도정일은 ‘인문학’의 관점에서 인간에 대한 방대한 서사를 이야기한다. 두 사람이 말하는 ‘인간’ 이야기에서 입장과 견해의 차이를 드러내 긴장, 갈등 상황을 그렸구요.
대담집을 통해 독자에게 전하려는 의도는 두 사람의 생활과 경험 그리고 지식의 탐구, 사회적 실천 과정 속에 녹아 있는 인문학적 소양과 자연과학적 소양의 실체, 즉 인문적․과학적 가치란 무엇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적․과학적으로 사는 것인가 대한 지식과 삶의 윤리(생태적 인간)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이었어요.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구성이었어요. 2000매의 글을 어떻게 책으로 묶어낼 것인가? 
그래서 13개의 창으로 만들었고, 우리 시대 지식의 거의 모든 주제어들이 녹아 있기에, 그 주제어로 찾아 들어가 책을 읽으면 해당 지식과 관점을 필요로 하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문장형 인덱스를 뒤에 넣었습니다. 2005년 대한민국 대표 출판물이 되었죠.



 기획은 좋았는데 실제로는 완성되지 못한 책들도 있을 법한데요. 그러한 경우는 어떤 경우들인가요?



= 글쎄요. 기획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은 많은 영역의 능력을 필요로 해요. 저자, 편집자(디자이너), 독자라는 기본 영역 사이에 무척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이때 사이공간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과정에 반드시 필요해요. 원고에 대한 여러 의견, 어떤 점을 어떻게 알릴 것인가?, 서점에서의 위치 등 편집자인 제가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보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런 친구들도 많이 만나야 하구요. 저자가 책상을 붙들고 있다고 해서 글이 쓰여지는 것이 아니듯, 편집자의 기획 역시 모니터에서 시작되지 않아요. 책은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도구이자 미디어예요. 세상의 온갖 것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일상에서, 학교에서, 회사에서 그리고 시장(market)에서 기획은 시작됩니다. 수많은 ‘우연들’이 교차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기획 아이템이 만들어지고, 수많은 기획 아이템 중의 극히 일부가 ‘출판기획안’으로 작성되고, 그 출판기획안 중의 일부가 책으로 만들어지고, 그 책의 일부가 미디어에 소개되고, 소개된 책의 일부가 베스트셀러의 목록에 오르게 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국내의 필자들(일러스트, 화가, 기타)에게도 출판기획자로서 할 말이 있을 듯 한데요? 이들은 출판기획자의 기대만큼 활동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구요?



= 다른 영역에 있는 분들에 대해 말하기 전에, 저 같은 편집자들이 그런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일을 할 만한 사람들이 있긴 합니다. 정말 필요한 것은 다양한 능력들을 책이라는 형태로 구성하는 능력입니다. 편집자는 브리콜라주의 달인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잡스러운 소재라도 책으로 설계하는 자!



우리 독자들에게도 한 말씀 해 주시죠. 이젠 많이 변했지만 그래도 베스트셀러만 찾았던 그런 풍조가 사실 있었잖아요?



= 모든 책이 베스트셀러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특히 인문학 영역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한 사회의 두터운 생각의 지도를 만들어내는 책은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인문학 출판에서는 이러한 출판기획이 더욱 요구됩니다. 인문서 출판은 생각의 기초 지형을 단단하게 다져나가는 분야이기 때문이죠.
책을 읽은 후 이것만은 꼭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리뷰를 쓰는 것입니다. 메모 형태라도 좋아요. 그러면 정말 책 한 권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읽기, 말하기, 쓰기! 이게 우리들의 일상이잖아요. 사물이나 현상을 보거나 읽고 친구들이나 회사에서 말하고, 그것을 보고서나 일기나 메모하는 거잖아요.



앞으로 이것만은 꼭 한번 출간해보고 싶다하는 책이 있으면, 소개를 좀 해주시죠.?


 

=특별히 그런 것은 없어요.

 


지금 계신 출판사에서 곧 나올 책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어떤 기획의도로 나오게 되나요?



=2006년 가을 경에 선보일 수 있을 듯한데요.. 잠깐 소개해보겠습니다. 제가 만들려는 책은 ‘사건(문제 상황)’을 읽고(읽기) 생각하여 판단하고(토론하기), 그것을 표현하는(쓰기) 철학책이에요. 사고의 처음에서 마지막까지 그 흐름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철학 교양서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일! 이것은 현실의 삶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수많은 문제적 상황에 접하는 우리의 일상에서 이런 능력을 요구받기 때문이죠! 일상에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책으로 구성해, 스스로 텍스트를 읽고 판단하여 표현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책이죠.
읽기, 말하기 쓰기의 통합으로서의 철학하기는 크게 세 가지 흐름으로 계열성을 갖게 됩니다. 첫째는 텍스트를 꼼꼼히 봐야 합니다. 텍스트의 핵심을 어떻게 파악하는가는 모든 사유의 출발이기에 꼼꼼한 텍스트 읽기를 제안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질문이나 토론을 통한 사고의 과정의 진전이다. 의심과 질문으로 사고의 진전과 도약을 이끄는 것입니다. 철학자들은 앞선 대사상가들의 견해를 의심하고 그 빈틈을 찾아내 비판함으로써 자신의 사상을 세웁니다. 그렇게 해서 이전의 철학이 사고하지 못한 것을 찾아내고, 이전의 철학이 닫아버린 사고의 공간을 열어젖힙니다. 의심과 질문은 눈에 안 보이는 것을 생각게 하고 새로운 것을 사고하게 하는 실천입니다. 마지막은 그 결과를 일반적인 주제로 확대하여 글로 쓰는 것입니다. 세 번째 쓰기의 영역은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글쓰기’ 방법론에서 다루어지곤 하지만, 교양으로서 철학 영역에서는 처음 시도하는 구성이라고 생각됩니다. 가능할까요?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에요.
 

출판기획자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죠. 앞으로 이 일을 직업으로 선택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준비해야하는지? 선배로서 해주실 이야기가 있다고 싶은데요?


 

= 저도 가끔 후배들이 만든 자리에서 강의를 해요. 한겨레문화센터 출판편집자 과정 같은 코스에서요. 그냥 특강 형식이지만요. 그리고 저 역시 공부해야 해요. 인문학이 저의 전문분야이니 그쪽 동네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등장하고 사멸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하니까요. 강사와 강의주제가 평소 궁금해 하던 주제이면 신청해서 들어요. 출판편집자를 직업으로 염두에 두고 계신 분들은 SBI(서울북인스티튜드), 한겨레문화센터가 있어요. SBI는 단행본 출판사가 중심이 된 단체인 한국출판인회의가 만든 편집자양성코스입니다. 훌륭한 편집자들이나 대표들이 강의하고 있어서 출판의 내용과 현장의 경험을 잘 들을 수 있을 겁니다.



책과 그 누구보다 가까이 하시는 선생님께 드리고 싶었던 질문인데요. 선생님께서 그간 읽었던 책들 가운데서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은 무엇인요?



= 니체의 책을 즐겨 읽어요. 재수 없죠! 그래도 할 수 없어요. 가장 인상 깊게 읽었으니까요. 정말 재밌거든요. 니체의 생각들을 접하면서 제가 엄청나게 변했어요. 하나만 소개하죠. 니체의 작품 중에 이런 말이 나와요. 강한 자와 약한 자에 대해서요. 니체는 강한 자를 “자신을 긍정하는 자”라 했구요. 약한 자는 “타인을 부정하는 자”라 정의했죠. 이 말을 접하는 순간 저는 저 자신을 긍정하면 할수록 강한 자가 될 수 있는 거가 되는 거잖아요. 사실 강한 거시기 컴플렉스가 있거든요. 우리 관념에서 강한 자는 ‘카리스마’잖아요. 그리고 항상 다른 사람을 끌어들여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하게 만들잖아요. 이때 니체의 말은 전복(뒤짚기)였어요. 《도덕의 계보》 《선악을 넘어서》 그리고 《천개의 눈, 천개의 길》(고병권 지음) 등이 인상 깊은 책이었습니다.



긴 시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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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완규 선생님은 ?

 

1. 좋아하는 것

과자 먹으면서 TV 보는 것.
과자 먹으며 TV로 축구 경기를 보는 것
과자 먹으며 TV로 보던 축구 경기를 직접 보는 것
뭐 이런 것을 좋아해요.


2. 하고 싶은 것

우리나라에서 능력 있는 인문학 전문 편집자가 되는 것
능력 있는 인문학 전문 편집자가 되어 유럽으로 진출하는 것


3. 해야 하는 것

공부해야 더 나은 편집자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닫는 것
열심히 공부해서 새로운 무기를 하나 더 만드는 것
그래서 책을 더 풍부하게 만드는 것


4. 지금 하는 것

휴머니스트(출판사) (인문)편집주간
주 1회 축구선수-되기
유럽에서 능력 있는 인문학 전문 편집가가 되어 세계적인 편집자가 되는 것


5. 그 동안 기획한 책들

《서양과 동양이 127동안 이메일을 주고받다》(김용석 이승환 대담, 2001)
《노마디즘》(이진경, 2002)
《오만과 편견》(임지현 사카이 나오키 대담, 2003)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고미숙, 2003)
《시간과 공간의 문화사》(스티븐 컨, 2004)
《미학 오디세이 1, 2 , 3》(진중권, 2003-4)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진중권, 2005)
《대담-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도정일 최재천 대담, 2005)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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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후기 / 

 

아마도 앞으로, 당분간은 그가 꿈꾸는 책이 그리워질 것이다. 좋은 책을 기획하느라 바쁘신 선완규 선생님의 시간을 빼앗은 죄가 내 쪽에 분명히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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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테마소설 세상 속으로 5회 나는 광대다 장정희 땡~ 산조 가락이 자진모리의 클라이맥스 지점을 향해 막 솟구쳐 오르던 순간이었다. 힘차게 튀어 올랐던 태섭의 손가락이 땡, 소리와 함께 대금 위에서 조용히 잦아들었다. 숨죽일 듯한 적막이 찾아왔다. 적막은 짧았지만 숨결은 뜨거웠다. 태섭은 입술에 대고 있던 대금을 내려놓고 심사관들을 향해 앉은 채로 깊이 허리를 숙였다. 그러고는 방석 옆에 놓여 있던 정악대금을 함께 챙겨든 후 뒷걸음질 치듯 천천히 수험실을 빠져나왔다. 문을 열자 진행요원이 문틈에 귀를 대고 있다가 화들짝 뒤로 물러났다. 다음 순번의 수험생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들어갔다. 태섭은 대기실 의자에 나란히 앉아 순서를 기다리는 창백한 얼굴들을 힐끗거리며 복도로 나왔다. 복도는 바닥에 주저앉아 삑삑삑 불어대고 있는 대기자들의 연주 소리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건물 밖으로 빠져나오자 벌겋게 달아올라 있던 태섭의 얼굴에 찬물을 끼얹듯 바람이 달려들었다. 태섭은 곧바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목 언저리가 뻐근했다. 대금 연주자들에게 목 디스크는 숙명이라지 않는가. 태섭이 고개를 좌우로 젖히자 뼈마디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다. 태섭은 담배를 힘껏 빨아들였다. 비로소 딱딱하게 굳어있던 입술의 감각이 살아남을 느꼈다. 태섭은 습관처럼 입술의 아랫부분을 문질렀다. 취구가 닿는 아랫입술 언저리는 피딱지가 떨어질 날이 없어 거무스름하게 변색되어 버렸다. 누구든 그 부위에 거무죽죽한 흔적을 갖고 있다면 그는 대금 연주자일 것이다. 태섭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드디어 끝났어! 해가 기울면서 날은 더욱 쌀쌀해졌지만 아직 눈이 내릴 기색은 없었다. 이제 겨울은 곧 시작될 것이다. 수시 모집은 대학 입시의 첫머리일 뿐 영광과 회한의 경계를 가를 때까지 입시생들의 겨울은 계속될 것이다. 태섭은 가방에 넣어두었던 휴대폰을 꺼냈다. 전원을 켜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문자와 콜이 쏟아졌다. ‘물론 시험은 잘 봤겠지? 네가 떨어지면 붙을 놈 누가 있냐?’ ‘빨랑 내려오기나 해. 얼굴 잊어버리겠다.’ ‘오늘 수시 봤던 놈들까지 다 올 거야.’ ‘끝나면 곧장 전화해. 안 하면 죽어!’ 태섭은 휴대폰을 그대로 가방에 던져 넣고는 정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걷기조차 힘이 들었다. 캠퍼스를 가로지르는 동안, 남녀 대학생들이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며 태섭의 곁을 스쳐갔다. 이곳은 2년 전 캠퍼스 투어로 와 본 이후 두 번째다. 캠퍼스 투어는 태섭의 열망에 더욱 불을 지펴 놓았다. 와 봐야 새로울 것도 없다는 듯 나른한 표정으로 걷고 있는 대학생들이 부러웠다. 목표물을 손안에 얻은 사람만의 여유랄까. 나도 저들처럼 심상한 표정으로 이 캠퍼스를 활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연이어 두 번이나 전화가 왔다. 엄마다. 일이 손에 잡히지

  • 웹관리자
  • 2012-10-27
고양이의 안부를 묻다

청소년 테마소설 세상 속으로 _ 제4회 고양이의 안부를 묻다 이성아 소녀는 고양이를 안고 있었다. 물방울이 맺힌 소녀의 머리카락에서는 샴푸 냄새가 은은하게 풍겼고, 고양이도 막 목욕을 마친 듯 털이 보송보송했다. 보송보송한 털의 유혹이 너무나 강렬해 나도 모르게 쓰다듬을 뻔했다. 소녀는 나와 또래처럼 보였다. 그러나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는 이국의 사람들처럼 어색했다. 아파트 하수구 관이 막혔는데, 지금은 밤중이라 공사를 할 수 없으니 아침에 공사할 때까지 물을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 지구 반대편의 언어라도 되는 듯 나를 바라보는 소녀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소녀는 나보다는 고양이와 더 잘 통하는 것 같았다. “고양이는 영물이야. 공연히 곁을 주면 나중에 해꼬지나 당한다니까.” 아줌마가 내게 하던 말이다. 고양이는 소녀의 품에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고양이에게조차 수모를 당한 듯 명치끝이 짜르르 아려왔다. 나에게도 고양이가 있었다. 높은 담을 사뿐히 뛰어올라 얼음사니처럼 우아하게 걸어 다니던 고양이에게 나는 다미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음식물 찌꺼기를 모아두었다가 다미에게 주면 아줌마는 소리를 꽥 질렀다. “고양이 밥 주지 말란께. 야가 뭔 똥고집이래.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을까이.” 식당 알바는 힘들었다. 처음엔 청소하고 설거지나 하면 된다고 하더니 술손님들이 많으면 서빙에서부터 고기 잘라 주는 일까지 이것저것 가릴 여유가 없었다. 취한 남자들이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아래위를 훑어보거나 손이며 엉덩이를 쓰다듬으려고 할 땐 온 몸의 솜털이 다 곤두서고 구역질이 나오려고 했다. 그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 건 기차 화통을 삶아먹은 것 같은 아줌마의 목청이었다. 내 평생 목소리가 그렇게 큰 사람은 처음이었다. 고작 17년밖에 안 산 내가 평생이란 말을 쓰긴 좀 그렇지만, 아마 평생을 곱절로 살아도 그렇게 목청이 큰 사람은 만날 것 같지 않았다. 별 것 아닌 일에도 아줌마는 고함을 질러댔다. 간혹 뭔가 날아가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깨지는 건 하나도 없었다. 양은냄비나 플라스틱 바가지, 물통이나 양푼, 철판 뒤집개나 슬리퍼 같은 것들이었다. 나는 살얼음판 위를 걸어 다니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일했다. 수돗물을 세게 틀면 안 되고, 설거지할 때 개수대 밖으로 물이 튀면 미끄러지므로 안 되고, 식탁은 젖은 행주로 닦은 다음 반드시 마른 행주로 닦아야 하고, 기름 묻은 그릇은 오래 두면 안 되고, 안 되는 것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걸을 때 엉덩이를 흔들어도, 무표정해도, 큰 소리로 웃어도 아줌마는 고함을 질렀다. 내가 아무리 조심해도 화낼 일은 얼마든지 있었다. 많이 나온 전기세와 갑자기 오른 임대료, 갑자기 쏟아지는 비, 햇빛이 들이치는 창, 똥 마려운 것처럼 끙끙거리는 개새끼, 시끄러운 오토바이소리, 그리고 뭘 해도 마음에 안 드는 생선 구잇집 아줌마. 소정은 아줌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 웹관리자
  • 2012-10-16
단 한 번의 기회

청소년 테마소설 성취와 좌절_제4회 단 한 번의 기회 이명랑 자식을 바꿀 수 있을까? 나라면…… 절대로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아빠, 엄마라면? 나는 빠르게 주위를 훑어본다. 운동장을 둥글게 에워싼 광장식 계단을 꽉 메운 사람들. 대부분 오늘 테스트에 임하는 아이를 자녀로 둔 부모들이다. 열심히 자녀들을 응원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나는 아빠, 엄마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고 생각한 순간, 차가운 은빛으로 빛나는 안경이 눈에 들어온다. 아빠다. 아빠 옆으로 엄마와 할아버지, 할머니도 앉아 계신다. 컥, 숨이 막힌다. 우리 가족이 앉아 있는 곳을 확인하자마자 누군가 목을 조르는 것처럼 숨이 막혀온다. 흰 현수막 위에 금빛으로 화려하게 새겨진 글자들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VIP. 금빛으로 빛나는 VIP라는 글자들 옆으로 봉황 두 마리가 이제 곧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듯이 날개를 펼치고 있다. 그 활짝 편 날개 옆에 우리 가족은 앉아 있다. 비좁은 자리에 앉아 서로 어깨를 부대끼며 자식들을 응원하다 말고 어른들은 가끔씩 VIP석을 곁눈질한다. 대놓고 쳐다보지는 못하지만 이따금 VIP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훔쳐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부러움과 질투심이 묘하게 뒤섞여 있다. 저기 앉아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지? 얼마나 돈을 많이 벌어야 VIP석에 앉을 수 있는 거야? 아들아! 봤지? 네 눈에도 저기 VIP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너만이라도 제발 저 자리에 앉아다오! 사람들이 던지는 수많은 물음표들과 느낌표들을 아무렇지 않게 상대하며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그 옆에서 아빠, 엄마보다 더 태연하게 발밑의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바로 내 가족이다. 어른이 되면 나도 저 자리에 앉을 수 있을까? 앞으로도 나는 우리 가족의 일원일 수 있을까? “자! 전원 출발선 앞으로!” 사회자가 붉은 깃발을 번쩍 들어올린다. 와─ 하는 함성과 함께 수많은 아이들이 출발선 앞으로 달려간다. 나도 질세라 뛰어간다. 시작이 절반이다, 라고 아빠는 늘 말한다. 맞는 말이다. 시작에서부터 뒤처지면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다. 나는 내 앞을 가로막고 달리는 아이들 두, 세 명을 어깨로 밀치며 앞으로 뛰어간다. 누군가 내가 했던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내 어깨를 밀치고는 빠르게 내 앞을 스치고 달려 나간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키가 큰 녀석이다. 누가 너 따위에게 질 줄 알고! 나는 어금니를 악문다. 간신히 내 어깨를 치고 달려간 녀석보다 한 발 앞서 출발선 앞에 도착했다. 다행히 정중앙이다. “모두 집중! 첫 번째 미션이다! 참가 인원은 모두 100명, 카트는 50개! 먼저 뛰어가 카트를 잡는 사람만이 장을 볼 수 있다!” 순식간에 사회자의 설명이 끝났다. 사회자는 번쩍 들어 올렸던 붉은 깃발을 밑으로 내리고 출발선 앞에 서 있는 아

  • 웹관리자
  • 2012-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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