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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영양보급업자가 낚지 못한 것

  • 작성일 2010-05-02
  • 조회수 578

         

                국민건강영양보급업자가 낚지 못한 것

 

 

 

"두 사람은 며칠 전부터 마을 들머리에 있는 저수지 한 쪽에 죽치고 앉아 있었다. 낚싯대를 걸쳐 놓긴 했지만 사실 그들은 낚시질엔 조금도 관심이 없다. 이 더운 날씨에 그들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살피는 건 낚싯대가 드리워진 저수지 수면이 아니라 오로지 마을 쪽 움직임이었다... ..."


 

글/ 박상률

 


 "워매, 겁나게 더워부네!”

검게 그을린 뒷목덜미에 이글거리는 태양빛이 내리쬐자 땀물이 마치 기름을 발라놓은 것처럼 번들거렸다. 저수지 수면에도 태양빛이 부서져 내려 고기비늘처럼 번들거렸다. 이번 여름 들어 비 한번 시원하게 내린 일 없이 연일 폭염이다. 장씨는 연신 수건으로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 어느 구석에도 구름이라곤 한 점 없어 당분간 비를 기대하긴 무망하다.

 “내 평생 살다 살다 이런 날씨는 또 첨 겪는구만. 원, 세상에 무신 놈의 날씨가 이렇게 폭폭 찐다냐? 비나 시원하게 한 보지락 확 내려 불면 쓰겄구만, 비는 안 오고 날씨 한번 지랄 같구만. 가진 것이라곤 천지 사방 둘러보아도 요놈의 몸뚱이 하나뿐인디 이놈의 지랄 같은 날씨 땜시 그나마 명대로 다 못 살고 숨 막혀 지레 돌아가시겄구만, 으이구. 몸뚱이 드러내놓고 사는 사람 죄다 짠 물에다 절여 죽일 일 있다냐, 퉤!”

 장씨는 입으로까지 흘러드는 땀방울을 내뱉으며 구시렁거렸다. 이어 땀에 전 수건을 양 손으로 비틀어 짜자 빨래에서 땀물이 배어나왔다.

 “제기랄! 이것이 시방 뭐여. 땀물로 빨래하는구만.”

 곁에 있는 김씨 역시 쥐어짜면 바로 물이 짜질 것 같은 셔츠를 둘둘 말아 어깻죽지 가까이 올려놓고 낡아빠진 중절모로 부채질을 해대며 맞장구를 쳤다. 등짝을 타고 흐르는 땀이 번들거렸다.

“그란께 말이요. 암만 해도 날씨가 미쳐부렀는갑소. 찜통이 따로 없구만요. 뭔 땀이 아침부터 이러코롬 많이 흐르는지, 헉. 등줄기에 꼭 지렁이가 스멀스멀 기어댕기는 것 같단께요.”

 두 사람은 며칠 전부터 마을 들머리에 있는 저수지 한 쪽에 죽치고 앉아 있었다. 낚싯대를 걸쳐 놓긴 했지만 사실 그들은 낚시질엔 조금도 관심이 없다. 이 더운 날씨에 그들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살피는 건 낚싯대가 드리워진 저수지 수면이 아니라 오로지 마을 쪽 움직임이었다.

 장씨가 고개를 길게 빼 마을 쪽을 쳐다보며 확인하는 말을 했다.

 “거 뭣이냐, 자네가 알아낸 정보로는 틀림없이 오늘 밤에 팽나무집 할망구 팔순 잔치가 있다고 했제?”

 “아따 형님도 참. 같이 듣고서도 자꾸 다그치시요? 낮에는 읍내 장수회관인지 장손회관인지 허는 디서 대처 사는 자식들이 내려와 잔치 열고 저녁엔 마을에서 뻑적지근허게 술동이 푼다고 안 했소?”

“나도 이장이 확성기에 대고 나발 분 건 들어 알제. 근디 자네가 마을 구판장에서 들은 소리도 같은 소리냐, 이 말이여.”

“형님은 넘의 말을 귀 밖으로 듣는갑소. 날씨도 더워갖고 사람 환장허게 하는디 형님까지 똑 같은 말을 벌써 몇 번씩 하게 하요? 틀림 없단께요. 그란께 염려 푹 놓으시고 어서 밤 되기만 기다려 보슈.”

 “알았어, 알았은께 고기나 잘 낚아봐.”

 “우리가 시방 고기 낚을라고 이러코롬 죽치고 있소? 낚아도 큰 걸 낚아야제. 붕어 새끼 피라미 새끼 고런 건 멍멍이한테 대면 아무 것도 아니란께요.”

멍멍이란 소리에 장씨는 다시 마을의 개에 관심을 갖는다.

“그래, 마을에 낚을 만한 멍멍이가 많이 있더란 말이제?”

“아따, 또 같은 말 녹음기 틀어 되풀이하게 하시오? 모르긴 몰라도 노랑이, 흰둥이, 검둥이 해서 스물 댓 마리는 족히 되더란께요.”

“고것도 살이 통통하게 올라 있더란 말이제?”

“그라고말고요. 요샌 촌사람들도 잘 먹고 산께 개 팔자도 쭉 늘어졌지라우. 죄다 잘 먹어서 살이 잘 올라 있습디다.”

“흐흐, 스물 댓 마리라······. 스무 마리만 낚아서 팔아도 이참에 한 밑천 단단히 잡겄구만. 그려도 다 팔아넘기지는 말고 한 마리는 단골집에 우리 몫으로 냄겨 뒀다가 아무 때고 뒷다리 한 짝씩 푸지게 뜯어 먹세. 양기 보충허는 디는 뭐니뭐니 해도 개장국에 흐벅진 암캐 뒷다리가 최고여! 고건 먹어 본 사람만 알제. 동생 안 그런가?”

장씨가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가 김씨에게까지 들렸다.

 “형님은 고 맛이 고러코롬 좋소?”

 “그라믄, 자네는 안 좋단 말인가? 고것 먹고 나면 마누라가 다시 보인단께. 착착 감기는 게 고만이야, 허허······.”

 “형님이야 형수님이 있은께 고렇다지만, 난 뭐라요? 고것 먹고 힘 좋아봐야 쓸 디가 어디 있어야지라.”

 “히야, 저 내숭. 이 사람아, 자네 정다방 정양인가 장양인가 하는 것이 따라 댕기는 것 모르는 사람 없어.”

 “말이야 바로 말이제, 내가 뭣이 아쉬워서 고것을 따라 다니겄소. 고것이 자꾸만 날 귀찮게 따라 다니제.”

 장씨가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그란께 고렇게 된 것이 다 견공들 덕이란 말이시.”

 “뜬금없이 견공은 무슨 견공이우? 개백정이 개들 말 안 쓰고 유식한 문자를 써분께 쪼깐 안 어울리는구만요.”

 “개백정이라니? 자네가 시방 나를 업수이 여기는가? 자네는 넘을 고렇게 깔아뭉개는 말버릇만 진작에 고쳤으믄 마흔 다 되도록 장개 못 들든 안 했을 틴디, 고 입이 탈이여. 고 입이 방정이란 말이여.”

 “형님은 참, 내 입이 뭔 방정이란 말이요? 주인 몰래 개 낚아서 내빼믄 쉽게 말해 그냥 개 백정이제, 뭣이다요? 개 도둑으로 잡히지만 안 해도 다행이제······.”

 김씨의 개 도둑이란 말에 장씨가 짐짓 발끈한다.

 “예끼! 이 사람, 그렇다고 개 도둑이라니? 내가 몇 번씩 말해야 알아 먹겄는가? 개백정은 민국 시대 이전 조선 시대 얘기고, 인자는 같은 말도 순화해서 쓰는 개명천지 시댄께 국민건강영양보급업자라고 해야 한다고 했잖여. 따라 해 봐. 국민건강영양보급업자······.”

 “아따 말도 드럽게 어렵게 지어 붙였소. 형님이 시청 식품위생과 직원이라도 되는 거유? 아니면 농촌지도소 지도원이라도 되는 거유, 뭐유? 고로코롬 어려운 말 대신 쪼깐 보드랍고 쉽게 부를 수 있게 멍멍 낚시꾼이 으짜겄소? 그라믄 고기 맛도 훨씬 보드랍고 감칠맛이 있을 것인디.”

 “이 사람이 또 딴청일세. 내가 몇 번씩 말해야 알아들을란가? 우린 국민건강영양보급업자라니까! 도시 사람들 수입 쇠고기도 안 먹고 푸성귀도 무공해 환경식품만 찾아 먹는다고 별스럽게 난리 피우지만 우리가 공급하는 것보다 더 순수한 무공해 친 환경식품이 어디 있겄어? 사실 말이야 바로 말이제, 우리가 대는 토종 똥개보다 더 순수한 신토불이가 어디 있겄냐고!”

 “알았어유, 알아먹었습니다유. 하여튼 저녁에 형님 개 낚는 솜씨나 실전으로다가 실컷 보여주쇼.”

 “그랴. 이따 실컷 보게나. 요새 뜨는 말로 내가 전설이 된 사람 아닌가? 개 잡는 솜씨 하나만큼은 이 바닥, 국민건강영양공급업자들 사이에선 이미 전설이 됐지만 자네 눈으로 오늘 다시 확인해보게.”

 “사실 고거야 안 봐도 다 아는 것 아니유. 형님 개 잡는 솜씨는 두 말이 필요 없지유. 맞아요, 전설이 되었시유.”

 두 사람은 실없는 소리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죽였다.

 “흐흐, 개 낚는 솜씨야 한강 이남에서 나를 따를 사람이 없제. 한강 이북이야 통일이 되어 봐야 알 것인께 미리 뭐라고 따따부따 할 것 없고. 자네도 알다시피 서울이고 성남이고 국민건강영양보급업자들이 몰려 있는 디를 가기만 하믄 다들 나를 보고 허리를 구십 도로 탁 꺽잖여. 고게 뭣 땜시 고러겄는가?”

 “고거야 싱싱한 물건을 대준께 그러겄지라. 요샌 개도 가둬 놓고 사료 멕여 키운께 뭔 맛이 있어야지라. 개고 닭이고 사료 안 멕이고 놓아먹인 것이 최고지라. 그래도 사람은 갇혀 지내더라도 집에서 지은 밥 먹고 살아야 쓰는디, 난 사료도 괜찮은디······. 언제까지 식당 밥만 먹고 살아야 하는지······.”

 “그란께 자네도 얼른 한 밑천 잡아서 가정을 꾸려야제. 개 낚듯이 각시도 하나 낚아서 말이여”

형수님도 개 낚듯이 낚아 부렀소? "

“낚긴······, 내가 낚였제. 흐흠.”

“나도 낚이고 싶은디 아무도 나를 안 낚아 주네요. 나도 촌구석 개들맨치로 놓아멕이고 있는디도······.”

“흐흐, 고 말은 자네가 개만도 못하다는 얘기 아닌가?”

“뭔 말을 고렇게 한다요?”

김씨가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못마땅한 심사를 드러냈다.

“아따, 웃자고 한 말인디 이마빡에 쌍심지는 뭐단가?"

 장씨가 얼른 수습을 했지만 김씨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넘의 아픈 디를 건든께 그라지요.”

“고렇게 들렸다면 미안하시, 일단 개 먼저 낚고 바로 각시도 하나 낚든가 자네가 낚이든가 해보소.”

“알았수. 뭐든 낚아 볼라요.”

김씨가 애써 누그러지자 장씨가 얼른 말머리를 돌렸다.

“어디까지 얘기하다 샜는가? 음, 생각났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말하자면, 놓아멕인 것 가운데서도 주인 몰래 낚아다 잡아먹는 게 맛이 일품이네!”

“그러겄지유. 돈 안들이고 먹는 공짜라 훨씬 더 맛있겄지유. 공짜라면 양잿물도 맛있게 들이킨다잖이유.”

“이 사람이 꼭 말을 해도·······. 자네 그런 생각 갖고선 이 바닥에서 성공하기 힘드네. 우리가 하는 일은 자부심을 갖고 해야 쓰네. 우리가 시방 하고 있는 일은 물건 값을 치르느냐 아니냐 고걸 가지고 말을 허면 안 되네. 물건이야 돈을 치렀든 안 치렀든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영양공급업자로서 직업 정신이 투철해야 쓰네. 자네, 정신 무장을 더 단단히 해야 쓰겄네.”

“알았습니다, 형님! 형님도 아시지만 저도 개백정의 후계자로서, 아니 국민건강영양보급업자의 후계자로서 사명을 다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입니다요. 그란께 오늘은 개 낚는 비법이나 남김없이 전수해 주십시오!”

두 사람은 이미 낚시대에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알았네. 비법이라고 할 것 뭐 있겄는가? 나 하는 것 보고 고대로 따라하다 보면 저절로 개백정 고수가 되는 거제. 그나저나 이따 한바탕 전쟁 치르려면 멱이나 감고 미리 잠이나 자 두세.”

 장씨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씨는 이미 옷을 홀랑 벗고 저수지 물속으로 첨벙 들어갔다. 장씨도 곧 따라 들어갔다. 저수지 물도 뜨거운 태양열에 데워져 시원하지 않고 미지근했다. 두 사람은 멱을 감고 난 다음엔 승합차로 가서 낮잠을 한숨씩 잤다.

 그들이 여기 이렇게 낚시꾼 차림으로 있는 건 마을 사람들한테서 별다른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서다. 저수지 낚시꾼으로 위장한 그들은 라면이나 담배 따위를 사는 걸 핑계 삼아 마을 구판장에 자연스레 드나들며 마을 사정을 알아낸 뒤 결정적인 거사 날을 기다린다. 물론 그들의 거사는 한 마을의 개를 모조리 훔쳐가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분이 드러나지 않도록 승합차 앞 뒤 번호판도 휴대용 천막과 겉옷으로 자연스럽게 감추고서 때를 기다린다. 절대로 서두르지 않는다. 어떤 때는 한낮에 마을 사람들 모두 들에 나갔을 때 거사를 감행하기도 하고, 마을 사람들이 단체로 꽃놀이나 단풍놀이를 갔을 때 일을 치르기도 한다. 이번엔 어느 집 노인의 팔순 잔치가 있어 저녁 한 때 그 집으로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인다는 정보를 입수한 바 있어 며칠 전부터 저수지에 진을 치고서 때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노리는 마을은 반드시 저수지를 끼고 있는 마을이다. 그래야 낚시꾼으로 위장한 뒤 국민건강영양보급업을 영위하기가 쉬운 까닭이다.

 낮잠을 자고 밥을 끓여먹고, 또 낮잠을 자고, 그래도 가지 않는 시간을 죽이기 위해 장기를 몇 차례 두고 나자 그제야 겨우 어둠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아따, 뭔 놈의 해가 징하게 길기도 하구만!”

 장씨가 저수지 수면 위로 물드는 노을을 바라보며 말을 씹듯이 내 뱉는 순간 마을 확성기가 삐이 소리를 냈다.

 “에, 에, 주민 여러분, 이장입니다. 오늘 하루도 들일 하시느라 고단하셨지라우. 다름이 아니라 시방 알려드릴 것은, 다 알고 계시겄지만 팽나무집에서 저녁에 간단한 잔치를 하게 되어서······.”

 두 사람은 마을 쪽에서 확성기 소리가 들려오자 서로 한 번 쳐다보며 싱긋 웃은 뒤 가스총, 전자봉, 마취총, 올가미, 밧줄, 빵 등을 차에서 내렸다. 장씨의 개 잡는 솜씨를 생각하면 다 필요 없는 장비들이다. 하지만 간혹 개백정 장씨를 몰라보고 반항하는 간 큰 개들이 있기 때문에 개 잡는 장비들을 빠짐없이 준비 해두어야 한다.

 “특수 장비 이상 무!”

 김씨가 중절모에 손을 대고 장씨에게 장난스레 거수경례를 붙였다.

“좋아! 작전 개시!”

 장씨 역시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김씨의 보고를 받았다.

 두 사람은 장비를 점검한 다음 곧바로 빵에다 약을 발랐다. 개가 빵을 입에 대기만 하면 곧바로 마취가 되는 약이었다. 적극적으로 반항하지는 않더라도 장씨와 눈이 마주친 개가 겁에 질려 뒷걸음칠 때는 빵이 유용하다. 그런 개는 도망가면서도 빵을 보면 그냥 달아나지 않고 빵에 입을 대는 것이다.

 “사실 말이제, 요딴 것들 다 필요 없잖소? 형님이 한번 노려보기만 하면 다들 오줌저리며 벌벌 떰시롱 주저앉을 것인디.”

 “그래도 만사불여튼튼이여.”

 “만사를 부러트리지 말고 어쩌고라? 하여튼간에 형님 문자속은 끝이 없구만요. 아무튼 우리 일에 자부심 가질라면 문자속도 깊어야 하는디 저는 그 방면으론 약해서 잘 될란가 모르겄십니더.”

 “실없는 소리 하지 말게. 자네가 약한 것이 고것뿐인가? 아까 자네 오줌 누는 것 본께 오줌발도 영 시원찮든만······.”

 “형님은 언제 고런 것까지 놓치지 않고 다 들여다보았수? 하여간 아무나 개백정, 아니 국민건강영양공급업자가 되는 것은 아닌 모양이우.”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지만 사람들의 움직임은 낮보다 오히려 더 잘 잡혔다. 마침내 사람들이 이 집 저 집에서 나와 팽나무집으로 모여들기 시작하는 걸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거사 시간을 맞아 차를 마을 가까운 곳에 바짝 대놓고 마을로 들어갔다. 낯선 그들이 골목에 들어서도 개 짖는 소리가 전혀 나지 않았다.

 “형님, 조용합니다요.”

 “도둑 맞을라믄 개도 짖지 않는 법이시.”

 “우리가 도둑질 하는 건 아니라면서요? 그냥, 그 말을 거꾸로 뒤집어 생각해야 쓰겄소. 오늘 멍멍이 낚시도 성공이다, 이 말이지라우?”

 “언제는 성공 안 한 적 있나.”

 두 사람은 장비를 들고 조용하기 그지없는 마을 골목을 누비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노란 털이 복슬복슬한 누렁이를 마주쳤다. 장씨가 누렁이에게 다가갔다. 장씨가 눈에서 불을 뿜듯이 노려보자 누렁이는 그 자리에 바로 얼어붙었다.

 “요놈 보게. 엉덩짝 한번 제대로 실하구만, 히, 여러 근 나오겄어.”

 장씨 말이 끝나자마자 김씨는 개 입을 테이프로 봉하고 네 다리를 노끈으로 묶어 개를 떠메고 가 차에 실었다.

 다음으론 검정 색 바탕에 흰 얼룩이 점점이 박힌 잡종을 만났다.

 “잡종 똥개구만. 색깔은 이래도 맛으로는 똥개가 최고지!”

 장씨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개는 제 자리에 푹 고꾸라졌다. 역시 뒤처리는 김씨가 재빨리 했다. 순식간에 골목에 나와 어슬렁거리던 개들이 영문도 모른 채 모두 입에 테이프가 감기고 네 다리가 노끈에 묶인 채 차에 실렸다.

 전설대로 장씨와 마주친 개들은 거짓말처럼 짖지도 않고 도망도 치지 못했다. 선 자리에서 벌벌 떨며 오줌을 질질 지리며 옴짝달싹을 못 했다. 이래서 개도 개백정은 알아본다는 말이 나왔는지 모른다.

 “허! 요것들 보게.”

 장씨가 나지막하게 혀를 찼다. 흘레붙고 있는 개 한 쌍이었다. 장씨가 두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자 개 두 마리가 일 치르던 걸 마무리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김씨는 한꺼번에 개 두 마리를 어깨에 걸쳐 멨다. 묵직했다.

 “아이구, 쌀가마니 무게구만요!”

 그렇게 개 스무여 마리를 순식간에 잡아 차에 가득 실은 뒤 두 사람은 마을을 잽싸게 빠져나왔다.

 “형님, 대단혀요. 형님 얼굴만 봐도 개들이 지레 오줌을 싸갈기니······. 개들도 개백정을 바로 알아봐불더만요. 전설이 될 만합니다. 존경시럽습니다요, 형님. 나도 으짜든지 형님 같은 개 낚시꾼이 되아야 쓸 것인디······.”

 장씨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자꾸만 흘레붙던 개 한 쌍이 떠올라서였다. 흘레붙는 개까지 낚아채기는 이 사업에 뛰어든 뒤 처음 있는 일이었다. 기왕 흘레붙었으니 그놈들은 그냥 둘 걸 하는 생각이 일었다. 그래야 나중에 강아지 몇 마리가 더 생기지 않겠는가. 하지만 감상은 금물. 당장 지금 손안에 들어 온 두 마리가 나중의 열 마리보다 낫다! 손 안의 새 한 마리가 수풀 속의 새 열 마리보다 낫다고 하지 않던가.

 개 잡이 작전이 끝나자 두 사람은 곧바로 차를 달려 한밤중에 서울에 도착한 뒤 개들을 중간 공급업자에게 넘겼다. 그런 다음 개장국을 잘하는 단골집에 들렀다. 두 사람은 견공의 수육을 안주 삼아 살인적인 더위에도 아랑곳없이 작전 성공을 위해 고생한 자신들의 몸뚱이에 소주를 들이부었다. 새벽이 될 때까지 술과 더불어 영양 공급까지 충분히 한 뒤 두 사람은 헤어졌다.

 장씨가 알딸딸하고 넉넉한 기분으로 집 가까운 골목 어귀에 막 들어선 때였다. 어슴푸레한 새벽 가로등 불빛에 큼지막한 그림자가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순간 장씨의 직업 정신이 본능적으로 발휘되었다.

 ‘뭣이다냐? 개들이 전봇대 밑에서 흘레붙는다냐?’

 개 눈엔 뭣 밖에 안 보인다는데 개백정 눈엔 개밖에 안 보이는 모양이었다. 직업 정신에 붙들린 장씨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현장을 확인하고자 다가갔다.

‘나를 보믄 저것들이 얼어서 도망도 치지 못할 테니 그냥······.’

 순간 장씨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이미 작전 끝내고 귀가하는 길이지만 먹잇감이 눈앞에 알아서 굴러와 있으니 이를 어쩌나? 근디 두 마리면 떠메고 가기가 좀 무겁겠는데······. 장씨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그림자의 정체는 흘레붙는 개들이 아니었다. 남녀 한 쌍이 서로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장씨는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이마를 찡그렸다.  ‘요새 젊은 것들은 개하고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단 말이야. 누가 보든 말든 아무데서나 저 모양이야······. 저것들을 확······.’

 장씨는 혀를 끌끌 찼다. 지난밤에 흘레붙던 개 한 쌍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짐짓 헛기침을 하여 분위기를 깨버릴까 싶었다. 그러나 이내 곧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개와 달리 사람은 자신을 하나도 무서워하지 않을 것이었다.

 ‘요것들이 시방 개만도 못하네. 개들은 내가 가믄 열이면 열 모두 꼬랑지 내리고 그 자리에서 바로 무릎 꿇는디 요것들은 꼼짝을 안 허네. 하긴, 내가 개백정이제 사람 백정이냐. 사람들이 나를 무서워할 까닭이 어디 있겄냐. 눈 딱 감고 그냥 지나가자.’

 그래도 직업은 속일 수 없어 장씨는 그들 곁을 지나갈 때 눈알을 부라리고 바라보았다. 그러나 장씨가 아무리 눈알을 부릅뜨고 노려보며 지나가도 한 덩이로 엉킨 남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들은 장씨를 재수 없는 취객이라고 여기는지 몰랐다. 그렇다면 그들이 침이나 뱉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남녀 곁을 재빠르게 지나던 장씨는 순간적으로 술이 확 깨면서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이 서고 말았다.

 “엥?”

 이번 국민건강영양공급 사업 출장 일로 집을 나설 때 올 초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딸내미가, 재수 학원 방학 특강 수업비를 달라며 떼를 쓰던 딸내미가, 거기, 그렇게 사내 한 놈과 부둥켜안고 한 덩어리 되어 서 있는 것이었다.

 ‘저년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아비는 넘의 집 개까지 몰래 훔쳐다 팔아서 지년 학비 대는디, 이것이 시방 뭔 꼴이다냐······.’

 장씨는 난감했다. 흘레붙던 개를 만났을 때처럼 눈을 부릅뜬 채 노려보며 낚아챌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애써 모른 체할 수도 없어 계속 엉거주춤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저것들이 개들처럼 미리 알고 꼬리를 숙여버리면 좋겠구만, 정작 당사자들은 그럴 생각도 없는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비가 가까이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딸년이 끝내 고개를 아비 쪽으로 돌리지 않는 거였다.

 “어휴!”

 장씨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개백정 출신의 국민건강영양공급업자인 장씨도 끝내 딸년은 낚지 못하고 말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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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약력*

 

 박상률

 소설가

 

 전남진도 출생

전남대 경영학과 졸업

대표작으로 <봄바람><나를 위한 연구> 등이 있음

현재 글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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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테마소설 세상 속으로 5회 나는 광대다 장정희 땡~ 산조 가락이 자진모리의 클라이맥스 지점을 향해 막 솟구쳐 오르던 순간이었다. 힘차게 튀어 올랐던 태섭의 손가락이 땡, 소리와 함께 대금 위에서 조용히 잦아들었다. 숨죽일 듯한 적막이 찾아왔다. 적막은 짧았지만 숨결은 뜨거웠다. 태섭은 입술에 대고 있던 대금을 내려놓고 심사관들을 향해 앉은 채로 깊이 허리를 숙였다. 그러고는 방석 옆에 놓여 있던 정악대금을 함께 챙겨든 후 뒷걸음질 치듯 천천히 수험실을 빠져나왔다. 문을 열자 진행요원이 문틈에 귀를 대고 있다가 화들짝 뒤로 물러났다. 다음 순번의 수험생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들어갔다. 태섭은 대기실 의자에 나란히 앉아 순서를 기다리는 창백한 얼굴들을 힐끗거리며 복도로 나왔다. 복도는 바닥에 주저앉아 삑삑삑 불어대고 있는 대기자들의 연주 소리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건물 밖으로 빠져나오자 벌겋게 달아올라 있던 태섭의 얼굴에 찬물을 끼얹듯 바람이 달려들었다. 태섭은 곧바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목 언저리가 뻐근했다. 대금 연주자들에게 목 디스크는 숙명이라지 않는가. 태섭이 고개를 좌우로 젖히자 뼈마디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다. 태섭은 담배를 힘껏 빨아들였다. 비로소 딱딱하게 굳어있던 입술의 감각이 살아남을 느꼈다. 태섭은 습관처럼 입술의 아랫부분을 문질렀다. 취구가 닿는 아랫입술 언저리는 피딱지가 떨어질 날이 없어 거무스름하게 변색되어 버렸다. 누구든 그 부위에 거무죽죽한 흔적을 갖고 있다면 그는 대금 연주자일 것이다. 태섭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드디어 끝났어! 해가 기울면서 날은 더욱 쌀쌀해졌지만 아직 눈이 내릴 기색은 없었다. 이제 겨울은 곧 시작될 것이다. 수시 모집은 대학 입시의 첫머리일 뿐 영광과 회한의 경계를 가를 때까지 입시생들의 겨울은 계속될 것이다. 태섭은 가방에 넣어두었던 휴대폰을 꺼냈다. 전원을 켜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문자와 콜이 쏟아졌다. ‘물론 시험은 잘 봤겠지? 네가 떨어지면 붙을 놈 누가 있냐?’ ‘빨랑 내려오기나 해. 얼굴 잊어버리겠다.’ ‘오늘 수시 봤던 놈들까지 다 올 거야.’ ‘끝나면 곧장 전화해. 안 하면 죽어!’ 태섭은 휴대폰을 그대로 가방에 던져 넣고는 정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걷기조차 힘이 들었다. 캠퍼스를 가로지르는 동안, 남녀 대학생들이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며 태섭의 곁을 스쳐갔다. 이곳은 2년 전 캠퍼스 투어로 와 본 이후 두 번째다. 캠퍼스 투어는 태섭의 열망에 더욱 불을 지펴 놓았다. 와 봐야 새로울 것도 없다는 듯 나른한 표정으로 걷고 있는 대학생들이 부러웠다. 목표물을 손안에 얻은 사람만의 여유랄까. 나도 저들처럼 심상한 표정으로 이 캠퍼스를 활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연이어 두 번이나 전화가 왔다. 엄마다. 일이 손에 잡히지

  • 웹관리자
  • 2012-10-27
고양이의 안부를 묻다

청소년 테마소설 세상 속으로 _ 제4회 고양이의 안부를 묻다 이성아 소녀는 고양이를 안고 있었다. 물방울이 맺힌 소녀의 머리카락에서는 샴푸 냄새가 은은하게 풍겼고, 고양이도 막 목욕을 마친 듯 털이 보송보송했다. 보송보송한 털의 유혹이 너무나 강렬해 나도 모르게 쓰다듬을 뻔했다. 소녀는 나와 또래처럼 보였다. 그러나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는 이국의 사람들처럼 어색했다. 아파트 하수구 관이 막혔는데, 지금은 밤중이라 공사를 할 수 없으니 아침에 공사할 때까지 물을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 지구 반대편의 언어라도 되는 듯 나를 바라보는 소녀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소녀는 나보다는 고양이와 더 잘 통하는 것 같았다. “고양이는 영물이야. 공연히 곁을 주면 나중에 해꼬지나 당한다니까.” 아줌마가 내게 하던 말이다. 고양이는 소녀의 품에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고양이에게조차 수모를 당한 듯 명치끝이 짜르르 아려왔다. 나에게도 고양이가 있었다. 높은 담을 사뿐히 뛰어올라 얼음사니처럼 우아하게 걸어 다니던 고양이에게 나는 다미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음식물 찌꺼기를 모아두었다가 다미에게 주면 아줌마는 소리를 꽥 질렀다. “고양이 밥 주지 말란께. 야가 뭔 똥고집이래.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을까이.” 식당 알바는 힘들었다. 처음엔 청소하고 설거지나 하면 된다고 하더니 술손님들이 많으면 서빙에서부터 고기 잘라 주는 일까지 이것저것 가릴 여유가 없었다. 취한 남자들이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아래위를 훑어보거나 손이며 엉덩이를 쓰다듬으려고 할 땐 온 몸의 솜털이 다 곤두서고 구역질이 나오려고 했다. 그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 건 기차 화통을 삶아먹은 것 같은 아줌마의 목청이었다. 내 평생 목소리가 그렇게 큰 사람은 처음이었다. 고작 17년밖에 안 산 내가 평생이란 말을 쓰긴 좀 그렇지만, 아마 평생을 곱절로 살아도 그렇게 목청이 큰 사람은 만날 것 같지 않았다. 별 것 아닌 일에도 아줌마는 고함을 질러댔다. 간혹 뭔가 날아가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깨지는 건 하나도 없었다. 양은냄비나 플라스틱 바가지, 물통이나 양푼, 철판 뒤집개나 슬리퍼 같은 것들이었다. 나는 살얼음판 위를 걸어 다니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일했다. 수돗물을 세게 틀면 안 되고, 설거지할 때 개수대 밖으로 물이 튀면 미끄러지므로 안 되고, 식탁은 젖은 행주로 닦은 다음 반드시 마른 행주로 닦아야 하고, 기름 묻은 그릇은 오래 두면 안 되고, 안 되는 것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걸을 때 엉덩이를 흔들어도, 무표정해도, 큰 소리로 웃어도 아줌마는 고함을 질렀다. 내가 아무리 조심해도 화낼 일은 얼마든지 있었다. 많이 나온 전기세와 갑자기 오른 임대료, 갑자기 쏟아지는 비, 햇빛이 들이치는 창, 똥 마려운 것처럼 끙끙거리는 개새끼, 시끄러운 오토바이소리, 그리고 뭘 해도 마음에 안 드는 생선 구잇집 아줌마. 소정은 아줌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 웹관리자
  • 2012-10-16
단 한 번의 기회

청소년 테마소설 성취와 좌절_제4회 단 한 번의 기회 이명랑 자식을 바꿀 수 있을까? 나라면…… 절대로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아빠, 엄마라면? 나는 빠르게 주위를 훑어본다. 운동장을 둥글게 에워싼 광장식 계단을 꽉 메운 사람들. 대부분 오늘 테스트에 임하는 아이를 자녀로 둔 부모들이다. 열심히 자녀들을 응원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나는 아빠, 엄마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고 생각한 순간, 차가운 은빛으로 빛나는 안경이 눈에 들어온다. 아빠다. 아빠 옆으로 엄마와 할아버지, 할머니도 앉아 계신다. 컥, 숨이 막힌다. 우리 가족이 앉아 있는 곳을 확인하자마자 누군가 목을 조르는 것처럼 숨이 막혀온다. 흰 현수막 위에 금빛으로 화려하게 새겨진 글자들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VIP. 금빛으로 빛나는 VIP라는 글자들 옆으로 봉황 두 마리가 이제 곧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듯이 날개를 펼치고 있다. 그 활짝 편 날개 옆에 우리 가족은 앉아 있다. 비좁은 자리에 앉아 서로 어깨를 부대끼며 자식들을 응원하다 말고 어른들은 가끔씩 VIP석을 곁눈질한다. 대놓고 쳐다보지는 못하지만 이따금 VIP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훔쳐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부러움과 질투심이 묘하게 뒤섞여 있다. 저기 앉아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지? 얼마나 돈을 많이 벌어야 VIP석에 앉을 수 있는 거야? 아들아! 봤지? 네 눈에도 저기 VIP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너만이라도 제발 저 자리에 앉아다오! 사람들이 던지는 수많은 물음표들과 느낌표들을 아무렇지 않게 상대하며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그 옆에서 아빠, 엄마보다 더 태연하게 발밑의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바로 내 가족이다. 어른이 되면 나도 저 자리에 앉을 수 있을까? 앞으로도 나는 우리 가족의 일원일 수 있을까? “자! 전원 출발선 앞으로!” 사회자가 붉은 깃발을 번쩍 들어올린다. 와─ 하는 함성과 함께 수많은 아이들이 출발선 앞으로 달려간다. 나도 질세라 뛰어간다. 시작이 절반이다, 라고 아빠는 늘 말한다. 맞는 말이다. 시작에서부터 뒤처지면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다. 나는 내 앞을 가로막고 달리는 아이들 두, 세 명을 어깨로 밀치며 앞으로 뛰어간다. 누군가 내가 했던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내 어깨를 밀치고는 빠르게 내 앞을 스치고 달려 나간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키가 큰 녀석이다. 누가 너 따위에게 질 줄 알고! 나는 어금니를 악문다. 간신히 내 어깨를 치고 달려간 녀석보다 한 발 앞서 출발선 앞에 도착했다. 다행히 정중앙이다. “모두 집중! 첫 번째 미션이다! 참가 인원은 모두 100명, 카트는 50개! 먼저 뛰어가 카트를 잡는 사람만이 장을 볼 수 있다!” 순식간에 사회자의 설명이 끝났다. 사회자는 번쩍 들어 올렸던 붉은 깃발을 밑으로 내리고 출발선 앞에 서 있는 아

  • 웹관리자
  • 2012-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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