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가족 이야기-첫번째: "아버지, 권력의 상징이자 생물학적 기원"
- 작성일 200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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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그 첫 번째 이야기>
문학이 가족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까닭은?
5월의 햇살이 검은 만장(輓章) 색깔만큼이나 우울하고 따갑게 느껴지는 이즈음입니다. 우연히 꺼내 든 시집의 페이지에는 이런 구절이 적혀 있습니다. “밖에선/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집에만 가져가면/꽃들이/화분이//다 죽었다”
가정의 달 5월에 이런 이야기를 쓰는 게 가슴 아프지만, ‘가족’이라는 제도는 오래된 가치관과 새로운 가치관이 충돌하는 곳입니다.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편하게 누일 수 있는 따뜻한 곳을 이렇게 말하는 걸 용서하십시오. 5월은 가정의 달이지만, 또한 5월은 우리들이 가장 힘들고 분주하다고 느끼는 달이기도 합니다. 조그만 의식(儀式)이라도 치르지 않으면 가족으로서의 의무를, 가족에 대한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때, 그래서 유독 고기집, 놀이공원, 백화점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때, 그게 바로 우리의 5월입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가족’ 이야기들이 반복됩니다. 가난과 질병을 힘겹게 이겨내고 있는 한 가족의 이야기나 가족과의 이별로 인해서 불행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것들이지요. 그렇지만 저는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것은 반드시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고, 가족과 헤어져 살아가는 것이 심각한 불행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런 다양한 삶의 조건과 양태들에게 쏟아지는 선입견들입니다. 문학에서 ‘가족’ 이야기는 대개 엄마나 아빠 가운데 한 사람과의 관계가 문제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버지’라는 가부장적 상징 권력이 한 가족 내에서 저지르는 폭력을 다룬 작품이 있는가 하면, 여러 가지 이유로 상징적인 권좌에서 비루한 일상으로 끌려 내려온 아버지와의 관계를 모색하려는 작품도 있습니다. 모성의 가치와 의미를 부각시키는 소설이 있는가 하면, 가족 안에서 남성-권력이 어떻게 여성들을 억압하고 있는가를 드러내려고 시도하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한국문학에서 ‘가족’ 이야기가 중요하게 거론되는 이유는 이른바 ‘아비’라는 호칭을 지닌 전통-권력과 아들 세대의 관계가 소설 속에 깊이 각인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각인의 양상은 작가에 따라,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되기에 한 시대, 한 세대의 문학적인 무의식을 살피는 데 있어서도 꽤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제 기억을 더듬어보면, IMF 외환위기 전후 꽤 많은 가족 이야기들이 창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90년대의 여성문학도 가족 이야기와 무관하지 않지만, IMF 외환위기 당시의 소설들은 경제위기로 인해 흔들리는 근대적 가족제도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다른 가족 이야기였습니다.
2000년대의 가족 이야기에서
고양이보다도 못한, 덜떨어진 아빠의 부활
젊은 작가들의 가족 이야기에서 ‘아빠’는 자주 불화의 원인이 됩니다. 그에게는 가부장적인 폭군의 이미지가 덧씌워지고, 때로는 아들이나 가족 모두와 대립하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아빠의 귀환으로 인해 이 이상한 가족은 미처 알지 못했던 ‘보험금’을 받게 됩니다. 그들은 그 돈으로 지구 반대편으로 해외여행을 떠납니다. 물론, 아빠, 아니 녹색 병도 함께 말이지요. 그리고 엄마와 엄마의 정부는 그 낯선 땅의 절벽 위에서 녹색 병을 바다에 던집니다. 죄를 짓는 기분이었지만, 그것으로서 녹색 병(아빠)에 대한 애도를 끝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온 뒤 엄마의 정부는 점차 ‘가장(아빠)’의 위치에 근접하고, 그와 동시에 아이의 엄마의 배도 점점 부풀어 오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택배박스 하나가 집으로 배달됩니다. 그 박스 안에는, 아이의 엄마와 그녀의 정부가 절벽 위에서 던졌던 녹색 병이 들어 있습니다. 아빠의 두 번째 귀환은 이렇게 해서 마무리됩니다. 그렇지만 아빠의 귀환은 정확하게 여기까지입니다. 왜냐하면 그때 이후로 녹색 병에 대해서 시선을 주는 것은 물론 그것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빠는 내다버려지는 방식의 부재는 피할 수 있었지만, 망각과 무관심이라는 방식의 부재만은 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부재는, 말 그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지만 이 소설에서 녹색 병으로 변해버린 아빠는 그 부재의 방식으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부재는 없는 게 아니라 없는 방식으로 있는 것인 셈이지요. 이 아빠의 부재에 대해서 작가는 한 마디의 충고를 잊지 않습니다. “그렇다. 어느 집안에나 쓸모없는 물건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아빠-권력은 이제 더 이상 싸움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이처럼 쿨하게 말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존재의 기원인 아버지, 그런데 두명이라니?
아버지가 남자를 바닥에 누이더니, 남자의 몸에 박힌 나사들을 풀기 시작했다. 뭐 하시는 거예요? 봐라, 나사들이 다 녹슬었구나. 아버지는 남자의 몸에서 오십 개가 넘는 나사를 빼냈다. 나사 빨리 풀기 대회라는 게 있다면 틀림없이 아버지는 그 대회에 나가서 우승을 했을 것이라고, 꿈속에서 남자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나사가 빠지면서 생긴 구멍 사이로 빛이 새어나왔다. 바람이 구멍들을 넘나들었다. 바람이 구멍을 넘나들었다. 오늘 어떤 사람을 만났어요. 그 사람을 보려고 기차를 타고 세 시간이나 갔어요. 앞으로 연애를 하려면 꽤 피곤하겠어요. 그건 그렇고, 아버지 얼른 이 구멍들을 막아 주세요. 추워요.
남자는 바람이 넘나드는 구멍 때문에 추위를 느낍니다. 이 추위가 소설의 제목인 ‘감기’를 연상시키지만, 또한 구멍은 몽유병처럼 남자의 내면에 뚫린, 결코 치유되지 않는 상처일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어느 날 여러분 앞에 낯선 남자가 나타나 ‘내가 너의 아버지다’라고 주장한다면, 그리고 그 주장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면, 때문에 졸지에 아버지가 두 사람이 되어버리는 일이 발생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를. 아마 우리들 가운데 대부분은 두 명의 아버지 가운데에서 진짜 아버지를 찾으려고 시도할 겁니다. 우리들 모두는 자신의 기원이 둘일 수 있음을 인정하기 어려울 테니까요. “이 구멍들을 막아 주세요. 추워요.”라는 남자의 호소 역시 우리의 반응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남자의 기원, 즉 생일을 둘러싸고 갈등을 일으키는 건 정작 두 명의 아버지입니다. “그만들 싸우세요. 이제부터 제 생일은 일 년은 두 번이에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천진함이란 소년에게나 어울리는 것일 테지만, 실제로 소년-남자는 우리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자신의 기원에 접근합니다.
이제 이 소설을 구성하고 있는 첫 번째 이야기로 돌아가 봅시다. 감기로 이틀을 앓고 난 후 남자는 마을버스를 운전해 여자가 근무하는 톨게이트로 향합니다. 톨게이트란 무엇일까요? 물론, 여자의 일터라고 단정해버리면 할 말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톨게이트를 문학적인 상징으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사가 풀린 사내의 몸에 생겼던 구멍이 그러했듯이, 톨게이트는 두 개의 다른 세상을 이어주는 통로입니다. 출구인 동시에 입구인 셈이지요. 마을버스의 핸들을 쥔 남자는 이제 정해진 코스를 벗어나 낯선 세계를 향해 나아갑니다. “열여덟 개의 정거장을 하루에 여덟 번씩 반복해서 돌던 마을버스는 1997년 가을 공장에서 출고된 이후 처음으로 낯선 길을 달렸다.” 이것은 일탈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내는 이것을 ‘소풍’이라고 부릅니다. “지금 소풍가는 길이에요. 당신도 같이 가지 않을래요?” 마을버스는 낯선 사람들을 태우고, 낯선 음악을 울리며, 출고 이후 한 번도 벗어난 본 적이 없는 궤도를 벗어나 다른 세계로 ‘소풍’을 갑니다. 마을버스가 도착한 곳은 운동회가 진행되고 있는 어느 학교의 운동장입니다. 운동장에선 한 무리의 여자들이 국수를 삶고 있습니다. 승객들은 버스에서 내려 노란 모자 팀과 빨간 모자 팀으로 흩어져 운동과 응원에 참여합니다. 낯선 것들이 모여 낯선 곳으로 향하는 소풍. 나는 이 장면에서 가슴에 뚫린 구멍 때문에 감기를 앓아야 했던 남자에게 주는 작가의 처방을 목격합니다. 남자의 ‘소풍’은 결코 혼자서 떠나는 드라이브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결국 실존적인 상처가 타인과의 관계에서만 치유될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때문에 작가는 소설의 후반부에서 낯선 존재들이 집합적으로 모여 있는 상황을 연출합니다. 글쎄요, 이 장면에서 연대나 유대감, 혹은 삶에 대한 위로의 흔적을 찾으려는 사람들도 없진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두 개의 기원을 동시에 긍정하는 소년-남자의 모습, 그리고 타인들과의 소풍을 통해서 상처를 극복하려는 남자의 행위가 손쉬운 ‘봉합’의 태도라고 비판받아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습니다. 설령, 이 소풍이 감기를 오랫동안 앓고 난 다음에 찾아온 백일몽과 같은 것일지언정 말입니다.
이질성과 동질성이 공존하는 문학작품 속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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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1.김태용
소설가
1974년 서울 출생
숭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5년 「세계의 문학」봄호에 <오른쪽에서 세번째 집>을 발표하며 등단
작품집으로 <풀밭위의 돼지>(2007. 문학과지성사)가 있음
2. 윤성희
소설가
1973년 경기도 수원 출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레고로 만든 집」이 당선돼 작품활동 시작
소설집으로 『레고로 만든 집』『거기, 당신?』이 있음
2005년 제50회 현대문학상, 제2회 올해의 예술상, 2007년 제14회 이수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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