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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우리들의 타화상 [1]

  • 작성일 2006-06-14
  • 조회수 243





우리들의 타화상




 최근 들어 청소년문학 작품들이 부쩍 쏟아져 나온다. 여기서 청소년문학이라는 말은 청소년을 독자로 의식한 문학을 말한다. 청소년이 읽었던, 그들에게 추천되고 그들이 등장했던 문학은 늘 존재했고, 지금도 그런 작품들이 청소년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된다. 그러나 본격적인 청소년문학은 청소년이라는 존재를 발견 또는 재발견함으로써 성립된다. 아동문학이 아동이라는 존재를 발견함으로써 성립되었던 것과 같다. 아동문학과 청소년문학의 공통분모는 어른 작가가 다른 연령층의 독자에게 보여주기 위해 쓴다는 점이다. 따라서 거기에 담기는 아이들의 모습은 기본적으로 타화상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이제까지 청소년문학은 작가 자신이 청소년기를 회고하는 식의 자화상적 성격이 강했다면, 최근에는 '요즘' 아이들을 담으려는 노력이 보인다. 이번에는 바로 그러한 모습들을 한번 살펴보기로 한다.


 

어느 날 내가 죽다



 최근 우리 청소년문학 작품 가운데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이경혜 저. 바람의 아이들. 2004년>(사진 왼쪽)는 제목만으로도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이 제목을 보는 순간, 사회문제로 떠오른 청소년들의 자살을 떠올린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은 한 중학교 3학년 남학생의 죽음을 다루지만, 프롤로그에 일찌감치 밝혀져 있듯이 자살이 아닌 사고사를 다룬다. ‘도시락 특공대’라는 노래로써 90년대 말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암시하는데도 문화적으로는 엘비스 프레슬리니 채플린이니 칠팔십 년대 정서가 오히려 지배적이며, 게다가 인물들의 말투는 이따금 중년 부인의 수다를 연상케 하고, 연령으로 미루어 ‘서울의 봄’과 ‘광주항쟁’의 70년대 후반 또는 80년대 중반을 보냈을 부모 세대의 캐릭터들이 설득력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작품에 관심이 갔던 이유는 바로 이 측면이었다. 그것은 가능한 한 그의 죽음에 대해, 우리가 청소년의 자살에 대해 쉽게 예측하고 단언할 수 있듯이, 사회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태도였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내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사회적 책임을 도외시하겠다면, 대체 작가가 제시하고자 하는 그의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


베르테르와 재준



 이 작품을 읽으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사진 오른쪽)을 떠올렸다. 한 젊은 영혼의 죽음을 다루었다는 것 말고도 둘 다 죽은 이의 육성을 직접 들려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르테르는 그가 남긴 일기 형식의 편지로 자신의 내면을 독자에게 드러내고,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죽은 재준은 일기를 남긴 것으로 설정된다. 편지와 일기로 설명될 수 없는 부분을 위해서는 따로 해설자가 도입되는 것도 비슷하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는 그가 남긴 자취들을 편집하고 정리하는 편집자가 있고,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에서는 재준의 일기를 읽어가는 가장 친한 친구 유미가 있다.

 결정적인 차이는 있다. 베르테르의 편집자는 개인적인 프로필이 전면에 부각되지 않는다. 그의 역할은 독자에게 베르테르에 대한 자료를 보여주는 것뿐이다. 그가 해설자로 나서는 것도 베르테르의 편지가 끊기고 그 뒤의 행적을 설명할 필요가 있는 부분, 즉 뒷부분에 집중된다. 그러나 유미는 처음부터 재준의 일기를 보충하고 설명하는 역할에만 그치지 않는다. 유미 자신의 삶이 재준의 이야기와는 별개의 담론을 이룰 정도로 스토리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렇다면 유미의 스토리는 재준의 죽음의 의미를 밝히는 데 얼마나 기여하는가?



삐딱한 아이, 유미



 화자인 유미는 이혼하고 다시 새아빠와 재혼하여 유미와 크게 터울지는 동생을 낳은 엄마와 함께 산다. 통념상 얼마든지 신파로 흐를 수 있는 환경을 유미는 시쳇말로 쿨하게 받아들인다. 자신의 처지가 "남다른 환경"(84)임을 모르지는 않으면서도 엄마의 이혼에 대해서 "그렇게 엄마는 아빠와 결혼했고, 살다 보니 서로 싫어하게 되어 헤어졌다."(56)고 담담하게 생각한다. 새아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담담하다. "나는 새아빠를 절대로 아빠라고 부르지 않는다. [...] 그건 친아빠에 대한 유일한 의리였다. 그렇다고 친아빠를 새아빠보다 더 좋아하냐고 물어온다면 나는 솔직히 대답을 못 하겠다."(74)고 털어놓는다. 적어도 가정은 유미에게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나 유미는 자신을 "삐딱"하고 성질 더러운 아이라고 부른다. 유미의 이런 성격과 태도는 이 작품의 내러티브를 성립시키는 가장 중요한 계기이다. 유미가 그런 아이였기 때문에 처음 재준과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미는 자기가 원래부터 그런 성격은 아니었다고 고백한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나는 온순하고 순종적인 학생에 속했다. 언제부터 내 성격이 이렇게 비뚤어지게 된 것일까?"(79)라고 유미는 자문한다. 그리고 그것이 엄마아빠의 이혼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싶더니 이내 부정한다. "물론 그렇게 말하면 모든 게 간단해지기는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잘 이해하겠다는 눈길로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83) 이런 유미의 진술과 함께 "문제아 뒤에 문제가정 있다"는 통념을 거부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읽힌다. 여기에는 이혼가정, 패치워크 가정이 반드시 문제가정은 아니라는 주장도 포함된다. 만약 작가가 유미를 통해 이런 주장을 담론화할 의도가 없었다면 유미가 어떤 이유에서든 다만 삐딱한 아이이면 되는 것이지 유미의 가정환경은 아무래도 좋았을 것이다.



시체놀이, 재준



 남다른 형태의 가족 속에서 살고 있는 유미와는 달리 재준은 친부모와 동생과 함께 사는 보통 가정의 밝고 명랑하고 얌전해 보이는 아이이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남자답지 못하다고 나무라는 강한 성격의 아버지와 신경줄이 여려 천식을 앓고 있는 어머니가 있다. 재준에게 가정은 일기에서 밝혀지듯이 "감옥"과 같다. 재준은 "시체놀이"에 매료된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는 글귀는 장난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모든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달라 보일까?"(94)


 재준은 지금 이 현실의 소중함을 확인하고, 현실의 고통을 치료하는 “만병통치”(161) 약이자 “두려움”(179)을 극복하는 방편으로 시체놀이를 선택한다. 그런데 놀이는 현실이 된다. 이 의미에 대해 유미는 고백한다.



 네 죽음의 의미는... 모르겠다. 아마도 평생토록 나는 그걸 생각하며 살아야 할 것 같다. 내 평생도 얼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 태어났다면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그것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죽음이 지극히 어이없고, 하찮은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네가 가르쳐 주고 갔으니까. [...] 네 죽음의 의미는 내가 너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뜻이지. 그 한 가지는 너무도 확실하지. 황재준이라는 내 친구가 짧은 시간 이 세상에 머물다 떠났다는 거. 그 짧은 시간 동안 내 마음 속에 도저히 파낼 수 없는 무거운 사랑을 남기고 떠났다는 거..... 잘 가라, 재준아. 이제는 떠돌지 말고 편안히 잘 가라....(184-185)



 이것은 화자인 유미의 해석이다. 만약 이것을 작가 또는 작품이 내린 해석으로 받아들인다면 맥 풀릴 일이다. 기실 존재론적 의미에서 죽음은 의미를 기대하지 않는 ‘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의미를 지니려면 ‘관계’ 속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그러나 작가는 죽음을 자살이 아닌 사고로 처리함으로써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관계에 책임을 돌리지 않겠다는 의도를 드러낸다. 이는 "어린 나이에 어이없이 사라져 간 소년들"에게 "유별나고, 극적이고, 고통스런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는 작가의 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작가는 말을 잇는다. "그 어디에도 비극의 그림자가 스미지 못하는 그런 평화롭고 사소한 시간을 누리게" 해주고 싶었노라고. 작가의 이러한 소망은 주인공이 자살로 삶을 마감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나 정신 병원에 수용되는 <호밀밭의 파수꾼>(사진 아래 왼쪽)처럼 일탈과 부적응으로 끝나는 청소년문학의 계보와 거리를 두려는 시도로 보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  퇴행이나 일탈을 필연적으로 보는 청소년기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에 저항하려는 시도로도 읽힌다. 만약 그렇다면 대단히 의미 있는 시도이다.



다시, 베르테르와 재준



 잘 알다시피 베르테르의 슬픔 또는 괴로움(원제의 Leiden은 괴로움에 더 가깝다)은 이미 약혼자가 있는 로테에 대한 사랑, 즉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서 비롯한다. 그렇기는 하지만 편지 곳곳에서 그의 괴로움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이른바 합리성으로 무장된 17세기 독일 시민계급의 규범 때문인 것으로 드러난다. 한 아름다운 영혼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사회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가 로테의 남편이자 합리적인 사고의 소유자 알베르트의 권총으로 자살한 것도 상징적이다.

 그러나 재준의 죽음은 오토바이 사고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오토바이라는 아이콘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알다시피 청소년들의 오토바이는 우리 사회에서 자기과시와 집단행동의 수단이자 욕구불만을 드러내는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청소년의 자기 표출 수단 중의 하나가 의도와 무관하게 자신의 죽음을 초래하는 것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이 자체로는 자칫하면 이른바 청소년문화와 저항에 대한 부정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재준이 오토바이를 타게 된 동기는 그가 사랑하는 소희의 인정을 얻기 위해, 즉 자신의 남자다움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재준은 그러한 가치관 자체를 의심하지 않고 내면화시킴으로써 자기 멸망을 초래한다. 그리고 어른이 되지 못한 채 영원히 소년으로 남는다. 이것이 독자로서 읽어낼 수 있는 그의 죽음의 의미 가운데 하나이다. 이러한 의미가 선명하게 다가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죽음의 의미를 해석하는 역할을 맡은 유미의 이야기가 더 강한 메시지를 보내오기 때문일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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