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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탐정록 (제1회: 운수 나쁜 날)

  • 작성일 2007-04-30
  • 조회수 1,191




 

글: 한동진  //  원안: 한상진

 

 설홍주는 대단히 특이한 친구다. 보통의 조선 사내는 열여덟이 되기가 무섭게 장가를 들어 스물이 되기 전에 애를 가졌지만, 그는 스물다섯을 헤아리도록 가정을 꾸리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 결혼은 남성과 여성 모두를 공평하게 속박하며 인류 문명의 발전을 저해하는 제도였고, 전통적인 중매결혼은 조선의 발전을 가로막는 구태의연한 악습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유연애를 찬양하는 것도 아니었다. 사랑이란 감정은 분노나 슬픔과 마찬가지로 일시적인 변덕이고, 여성과의 연애는 쓸데없는 시간낭비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설 군, 설마하니 여성의 지적 능력이 자네와는 이야기를 나눌 수 없을 정도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날 아침, 내가 커피를 홀짝이며 이죽거리자 그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여보게, 왕도손 군. 나는 유림에서 으뜸가는 성인으로 떠받드는 공자님처럼 편협한 남녀차별주의자가 아닐세. 오늘날 불란서의 마담 큐-리(퀴리 부인)는 여성의 사고력이 남성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않았나. 하지만 말일세, 입맞춤을 구걸하는 연애편지를 쓰기 위해서 편지지를 붙들고 씨름하는 건 인간에게 두뇌를 선사한 조물주를 모독하는 행위라네. 그런 의미에서 시간낭비라고 말한 걸세."

 "그런가? 하지만 요즈음은 자네 역시 두뇌를 많이 쓰는 것 같지 않더군."

 신랄한 비판이 효과를 발휘했는지, 설홍주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숙련된 요리사라 할지라도 재료가 없이는 아무것도 만들 수가 없어. 그리고 요리사에게 필요한 게 야채와 고기라면 내게 필요한 건 사건이라고, 사건! 해결해야 할 사건이 없는데 대체 무슨 놈의 두뇌를 쓴단 말인가?"

 "이 친구야, 자네에게 사건을 의뢰하는 사람은 줄을 섰다고. 그런데 의뢰가 들어오는 족족 거절하면서 사건이 없다고 한탄하는 게 말이 되나?"

 "왕도손 군, 만일 자네 환자 중에 어깨가 아픈 사람이 있다면 침을 놓고, 소화불량에 걸린 사람이 있다면 탕약을 처방하겠지. 하지만 다리가 부러지거나 머리가 깨진 사람이 자넬 찾아온다면, 한의사가 아닌 외과 의사를 찾아가라고 권하겠지. 그래야 옳은 치료를 받을 수 있을 테니까." 설홍주는 포켓에서 담배 한 대를 빼어 물며 말을 이었다. "헌데 날 찾아오는 사람들이 가져오는 사건들 대부분은 기민한 두뇌 회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네. 지적 호기심이 일어나지 않는 사건에 열을 올리며 뛰어드는 건 머리가 모자란 왜경(일본 경찰)들뿐이지. 나는 그런 사건엔 손톱만치도 관심이 가지 않는다고. 그러니 거절할밖에 도리가 없지."

 그는 성냥을 꺼내 담뱃불을 붙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에 몸을 기대면서 창문을 열었다. 싸늘한 초겨울 바람이 두 뺨을 간질였고 시선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좁은 골목길을 따라 맴돌았다. 그리고 멍하니 벌린 입에서 솟아오른 한 움큼의 연기는 새파란 아침 하늘에 뭉게구름을 그렸다.

 "입맛에 맞는 사건이 들어올 때까지 무위도식하겠다는 말처럼 들리는군." 나는 신문을 집어 들면서 빈정거렸다.

 "나라고 해서 지금의 상황을 반기고 있는 건 아니야. 지적 흥분을 일으킬 만한 사건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탓에, 이젠 학교 후배의 상담역으로 전락해 버릴 위기에 처했거든."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설홍주는 이런저런 잡동사니가 지저분하게 널려 있는 책상으로 손을 뻗어 구깃구깃 접힌 한 장의 전보용지를 집어 들었다.

 "엊저녁에 내 고등학교 후배한테서 이런 전보가 왔다네."

 그 내용인즉슨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 설홍주 선배님께, 긴히 논의할 일이 있어 내일 오전 열 시에 방문토록 하겠습니다. 김수영 배상- 

 

 "이 김수영이란 친구는 누군가?"

 내가 전보용지를 쳐다보며 묻자, 설홍주는 담배 연기로 허공에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이렇게 답했다.

 "경기고 후배로 경성에서 열렸던 동문회 모임에서 몇 차례인가 만난 적이 있지. 지금은 일본 유학 중인 걸로 알고 있네만, 방학을 틈타 돌아온 모양일세."

 "말하자면 자네와 같은 지식인 계급에 속하는 사람이군."

 나는 벽시계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시간은 이미 열 시 반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약속 시간에서 삼십 분이 넘도록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지식인답지 않게 무례한 행동이 아닌가."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한 이유는 이제 곧 알 수 있을 거야." 설홍주는 손에 든 담배로 창 밖을 가리켰다. "왜냐하면 지금 막 도착한 것 같거든."

 창 아래 좁은 길에 세워진 인력거에서 검은 학생복을 입은 젊은이가 내리고 있었다. 그는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며 굽실거리는 인력거꾼에게 삯을 치른 뒤에, 우리 하숙집 쪽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잠시 후, 계단을 따라 올라오는 발소리가 가까워지더니 누군가가 방문을 똑똑 두들겼다.

 "어서 들어오게나." 설홍주는 다 피운 담배를 재떨이에 눌러 끄면서 목청을 높였다.

 방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과연 아까의 학생이었다. 가까이서 보니 키가 크고 체격이 당당한 이십 대 초반의 젊은이였다.

 "오랜만입니다, 선배님. 시간을 지키지 못하여 참말로 죄송합니다."

 그는 학생모를 벗고 공손히 머리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 설홍주는 웃으면서 손을 내밀어 악수를 나눴다.

 "조금 늦은 것 가지고 일일이 사과할 필요는 없네. 게다가 오늘 아침엔 여러 가지 일이 있었던 모양이군. 집안일이 서툰 식모가 국물을 엎지르질 않나, 고양이가 발톱으로 할퀴어대질 않나, 자전거 타이어가 갑자기 빵꾸가 나질 않나, 급한 대로 인력거를 탔지만 빙 돌아서 오는 바람에 시간을 맞추지 못했겠지."

 그러자 김수영이 입을 떡 벌리고 외쳤다.

 "아니, 그걸 어떻게 다 알고 계신 겁니까?"

 "그야 간단하지." 설홍주는 김수영의 오른쪽 손등을 가리키며 말했다. "악수를 하다 보니 엄지손가락뿌리에 옥도정기를 바르고 반창고를 붙인 게 눈에 띄더군. 그런데 그 밑으로 두 갈래 가느다란 상처자국이 삐뚤빼뚤 지나가고 있더군. 연필을 깎다가 칼날에 베였다면 손가락뿌리가 아닌 손끝에 상처를 입었을 것이고 그 자국도 날카로운 직선을 그렸겠지. 데리고 놀던 고양이가 변덕스레 발톱을 세우고 할퀼 때에만 그런 상처가 생기는 법이지."

 "선배님의 눈썰미에는 당해낼 도리가 없군요. 실은 어젯밤에 어머니가 키우는 고양이를 붙잡으려다가 손등을 할퀴고 말았습니다. 그나저나 우리 집 식모한테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어요. 요리도 못하고 청소도 못하고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계집애죠. 오늘 아침엔 밥상을 내오다가 제 무르팍에 국그릇을 엎질러 버리기까지 했죠." 그 대목에서 김수영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무릎을 내려다봤다. "하지만 나올 때 틀림없이 바지를 갈아입고 나왔는데,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자네가 입고 있는 윗도리는 말끔하게 다림질되었지만, 아랫도리는 좀 지저분한데다가 구김살도 제대로 펴지질 않았더군. 아무래도 윗도리와 짝이 맞지 않는 것 같았어. 그래서 눈을 아래로 내려보니 왼쪽 양말에 고기국물이 한두 방울 튄 흔적이 있더군.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밥상을 받을 때, 국그릇이 엎질러지거나 해서 묻은 거겠지. 그래서 급히 바지를 갈아입고 나온 거라고 추리할 수 있었네." 설홍주는 손을 들어 김수영의 가슴팍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그 윗도리, 겉보기엔 멀쩡하지만 포켓 단추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이 덜렁거리더군. 자네 집안이 경제적으로 풍요롭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어머니나 누님이 아침 밥상을 내오거나 단추를 다는 일을 했을 것 같지는 않았어. 아마도 식모였겠지. 국그릇을 엎지르고 단추도 제대로 달지 못하는 식모라면 집안일이 서툴다고 말할 수밖에 없겠지."

 "그럼 자전거 타이어가 터진 건 어떻게 아셨죠?"

 "자네는 3년 전에 무려 30원(현재 시가로 약 100만원)이나 하는 자전거를 살 정도로 자전거에 미쳐 있었지. 유학을 떠날 때, 그건 동생에게 맡겨두고 간 걸로 기억하네. 오랜만에 돌아왔으니 그 자전거를 타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했을 거야. 헌데 그러지 않고 인력거를 타고 왔다면, 자전거에 뭔가 문제가 생긴 거라고 봐야겠지. 자전거에 가장 흔한 문제라면 역시 타이어 빵꾸 아닌가, 아마 자네 동생이 타고 다니다가 빵꾸를 내거나 했겠지." 설홍주는 창 밖으로 슬쩍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자네 집에서 여기까지 직선으로 이어지는 가장 빠른 길은 오르막 내리막이 계속해서 반복된다네. 그런 길은 인력거꾼들이 별로 좋아하질 않아. 올라갈 때는 힘들고 내려갈 때는 위험하니까.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평평한 길만 골라서 다니지."

 "역시 설 선배님답습니다. 전 또 무슨 투시술이나 독심술 같은 마술이라도 부리신 줄 알았죠."

 김수영은 유쾌하게 너털웃음을 터뜨렸지만, 설홍주는 쓴웃음을 지었다.

 "마술은 눈속임이지만 추리는 강철 같은 논리에 입각한 과학일세. 요령을 모르면 뭐든 신기해 보이기는 마찬가지겠지만. 어쨌든 자리에 앉게나."

 김수영은 망토를 벗어 옷걸이에 걸고 설홍주가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곁눈질로 나를 쳐다보며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여기 이 분은 뉘십니까?"

 "그러고 보니 소개가 늦었군. 이쪽은 나와 같은 하숙집에 사는 친구인 중국인 한의사 왕도손이라 하네. 3년 전에 조선 한의학을 배우러 왔다가 아예 여기 눌러앉은 친구지. 자, 어서들 인사 나누시게."

 나와 김수영이 서로 자기소개를 주고받으며 악수를 하는 사이에, 설홍주는 다시 담뱃갑을 꺼냈다.

 "행여나 비밀스런 이야기가 새어나가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네. 이 친구는 중국인답게 입이 무거우니까."

 "아니, 괜찮습니다. 제가 오늘 선배님께 의뢰하려는 사건은 전혀 기밀을 요하는 게 아니니까요. 도리어 할 수만 있다면 조선 천지에 널리 알리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런가? 어떤 얘긴지 벌써부터 궁금해지는군. 담배라도 한 대 태우면서 얘기해 보게나."

 김수영은 설홍주가 내민 담배를 받아서 불을 붙였다. 그리고 뭉글뭉글한 담배 연기를 길게 뿜어내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3년 전에 와세다 대학 영문학과에 들어갔습니다. 선배님께서도 일본 유학 경험이 있으니 잘 알고 계시겠지만 유학중인 조선인 학생들은 학교나 지역별 모임에 가입하는 게 하나의 관습처럼 되어 있습니다. 제 경우에는 와세다 대학의 아이스하키 구락부와 경기회란 모임에 적을 두고 있었죠.

 경기회의 정식 명칭은 '재 관동 유학생 경기 친목회'였습니다.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동경제대, 메이지대, 와세다대 등 관동 지역 대학에 다니는 경기도 출신 학생들이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서 만든 모임이죠. 회원은 서른 명 가량인데, 거기서 사귄 친구 중의 하나가 이번 사건의 주인공인 허명주니다.

 허 군은 경기도 연천 출신으로 재작년에 메이지 대학 일문학과에 입학했는데 나이는 스물 하나로 저와 동갑내기였습니다. 작년 말부터 갑자기 가정 형편이 어려워져서 학업을 일시 중단하고 이런저런 부업으로 생계를 꾸렸는데, 그때부터 경기회에 자주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허 군은 가진 재주가 많아서 우리들 사이에선 재간꾼으로 통했습니다. 말재간이 탁월한데다 장기나 바둑 같은 잡기에 능하고, 뜀박질도 잘 해서 역전 마라손(마라톤) 대회에도 여러 번 참가했죠. 사람됨도 듬직하고 착실하여 믿을 만한 친구였죠.

 3 주 전, 정확하게는 11월 21일, 경기회는 아카사카의 요정에서 조촐하게 모임을 가졌습니다. 전부 열댓 명이 참가했는데 그 중에는 허 군도 있었습니다. 그날따라 술이 입에 착착 달라붙어서 얼마 가지 않아 다들 거나하게 취했습니다. 특히 허 군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할 지경이었죠.

 우리는 벽시계가 11시를 가리킬 무렵에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총무가 레지(계산대)에서 술값을 치르는 사이에 허 군이 비척거리는 걸음으로 문 옆의 좁은 복도로 향하더군요. 저는 목소리를 높여 물었죠.

 [자넨 또 어딜 가려는 건가?]

 허 군은 고개를 돌리며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잠깐 화장실에 갔다 오려고. 물만 빼고 나올 거야.]

 그는 복도 끝의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습니다. 잠시 후, 문 안쪽에서 소변 보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잦아들었죠.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나올 생각을 하지 않더군요.

 화장실 앞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던 메이지대 의학부의 유영식 군은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문을 두들겼습니다.

 [허 군, 아직도 멀었나? 안에서 대체 뭘 하는 건가?]

 그리고 문을 벌컥 열어젖히더니, 당황한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아니, 이 친구가 어딜 간 거야?]

 그 소리에 깜짝 놀란 우리가 우르르 화장실로 몰려들어보니, 정말로 그 안은 텅 비어 있더군요."

 김수영은 잠시 말을 멈추고 담배를 뻐끔거렸다. 하지만 그가 미처 연기를 토해내기도 전에 설홍주가 아주 상식적인 질문을 던졌다.

 "화장실 안에 다른 출구는 없었나? 이를테면 환기창 같은 거 말일세."

 "물론 변기 위에 조그만 환기창이 붙어 있었죠. 남자 하나는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창문은 닫혀 있었습니다."

 "거기로 빠져나간 다음에 바깥에서 창문을 닫은 거겠지." 설홍주의 지적이었다.

 "제 얘기를 들어보시면 알겠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치가 않습니다. 당연히 우리도 환기창을 열고 바깥을 확인해 봤습니다.

 창 밖에는 건장한 장정 하나가 겨우 지날 수 있는 좁은 골목길이 동서로 뚫려 있었습니다. 동쪽 끝엔 높은 철책이 세워져 있었지만, 20미터쯤 떨어진 곳의 서쪽 출구는 큰길로 통하는 길목이었죠. 헌데 그 유일한 출구는 때마침 주차해 있던 택시에 가로막힌 상태였습니다. 운전수는 차창을 열고 태평스레 담배를 피우고 있더군요.

 저는 즉시 환기창을 빠져나가 택시로 달려갔습니다.

 [이봐요, 혹시 학생 하나가 이쪽으로 지나가는 걸 보지 못했습니까?]

 운전수는 담배를 문 채 저를 흘깃 쳐다보더니 퉁명스레 대답했습니다.

 [못 봤소.]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게 말하니 운전수는 벌컥 화를 냈습니다.

 [여보쇼, 사람 말을 못 믿겠다는 거요? 내 눈이 썩은 생선 눈깔인 줄 아쇼? 내가 아까부터 여기 자리를 잡고 담배를 피우면서 저 골목길을 쭉 지켜봤지만 도둑고양이 하나 지나가지 않았수다.]

 어이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달리 사람이 갈 곳이 없었으니까요. 좌우로는 건물이 다닥다닥 어깨를 붙이고 늘어서서 종이 한 장 들이밀 틈도 보이지 않았죠. 길가에 면한 창문은 전부 단단히 닫혀 있었습니다. 길바닥엔 그 흔한 맨홀 뚜껑 하나 붙어 있지 않았고요. 동쪽 끝의 은행 건물을 둘러싼 철책은 높이만 3미터를 넘으니 장대높이뛰기라도 하지 않는 이상은 넘어갈 수가 없겠더군요. 아니, 그 이전에 택시 운전수의 눈에 띄지 않고서는 어디로도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마치 연기처럼 증발해 버렸단 말이군." 설홍주가 중얼거렸다.

 "예,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죠. 우리는 그 길로 운전수와 함께 가까운 경찰서로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신고를 접수한 순사는 수사를 하긴커녕, 노골적으로 귀찮은 기색을 드러낼 뿐이었습니다.

 [이봐요, 술 취한 사람이 잠깐 모습을 감춘 것 가지고 일일이 경찰을 찾아오면 어떻게 합니까? 아마 머리 끝까지 술에 취해서 남의 집 창문을 열고 들어가거나 철책을 뛰어넘거나 했겠죠. 내일 아침이면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날 테니까, 걱정들 하지 말고 돌아들 가세요.]

 하지만 그 사람의 말과는 달리 하루가 아니라 이틀, 사흘이 지나도록 허 군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나흘째 아침, 저와 유 군은 요요기 2정목에 있는 허 군의 하숙집에 찾아가 봤죠. 주인장 말로는 요 며칠간 허 군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겁니다. 사정사정해서 잠긴 방문을 따고 들어가 보니, 과연 사람이 드나든 행적이 없더군요.

 다다미 6조(약 2평) 남짓한 방에 가구라 할 만한 것은 사과 궤짝보다 못한 낡은 책상과 쓰러질 것 같은 책장, 그리고 옷장이 전부였습니다. 유 군은 책상 위에 얇게 쌓인 먼지를 손가락으로 훑어서 확인해 봤습니다.

 [아무래도 사나흘 동안 들어오지 않은 게 맞는 모양이군.]

 우린 다시 경찰에 찾아가서 실종 신고를 냈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별일 없을 거라는 둥, 곧 돌아올 거라는 둥, 별 위안이 되지 않는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했죠. 하지만 3주가 지나도록 허 군은 돌아오지 않았고 소식조차 없는 형편입니다."

 

 이야기를 마친 김수영은 거의 끝까지 태운 담배를 재떨이에 신경질적으로 짓눌렀다.

 "그래서 방학을 틈타 돌아온 김에 날 찾아왔단 말이군."

 설홍주의 말에 김수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분기 어린 목소리를 내뱉었다.

 "예, 아시아에서 첫째 가는 도시로 손꼽히는 동경 시내 한복판에서 사람이 연기처럼 증발했는데도 불구하고, 왜경들은 제대로 된 수사를 펼치지 않고 있습니다. 조선인 유학생이 사라진 사건 따위는 별로 중요치 않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죠. 어쩌면 해결할 자신이 없어서 지레 포기한 건지도 모르고요."

 "그럴 수도 있겠군." 설홍주는 무관심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제 믿을 거라곤 같은 조선인인 선배님밖에 없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이 사건을 맡아 허 군의 행방을 추적해 주십시오."

 김수영은 깊이 머리를 숙이며 부탁했다. 설홍주는 눈을 멀뚱거리며 그 모습을 쳐다보더니만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김 군, 그건 아무래도 힘들겠군."

 그러자 김수영이 대뜸 이렇게 말했다.

 "비용 문제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미 회장과 총무하고 얘기를 끝냈는데, 선배님께서 사건을 수임해 주신다면 동경 여행 비용과 체재 비용을 포함한 일체의 경비를 다 지불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문제가 아닐세. 그 친구가 어디로 갔는지 추적할 필요는 없을 것 같거든."

 "아니, 대관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선배님도 왜경들처럼 허 군이 돌아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라고 말씀하고 싶으신 겁니까?"

 "아니, 아니야. 그런 게 아니라고. 실은 이미 사건을 해결해 버렸다네."

 설홍주가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말에 나와 김수영은 눈이 튀어나올 듯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봐, 설 군. 농담하지 말게. 현장에 가 보지도 않고 허 군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어떻게 알아낼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면박을 줬지만 설홍주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김수영에게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혹시 허 군이 자네한테서 돈을 빌린 적은 없나?"

"예, 생활이 어려울 때마다 조금씩 돈을 빌렸습니다. 다 합치면 이럭저럭 백 원은 될 겁니다. 뭐, 친구 사이에 그 정도 빚은 질 수도 있는 거죠."

 김수영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순순히 대답했다. 설홍주는 담배를 꺼내 들면서 입을 열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허 군은 다른 친구들한테도 그만한 빚을 졌을 걸세. 다 합치면 천 원, 아니, 어쩌면 이천 원 이상일지도 몰라."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그게 뭐 어떻단 말씀입니까?"

 "능력 이상의 큰 빚을 지게 된 사람들은 열심히 일해서 빚을 갚으려는 의욕을 상실하고 어떻게든 쉽고 빠르게 탕감받으려는 유혹에 넘어가기 마련일세. 즉, 도망친다는 말이지."

 그러자 김수영이 그 말에 동감할 수 없다는 듯이 손을 가로저으며 불쾌한 기색이 섞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잠깐만요, 선배님. 그게 하나의 동기가 될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 친구가 화장실에서 어떻게 사라졌는지, 그 수수께끼는 여전히 설명이 안 되잖습니까?"

 "수수께끼 따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어." 담배를 문 설홍주의 입가에 비웃음이 떠올랐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짚어 보도록 하지. 화장실 문이 닫혀 있었으니 허 군은 당연히 환기창으로 몸을 뺐을 거야. 그런데 환기창 아래 골목길은 세 방향이 막혀 있었지. 한쪽 끝은 철책이, 양 옆은 건물이 세워져 있었으니까."

 "정확하게는 네 방향입니다. 반대쪽 끝에 택시가 서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택시 운전수는 허 군을 보지 못했습니다."

"바로 그게 중요한 점이지. 어째서 택시 운전수는 허 군을 보지 못했을까? 대관절 허 군은 어디로 간 걸까?"

 설홍주는 성냥을 성냥갑에 그었다. 칙 소리와 함께 불꽃이 피어올랐고, 뒤이어 뭉게뭉게 담배 연기가 솟아올랐다. 그는 손을 흔들어 성냥불을 끄면서 해답을 제시했다.

 "답은 아주 간단해. 택시는 장애물이 아니라 관문이었어. 즉, 허 군은 한쪽 문을 열고 택시에 들어가 반대편 문을 열고 내린 걸세. 그리곤 유유히 큰길을 따라 내려간 거야. 택시 운전수는 그걸 보고도 못 본 척 한 거고."

 나는, 할 말을 잃고 멍하니 눈을 깜박이는 김수영을 대신해 이렇게 물었다.

 "그렇다면 택시 운전수가 김 군을 속였단 말인가?"

 "어떤 사건을 볼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으면서도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하는 목격자는 둘 중 하나야. 눈을 감고 있었거나, 그렇지 않다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지." 설홍주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아마 허 군은 미리 택시 운전수를 매수해서 그날 밤 11시경에 골목길 끝에 차를 주차해 두라고 일렀겠지. 그러지 않고서야 그렇게 딱 좋은 위치에 택시에 서 있을 리가 없잖아?"

 "정말 간단한 속임수로군." 나는 혀를 내둘렀다.

 "속임수는 간단하면 간단할수록 좋다네. 복잡한 속임수일수록 여기저기 증인을 남기고 증거를 흘릴 수밖에 없고 그만큼 빨리 들통날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단순한 속임수는 어지간해선 발각되지 않아. 왜냐하면 피해자들이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거든. 마치 김 군, 자네처럼 말이야."

 설홍주의 명쾌한 해설에 김수영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요컨대 허 군과 운전수가 한패가 되어 우릴 보기 좋게 속여넘긴 거군요."

 "그렇지. 난 사실 허명주 군이 진짜 유학생인지조차 의심스럽네. 학적부에 이름만 올린 휴학생처럼 편리하고 불확실한 신분도 없거든. 자네가 알고 있는 허 군은 진짜 메이지대 휴학생인 허명주의 이름을 사칭한 사기꾼일 걸세. 더 늦기 전에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경찰에 신고하는 편이 좋을 것 같군."

 "그래야겠군요. 당장 친목회 사람들한테 연락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수영의 얼굴에는 분노와 함께 안도감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다행입니다. 요즘 제 주변에 불가사의한 실종 사건이 잇달아 터지는 바람에 머릿속이 뒤숭숭해서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할 지경이었거든요. 사기꾼한테 속아넘어간 거라니 차라리 안심이 됩니다."

 "실종 사건이 잇달아 터지다니?"

 김수영은 탁자에 놓여진 신문을 펼치더니 제 1면의 윗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바로 엊그제 터진 이 사건을 말하는 겁니다."

 그 손가락 끝은 [거부(巨富) 유원기 씨 의문의 실종, 경찰은 침묵]이란 표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신문을 집어 들고 기사를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이틀 전 12월 13일 저녁 7시경, 경성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거부 유원기(남자, 나이 55세)씨가 인력거를 타고 귀가하던 도중에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유 씨는 경기도 파주군 일대에 넓은 땅을 소유한 대지주로, 2년 전에 가족과 함께 경성으로 이주해 왔다. 농장 일은 동생 유원익(남자, 나이 50세) 씨에게 맡기고, 유 씨 자신은 정릉에 대저택을 짓고 살면서 부동산업과 포목점 사업에 집중했다.

 사고 당일 오전, 유 씨는 집에서 쓸 일용품을 구입하기 위해서 아내 장미화(여자, 나이 49세) 씨, 식모 안정민(여자, 나이 19세) 씨와 함께 미쯔꼬시 백화점(현재의 신세계 백화점)에 갔다. 유 씨는 죽첨정(현재의 서대문구 충정로) 일대의 택지를 매입하는 일로 부동산 업자인 김영택 씨를 저녁 8시에 동대문의 끽차점(찻집)에서 만나기로 약속이 잡혀 있었다.

 저녁 7시 즈음에 바리바리 물건을 사든 아내와 식모는 먼저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유 씨는 혼자서 인력거를 잡아타고 약속 장소로 향한 것으로 보인다. 그 무렵 백화점 앞에서 가로등을 수리하던 전기 기술자 가네무라(26세) 씨는, 유 씨로 추정되는 풍채 좋은 조선인 남성이 인력거에 타면서 큰소리로 '동대문'을 외치는 것을 목격했다.

 하지만 인력거에 탄 것을 마지막으로 유 씨는 종적을 감췄다.

 약속 시간을 훌쩍 넘겨 오후 5시가 되도록 유 씨가 나타나지 않자, 화가 난 김 씨는 어찌된 영문인지 확인하기 위해 직접 정릉 저택으로 찾아갔다. 하지만 유 씨가 약속 장소는 물론 집에도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저녁이 되도록 유 씨가 귀가하지 않기에, 김 씨는 가족들에게 경찰에 신고할 것을 권유했다.

 어제 오전에 실종 신고를 받은 경찰은 이 사건을 최우선 해결 과제로 규정하고 의욕적으로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오후가 되자 경찰은 손바닥 뒤집듯이 태도를 바꿔 수사진을 철수시키고 수사진 전원에 함구령을 내렸다.

 경성 시내 한복판에서 유력한 기업인이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제국 신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경찰이 침묵을 고수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행위가 아닐 것이다. 우리 신문에서는 경찰이 책임감을 가지고 사건을 수사할 것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바이다."

 내가 신문에서 눈을 떼기가 무섭게 설홍주는 껄껄대며 웃었다.

 "과연 신문기자의 견식은 접싯물보다 얕고 길가의 돌덩이만큼이나 보잘것없군."

 "무슨 소린가?"

 "유 씨는 실종된 게 아니라 유괴된 거야. 가족들한테 몸값을 요구하는 전갈이 왔기에 경찰도 신중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게지. 자칫 잘못하다간 범인을 자극해서 유 씨의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으니까." 설홍주는 담배를 입에 문 채 고개를 흔들었다. "이렇게 상식적인 것도 모르는 주제에 기사랍시고 이것저것 써 갈기니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지. 이런 기자들 때문에 조선의 신문이 2류, 3류 신세를 면치 못하는 거야."

 "설 선배님 말씀대로입니다." 김 군이 머리를 주억이며 말했다. "유원기 씨는 방금 전의 이야기에 등장한 메이지대 유학생 유영식 군의 아버님 되십니다. 어젯밤에 이 일로 만나 대화를 나눴습니다만, 그때는 이미 협박장을 받은 뒤였죠. 제가 설 선배님을 찾아가 보라고 권유했지만 아버님의 신변에 위험이 닥칠 것이 염려가 되어 차마 움직이질 못하더군요. 경찰에 신고한 것조차 후회하는 눈치가 역력했습니다."

 "몸값은 얼마나 요구한 것 같나?"

 "듣기로는 1만원(현재 시세로 약 3억 원)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나는 깜짝 놀라 커피잔을 떨어트릴 뻔 했지만, 설홍주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꽤 비싸게 불렀군. 제아무리 대지주라도 하루 이틀 만에 준비할 수 있는 금액은 아니군."

 "예, 유 군은 아무래도 일주일 정도 걸릴 것 같다며, 그 동안 아버님 몸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더군요." 김수영은 설홍주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그 동안 어떻게든 유 군을 설득해서 선배님을 만나 뵙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왜경보다는 선배님이 훨씬 믿음직스러우니까요. 허 군 사건을 앉은 자리에서 해결했다고 말하면 유 군의 생각도 달라질 겁니다."

 "유괴 사건은 아무래도 사람 목숨이 달린 사건이니 가족의 동의 없이 함부로 달려들긴 어렵지. 유 군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면 연락 주게나."

 김수영은 그 뒤로 몇 마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다른 볼 일이 있다며 몸을 일으켰다. 설홍주는 문 밖에까지 나가 그를 배웅했다. 그리고 다시 안락의자로 돌아와 앉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돈만 주면 누구나 입학할 수 있는 와세다 대학에 들어가 아이스하키나 치고 삐루(맥주)나 마시는 주제에 학생복은 꼬박꼬박 챙겨 입고 다니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군. 내 후배지만 정말 한심한 친구야. 게다가 일백 원을 떼이고도 푼돈을 잃은 듯이 대범하니 저렇게 금전 관념이 희박해서야 뭘 하겠나. 기껏해야 나중에 아버지 재산이나 까먹으며 본정통을 주유하는 혼부라(주1)가 되기밖에 더 하겠나."

 "그거야 저 친구 자신이 걱정할 문제지. 어쨌든 자리에 앉은 채 멀리 동경에서 일어난 불가사의한 실종 사건을 단숨에 해결한 자네 능력엔 감탄을 금할 길이 없네그려."

 내 칭찬에도 불구하고 설홍주의 얼굴에 잡힌 주름살은 도무지 펴질 줄을 몰랐다.

 "글쎄, 모든 수수께끼를 다 해명한 건 아닐세. 허 군이 그렇게 요란하게 자취를 감춰야 했던 이유가 뭔지, 아직 그걸 모르겠단 말씀이야. 보통 빚쟁이를 피해 야반도주할 때는 숨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도망치는 법이거든."

 "뭐, 자네라 할지라도 사기꾼의 심리까지 속속들이 파악할 수야 없겠지." 나는 다시 신문을 펼치며 말했다. "그나저나 이 실종 사건 때문에 경찰이 골머리 꽤나 썩히겠군. 사람들의 이목이 적지 않은 경성 시내를 달리던 인력거가 종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은데 말이지."

 "아마 그 인력거꾼은 범인들과 한 패일 거야. 하지만 피해자 가족이나 경찰에게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모를까, 빈약한 신문기사만 가지고선 더 이상 뭐라고 말하기 어렵겠군."

 설홍주는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을 하면서 기지개를 다. 그러더니 의자 등받이에 몸을 파묻고 언짢은 목소리로 투덜투덜 불평을 늘어놓았다..

 "여하간 이해할 수가 없어. 전차, 자동차, 비행기, 기계문명이 창조한 새로운 교통수단이 범람하는 근대 사회에서, 인간의 힘으로 끌어대는 인력거처럼 느리고 불편한 교통수단이 여전한 위세를 떨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불가해한 수수께끼라고."

 나는 그 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아까의 신문기사를 재차 숙독했다. 그러던 중에 문득 생각난 게 있어 입을 열었다.

 "자네 말도 일리는 있네만 꼭 그렇다고 단정 지을 수야 없을 거야. 며칠 전에 만난 인력거꾼은 바람같이 빠른데다가, 엉뚱한 소리로 사람을 즐겁게 해 주더라고. 하지만 경성 시내를 달리는 전차 차장한테서 그런 인간미를 기대할 수는 없겠지. 아무리 근대 사회라 할지라도 인력거가 선사해주는 낭만까지 잃어버려선 안 될 걸세."

 설홍주는 코웃음을 치며 시큰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가? 그 인력거꾼이 대체 얼마나 낭만적이었길래 그러나? 어디 한 번 얘기해 보게."

 "그야 어렵지 않지." 나는 신문을 접으면서 며칠 전에 겪은 일을 순서대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혹시 자네, 명치정(명동) 3정목에 있는 왜식 여관 [용명관(龍明館)]을 알고 있나?"

 "[류우메이칸] 말이군. 물론 알고 있네. 2층짜리 문화주택을 개조해서 여관으로 꾸민 곳이지. 조선에 여행 온 왜인들이 주로 묵는 곳이라더군."

 "아버님 친구분 중에 광동성에서 건어물상을 하는 진 씨라는 분이 있다네. 주로 대만과 요코하마를 오가며 장사를 하는 분이신데, 요번에 중요한 거래 때문에 조선에 들어와 그 여관에 묵고 계셨네. 헌데 갑자기 환경이 바뀌는 바람에 지병인 신경통이 도져서 고생이 심하셨나 보더라고. 다행히 내가 여기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시고, 여관 종업원한테 부탁해 왕진을 와 달라는 전보를 쳤다네."

 "그렇게 말하니 기억나는군. 정확하게 엿새 전, 자네가 아버님 친구분을 뵈어야 한다면서 왕진 가방을 들고 나갔지. 시간은 오후 1시 20분이었을 거야."

 "자네 기억력은 정말 대단하군. 맞아, 바로 그 시간에 요 앞에 나가 인력거를 잡았지." 나는 곁눈질로 창문을 내다보며 말을 이었다. "얼마 되지 않아 인력거 한 대가 눈앞에 멈춰 섰네. 경성 시내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검은색 2인승 인력거였지. 그리고 인력거꾼은 마치 인력거꾼의 전형과도 같은 청년이었다네. 며칠 동안 제대로 씻지 않아 꾀죄죄한 얼굴은 온통 턱수염과 콧수염에 뒤덮였고, 기름에 떡 진 머리에선 고약한 냄새가 풍겼지. 저고리와 바지는 온통 땟국물에 절어서 본래의 색깔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어.

 그는 공손히 허리를 숙이며 이렇게 묻더군.

 [손님, 어디까지 가십니까요?]

 [명치정 용명관에 가네. 가는 길은 알고 있나?]

 [류우메이칸 말씀이군요. 물론 알고 있습죠.]

 그 대목에서 설홍주가 손을 들어 내 말을 중단시켰다.

 "잠깐만, 자네는 행선지를 [용명관]이라고 했단 말인가?"

 "내가 받은 전보에는 여관 이름이 한자로 龍明館(용명관)이라고 쓰여 있었거든. 나는 그게 왜식 여관인 줄 모르고 처음부터 동음(東音: 조선 한자음)으로 읽었지. 그랬더니 그게 그만 입에 붙어 버리더군."

 "아까부터 자꾸 '용명관'이라고 말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군."

 설홍주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렸고, 나는 다시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왔다.

 "아무튼 아버님 친구분한테 밉보이거나 할 수야 없는 노릇이지. 자칫 잘못하다간 나중에 된통 혼날 것 아닌가? 그래서 조금이라도 빨리 가려고 인력거꾼에게 이렇게 말했지.

 [여보시오, 30분 안에 당도하면 내가 5전을 얹어 주리.]

 [걱정 붙들어 매십쇼. 제가 틀림없이 30분 안에 뫼셔다 드리겠습니다요.]

 인력거꾼은 아주 신이 나서 달리더군. 지붕을 덮었는데도 불구하고 씽씽 찬바람이 부는 소리가 귓가에 진동을 하더라고. 그렇게 빨리 달리는 인력거는 난생 처음이었어.

 보통 인력거꾼이라면 달리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쳐 혀를 빼물겠지만, 그 친구는 힘이 남아도는지 잘도 떠들어대더군. 요즘 날씨가 어떻다느니, 요즘 종로 바닥의 장사꾼들 사정이 어떻다느니, 얘깃거리도 쉬이 떨어지지 않더라고.

 그런데 청계천변을 따라서 내려가는 도중에 냇가를 힐끔거리며 쳐다보더니 이런 얘기를 꺼내더군.

 [재작년 요맘때, 저쯤에서 간이 파 먹힌 갓난아기 시체가 발견됐습죠. 그땐 정말 난리도 아니었습니다요. 문둥이들한테 잡아먹힌 거라느니, 칼질 좋아하는 왜놈들이 죽인 거라느니, 별의별 소문이 다 돌았습니다요.]

 [나도 잘 알고 있네. 정말이지, 요즘처럼 추울 때는 다시 생각하기조차 싫어지는 사건이지.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거든.]

 헌데 내 말이 끝나자마자 인력거꾼이 피식 웃음을 흘리더니 전혀 엉뚱한 소릴 하더라고.

 [아, 손도끼가 딱딱해서 오싹해지는 놈입습죠.]

 [지금 뭐라고 했나?]

 내가 뭔가 잘못 들었나 싶어서 그렇게 물었더니, 그 친구가 갑자기 머리를 휘휘 젓는 거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녜요. 아, 손님께선 잠시 눈이라도 붙이시지 그러십니까요? 지금부터는 더 속도를 내서 뛰어야 할 것 같거든요.]

 그 다음부터는 입을 굳게 다물고 뛰는 일에만 매진하더군. 말을 붙여도 들은 척을 하질 않더라니까. 갑자기 성격이나 태도가 일변하는 모습이 [지키‐루 박사와 하이도씨(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를 방불케 하더군.

 아무튼, 앞뒤좌우로 흔들리는 인력거 안에 말없이 앉아 있노라니 절로 졸음이 밀려들더군.   그래서 왕진가방을 껴안은 채 한숨 잤지. 아마 한 십 분 정도 푹 잤을 거야.

 [손님, 이제 다 왔습니다요.]

 인력거꾼이 쾌활하게 외치는 소리에 눈을 뜨니 바로 코앞에 용명관 간판이 보이더군. 나는 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서 시간을 확인했지.

 [정확하게 27분 걸렸구려. 인력거삯 5전에 아까 약조한 5전을 얹어 드리리라.]

 내가 인력거에서 내려 삯을 치르니, 그 친구는 돈을 허리춤의 전대에 집어넣으며 싱글벙글 웃더군.

 [어이구,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은 하루가 채 가기도 전에 80전이나 벌었으니 정말 운수 좋은 날이군요. 가끔은 이런 날도 있어야 사는 재미가 있는 거죠.]

 그리고 그는 새로운 손님을 찾아 다시 인력거를 끌고 갔지. 참 별스럽고 희한한 인력거꾼이지만, 그런 사람이 있기 때문에 인력거에선 전차나 자동차에선 느낄 수 없는 낭만이 묻어나는 걸세."

 내가 이야기를 끝마치기 무섭게, 설홍주는 손뼉을 치며 껄껄 웃었다.

 "대단해, 왕도손. 정말 대단해! 세세한 부분까지 아주 잘 관찰했군. 게다가 엿새 전의 일인데도 어제 일처럼 잘 기억하고 있고 말이야. 역시 나하고 같이 지낸 보람이 있는 모양이야."

 "뭘, 자네처럼 눈곱만한 것까지 찾아서 들춰내는 경지에 도달하진 못했네."

 "어쨌든 그 이야기 말일세. 결론에는 전혀 동감할 수는 없지만 내용면에선 상당히 흥미로운 게 많군. 가는 도중에 한 몇 분쯤 잔 것 같나? 그리고 자는 데 불편하진 않았나?"

 "한 10분 정도 될 거야. 그리고 누워서 자듯이 아주 편히 잤네. 중간에 인력거가 크게 요동치는 바람에 잠깐 눈을 뜨긴 했지만 말이야."

 "혹시 가방 안의 내용물이 헝클어지진 않았나?"

 "그건 또 어떻게 알았나?"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했다. "나중에 여관에 들어가 진씨한테 침을 놓으려고 왕진 가방을 열어 보니 가방 안의 침통과 약재가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더군."

 "그 인력거꾼의 얼굴은 아직 잘 기억하고 있겠지?"

 "물론이지. 삯을 치렀을 때 입이 찢어져라 웃던 표정까지 머리에 선하게 남아 있네."

 "잘 됐군. 그리고 그 친구가 [손도끼가 딱딱해서 오싹해지는 놈입습죠.]라고 말한 게 확실하지?"

 "설마 내 기억력을 의심하는 건가?" 나는 조금 감정이 실린 목소리로 이렇게 단언했다. "분명히 그렇게 말한 게 맞아. 워낙 생뚱맞은 말인지라 잊어먹을래야 잊어먹을 수가 없더군."

 "이런, 너무 불쾌하게 생각하진 말게. 기분 나빴다면 사과하겠네. 그나저나 이제 슬슬 점심시간이 가까워진 것 같군. 아까 허도순 부인이 말하기론 오늘 점심은 김치찌개라고 했으니 결코 놓쳐선 안 되겠지." 그는 벽시계 쪽을 힐끗 보더니 말을 이었다. "혹시 자네 오후에 다른 약속이 잡혀 있나?"

 "아니, 오늘은 별다른 약속은 없네."

 "그렇다면 점심을 먹은 다음에 나와 함께 움직이지 않겠나?"

 "그래도 상관없네만, 대체 어딜 가려고 그러나?"

 내 물음에 그는 싱긋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자네가 말한 인력거의 낭만이란 걸 느껴보려고 그러네."

 


 

 우리는 허 부인이 차려준 식사를 뒤에 외출할 채비를 갖췄다. 나는 치파오(중국식 두루마기)에 도리우찌(주2)를 눌러썼고, 설홍주는 양장에 중절모 차림이었다.

 설홍주는 길거리에 나가자마자 우체국을 찾았다.

 "먼저 저기 우체국에 들렀다 가세. 김 군에게 전보를 칠 게 있어서 그러네."

 "김 군이라면 아까 김수영 군 말인가?"

 "맞아, 좀 부탁할 게 있거든."

 그는 옆 건물에 있는 우체국에 들어가 전보를 친 뒤에, 다시 거리로 나와 인력거를 잡았다. 그리고 인력거에 타면서 행선지를 밝혔다.

 "일단 명치정의 [류우메이칸]으로 가 주시오." 그러더니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하더니 이런 말을 덧붙였다. "지금 시간이 1시 6분이군. 만일 35분 내로 도착하면 5전을 얹어 주리다."

 어림잡아 마흔 줄에 접어든 인력거꾼은 자신 없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었다.

 "[류우메이칸]이라면 우동집 옆에 있는 왜식 여관 말씀하시는 거죠? 35분이라면 좀 아슬아슬할 것 같은데, 5전이 걸렸으니 죽도록 해 보지요."

 그는 두 손에 침을 뱉고 쓱쓱 비비더니 손잡이를 고쳐 잡고 달려 나갔다. 좁은 길을 빠져나가 넓은 길로 들어서자 본격적으로 속력이 붙었다.

 "이 인력거가 달리는 속도는 자네가 엿새 전에 탔던 거에 비하면 어떤가?"

 나는 지붕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주변 풍경이 물결치며 흘러가는 모습을 보면서 대강의 속도를 가늠했다.

 "그보단 조금 느린 편이군.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30분 안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네."

 "글쎄, 그거야 두고 보면 알겠지."

 넓은 청계천변을 따라서 내려가던 인력거는 갑자기 좁은 골목으로 방향을 바꿔 초라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구불텅한 길을 지루하게 맴돌았다. 한참을 그렇게 돌다가 다시 큰길로 나가니 본정이었고, 조금 더 달리니 명치정이었다. 인력거가 천천히 속도를 줄이면서 바퀴 소리가 잦아들고 인력거꾼이 헐떡이는 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낯익은 [류우메이칸]의 커다란 나무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다 왔습니다. 손님."

 물에 빠진 사람처럼 온몸이 땀에 젖은 인력거꾼은 연신 어깨를 들썩이며 입에서 하얀 김을 토해냈다. 그리고 소맷자락으로 얼굴에 배인 땀을 훔치며 기대에 찬 눈빛으로 설홍주를 바라봤다.

 "정확하게 38분 걸렸군. 하지만 괜히 야박하게 굴 필요는 없겠지." 설홍주는 회중시계를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좋소. 조금 늦긴 했지만 5전을 더 얹어 주도록 하겠소. 이젠 종로 경찰서로 갑시다."

 "종로 경찰서? 아니, 여기서 내릴 게 아니었수? 그럼 진작에 말을 해 줄 것이지." 인력거꾼은 인상을 구기며 투덜거렸다.

 "여기서 거기까지 가는 삯은 따로 계산해 줄 테니, 어서 가기나 합시다. 아, 이번엔 좀 천천히 달려도 상관없소."

 그 말에 인력거꾼은 불만을 누그러뜨리고 다시 인력거를 몰기 시작했다.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해 설홍주를 붙잡고 물었다.

 "여보게, 명치정에 왔다가 아무것도 안 하고 곧장 종로통에 가다니, 대체 뭐 하는 짓인가?"

 "아무것도 안 하긴 뭘 아무것도 안 했다는 말인가?" 설홍주는 내 코앞에 회중시계를 들이밀었다. "시간을 재지 않았나, 시간을."

 "우리 집에서 여기까지 오는 시간을 재서 뭐 하겠다는 건가?" 나는 점점 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것도 내 추리를 입증하는 하나의 증거가 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진짜 중요한 증거는 종로 경찰서에 가서 확인해 보도록 하지." 그는 빙그레 웃으며 입을 닫았다.

 인력거는 넓디넓은 황금정(을지로) 대로를 따라 종로통으로 올라가,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 한복판에 기세등등하게 일어선 종로 경찰서 앞에 머리를 숙이고 멈췄다. 설홍주는 차에서 내려 인력거꾼에게 무려 이십 전이나 되는 돈을 쥐어줬다. 인력거꾼은 좋아서 입이 귀밑까지 찢어질 지경이었다.

 "아니, 무슨 인력거삯을 그렇게 많이 주나?"

 나는 설홍주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하지만 그는 여유로운 미소로 대답할 뿐이었다.

 "뭘, 이 정도 손해는 투자라고 생각하면 되지"

 내가 괜한 허세는 부리지 말라고 면박을 주려는 찰나, 경찰서 앞을 지키던 젊은 순사보(순경)가 눈꼬리를 치켜세우며 다가왔다.

 "당신들은 누군데 여기서 얼씬대는 거요?"

 마치 금방이라도 허리에 찬 칼을 휘두를 것 같이 위압적인 태도였다. 인력거꾼은 겁먹은 표정으로 인력거를 끌고 도망치듯이 사라졌지만 설홍주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레이시치(零七) 경부(경감)님을 뵈러 왔소."

 "아니, 당신이 뭔데 경부님을 뵌다 만다 소리를 하는 거요?"

 순사보는 얼굴을 붉히며 언성을 높였다. 그 때, 방금 전까지 문가에 서 있던 나이든 순사가 설홍주를 알아보고 허둥지둥 달려 나와 인사를 올렸다.

 "아이쿠, 이거 설 선생님 아니십니까?" 그러더니 순사보의 귀를 붙들고 버럭 호통을 쳤다.   "이 멍청한 놈! 경성 제일의 탐정 설홍주 선생님도 몰라 뵈는 주제에 무슨 놈의 경찰 노릇을 하겠다는 거야?"

 그 말에 사색이 된 순사보는 설홍주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했다. 하지만 설홍주는 그의 무례함을 따지지 않고 너그러이 웃어넘겼다.

 "굳이 사과할 필요는 없으니 이제 그만들 하시오. 그나저나 이젠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소?"

 "물론입니다. 어서 들어가십시오. 경부님은 2층의 특별수사본부에 계실 겁니다." 젊은 순사보는 황급히 말했다.

 "이거 고맙소이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부탁할 게 있소. 좀 있다가 김수영이라는 학생이 올 텐데, 그 친구를 특별수사본부로 데려와 주시오."

 "옛, 잘 알겠습니다."

 설홍주의 당부에 순사와 순사보는 일제히 발뒤꿈치를 부딪치며 기립 자세를 취했다. 그 모습을 뒤로 흘리며 우리는 경찰서 안으로 들어갔다.

 1층은 사복 경찰, 제복 경찰, 피해자, 용의자, 수많은 사람들이 뒤섞여 떠드는 소리, 전화벨 울리는 소리, 타자기 두들기는 소리로 시끄럽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2층은 그와는 대조적으로 조용했다. 긴 복도를 사이에 두고 줄줄이 늘어선 방들은 한결 같은 어둠과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오른쪽에서 세 번째 방 문에는 [특별수사본부(特別搜査本部)]란 글씨가 대문짝만하게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설홍주는 그 문을 건성으로 두들기더니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벌컥 열어젖혔다.

 특별수사본부라고 해 봐야 평범한 회의실에 거창한 이름을 붙인 것뿐이었다. 안에는 넓은 탁자를 둘러싸고 대여섯 명의 경찰들이 모여 앉아 무거운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니, 자네들이 여긴 웬일인가?"

 창가 쪽 자리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레이시치 레이토우(零七禮島) 경부가 엉거주춤 일어나 우릴 맞이했다. 다른 경찰들도 설홍주의 얼굴을 알아보고 분분히 인사를 했다.

 "오랜만입니다, 경부님. 요번에 유 씨 실종 사건은 잘 풀려 가십니까?"

 설홍주와 악수를 나누던 레이시치 경부는 떫은 감을 씹은 표정을 지었다.

 "뭐야, 자네도 거기에 관심이 있나? 어설프게 발을 들이밀 생각이라면 그만 두게나."

 "협박장 때문입니까?"

 "이미 들은 모양이군. 뭐, 자네한텐 특별히 숨길 생각도 없네만."

 레이시치 경부는 탁자 위에 놓여 있던 편지봉투를 설홍주에게 건네줬다. 안에는 신문 활자를 오려 붙여 만든 편지가 들어 있었다.

 "유원기 씨는 우리가 데리고 있다. 20일까지 1만원을 준비하고 다음 연락을 기다려라. 그리고 경찰은 모든 수사를 중지하고 철수하라. 경찰 수사가 계속되는 한, 인질의 안전은 보장할 수 없다." 설홍주는 편지를 다 읽은 다음에 레이시치 경부에게 눈길을 돌렸다. "요구사항을 이해하기 쉽게 잘 정리해 놨군요."

 "맞아, 덕분에 지금은 대놓고 수사할 수도 없는 처지야. 유 씨 가족의 성화를 견디다 못해 모든 경찰 병력을 철수시키고, 은밀히 사복 형사를 풀어서 사건을 수사하고 있지." 경부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유 씨가 백화점 앞에서 인력거를 잡아탄 뒤에 종적을 감췄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형편이라네."

 "신문을 보니 유 씨가 인력거를 타는 광경을 목격한 사람이 있는 모양이던데, 혹시 인력거꾼의 인상착의는 확보하지 못했습니까?"

 "아, 가네무라 말이지? 틀렸어." 경부는 투실투실한 볼살을 실룩거리며 담배를 뻑뻑 피웠다. "사건 당시 가네무라는 미쯔꼬시 백화점 앞의 가로등을 고치던 중이었어. 그런데 날이 어두운데다가 가로등 불빛도 없었던 탓에 사람의 얼굴은 도무지 분별할 수 없었다는군. 그저 실루엣처럼 새까만 윤곽선으로만 보였다는 거야."

 "다른 목격자는 없습니까? "

 "없어. 혹시나 해서 경성의 인력거 조합에도 사람을 보내 조사해 봤지만 범행 당일 도둑맞거나 사라진 인력거는 없다는군. 아마 범행 전에 미리 준비해 둔 거겠지. 정말 주도면밀한 놈들이야. 지금은 뭐든 단서를 잡아 보려고 사복 형사를 풀어 명치정에서부터 동대문까지 이어지는 길을 샅샅이 뒤져보는 중이라네. 하지만 아직까진 별 소득이 없군."

 말을 마친 경부는 탁자에 깔린 경성 시내 지도를 우울한 눈으로 바라봤다. 명치정에서 동대문 사이의 길이란 길에는 온통 조그만 깃발이 꽂혀 있었다. 설홍주는 경부의 시선을 쫓아 지도를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야 당연한 일이죠. 어두운 밤거리를 달리는 인력거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까요."

 "맞아, 설령 봤다고 하더라도 수상쩍은 낌새를 눈치채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 레이시치 경부는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며 재떨이에 담뱃불을 비벼서 껐다. "어쨌든 그 망할 놈의 인력거꾼이 유 씨를 납치해 간 게 분명한데, 어디로 갔는지는 고사하고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알 수가 없으니 정말 답답한 일이지."

 경부는 물론 그 부하들도 한결같이 침중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떨궜다. 설홍주는 장내를 지배하는 무거운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제가 도와드리도록 할까요?"

 "어떻게? 범인이 누군지, 그리고 유 씨가 어디로 끌려갔는지 알아낼 수 있단 말인가?" 레이시치 경부는 코웃음을 쳤다.

 "글쎄요, 다른 건 몰라도 범인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이제 곧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설홍주가 가볍게 던진 말은 엄청난 충격이 되어 사람들의 머리를 강타했다. 레이시치 경부는 불신과 회의가 서린 눈빛으로 설홍주를 응시했다.

 "그게 정말인가? 설마 농담은 아니겠지?"

 그때 마침 누군가 밖에서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설홍주는 손가락을 튕겨 딱 소리를 내며 말했다.

 "제가 기다리던 게 온 모양이군요." 그리고 경부를 대신해 목소리를 높였다. "어서 들어오게."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아까의 순사보와 김수영 학생이었다. 김수영은 경찰서는 처음이란 듯이 불안한 얼굴로 쭈뼛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이쪽은 제 고등학교 후배인 김수영이라 합니다. 지금은 와세다 대학 영문학과 학생으로 겨울방학을 맞아 조선에 돌아왔습니다."

 설홍주가 김수영을 소개하자 레이시치 경부는 그에게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아, 그래? 그런데 이 친구가 이번 사건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이제 곧 알게 되실 겁니다." 그리고 설홍주는 김수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까 전보로 가져오라고 한 건 가져왔나?"

 "아, 예. 허 군이 찍힌 사진은 네가 필름(네거티브 필름)까지 모두 다 챙겨왔습니다."

 김수영은 손에 들고 있던 사진 봉투를 탁자 위에 올려놨다. 그리고 거기서 한 장의 사진을 골라 설홍주에게 내밀었다.

 "예, 이게 제일 잘 나온 사진입니다."

 일본 신사를 배경으로 학생복을 입은 젊은이가 손으로 V자를 그리며 포즈를 취하고 있는 독사진이었다. 설홍주는 그 사진을 보면서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생각보다 훨씬 잘 생긴 친구군. 이 얼굴에 덧칠을 해야 된다는 게 조금은 안타깝군."

 그는 사진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품에서 만년필을 꺼냈다. 그러더니 나와 레이시치 경부를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경부님은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왕도손 군, 자네를 위해서 쉽게 변장하는 법을 알려 주겠네. 첫 번째는 머리모양을 바꾸거나 모자를 쓰는 거고, 두 번째는 안경을 쓰거나 벗는 거고, 세 번째는 수염을 깎거나 붙이는 걸세."

 "갑자기 웬 변장 얘길 하는 건가?"

 레이시치 경부가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묻자, 설홍주는 사진을 톡톡 치면서 말했다.

 "아, 경부님. 여기 이 사진에 찍힌 젊은이를 잘 보십시오. 이 친구는 허명주란 이름으로 일본에서 조선인 유학생들을 등쳐먹던 사기꾼입니다."

 "그게 뭐 어쨌다고?" 경부는 눈을 멀뚱거리며 사진을 내려봤다.

 "그럼 이 친구에게 간단한 변장을 시켜 보겠습니다."

 설홍주는 번개같이 만년필을 휘둘러 허 군의 코밑과 턱밑에 수염을 그려 넣었다. 나는 그걸 보고 화들짝 놀라 외쳤다.

 "아니, 이건 그 인력거꾼이잖아?"

 수염이 붙은 허 군의 얼굴은 조금 덜 지저분하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엿새 전에 봤던 인력거꾼의 얼굴과 완전히 똑같았다. 설홍주의 입가에는 득의만만한 미소가 떠올랐다.

 "내 그럴 줄 알았지." 그는 지도로 시선을 옮겨 명치정과 동대문 사이의 길을 샅샅이 훑어봤다. "흠, 어디 보자. 명치정 1정목에서부터 청계천변까지 연결된 고갯길, 장충단 공원으로 가는 내리막길, 경성제대까지 이어진 오르막길이 비교적 경사가 심한 비탈길이군."

 설홍주는 방금 자신이 언급한 길에 꽂혀 있 깃발만 남기고, 다른 깃발은 모두 뽑아냈다. 그리고 나머지 사진과 필름을 지도 위에 펼쳤다.

 "경부님. 이 사진 속의 인물은 좀스러운 사기꾼인 동시에 유원기 씨를 납치한 대담한 유괴범이기도 합니다. 사건 당일에는 얼굴을 더럽히고 콧수염과 턱수염을 붙여 인력거꾼으로 변장을 했지만, 지금은 수염을 모두 떼어내고 유들유들한 낯짝을 드러낸 채 경성 시내를 돌아다니고 있겠죠. 여기 깃발이 꽂혀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탐문 수사를 벌이면 반드시 놈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레이시치 경부는 경찰에게 필요한 덕목 중에서 호기심은 약간 모자란 편이었다. 하지만 행동력에 있어서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그는 설홍주를 붙들고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묻는 대신, 두 손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부하들에게 호통을 쳤다.

 "당장 이 사진을 인쇄소에 가져가서 대량으로 찍어! 그리고 여기 깃발이 꽂힌 지역을 중심을 집중적으로 수색해서 그 빌어먹을 녀석을 찾아내라고! 꾸물럭대지 말고 당장 튀어나가!"

 


 다음날 새벽이 되기 전에 사건은 모두 해결되었다. 유괴범 일당은 모두 체포되고 유원기 씨는 경찰의 보호 아래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다. 경성 시내의 신문이란 신문은 경찰의 쾌속한 사건 해결을 상찬하는 기사로 도배가 되었다.

 동트기 전에 유영식이 하숙집에 찾아와 설홍주에게 큰절을 올리며 두툼한 금일봉을 전달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구출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사람이 설홍주란 사실을 김수영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리고 열 시 무렵에는 레이시치 경부가 찾아와 설홍주의 활약을 치하했다. 우리는 응접실에 앉아 허도순 부인이 끓여준 생강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무엇보다도 유원기 씨가 무사히 구출되어 다행입니다."

 설홍주는 그렇게 말하면서 레이시치 경부가 건네준 고급 담배를 입에 물었다. 경부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지금 취조 중이지만, 놈들은 몸값을 받은 다음에 유원기 씨를 해치울 생각이었었나 보더라고. 그 전에 사건을 해결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놈들은 어디서 잡았습니까?" 내가 물었다.

 "종로통에서 경성제대로 가는 오르막길이었어. 아래쪽 사거리에서 야채 행상을 하던 할머니가 사건 당일, 저녁 7시 반쯤에 인력거 한 대가 오르막길로 가는 걸 봤다는 거야." 경부는 담배 한 대를 입에 물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자정이 되기 전에 놈의 은신처를 찾아낼 수 있었네. 부동산 업자 중에서 녀석의 얼굴을 알아본 사람이 있었거든. 그 사람 말로는, 그 녀석이 보름 전에 근처에 있는 2층짜리 문화주택을 월세로 빌렸다는 거야. 거길 찾아가 봤더니 마당에는 인력거가 떡 하니 놓여져 있더라고. 더 우물쭈물할 것 없다 싶어서 그대로 덮쳤지."

 "일당은 몇이나 됐습니까?"

 설홍주의 물음에 경부는 담뱃불을 붙이며 답했다.

 "세 명이었어. 두목은 그 허여멀건 조선인 젊은이였네. 도쿄(동경)에서 유학생 허명주를 사칭했던 바로 그 놈이지. 본명은 안성준, 나이는 스물 셋에 불과하지만 웬만한 범죄는 거의 다 통달한 무서운 녀석이지. 게다가 눈치도 빠르고 머리도 비상해서 열여덟 이후로는 경찰 수사망에 잡힌 적이 없지."

 "하지만 그 기록도 이젠 끝이군요."

 "그렇지. 경찰 입장에서 앓던 이를 뺀 것처럼 후련하기 그지없는 일이지."

 "헌데 설 군, 궁금한 게 있네." 나는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어째서 내가 만난 인력거꾼이 허 군, 아니, 안성준이란 자와 동일인물이라고 생각한 건가? 그리고 녀석이 범인일 거라고 단정하게 된 이유는 뭐지?"

 "그야 어제 자네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면서부터였지." 설홍주는 재떨이에 담뱃재를 털었다.   "먼저, 조선인 노동자의 문맹률은 무척 높은 편이란 사실을 말해 주고 싶군. 한자는 고사하고 한글을 아는 사람조차 별로 없는 형편이야. 그런데 엿새 전에 자네가 만난 인력거꾼은 [용명관(龍明館)]을 [류우메이칸]이라는 일본식 발음으로 고쳐서 말할 정도로 한자에 밝았단 말씀이야."

 "여관 이름을 일본어로 말했다고 해서 한자에 밝다고 말할 수는 없지. 누군가에게 들은 건지도 모르잖아?"

 "나도 처음엔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이내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밖에 없었지." 설홍주는 담배를 뻐끔거리며 말했다. "인력거를 타고 청계천변을 달리던 중에 우연히 2년 전의 유아 살인사건을 화제로 삼았다고 했지? 그때 오간 대화를 다시 한 번 들려주지 않겠나?"

 "그야 어렵지 않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그 사건만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진다.]고 했더니, 인력거꾼은 [손도끼가 딱딱해서 오싹해지는 놈입습죠.]라고 말했지."

 "손도끼가 딱딱해서 오싹하다고? 그게 대체 무슨 뜻이지?"

 레이시치 경부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우릴 쳐다봤다. 설홍주는 담배 연기와 함께 가벼운 미소를 흘렸다.

 "아마 경부님도 이해하기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요? [손나 또끼와 아따따까이 오사께데모 노마쇼(そんな時は暖かいお酒でも飲ましょう)]"

 경부는 벌떡 일어나 입에서 한 뭉텅이의 담배 연기를 토해내며 외쳤다.

 "[그럴 때는 따뜻한 술이라도 드시지요]라고?"

 "그렇습니다. 인력거꾼은 일본어로 그렇게 말한 겁니다." 설홍주는 시선을 다시 내게로 돌렸다. "보통 조선인이라면 그 인력거꾼이 일본어를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대번에 눈치챘을 거야. 하지만 자네는 중국인이지. 조선인 인력거꾼은 당연히 조선어를 말할 거라는 선입관에 사로잡혀, 그가 말한 일본어를 머릿속에서 억지로 조선어에 꿰어 맞췄어. 그리고 [손도끼가 딱딱해서 오싹해지는 놈입습죠]라는 뜻 모를 문장으로 인식하게 된 거야."

 "이제야 알 것 같네." 나는 그제서야 그날의 대화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등골이 오싹해진다]고 하니까, [그럴 땐 따뜻한 술이라도 드시는 게 어떻겠습니까?]라고 말한 거였군."

 "맞았어.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 나는 그 인력거꾼의 정체를 의심하게 되었다네. 조선에서도 오사케(술)니 와바시(젓가락)니 하는 일본어 단어가 일상적으로 통하긴 하네만, 완성된 일본어 문장을 유창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지식인 계급으로 한정되어 있거든.

 인력거꾼, 즉 안성준은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속도를 내야 한다는 핑계로 입을 다물어 버렸어. 그리고 명치정으로 이어지는 가장 짧은 길로 뛰어갔지. 그 길은 모든 인력거꾼이 기피하는 고갯길이었어.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명치정까지 불과 27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던 거야. 다른 인력거꾼처럼 평지의 우회로로 달렸다면 30분을 훨씬 넘겼겠지."

 "어제 인력거를 타고 [류우메이칸]에 간 건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였군."

 "그렇다네. 그리고 오르막길을 달리는 중에는 인력거가 자연스레 뒤로 젖혀지게 되지. 덕분에 자네는 마치 누운 듯이 편히 잘 수 있었던 거야. 하지만 짧은 내리막으로 접어들 때 인력거의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리면서 크게 흔들렸겠지. 그 충격으로 자네가 선잠에서 깨어난 걸세. 가방이 뒤집혀 내용물이 뒤섞인 것도 그때 일이겠지.

 일본어에 능하고 일부러 비탈길을 달리는 인력거꾼이라…… 거기서 나는 어제 오전에 김 군을 통해 알게 된 일련의 사건을 떠올렸네. 첫 번째, 사기 사건의 주인공인 허명주는 일본에서 꽤 오랫동안 유학생 행세를 했으니 일본어엔 능숙해졌겠지. 어쩌면 무심결에 입에서 일본어가 튀어나올 정도로 몸에 배었을지도 몰라. 두 번째 허명주는 숙련된 마라손(마라톤) 주자이기도 했어. 세 번째, 며칠 전에 유괴당한 유원기 씨는 경기회 회원인 유영식 군의 아버지였어. 네 번째, 유원 씨는 인력거를 타고 가는 도중에 납치당했지.

 마지막으로 왕도손, 엿새 전에 자네가 만난 인력거꾼이 허 군일 것이라고 가정하니 모든 사건이 하나로 연결되더군.

 허명주, 즉 안성준은 경기회 사람들에게서 푼돈을 뜯어먹는 데 만족할 정도로 그릇이 작은 녀석이 아니었어. 녀석은 틈날 때마다 그들 부잣집 도련님들의 인적 사항을 샅샅이 조사했어. 뭔가 약점을 잡아서 협박하거나, 그 가족을 납치해 큰 돈을 뜯어낼 생각이었겠지. 그리고 첫 목표로 유원기 씨를 선택한 거야.

 녀석이 일본에서 그렇게 요란한 방법을 동원해 가며 자취를 감춘 이유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어. 술자리에서 사라진 조선인 유학생에게 관심을 보일 일본 경찰은 없을 거라고 계산했겠지. 실제로 그 계산은 정확했고."

 은근한 비난에 레이시치 경부는 얼굴을 붉혔지만 차마 반박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사실이자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설홍주는 그의 얼굴을 본 체 만 체 설명을 계속했다.

 "녀석은 조선에 오자마자 옛 동료를 모으고 북촌의 비탈길을 골라 아지트를 구했지. 북촌엔 가로등이 없어 해가 저물면 코앞을 분간하기조차 어렵고, 경사가 심한 비탈길엔 인가가 드문데다가 다른 인력거도 다니질 않아 사람들의 눈에 뜨일 염려가 없기 때문이지. (주3)

 동료들이 유 씨를 감시하고 적당한 기회를 물색하는 동안, 그 자신은 인력거꾼 행세가 몸에 배도록 맹훈련을 했지. 그래서 수염을 붙여 간단한 변장을 하고 인력거를 끌고 다닌 거야.

 물론 고갯길을 오르내리는 것도 훈련의 일환으로 삼았겠지.

 사건 당일 녀석은 인력거에 유씨를 태운 채 불빛 하나 없는 깜깜한 오르막길을 일직선으로 올라갔겠지. 도중에 기다리고 있던 동료들이 뛰어나와 꾸벅꾸벅 졸고 있던 유 씨의 입을 틀어막고 꽁꽁 묶은 다음에 그대로 아지트로 끌고 갔을 거야.

 계획대로 일이 진행됐다면 놈들은 거액을 챙겨 잠적할 수 있었겠지. 뒤에는 참혹하게 살해당한 유 씨의 시체와, 엄청난 비난을 뒤집어쓰고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쥐어뜯는 한 무더기의 경찰을 남긴 채.

 하지만 불행히도 안성준은 훈련 도중에 자네를 태우고 흥에 겨워 떠들다가 태연하게 일본어를 지껄이는 실수를 저질렀어. 하필이면 나와 같이 사는 자네를 말이야. 그날, 녀석은 10전을 받아 쥐고 운수 좋은 날이라며 좋아했지만 실제로는 아주 운수 나쁜 날이었던 거야."

 나와 레이시치 경부는 그의 추리에 재차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부가 차를 마시고 다시 경찰서로 돌아간 뒤에 나는 이렇게 물었다.

 "이번 사건으로 경부는 명성을 얻었고 유 씨 가족은 아버지를 얻었고 신문은 기사거리를 얻었는데, 자넨 무얼 얻었나?"

 "글쎄, 일단은 재미있는 사건을 해결했다는 성취감을 들 수 있겠군."

 그는 유영식에게 받은 금일봉 봉투를 뜯었다. 그리고 안에 있는 지폐를 세면서 휘파람을 불었다.

 "그리고 흉악한 범죄자에게 희생당할 뻔한 사람을 못 본체하지 않은 대가로 100원이란 돈을 얻을 수 있었지. 자, 왕도손 군. 오늘 저녁엔 오랜만에 종로 3정목에 나가 한잔 거하게 걸치는 게 어떻겠나? 물론 술값은 내가 부담하는 걸로 하지!"

                                 <끝>


(주1: 청계천 이남의 일본인 거주지 혼마치(본정: 오늘날의 충무로 일대)를 돌아다니는 젊은 남녀를 가리키는 말. 긴자 일대를 떠돌아다니며 모던 보이, 모던 걸 흉내를 내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긴부라'라는 일본 속어에서 온 말이다.)

(주2: 둥그런 납작 모자를 뜻하는 일본어.)

(주3: 일제시대 당시 경성 시내에서 가로등이 설치된 곳은 청계천 남쪽의 남촌 일대, 즉 본정, 명치정, 황금정 정도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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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안녕하세요, 한동진입니다.


현대를 배경으로 추리 소설을 쓴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과학화된 오늘날에는 소위 두뇌파 탐정이 활약할 수가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정통 추리 소설, 그것도 퍼즐 미스터리 소설에 두뇌파 탐정이 나오지 않는다면 대체 무슨 재미가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제 동생과 함께 추리 소설을 쓰려고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던 중에 배경을 현대가 아닌 근대로 삼아야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비록 식민주의에 왜곡됐다 할지언정 근대 문화의 세례를 받기 시작한 1930년대 조선이라면, 두뇌파 탐정이 있어서 이상할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렇게 해서 씌어진 것이 [경성탐정록]입니다.
추리 소설의 결정적인 열쇠인 트릭을 생각하고 그것을 마음에 들 때까지 가다듬어 글로 옮기는 과정은, 무척 힘들지만 즐거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다음 번에는 더욱 참신한 트릭과 재미있는 이야기로 찾아뵐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부디 많은 분들이 이 글을 재미있게 읽어 주시기를 마음 속으로 기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자 소개>

 

한동진

 


소프트웨어 기획자로 모 회사에서 근무중. 

정크 SF, 하드플래닛 등에 SF 소설 게재.

UI 디자이너인 동생 한상진과 함께 [경성탐정록]을 공동 창작,

하우미스테리 동호회 (http://www.howmystery.com)에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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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테마소설 세상 속으로 5회 나는 광대다 장정희 땡~ 산조 가락이 자진모리의 클라이맥스 지점을 향해 막 솟구쳐 오르던 순간이었다. 힘차게 튀어 올랐던 태섭의 손가락이 땡, 소리와 함께 대금 위에서 조용히 잦아들었다. 숨죽일 듯한 적막이 찾아왔다. 적막은 짧았지만 숨결은 뜨거웠다. 태섭은 입술에 대고 있던 대금을 내려놓고 심사관들을 향해 앉은 채로 깊이 허리를 숙였다. 그러고는 방석 옆에 놓여 있던 정악대금을 함께 챙겨든 후 뒷걸음질 치듯 천천히 수험실을 빠져나왔다. 문을 열자 진행요원이 문틈에 귀를 대고 있다가 화들짝 뒤로 물러났다. 다음 순번의 수험생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들어갔다. 태섭은 대기실 의자에 나란히 앉아 순서를 기다리는 창백한 얼굴들을 힐끗거리며 복도로 나왔다. 복도는 바닥에 주저앉아 삑삑삑 불어대고 있는 대기자들의 연주 소리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건물 밖으로 빠져나오자 벌겋게 달아올라 있던 태섭의 얼굴에 찬물을 끼얹듯 바람이 달려들었다. 태섭은 곧바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목 언저리가 뻐근했다. 대금 연주자들에게 목 디스크는 숙명이라지 않는가. 태섭이 고개를 좌우로 젖히자 뼈마디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다. 태섭은 담배를 힘껏 빨아들였다. 비로소 딱딱하게 굳어있던 입술의 감각이 살아남을 느꼈다. 태섭은 습관처럼 입술의 아랫부분을 문질렀다. 취구가 닿는 아랫입술 언저리는 피딱지가 떨어질 날이 없어 거무스름하게 변색되어 버렸다. 누구든 그 부위에 거무죽죽한 흔적을 갖고 있다면 그는 대금 연주자일 것이다. 태섭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드디어 끝났어! 해가 기울면서 날은 더욱 쌀쌀해졌지만 아직 눈이 내릴 기색은 없었다. 이제 겨울은 곧 시작될 것이다. 수시 모집은 대학 입시의 첫머리일 뿐 영광과 회한의 경계를 가를 때까지 입시생들의 겨울은 계속될 것이다. 태섭은 가방에 넣어두었던 휴대폰을 꺼냈다. 전원을 켜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문자와 콜이 쏟아졌다. ‘물론 시험은 잘 봤겠지? 네가 떨어지면 붙을 놈 누가 있냐?’ ‘빨랑 내려오기나 해. 얼굴 잊어버리겠다.’ ‘오늘 수시 봤던 놈들까지 다 올 거야.’ ‘끝나면 곧장 전화해. 안 하면 죽어!’ 태섭은 휴대폰을 그대로 가방에 던져 넣고는 정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걷기조차 힘이 들었다. 캠퍼스를 가로지르는 동안, 남녀 대학생들이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며 태섭의 곁을 스쳐갔다. 이곳은 2년 전 캠퍼스 투어로 와 본 이후 두 번째다. 캠퍼스 투어는 태섭의 열망에 더욱 불을 지펴 놓았다. 와 봐야 새로울 것도 없다는 듯 나른한 표정으로 걷고 있는 대학생들이 부러웠다. 목표물을 손안에 얻은 사람만의 여유랄까. 나도 저들처럼 심상한 표정으로 이 캠퍼스를 활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연이어 두 번이나 전화가 왔다. 엄마다. 일이 손에 잡히지

  • 웹관리자
  • 2012-10-27
고양이의 안부를 묻다

청소년 테마소설 세상 속으로 _ 제4회 고양이의 안부를 묻다 이성아 소녀는 고양이를 안고 있었다. 물방울이 맺힌 소녀의 머리카락에서는 샴푸 냄새가 은은하게 풍겼고, 고양이도 막 목욕을 마친 듯 털이 보송보송했다. 보송보송한 털의 유혹이 너무나 강렬해 나도 모르게 쓰다듬을 뻔했다. 소녀는 나와 또래처럼 보였다. 그러나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는 이국의 사람들처럼 어색했다. 아파트 하수구 관이 막혔는데, 지금은 밤중이라 공사를 할 수 없으니 아침에 공사할 때까지 물을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 지구 반대편의 언어라도 되는 듯 나를 바라보는 소녀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소녀는 나보다는 고양이와 더 잘 통하는 것 같았다. “고양이는 영물이야. 공연히 곁을 주면 나중에 해꼬지나 당한다니까.” 아줌마가 내게 하던 말이다. 고양이는 소녀의 품에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고양이에게조차 수모를 당한 듯 명치끝이 짜르르 아려왔다. 나에게도 고양이가 있었다. 높은 담을 사뿐히 뛰어올라 얼음사니처럼 우아하게 걸어 다니던 고양이에게 나는 다미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음식물 찌꺼기를 모아두었다가 다미에게 주면 아줌마는 소리를 꽥 질렀다. “고양이 밥 주지 말란께. 야가 뭔 똥고집이래.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을까이.” 식당 알바는 힘들었다. 처음엔 청소하고 설거지나 하면 된다고 하더니 술손님들이 많으면 서빙에서부터 고기 잘라 주는 일까지 이것저것 가릴 여유가 없었다. 취한 남자들이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아래위를 훑어보거나 손이며 엉덩이를 쓰다듬으려고 할 땐 온 몸의 솜털이 다 곤두서고 구역질이 나오려고 했다. 그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 건 기차 화통을 삶아먹은 것 같은 아줌마의 목청이었다. 내 평생 목소리가 그렇게 큰 사람은 처음이었다. 고작 17년밖에 안 산 내가 평생이란 말을 쓰긴 좀 그렇지만, 아마 평생을 곱절로 살아도 그렇게 목청이 큰 사람은 만날 것 같지 않았다. 별 것 아닌 일에도 아줌마는 고함을 질러댔다. 간혹 뭔가 날아가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깨지는 건 하나도 없었다. 양은냄비나 플라스틱 바가지, 물통이나 양푼, 철판 뒤집개나 슬리퍼 같은 것들이었다. 나는 살얼음판 위를 걸어 다니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일했다. 수돗물을 세게 틀면 안 되고, 설거지할 때 개수대 밖으로 물이 튀면 미끄러지므로 안 되고, 식탁은 젖은 행주로 닦은 다음 반드시 마른 행주로 닦아야 하고, 기름 묻은 그릇은 오래 두면 안 되고, 안 되는 것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걸을 때 엉덩이를 흔들어도, 무표정해도, 큰 소리로 웃어도 아줌마는 고함을 질렀다. 내가 아무리 조심해도 화낼 일은 얼마든지 있었다. 많이 나온 전기세와 갑자기 오른 임대료, 갑자기 쏟아지는 비, 햇빛이 들이치는 창, 똥 마려운 것처럼 끙끙거리는 개새끼, 시끄러운 오토바이소리, 그리고 뭘 해도 마음에 안 드는 생선 구잇집 아줌마. 소정은 아줌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 웹관리자
  • 2012-10-16
단 한 번의 기회

청소년 테마소설 성취와 좌절_제4회 단 한 번의 기회 이명랑 자식을 바꿀 수 있을까? 나라면…… 절대로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아빠, 엄마라면? 나는 빠르게 주위를 훑어본다. 운동장을 둥글게 에워싼 광장식 계단을 꽉 메운 사람들. 대부분 오늘 테스트에 임하는 아이를 자녀로 둔 부모들이다. 열심히 자녀들을 응원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나는 아빠, 엄마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고 생각한 순간, 차가운 은빛으로 빛나는 안경이 눈에 들어온다. 아빠다. 아빠 옆으로 엄마와 할아버지, 할머니도 앉아 계신다. 컥, 숨이 막힌다. 우리 가족이 앉아 있는 곳을 확인하자마자 누군가 목을 조르는 것처럼 숨이 막혀온다. 흰 현수막 위에 금빛으로 화려하게 새겨진 글자들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VIP. 금빛으로 빛나는 VIP라는 글자들 옆으로 봉황 두 마리가 이제 곧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듯이 날개를 펼치고 있다. 그 활짝 편 날개 옆에 우리 가족은 앉아 있다. 비좁은 자리에 앉아 서로 어깨를 부대끼며 자식들을 응원하다 말고 어른들은 가끔씩 VIP석을 곁눈질한다. 대놓고 쳐다보지는 못하지만 이따금 VIP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훔쳐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부러움과 질투심이 묘하게 뒤섞여 있다. 저기 앉아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지? 얼마나 돈을 많이 벌어야 VIP석에 앉을 수 있는 거야? 아들아! 봤지? 네 눈에도 저기 VIP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너만이라도 제발 저 자리에 앉아다오! 사람들이 던지는 수많은 물음표들과 느낌표들을 아무렇지 않게 상대하며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그 옆에서 아빠, 엄마보다 더 태연하게 발밑의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바로 내 가족이다. 어른이 되면 나도 저 자리에 앉을 수 있을까? 앞으로도 나는 우리 가족의 일원일 수 있을까? “자! 전원 출발선 앞으로!” 사회자가 붉은 깃발을 번쩍 들어올린다. 와─ 하는 함성과 함께 수많은 아이들이 출발선 앞으로 달려간다. 나도 질세라 뛰어간다. 시작이 절반이다, 라고 아빠는 늘 말한다. 맞는 말이다. 시작에서부터 뒤처지면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다. 나는 내 앞을 가로막고 달리는 아이들 두, 세 명을 어깨로 밀치며 앞으로 뛰어간다. 누군가 내가 했던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내 어깨를 밀치고는 빠르게 내 앞을 스치고 달려 나간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키가 큰 녀석이다. 누가 너 따위에게 질 줄 알고! 나는 어금니를 악문다. 간신히 내 어깨를 치고 달려간 녀석보다 한 발 앞서 출발선 앞에 도착했다. 다행히 정중앙이다. “모두 집중! 첫 번째 미션이다! 참가 인원은 모두 100명, 카트는 50개! 먼저 뛰어가 카트를 잡는 사람만이 장을 볼 수 있다!” 순식간에 사회자의 설명이 끝났다. 사회자는 번쩍 들어 올렸던 붉은 깃발을 밑으로 내리고 출발선 앞에 서 있는 아

  • 웹관리자
  • 2012-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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