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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山神)을 만나다

  • 작성일 2006-03-16
  • 조회수 592




                     


흥국 씨가 산신을 만난 것은 어느 건물 옥상에서였다. 산신은 이 만남을 두고서 운명이라고 했지만 흥국 씨에게는 성가신 우연일 뿐이었다.





 ***





 그러니까 흥국 씨가 일 년 동안 나가던 사무실 간판이 떨어지던 날의 일이었다. 반드시 이런 날이 올 것이라 믿고 있던 흥국 씨였지만, 막상 간판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자니 ‘건태산(乾泰山) 지킴이 운동 본부’라는 글자가 그렇게 처량해 보일 수가 없었다.

 “그동안 다들 수고 많으셨어요.”

 본부장이 사무실 식구들에게 애써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마지막까지 건태산 지킴이 운동 본부를 지킨 건 흥국 씨와 본부장을 포함해서 모두 네 사람뿐이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법원이 건태산 사업 재개 판결을 내린 날부터 사무실에 나오지 않았다.

 “간단하게 식사라도 같이 하죠.”

 본부장은 그래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흥국 씨를 포함하여 의기소침해 있는 사무실 식구들은 본부장의 제안에 찬성했고, 가벼운 식사라는 말과 달리 자리는 결국 새벽까지 이어지는 술자리가 되었다.
 처음에는 건태산 일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이야기만 오갔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구성준 연구소의 수소 저장 장치 발명이 역시 제일 만만한 이야깃거리였다.

 “그러니까 맹물로 자동차를 가게 하는 시대를 열었다는 거죠.”

 “수소 저장 장치 발명을 인간이 대기권을 돌파했던 것과 비교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김 씨의 말에 본부장이 추임새를 넣었다.

 “예, 바로 그거죠. 이제 석유의 시대는 끝날걸요?”

 계속해서 김 씨는 장밋빛 미래에 대한 전망을 내 놓았다. 중동의 오일파워가 당연히 약해질 것이라는 전망부터 시작해서 미국의 패권주의를 종식시킬 수 있으리라는 예측도 이어졌다. 그런데 술잔이 몇 번 오가자 윤 씨가 입을 열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칫. 맹물로 가는 자동차? 친환경 에너지? 개소리야, 개소리.”

 항상 앞장서서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던 윤 씨였다. 건태산 지킴이 본부 일이 끝나고 보니 그 열성이 모두 불만으로 폭발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미국하고 일본이 수소 에너지에 투자한 게 언제부터인지 알아? 60년대야, 60년대. 지난 세기부터라고. 그렇게 투자해서 성과가 있었나? 천만의 말씀이지. 그런데 투자도 한 번 제대로 안 한 우리나라에서 불쑥 수소 에너지 저장장치를 발명했다? 그 말을 믿는단 말이야?”

 “에이, 그건 미국이 수소 에너지에 대한 막대한 이권을 빼앗길까봐 하는 소리잖아.”

 김 씨가 윤 씨의 어깨를 장난스럽게 치면서 말했다.

 “얼마 전에도 비슷한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지.”

 윤 씨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윤 씨, 왜 그래? 이 어두운 시절에 한 줄기 희망이라도 품을 수 있게 좀 해 줘.”

 “글쎄. 한 줄기 희망보다는 한 줄기 세포가 더 좋지 않겠어?”

 윤 씨의 냉소적인 농담에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웃음은 곧 침묵을 불러왔다. 마음껏 술자리를 즐길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던 것이다.
 미소를 머금고 앉아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본부장이 말을 꺼낸 것은 이때였다.

 “이제 다들 어떻게 하실 건가요?”

 시민운동에 평생을 바친 만큼 이런 일도 한 두 번이 아니게 겪었을 터였다. 본부장은 일상사를 말하는 투로 담담하게 세 사람에게 물었다.

 “저야 다시 학원 강사로 돌아가야죠.”

 김 씨였다. 항상 농담으로 사무실 분위기를 밝게 했던 김 씨는 그 입담을 다시 학원생들 사기치는 데 쓰겠다고 했다. 역시나 마지막까지 농담이었다.

 “먹고는 살아야 할 거 아닙니까? 아무 일이나 해야죠. 노가다 판도 좋고.”

 윤 씨는 이렇게 말했고, 본부장은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냈다.

 “율산 미군기지 이전 운동 본부에요. 생각 있으면 전화 줘요.”

 “율산이라. 뉴스에서 봤어요. 거기도 결국 이 꼴 나겠죠?”

 윤 씨가 명함을 집어 들어서 눈앞에서 이리 저리 돌려보며 물었다.

 “글쎄요. 싸움에서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게 세상 이치죠. 하지만 진다고 해서 정말로 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싸움은 언제나 싸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으니까요.”

 본부장의 목소리는 작고 낮았지만 언제나 설득력이 있었다. 잔뜩 골이 난 윤 씨도 더 이상 툴툴거리지 않고 주머니에 명함을 집어넣었다.

 “흥국 씨는?”

 본부장이 물었다.

 “전 좀 쉴까 해요. 지쳤거든요. 본부장님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흥국 씨가 되물었다. 본부장은 의외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저는 율산으로 가려고요.”

 안경을 고쳐 쓰면서 본부장이 말했다.
 이제 사십 줄이 넘은 본부장은 큰 아들이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했다고 했다. 어느 정도 나이가 있어 보이는 얼굴이긴 하지만 아이가 있을 것처럼 보이지 않아서 아들 이야기를 들으면 다들 놀라곤 한다.
 운동 본부에 있는 모든 사람 가족사를 알 수는 없다. 그래도 일 년이나 한 사무실에서 부대끼다 보면 어느 정도의 정보는 알게 되기 마련이다. 김 씨는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청년이지만 아이가 둘이나 있는 가장이고, 윤 씨는 김 씨보다 두어 살 위이지만 결혼은커녕 제대로 된 연애도 한 번 못해본 형편이라는 것도 그런 식으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솔직히 이런 식으로 끝날 줄은 몰랐어.”

 윤 씨가 푸념조로 말했다.

 “우리가 준비한 환경 평가 자료를 법원에서 안 받아준 게 컸지.”

 김 씨가 윤 씨의 말을 받았다.

 “어차피 지는 싸움이었어. 명탄 건설이고, 정부고, 법원이고 다 한통속이었던 거야. 우리만 모르고 있었지.”

 윤 씨의 목소리가 점점 격앙되어가고 있었다. 흥국 씨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항상 선두에 나서는 윤 씨는 종종 이런 식으로 감정이 고조되다가 사고를 치기도 했던 것이다.

 “생각해 봐. 건태산 개발 예산이 2조 7천억이야, 2조 7천억. 말이 2조 7천억이지 그게 얼마나 큰돈인지 상상이나 가? 억이 만 개야, 일만 개. 동그라미가 몇 개가 있는지 세지도 못하겠네. 그렇게 큰돈이 걸렸으니 환경이고 나발이고 누가 신경이나 쓰겠냐고.”

 “뜻있는 싸움이었어요.”

 본부장이 차분한 목소리로 윤 씨를 달랬다. 하지만 윤 씨는 술기운 때문인지 본부장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말을 이었다.

 “신문 기사 못 봤어? 건태산 건설이 가지고 올 경제 효과만 이야기했잖아. 일자리가 생기고, 지역 경제가 살아난다고만 떠들었지 아무도 건태산이 망가지면 어떻게 되는지 말하지 않았어. 산이 죽으면 사람도 죽는다는, 너무나 당연한 걸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그래서 우리가 말했던 거잖아. 건태산이 죽으면 사람도 죽는다고.”

 “그걸로 충분하지 않았던 거야. 그러니까 재판에서 졌던 거지. 누구 하나 죽었어야 해. 그래야 정신들을 차리지. 암, 그렇고 말고. 누구 하나 확 뒤졌어야, 그랬어야 눈 하나라도 깜짝 했을 거란 말이야.”

 “말이 지나쳐요.”

 본부장이 윤 씨의 폭언에 제동을 걸었다.

 “지나치긴 뭐가 지나쳐요? 시위 나갔을 때 내가 불이라도 확 싸질러 버렸어야 했어! 내가 죽든지, 아니면 걸리는 놈 하나 죽든지 말야! 그랬어야 했다고!”

 “진정해요, 진정.”

 본부장이 다시 한 번 윤 씨를 말렸다. 하지만 윤 씨는 막무가내였다. 탁자를 한 번 내려치더니 자기 하고 싶은 말만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었다.
 윤 씨도 김 씨도 다 건태산 자락에서 살아가던 사람이었다. 보상을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건태산을 떠났지만 몇 사람은 남아 건태산 지킴이 운동본부에 가담했다. 그리고 건태산 지킴이 운동본부 간판이 떨어지는 날까지 남은 건 이 두 사람뿐이다. 그러니 윤 씨와 김 씨가 느끼고 있을 상실감은 누구보다도 클 것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농담 잘 하고 분위기 잘 만드는 김 씨마저 윤 씨에 동조하는 눈치였다.

 “윤 씨!”

 계속해서 독설을 쏟아붓는 윤 씨를 향해 본부장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유리잔을 깨는 것 같은 고음에 윤 씨가 잠시 주춤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머리를 술상에 내리 박는다. 쿵, 하는 둔탁한 소리가 술집을 울렸다.

 “날렸어... 다 날렸어... 다 날려 버렸다고...”

 윤 씨는 흐느끼고 있었다. 김 씨는 아무 말도 없이 자기 앞에 놓인 빈 잔을 스스로 채웠다. 보고 있던 본부장은 답답한지 담배를 한 대 물었다.
 흥국 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가슴이 답답했던 것이다.
 밤하늘에는 별이 가득했다. 아직까지 강원도에는 별이 많다. 하지만 산이 병들고, 강이 죽고, 바다가 썩는다면 저 별도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이곳의 밤하늘도 서울의 밤하늘과 같아질 것이다. 
 지상이 밝을수록 하늘은 어두워진다. 도시에서 별을 보기 힘든 것은 도시가 너무 밝기 때문이다. 어쩌면 도시는 산과, 강과, 바다를 잡아먹고서 그렇게 빛나는지도 모른다. 
 흥국 씨는 근처 건물들을 살펴보았다. 조금이라도 높은 곳에서 하늘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경비원이 있거나 너무 좋은 건물은 어렵겠고, 대충 허름한 5층 건물 정도라면 옥상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흥국 씨는 눈에 들어오는 건물로 들어가 5층까지 올라갔다. 옥상으로 통하는 문은 열려 있었다.
 옥상에 오른 흥국 씨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술기운 때문이었을까? 아주 잠깐이었지만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흥국 씨는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 높이라면 공포감은 들지 몰라도 쉽게 숨이 끊어지지는 않는다. 어지간하면 다리가 부러지는 정도로 끝날 것이고, 운이 없다면 허리를 다쳐 평생 장애를 안고 살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머리부터 떨어져서 단번에 죽을 수도 있겠지만,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머리를 보호하기 때문에 쉬이 그리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포기하려는 건가?”

 옥상 구석에서 들려온 소리에 흥국 씨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 인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흥국 씨는 우선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옥상 구석에 기골이 장대한 노인이 서 있었다. 눈부시게 흰 두루마기를 입은 노인이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백발에 길고 탐스러운 흰 수염이 눈에 들어왔다. 언뜻 정신이 나갔거나, 가까이 해서 좋을 것이 없는 괴짜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 한복판에 저런 모양새로 다니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이제 그만두려는 건지 물었네.”

 노인이 성큼성큼 흥국 씨에게 다가오면서 말했다. 위압감이 느껴졌다. 흥국 씨는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뭘요?”

 노인의 질문에 흥국 씨는 속이 뜨끔했다. 속내를 다 드러내 보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난생 처음 보는 노인의 대충 넘겨짚는 소리에 솔직한 대답을 할 이유는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건가? 뛰어내리기라도 할 참인가?”

 노인이 다시 묻는다. 흥국 씨는 슬쩍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조금 전에 아주 잠시나마 뛰어내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두려웠다.

 “아뇨.”

 흥국 씨가 대답하자 노인은 헛기침을 한 번 했다.

 “죽을 마음은 없다는 게로군. 그럼 일은 어떻게 할 건가? 살아 있으면 일은 마무리 해야지.”

 “저, 그것보다 할아버지는 누구세요? 누구신데 저한테 자꾸 이래라 저래라 하시는 거죠?”

 난생 처음 보는 노인에게 계속 휘둘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 흥국 씨는 슬쩍 따지는 투로 이렇게 물었다. 위압감 때문에 제대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는 못했지만 의도만큼은 충분히 전달되었으리라 싶었다.

 “이런. 내가 실례를 범했군. 자네가 누군지는 알고 있으면서 내 소개를 하지 않았으니 말이야. 너무 오랜만에 속세에 내려와서 범한 실수이니 눈감아 주시게. 허허허.”

 속세? 정말이지 제정신이라고 보기 어려운 투였다. 말투에 당황했기 때문이었을까. 흥국 씨는 막상 자신을 알고 있다는 말에는 제대로 반응을 하지 못했다.

 “나는 건태산 산신일세.”

 이 말을 듣고 나서야 흥국 씨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상대방이 정말로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흥국 씨는 상대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흥국 씨는 빨리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급작스러운 상황인지라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아, 그러세요?”

 흥국 씨는 대충 이렇게 말해 놓고 생각할 시간을 벌었다. 물론 시간을 버는 것이 능사는 아니지만  달리 생각나는 대책이 없었다.
 우선 상대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했다. 그리고 원하는 게 무엇인지도 알아야 했다. 하지만 어느 쪽도 도무지 짐작이 가지를 않았다. 몇 가지 가설이 떠오르기는 했지만 모두 가능성이 희박했다.
 이 건물 옥상에 흥국 씨가 올라온 것은 어디까지나 우연에 의한 일이었다. 자신을 아는 상대가 이 옥상에서 단 둘이 만나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으려면 이 동네 모든 건물 옥상 위에 사람을 배치해 두어야 하고, 옥상에 오르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서 골목마다 사람을 배치해야 한다. 그리고 사실 단 둘이 만나는 것이 목적이라면 옥상보다는 화장실이 나을 것이다.
 ‘혹시 내 뒤를 밟다가 따라 올라온 건 아닐까?’
 절대 그럴 리는 없었다. 아무리 방심했다고 해도 그렇게 쉽게 미행을 당할 만큼 감각이 무뎌져 있을 리는 없었다. 게다가 흥국 씨가 잠시 아래를 내려다보는 사이에 기척도 없이 흥국 씨 등 뒤를 지나 옥상 구석까지 갈 수 있을 리도 없었다.

 “보통 내 신분을 밝히면 다들 놀라던데, 자네는 놀라지 않는군.”

 노인이 턱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흥국 씨가 ‘어떤 정신 나간 노인이 옥상에 있다가 우연히 건태산 이야기를 꺼낸 것이라는 해석이 가장 그럴싸하다’고 생각하는 참이었다.

 “놀랄 게 뭐 있겠어요.”

 “허허. 이것 참 반가운 소리로군. 자네는 나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단 말이지?”

 “물론이죠. 저는 할아버지께서 약주가 과하셨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어요.”

 흥국 씨는 곁눈질로 내려가는 문을 확인하면서 말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다음 순간 검은 양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사내가 우르르 쏟아져 나올 수도 있었다.

 “끄응.”

 노인은 속이 불편한지 기묘한 소리를 한 번 내더니 흥국 씨를 노려보았다. 박력이 있는 노인네였다. 흥국 씨는 노인의 눈빛만으로 주눅이 들었다.

 “보통 산신은 속세의 일에는 관여하지 않아. 하지만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은 자네를 위해서
이고, 또한 속세의 인간을 위해서라네.”

 흥국 씨가 겁을 먹었다고 생각했는지 노인은 동네 할아버지 같은 친근한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물론 요즘 세상에 산신이 환영받기 힘들 줄은 예상하고 있었네. 산신이 환영받는 세상이라면 산을 깎아서 공놀이장을 만들고, 산에 구멍을 뚫어서 길을 내지는 않을 테니 말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곳에 온 건 말이지...”

 노인은 여기서 잠시 말을 끊었다. 뭔가 생각을 하고 있는 눈치였다.

 “그러니까 할아버지 말씀은 저를 돕고, 또 속세의 인간을 위해서라는 거죠?”

 흥국 씨가 맞장구를 쳐주자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걸 납득시키기란 힘이 드는 일이야. 평생 우물 안에서 살고 있던 개구리에게 바깥세상을 무슨 수로 설명한단 말인가?”

 노인은 이렇게 말하곤 한탄스럽다는 듯 먼 하늘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음. 그럼 이렇게 하죠. 할아버지께서는 설명을 생각하시고, 저는 그 사이에 동료들하고 술을 마저 마실게요. 그럼 좋은 밤 보내세요.”

 흥국 씨는 더 이상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분명 우연일 뿐이었다. 우연히 올라간 옥상에 우연히 이 노인이 있었고, 그 노인이 우연히 건태산 이야기를 한 것이다. 물론 매우 희박한 확률이긴 하지만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일어날 확률이 희박한 일이라고 아주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로또 복권에 당첨될 확률은 814만5천6십 분의 1이지만, 그래도 매주 당첨자가 나오지 않는가? 다만 내가 당첨될 확률이 0에 가까울 뿐이다.
 막 이런 생각을 하면서 몸을 돌리는데 노인이 흥국 씨의 어깨를 꽉 잡았다. 노인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힘이었다. 흥국 씨는 고통 때문에 인상을 찌푸리면서 한 쪽 무릎을 꿇고 말았다. 태어나서 이런 힘을 내는 사람을 본 기억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였다.

 “인연이라는 말을 아는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가? 자네는 내가 이렇게 자네와 만나게 된 걸 도대체 뭐라고 생각하는가?”

 “우, 우연이라고 생각해요.”

 흥국 씨는 1초도 생각하지 않고 진심을 털어놓았다. 분명 고통은 사람을 진실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닐세. 자네와 내가 이렇게 만난 것은 운명이야.”

 “저, 하, 할아버지, 어, 어깨 좀...”

 “아직도 내 말을 못 믿겠는가?”

 “미, 믿어요, 믿어요, 산신님.”

 흥국 씨는 어깨뼈가 부서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꼈고, 그래서 이번에는 고통이 사람을 거짓되게 만드는 힘도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천만다행으로 노인은 흥국 씨의 어깨뼈를 부수지는 않았다. 대신 어깨를 쥐었던 팔을 풀어 흥국 씨의 목을 감고, 다른 손으로는 허리를 감았다. 흥국 씨는 벗어나기 위해서 몸부림을 쳐보았지만 노인의 팔뚝은 마치 강철처럼 단단했다.

 “그래.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백 마디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우물 밖을 보여 줘야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지.”

 만약 노인이 지금 이 자세로 팔에 힘을 준다면 목과 허리가 동시에 부러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흥국 씨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엄습해 오는 것을 느꼈다.

 “꽉 잡게.”

 노인이 말했지만 흥국 씨는 필사적으로 노인의 팔을 뜯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다만 노인의 팔뚝은 요지부동이었기 때문에 꽉 잡으라는 노인의 말을 충실하게 따르는 것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다음 순간 흥국 씨는 눈앞이 아득해지면서 잠시 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밤하늘에 떠 있어야 할 별들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정신을 잃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목에 있는 경동맥을 졸리게 되면 뇌로 가야 할 피가 제대로 흐르지 않아서 기절을 하게 되는데, 그때 보게 되는 광경과 매우 비슷했던 것이다.
 하지만 노인이 목과 허리를 잡고 있던 팔을 풀자 정신을 잃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기절 뒤에 정신이 돌아오면 현기증이 일기 마련이다. 하지만 흥국 씨는 멀쩡했다.

 “여기가 어딘지 알겠는가?”

 노인이 등 뒤에서 흥국 씨에게 물었다. 물론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흥국 씨는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흥국 씨는 조금 전까지 술을 마시고 있던 술집 바로 앞에 노인과 함께 서 있었다.

 “어...”

 흥국 씨는 입을 벌리고 멍하니 소리만 흘렸다. 침이라도 흐를 것 같은 표정이었다. 정말로 침을 흘린다면 주위 사람들이 모두 피해가겠지만 말이다.

 “어떤가? 우물 밖이?”

 흥국 씨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마치 칭찬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천진한 표정이었다. 흥국 씨는 그 표정 속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 이제야 알겠어.”

 흥국 씨는 노인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이건 내 상상의 산물이야.”

 노인은 별 표정 변화 없이 흥국 씨를 바라보았다. 흥국 씨는 마치 물리학도가 수학공식을 살펴보는 것 같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건태산 일 때문이야. 막상 공사 재개 판결이 나게 되니까 죄책감을 느끼는 거야. 그렇지. 죄책감 때문에 내가 이런 환상을 보고 있는 거야. 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다 설명할 수 있어. 그렇기 때문에 노인이 내가 우연히 올라간 옥상에 있었던 거고, 내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는 거였어.”

 흥국 씨는 이제야 수긍이 간다는 듯 고개를 깊숙이 끄덕였다.

 “그래, 맞아. 결국 내가 상상해낸 거지. 이건 내가 미쳐서 그런 게 아냐. 정신병이나 그런 게 아니고. 술도 좀 먹었겠다, 기분도 울적하겠다, 해서 이렇게 된 거야. 충분히 그러고도 남아. 그동안 스트레스가 쌓였잖아? 그뿐이야. 굳이 정신과를 찾아가거나 고민하지 않아도 될 거야. 괜찮아, 다 괜찮아.”

 노인은 이렇게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흥국 씨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다가 결국  양손을 들어 흥국 씨의 볼을 꼬집었다.

 “으악!”

 노인은 별 힘도 주지 않고 꼬집었지만 흥국 씨는 고통으로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지 말고, 날 좀 자네 동료들에게 데리고 가 주게.”

 볼을 비비고 있는 흥국 씨에게 노인은 차분한 투로 말했다. 흥국 씨는 결국 노인을 술자리로 안내할 수밖에 없었다.
 술자리에 흥국 씨가 노인과 함께 나타나자 술을 마시고 있던 세 사람은 일제히 흥국 씨와 노인에게 주목했다. 그도 그럴 것이 흥국 씨가 누군가와 함께 돌아온 것도 이상한 일이지만, 노인의 모습이 워낙 평범하지 않았던 것이다.

 “흥국 씨, 난 흥국 씨가 화장실 가서 빠진 줄 알았다.”

 김 씨가 웃는 얼굴로 농담을 던졌다. 하지만 곧 흥국 씨의 어두운 표정을 알아차리고 표정이 굳었다.

 “흥국 씨. 저 분, 어떻게 되시지?”

 본부장이 물었다. 흥국 씨는 대답을 하려고 했지만 마땅히 소개할 말이 떠오르질 않았다. 누구인지 알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나에게 고통을 줄 수 있는 능력이 있긴 하지만 사실은 내가 상상해낸 죄책감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이 말이 흥국 씨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답이었다.

 “흐음. 나보고 직접 소개를 하라는 건가?”

 노인이 흥국 씨에게 물었다. 난감했다.

 “옥상에서 만난 분이세요.”

 흥국 씨는 결국 이렇게 대답했다. 다른 말은 도무지 떠오르지를 않았다. 다음 순간 노인은 흥국 씨를 노려보았고, 흥국 씨는 이번엔 어떤 고통이 다가올지 몰라서 얼른 몸을 웅크렸다.
 “나는 건태산 산신이오.”

 다행인지 불행인지 노인은 더 이상 흥국 씨를 괴롭히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소개를 했다. 흥국 씨는 세 사람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역시나 모두들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일단 앉으세요, 할아버지. 건태산에서 오셨나보죠?”

 본부장이 그나마 가장 나은 반응을 보였다. 아마 본부장은 노인을 건태산 근처에 살다가 미쳐버린 노인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 서 있겠소. 곧 가야 하니까.”

 흥국 씨는 이 말을 듣고 안도했다. 어찌되었건 이 노인은 갈 모양이었다. 비록 이 노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은 찾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계속 같이 있다가 봉변을 당하기보다는 그 편이 나았다.

 “그러지 말고 앉으세요. 여기 한 잔 받으시죠.”

 김 씨가 넉살 좋게 노인에게 술을 권했다.

 “산신은 이런 술을 마시지 않소.”

 노인은 단호했다.

 “소주가 어때서요?”

 “산신은 제 손으로 담근 술만 마신다오. 게다가 곧 자리를 떠야 하는데 술을 마실 수는 없소이다.”

 김 씨는 다시 한 번 술을 권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렇군요. 그런데 이 시간에 어딜 가시려고요?”

 본부장이 자상한 얼굴로 물었다.

 “건태산 산신이 왜 속세에 내려왔겠소? 심심해서 마실이라도 나온 것 같소이까?”

 노인의 말에 본부장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할아버지.”

 본부장은 잠시 망설였다. 아마 냉혹한 현실을 노인에게 말하는 게 꺼려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곧 결심했다는 듯 본부장은 말을 이어갔다.

 “저희도 건태산 개발을 막아 보려고 했어요. 하지만 할아버지, 법원은 공사 재개 판결을 내렸어요.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어요. 현실적으로 건태산 개발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요. 냉정하게 들리실 지도 모르지만, 할아버지도 건태산 개발을 막는 건 포기하시고요, 보상 쪽으로 알아보셔야 할 거에요. 할아버지 사는 곳을 말씀해 주세요. 제가 한 번 어떻게 조금이라도 더 보상을 받으실 수 있을지 알아봐 드릴게요.”

 본부장은 진심으로 노인을 걱정하고 있었다. 흥국 씨는 그런 본부장을 보면서 속으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이지 본부장은 자신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현실적으로 건태산에 구멍을 뚫는 걸 막을 수 없다?”

 노인이 물었다. 궁금해서 묻는 투가 아니었다. 꼭 비아냥거리는 것 같은 말투였다. 본부장은 그런 노인이 더욱 보기 안쓰러운 모양이었다.

 “이사 가시면 되잖아요, 이사. 보상금도 나오는데 왜 그러세요. 정 따져 묻고 싶으시면 시청이나 명탄 건설에 가실 일이지 왜 여기 와서...”

 술기운이 올랐는지 윤 씨가 시비조로 입을 열었지만 본부장이 손짓으로 말을 막았다. 윤 씨는 투덜거리면서 술잔을 비웠다.

 “이사라. 건태산 산신이 어디로 이사를 간단 말인가? 아니, 그보다 산신이 산이 죽는 꼴을 가만히 보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노인의 말에 본부장이 안타깝다는 듯 말을 이었다.

 “할아버지. 저희도 괴로워요. 터널 공사가 시작되면 건태산 생태계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는 거, 저희도 알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했던 것이고요.”

 “그래. 구멍을 뚫기 위해 폭탄을 꽝꽝 터트려, 산짐승들이 놀라 죽고 다치고 유산을 하게 되지. 지반은 흔들려서 물길이 다 뒤집어지고, 지기가 흐트러져서 주변의 땅이 다 주저앉을 판국이지.”

 노인은 태평스럽게도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윤 씨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건태산 개발에 들어가는 돈이 얼만 줄 아세요? 2조 7천억이에요, 2조 7천억. 어차피 우리가 막으려고 했던 것부터가 무리였어요. 우리 예산? 다 합쳐서 이천만 원이나 될까? 이거 가지고 무슨 수로 건태산 건설을 막아보겠다고 했는지.”

 “아, 할아버지, 오해하지 마세요. 이 친구 취해서 그래요. 이해하세요. 오늘 사무실 간판 내렸거든요. 그래서 다들 좀 우울한 것뿐이에요. 그래도 누군가 건태산 개발이 환경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걸 말했다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성과는 있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할아버지께서 만족하실 만한 수준은 아니겠지만요.”

 황급히 김 씨가 윤 씨의 말을 수습했다. 노인은 물끄러미 김 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자네들이 노력했다는 건 알고 있다네. 그리고 이 속세에 노력만으로 되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오지 않았는가.”

 노인은 이렇게 말하더니 껄껄대며 웃었다. 다들 우울한 가운데 듣는 웃음소리여서 그랬는지 메아리가 울릴 정도였다.

 “뭘 어쩌시려고요?”

 윤 씨가 술병을 집어 들어 잔을 채우면서 물었다. 가장 퉁명스럽게 말하고 있는 윤 씨였지만, 그만큼 아픔이 큰지도 몰랐다.

 “어쩌긴? 그만두게 해야지.”

 “푸핫!”

 노인의 말에 윤 씨가 웃음을 터트렸다. 우스워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음소리를 내기 위한 웃음이었다.

 “무슨 수로요? 할아버지, 이제 다 끝났다니까요? 아직도 모르시겠어요? 다 끝났어요!”

 “간판을 내렸다니 자네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끝났겠지.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네.”

 “아, 그래요, 그래요. 건태산 산신이라고 하셨죠? 어떻게 하실 건데요? 도술을 부려서 중장비라도 다 뒤집어엎으시려고요?”

 “자네, 취했군.”

 노인은 노기 어린 눈으로 윤 씨를 쏘아보았다. 윤 씨도 노인의 눈빛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은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내 분명히 말하겠는데, 내가 여기 온 건 건태산을 살리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자네들을 돕기 위함이기도 해.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를 수도 있겠지. 속세 사람들이니 말이야. 아까 2조 7천억이라고 했지? 그게 억만금의 가치가 있다는 소리겠지? 하지만 2조 7천억을 들여서 얻는 게 억만금인데 잃는 건 그 백 배 천 배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아, 법원에서 공사 재개 판결이 났다니까요?”

 “그래, 아까 들었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자네에게 할 이야기는 아니지. 어서 가세.”

 노인이 윤 씨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가긴 어딜 가요?”

 “술도 남았는데 가긴 어딜 간다고 그러세요.”

 윤 씨가 약간 시비조로 말하자 김 씨가 다시 수습하려는 듯 농담조로 얼른 덧붙였다. 하지만 노인은 전혀 듣지 않는 것 같았다.

 “어디긴 어디야. 이번 일을 중지시킬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곳이지.”

 “왜요? 대통령이라도 만나 보시려고요? 이 새벽에?”

 윤 씨는 이렇게 말하곤 키득거렸다.

 “이 일은 속세에서 일어난 일이니 속세 사람이 해결해야 할 테고, 그러자면 속세에서 이 일을 중지시킬 수 있는 사람을 만나 보아야 할 것이 아닌가?”

 말은 맞는 말이었지만 그런 사람을 아무나 만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본부장은 정말로 안타까운 모양이었다. 노인을 바라보는 표정이 슬퍼보였다.

 “할아버지. 비록 제가 외지 사람이긴 하지만 할아버지 심정 잘 알고 있어요. 저도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씀 드렸잖아요. 그래서...”

 “어허!”

 노인이 근엄한 표정으로 고함을 쳤다.

 “나는 건태산 산신이라니까.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는가?”

 노인의 말에 본부장은 아예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러세요? 그럼 도술 좀 부려보세요. 금도끼를 꺼내시든가. 그, 선녀 옷을 훔칠 수 있는 곳을 알려주시든가요.”

 윤 씨가 비아냥거리자 노인은 윤 씨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쳤다. 흥국 씨는 눈을 질끈 감았다. 노인의 힘을 아는 흥국 씨는 그게 얼마나 아플지 충분히 짐작이 갔기 때문이었다.

 “이놈아. 쇠도끼가 있어야 은도끼 금도끼를 만들 수 있지. 게다가 착한 일도 한 적이 없는 놈에게 어찌 선녀탕을 알려줄 수 있단 말인가?”

 윤 씨는 눈물이 쏙 나오게 아픈 모양이었지만 노인의 말을 듣자 바로 히죽거렸다.

 “산이라면 내 여러 도술을 보여줄 수 있지. 산짐승을 불러올 수도 있을 것이고, 바위틈에서 나비가 날아오르는 것도 보여줄 수 있을 것이야. 하지만 여기는 산을 떠난 곳이고 속세의 규칙이 있으니 함부로 할 수 없지.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도술은 아주 제한적이라네.”

 “뒤통수치는 도술은 제법이신데요, 뭐.”

 윤 씨가 자신의 뒤통수를 만지면서 말했다.

 “그건 도술이 아니라 체술이야.”

 노인은 이렇게 말하고는 술상에 놓인 숟가락을 하나 들어올렸다.

 “스푼밴딩이라도 하시게요? 숟가락을 휘게 하는 거요. 예전에 유리겔라가 해서 유명해진 거죠.”

 흥국 씨가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여전히 흥국 씨는 노인의 정체가 궁금했다. 그리고 노인의 정체는 어떻게든 현실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술사 데이비드 커퍼필드는 이런 말을 했죠. ‘나는 세상에 있는 모든 초능력자를 믿지 않는다. 모든 초능력이라고 보여주는 것들은 모두 마술로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스푼밴딩 같은 경우...”

 흥국 씨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노인은 숟가락을 검지손가락으로 툭툭 내리쳤다. 그러자 숟가락은 꼭 설탕으로 만든 과자라도 되는 것처럼 손가락이 닿은 곳마다 깨져 나갔다. 이내 몇 조각이 떨어져나간 숟가락은 톱니바퀴 모양으로 변해 버렸다.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동정의 눈빛을 보내던 본부장은 눈물이 마르지 않은 얼굴로 입을 쩍 벌리고 노인과 숟가락을 보고 있었다.

 “이건 체술이야. 도술과는 다르지. 이를테면 저기 건물 위에서 여기 앞으로 순간 이동하는 것 같은 게 도술이지. 축지법의 일종인데...”

 노인은 여기까지 말하고는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흥국 씨를 바라보았다.

 “맞아. 내가 자네들을 필요로 하는 이유가 바로 그거야. 축지법은 그저 거리를 단축시키는 기술일 뿐이라네. 다시 말해서 어디로든 순간적으로 이동할 수는 있지만 어디로 갈지는 분명히 정해야 한다는 걸세. 자, 이제 가세나. 더 이야기 해 봐야 시간 낭비야. 건태산 일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군가?”

 노인은 수저를 내려놓았다. 아주 작은 소리가 났을 뿐이지만 흥국 씨는 그 소리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흥국 씨는 지금 눈앞에서 본 광경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다른 세 사람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하지만 숟가락과, 숟가락에서 떨어져나간 조각들이 조금 전 본 비현실적인 광경이 환상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일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주위는 고요했다. 이따금씩 멀리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건 사람들은 저마다의 일에 열심이라는 증거이기도 했다.

 “대통령?”

 한동안의 침묵을 깨고 김 씨가 말했다. 뭔가 농담을 덧붙이고 싶었는지 입술이 살짝 움직였지만 곧 그만두었다. 농담을 할 분위기가 아니라고 느낀 모양이었다.

 “대통령이라.”

 노인은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대통령은 만나봤다네. 건태산 근처에 사는 사람들도 청와대가 어디 있는지는 알고 있더군. 그래서 내 쉽게 만나봤지.”

 노인의 말에 다들 서로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래서요?”

 윤 씨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예로부터 정치하는 사람들은 말을 잘 하지. 지금 대통령도 마찬가지더군. 자신은 대통령이지 건태산 공사 책임자가 아니라고 하면서 주무장관이나 실무자를 만나라고 했다네. 다른 대화는 나눌 수 없었다네.”

 노인이 혀를 찼다. 흥국 씨는 대통령을 떠올렸다. 노인의 말대로 정치하는 사람이 말을 못할 리 없지만 현 대통령은 다른 어느 정치인보다 달변으로 유명하다. 문득 대통령이 어떤 말로 노인을 설득했을까 궁금했다. 국가정보원에 X-파일 같은 것이 있다면, 산신과 관련된 파일도 하나쯤 생겼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주무장관이라면 건설교통부장관이겠죠. 실무자라면... 명탄 건설 회장이겠죠?”

 가장 먼저 충격에서 회복된 것은 본부장이었다. 흥국 씨가 보기에 본부장은 제정신으로 돌아왔을 뿐만 아니라 이 노인을 이용할 궁리까지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요, 산신님. 일단 명탄 건설 회장을 만나 보세요. 그치는 깡패 출신이거든요. 조금 전 보여주신 수저, 그러니까, 그 체술로 충분히 협박, 아니, 설득할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하면 일단 시간은 벌 수 있겠죠. 그리고 건설교통부장관은... 그래! 그 사람은 구성준 연구소의 수소 저장장치 발명하고 관계가 있어요. 건설교통부장관이 과학기술부에 있을 때 특혜를 줬다는 의혹이 있거든요. 구성준 박사가 로비력이 뛰어나다는 말을 들었으니, 틀림없을 거예요. 그 이야기를 하시면, 아, 산신님이시니 그런 건 좀 무리일까...”

 “뭡니까, 본부장님. 제 이야기는 안 믿었던 겁니까?”

 김 씨가 갑자기 정색을 하며 본부장에게 물었다. 자신이 말한 ‘한 줄기 희망’을 본부장도 ‘한 줄기 세포’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윤 씨가 옆에서 키득거렸다.

 “뭐야, 본부장님도 미국이 수소 에너지에 대한 막대한 이권을 빼앗길까봐 하는 말을 그대로 읊고 계시네요. 하하하. 그런 분이 율산 미군기지 이전 운동에 참여하신다니, 정말 재미있어요. 하하하.”

 윤 씨는 큰 소리로 웃으면서 말했다. 희한하게도 정체 모를 노인의 등장으로 분위기가 밝아진 셈이었다.

 “그런데, 명탄 건설 회장 집 알아? 건설교통부장관 집이 어딘지는?”

 김 씨가 지적했다. 그러자 달뜬 분위기로 말을 이어가던 본부장이 심각해졌다.

 “잠깐만요. 지금 당장 알 수는 없는데. 사무실 서류를 찾아보면... 그래, 주소지가 있었던 것 같은데요. 가만, 가만. 서류 상자, 어떻게 했죠?”

 본부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정리할 때 같이 치웠을 걸요?”

 “그거 며칠 전에 미주 씨가 라면박스에 넣는 거 봤는데.”

 윤 씨와 김 씨가 말했고, 본부장은 그 라면박스의 행방을 찾기 위해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지금 시간이 새벽 3시였다. 자고 있는 미주 씨를 깨울 작정인 모양이었다. 본부장은 노인이 산신이라고 믿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흥국 씨는 그렇게 믿지 않았다.
 ‘세상에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일은 없어.’
 흥국 씨는 몇 가지 가설을 머릿속에 떠올리다가 문득 자신이 할 일을 찾아냈다.

 “제 목하고 허리를 잡으세요.”

 흥국 씨가 노인에게 말했다. 노인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곧 알았다는 듯 기침소리를 한 번 내더니 흥국 씨의 목과 허리를 감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흥국 씨는 다시 한 번 정신을 잃을 것 같은 이동을 체험했다. 보통 사람은 평생 한 번 할까 말까 한 경험을 하룻밤에 두 번이나 한 것이다.
 흥국 씨와 노인은 어느 저택의 정원에 서 있었다. 정원사 두 사람이 매일같이 관리하는 깨끗한 정원이었다. 새벽이었고, 운치 있는 가로등도 있었고, 가로등 밑에 앉을 수 있는 의자와 탁자도 마련되어 있었다.

 “여기가 건설 회사 회장 집인가?”

 노인이 물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흥국 씨는 이렇게 말하고 전화기를 꺼냈다. 그리고 사용할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번호를 입력하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말씀하시죠.”

 한참동안 신호음이 간 다음에야 자다가 깬 목소리가 말했다.

 “지금 회장님 댁 정원입니다.”

 흥국 씨가 말했다.

 “역시 재주도 좋으시군요. 아무도 모르게 정원까지 들어오다니.”

 “그렇다고 해 두죠.”

 “급한 일이겠죠?”

 “아니라면 이 번호로 전화했을 리가 없죠.”

 “10분 뒤에 들어오십시오.”

 전화는 끊어졌고, 흥국 씨는 가로등 밑 의자에 앉았다.

 “앉으세요. 10분 기다리셔야 해요.”

 흥국 씨는 다시 한 번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명탄 건설 강원도 지부 근처에 위치한 이 저택은 아는 사람도 극히 적었고, 안다고 해서 아무나 출입할 수 있는 곳도 아니었다.
 하늘에는 별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도시가 별빛을 잡아먹고 빛을 발한다고 한다면, 이 거대한 저택은 무엇을 잡아먹고 이리도 비대해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 친구군.”

 노인은 앉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둔한 편이에요. 행동은 빠른 편이지만.”

 흥국 씨는 겸손하게 말했다.

 “끝난 일이라면서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했나?”

 “완벽한 걸 좋아하거든요, 전.”

 그건 그랬다. 흥국 씨는 지금까지 맡은 일은 마무리까지 모두 깔끔하게 끝냈다. 이번 일에서만 오점을 남길 수는 없었다. 제 아무리 산신이라고 해도 일을 방해하게 둘 수는 없다. 물론 흥국 씨의 정체를 사무실 식구들이 알게 할 수도 없다. 결국 흥국 씨는 노인의 말도 들어주고, 회장에서 새로운 위험요소에 대해서 알리는 쪽을 택한 것이다.
 10분이 지났다.
 흥국 씨는 시계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고, 때맞춰 저택 본관 문이 열렸다. 흥국 씨는 노인과 함께 본관으로 들어섰다.
 본관에는 환하게 불이 들어와 있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화려한 샹들리에였다. 그 밑에 펼쳐진 널따란 거실 소파에 명탄 건설 회장이 가운을 입고 앉아 있었다.

 “하루 24시간 일하겠다더니 일이 끝난 다음에야 그걸 확인하게 되는군. 그래, 나를 이 새벽에 깨울 만큼 급한 일이란 게 뭔가?”

 평생을 건설업에서 살아온 회장이었다. 이제 70줄에 접어든 노인이었지만 음성에서는 조금도 힘이 빠지지 않았다.

 “당신이 건태산 건설 공사 실무 책임자인가?”

 흥국 씨가 미처 회장의 질문에 답하기도 전에 노인이 대뜸 물었다.

 “누구신지?”

 “건태산 산신이라고 주장하는 분이십니다.”

 흥국 씨는 아는 바를 그대로 전했다.

 “건태산 산신이시라. 귀한 분을 뵙게 되는군. 앉으시지요.”

 물론 노인은 앉지 않았다. 대신 명탄 건설 회장 앞까지 걸어간 다음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입을 열었다.

 “내가 여기 온 건 저 젊은이를 위해서이기도 하고, 또한 속세의 인간을 위해서라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회장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정장을 차려입은 집사가 나타났다.

 “차 좀 준비해주게. 마침 귀한 차가 들어왔는데 맛이나 보시겠습니까?”

 “오래 이야기할 생각은 없네.”

 “그렇게 하시지요. 난 한 잔 주게.”

 회장은 성의를 다해서 노인을 대하고 있었다.

 “저 젊은이를 위해서, 또 속세의 인간을 위해서 여기까지 오신 것, 대단히 존중하는 바입니다.”

 “알아주니 고맙군. 그럼 공사를 중단하겠는가?”

 노인이 물었다. 흥국 씨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 고민했다. 노인은 정말 본부장의 말처럼 회장을 힘으로 협박할 생각일까? 만약 그렇게 한다면 막을 수는 없을 것이었다. 노인의 완력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흥국 씨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게 흥국 씨의 살아온 방식이었다.
 흥국 씨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노인의 뒤편으로 다가갔다.

 “아뇨,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회장은 차분하게 말했다.

 “어허... 말이 통할 줄 알았는데.”

 “산신께서는 이런 말씀을 아시는지요. ‘백 년도 못 살면서 천 년의 근심으로 사는 인간들아.’”

 회장은 이렇게 말하곤 뭐가 재미있는지 껄껄대며 웃었다. 노인은 심기가 불편한지 헛기침을 한 번 했다.

 “산신님의 걱정은 천 년의 근심입니다. 물론 입장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건태산과 함께 살아오셨으니 인간의 짧은 삶이 어찌 삶으로 보이겠습니까? 그러니 산을 살리는 것이 속세의 인간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시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

 노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할 수 없어서라기보다는 말을 하기 싫은 눈치였다. 흥국 씨는 잠시 동안 노인이 행패라도 부리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했다.
 그 때 집사가 쟁반에 차를 한 잔 가지고 왔다. 쟁반에는 찻잔과 함께 누런 봉투가 하나 놓여 있었다. 회장은 찻잔을 들어 향을 음미한 다음 입술을 대었다.

 “아까 그 말, 영월에서 산신이 된 김삿갓이 들으면 기절초풍을 할 소리로군. 그 말의 뜻이 그렇게도 해석이 된단 말인가?”

 “산신님. 건태산 개발에 2조 7천억이 들어갑니다. 그 돈으로 몇 명의 일자리가 생기고, 몇 가구의 살림살이가 펴지게 되는지 아십니까? 아마 상상도 못 하실 겁니다.”

 회장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래? 그럼 건태산을 복구하는 데 얼마나 들어가는지는 아는가? 몇 명의 목숨이 사라지고, 몇 가구가 사라지게 되는지도 아는가? 건태산이 노하고 있어. 산이 노하고 있단 말일세. 내가 달래는 것도 한계가 있단 말이야. 내 말 알겠는가?”

 회장은 찻잔을 내려놓고 봉투를 집어 들었다.

 “저는 천 년의 근심으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노인은 갑자기 무척 지치고 늙어보였다. 흥국 씨는 문득 이제 안심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여기 온 건 이제 산이 노하는 것을 더 이상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라네. 하지만 아직도 늦지 않았어.”

 “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저와는 관계없을 테니까요.”

 “어허...”

 노인은 눈을 감았다.

 “이게 마지막 기회일세.”

 노인이 천천히 말했다. 마지막 남은 의지를 짜낸 듯한 말이었다.

 “비밀을 하나 알려드리죠. 지난 번 선거에서 저는 지금 대통령을 찍지 않았습니다.”

 노인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회장이 봉투를 뜯으면서 말했다. 노인은 그저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산신님을 뵙고 보니, 다른 후보를 찍었던 게 실수였구나 싶습니다. 실은 말입니다, 대통령께서 저와 건설교통부장관에게 당부하신 게 있었습니다. 언제 건태산 산신이 찾아올지 모른다. 그 때를 대비해서 이걸 가지고 있어라, 하고 말입니다.”

 봉투 안에 든 것을 꺼내면서 회장이 말했다. 봉투 안에는 오래된 것처럼 보이는 문서가 한 장 들어 있었다.

 “그저 산신님의 주의를 환기시켜 드리기 위한 물건일 뿐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창고에서 찾아낸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한 300년 된 문서라고 하더군요.”

 회장은 문서를 펼쳤다.

 “조선시대에도 이런 일이 있었나 봅니다. 벌채를 두고 산신이 궁에 들어와 임금에게 쓴소리를 했던 모양입니다. 그 때 임금은 말로 산신을 설득했고, 산신에게 앞으로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저는 한자가 짧습니다만, 산신께서는 이게 무슨 내용인지는 아실 것입니다. 속세의 일은 속세의 인간에게 맡기고, 산의 일은 산신이 맡아서 한다. 그것이 순리이다. 앞으로 산신은 산의 일에만 신경을 쓸 것을 약속한다. 아마 이런 내용일 것입니다.”

 회장이 노인에게 문서를 내밀면서 말했다. 노인은 문서를 받아들었다.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야.”

 “여부가 있겠습니까.”

 회장이 손짓으로 집사를 불렀다. 집사는 쟁반과 찻잔을 치웠다. 대화를 마무리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나는 저 젊은이를, 또 속세의 인간을 돕기 위해 왔다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돕지 못하고 돌아가는군.”

 노인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자네가 내 뜻을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머리도 좋은 젊은이가 왜 내 뜻을 이리 몰라준단 말인고.”

 노인은 흥국 씨를 향해 혀를 차더니 다음 순간 사라져버렸다. 펑, 하는 소리나 연기 같은 연출은 없었다. 그저 원래부터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흥국 씨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노인이 눈 깜짝할 사이에 공간을 이동하는 능력이 있다는 건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송구스럽습니다.”

 노인이 사라지자, 흥국 씨는 회장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말했다. 회장은 손을 휘휘 내저었다.

 “아냐, 아냐. 자네는 자네 할 일을 다 한 것이야. 다들 그렇게 사는 것 아니겠는가? 자기 할 일을 다 하면서 말이지.”
 회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시, 내 밑에서 일할 생각 없는가? 자네 정도라면 꽤 괜찮은 대우를 해 줄 수 있는데.”

 회장이 말했다.

 “송구스럽습니다만 저에게는 다른 일이 있습니다. 조금 쉬었다가 율산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좀 있거든요.”

 “바쁜 친구로군.”

 회장은 손짓으로 집사를 불렀다. 집사는 봉투 하나를 흥국 씨에게 내밀었다.

 “보너스 조금하고 연락처를 넣었네. 언제든 생각이 바뀌면 연락 주게.”

 회장은 이렇게 말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흥국 씨는 회장이 사리진 곳을 향해서 허리를 꺾어서 인사를 했다.

 “산신이라니. 저도 직접 보지 않았으면 믿지 못했을 겁니다.”

 흥국 씨를 바라보면서 집사가 말했다.

 “저는 직접 봤지만 안 믿어요.”

 “그래요? 그럼 지금 일어난 일을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공간이동이 가능하고 힘이 아주 센 노인이 세상에 없으란 법은 없죠.”

 집사는 웃음을 짓는다. 

 “고생하셨습니다.”

 돌아가 보라는 뜻이리라.

 “고생은요. 제 일을 한 거죠. 건태산 건설 공사가 계속 되도록 하는 게 제 일이고, 그러니 아까 그 노인이 건태산 공사를 막을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을 막는 것도 제 일인 걸요.”
 집사는 흥국 씨의 어깨를 두드려주었고, 흥국 씨는 저택 본관을 나섰다.
 
“밖에 차하고 기사 준비해 뒀습니다. 타고 가시죠.”

 흥국 씨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저택을 빠져나왔다.




 ***





 본부장과 김 씨, 그리고 윤 씨는 술집에서 아직도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냥 집으로 갈까 하다가 혹시나 하고 온 것이었고, 흥국 씨는 자신의 감이 아직도 예리하다는 데에 스스로 만족했다.
 흥국 씨는 노인은 사기꾼이었고, 경찰서에 넘겼다고 말했다.

 “전과도 있더라고요. 비슷한 수법이었어요.”

 “...숟가락은?”

 김 씨가 톱니모양이 된 숟가락과 떨어져나간 조각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미리 준비한 걸 바꿔치기 한 모양이에요. 원래 그런 수법을 썼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눈앞에서 흥국 씨하고 사라진 건?”

 본부장은 아직도 미련이 남는 표정이었다.

 “착각하셨나본데요, 저랑 그 노인은 걸어서 나갔어요. 술을 너무 드셨나봐요.”

 흥국 씨의 설명에 다들 납득하는 눈치였다.
 술자리가 파하고 흥국 씨가 집으로 들어온 건 새벽 6시가 다 되어서였다. 일단 오늘 하루는 쉬어야겠다고 생각한 흥국 씨는 주저앉아서 텔레비전을 켰다. 잠이 올 때까지 조금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텔레비전에서는 영화와, 홈쇼핑 광고와, 뮤직비디오와, 다큐멘터리가 방송되고 있었다. 어쩐지 찜찜했다. 사실 일을 마무리하고 나면 늘 그랬다. 누군가의 꿈이 이루어지면 누군가의 꿈은 깨어진다. 그것이 세상의 법칙이다. 그러나 둘 중 하나만 본다면 모를까 두 개를 동시에 보아야 하는 직업을 가진 흥국 씨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긴급 속보입니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고 있는데 아나운서가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화면 밑에는 긴급 속보라는 글자가 떠 있었다.

 “건태산에 산불이 발생했습니다. 현재 불은 바람을 타고 남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소방당국은 건태산 남쪽에 있는 원자력발전소로 불이 옮겨 붙을 가능성에 대해서 깊은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화면 가득 불타는 건태산이 보였다. 흥국 씨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이 새벽이라 화재 진압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금 강원도 전역에는 예비군 동원령이 발동된 상태입니다. 지금 방송을 보고 계신 예비군께서는 지금 즉시 소집 장소로 이동해 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지금 상황은 매우 심각합니다.”

 아나운서는 약간 흥분된 어조로 말하고 있었다.
 흥국 씨는 화면을 통해서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너무 거세서 화면을 집어삼킬 것만 같은 그 불길 사이에서 흰 옷을 입은 노인의 모습을 본 것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하늘은 검푸른 빛을 하고서 건태산을 굽어보고 있었다. 꼭 어둠을 토해내기 직전 같은 느낌이었다.
 해가 뜨려면 아직 시간이 남아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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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소개>

김상현


1973년 서울 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98년 <탐그루>로 데뷔. <하이어드> <네크로폴리스> 등을 썼다.

 

 





    
   <작가후기>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돈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건 아니다.

 

아침에 마시는 맑은 공기,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 창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저녁놀, 이런 것들은 돈으로 살 수도 없고, 돈으로 가치를 따질 수도 없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종종 가치를 따질 수 없는 것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가치가 없기 때문에 돈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가끔은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가치를 따질 수 없는 것들을 즐기는 법을 가르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조금은 더 나아질 것이다.

 

물론 그냥 가치 없는 상상일 뿐이다. 마치 한 편의 단편소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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