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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계의 세 친구, 빅사이즈●술래●내토를 만나다

  • 작성일 2011-07-04
  • 조회수 609

 

[글틴 인터뷰 탐험 2]

 

 

힙합계의 세 친구, 빅사이즈술래내토를 만나다

 

 

일시 : 2011. 6. 25(토) 오후 3시

장소 : 홍대 부근 연습실

참여 : 이난, 미모사, 초극세사녀(이상 필명)

 

 

 

래퍼들은 몸에 밴 리듬감이 대화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노래가 되지 않은 문장들조차 라임이 느껴져 판소리 추임새를 넣듯 흥을 맞춰줘야 할 것 같다. 활자로 전하는 게 못내 아쉽다. 이 게시판 앞으로 램프 안 ‘지니’처럼 래퍼들이 나타나 랩으로 그 날의 인터뷰를 전달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네 꿈을 펼쳐라 시즌 2’ 글틴 인터뷰 탐험의 두 번째 인터뷰이 ‘술래’, ‘내토’, ‘빅사이즈’는, 뼈 있는 언어유희가 자연스러운 이들이다. 글자로 곡선을 그릴 수만 있다면 삼각 함수 곡선과는 비교도 안 될 다양한 곡선들이 이 ‘세 남자’의 음색에서 흘러나올 것이다.

최근 술래, 내토, 빅사이즈는 ‘세 남자’라는 프로젝트명으로 활발한 활동 중이다. 인터뷰 때도 전 날 홍대 클럽데이 공연을 마치고 새벽까지 그 여운을 나눈 뒤였다. 그럼에도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글틴 학생들의 흥을 돋워주었다. 그간 잠시 중단됐던 홍대 클럽데이 힙합 공연이 재개돼 감회가 남달랐던 만큼, 인터뷰에도 그 기운을 고스란히 이어갔다.

술래와 내토 둘은 ‘Late B’, 빅사이즈는 ‘번트P’라는 그룹에서 노래를 만들고 공연하며, 셋은 ‘세 남자’로도 역시 무대에 오른다. 술래와 내토는 고향 단짝친구이자 음악 동지였고, 빅사이즈는 ‘신촌콘서트’라는 정기적인 계절콘서트로 술래와 인연이 닿아 함께한 관계다. 7월 8일과 9일 여름 공연을 앞두고 요새는 한창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문학소녀 이가연(필명 : 초극세사녀)과 시인지망생 김고은(필명 : 미모사), 이솔잎(필명 : 이난)이 진행한 이번 인터뷰는, 다수가 참여한 ‘공개강좌’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시종일관 ‘버라이어티 쇼’ 분위기였고, 재담과 라이브 공연, 인생 상담이 뒤섞여 세 시간 가량 진행됐다. 래퍼들은 공연 때의 경험담과 가사 쓸 때의 마음, 좋아하는 것을 찾아갈 때 겪게 될 갈등 등에 관해 명료하게 정리해주었다.

지난 6월 25일 장마철 홍대 근방 지하연습실에서, 서른 즈음의 음유시인 ‘세 남자’가 글틴에게 전하는 조언들을 들어보았다.

 


▶ 사진(위)_ (좌로부터) 빅사이즈, 내토, 술래

사진(아래)_ (좌로부터) 이난, 미모사, 초극세사녀
 

 1. “스스로 노력해서 얻어 내고, 

결정한 대로 끝까지 밀어 붙인다.” 

(빅사이즈)   

 

빅사이즈는 가사도 쓰고 작곡도 한다. 가사를 쓸 때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어휘나 유행어를 선별해 쓴다. 팬들의 반응을 모니터하고, 힙합이 좀 더 친숙하게 들릴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하고 있다.

현재 ‘세 남자’에서는 작곡에 주력 중이다. 빅사이즈는 유년기부터 홍대 신촌 등지에서 잔뼈가 굵은 실력파이다. 빅사이즈는 6학년 때 소위 ‘가출’을 감행, 좋아하는 것을 스스로 찾은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 시절 경험담을 들려줄 때는 “단순한 호기심이 화를 불렀죠”라는 농담도 잊지 않았다.

어린 시절 LA로 이민 간 삼촌 덕에, 한 달에 2~3장씩 새 LP판을 들었다.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음도 아닌데 임팩트가 있고, 자연스럽게 몸을 흔들 수 있는 게 신기했다”고 한다. 그런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그게 인생의 돌파구라고 여기고 무대에 오르는 꿈을 꿨다.

“당시에는 힙합을 하고 싶다가 아니라 저한테 ‘힙합’이라고 말해주는 데를 찾으러 돌아다닌 거죠. 잡지 매체도 발달하지 않았던 때니까 제가 듣고 있던 음악이 뭔지 잘 몰랐어요. 물어 물어 찾아간 거예요. 60~70년대 활동했던 ‘슈거 힐 갱(Sugahill Gang) 노래 중의 하나를 발음을 다 외워서 사람들한테 물어보면서 들려줬어요. 설명할 방법이 없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네가 하는 게 뭔지 모르겠는데 비슷한 걸 하는 사람들이 저기 있다’고 해서 정보를 얻고 찾아간 곳이 신촌  ‘푸른굴양식장’ 같은 라이브 클럽이었어요. 거기서 사람들을 만나고 서른 명 가량이 함께 숙식하고 음악하며 지냈죠. 음악 처음 배우면서 따라다닌 형들이 있었는데 지하 주택에 갹출해서 월세 들어가 살았어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작업하면서 그렇게 지냈죠.”

당시 어린 나이에 부모님 반대를 무릅써야 한다는 걱정에, 스스로 뭐든 홀로 찾아 다녔다고 한다. 하드 코어 밴드에서도 활동했고, 대학로 연극 판에서 일한 적도 있다. 지금도 노숙하기 가장 따뜻한 장소(신촌 현대백화점 지하)도 추천할 수 있을 만큼, 당시 생활 정보라면 빠삭하다. 10년 이상을 현장에서 부딪치며 살아온 까닭이다. 그런데 최근 어머니와 식사를 하는 도중, 어머니가 당시 아들을 회상하며 한 말씀 건네셨다.

“반대할 생각 없었다.”

은근히 기분이 좋았지만, “일찍 여쭤볼 걸 그랬다”는 생각도 했다. 장남인 그는 부모가 음악을 반대하리라 으레 예상했던 것. 지금 돌아보니 반전허무개그 같지만 “스스로 노력해서 얻어낸 게 처음”이라는 보람은 여전하다. 최근 예전에 듣던 LP 판을 정리해 처분했는데, 분량이 10만 장 가량 되었다. 어릴 적에 CD는 별로 안 좋아했다고 한다.

‘좋아하는 것을 일로 할까, 취미로 삼을까’ 고민하는 글틴이 있다면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일단 스스로 찾되 찾았으면 ‘믿고 가라’는 충고다.

“유년기에 그런 고민 안 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우선 인식하는 게 필요합니다. 감각적인 음악인은 백 프로 창작욕으로 보여주는 데에 반해 영리한 뮤지션은 자기의 현실을 만들어놓고 그 안에서 음악을 표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죠. 두 뮤지션 중 누가 더 가치 있는지 판단할 순 없어요. 직장을 다니면서 음악을 해도 음악인이 아니다 말할 순 없잖아요? 좋아하는 마음 자체로도 음악인인데, 표현하는 것 자체가 이미지가 생기니까요. 단지 사회의 통념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하겠지만 자신이 결정한 대로 끝까지 가느냐 그게 중요하죠.”

빅사이즈는 ‘번트P’와 ‘세남자’에서 꾸준히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는 음악을 할 생각이다. 지금도 가끔 혼자 연극을 보고 좋은 극을 보면 쪽지를 써서 배우에게 건네고 가는 습관이 있단다. 자신도 시낭송축제에서 시 같은 랩으로 공연을 한 적이 있는데 시인이 “그대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그대 있다”는 쪽지를 주고 사라져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자신의 랩이 평범함 속에서도 감동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는 존경하는 사람들에게 자극을 받으면 매너리즘도 극복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 점도 자신에게 계속 새긴다. 현재는 김중만 사진 작가를 존경해 그와 비슷한 레게 머리를 하고 있다. 80만 원의 거금을 들여 만든 헤어스타일은 꾸준히 팬들에게 반응이 좋다.

 


▶ 사진(위)_ (좌로부터) 빅사이즈, 내토, 술래

사진(아래)_ (좌로부터) 이난, 미모사, 초극세사녀
 

2. “자신의 길을 걷다 보면   
그 분야에서도 어느새 길은 다양해진다.”  
(술래)  

 

어릴 적 제천 마을에서 음악을 시작한 술래와 내토는 지금도 시골에서 자주 공연을 한다. 무대를 스스로 만들고 적극적으로 그 무대를 즐긴다는 것이다. 남이 만들어주는 무대만 기다리는 게 아니라, 직접 무대에 맞는 노래를 만들고 관객과 가까이에서 소통한다.

“클럽에서의 공연만 생각하는데, 시골이나 산 속, 카페 등 상당히 공연할 기회가 많아요. 노인 분들 앞에서도 하고요. 그렇게 걷다 보면 또 여기에서 길이 상당히 많거든요. 좋아하는 쪽에서 생각을 계속 하다 보면 만남이 이어지고 공연도 계속되죠.”

술래는 제사도 많이 지내는 집안의 장손이다. 부모님은 공무원이고 누나들은 선생님이다 부모님은 신용카드조차 만들지 않을 정도로 검소하고 보수적인 어른이었다. 작은 아버지들은 “너희 아버지가 어떻게 널 그냥 남겨뒀는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로, 집에서 불가사의한 아들이었다.

“저희 집은 완전 시골이에요. 반찬으로 메뚜기도 사먹고, 개구리도 잡아먹고 그랬어요.”

어릴 적 따뜻한 정서에 물든 탓일까. 지금도 어쿠스틱 사운드에 랩을 하는 것을 좋아하고, 밴드와 함께 활동도 하며, 다른 장르의 사람들과 작업하는 데에도 무리가 없다.

“제천에서 있을 땐 음악을 하는 형들 따라서 록 밴드에서 활동하고 상당히 다양한 작업을 하는 사람들과 어울렸어요. 서울 처음 오던 날, 정장 차려 입고 머리 세우고 와서 땀에 절어 막차를 타고 집에 가고 그랬던 날들도 있죠.”

요새는 상황이 반대가 되어 서울에서 음악을 하다 제천에 내려갈 때면 오히려 반듯한 외모로 변신한다. 대표적으로 수염을 밀어버리는 것. 술래의 수염이 사라지면 그건 고향에 다녀온 증거다.

“어머니도 깎길 바라다가도 얼굴 보시면 막 웃어요. 어릴 땐 음악 하면서 반항심이 있었지만 조용히 시간이 흘러가서 그게 감사한 것 같아요. 이젠 집에 갈 때마다 ‘돈 많이 번다’고 ‘저 이백 벌어요! 연봉.’ 그러면서 능글대기 시작했어요.”

많은 것들이 유하게 흘러가는 까닭인지, 술래는 “점점 작업을 하면서 시끄럽다고 표현하면 그렇지만 그런 쪽보다는 서정적인 쪽으로 간다”고 말한다. 이십 대를 지나면서 가사도 더 신중하게 쓰게 되고, 아름다운 것들을 찾으려 애쓴단다. 들려주고 싶은 가사는 길을 걷다가도 녹음기에 녹음하고, 노트를 들고 다니다 바로 적는다.

“중학교에 가서 음악 수업을 한 적이 있어요. 그 때 느낀 게, 불평 불만을 말하는 것은 쉽지만 아름다운 것들은 말하긴 어렵더라고요. 나쁘게 말하는 건 쉬우니까, 좋은 걸 말하려고 노력을 해요. 랩 하는 사람들도 작가거든요. 꼭 내 얘기가 아니라도 다른 사람 입장에서 무궁무진하게 얘기할 수 있어요.”

현재 술래는 상상과 경험을 동시에 가사로 잡아내려 노력하며, 시간이 흐르는 대로 새롭게 만나는 다양한 길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음악과 시와 말’의 경계에 있는 것이 ‘랩’이라고 느끼는 만큼 빅사이즈, 내토와 함께 책 같은 힙합을 하고 싶단다. 때론 무협지도 쓰고, 연애소설도 쓰고, 모조리 다 쓸 생각이다.

참고로 술래가 이름이 술래인 까닭은 “진 사람이 술래인데, 그 사람이 지면 다른 사람이 재미있게 놀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 편으론 “진 사람이 이긴 사람을 잡으러 다니는 것에서 약자와 강자 혹은 음악이나 사람을 찾아 다니는 것”을 비유했다. 사실 이것은 이름이 만들어진 다음에 생각한 것이고, 대학 시절 ‘술’을 좋아해 붙은 별명이라는 것!

 



▶ 사진(위)_ (좌로부터) 이난, 미모사, 초극세사녀
사진(아래)_ (좌로부터) 미모사, 술래, 내토, 초극세사녀, 빅사이즈, 이난
 

3.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하루에도 열두 번 씩 생각을 한다.

이상주의자로 살든 현실주의자로 살든

되도록 후회는 안 하려고 한다.”

(내토)

 

내토는 고향 제천의 이름을 땄다. 제천의 우리말이 내토라고 한다. 내토는 인터뷰 내내 왼팔 술래, 오른팔 빅사이즈를 중재하듯, 둘을 양 쪽에 두고 각자의 사연과 라이브 노래를 조율해갔다. 중심으로서의 역할을 맡았던 만큼, 인터뷰 자리에 있던 누군가는 그가 ‘리더’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인터뷰 내내 무게중심 역할과 사회자(?) 위치를 전담한 까닭이다.

내토는 본인도 동료도 인복이 좋다고 한다. 동료라 하면 바로 술래다. 어릴 적부터 좋아하는 것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친구를 만나 공동으로 작업했다. 중고등학교 동창으로 중1때 1반 반장, 2반 반장으로 만났다고 한다. (참고로 술래는 반장을 접고 체육부장을 자처했다는 후문) 둘의 우정은 쭉 이어져 유년기, 청년기를 모두 함께 보냈다. 군대까지 같은 곳으로 갔다.

어린 시절에는 듣고 싶은 음반을 동네에서 어렵게 구했는데, 매장 주인이 “너희들 때문에 힙합 전문점이 돼버렸다”고 토로할 정도로, 좋아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그러모았다.

요샌 여름 공연을 앞두고 작업에 한창이다. 공연을 앞둔 시점에서는 곡이 잘 나오기 때문이다. 가사를 쓰는 게 오래 걸릴 때도 있는데 오히려 금방 쓴 곡이 인기가 제일 많다. 며칠이 지나도 한 곡이 안 나올 때가 있고 멤버 개개인 감정 기복에 따라 작업일정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끙끙대고 붙잡고 있을 때보다 30분 안에 쓰인 곡이 반응이 좋을 경우가 다반사다.

내토는 생각은 계속 하더라도 현실을 살아가는 ‘행동’ 에 방점을 찍는 스타일이다. 후회는 되도록 안 하려고 노력한다. 고민이 많아 힘든 글틴이라면 내토의 조언에 귀를 기울여보자.

“사람이 항상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잖아요. 그때그때 현실에 최선을 다하다 보니 여기 온 거죠. 저기 먼 이상을 좇아서 여기 온 게 아닌 것 같아요. 하루에도 열두 번도 넘게 생각하죠. 이상인가 현실인가. 사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부모님이 인정하고 음악을 시켜주셨지만, 가끔 지금도 딴 거 해보라고 말씀하실 때도 있고요. 그러면서도 내심 자기가 좋아하는 거 해서 잘 되면 좋지 하시면서 응원도 적극 하시거든요. 뭐든 기회비용이란 게 생기잖아요. 음악뿐만이 아닐 거예요. 어떤 쪽을 선택하든 후회를 되도록 안 하고 행동하려고 하죠.”

지금은 음악에 매진하는 것이 그의 선택이다. 음악과 현실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끼고 훌쩍 떠났다가 돌아온 까닭에, 그 어느 때보다 자세도 남다르다. 요새는 전화통화나 메신저로 꾸준히 술래, 빅사이즈와 공동 작업을 한다. 곡이 먼저 나오면 각자 가사를 써서 녹음해서 서로에게 보내주고, 같이 할 수 있는 부분만 만나서 작업을 한다. 자기 파트를 정한 뒤 연습을 하고 녹음을 끝내면 한 곡이 나온다.

내토는 동료 빅사이즈를 짧게 ‘이즈’라고 부른다. 술래, 내토, 이즈, 이름이 모두 특이하니 기억하기 쉽다. 잠시 글틴 유가연 양이 ‘빅 사이즈’ 이름을 헷갈려했더니 ‘이즈’라는 애칭(?)을 알려주었다. ‘트리플 엑스라지’로 착각하지 말라는 것! 빅사이즈는 어릴 적 형들과 합숙하며 음악을 할 때 얻은 별명이라고 한다.

세 남자는 내토라는 이름마냥 따뜻한 시골 얘기도 하고 요즘 사회 얘기도 하고, 힙합으로 대중과 친밀하게 놀 생각이다. 듣는 이들이 전혀 멀다고 느끼지 않는 음악을 하고 있다. 지방 공연을 가서 특산품을 출연료로 받기도 했고, 신촌 블루버드 클럽에서 공연할 때는 같은 고향 제천의 어르신(?)들이 열렬한 반응을 보내기도 했다. 음악 동료, 관객과의 추억은 지금도 차곡차곡 쌓여가는 중이다.

내토는 발언권을 지닐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음악을 하는 게 꿈이다. 주변의 가족이나 친구, 이웃을 도울 수 있는 데에까지 목소리를 내고 싶다. 술래, 빅사이즈와 함께 “한계를 두지 말자”는 생각으로 서로를 응원하며 다양한 음악을 꾸준히 선보일 예정이다.

 



▶ 사진(위)_ (좌로부터) 술래, 내토, 초극세사녀, 미모사, 이난, 빅사이즈

사진(아래)_ (좌로부터) 미모사, 술래, 내토, 초극세사녀, 빅사이즈, 이난

 

정리_ 변인숙 baram4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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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0-16
단 한 번의 기회

청소년 테마소설 성취와 좌절_제4회 단 한 번의 기회 이명랑 자식을 바꿀 수 있을까? 나라면…… 절대로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아빠, 엄마라면? 나는 빠르게 주위를 훑어본다. 운동장을 둥글게 에워싼 광장식 계단을 꽉 메운 사람들. 대부분 오늘 테스트에 임하는 아이를 자녀로 둔 부모들이다. 열심히 자녀들을 응원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나는 아빠, 엄마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고 생각한 순간, 차가운 은빛으로 빛나는 안경이 눈에 들어온다. 아빠다. 아빠 옆으로 엄마와 할아버지, 할머니도 앉아 계신다. 컥, 숨이 막힌다. 우리 가족이 앉아 있는 곳을 확인하자마자 누군가 목을 조르는 것처럼 숨이 막혀온다. 흰 현수막 위에 금빛으로 화려하게 새겨진 글자들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VIP. 금빛으로 빛나는 VIP라는 글자들 옆으로 봉황 두 마리가 이제 곧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듯이 날개를 펼치고 있다. 그 활짝 편 날개 옆에 우리 가족은 앉아 있다. 비좁은 자리에 앉아 서로 어깨를 부대끼며 자식들을 응원하다 말고 어른들은 가끔씩 VIP석을 곁눈질한다. 대놓고 쳐다보지는 못하지만 이따금 VIP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훔쳐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부러움과 질투심이 묘하게 뒤섞여 있다. 저기 앉아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지? 얼마나 돈을 많이 벌어야 VIP석에 앉을 수 있는 거야? 아들아! 봤지? 네 눈에도 저기 VIP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너만이라도 제발 저 자리에 앉아다오! 사람들이 던지는 수많은 물음표들과 느낌표들을 아무렇지 않게 상대하며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그 옆에서 아빠, 엄마보다 더 태연하게 발밑의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바로 내 가족이다. 어른이 되면 나도 저 자리에 앉을 수 있을까? 앞으로도 나는 우리 가족의 일원일 수 있을까? “자! 전원 출발선 앞으로!” 사회자가 붉은 깃발을 번쩍 들어올린다. 와─ 하는 함성과 함께 수많은 아이들이 출발선 앞으로 달려간다. 나도 질세라 뛰어간다. 시작이 절반이다, 라고 아빠는 늘 말한다. 맞는 말이다. 시작에서부터 뒤처지면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다. 나는 내 앞을 가로막고 달리는 아이들 두, 세 명을 어깨로 밀치며 앞으로 뛰어간다. 누군가 내가 했던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내 어깨를 밀치고는 빠르게 내 앞을 스치고 달려 나간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키가 큰 녀석이다. 누가 너 따위에게 질 줄 알고! 나는 어금니를 악문다. 간신히 내 어깨를 치고 달려간 녀석보다 한 발 앞서 출발선 앞에 도착했다. 다행히 정중앙이다. “모두 집중! 첫 번째 미션이다! 참가 인원은 모두 100명, 카트는 50개! 먼저 뛰어가 카트를 잡는 사람만이 장을 볼 수 있다!” 순식간에 사회자의 설명이 끝났다. 사회자는 번쩍 들어 올렸던 붉은 깃발을 밑으로 내리고 출발선 앞에 서 있는 아

  • 웹관리자
  • 2012-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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